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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H. 더함의 글들

윌리엄 H. 더함의 글: 두 가지 큰 경험들 또는 은사들

한오신 2023. 2. 15. 12:17

두 가지 큰 경험들 또는 은사들

(The Two Great Experiences or Gifts)

 

 

 

 

 

Pentecostal Testimony, 1:8 (Summer, 1911), 5-7.

 

이창승 역

 

 

    우리는 신약 성경에서 두 가지 크고, 분명한 경험들을 발견한다.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더 이상의 경험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경험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살아가야할 삶의 분명한 개요를 발견한다. 이것은 점진적인 경험(a progressive experience)이다. 그 안으로 우리가 이끌어져 들어 온 평화의 자리(place)와 하나님의 호의를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매일매일 이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첫 번째 큰 경험은 회심(conversion)이다. 회심에서,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받아들이시고, 그에게 영생을 주신다.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을 가졌다.” 회심에서,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으며,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정죄를 받았기때문에, 정죄의 상태로부터 생명과 평안의 상태(state)에로 옮겨졌다. 왜냐하면,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음으로써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기때문이다(5:1).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그는 구원받는다. 그가 앞으로 영원히 그럴 것처럼 구원받는다. 죄인은 구원 받을 희망이 전혀 없이 완전히 죽어 있다. 그는 완전히, 희망 없이, 영원히 잃어버린 자이며, 그에게 피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만 열려 있다. 만약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만약 그가 믿지 않는다면, 그는 무엇을 해내든 실패하든 상관없이 여전히 잃어버려진 채로 남아있다. 그를 죄인으로 만들거나 그로 하여금 잃어버려지게 만드는 것은 자범죄들(actual sins or crimes)이 아니다. 그는 출생 때부터 죄인이며, 저주 아래 태어나 정죄를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내어 주셨다는 기록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부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신앙은 이 시대의 사람들을 망하게 하는 죄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the moment), 그는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진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자연적 상태인 사망에서 벗어나 생명으로 옮겨지며, 생명이 실제로 그에게 주어진다. 이것은 그를 물 침례 후보자로 만들며, 물 침례는 회심과 성령 침례 사이에서 그에게 요구되는 유일한 것이다.

 

회개하고 침례를 받으라

 

    이것이 사도행전에서의 연속적인 순서이다. 성령께서 예루살렘 다락방에 있던 그들 위에 임하신 날로부터, 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고,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요청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라고 재촉했다. 그들은 다른 이름에 구원을 주신 일이 없다고,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고 선포했다. 또한 그들은 마음이 찔린 사람들에게 만약 그들이 회개하고, 죄 씻음 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면,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도행전을 통해, 우리는 이와 동일한 과정을 추구하고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을 발견한다. 만약 천하의 모든 나라에서 온 경건한유대인들이 그들의 마음에 찔림을 받고, “형제들아,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라고 울부짖었다면, 그 대답은 회개하고 침례를 받으라이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사마리아 성에서 전했다면,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으셨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길 가에서 홀로 있는 내시를 만났다면, 그로 하여금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라고 외치게 하는 것은 그와 동일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유일한 조건은 너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믿으면이었다. 바울이 왕들과 통치자들 앞에 섰을 때, 그리고 성난 군중들, 또는 호기심에 찬 사람들, 비웃는 사람들을 직면했을 때, 그의 메시지는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었다. 사도들은 갈보리의 십자가 위에서 완성된 그리스도의 사역(the finished work of Christ on the Cross of Calvary)과 그분의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부활을 지속적으로 전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렇게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온전하고 완전한 구주로 설교했다. 한 가지가 분명하다. 사도들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그 어떤 은혜의 두 번째 명확한 역사도 결코 가르치거나 언급하지 않았다. 사도들 중에서 그 누구도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회심 후에 명확하고 즉각적인 역사로서 성화되도록 시도했다는 기록이 완전히 하나도 없다. 그들은 그 대신에 어떻게 그들이 반드시 살아야 하고 걸어야 하는가를 가르쳤다. 그들은 사람들을 구원의 경험 안으로 이끌어가고, 그 다음에 성령의 선물을 받도록 가르치는데 그들의 시간을 다 바쳤다. [회심과 성령침례 사이의] 중간적 경험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었다. 이유는 언급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주제에 대한 성경을[성경적 증거를] 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대한 [성경적] 사례에 호소할 것이다.

 

오순절 날에

 

    크고, 기억할만한 오순절 날에, 성령은 우리 주님의 종종 반복된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다락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자들 위에 강림하셨다. 이것은 새로운 세대의 문을 열었다. 이 세대에서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유일한 구주로 선포되어야만 했다. 사도들은 세상을 복음화 하는 위대한 역사를 시작하도록 택함을 받고, 위임을 받고 권위를 부여 받았다. 확실히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 자신에 의해 선포하도록 위임된 복음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그분 자신의 거룩한 입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구도자가 행하도록 말해야 할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든 전해야 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성령께서 그들 위에 강림하시고 그들을 통해 다른 방언들로 말씀하신 후 큰 무리가 함께 몰려들었을 때, 베드로는 맨 먼저 요엘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그들에게 말했으며, 그 다음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았던, 그리고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셨던 나사렛 예수에 관한 그의 진술들을 증명하기 위해 구약 성경을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는 경험들이나 은혜의 역사들에 대한 것으로 그들과 쓸데없는 언쟁을 하지 않았고,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 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셨다는 것을 선포했다. 큰 찔림이 그 무리를 사로잡자, 그들은 부르짖기 시작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다시 베드로는 은혜의 역사들로 그들을 훈계하지 않고, 그들로 하여금 아무도 규정할 수 없는 어떤 신비스런 것을 찾기 시작하게 한다. 그는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다면, 그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회개하고, 죄 용서함 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고 말한다. 그는 그 다음 자신이 받았던 것처럼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더한다.

 

베드로가 이 오순절 날에 어떻게 설교 했는가

 

    여기 선포되었던 것들 중에 최초의 복음 설교에 그리스도 안의 영생 그리고 성령의 선물이라는 두 가지 큰 경험들이 소개되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받고 누려야 할 특권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기꺼이 그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침례를 받았고, 제자들의 수가 삼천 명 가량 더하여 졌다. 그들 모두가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곧바로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만약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들의 특권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고, 회개한다면 그들에게 주어지지라고 그 위대한 설교자가 약속했던 것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계속 전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 지셨다고 설교했으며, 그분을 통해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부활을 설교했다. 그런데 그는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 사람들을 즉시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해 질 수 있는 한 자리(place) 안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그 완성된 사역을 설교했다. 그는, 사람들이 오늘날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회심 때 부분적으로 구원받으며, 그래서 그 일을 완성시키는 것은 은혜의 두 번째 역사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그들이 일반적으로 칭의라고 말하는) 회심 때 우리는 우리의 외적 악과 죄들을 사함 받지만, 그러나 우리는 타고난 죄(inbred sin)로 가득한 채 남아있어서, 하나님은 회심 때 죄의 본성(the nature of sin)을 다루시지 않고, 다만 외적 죄들(outward sins)을 다루실 뿐이라고 우리에게 말하는 선생들이 여전히 많이 있다. 사실이 아니지만,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람들이 용서는 받겠지만, 구원을 받지 못하고, 중생 함 없이 부정하게 용서받은 상태로 남아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한 사람이 중생할 때, 그의 본성이 변화되는(his nature is changed) 것 같다. 회심하는 것은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To convert means to change). 회심 때 한 사람의 상태(state)와 본성(nature)이 변화된다. 회심 때 한 사람은 죄의 상태로부터 의의 상태로 변화된다. 그는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지는데, 부분적으로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는 정죄와 사망의 상태로부터 생명과 평화의 상태로 변화 된다. 죄와 불결의 상태로부터 정결과 거룩의 상태로 변화 된다. 사단의 자녀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 된다. 회심은 한 사람의 삶에 완전한 변화(a complete change)를 일으키는 큰 경험이다. 그렇지 않다면, 회심은 진정한 회심이 아닌, 오직 부분적인 회심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심 때 한 사람이 성화자 그리스도(Christ the Sanctifier)께로 나와 거룩해지며, 그가 이 복된 상태에서 죽으면, 그는 분명히 구원받는다.

 

한 사람이 회심할 때

 

    한 사람이 회심할 때,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는 하나님의 상속자, 예수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이다. 그는 이제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약속해 오셨던 것은 그 무엇이든 받을 수 있는 상태에(in condition to) 있다. 죄인으로서, 그는 절대 하나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을 수 없을 것이며, 진정으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구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그는 그리스도 안(in Him)에서 온전한 구원(full salvation)을 받는다. 그는 이제 성령을 받는(receiving the Holy Spirit) 경험이라는 다음의 큰 경험을 위한 준비가 된다. 이것은 언제나 명확한 경험이다. 이것은 오순절 날의 사도들의 경우처럼 성령이 말하라고 주시는 대로 다른 방언들로 말하는 것이 반드시 동반된다(invariably accompanied). 한 사람이 성령을 받을 때, 그는 구속의 날까지 인쳐진다. 성령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구원의 도장이다(The baptism in the Holy Spirit, then, is the seal of a finished salvation in Jesus Christ).

    그래서 우리는 사도시대에, 한 사람이 구원받자마자 그들은 그에게 물침례를 주었으며, 그에게 안수하면 그가 성령을 받았다. 우리는 이것이 사도행전 2장에서 소개된 것을 보며, 그러나 8장에서는 이것이 너무도 확실하여, 정직하고 열린 사람이라면 그것을 보는 데 실패할 수 없을 것 같다.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표적들과 이적들로 증언하셨고, 사람들은 빌립이 전파한 것들을 믿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그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이제 이 사람들은 그들이 영접한 바로 그 그리스도를 갖고(have) 있다.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다”[고전1:30]. 오늘날, 많은 곳에서 사람들이 의롭다함을 받았으나 거룩함을 받지 못한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있을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그 경험을 구하기 시작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복을 받았다고 느끼고는 그 거룩함을 받았다고 믿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둠과 혼란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인데, 나는 수년 동안 그런 상태에 처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좌절하여 그 싸움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빌립 시대에는 교회 안에 그런 터무니없는 것이 결코 소개되지 않았다.

 

사마리아에서 베드로와 요한

 

    사마리아 회심자들은 우리들 중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것들을 맛보지 않았다. 예루살렘의 제자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한 가지 크고 명확한 경험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설교자들인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다. 베드로와 요한이 내려왔을 때,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은혜의 명확한 두 번째 역사를 구하라고 말하기 시작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두 번째, 큰 경험인) 성령을 받도록 기도했다. 그 다음 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안수하자 그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다. 너무도 많은 성결주의자들이 이 영광스럽고 놀라운 경험을 성화, 또는 소위 은혜의 사역과 혼동하고 있다는 것은 가장 통탄스러운 일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역사(work)를 완성하셨으며(finished), 우리가 죄를 자각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는 이 역사를 우리에게 계시하신다. 복된 성령께서는 신성의 제 3 위이신데 성령 침례라는 두 번째 큰 경험 때 우리 안에 거하시기 위해 오신다. 이제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받았고, 그 다음 성령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성경은 사람이 회심 때 성령을 받는다는 이론에 강한 일격을 가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우리는 우리가 받는 것을 소유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받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갖지만,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받을 때까지는 성령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영혼들을 다루는 사도적 방법들의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성경적 사례를 확실하게 갖는다. 빌립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했고, 그들은 그리스도를 받았다. 그 다음 베드로와 요한이 그리스도를 받았던 사람들이 성령을 받도록 기도했고, 그 다음 그들이 그 사람들에게 안수 했을 때, 그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다. 이제 그들이 두 가지 명확한 경험들(two definite experiences)을 받았지, 두 가지 은혜의 역사들(two works of grace)을 받지 않았다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경험에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받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되었다. 두 번째 경험에서 그들은 성령을 받았고, 구속의 날까지 인침을 받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들이 받아들였던 성령 안에서 걷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더라도 성화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거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걷는 것이다.

 

다른 사례

 

    사도행전 191절부터 6절에서 우리는 유사한 사례를 접한다.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하자, 그는 그곳에서 신자들을 만난다. 18장과 25절에서 아볼로가 그들에게 예수에 관해 정확하게 가르쳐주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영역 RV), 이 사람들은 분명 구원을 받았다. 이제 바울이 그들을 만날 때, 그는 그들에게 그들이 두 번째 축복을 받았는지 묻지 않는다. 그는 그들이 믿은 이후로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는다. 만약 그 사도가 이 두 번째 역사 경험을 알고 있었다면, 그런 것에 대해 묻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바로 여기서 기독교 세계 전체가 애석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오직 회심이라는 한 가지 경험만 인정한다. 다른 사람들은 영광스러운 성령 침례를 은혜의 명확한 두 번째 역사”(Definite Second Work of Grace)로서 알고 있는 것으로 대체해 왔다. 오순절 사람들이 어디서든 회심과 성령침례라는 오직 두 가지만을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서야할 때에 또 다른 경험을 더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세 가지 명확한 경험들을 구하도록 강요하는 것을 보는 것은 가장 통탄할 일인 것 같다. 형제들이여,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것을 그치라.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옳다. 말씀이 당신에게 맞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당신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편견, 사람들의 이론들을 제거하도록 도와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하면, 말씀이 이 문제와 관련해 명백하고 분명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두 번째 역사 이론을 세우기 위해 한 성경구절이라도 내놓도록 도전을 받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두 번째 역사 이론을 계속 전파할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라, 그리고 만약 그 이론을 거기서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이론을 버리라, 그리고 신약 성경의 참되고, 필수적인 진리들을 전파하기 시작하라. 하나님께서는 따르는 표적들로 말씀을 확증하실 것이며, 반면에 그분은 사람들의 이론들을 존중하실 수 없으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