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공산주의를 실행했었다고?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경험적 이행
이창승
2019.8.31
사실, 자본주의 미국은 시초에 공산주의를 실행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영국의 아메리카 신대륙의 식민지 플리마우스(Plymouth)에서의 일이었다. 윌리엄 브래드포드(William Bradford)는 1620년에 일단의 청교도들과 함께 메이플라우어 호를 타고 신대륙에 왔으며, 1621년에서 1657년까지 그 식민지의 총독이었다. 그는 1651년에 1606년부터 1640년까지의 자신의 일기를 책으로 펴냈다. 그 일기에서 그는 영국 국교의 박해를 피해 플리마우스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처음에 집단적 공동 방식으로 살았음을 증언했다.
그런데 브래도포드에 따르면, 그곳에서 이런 공동적 방식은 실패했고, 가족중심의 사유재산에 기반을 둔 방식, 오늘날 용어로 말하자면, 자본주의에 그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의 일기에서 그런 증언을 발췌하여 아래와 같이 번역하였다. 원본은 William Bradford, Bradford's History of Plymouth Plantation, 1606-1646, Vol.1 (Boston: Houghton Mifflin Company, 1912, https://archive.org/details/historyplymouth01socigoog/page/n358)을 보았다.
그 책 106쪽에 보면 플리마우스 거류자들과 그들을 고용한 회사 간에 계약 조건(condition)이 등장하는데, 그 열 번째 조항은 다음과 같다.
10. 이 거류지들(colonies)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고기, 음료, 의복, 그리고 모든 양식들을 그 거류지의 공동 비축물들로부터 받아야만 한다.
300쪽
1623년
이러는 동안 그 어떤 보급도 없었고, 그들은 언제 보급이 있을지 알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비참함 속에서 쇠잔해지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할 수 있는 한 옥수수를 더 많이 재배할 수 있는지, 그 이전 보다 더 좋은 옥수수를 수확할 수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많은 토론 후, 총독(the Governor)[Mr. Weston?]은 인간 스스로를 신뢰하여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옥수수를 나누어 주는 것을 포기했다. 그래서 가족 구성원의 수에 따라 각 가족에게 일정한 토지를, 단지 현재적 사용을 위해(유산을 위한 분배가 아닌), 배당했다. 그리고 모든 소년들과 청년들을 가족들에게 배치했다. 이 조치는 아주 성공했다. 이 조치는 모든 사람들을 부지런하게 만들었고, 그 총독이나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그 어떤 방법보다 더 많은 옥수수가 심어졌고, 많은 두통거리들로부터 그를 구했으며, 그에게 훨씬 더 만족함을 가져다주었다. 여성들은 이제 그 전에는 약하고 능력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던 자녀들과 함께 옥수수를 심으러 기꺼이 밭으로 나갔다. 만약 그것이 강제로 집행되었다면, 지독한 학대와 억압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몇 년 동안 그리고 경건하고 소박한 사람들 사이에서 시도되었던 이 공동 방식과 조건(common course and condition) 안에서 겪었던 경험은 그 이후 시대의 어떤 사람들에 의해 갈채를 받은 플라톤과 다른 고대인들의 공상의 공허함을 잘 증명할 것이다. 그 공상은 사유 재산(private property)을 빼앗아 공동체의 공익(commonwealth)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사람들을 행복하고 번영하게 만들 것이라는 것이다. 마치 그들이 하나님보다 더 현명한 것처럼. 왜냐하면 이 공동체는 많은 혼란과 불만을 낳았고 구성원들의 이익과 안락함이 되었어야할 많은 고용을 지체시킨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일과 수고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자기들의 시간과 힘을 그 어떤 보수도 없이 다른 사람들의 아내들과 아이들을 위해 허비해야만 한다고 불평했다. 건강한 사람들은 약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사분의 일도 일할 수 없는 남자보다 음식과 옷을 더 분배 받을 수 없었다. 이것은 불공평하다고 여겨졌다. 노인들과 죽음을 앞둔 사람들도, 비록 어느 정도의 모욕과 무례를 받았지만, 노동과 음식, 의복 등등에 있어서 장년들과 청년들과 평등하게 분배받았다. 아내들은 다른 사내들을 위한 고기들을 요리하기 위해 손질하고, 그들의 옷을 빠는 등의 봉사할 것을 요구받았기 때문에, 아내들은 이것을 일종의 노예상태라고 여겼으며, 많은 남편들도 역시 이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은 똑같이 소유하고, 똑같이 일하고, 똑같은 조건 속에서 생각하고, 똑같이 선량하게 생각해야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들 사이에 맺어놓으신 관계들을 끊지는 않았다면, 사람들 사이에서 유지되어야할 상호간의 존경을 적어도 많이 약화시키고 제거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다른 조건의 사람들이었다면, 더욱 악화되었을 것이다. 아무도 이것이 방식 자체와는 무관한 인간의 부패(corruption)라는 것을 반대하지 못하게 하자. 나는 대답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 안에 이 부패성이 있는 것을 아시고, 그분의 지혜로 그들을 위해 적합한 다른 방식(another course)을 생각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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