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의 연합
Identification with Christ
Articles Written by Pastor W. H. Durham taken from Pentecostal Testimony, 27-29.
이창승 역
우리는 칭의와 성화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밝히라는 요청을 받아왔다. 우리는 하나님의 표준(God’s standard)은 완전 성화(entire sanctification)라고 믿으며,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아무도 그것에서 부족한 경험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가 성경에 호소할 때, 우리는 성경이 믿음에 의한 칭의를 가르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죄로 가득 차 있으면서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고 가르치는 성경 구절을 단 한 개도 발견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타고난 부패(inbred corruption)로 가득 차 있다고, 자신 안에 옛 사람(the old man)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마음에 뱀 한 마리가 있지만, 그는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의 죄들이 칭의 때 사함을 받았지만, 아담적 본성은 여전히 그 사람 안에 있다고 말한다. 우리 생각에는 이것은 칭의의 기준을 낮추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의 명백한 가르침들에 상반되는 것이다. 그 오해는 칭의가 참으로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어떤 근거 위에서 의롭다함을 받는 가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기꺼이 성경으로 하여금 우리를 위해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만 한다. 로마서 6장 7절(R.S.V.)은 “죽은 사람은 이미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 위에서 우리가 죄로부터 의롭다함을 받았다고 결론짓는다. 그래서 산 믿음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으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시킨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못 박혔으며, 또는 아담에게 전가되었다가 우리에게 유전된 사망선고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집행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속자가 되어 우리 대신 죽으셨다.
우리는 여기에 우리의 칭의에 대한 주장을 세울 수 있는 진정한 기초를 둔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독교 침례의 전정한 의미를 발견한다. 로마서 6장 4절은 “그러므로 우리는 침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과 연합함으로써 그와 함께 묻혔던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왜 우리는 그와 함께 묻혔는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고 믿음이 우리가 세상 앞에서 그것을 행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장사되셨고, 다시 살아 나셨다. 믿음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고,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믿음의 표현으로서 침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고 우리가 새로운 삶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함께 걷기 위해 살아났다는 것을 알게 한다.
사망선고를 받은 옛 사람
선고를 받은 사람이 누구였는가를 알아보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즉 옛 사람에게(the old man) “너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옛 사람이 사망선고를 받았고, 유죄판결을 받은 옛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을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형집행을 당했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참된 산 믿음을 갖고 그리스도께 나아온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을 때 그들을 위해 베푸신 온전한 유익(full benefit)을 얻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믿음이 우리를 새로운 삶 안으로 되살리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알게 하며,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는 로마서 8장 1절 말씀을 우리에게 실현시켜준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유죄판결이 옛 사람에게 내려져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누구든 새로운 피조물이다.” 옛 것(옛 사람)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옛 사람은 죄로 가득 찼었다. 그러나 새로운 사람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보혈 아래 있다는 사실에 의해 거룩하다.
의롭다함 받지 못한 옛 사람
많은 사람들의 가르침들을 정확하게 분석해 보면, 그것은 옛 사람이 의롭다함을 받고 부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옛 사람을 위한 칭의는 없다. 죽음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 옛 사람에게 내려진 유죄판결은 변경할 수 없는 것이다. 옛 사람을 위한 부활도 없다. 옛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다. 반면에 오직 새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일으켜 진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참으로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사도들은 오늘날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는 모든 이론들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하다. 로마서 6장과 관련된 말씀들은 사도들이 이 연합(identification)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밝혀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라는 사도행전 2장 38절에 있는 베드로의 진술은 그와 동일한 주제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들과 정확하게 조화를 이룬다. 기독교 침례는 옛 생활과 새 생활 사이를 가르는 선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을 죽어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우리는 부활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롬 6:5). 옛 생활은 옛 사람이 다스렸기 때문에 육체 가운데서 산 것이었다. 새 삶은 성령께서 새로운 피조물 위에 머무시기 때문에 성령 안에서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죽으시고 장사되셨으나, 다시 살아나셔서 더 이상 죽지 않기 위해 무덤에서 나오셨다. “사망은 더 이상 그분을 주관하지 못한다.” 산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들어오는 새 회심자는 그분의 형상 안에 심겨지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사도들이 회심자들에게 손을 얹고, 성령께서 그들을 충만케 하시고, 그들이 방언을 말했던 것은 바로 이 시기에 있는 일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역에서 구원받고, 가정예배에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을 목격해 왔다. 이것들은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전형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것을 보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었다. 우리는 종교적 세계가 성령침례를 구하는 모든 사람마다 보혈 아래 돌아와 새신자처럼 어린 아이 같은 상태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는 그런 상태에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폭넓은 경험을 통해 성결 교사들이 다른 교단들의 그리스도인들만큼 이렇게 할 필요가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성경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성경이 칭의 때 옛 사람이 못 박혀 죽임을 당하고, 산 믿음으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특권을 보고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완전하게 성화되는 것을 가르친다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윌리엄 H. 더함의 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윌리엄 H. 더함의글: 방언에 관해 딕슨 박사에게 대답 (0) | 2023.02.15 |
---|---|
윌리엄 H. 더함의 글: 두 가지 큰 경험들 또는 은사들 (0) | 2023.02.15 |
윌리엄 H. 더함의 글: 갈보리의 완성된 사역 (0) | 2023.02.15 |
윌리엄 H. 더함의 글: 한 사역자가 사역자들에게 드리는 한 말씀 (0) | 2023.02.15 |
윌리엄 H. 더함의 글: 개인적 간증 (0) | 2023.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