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 목사의 개인적 간증
Personal Testimony of Pastor Durham
Pentecostal Testimony 1.1 (Mar 1909) (Chicago) : 5-7.
이창승 역
나는 켄터키 주에서 나서 자라났으며, 그곳에서 18세 즈음에 침례교회에 나갔다. 그러나, 당시에 신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회심하지 못했으며, 그러므로 내 경험은 내게 아주 실망스러운 것이었는데, 아무런 기쁨도 평화도 구원에 대한 지식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에도 마음의 진정한 변화(a real change of heart)를 경험해야만 하고 의식적인 구원(conscious salvation)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곧 나의 고백(profession)을 포기하고 그 이전처럼 죄 속으로 깊이 빠져 들었고, 사실은, 그 이전에 종교에 대해 가졌었던 어떤 확신을 잃어버렸다.
1898년에, 미네소타주에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성령으로 나를 진정으로 다루시기 시작하셨고, 부흥회나 다른 집회들에 참석함으로써가 아닌 말씀 읽음을 통해 죄를 깊이 자각하게 하셨으며, 날마다 그 찔림이 깊어져 마침내 그분에게 내 자신을 항복시키고, 자비를 구했으며, 그 순간 복된 성령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게 계시하시며 “그리스도께서 너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고 말씀하셨다. 내 마음은 즉시 믿었으며, 나는 온전히 그분을 영접했고, 순간에 성령께서 내가 구원을 받았다고 증거해 주셨고,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내 영혼을 채웠다. 왜냐하면,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었고,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계셨고, 내게 참으로 존귀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몇 달 동안 천국에 있는 것처럼 살았다.
그런데 결국 나는 어떤 측면에서 승리를 잃기 시작했고, 반복하여 하나님을 구하였다. 나는 내가 필요한 것이 성화라고 들었고, 그래서 이 축복을 내가 아는 한 최선을 다해 오랜 동안 추구했다. 때때로 나는 그 역사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기도 했으나, 다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결국 회심 삼년 후 하나님께서 내게 빛을 비추시고 은혜를 주셔서 그리스도의 피를 확실하게 신뢰하게 되었으며, 나의 믿음을 그분의 완성된 사역들(His finished works)에 두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했을 때 성령은 내가 성화되었다고 증거 하셨다. 그리고 성령의 임재의 복이 너무도 좋아서 내가 성령을 받았다고 진정으로 생각했었다. 내 영혼은 그때 능력과 영광으로 희열을 느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그저 내 영이 하나님과 교제와 그리스도 안에서 달콤한 쉼 안으로 이끌어진 것이었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성령을 받았다고 믿으면서, 나는 대담하게도 그것을 선포하였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와 같은 경험을 구하도록 재촉했으며, 내가 나의 성화의 시간 즈음에 목회를 시작한 때부터 이곳저곳을 다닌 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 복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러나 성령이 언제나 선포할 때 내 위에 머무시는 것 같았고, 수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제단들과 구원받고, 성화되고 치료받는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에 내가 성화되었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말씀을 선포하는데 많은 자유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내 경험에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였으며, 내 경험을 사도행전의 가르침과 결코 만족하게 비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나는 사도행전에 있는 가르침을 제켜두거나 성화될 때 발생하는 관련된 놀라운 경험들을 언급했다. 나는 이제는 그들이 오직 성령을 받는 것만을 언급했다는 것을 그리고 사도들이 오순절 날에 받았던 것은 단지 성화였다는 생각보다 더 터무니없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
1906년 4월 즈음에, 나는 로스앤젤레스 시에 다른 방언들로 말함이 동반되는 성령의 강력한 부으심에 대해 들었다. 그러자 내 마음은 하나님께서 하시고 있는 것 때문에 기쁨으로 넘쳤다. 왜냐하면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나의 작은 회중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들이 방언을 말하는 것이 성령침례의 증거라고 가르친다는 것을 들었을 때, 나는 교리의 이 점(this point of doctrine)에 저항했고, 그 교리를 두려움 없이 거짓이라고 비판했으며, 진정으로 내 견해가 옳다고 믿었다. 그러나 나는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을 믿었다. 왜냐하면 나는 신자들이 방언을 말해야만 한다는 것보다 더 성경적인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때에는 성령침례를 받을 때 받는 표징과 고린도전서 12장 10절에서 말하는 “각종 방언”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몰랐었다. 그 때 나의 경험은 이 가르침에 의해 의심받았다. 내가 성령을 받지 않았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수년 동안 그분을 주장한 이후 내가 낮추어 구도자가 되기는 너무도 어려웠고, 그래서 나는 대담하게도 “내가 성령을 받지 않았다고 나를 확신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1907년 1월 1일 즈음에, 성령께서 여기 시카고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강림하시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첫 번째로 성령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 신클레어(J. C. Sinclair)가 있었는데, 그는 나와 함께 삼년 넘게 일을 해왔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으며, 나는 그도 나처럼 성령을 받았었다는 것을 의심해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그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으로 충만해져 일어서는 것을 보고, 노래하고 방언을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그것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고, 나는 내 자신에게 만약 그것이 성령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길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가진 것과 같은 그런 경험을 결코 가져보지 못했다는 것이 명백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경험이 내가 보았던 그가 하고 있는 것 같은 것을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더 알았고, 그리고 나는 그에게 주어진 말과 음악을 방언으로 말하고 노래하는 것보다 더 진짜 같은 것을 할 수 있었는지 의심스러웠다. 게다가 신클레어 형제는 그 이전에는 노래를 전혀 부르지 못했었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과 하나님께 솔직해져 그 예배의 말미에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많은 그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채워주시고 계셨던 복된 성령으로 채워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나는 그저 계속 무릎 꿇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 그분이 오실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분이 오시면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이제 진짜를 보았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아무 것도 나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밤낮으로 하나님 앞에서 머무르면서 그 이전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살피면서 지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가 깨끗해지고 비워졌을 때 비로소 내 안에 오실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나의 목회적 의무를 다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방해받지 않고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목사로서 나의 직무를 계속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로스앤젤레스로 가서 주님께서 내게 성령으로 침례를 주실 때까지 주님 앞에서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의 방법으로 내가 갈 길을 열어 주셨고, 나는 1907년 2월에 그곳에 도착했다.
나는 아주사 거리 선교회에서의 첫날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곳에 대한 기억을 영원히 고이 간직할 것이다. 나는 그곳에 들어가자마자 하나님께서 거기에 계시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그분의 거룩한 임재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거기에는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내가 볼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아무도 일어나고 있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성령께서 전체 통제권을 행사하시는 것 같았지만, 그러나 질서는 완벽한 것 같았다. 내 영혼은 주님 앞에서 녹아내렸다. 그러나 내게 가장 놀라운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몇 가지 찬양을 부른 후 권능과 영광의 파도와 같은 찬양이 그곳을 휩쓸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령 안에서 찬양하기 시작했다. 그 찬양은 이 사역 안에서 “천상적 찬양”(Havenly Anthem)으로 불린다. 나는 내 생애에서 그렇게 달콤한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 자신이셨고, 나는 그것을 알았다. 나는 그 성가대에서 찬양할 것이 많았을 것이지만, 내 생명이 그것에 달려있는 것처럼, 나는 한 마디도 노래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찬양을 행하고 계시는 분을 아직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그 이전보다 더 분명하게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를 갖는 것과 인격적으로 우리 안에서 내주하시는 성령을 갖는 것 사이의 차이를 보았으며, 그리고 나는 그때 거기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오순절적 충만함으로 그분을 받을 때까지 결코 쉬지 않고 구할 것이라고 결심했고, 그 결심을 지켰다.
이제 기다림과 진정한 마음의 탐색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내가 신뢰하고 영광스럽게 여겼던 모든 것이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나의 지금까지의 큰 경험들이 작게 보이기 시작했고, 내 모든 선행들이 혼합물이었던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즉, 육적인 것들이 나의 모든 사역들 안으로 너무도 많이 들어왔었고, 내가 거의 온전하게(almost perfect)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 온전한(but perfect) 것으로 보였다.
한편 내가 그동안 내내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았고, 또는 그분의 임재를 나로부터 철회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내 경험으로부터 모든 기쁨을 잃어버렸다. 나의 간증은 내게서 떠났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내게 오시도록 내 안에서 부르짖는 것뿐이었다. 나는 진정으로 다윗과 함께 말할 수 있었다.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것으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그리고 더욱 싸워서 거부해야할 것을 다 했었다. 나는 선하든 악하든 모든 내 자신의 행위들을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며 그저 기다렸다. 나는 그저 하나님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경험 자체에 이른다. 때는 1907년 2월 26일이었고, 나는 아주사 거리 오후 집회에 갔으며, 위에서 묘사된 것보다 더한 것을 느꼈다. 그 오후 집회에는 30명 이상이 참석했고, 나는 그들 가운데 무릎을 꿇었다. 나는 모든 것의 끝에 도달했었고, 주께서는 그것을 아셨으며, 그분의 세 자녀들이 내 위에 서서 내게 그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그리고 내가 하려했던 것은 무엇이든 하려 하지 말라고 말했을 때, 오 기뻐라! 능력의 진동이 연이어서 나를 관통해 지나갔다. 그리고 나서 나의 모든 구멍들이 갑자기 열리고 능력의 강력한 흐름이 모든 방향에서 내게로 향해지는 듯 했으며, 그 때의 채우심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마치 육적 생명이 내 몸에서 밀려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그야말로 숨이 멎어 덩어리 채로 바닥에 떨어졌다. 나의 힘은 사라져 버렸지만, 그러나 나는 완전히 모든 것을 의식했으며, 그래서 내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했으며 진심으로 이 시간에 그 역사를 끝마쳐주시도록 그분에게 간구했다. 그리고 그 역사의 완성을 향한 나의 바람이 너무도 강렬하여 나는 그 시간 내내 한 손을 하늘을 향해 들고 있었다. 그분이 그때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던 것에 대해 나는 그분을 찬양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분이 그분의 능력을 내게 행하신 경험이 그 첫 시간에 그 역사를 끝마치셨을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혀도 내가 능력 아래 누워 있었던 그 두 시간 동안 하나님과 내 영혼 사이에 지나갔던 것을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영광스럽고 놀라운 것이었다! 그것은 천상적! 그런 사랑! 그런 달콤함! 죄를 위한 유일한 치료제로서 피에 대한 그런 계시! 유일한 구주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그런 지식! 그리고 내가 말로 설명하기 불가능한 많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두 시간 후에 그분은 그분의 찾아오심으로부터 받았었던 큰 유익을 남기고 나를 떠나셨다. 그러나 나는 너무도 놀랍게 역사하셨던 그분이 머무시지 않고 내게서 떠나시자 많이 실망했지만, 그러나 나는 그분이 돌아오셔서 그분의 역사를 끝마치실 것을 의심하지 않았으며, 이제 왜 그분이 그렇게 놀랍게 방문하시고도 그 역사를 끝마치지 않고 나를 떠나셨는지를 이해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의 삶에서 그것에 의해 많은 복을 받았던 그리고 그들이 성령침례라고 부르는 어떤 경험을 가졌던 사람들을 만나고 있으며, 이 복된 경험이 나로 하여금 그것을 제자리에 놓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방문해 오셨다. 그리고 그들이 이것이 성령침례라고 만족할 때, 나는 얼마나 영광이 내 영혼을 채우고, 얼마나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사랑과 달콤함으로 변하고, 얼마나 내가 내 영과 함께 발걸음마다 “예수께 영광”을 속삭이며 일 마일이상을 걸었는지를 기억하며, 그러나 또한 그분이 이것은 단지 황홀함과 환희의 상태 안으로 이끌어진 내 자신의 영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성령침례는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는 것을, 또는 성령께서 아직 내 안에 그분의 거처를 차지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내게 알게 하셨다는 것을 기억한다.
나는 주 앞에서 계속 기다렸고, 그분은 내게 이틀 밤낮 동안 이 상태에서 걷도록 허락 하셨다. 그리고 내가 그분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성령께서 다시 내 위에 임하셨다. 또다시 나는 바닥에 쓰러졌고 두 시간 동안 성령의 강력한 능력이 내 위에 있었다. 이 시간에 거기에는 떨림 등과 같은 많은 나타남들이 있었지만, 여전히 성령침례를 받지 못했다. 나의 진지한 간구들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다시 나를 떠나셨다. 비록 내가 큰 영적 고양(uplift)을 받았었고, 그 충만함을 위해 계속 기다리도록 격려를 받았음에도, 나는 그 역사가 끝마쳐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했다. 내 마음은 내게 거기에 무언가 더 있다고 말했으며, 나는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 그 역사가 끝마쳐졌다는 성경적 증거(the Bible evidence)라고 결정했다. 그래서 나는 다음 날 밤에 제단으로 갔다. 빵을 구하는 자에게 돌을 주시지 않는다는 등등 예수님의 약속을 주장하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자마자, 성령께서 내 위에 임하셨고 또다시 나는 능력의 강력한 충만함에 의해 압도되었고 그 능력 아래 굴복했다. 세 시간 동안 성령은 내게 놀랍게 역사하셨다. 나는 그와 같은 것을 증거 해본 적이 없었다. 내 몸은 동시에 부분 부분이 따로따로 움직여졌다. 내 얼굴의 피부조차 경련을 일으켰고 떨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내 아래턱이 이상하게 흔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잠시 동안 계속되었고, 마침내 나의 목이 확장되기 시작하더니 내 음성 기관이 다른 형태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오, 그것이 얼마나 이상하고 놀라웠던가! 하나님의 손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이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내 혀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내 입술이 이상한 소리들을 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 소리는 내 마음에서 발원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성령께서 나를 통해 다른 방언으로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계셨고, 나는 형제 시무어 목사가 “그분이 지금 관통하고 계십니다” 등등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그는 그 저녁에 일찍 쉬려고 퇴장했었는데, 성령께서 그에게 “더함 형제가 오늘 밤에 성령침례를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일어나 내려왔었다고 내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는 그는 그의 손을 들고 내가 설교해야만 하는 곳마다 성령께서 사람들 위에 임하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주님께서는 그때 내 발로 일어서도록 허락하셨고, 그러나 내 영혼이 고대했던 성령께서 그때는 내게 머무셨고, 오랫동안 나는 방언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 내 안에 거하시는 복된 성령을 모시고, 그래서 그분의 임재를 의식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이었던가! 그리고 내게 흘리신 그리스도의 귀한 피가 그 얼마나 실제적이었던가! 그리스도의 일들이 나의 회심 이래로 내게 실제적이어 왔었지만, 그러나 지금처럼 너무도 실제적이지 않았으며, 나는 의심할 여지없이 내가 성령을 받았고, 그것이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임재를 단순히 느끼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를 알게 되었다.
독자여, 나는 당신이 어떤 놀라운 경험을 했을 수 있지만, 아직 성령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성령이 내 안에 머무시기 전에 그분의 나를 다루심을 강조해 왔다. 사실, 내가 말씀에 이 새로운 빛을 받기까지, 나는 내가 묘사해 온 그 두 가지 경험들, 주님께서 그분의 역사를 끝마치시기 전에 가졌던 경험과 내 안에 그분의 거처를 마련하신 경험들처럼 그렇게 놀라운 것을 본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각각의 시간에 의식이 있었다는 것을, 주님께서 위에서 묘사된 것처럼 놀라운 방법으로 나를 다루신 후 나를 떠나셨다는 것을 다시 말한다. 그러나 세 번째에는 그분이 내 안에 머무르셨고, 27개월이 훌쩍 지난 오늘에도 나와 함께 계시며, 그 경험은 그분이 들어오셨을 때처럼 여전히 새롭고 놀랍다.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립니다.
사랑하는 독자여, 내가 받은 것처럼 성령침례를 받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은 복된 성령께서 참으로 안으로 오셔서 그분의 자리를 취하시며, 그분이 이것을 하실 때, 당신이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일 것이라는 것을 아는 권리를 갖고 있다(행 2:4, 10:44-47,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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