한국과 세계의 오순절신학을 위해 K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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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첫 공식 내한선교사 아더 B. 체스넛이 한국원조에 대해 쓴 글

Pentecostal Evangel No. 2020 (January 25, 1953): 18. 한국에 필요한 원조 아더 B. 체스넛 이창승 역2024.4.29.      한국은 세계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나라들 중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가장 오래된 기독교 선교지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며, 그래서 그리스도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3세대 신앙인들이다.    역사 속에서 그 어느 나라도 한국보다 더 전쟁에 휘말리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은 가정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천만 명이 노숙자가 되었다), 또한 그 나라의 경제 구조를 파괴했다. 예를 들면, 구십만 명의 서울 거주자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주일에 일곱 끼 이하를 먹고 있다. 그들은 연료나 따뜻한 침구류가 없는 비참한 오두막들..

오순절 미국 하나님의성회 첫 공식 내한 선교사 아더 B. 체스넛의 자서전 8

발에 신을 신기라Put . . . Shoes on His Feet[눅15:22] [미국 하나님의성회 첫 공식 내한 선교사]아더 B. 체스넛Arthur B. Chesnut   (Tulsa, OK: Christian Publishing Services, Inc., 1987). 이창승 역2024.4.27. * 이 번역은 한세대학교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송하종 목사가 역자에게 체스넛의 자서전을 기증함으로써 이루어지게 되었다. 본 번역은 체스넛의 자서전 중에서 한국편만 떼어낸 것이다.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     서울의 그 교회는 그 건물이 수리된 후 첫 주택 집회에서 그 건물로 이사했다. 한 연인들이 내게 결혼식 주례를 부탁했다. 그들은 그 교회 교인들이었고, 평판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이 그 교회에..

오순절 미국 하나님의성회 첫 공식 내한 선교사 아더 B. 체스넛의 자서전 7

발에 신을 신기라Put . . . Shoes on His Feet[눅15:22] [미국 하나님의성회 첫 공식 내한 선교사]아더 B. 체스넛Arthur B. Chesnut   (Tulsa, OK: Christian Publishing Services, Inc., 1987). 이창승 역2024.4.27. * 이 번역은 한세대학교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송하종 목사가 역자에게 체스넛의 자서전을 기증함으로써 이루어지게 되었다. 본 번역은 체스넛의 자서전 중에서 한국편만 떼어낸 것이다.  성령침례     하비 맥알리스터(Harvey McAlister) 형제는 전 세계 여러 곳에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있던 전도자였다. 그는 일본 여러 지역에서 열린 집회들에서 우리와 함께 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에 사역을 위해..

오순절 미국 하나님의성회 첫 공식 내한 선교사 아더 B. 체스넛의 자서전 6

발에 신을 신기라Put . . . Shoes on His Feet[눅15:22] [미국 하나님의성회 첫 공식 내한 선교사]아더 B. 체스넛Arthur B. Chesnut   (Tulsa, OK: Christian Publishing Services, Inc., 1987). 이창승 역2024.4.27. * 이 번역은 한세대학교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송하종 목사가 역자에게 체스넛의 자서전을 기증함으로써 이루어지게 되었다. 본 번역은 체스넛의 자서전 중에서 한국편만 떼어낸 것이다.  부산에 온 빌리 그래함      [복음주의전도자]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이 군인들에게 말하기 위해 [1952년 12월 15일에] 부산에 왔다. 한 극장이 그 집회를 위해 사용되었다. 그 집회는 좋았고 그 장소는 [미군..

오순절 미국 하나님의성회 첫 공식 내한 선교사 아더 B. 체스넛의 자서전 5

발에 신을 신기라Put . . . Shoes on His Feet[눅15:22] [미국 하나님의성회 첫 공식 내한 선교사]아더 B. 체스넛Arthur B. Chesnut   (Tulsa, OK: Christian Publishing Services, Inc., 1987). 이창승 역2024.4.27. * 이 번역은 한세대학교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송하종 목사가 역자에게 체스넛의 자서전을 기증함으로써 이루어지게 되었다. 본 번역은 체스넛의 자서전 중에서 한국편만 떼어낸 것이다.  6일본으로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부산에서 어떤 것들을 세우고 머물며 나의 의무인 직무들을 수행하며 예닐곱 주를 보낸 후, 내 물건을 완전히 다 옮기기 위해 일본으로 돌아갔다.    일본 상공을 날면서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

오순절 미국 하나님의성회 첫 공식 내한 선교사 아더 B. 체스넛의 자서전 4

발에 신을 신기라Put . . . Shoes on His Feet[눅15:22] [미국 하나님의성회 첫 공식 내한 선교사]아더 B. 체스넛Arthur B. Chesnut   (Tulsa, OK: Christian Publishing Services, Inc., 1987). 이창승 역2024.4.27. * 이 번역은 한세대학교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송하종 목사가 역자에게 체스넛의 자서전을 기증함으로써 이루어지게 되었다. 본 번역은 체스넛의 자서전 중에서 한국편만 떼어낸 것이다.   내게 거처를 제공했던 목사는 한 미국인 선교사가 자기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셋째 날에 그를 찾아갔다. 내가 밖에 서 있는 동안 가정부가 그를 불렀다. 나는 공손하게 나를 소개했다. 그의 첫 마디는 “여..

오순절 미국 하나님의성회 첫 공식 내한 선교사 아더 B. 체스넛의 자서전 3

발에 신을 신기라Put . . . Shoes on His Feet[눅15:22] [미국 하나님의성회 첫 공식 내한 선교사]아더 B. 체스넛Arthur B. Chesnut   (Tulsa, OK: Christian Publishing Services, Inc., 1987). 이창승 역2024.4.27.  흐르는 물    도쿄에서 한국을 위해 기도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성경학교에서 가르치기와 천막 집회로부터 성장한 작은 개척 교회를 목회하기에 바빴다. 여전히 경제대학에서 파트 타임으로 가르치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순복음 사람들 가운데서 일할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날마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언젠가 내 방에서 하나님 앞에 홀로 있을 때, 그분께 한국에 있는..

오순절 미국 하나님의성회 첫 공식 내한 선교사 아더 B. 체스넛의 자서전 2

발에 신을 신기라Put . . . Shoes on His Feet[눅15:22]   [미국 하나님의성회 첫 공식 내한 선교사]아더 B. 체스넛Arthur B. Chesnut   715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다     일본에서 2년 조금 넘게 있었을 때인 1950년 어느 날[6월 25일] 북한이 남한을 침공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그 침공은 가족들이 학교, 일터, 장보기 그리고 방문 등 여러 가지 활동으로 흩어져 있던 한낮에[사실은 새벽에] 일어났다. 어떤 가족들은 수개월 동안 재회하지 못했거나, 어떤 사람들은 영영 가족에 합류하지 못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피난했다. 거의 마지막 한 사람까지 서울을 떠났고, 지극히 소수만 남았다. 선교사들은 그 수도에서 약 두 시간 떨..

오순절 미국 하나님의성회 첫 공식 내한 선교사 아더 B. 체스넛의 자서전 1

발에 신을 신기라Put . . . Shoes on His Feet[눅15:22] [미국 하나님의성회 첫 공식 내한 선교사]아더 B. 체스넛Arthur B. Chesnut   (Tulsa, OK: Christian Publishing Services, Inc., 1987). 이창승 역2024.4.27. * 이 번역은 한세대학교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송하종 목사가 역자에게 체스넛의 자서전을 기증함으로써 이루어지게 되었다. 본 번역은 체스넛의 자서전 중에서 한국편만 떼어낸 것이다. 33. . . .결정     어느 날 아침, 그 학교[시애틀에 있는 오순절계통 성경학교]에 입학했고, 그것은 내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시애틀에 있는 보잉사에서 새로운 비행기 개발부서에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언제나 지각했다. ..

오순절 내한 선교사 메리 C. 럼시가 1958년 2월 4일에 허홍 목사에게 쓴 편지

1958년 2월 4일. 허 형제에게,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김[성락] 형제가 12월 31일이나 1월 1일 또는 2일에 보낸 40달러 뉴욕 수표를 받지 못했다고 썼습니다. 그래서 거래 은행에 전화했습니다. 그들이 알아보니, 그 수표가 현금화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수표에 대한 지불을 중단시켰고, 대신에 다른 수표를 발행했습니다. 김 형제는 또한 7월 31일 이후까지 로스앤젤레스에 있을 거랍니다. 다시 발행된 40달러 수표는 오늘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그 수표를 김 형제에게 보냈습니다. 지금 눈이 무척 많이 와서 길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저의 건강이 좋지 못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지난여름 이후 교회에 가지 못했습니다. 갈 수가 없습니다. 더 이상 편지를 쓸 수는 없겠지만, 여러분 모두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