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tecostal Evangel No. 2020 (January 25, 1953): 18.
한국에 필요한 원조
아더 B. 체스넛
이창승 역
2024.4.29.
한국은 세계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나라들 중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가장 오래된 기독교 선교지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며, 그래서 그리스도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3세대 신앙인들이다.
역사 속에서 그 어느 나라도 한국보다 더 전쟁에 휘말리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은 가정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천만 명이 노숙자가 되었다), 또한 그 나라의 경제 구조를 파괴했다. 예를 들면, 구십만 명의 서울 거주자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주일에 일곱 끼 이하를 먹고 있다. 그들은 연료나 따뜻한 침구류가 없는 비참한 오두막들에서 살고 있다. 봄이 되기 전에 수천 명이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서 확보될 수 있는 음식의 양은 매우 제한적이고, 가격의 인플레이션 때문에 대부분의 평민들에게는 음식을 사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숙련공이 하루 종일 일하면 단지 두 끼를 먹을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다. 그가 잘해야 삼일에 하루 고용되는 것이 평균이다.
몇 년 전에는 상황이 아주 달랐다. 오랜 동안의 일본 강점 후 한국인들은 독립을 얻었다. 그들은 만족스럽고 행복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집과 땅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경작하기를 좋아했다.
인구의 팔십 퍼센트가 세 채나 네 채에서 몇 백 채에 이르는 오두막으로 구성된 마을들에서 살고 있다. 이 단순한 집들은 진흙 벽과 초가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들은 구릉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고 땅은 그리 비옥하지는 않지만, 한국인들은 근면한 농사꾼들이고 즐겁게 일하고 있다.
한국 집 앞[사실은 뒤]에 흙으로 빚은 항아리들이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항아리의 수는 그 집의 부의 정도를 나타낸다. 많은 종류의 먹거리들이 거기에 담겨있고, 가능한 오래 보존하기 위한 모든 노력이 기우려진다. 한국의 집은 친절의 정수이다. 언제나 개방되어 있고, 이전에는, 마을에서 조차, 담이 없었다. 그렇지만, 공산주의 게릴라의 활동은 많은 변화를 초래했다. 그렇다, 극적인 변화다.
한국은 우리에게 진정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는 확실한 노력이 기우려지고 있다. 예배가 드려지고 있는 한국의 하나님의성회 교회는 열두 개다. 부산시는 지금 피난민으로 넘쳐나고 있는데, 거기에 가로 8피트, 세로 16피트의 작은 방에서 만나는 한 기독교 집단이 있다. 부산은 정부의 임시청사가 있는 곳이어서 물가가 매우 높다. 그렇다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정말로 교회 건물이 필요하다.
대구는 또 다른 대도시다. 현재 대구는 한국의 자유스러운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일 것이다. 우리는 최근 그 도시의 임시 피난민 촌 안에 있는 한 오래된 창고를 빌릴 수 있었다. 청소하고 어느 정도 수리한 다음, 교회 예배들이 거기서 드려지기 시작했다. 그 방의 가로는 12피트, 세로는 24피트다. 그 교회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고, 그 방이 꽉 차고 있다. 주일학교학생들은 200여명이다.
한국에서는 “몇 명이 예배드렸습니까?”라고 묻지 않는다. 그보다는 “예배당이 성도들을 다 수용할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 진정 추수 할 때가 되었다.
수도였던 서울은 동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들 중 하나였다. 중심가들에는 높고 당당한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극소수의 건물들만 서있고, 그마저도 전쟁으로 심각하게 파손되어있다. 값이 비싸지 않을 때 그곳에 건물을 구입하여 이 수도의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주는 데 사용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Relief Needed in Korea
A. B. Chesnut
Korea is not only one of the most ancient nations of the world but it is also one of the oldest Christian mission fields and thus is of vital importance to the cause of Christ. Christians in Korea today often represent the third generation of believers.
No country in history has seen more battles than Korea. War has destroyed not only the homes (10 million have been left homeless) but the economic structure of the country as well. For example, among Seoul’s 900,000 inhabitants a great many eat less than seven meals a week. They live in wretched shelters without fuel or warm clothing. Thousands of deaths from starvation and disease are expected before spring.
The amount of food that can be purchased in Korea is very limited, and because of inflationary prices it is beyond the means of most folk to purchase it. A craftsman can work all day and earn only enough for two meals. If he call find employment one day out of three that is a good average.
Several years ago the situation was vastly different. After many years of Japanese occupation the people had finally achieved independence. They were contended and happy. They owned their own homes-unpretentious though they were - and their land, which they loved to till from morn until night.
Eighty per cent of the population live in villages which range in size from three or four huts to several hundred. These simple dwellings are made of mud walls and grass roofs. The villages are nestled between the low rolling hills where land is none too fertile, but the Korean is a tiller of the soil and is happy in his work.
In front of the Korean home one sees earthen vessels stored. The number of vessels bespeaks the wealth of the family. Many kinds of food are stored there and every effort is made to keep as much in reserve as possible. The Korean home is the essence of hospitality. It is open at all times; and formerly, even in the villages, not a fence was to be seen. However, communist guerrilla activity has made necessary many changes - yes, drastic changes.
Korea presents a very real challenge to us. A definite effort is being made to win these people for Christ. The Assemblies of God have 12 centers where church services are being conducted. In the city of Pusan, which is now over run with refugees, we have a group of Christians who meet in a small room 8 by 16 feet. Pusan is a main seaport and at present the only accessible one. Because it is the temporary seat of government the price of property is very high. However, we are in real need of a church building there.
Taegu is another great city. It is today perhaps the largest city in free Korea. Recently we were able to locate and rent an old storage room in a transient and refugee area of the city. This was cleaned and renovated to some extent and church services were begun there also. The room is 12 by 24 feet. The church is growing steadily and filling up all available space. The Sunday School numbers 200.
In Korea one does not ask, “How many were in the service?” Rather the query is, “Can your place accommodate the people?” The harvest is surely ripe.
Seoul, the former capital, once was one of the most beautiful cities of the Orient. The main streets used to be lined with tall, stately buildings. But now - very few buildings are standing and these are badly damaged by war. It would be wise to purchase properly there while prices are not prohibitive, and thus bring the gospel to the hungry and thirsty of this center al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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