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승
|순복음총회신학교|
2020. 7. 18
I. 서론
마커스 J. 보그(M. J. Borg)는 라이트(N. T. Wright)에 의해 역사적 예수 연구의 “제3의 질문”에 분류된다. 그는 자기가 예수 연구의 르네상스 시대에 살고 있다고 보며, 자신도 예수 연구에 몰두했다. 과연 그가 그리는 예수상은 어떤 것인가? 마커스 J. 보그는 성경적이고 온전한 세계관을 갖지 못하고 포스트 모던적 세계관과 모던적 세계관이 혼재한 불완전한 세계관으로 예수를 봄으로써 부활 전 예수에게서 신성을 박탈시키고, 부활 후 예수에게서 인성을 박탈시키며, 부활 전 예수에게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삭제하며, 그리스도의 중보자로서의 왕과 인간의 죄를 대속한 제사장적 직무를 거부하고, 예언자적 모습만 남겨놓았다.
본 논문은 그런 마커스 J. 보그의 예수상을 분석해보고 평가할 것이다. II장에서는 마커스 J. 보그 자신의 예수 연구의 전제와 방법론을 살펴볼 것이다. III장에서는 마커스 J. 보그의 예수 부활관과 부활 전 예수상 그리고 부활 후 예수상을 살펴볼 것이다. IV장에서는 마커스 J. 보그의 예수연구의 긍정적인 점과 부정적인 점을 따져볼 것이다.
II. 마커스 J. 보그의 예수 연구의 전제와 방법론
본 장은 예수 연구에 임하는 마커스 J. 보그의 세계관/전제와 예수에 대한 접근 방식을 살펴본다. 연구자의 세계관, 즉 전제(presupposition와 방법론(methodology)은 연구대상에 대한 접근 방식과 방향을 결정하며, 그 연구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마커스 J. 보그의 세계관은 모던적 세계관과 포스트 모던적 세계관이 혼재된 세계관이며, 그의 방법은 “간학문”, “종교적 다원주의”, “문화적 상대주의”, “간문화”, “종교일반 이론”, “역사비평”이다.
A. 마커스 J. 보그의 예수 연구의 전제/세계관
세계관은 연구의 전제를 형성한다. 즉, 세계관은 연구 자료나 대상을 보는 관점을 결정하는 전제(presupposition)와 같다. 마커스 J. 보그는 세계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세계관’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직접적으로 교육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다른 주제들의 전제조건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 어떻게 작용하는지 마음속에서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실재에 대한 근본적인 그림으로서의 현대의 세계관은 실재 위에 놓인 하나의 지도(map)와 같은 것이며, 우리의 경험과 이해를 결정짓는다.
마커스 J. 보그에게는 다른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과 다른 면은 그가 다른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이 필요 없다고, 적합하지 않다고 버린 근대이전(Premodern)의 세계관(Weltanschauung)을 다시 평가하여 근대적 세계관과 조합한 것이다. 그의 안에서 조합된 세계관은 그가 자료들을 분석하는 관점, 즉 전제를 바꾸어 놓았다. 그런데 그런 그의 두 세계관의 조합은 그의 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 어린 시절에 형성된 대중적 기독교 세계관
마커스 J. 보그의 어린 시절의 세계관은 그 자신의 말로 소위 “대중적 기독교 세계관”이었다. 보그는 루터교회에서 자라났다. 그는 어린 시절에 사회와 교회에 의해 자기 안에 형성된 기독교를 “대중적 기독교”라고 평가한다. 그가 말하는 대중적인 기독교에 의하면 하나님은 기본적으로 초월적인 하나님이시며, 성경은 하나님의 산물이며, 신앙과 도덕의 권위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으나 죄를 지은 존재이며, 예수는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죄를 대속한 희생양이며, 그래서 유일한 구원의 길은 신앙이며, 궁극적 구원은 천국에 가는 것이다.
내가 어린아이로서 내면화했던 기독교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말하면, “후에 천당하기 위하여 지금 믿어라”라는 것이었다.
2. 청년시절에 습득한 계몽주의적 세계관: 두 세계관의 충돌
마커스 J. 보그는 교육을 통해 “계몽주의적 세계관”을 습득하면서 그것이 자신 안에서 “대중적 기독교 세계관”과 충돌하는 것을 경험했다. 그는 그런 어린 시절에 자기에게 형성된 “대중적 기독교”가 학교교육을 받으면서 흔들리기 시작하고 점차 해체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는 그 해체가 세계관의 충돌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분석한다. 그는 자라나면서 자기에게 형성된 세계관을 “기독교 세계관”이라고 명명하며, 그것은 “신앙의 시대”(the Age of Faith)의 산물이라고 규정한다. 그에 의하면 다른 하나는 자기가 학교교육을 받으면서 그에게 내면화되기 시작한 세계관으로서 “근대 세계관”이며, 그것은 “이성의 시대”(the Age of Reason)의 산물이다. 그는 “근대 세계관”을 17세기에 시작되어 근대를 그 이전의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시키면서 서구 지성사의 큰 분기점이 된 계몽주의 시기에 나타났던 실재관이라고 규정한다. 계몽주의 이전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재에는 최소한 두 가지 종류 혹은 두 가지 층이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즉 영적인 종류와 물질적인 종류가 그것이었다. 그런데 지식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방식을 강조했던 계몽주의는 본질적으로 “일원론적인” -- 물질주의적인-- 실재관을 수반한 근대 세계관을 탄생시켰다. 그 안에서 실재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의 “자연법칙”에 따라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바, 시공 연속체(space-time continuum)의 틀 속에 있는 물질과 에너지의 세계이다. 본질적으로 뉴우튼적인 우주관에 속하는 이런 세계관은 물리학의 세계 속에 자리를 잡게 되었으나, 그것은 동시에 대중적인 근대 문화의 세계관이다. 그는 대학생 시절에 자기에게 일어난 두 세계관의 충돌로 인한 혼란을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대학에 입학한 후, 계몽주의의 물질주의적 세계관과 나의 기독교 세계관의 초자연적 유신론 사이의 갈등은 첨예화되었다. 이것은 나를 상당한 혼란과 점진적인 무신론의 상태에 빠뜨렸다. 이 두 가지 실재관은 서로 조화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자기 안에서 “기독교 세계관”과 “근대 세계관”을 경험하는 가운데 신학교에 들어갔다. 그는 신학교에서 성경이 영감을 받은 하나님의 산물이 아닌 인간의 산물이라고 배웠다. 그는 신학교에서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배웠다. 그는 교수들로부터, 그리고 교수들이 과제로 내준 읽을거리들로부터 예수는 거의 확실히 처녀에게서 난 것이 아니며,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생각하지 않았고, 또 자신의 목적을 세상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죽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다고 배웠다. 그것은 한 마디로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였다. 이러한 용어는 역사적 예수는 한 뛰어난 종교인이었는데, 역사적 예수가 죽은 후 그를 따르던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가 실제로 부활하지 않은 예수가 부활하였으며, 그는 하나님이라고 꾸며, 예수를 그리스도화 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따라 보그는 역사적 예수와 기독교 전승 속의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에 연속이 아닌, 첨예한 단절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한 가르침의 기준으로 요한복음을 본 보그는 예수를 신적인 존재로서 그려 놓은 모습들에 분노를 느꼈다. 급기야 그는 또한 예수와 그리스도는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과거와 현재에 기독교 메시지가 닿지 않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될수록, 그들이 모두 지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믿는 일은 더욱 어렵게 느꼈다. 그는 전 우주의 창조자가 오직 한 종교 전통 속에서만 자신이 알려지도록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3. 30대 이후의 마커스 J. 보그의 세계관
이성의 범주 안에서 이해되는 예수만을 남겨 놓으려고 애썼지만 그는 초월적인 예수의 모습을 무시할 수 없었고,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취급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던 중에 그의 고백대로 30대 중반에 “초자연 신비적인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는 이때의 체험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떻게 보면 그것들은 별로 대단한 체험들도 아니었다 . . . 하지만 그것들은 신, 예수, 종교, 기독교 제반에 대한 내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 . . . 그것은 세상이 광휘로운 실재로서 빛나고 계신 ‘신의 영광으로 가득 차’ 보이는, 변환되는 인식의 순간이었다. 그것은 또한 절대자와의 유대를 느끼게 되는 연결의 순간이었다 . . . . 그것은 신비의 재발견으로서 지적 파라독스가 아니라 성스러운 신비의 체험이었다. 이러한 체험은 단순히 황홀한 경지를 넘어 네게 있어선 ”그렇구나!“ 하는 순간이었다 . . . . 나는 신이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초자연적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는 신이란 말이 존재의 핵심에 있는 신성불가침한 그 무엇, 우리를 둘러싸고 또 우리 안에 있는 거룩한 신비를 가리키는 것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의 그런 신비체험은 초자연적인 것의 인식을 거부하고, 초자연적인 것을 세계에서 몰아내려 했던 이성시대의 계몽주의적 “근대 세계관”을 다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여지를 그에게 부여해 주었다. 보그는 그 경험을 통해 계몽주의가 실증적이고, 과학적 세계관에 의해 검증할 수 있는 실체 이해에서 떼어 내버린 직관적이고 경험적인 실체 이해를 다시 받아들였다. 그는 그 체험 후 “영의 세계”와 “일상적인 경험의 세계”는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교차점을 형성하는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영의 세계, 즉 “다른 세계”가 인간에게 알려지는 것은 “특별한 개인들의 체험을 통해서이다”라고 말하게 되었다.
그의 그런 신비체험은 그의 신관을 바꾸었다. 그는 초자연적 유신론이 아닌, 범재신론(panentheism)의 방식으로 개념화된 신은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에게 범재신론은 “모든 것은 신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게 신은 모든 것 이상이지만(그리고 그래서 초월적이지만), 모든 것은 신 안에 있다(그래서 신은 내재적이다). 그의 범재신론적 이해에 있어서, 신은 바로 여기에 계신 것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바로 여기에” 계시다. 그러나 그는 신은 사물의 총합과 동일시될 수 없고, 오히려 신은 모든 곳에 현존한다 하더라도, 모든 것 이상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신은 인간 주변 도처에 계시고 인간들 안에 계시며, 인간은 신 안에 있다. 또한 보그는 신에 대한 모델을 “군주적 모델”(the monarchical model)과 “영적 모델”(the Spirit model)로 집약하고, 영적 모델을 더 선호하게 된다. 그는 영적 모델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경에서 (그리고 여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영의 의미는 기독교의 특수한 교리인 “성령”보다 넓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교리는 성령을 하나님의 한 측면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영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도 그렇고, 예수의 삶과 초대 교회에 있어서도 그렇고, 우주 속에 하나님이 현존함을 가리키는 것으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영의 의미는 하나님과 동의어가 될 만큼 상당히 폭넓다 ... 영은 하나님이 끊임없이 세계와 관계하면서도 동시에 이를 초월하고 계심을 이미지화한다.
그의 그러한 신비체험은 그의 예수에 대한 이해도 바꾸었다. 그는 “나는 이제 ‘성령’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 하나님의 핵심을 예수의 삶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예수를 영성을 자기(성령에 대한 실존적 자기) 삶의 근간으로 삼은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종래의 “지상 예수(역사적 예수)”와 “부활 그리스도(신앙의 그리스도)”라고 쓰던 말을 “부활 전 예수”(Pre-easter Jesus)와 “부활 후 예수”(Post-easter Jesus)라고 고친다. 그는 부활 후 예수는 단지 초기 기독교 신념과 사상의 소산이 아니라 ‘체험’의 소산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부활 후 그의 추종자들은 나사렛 예수를 피와 살을 지닌 인간으로가 아닌 영적 실체로 체험하였으며, 점점 더 예수에 대해 하나님의 모든 성질을 지닌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활하여 살아 있는 신약의 예수는 단지 믿음의 대상일 뿐 아니라 부활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체험적 실체로 있어 왔다. 그러므로 체험과 예배와 기도 안에서 부활 후 예수는 실재한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요한복음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요한복음의 예수는 그들이 체험한 부활 후 예수라고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이는 그리스도인의 체험 안에 살아 있는 그리스도 즉 부활 후 예수의 실체와 의미에 대한 강력한 증언이라는 것이다.
B. 마커스 J. 보그의 예수 연구 방법론
1. 간학문(Interdisciplinary) 렌즈
보그는 예수 르네상스류의 연구자들이 기본적으로 취하는 “간학문적 렌즈”(interdisciplinary lens)을 공유한다. 그는 “사회사”, “인류학”, “정치체제에 대한 연구”, “종교사”, “사회 안에서의 명예와 불명예에 대한 연구”, “노예 사회 연구”, “경제 체제에 대한 연구”, “ 의학적 인간학” 등등을 예수 연구에 적용한다. 그는 그러한 간학문적 연구는 예수의 상황인 1세기의 유대인들의 사회적 세계의 역학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고 본다. 그는 예수의 상황을 이해할 때 예수의 말과 행동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과 의미를 알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학문적 관점에서 서술하자면 예수를 관찰하는 나의 방법이 내가 지난 20세기에 살았다는 사실의 산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의 접근방식은 학문 상호간의 대화를 거치는 것이며, 이 분야에서 매우 최근에 발전된 것이다.
2. 다원주의와 문화적 상대주의 렌즈
마커스 J. 보그는 종교 다원주의와(religious pluralism) 문화적 상대주의(cultural relativism)에서 비롯되는 인식을 접근방식으로 활용한다. 그는 프리모던과 포스트모던을 동일하게 생각하고 자기 접근 방식이 “근대 이전의 포스트모던 현실관”을 취한다고 말한다.
나의 접근방식은 종교적 다원주의와 문화적 상대주의에 대한 인식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것은 20세기를 계속 움직이던 대개의 사람들에게 강렬하게 영향을 미친 인식이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현대적 역사의식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현대적 역사의식이란, “과거에 일어난 사건”과 “과거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해석” 사이의 구별에 대한 인식, 신약성서와 초대 그리스도교의 예수에 관한 언어를 포함하여, 모든 언어가 역사적으로 제약을 받고 역사적으로 유리한 지점 자체가 갖고 있는 상대적 성격에 대한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나의 접근방식은 여러 모로 근대 이전의 포스트모던한 현실관을 진지하게 취하는데, 원시의 전승에 관한 휴스턴 스미스(Huston Smith)의 저작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3. 간문화, 종교 일반 이론 렌즈(Cross-cultural lens)
마커스 J. 보그는 예수 연구에 “간문화 렌즈”(Cross-cultural lens)를 사용한다. 그는 예수를 세계의 종교들의 틀 안에서 보고, 종교적 인성에 대한 한 간문화적 유형을 끌어낸다. 그는 종교적 경험들에 대해 연구하며, 다른 예수 연구가들과는 다르게 신성한 것에 대한 경험들을 사용한다. 그는 신성한 것(the sacred)에 대한 경험에 큰 무게를 부여한다. 보그는 또한 “종교에 대한 일반적 이론 렌즈”(General theory of religion lens)를 사용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종교를 “문화적-언어적 전통”(cultural-linguistic traditions)으로 규정한다. 각 종교적 전통의 의미를 규정하는 것은 그것이 발생한 문화의 범주와 특징들을 채용한다는 것이다. 그 규정은 그 문화의 언어, 이미지, 그리고 제의를 사용한다. 그에게 종교는 경험에서, 특히 신성한 것에 대한 경험에서 발생하며, 지속적인 경험에 의해 육성된다. 또한 보그는 “종교의 역할은 경험 중재, 신성한 것의 중재자들이 되는 것, 신성한 것의 성례들로서 봉사”라고 본다. 보그가 종교적 경험을 신학 방법으로 끌어들이게 된 것은 본 장의 A 항에서 살펴보았듯이 그의 개인적 “신 경험”의 산물이다. 목창균 교수는 현대 구미신학의 특징들 중 하나로 “종교적 경험을 중시하고, 그것을 신학작업의 중요한 자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이러한 종교적 경험을 예수 연구의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의 독특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4. 역사적 비평 렌즈
예수 연구에 있어서 그가 신학교에 들어가서부터 줄곧 사용하고 있는 방법은 바로 근대 세계관에 입각한 고등비평(higher criticism), 즉 양식사 비평, 편집비평 등의 역사비평이다. 비록 그가 한편으로 포스트모던적인 종교적 경험을 예수 연구 렌즈로 사용하지만, 또한 다른 편으로는 여전히 모던적인 이성중심의 역사비평을 사용한다.
나는 복음서들의 성격에 관하여 간단하지만 결정적인 진술로 시작하고자 한다. 조금 설명하자면, 복음서들은 제1세기의 3/4분기에 문서 형태로 옮겨졌다. 예수의 죽음과 기록된 형태로의 예수에 관한 전승의 결정 사이의 수십 년 동안에, 그 전승들은 개작과 증대를 포함하는 과정 속에서 발전을 거듭했다. 발전하는 전승으로서 복음서들은 최소한 두 가지의 자료를 내포하고 있다. 어떤 자료는 매우 초기의 것이며, 그 요점은 필경 예수 자신에게까지 소급해 올라가는 것이다. 어떤 자료는 후기의 것으로, 공동체의 산물이다. 고고학적 은유를 사용하자면, 복음서들은 초기 자료층과 후기 자료층을 내포하고 있다. 고고학적 은유를 사용하지 말고 다른 은유로 옮겨 보자면, 복음서들은 최소한 두 가지 목소리, 즉 예수의 목소리와 공동체의 목소리를 내포하고 있다.
IV. 마커스 J. 보그의 예수
본장에서는 본격적으로 마커스 J. 보그가 그의 세계관을 가지고 그의 방법으로 예수를 연구한 결과를 살펴본다. 그의 기독론은 “부활절 이전의 예수와 부활절 이후의 예수”라는 말로 요약된다.
A. 마커스 J. 보그의 부활절 이전과 부활절 이후의 예수상
마커스 J. 보그는 다른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과는 다르게 예수를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부활절을 기준으로 “부활절 이전의 예수”(The Pre-Easter Jesus)와 “부활절 이후의 예수”(The Post-Easter Jesus)로 양분한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사실 두 종류의 서로 다른 예수를 말한다. 즉, 그에게 “예수”라는 말로 관련이 있을 것 같은 부활절 이전의 존재와 부활절 이후의 존재는 완전히 “서로 다른 실재”인 것이다. 그가 다른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과 다른 점은 부활절 이후의 예수에게도 실재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에게 부활절 이후의 예수는, 비록 역사적 예수의 실재와는 다르지만, 믿음 속에서나 존재하는 신화적 허상이 아니라 하나의 실재다. 그는 아래의 표처럼 부활절 이전의 예수와 부활절 이후의 예수를 비교한다.
이 두 글귀는 예수라는 명칭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실재들(realities)을 언급하는 두 가지의 전혀 다른 지시 대상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부활절 이전의 예수 | 부활절 이후의 예수 |
기원전 4년에서 기원후 30년까지 | 기원후 30년부터 현재까지 |
과거의 인물 | 현재의 인물 |
육체적(살과 피) | 영적 ․ 비물질적 |
유한/죽을 존재 | 무한/영원한 존재 |
인간적 | 신적 |
유대인 농민 | 왕중의 왕, 주중의 주 |
나사렛 예수 | 예수 그리스도 |
표 1.
B. 마커스 J. 보그의 부활절 이전의 예수상
마커스 J. 보그에게 부활절 이전의 예수는 역사적 예수이다. 보그는 역사적 예수에게서 신성을 제거하고 인성만 남겨놓는다. 그에게 사람인 역사적 예수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계시한 계시자이다. 보그는 역사적 예수를 다섯 가지 측면으로, 즉 “영적인 사람”(Spirit person), “카리스마적 치유자/성인”(Healer), “인습적 지혜를 뒤엎고 대안적 지혜를 가르치는 전복적 현자”(Wisdom teacher) “사회적 예언자,”(Social prophet) “이스라엘의 재활성 추구 운동 창건자”(A movement initiator)로 그린다.
나는 이 두 책에서 예수를 네 가지 유형으로 그려냈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카리스마적 치유자 혹은 성인(聖人)이고, 전통적/인습적 지혜를 뒤엎고 대안적 지혜를 가르치는 전복적인 현자이며, 사회적 예언자인 동시에, 이스라엘의 재활성을(revitalization)을 추구하는 운동의 창건자라는 것이다.
나의 첫 번째 요약은 이미 다른 책들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다섯 가지 측면에서 바라 본 예수의 모습을 최대한 압축하여 각색한 것이다 . . . 1. 예수는 “영적인 사람”이었다.
1. 신성을 계시한 인성만의 예수
보그는 역사적 예수는 신이 아니라 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예수는 과거에 유일신을 믿은 한 유대인로서, 기원전 4년경에 태어난 유한하고 죽을 수 있는 인간 존재이다. 이 예수는 30대 초반에 공식적 활동을 한 지 1년에서 3년이 지난 후(대략 기원 후 30년 경), 로마 당국자에 의해 처형되었다. 그에게 이 예수, 1세기 갈릴리의 유대인 농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보그는 예수에게서 신성을 제거하고 인성만이 부활절 예수의 진실된 것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예수는 단지 비범한 사람이었다. 좌뇌와 우뇌가 다 발달한 천재형 인간이었다. 예수의 스승은 세례자 요한이었다.
부활 전 예수는 그를 믿으라고 하지 않았고 시종일관 사람들의 관심을 자기가 아닌 하나님께로 돌리려 했다고 본다. 그런데 그는 “참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는 그가 세상에 계실 때에도 신의 현현, 곧 하나님의 ‘나타남’ 혹은 ‘계시’였다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그것을 각주 하면서 “마치 그가 공생애 기간 동안에는 ‘보통’ 인간이었고 그 후에 비로소 신이 된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주장은 ‘양자론’과 급진적인 형태의 ‘겸비의 기독론’이 주장하는 바인데 이런 주장들은 교회의 정통주의와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즉 그의 ‘신성’이 부활 이후의 부활체에 부여된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역사적 삶 가운데 나타난 그의 존재는 굳이 말하자면 하나님의 나타남이었다”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는 지상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상황에 따라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즉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확신하지 못한다. 단지 그는 지상의 인간 예수에게 신성이 투영되었다고 본다. 그에게 역사적 예수는 신이 아닌 “성(聖)의 현시(顯示), 인간의 얼굴을 가진 하나님의 계시”였다. 그는 결정적으로 역사적 예수의 신성을 다음과 같이 부인한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발견되는 완성된 기독교 신화 속에서는, 예수의 이야기가 곧 하나님과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이것은 물론 역사적인 예수가 곧 하나님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 영적인 사람 예수
마커스 J. 보그는 역사적 예수를 무엇보다도 먼저 “유대교의 영으로 충만한 가슴”을 가진 “영적인 사람”(Spirit person)으로 그린다. 보그는 그것이 예수를 역사적 인물로 이해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예수의 가르침, 행위 등 예수의 모든 것이 영의 세계에 대한 깊은 체험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그런 예수와 영적 세계의 관련이 학계에서는 거의 신중하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보그는 이런 면에서 불트만(R. Bultmann)을 비판한다. 그는 불트만이 신역성경 저자들이 “3층의 세계”(하늘, 땅, 지옥)라는 신화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판단하고 그 세계관을 탈신화화하여 해석함으로써 “영의 세계” 자체의 몰락을 내포했다고 비판한다.
그에게 “영의 세계”는 일상적인 경험과 다른 차원, 층, 수준을 가리킨다. 그는 그 다른 세계의 개념은 현대의 실재를 단순히 일차원적이고 가시적인 물질의 영역만으로 보는 사유방식과는 아주 동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영의 세계라는 개념을 현대 이전의 모든 문화권에서 공유하고 있던 자산, “태고의 전통”(primordial tradition)이라 부른다. 그는 영의 세계와 일상적인 경험의 세계는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교차점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그는 그 영의 세계가 알려지는 것은 특별한 개인들의 체험을 통해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는 그들을 “카리스마적 존재”, “두 세계의 중재자”라고 부른다.
보그는 예수가 살았던 시대의 문화전통은 태고전통의 핵심 주장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본다. 그는 창세기 첫 구절은 이 세계가 그 근원을 “영”(Spirit)에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한다. 그는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모세, 엘리야, 이사야, 에스겔 등등이 두 세계의 중재자들이었다고 본다. 보그는 예수의 사역의 근원은 “영의 강림”이었다고 분석한다. 보그는 “그[예수]의 선교 활동은 ‘다른 세계’에서 오는 비전, 곧 성령이 그에게 임하심으로 시작되었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예수는 침례 요한의 침례를 받을 때 열린 하늘을 통해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았으며 이 문을 통해 “영이 자신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보그는 예수가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비전 탐색”(vision quest), 즉 실제로 영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일련의 입문의식을 치뤘다고 말한다. 그는 “복음서는 예수를 현대 서구문화 속에서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이러한 형태의 기도를 했던 ‘기도의 사람’으로 그린다 . . . 누가는 예수가 가끔은 밤새 기도했다고 보도한다. 고독이 수반되는 이렇게 긴 기도는 ‘입으로 하는 기도’(verbal prayer)가 아니라 정관과 명상, 하니나 벤 도사나 유대교의 영적 전통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말했던바 마음을 가라앉히고 중심을 하나님께 향하도록 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보그는 예수가 “아버지”라는 형식적인 말보다 “아바”라는 말을 쓴 것은 예수의 영적 체험이 강렬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리고 보그에게 예수의 기도 생활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일치 체험”이다. 보그는 예수가 1세기 팔레스타인에 존재했던 유대 신비주의의 전통에 가세했다고 보는 것이다. 보그는 예수가 고전적인 카리스마적 인물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신령한 기운을 발하여 사람들이 놀라고 두려워했다고 본다. 마커스 J. 보그에게 영의 사람 예수는 엘리야와 모세에게까지 소급해 갈 수 있는 일상적인 세계와 다른 세계의 “중재자들의 역사의 절정”이다.
3. 치유자 예수
보그는 현대 성서학은 예수의 이적의 역사성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그 이야기를 통해 복음서 기자들이 의도한 바를 찾으려고만 했다고 비평한다. 또한 그는 교회에서조차 복음서에 나오는 기적적인 요소들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예수의 ‘능하신 행동들’은 예수사(history of Jesus)의 한 부분이다. 단순히 교회가 전하는 예수에 대한 이야기의 한 부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예수가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었다는 전승은 역사적으로 매우 확고하게 입증된 사실이다”라고 단언한다. 그는 기적이란 것이 현대인들의 사고에 어려움을 주기는 하지만 예수가 병을 고쳐주고 귀신을 내어 쫓는 사람이었다는 데에는 역사적으로도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밝힌다.
첫째, 우리가 가진 자료들에는 그런 사실에 대한 증거가 어디에나 있다. 둘째,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어 쫓는 일은 예수의 주변세계, 즉 유대교와 헬라세계에서는 비교적 평범한 일이었다. 셋째, 예수를 적대시 했던 사람들조차 병을 고치는 능력이 그를 통해 나온다는 주장에는 도전하지 않았다. 드리어 그들은 예수의 그 능력이 악한 영들의 우두머리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주장했음을 볼 수 있다. 예수를 존경하던 추종자들뿐 아니라 예수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었던 적들까지도 예수를 치유하는 능력을 가진 거룩한 사람으로 보았다.
그는 “신들렸다는 것과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가시적인 세계와 상호작용하고 있는 영의 세계가 실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태고의 전통이 옳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예수의 귀신축출행위는 많은 무리를 모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고 보며, 나사렛 예수는 “마술을 행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을 미혹했기 때문에” 처형되었다는 예수의 활동 후 몇 세기 이후에 나온 유대교의 아람어 사료의 예를 든다. 보그는 예수가 그런 주위의 오해와 비난에 대해 “자신을 통해 나오는 능력이 하나님의 영이라고 확실하게 말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보그는 복음서들에 등장하는 물위를 걷는 이적, 오병이어의 이적 등의 “자연 이적”은 역사적인 것이 아닌 상징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마커스 J. 보그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예수가 행했던 기적들이 예수가 유대의 카리스마적 치유자 전통에 속했있었다는 역사적 증거는 되지만, 그것들이 예수가 신(God)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에게 예수는 성령을 경험하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많은 ‘성령자들’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었다. 즉 보그에게 예수는 하나님의 실재를 생생하게 감지하고 있는 카리스마적 치유자인 것이다.
4. 지혜의 스승 예수
마커스 J. 보그는 예수가 현자 또는 지혜의 교사라고 주장한다. 그는 인습적 지혜에 대한 비교문화론적인 이해에 기초해서, 예수의 지혜는 인습적 지혜(넓은 길)를 전복시키고, 나아가 자신의 청중을 대안적인 길(좁은 길)로 이끌어 오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에게 예수의 메시지는 전복적인 동시에 대안적인 지혜를 담고 있다.
보그는 예수가 자기 민족의 정치-사회적 삶에 깊이 관여했고, 문화적 위기 상황 속에 있는 자기 민족에게 선교를 감행한 국가적 인물이 되었고, 그의 선교사역은 이스라엘 민족 문화의 중심이었던 예루살렘을 향한 마지막 여행에서 그 정점에 다다랐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그 시대의 문화를 선교를 위한 배경으로서가 아니라 선교의 초점으로서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예수의 사회적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보그는 모든 사회적 현실 구성의 핵심에는 그 문화의 “인습적 지혜”가 있다고 보고, 1세기 유대 사회적 세계가 지니고 있던 인습적 지혜의 특성을 첫째, “현명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실제로 필요한 지침들을 제공한 것, 둘째, 현실은 보상과 처벌이라는 기반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생각한 것, 셋째, 정체성의 일차 자료를 제공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보그는 그런 유대적 세계와 헬레니즘의 문화와 로마의 정치력으로 이루어진 사회적 세계가 1세기에 충돌하고 있었다고 분석한다. 로마의 점령으로 인해 발생한 위협에 대한 반응으로 유대의 사회적 세계는 “거룩의 정치학”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 대한 경제적 압력과 연관된 거룩의 정치학에 대한 강조는 “죄인들”과 “버림받은 자들” 집단을 양산해 내었고, 로마와의 일전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예수는 자신의 사회적 세계가 직면한 이런 위기 속에서 자신의 사역과 선교를 수행했다. 그에게 예수는 동시대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실재를 보았다. 예수는 실재를 궁극적으로 영(물질적이지 않은)이라고 보았는데, 그 말은 실재에 대한 “마지막 결론”이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예수는 그의 동시대인들, 그리고 인습적인 지혜들(보상과 처벌) 거룩의 정치학과는 달리 실재를 궁극적으로 은혜로우며, 자비롭다고 인식했다는 것이다. 보그는 자비는, 거룩성과 마찬가지로, 유대 전통에서 확고한 기반을 형성하고 있었고, 그러므로 예수와 그의 유대인 적대자들 사이의 갈등은 전통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둘러싼(지배적 에토스를 대표하고 있던 엘리트 계급과 벌인) 유대 내적인 갈등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이것은 사회 정치적 투쟁으로 귀결되는 해석학적 투쟁이었다. 예수는 잠언으로 대표되는 인습적 지혜를 비판해온 전복적인 지혜의 전통 위에 서서 인습적인 지혜의 세계를 전복시켰다. 보그는 그런데 예수는 인습적 지혜를 뒤엎었을 뿐만 아니라, “성령과의 관계에서 형성된 대한 대안의식을 제시하고 가르쳤다. 즉, 그에게 예수는 전복적인 현자였을 뿐만 아니라 변혁적인 현자였다.
5. 사회적 예언자 예수
마커스 J. 보그는 “예수만큼 이스라엘의 고전적인 예언자들과 닮은 사람은 없었다”고 평가하면서 예수가 “태고적 전통의 두 세계를 ‘말로써 매개하는 자’(verbal mediator) 혹은 ‘사자’(messenger)였다고 말한다. 보그에 의하면 예수의 사역은 그의 사회가 직면한 역사적 파국의 긴급성과 위기에 대한 감수성을 특별히 나타냈다. 보그는 그 파국은 세계의 종말과 최후의 심판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보그는 “묵시적 종말론”(apocalyptic eschatology)을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을 해석하기 위한 기본적인 정황으로 삼기를 거부한다. 그는 예수가 역사적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문화적 동력에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있는 자기 백성들을 고발했다. 예수가 고발했던 것은 개인적인 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보그에게 예수는 하나님에 심취한 히브리 성서의 사회적 예언자와 마찬가지로, 그 시대의 지배체제, 즉 도시의 소수 지배계급에 의해 통제되는 엄격한 사회적 경계선들이 그려진 억압적인 사회질서에 대해 도전했다.
6. 운동의 창시자 예수
보그는 예수가 좁은 의미에서는 정치적 인물이 아니었지만 넓은 의미에서 소위 “예수운동”이라는 소종파적인 재활성운동(revitalization) 혹은 갱신운동을 벌인 정치적 인물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의 창시자라는 것은 역사적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보그는 예수의 재활성운동은 우선적으로 이스라엘의 재활성화였다고 본다. 그에게 예수는 무엇보다도 성령에 기초한 카리마적 운동을 일으켰다. 예수는 성령을 체험하고 그 권능으로 운동을 펼쳐나갔으며, 그의 제자들도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치유했다. 사도행전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과 많은 치유이적 그리고 환상 등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전하고 있다. 바울도 역시 “성령의 은사”가 교회들에 나타나고 있었음을 전해준다. 보그는 “비록 예수운동의 카리스마적 특성이 현대 학자들과 큰 교파들 속에서 소홀히 취급받고 있긴 하지만 이것은 예수운동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성 가운데 하나다”라고 말한다. 보그는 예수가 또한 “순회전도 운동”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보그에게 예수운동의 에토스는 자비(compassion)였으며, 그 자비는 하나님을 본받음(imitatio dei)의 내용이었다.
보그는 예수운동이 다른 운동과 다른 점은 또한 유대교가 가르치는 핵심적 요소들을 영성화(Spiritualization)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에게 영성화란 진정 중요한 것은 외적인 행위나 실재가 아니라, 그것이 가리키고 있는 내적인 혹은 영적인 실재라는 주장을 함축한다.
7. 역사적 예수의 죽음
마커스 보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마지막으로 호소하려고 주후 30년 봄 유월절기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예수는 “세상의 죄를 인해 죽기로 예정된 분이 자기 목숨을 죄에 대한 희생물로 바치려고 의도적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은 것이다. 보그는 예수가 당시의 지배적인 의식인 “인습적인 지혜”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 보그에게 예수는 그런 희생자만이 아닌 자기 시대의 에토스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성령의 이름과 권능으로 당시 문화의 변혁을 시도하면서 새로운 에토스와 새로운 정치라는 목표를 위해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자기 목숨을 바쳤다. 그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이야기는 주후 30년의 어느 금요일에 일어났던 그의 죽음으로 끝나버렸다”고 말한다.
C. 마커스 J. 보그의 부활절 이후의 예수상
1. 마커스 J. 보그의 부활절 예수
마커스 J. 보그는 두 실체적 예수를 “부활절”로 양분한다. 그러나 그의 부활관은 전통적 부활관과 다르다. 그는 “예수의 유형적 몸”의 부활을 부정한다. 그래서 그에게 부활절은 “빈 무덤”(empty tomb)을 요구하지 않는다.
나의 판단으로는, 부활절이 빈 무덤이나 예수의 유형적인 몸에 일어난 사건을 수반할 필요가 없다.
그는 자신의 유형적 몸의 부활 부정을 “부활”(resurrection)이 “소생”(resuscitation)과 다르다는 논리로 합리화시킨다. 그는 소생은 본질적으로 신체에 일어난 일과 관련된 것으로 1세기의 유대교와 초대 그리스도교적 맥락에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는 부활은 “과거의 실존의 회복이 아니라, 다른 실존의 형태로의 돌입을 의미한다”고, 즉 “존재의 다른 양상으로 들어감이지 이전의 존재 양상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서 의심하는 도마에게 예수의 상처를 만져보라고 말한 것과 갈릴리 호수가에서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떡과 물고기를 먹었다는 이야기는 “부활 이야기가 발전함에 따라” 포함되기 시작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성한 영역에 있는 어떤 것을 시간과 공간의 언어로 표현한, 즉 신화에 불과하다. 이렇게 그에게 복음서들에 나타나는 부활절의 예수에 대한 신체적인 세부 사항은 부활절 이후에 초대교회가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다.
보그의 예수에 대한 부활 설명은 단지 부활 후 예수는 몸이 제거된 상태의 영혼이라고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가 설명하는 예수의 부활은 예수의 몸이 소생 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영혼이 하나님에게로 간 것과 다를 게 없다. 그는 사실상 예수의 부활을 부정한 것이다.
2. 마커스 J. 보그의 부활절 이후의 예수
부활절 이후의 예수상은 부활절 이후의 예수에 대한 “기본적인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은유적이며 개념적” 표현의 발전에서 온 것이라고 본다. 그에게 부활절은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그의 죽음 이후에 철저하게 새로운 방식으로 예수를 살아 있는 실재(a living reality)로 경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제자들이 “예수의 죽음 이후에 해를 거듭하고 수십 년을 거치면서 점차 예수를 영적이며 비물질적인 실재로, 하나님의 속성을 가진 존재로 경험했다”고 말한다. 보그는 부활절 이후 해를 거듭하고 수십 년을 거치면서, 예수에 관해서 말하는 여러 은유와 표상들(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어린양, 세상의 빛, 생명의 떡, 문, 포도나무, 목자, 대제사장,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 운동에서 생겨나 발전했다고 본다. 그는 예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셨다는 말은 탄생 이야기가 “생물학적 은유”로 옮겨진 산물이라고 말한다.
보그는 부활절 이후 제자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분으로 언급했으며, “하나님의 우편”은 명예와 권력, 권위의 자리를 은유하는 것이라고 본다. 보그는 그래서 예수가 “하나님 우편에 오르셨다”는 것은 예수가 신적인 지위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예수가 부활 후 비로소 “주와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못 박는다. 보그는 예수가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에 참여했다”고 말한다. 뒤집어 말하면 예수가 부활 전에는 그 권위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에게 예수는 부활 후 비로소 신적 존재가 되었다. 그는 신약에 나타나는 신적 예수상은 예수가 그렇게 직접 말한 거나 행한 것이 아니라 초대 교회 공동체들이 부활 경험 이후의 예수를 만난 결과가 투영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오히려 이것은 그가 이제(now)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에 참여했다는 것을 의미했다.부활절 이후의 예수는 신적인 존재다 ... 부활절 이후의 예수는 왕중의 왕, 주중의 주가 된다. 부활절 이후의 예수는 마침내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이 된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 이후에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다른 한편, 요한복음의 예수는 인간적이기 보다는 신적이다. 그는 반복하여 그리고 공식적으로 예수의 신적인 정체성을 선언한다 ... 그렇지만 요한복음의 예수상을 역사적으로 거짓이라고 매도해서는 안 된다. 예수에 관한 그의 주장은 그가 속한 공동체가 부활 경험 이후의 예수를 만난 결과에서 나온 것이다 ... 우리는 요한복음의 “나는 ~이다”는 진술을 부활 경험 이전의 예수가 말한 일인칭 선언으로 듣지 않고, 부활 경험 이후의 예수에 관한 삼인칭 진술로 들을 때, 가장 잘 이해하게 된다 ... 요한복음의 예수는 부활 경험 이후의 예수가 요한복음 저자가 속한 공동체의 삶 속에서 어떤 존재였는지를 말하고 있다.
신적인 혹은 신과 유사한 존재로서의 예수 이미지는 ... 오히려 이 이미지는 초대교회에 의해 형성된 혼합의 산물이다. 즉 예수에 대한 교회의 기억과 부활한 예수에 대한 교회의 믿음이 혼합된 것이다. 전자는 후자가 제공하는 창(window)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신성을 예수에게 투영시키는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다.
그는 복음서 안에서 예수를 하나님으로 언급하는 것들을 “신화”(myth)라고 규정한다. 그는 일반적으로는 신화를 “비진리”를 의미하지만, 종교학적으로는 실재를 드러내는 유용한 개념이라고 방어한다. 그는 신화는 역사를 사실적으로 보도하지 않고 상징적으로 이야기하더라도, 참되고 동시에 힘 있는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예수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들(처녀의 임신, 별, 현자, 여관에 빈 방이 없었던 베들레헴에서의 출생 등등)은 그런 의미에서 신화들이라고 말한다.
V. 마커스 J. 보그의 예수연구 평가
A. 마커스 J. 보그의 공헌
1. 계몽주의에 경도된 예수 연구의 전제 극복 가능성 제시
마커스 J. 보그는 영적 경험을 통해 계몽주의에 경도된 예수 연구의 전제/접근방법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물의 실재에 대한 불가지론을 펼치며 현상에 대한 이성의 범주적 인식만을 주장한 칸트를 따라 초월적인 것을 성경에서 배재한 고등비평/역사비평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다. 그는 교회를 중심으로 습득한 기독교 전통 세계관과 학교를 중심으로 습득한 계몽주의적 세계관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개인적인 영적 체험을 통해 이 땅에서도 초월적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 경험을 통해 이 세상에 초월적인 영들이 들어오고,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경험은 그로 하여금 지금까지도 다른 고등 비평가들이 무시하고 있는 복음서들에 기록된 성령, 천사, 마귀, 귀신 등의 영적 존재들에 대한 기사들이나 예수의 하나님/성령 경험, 예언, 축귀, 치유 등의 초월적 행위들을 긍정하도록 이끌었다.
보그는 그렇게 수정된 렌즈를 통해 복음서를 봄으로써 역사적 예수는 성령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초월적 세계와 땅의 세계를 중재하게 되었다고 분석하게 되었다. 보그는 사람이 이성으로 알 수 없는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성령의 내재하심으로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인간의 왜소해진 이성만이 번득이는 역사적 예수 연구계에서 이성을 초월하는 ‘성령’의 역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동료들에게 비판받을 수 있는 것일 것이나 필자가 판단하기에는 긍정적인 방향전환이다.
2. 신약 기자들이 전해주는 부활 후 예수의 재평가
마커스 보그는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에 그려 왔던 첨예한 구별선을 지우고 ‘부활 전 예수’와 ‘부활 후 예수’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그 연속선을 그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부활을 포함한 신앙의 그리스도는 전연 역사적 예수와 다른데 이는 공동체들이 꾸며낸 신념이나 사상, 더 정확히 말한다면 허상에 불과한 것이라고만 치부했던 것과는 달리 부활 후의 예수의 모습은 공동체가 영을 통해 부활하신 실제적인 예수를 체험한 것에서 나온 기록이라고 주장한다. 즉 신약 기자들이 그려내고 있는 부활 후의 예수의 모습이 단순히 아무 근거 없이 꾸며낸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예수의 부활을 부분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B. 마커스 J. 보그의 오류
1. 성령자에 대한 종교 다원주의적 이해
보그는 성령자에 대해 다원주의적 이해에 빠져있다. 보그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예수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예수가 성령을 체험하고 성령자로서 두 세계를 중재하는 자가 되었다고 보았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성령은 신약성경적인 성령이 아니며, 그의 영적체험은 그의 말대로 자연 신비주의적인 영적 체험일 뿐 성경적인 하나님의 성령, 곧 그리스도의 영의 체험은 아니었다. 그런 범문화적이고 보편적인 자연 신비적인 영적 체험들을 모두 성령의 체험으로 지칭하고, 자연 신비적인 체험자들을 모두 ‘성령자’라고 부르고, 예수도 그러한 ‘성령자’와 동일한 수준에 놓고 있다. 그는 “예수에 관한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는 그가 성령의 실체를 체험한 인류사적 인물의 하나인 성령자라는 것이다”라고 단정하였으며, “성령자들의 존재는 범문화적으로 알려져 있다 ... 이는 무당들이 전형적으로 갖는 체험과 같다 ... 세계의 종교 전통들이 ‘절대자’를 얘기하게 된 것이 그러한 체험들 덕분이다 ... 그들은 또 다른 차원의 현실로 파견된, 그들 부족의 사절이며 그들 공동체를 성령과 연결시키는 매개자이다 ... 예수 시대에 가까워지면서 여러 명의 성자 또는 성령자들이 배출된다. 그 중 제일 잘 알려진 사람들이 ‘원 그리는 자’ 호니와 하니나 벤 도사이다. 그들은 둘 다 묵상 기도와 기적을 행하는 능력으로 유명했다”고 말하며 예수의 성령체험을 타종교의 영적체험과 동일시하고 있다. 보그는 대중적 기독교 어법에서 예수의 ‘유일무이성’은 흔히 하나님의 유일하고 전적인 진실한 계시라는 생각과 연결되는데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의 예수의 유일무이성을 부정한다. 즉 그는 타종교의 영적 체험자들도 하나님으로부터 예수가 받은 계시와 동등한 계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 그의 다원주의적 성령자 이해는 그의 범재신론적 신 이해와 맞물린다. 그는 내재하시는 영이신 하나님이 모든 사람, 모든 종교인들에게도 알려진다고 믿는 것이다.
그는 그런 타종교의 영적체험들이 악한 영들에 대한 경험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감안하지 않았다. 구약성경의 성령자들은 오히려 타종교의 영적 체험자들을 죽여서 구약공동체로부터 제거하려고 하였으며, 신약성경의 성령자들은 타종교의 영적 체험자들을 공중권세자인 마귀에게 잡혀서 귀신에게 제사하는 자들이라고 묘사하고 있으며, 그런 생활로 돌아가지 말 것을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신약시대의 성령자들은 타종교의 귀신들린 자들(보그의 말대로 하면 타종교의 성령자들)에게서 예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냄으로서 그들을 온전한 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이러한 충돌에 대해 보그는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하며, 예수의 성령체험과 타종교의 영적체험과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했다. 이는 그에게 성령을 포함한 영적 세계에 대한 약간의 관심이 생겼을 따름이며 영적 세계, 특히 성령의 세계에 있어서는 아직도 눈도 뜨지 못하고 있으며, 사실 그는 성령을 체험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말해 준다. 오늘날 신약 성경적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은 부활 전 예수의 모습에서도 부활 후 예수의 모습에서도 그분의 하나님 되심과 인간되심을 동시에 발견하고 믿고, 고백한다. 그것은 신약기자들의 증언과 일치하는 것이다.
2. 예수의 양성의 연합적 인격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
마커스 J. 보그 역사적 예수에게서 신성을 제거하고, 신성을 부활 후 예수에게만 부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보그는 “영-예수”(Spirit-Jesus)을 채택하고 “영-기독론”과 “로고스-기독론”(Logos Christology)을 모두 배척한다. 그는 역사적 예수는 그저 인간에 불과했는데 침례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며 성령을 체험함으로써 하나님의 세계와 사람의 세계, 두 세계를 중재하는 매개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보그의 이런 예수 이해는 유대 기독교의 분파인 “에비온주의”(Ebionism)의적인 종속론적 영-기독론에 가깝다. 에비온 분파는 예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었음을 부인 했으며,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율법을 온전히 준수한 인간 교사로 보았으며,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임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부여받은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에비온 분파와 보그가 다른 점은 보그는 역사적 예수를 그리스도로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요한복음이 펼치고 있는 “하나님이신 선재적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주장을 단순히 부활 후 예수의 투사(projection)로 전락시킨다. 그는 부활 후 예수의 신성을 인정했지만, 그 인성은 부인했다. 역사적 예수의 죽음으로 그 인성, 즉 육체는 종말을 고했다는 것이다. 그는 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부활 전과 부활 후로 나누어 놓아버렸다. 그는 부활로서 예수의 인성과 신성의 연결을 인정하지만, 그 연합을 배격한다. 그는 예수의 부활을 육체의 소생을 제외한 영혼의 다른 세계로의 진입으로 규정함으로써 성경적인 몸의 부활을 부정했다. 그리고 보그는 역사적 예수의 인성에 신성이 연합된 것이 아니라, 인성이 신성을 계시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3. 그리스도와 그 직무 제거
마커스 J. 보그는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가 아닌 부활절 이전 예수와 부활절 이후 예수로 논의의 초점을 바꾸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복음서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을 제자들의 부활절 이후 예수에 대한 경험의 투영의 산물로 보고, 부활 전 예수에게서 그리스도를 제거한다. 비록 그가 예수를 중보자로 그리기는 하지만, 그 중보는 초월적인 세계와 일상 세계 사이의 중보에 그친다. 또한 비록 그가 예수를 예언자로 그리고 있지만 그것을 그리스도의 사역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보그는 더 나아가 부활 전 예수의 왕적 직무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가 가장 철저하게 비판받아야 할 점은 그가 부활 전 예수의 인간의 죄를 위한 제사장적 직무를 전적으로 폐기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는 원죄를 부정하고, 인간의 죄를 위한 대속적 희생이라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비역사적인 것이라며 거부한다.
질의: 부활절 이전의 예수가 원죄의 교리를 믿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응답: 아닙니다. 원죄 사상은 한참 후인 4-5세기에 발전된 것입니다. 게다가, 예수 자신은 죄에 관해서 매우 적게 말했습니다. 그의 수난은 용서 또는 대속을 필요로 하는 개인적인 죄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 그리스도교적 삶의 중심적 역동체로서의 죄와 용서는 나중에 생긴 것입니다. 더욱이 그는 희생제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순교자로서 죽었다. 희생제물은 그 죽음의 시간과 장소가 자신과 무관하게 결정되지만, 순교자는 자신이 어떤 입장에 선 것 때문에 처형된다. 신적인 혹은 신과 유사한 존재로서의 예수 이미지는 예수가 스스로를 신적인 구원자로 보았으며, 이 세상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죽으려고 했으며, 이것을 선포하는 것을 자신의 주요 메시지로 삼았다는 것인데, 이것은 역사적으로 참이 아니다. 오히려 이 이미지는 초대 교회에 의해 형성된 혼합의 산물이다. 즉 예수에 대한 기억과 부활한 예수에 대한 교회의 믿음이 혼합된 것이다.
4. 괴상한 안경: 포스트 모던적 렌즈와 모던적 렌즈를 낀 안경
마커스 J. 보그가 부활절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고, 부활 후 예수의 인성을 부인하게 된 것은 그것을 통해 예수를 바라보고 그의 안경의 결함 때문이다. 그는 복음서 기자들의 양쪽에 같은 성경적 렌즈가 장착된 안경을 통해 예수를 보지 못하고, 한 쪽에는 포스트 모던적 렌즈와 다른 한 쪽에는 모던적 렌즈가 장착된 괴상한 안경을 통해 예수를 본다. 그가 초월적인 것을 제거하려는 계몽주의적/근대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예수를 성령자, 치유자 등으로 보려하는 것은 좋게 평가할 만하지만 그러나 그가 예수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예수의 성령체험을 보편화, 상대화, 다원화함으로써 성경적 예수상을 왜곡한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그런 왜곡은 한 쪽 눈으로 포스트 모던적 렌즈를 통해 예수를 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보그는 포스트 모던적 렌즈 이외에 여전히 모던적 렌즈를 갖고 있다. 그의 다른 쪽 눈은 이성을 중시하는 인식론, 고등비평/역사비평(양식, 편집비평)이라는 모던적 렌즈를 통해 예수를 본다. 그는 편집비평의 가설적 전제들, 예를 들면 마가복음 우선설에 따른 메시야의 비밀설 등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역사적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칭한 적이 없다고 단정한다. 그의 모던적 렌즈는 부활 전 예수의 신성은 반사시키고 인성만 통과시키는 것이다. 그 렌즈로 보게 되면 예수가 행한 초월적 자연이적은 사실이 아닌 신화로 규정(동정녀 탄생, 오병이어, 물위를 걸은 이적 등)된다. 이렇게 서로 질이 다른 렌즈를 낀 안경을 통해 그의 마음에 맺혀지는 예수상은 성경의 기자들이 보고하는 예수상과는 다른 왜곡된 예수상이다. 그는 안경을 바꾸어야 한다. 그는 성경의 기자들이 가졌던 안경을 통해 예수를 볼 때 비로소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그가 예수를 똑바로 보려면, 그가 교회를 통해 습득했으나 벗어버린 성경적/기독교 전통적 세계관을 다시 찾아야 한다.
VI. 결론
살펴본 바와 같이 마커스 J. 보그는 성경적이고 완전한 세계관을 갖지 못하고 포스트 모던적 세계관과 모던적 세계관이 혼재된 불완전한 세계관으로 예수를 봄으로써 부활 전 예수에게서 신성을 박탈시키고, 부활 후 예수에게서 인성을 박탈시키며, 부활 전 예수에게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삭제하며, 그리스도의 중보자로서의 왕과 자기의 몸을 희생제물로 드려 인간의 죄를 대속하신 제사장적 직무를 거부하고, 예언자적 모습만 남겨놓았다.
그는 예수와 그리스도교 기원에 대한 역사적 연구가 자기로 하여금 다시 그리스도인이 되게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비록 그가 교회에 출석하고 교회의 의식에 참여하며 신조를 암송한다고 하지만 마커스 J. 보그가 자기 멋대로 머릿속에 그리는 예수는 성경의 기자들이 소개하는 예수와는 거리가 먼 왜곡된 예수, 그리스도와 분리된 예수이다.
나는 교회에 출석하고, 성례전에 참예하며, 니케아 신조를 암송합니다. 의심을 품지 않고 그렇게 행하고 있습니다. 내게서 예수와 그리스도교 기원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나로 하여금 다시 그리스도인이 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돌아오고 있지만 머뭇거리고 있는 탕자 마커스 J. 보그는 그렇게 어정쩡하게 멀리 서 있지 말고 더 다가와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완전히 안겨야 했다.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가 온전하게 성경의 예수께로 돌아왔는지 확인할 수 없다. 보그처럼 모던적 렌즈와 포스트 모던적 렌즈가 박힌 괴상한 안경으로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역시 늦기 전에 그 안경을 벗어던지고 온전한 눈을 가지고 예수께로 온전히 돌아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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