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주의의 아버지 찰스 F. 파함과 사회주의
이창승
2019.6.1
I. 들어가는 말
파함이 태어나고 오순절 운동가로서 활동하던 미국의 “혁신의 시대, 진보의 시대”(1865 - 1918)에 사회주의는 미국에서 정치적 당을 구성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790년과 1860년 사이에 미국은 직물제조업이라는 자본주의적 산업을 발전시켰으며, 동시에 근로층이 전면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1840년에는 무산 근로자들이 총 인구의 46.9%를 차지하였으나, 증가하여 1920년에는 64.9%에 달하게 되었다.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19세기 미국 자본주의가 만난 두 가지 장애물들 중에서 다른 하나는 증가하는 근로자들이 점점 더 강하게 산업 생산의 과실을 나눌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근로자들은 미국 자본주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산업의 발전은 힘들고 긴 근로시간을 요구했다. 1890년에 하루 12시간 노동과, 일주일에 7일 노동이 보편화되었다. 1914년 이전에는 심지어 9세 아이도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규모 이민과 농업 종사자들의 도시로의 이동은 실질적인 임금상승을 어렵게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 근로자들의 불만과 요구가 거세졌다. 이 시기에 미국 사회주의자들은 정치적 당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노동 운동가들은 사회 노동당(the Socialist Labor Party)을 1877년에 구성했으며, 1901년에 미국 사회당(the Socialist Party of America)이 구성되었다. 그리고 특히 파함의 주요 활동무대였던 캔사스 지역은 사회주의를 왕성하게 키워낸 비옥한 토양이었다. 예를 들면, 1912년 선거에서 체로키(Cherokee) 주민의 25 퍼센트가 사회당에 표를 주었다.
파함은 그렇게 영향력을 발휘하던 사회주의를 어떻게 이해했으며, 그에 대해 어떤 반응을 했을까? 본 논문은 자본주의적 국가 미국과 자본주의적 교회에 대한 이해와 비판에 대한 연구에 이어, 파함의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와 비판을 살펴볼 것이다. 역사학자 루트는 파함이 인민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반 자본주의적(anti-Capitalism) 견해들과 계급 대립론을 채택했다고 보았다. 그런데 사실 파함은 반 자본주의적 견해들과 계급 대립론을 넘어서서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주의를 이해하고 비판했다. 파함은 유물론에 입각한 사회/공산주의의 평등/인류 형제애 추구를 개인의 자유에 의한 신앙의 무시, 나아가 제거에 기반한 것으로 이해했으며, 중생한 자유스런 개인의 존재 없이는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인류의 형제애도 진정으로 성립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사회주의는 결국 적그리스도 체제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II. 파함의 사회주의 이해
파함은 사회주의가 무엇보다도 인류의 보편적 형제애에 기초하고 있다고 이해했다. 그는 옛 질서에 대항하여 일어나고 있는 새 질서는 “인류의 보편적 형제애”(the universal brotherhood of mankind)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고 파악했다. 그에 따르면, 애국주의나 국가주의로 사회주의, 볼쉐비키나 세계산업노동조합을 고취시키기는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그것들은 그 기본적인 원리가 전 인류의 형제애인 새 질서에 속하기 때문이다.
파함에게 사회주의의 보편적 형제애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능력과 복음을 그 기초로 삼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현시키려는 것이다. 그는 새질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들을 보편적 인류애와 정치적이든 사회적이든 모든 법을 위한 기초로 삼는 사람들로 구성된다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노동지부들, 노동동맹들, 그리고 노동조합들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능력을 본성적인 측면에서(on the natural plane) 공의 안에서 발견하려는 그리고 보편적인 형제애를 세우려는 인간애의 울부짖음이며, 복음을 인간적 측면에서 (on a human plane) 실현시키려는 몸부림이다.
파함의 이런 보편적인 형제애적 사회주의 이해는 마르크스와 앵겔스의 편파적 형제애 주장과는 다른 것이었다. 빌헬름 바일팅(Wilhelm Weitling)은 런던에서 열린 사회주의자들의 만국회에서 행한 두 번째 건배사에서 “보편적 형제애”를 말했었다. 그는 “모든 국가들의 민주주의자들이 폭정을 끝장내기 위해 그리고 평등의 전 세계적 승리를 위해 하나의 형제애적 결집 안으로 뭉치기를! 친구들이여! 이 모임은 모든 사람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공통 감정과 전 세계적인/보편적인 형제애(universal brotherhood)의 감정에 대한 증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건배사를 앵겔스가 전해주었다. 그런데 바일팅이 말한 보편적 형제애는 노동자들의, 무산자들의 형제애였다. 그는 뒤이어 “돈만 알고 그것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이 참으로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의 원수들이라는 것, 그리고 사람들 가운데 노동자들의 원수보다 더 인류의 원수들이 없다는 것은 명백합니다”라고 말했다. 마르크스와 앵겔스는 편파적인 프로레타리아의 형제애를 추구했다. 특히 마르크스는 “보편적 형제애”를 부르주아의 형제애로 폄하했다. 1847년에 폴란드에서 행한 연설에서 칼 마르크스는 모든 국가들의 부르주아 자유 무역가들의 연합과 형제애를 억압하는 자들이 억압받는 자들을 대항하는, 착취하는 자들이 착취당하는 자들을 대항하는 형제애라 규정하였다. 그는 1848년에 “세계적인 착취를 보편적 형제애라고 부르는 것은 오직 부르주아의 머리에서나 나올 수 있는 개념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앵겔스는 “모든 국가들의 노동자들의 상황이 동일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의 관심사들이 동일하기 때문에, 함께 싸워야하고, 모든 국가들의 노동자들의 형제애(a brotherhood of the workers of all nations)로서 모든 국가들의 부르주아들의 형제애(the brotherhood of the bourgeoisie)에 맞서야 한다”고 선동했다. 즉, 마르크스와 앵겔스는 유산자들의 형제애와 무산자들의 형제애라는 두 계급 간의 서로 다른 대립적인 형제애를 언급하고 두 형제애들 간의 싸움을 선동하며 무산자들의 형제애에 편파적으로 가담했다.
파함이 언급한 사회주의의 보편적 형제애는 주로 19세기 기독교적 사회주의가 주장한 것이었다. 유럽과 미국에서 1800년대 초와 중반에 대부분의 기독교 집단들은 보수적이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상황들이 변하면서 사회적 복음이나 기독교 사회주의와 같은 급진적 기독교 집단들이 등장했다. 기독교 사회주의는 영국과 스칸디나비아에서 발전되었다. 그 사상가들은 온건한 사회주의를 선호했는데 국가에 의한 자본의 통제보다는 협동, 노동자를 위한 학교, 노동조합을 요구했다. 1849년에 성공회 사제 마우리스(Frederick D. Maurice)와 그의 동료들(Charles Kingsley, John Malcolm Lodlow 등)은 영국에서 기독교 사회주의를 시작하였다. 초기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로서 사회적 계급, 군주제, 귀족정치에 대한 전통적인 자세를 옹호했으며, 조합(unions)을 반대했다. 그들의 관심사는 “사회주의”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 좌파를 형성한 사람들은, 영국 노동당의 형성 시기에 등장한, 그들의 19세기 후엽과 20세기 초엽의 후배들이었다. 기독교 사회주의는 그것이 과학적인 기준보다는 도덕적 혹은 윤리적 기준들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나 파비앙과 다르다. 이것이 윤리적 사회주의와 다른 점은 이것이 기독교 사상에서, 즉 성서와 과거와 현재의 교회의 가르침, 성례의 예들로부터 윤리적 기준을 끌어낸다는 것이다. 기독교 사회주의의 핵심 이념은 하나님의 전 인류의 아버지 되심(마 23:8-9)에서 이끌어낸 “인류의 형제 됨”이다. 기독교 사회주의자 사무엘 키블은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the Fatherhood of God)과 인류의 형제 됨(the Brotherhood of Man)을 기독교의 원리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개인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와 대립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는 “산업에서 형제애를 요구하는 사회주의자들은 자유경쟁을 외치는 경제가들보다 그리스도의 마음에 더 가까이 있다”고 말했다. 클립보드에 따르면,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은 하늘에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가르쳤으며, 그들에게 사회적 조직은 말뿐이 아닌 실제로 사람들의 영적 형제애(the spiritual brotherhood)였고, 성육신은 그들의 형제들에 대한 책임을 계시한 것이었다.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은 하나님은 아버지시고, 사람들은 사회주의 체제 안에서 형제애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이 그렸던 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한 가족으로서 인류의 형제애를 바탕으로 한 평등(equality), 협동(co-operation), 민주(democracy)였다.
사실,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의 인류 형제애 주장에는 고등비평에 근거한 신이 아닌 인간일 뿐인 예수의 모범에 의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형제 됨이라는 왜곡된 신학이 존재한다. 피터 존스는 기독교 사회주의의 근저에 고등비평에 따라 예수를 한 사람의 모범적 인간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놓여있음을 지적했다. 사회주의를 위해 모든 급진적 기독교인들을 연합하고 교파적 경계선들을 잘라낸 하나의 종교적 논거는 신약성경에서 임의로 끌어낸 것이었다. 모든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이 이 논거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the personality of Jesus Christ)을 강조했다. 이것은 결국 큰 종교적 논쟁의 시대였다. 다윈적 회의주의와 세속주의자들의 반종교적 주장은 별 문제로 하고, 소위 기독교 학자들은 성경의 이적들과 역사적 기록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복음서들 안의 불일치들과 불완전함을 드러내려 했다. 이 소위 “고등비평”(higher criticism)의 홍수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대응은 그들의 신앙을 성경의 기록전체에 두지 않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메시지(소위 케리그마)와 예수의 인격적 품성의 모범에 두는 것이었다. 기독교 사회주의 사상의 중추에는 인간일 뿐인 예수의 짧은 생애와 그의 인류를 위한 죽음의 영광스런 성격을 통해 보여준 성육신한 예수의 인간적 인격에 대한 사상이 있다.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 사람의 형제 됨”이라는 기독교 사회주의 교리 안에서 성육신과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죄의 용서를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람과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서로 묶어줄 뿐이다. 안토니 윌리엄스에 의하면, 기독교 사회주의의 보편적 인류애의 신학적 기초는 결함투성이다. 윌리엄스는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이 그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는 모든 인류의 형제 됨을 부정하며, 요한복음 8장 42절 44절과 히브리서 12장 7절에서 9절을 근거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형제애는 하나의 가족 형성에 적용될 수 없는 것이며, 인류는 하나의 보편적 가족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인류의 형제 됨은 창조에서 찾아질 수 없고, 타락 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구원이라는 재창조에서 찾아져야 한다고, 예수를 구원자로 믿지 않는 사람들과 믿는 사람들은 형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윌리엄스에 따르면,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성경에서 이끌어내지(exegesis) 않고, 반대로 성경에 투영하여(eisegesis) 성경을 왜곡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는 복음을 사회 개선의 메시지로 변조시키려 한다.
파함은 사회주의를 실제적/실용적 기독교, 실제적인 필요를 채워주실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고대하는 몸부림으로 보았다. 파함은 런던에서 개최되었던 한 노동자 대회에 참석했었다. 그곳에서 교회가 언급되자, 맨 아래 석으로부터 맨 위 회랑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들은 야유를 보냈다. 이런 시끄러운 상황에서 한 사람이 목수인 나사렛 예수에 대해 말하자, 그들은 그에게 찬사를 보내며 몇 분 동안이나 계속 박수를 쳤다. 파함은 그 이유를 그들이 예수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실제적 기독교”(practical Christianity)를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파함의 “실제적 기독교”라는 용어는 표면적으로 발루의 “실제적 기독교 사회주의”를 연상시킨다. 아딘 발루(Adin Ballou)는 1854년에『실용적 기독교 사회주의』(Practical Christian Socialism)란 책을 썼다. 그에게 실제적 기독교 사회주의는 인간의 모든 실제적 관심사들(all real human interests)을 인식하고, 증진하고, 보호하고, 조화시키기를 이행하는 한 사회 체계다. 그는 농업과 소규모 생산이 혼합된 실용적 기독교 공화 공동체를 꿈꾸었다.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개성은 존중되고, 노동은 영예로워야 하고, 여성들은 완전히 동등해야 하며, 인종과 종족 차별은 금지되며, 전쟁을 포함하여 세속 사회의 정책들은 거부되고, 단순히 이론적인 기획이 아닌 실제적인(practical) 것이어야 한다.
파함이 런던에서 노동자 대회에서 들었던, 예수를 노동자로 해석하기 위해 내건 “목수 나사렛 예수”는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에게 친숙한 것이었을 것이다. 영국 성공회 목사 스튜어트 헤드람(Stewart D. Headlam, 1847-1924)이 주도한 성 마태 조합(the Guild of St Matthew)의 목적은 예수를 진짜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그 조합원들의 직무는 “그 목수”(the Carpenter)를 그의 윤리적 혁명의 힘과 함께 전파하며, 목수의 교회의 기독교 공산주의를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헤드람에게, 그리스도는 급진적 혁명가, 사회주의적 목수(socialistic carpenter of Nazareth) 그리고 갈릴리 출신의 혁명적 사회주의자였다. 1899년 창립된, 조직화된 노동자의 진정한 그리고 불변하는 친구를 표방한 “노동자들의 이익 증진을 위한 교회연합”(The Church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the Interests of Labor[CAIL])은 “목수 그리스도”(the image of Christ the Carpenter)를 비전의 근거로 삼았다. 그에 의해 목수 노동 계급에 속하여 계급투쟁을 벌이며 급진적 개혁을 도모한 사회 공산주의자로 그려진 예수의 산상수훈은 그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파함은 사회주의의 기본 기법들 중의 하나인 “모든 산업의 국유화”를 언급했다. 실제로, 사회주의는 생산, 분배, 그리고 교환의 수단의 공동 통제 또는 소유를 추구한다. 앵겔스는 공산주의의 성취 방법을 “사유재산의 제거와 사유재산을 재산의 공유로 대체”라고 밝혔었다. 국유화는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점진적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주장했던 주요 기법들 중의 하나였다. 이 맥락에서, 국유화의 목적은 거대 자본가들의 재산을 빼앗아, 산업의 이윤을 공적 목적을 위해 사용하고, 사회주의적 경제 체계의 확립의 전조로서 노동자들의 자치 경영(self-management)의 어떤 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파함은 볼쉐비키 공산주의의 특징들을 열거하면서 “모든 산업의 국유화”를 말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이 국가의 기본 사업 등 산업의 일부가 아닌 모든 산업의 국유화를 추구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그는 토지의 국유화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었다.
파함은 사회주의가 반애국주의 적이라고 보았다. 그는 “애국주의나 국가주의로 볼쉐비키나 세계산업노동조합을 고취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기본적인 원리가 전인류의 형제애인 새 질서에 속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파함은 전인류의 형제애에 기초한 사회주의는 애국주의를 동력으로 삼을 수 없는 것이라고, 애국주의를 뛰어넘는 것, 즉 반애국주의적인 것이라고 이해했다. 1901년에 프랑스인 구스타브 에르베(Gustave Hervé)는 “모든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을 국제주의자(Internationalist)라고 부른다. 사회주의자들 가운데서 국제주의자란 국제 노동자 연합 편에 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썼다. 그런데 그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국제 연합에 대한 이해에 대체로 두 가지 다른 것이 있었다. 하나는 애국주의적 국제주의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반애국주의적 국제주의자들이다. 에르베는 두 노선 중에 반애국주의를 택했다. 프랑스 생디칼리즘(Syndicalism)은 반군부운동, 반애국운동을 벌였다. 정부는 주요 파업이 발생할 때마다 군대를 불러 질서를 회복했다. 그래서 노동자들에게 군대란 고용주를 위한 보호수단으로 비춰졌다. 그들은 부르주아들이 노동자들의 애국심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징집하여 결국 부르주아의 이익을 보호한다고 생각했다.
파함은 볼쉐비키를 비롯한 사회주의는 반애국주의를 넘어 “모든 국경선의 소멸”(the effacement of all national boundaries)을 추구한다고 보았다. 우선, 파함에게 전인류의 형제애를 찾는 사회주의는 반권위주의적이고 아나키즘 적이었다. 그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투쟁에서 아나키즘(anarchism)은 곧 피로 우리의 배수로들을 채울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파함에 따르면, 새질서는 민중들로 구성되는데 그 민중들은 국가적 경계들을 초월한 범세계적인 가난한 노동자들로 구성되었다. 정부들이 존재할 때 국가적 경계들을 초월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새 질서는 국경선을 모른다. 특히 파함은 볼쉐비키가 “모든 정부들을 전복시켜, 모든 국경선을 소멸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마르크스는 “현대 국가의 정부는 유산자 전체의 공동 관심사들을 처리하기 위한 위원회일 뿐이다” 그리고 “노동자는 그 어떤 국가도 갖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앵겔스는 “무산자들만이 국가를 파괴할 수 있다. 오직 깨어있는 무산자들만이 각기 다른 국가들 사이에서 형제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앵겔스는 “국가들은 사적 재산이라는 그것들의 기초의 폐지에 의해 재산과 계급의 다양한 차이들이 사라짐에 따라 이 [무산자들의]연합에 의해 서로 병합되고 폐지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아나키라는 용어는 그리스에서 유래하며 본질적으로는 “지배자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아나키스트들은 모든 정부형태나 강제적인 권력, 모든 형태의 계급제와 지배형태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국가 · 자본 · 교회로 구성되는 “사악한 삼위일체”라 불리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는 자본주의와 국가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종교권력에도 반대한다. 아나키 상태란, 억압적인 모든 제도가 없는 분권형 사회, 자발적 결합의 연합을 통해 조직된 사회이다. 1880년대에 아나키적 공산주의(anarcho-communism)는 루시 파슨(Lucy Parsons)이나 리지 홀름(Lizzy Holmes)에 의해 발간된 정기 간행물『자유: 혁명적 아나키적 공산주의 계간지』(Freedom: A Revolutionary Anarchist-Communist Monthly)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미 미국에 나타났다.
파함의 눈에 비친 사회주의의 사회화의 주요 수단은 파업과 무력 폭동으로 인한 혁명이었다. 파함은 민중들이 그동안 정치적으로 자기들의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해왔다고 보았다. 파함에 따르면, 그들은 “투표”를 통해 자기들의 대변자들을 국회로 보내어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하게 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 민중들은 결국 귀족들과 자본가들, 즉 금권정치가들이 돈과 권력으로 세상 정부들을 장악하여 “민중들의 이익에 관련된 모든 법적 조치들을 사전에 차단해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민중들은 “노동 계급의 자유를 위해” “희망의 실현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정부와 사회라는 괴물들을 박멸하기 위해 가까이에 있는 폭탄과 암살이라는 수단들을 이미 사용하기 시작했다.” 파함이 보기에 그들은 폭탄과 암살 등의 비밀스럽고 개인적인 수단들에 더하여 그들은 공개적이고 집단적인 동맹파업(strikes)과 폭동(riots)을 사용했다. 그리고 민중들의 그런 수단들의 동원의 목표는 “혁명”(revolution)이었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들은 자본가들의 종말은 현존하는 모든 사회적 질서들을 폭력으로 전복시킴으로써만(durch den gewaltsamen Umsturz) 성취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파함이 파악한 사회주의 혁명의 목적은 가정 지키기, 노동 계급의 자유, 노동 계급의 정권쟁취, 나아가 노동 계급의 세계 통치였다. 파함이 보기에 사회주의자들이 혁명을 일으키는 제일 큰 목적은 그들의 가정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는 “지금 세상의 노동대중의 마음은 그 가정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맹렬한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파함은 사회주의 혁명의 두 번째 목적을 소극적으로는 “착취하는 자들과 사악하게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자들과 부자들에게 복수”하고, 적극적으로는 “노동 계급의 자유”를 얻는 것이라고 보았다. 파함에 따르면, 노동 계급의 혁명은 정치적으로는 “노동계급의 정권쟁취”를 목적으로 삼으며, 최종적으로는 노동 계급이 “세계를 다스리는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의 목적이 이렇기 때문에, 파함이 보기에, “보다 많은 임금, 또는 보다 나은 집을 노동자 계급에게 뇌물로 주는 것은 단지 모욕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회/공산주의자들은 파함의 생각과는 달리 전통적인 가정을 지키기 보다는 해체하는 것을 선호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사망한 후 몇 달 후에 요한 계시록을 고등비평적으로 바라보면서 니골라당을 언급하며 “모든 위대한 혁명적 운동과 함께 ‘자유 연애’(freien Liebe)라는 논제가 전면에 놓인다”라고 말했다. 엥겔스는 1884년에『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엥겔스에 따르면 원시 공산제는 여성이 자매와 살며 “나의 자매의 아이는 나의 아이”라는 원리를 적용하는 모계 집단을 기반으로 한다. 이들은 함께 살면서 일하기 때문에 이런 공동 가구에서 사는 여성은 다른 여성에 대하여 강한 연대감을 느끼며 필요할 때는 비협조적인 남성에 대하여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다. 양도 가능한 재산의 등장은 시집살이와 부계로의 이행을 촉발하여 남성의 힘을 강화시키고 여성의 힘을 약화시켰다. 엥겔스는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혼하는 것이 개인이나 사회를 위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미래에 돈이나 권력에 의해 결혼하지 않고 사랑에 따라 행동하는 시대가 온다면, 일부일처제 중심의 가족은 막을 내리게(Punktum)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카트에 따르면, 19세기 중엽부터 말엽까지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자유 연애를 지지하며 가족이라는 기관을 거부하는 성향을 실제로든 이론으로든 공유했다.
파함은 “만족하지 못하는 노동자 계급, 사회주의자들, 세계산업노동자조합”을 포함하는 새 질서(the New order)에 볼쉐비키주의(Bolhseviks)를 포함시켰다. 볼쉐비키는 러시아어로 “большевики”로서 “다수”(majority)를 의미한다. 볼쉐비키는 1898년에 세워진 “러시아 막스주의 사회 민주 노동당”(Marxist Russian Social Democratic Labour Party)으로부터 1903년에 분리되었다. 파함은 볼쉐비키를 “빨간 색 짐승”(A scarlet colored beast)으로 표현했으며, 그 빨간 짐승이 지평선에 나타났다고 말했다. 파함이 파악한 볼쉐비키는 무엇보다 “모든 국경선의 소멸”(the effacement of all national boundaries)을 믿으며 전 세계적인 아나키 가운데서 출현했다. 그는 1892년 이후의 시대를 “청황색 말과 그 위에 탄 자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그 시대는 국제적인 전쟁들 이후 “전 세계적인 아나키 상태와 함께 막을 내일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파함이 보기에, 그 전쟁들은 세상을 정화시키는 대신 오직 전 세계적인 아나키만을 일으킬 조건들만을 산출해내고 있었다. 파함은 다니엘서 7장의 네 번째 짐승을 “아나키”로 규정했다. 그는 이 짐승이 등장으로 공포의시대가 시작되며, 나라의 구분이 사라질 것이며, 이전에 결코 없던 환난의 때가 올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그는 모든 사람의 손은 그 이웃을 대적할 것이며, 문명의 모든 위상들은 무정부, 피, 불, 그리고 몰살이라는 고통 속에서 상실 될 것이라고 보았다. 파함은 다니엘서의 마지막 짐승, 큰 철 이빨과 열 뿔을 가진 짐승을 볼쉐비키로 해석했다. 그는 이 마지막 짐승이 아나키와 함께 “부자와 가난한 자들 사이의 투쟁에서 현재의 나라들을 황폐화시킬 것”이라고 보았다. 파함은 볼쉐비키의 아니키한 점이 그 이전의 권력들이 중앙집권화 되고 지리적 경계에 의해 제한된 권력 중심지를 갖고 있는 정부라는 조직형태를 갖고 있는 것과는 다른 특징이라고 보았다.
파함은 볼쉐비키주의가 미국에도 상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가 볼쉐비키의 미국 도달 가능성을 예측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제시했다. 그 이유들 중 하나는 외부적인 것으로서 볼쉐비키의 막대한 영향력이었다. 파함은 볼쉐비키를 “파도”와 “전염병”에 비유하고, 파도가 해안에 밀어닥치는 것처럼 미국에도 도달할 것이며, 유럽에서 발생한 페스트를 차단하는 것보다 볼쉐비키를 차단하는 것이 더 힘들 것이라고 보았다. 다른 이유는 내부적인 것으로서 강한 노동조합, 급진적 사회주의자들, 아나키스트들이 러시아 자체보다 더 볼쉐비키 전파를 위한 비옥한 토양을 제공할 것이지만, 이에 비해 “세상 정부의 힘은 치료를 위한 만병통치약이나 볼셰비키주의를 일으켜온 균을 죽이기 위한 그 어떤 의학적 행동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함의 그런 우려가 현실에서 어느 정도 나타기도 했었다. 1917년 러시아 3월 혁명이 일어났을 때 미국 사회주의자들은 독재 정권의 멸망을 축하했다. 그리고 3월 20일 저녁에 15,000명의 러시아 이민자들이 대부분이었던 사회주의자들이 매디슨 광장에서 러시아 혁명을 지지하는 행진을 했었다. 그런데 기자이며 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고 미국 사회당에서 축출되어 소련에서 세상을 떠난 리드는 1918년에 미국에서는 볼쉐비키 혁명이 가능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는 그 이유로서 미국 노동자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여 자본가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있는 것, 미국 노동자들은 러시아나 독일 등의 아나키적 혁명을 승인하지 않는 다는 것, 미국 사회당의 구성원이 대부분 시시껄렁한 부르주아라는 것, 미국 사회당에 세련된 좌익이나 혁명세력이 부재하다는 것, 사회주의 운동들이 노동계급과 분리되어있다는 것, 사회당이 얼마간의 힘은 가지고 있으나 진보적 부르주아 개혁과 견줄 만큼이 아니라는 것 등을 열거했다.
파함은 볼쉐비키의 역사적 역할을 사회주의적 국제 연합을 위한 길을 예비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윌슨(Mr. Wilson)이 제안한 야만주의로부터 세계를 구하려는 국제 연합(the League of Nations)은 실패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네 다섯 개 국가만 서명했고, 몇 나라는 망설이고 있었다. 파함이 보기에, 그 연합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확실한 요소들이 있었다. 그 요소는 무엇보다도, 유럽 군주 국가들의 매우 낡은 기준들을 최첨단으로 현대화된 공화국들과 민주국가들의 이상들과 결합할 수 없다는 것, 둘째로, 각 나라의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 사이의 차이점들은 결코 극복될 수 없으며, 그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들은 조율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파함은 성경은 확실히 어떤 국제 연합이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의 목적과 계획을 고려해 볼 때, 그런 국제 연합의 성립은 윌슨에 의한 계획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파함에게 성경이 말하는 국제 연합은 무질서한 인간의 바다로부터 나올 것이었다. 바다는 무질서한 인간의 무리들을 의미하며, 다니엘서의 마지막 짐승은 거대한 쇠 이빨들을 가지고 일어나며(볼쉐비키), 계시록의 주홍색 짐승(아나키즘)과 함께 인간의 바다로부터 나온다. 파함이 판단하기에, 그 두 짐승이 황폐하게 하는 일을 마친 후, 열 발가락과 열 뿔을 가진 국제 연합이 등장할 것이었다. 파함은 볼쉐비키는 나라들을 멸망시킬 것이고, 그럼으로써 “열 발가락 국제 연합”을 위한 길을 예비할 것이라고 보았다. 파함이 보기에 모든 나라에서 동맹 파업과 폭동을 통해 혁명들이 일어나고 있었고, 이 와중에서 교회들을 포함하여 공공건물들이 파괴되고, 부자들이 죽임을 당하고, 정부들이 전복되며, 경계선들이 재조정될 것이었다. 이 재조정은 열 개의 붉은 공화국들의 형성을 가져올 것이며, 이것이 열 발가락 국제 연합이 될 것이었다. 그가 보기에, 러시아는 이전에 바빌론이나 로마에 의해 통치되지 않았던 유럽과 아시아 전체를 지배할 것이었다. 이 때 로마 가톨릭 교황은 붉은 짐승 위에 앉아서 단지 아나키의 돌진을 멈출 만큼만 사람들의 의식을 통제할 것이며, 유럽의 가톨릭주의의 연합군은 법과 질서의 회복을 위해 전쟁터로 소집될 것이고,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그 후 로마의 교황은 한 사회주의 체제를 세우고 다니엘의 열 뿔 혹은 열 왕의 왕국을 다스리게 하기 위해 열 명의 왕을 임명할 것이며, 고대 로마제국의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들은 그 제국의 경계선 안에서 분해될 것이었다.
파함은 사회주의자들이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 미국을 파괴하고 그 정권을 탈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함이 미국이 파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로, 상업적 제국주의라는 미국의 비정상적인 대외정책 때문이다. 그는 미국이 1898년에 필리핀을 침공한 것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필리핀에서 군대를 철수 시키지 않으면, 미국인들이 불의한 일 때문에 미국적 삶을 포기하기를 거부할 것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시민전쟁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파함은 “머지않아 정의가 화염검을 들고 나와서 상업적이고 제국주의적인 팽창의 제단 위에 올려진 수천의 희생자들의 피를 섞어온 나라를 징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둘째로, 이민자들에 대한 잘못된 정책 때문이다. 파함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 1859년에 벨리 포지(Valley Forge)에서 환상을 통해 아메리카 공화국의 미래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워싱턴에 따르면, 어두운 회색빛 천사가 나팔을 입에 물고 각기 구별되도록 세 번을 불었다. 그리고 바다에서 물을 취하여 유럽,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에 뿌렸다. 그러자 이 각 나라들에서 짙은 “검은 구름들”이 일어나 곧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이 구름을 관통하며 어둡고 “빨간 빛”이 희미하게 번쩍거렸다. 워싱턴은 이 희미한 빛을 통해 무장한 사람들의 떼거리들을 보았다. 그 떼거리들은 그 구름과 함께 움직이며 땅을 행진하고 바다를 항해하여 미국으로 향했다. 그 나라는 겹겹의 구름에 싸여 있었다. 그리고 워싱턴은 이 거대한 군대가 그 나라 전체를 황폐화시키고, 이제 싹이 돋아나고 있는 마을들, 읍들, 시들을 불태워버리는 것을 보았다. 천둥 같은 대포소리와 칼 부딪히는 소리, 그 죽음의 전쟁터에 휩싸인 수백만 명의 고함소리들과 울부짖음을 들었다. 파함은 각 나라들에서 일어나는 검은 구름을 괄호치고 “외국 이민자들”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어둡고 빨간 빛을 “아나키즘”으로 해석했다. 그럼으로써 파함은 워싱턴의 환상을 불만을 품은 외국에서 온 이민 노동자들이 무장 궐기하여 일으킨 아나키적 혼란에 의해 미국이 파괴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파함은 자기 해석을 가미한 워싱턴의 환상을 인용한 후 “성경은 반복하여 선포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그 영성을 잃어버리며, 교만하여져서 과부들과 고아들, 그리고 피고용인들을 억압하고, 외국인들의 권리를 빼앗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라마다 망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도시들이 피로 물들면,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를 멸망시키실 것입니다”라고 경고했다. 셋째로, 미국 안에서 타협에 이르지 못하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싸움 때문이다. 파함은 물론 노동자 측에 외국 이민 노동자들도 포함시켰을 것이다. 파함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투쟁에서 아나키는 곧 피로 우리의 배수로들을 채울 것”이라고 보았다. 1917년경에 파함은 미국은 그 종말의 시간이 임박한 때에 교만하여져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 힘과 자기 영광으로 해외로 진출할 것이고, 임금을 미끼로 노동자들을 탄압 할 것이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미국을 끝장낼 것이며, 워싱턴의 미국의 역사의 종말에 대한 환상에서 그가 대서양 연안에서 태평양 연안까지의 도시들이 황폐화되는 것을 보았던 것처럼 그 독수리의 몸 전체가 불타버릴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파함이 보기에 옛 문명은 죽어가고 있는데, 유일하게 가능성 있는 결말은 민중의 승리일 것이었다. 그의 눈에는 노동자들이 유럽에서 뿐만 아니라 미합중국에서도 정권을 잡을 것이 분명했다.
III. 파함의 사회주의 비판
사회주의를 옹호한 것 같지만, 사실 파함은 사회주의자가 아니었다. 파함은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교회가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헐벗은 자들을 입혔다면, 그런 운동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회주의가 어떤 것인지 알아보았고, 또 사회주의의 일면을 이해하였다. 하지만, 파함은 자신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자신을 “일종의 사회주의 학교를 졸업한”(graduated from a School of Socialism) “그리스도인”이라고 정의했다. 파함은 사회주의 안에 있는 내부인이 아니었고, 바깥에 있던 외부인이었다.
이런 파함의 사회주의에 대한 자세는 그가 한 때 몸담았던 당시 성결운동의 흐름과는 다른 것이었다. 성결운동은 20세기의 처음 10년 동안 비밀결사, 정당, 그리고 노동조합을 사탄의 도구들이라고 정죄하였다. 그러나 빈슨 사이난에 따르면 파함이 합류했던 시기인 20세기 후반으로 오면서 그런 양상이 달라졌다. 완전 성결주의자 찰스 피니의 회심자들 가운데 버먼트 푸트니(Vermont Putney)가 있었다. 그는 1836년부터 1879년까지 뉴욕의 오네이다에 성서적 공산주의자들(Bible Communists)이란 공동체를 세울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1840년 무렵에는 완전주의가 미국의 사회적, 지적, 그리고 종교적 삶의 중심 주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완전주의적 가르침으로부터 사회적 삶을 온전케 하려는 많은 개혁운동들, 예를 들면 여권운동, 노예 해방운동, 반프리메이슨 운동, 그리고 다양한 절제 운동들이 탄생했다. 대부분의 성결 교파들이 파함의 주 활동 무대였던 남부와 중서부의 농촌 지역에서 1895년과 1900년 사이에 시작되었다. 인민주의(Populism)의 절정을 이룬 농민폭동과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annings Bryan)의 입후보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지역에서 있었다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한 일이다. 성결운동과 인민주의 운동 모두는 동부의 기득권 제도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반란, 종교적 반란이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성결파 사람들이 인민주의와 브라이언에 대하여 동조적이었다. 파함은 성결운동의 그런 좌익적 성향 속에서 성결적 사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파함은 그런 성결운동의 좌익적 성향에 매몰되지 않고, 사회주의를 졸업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파함이 사회주의에 호의적이면서도 자신을 사회주의 안에 두지 않은 것은 사회주의의 일면을 이해했지만, 그가 사회주의 자체는 자신을 그 안에 둘 만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파함이 사회주의의 일면을 이해했으면서도, 자신을 사회주의 안에 두지 않은 이유들 중에서 가장 큰 것은 그가 사회주의에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의 참된 회심과 영적 중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파함은 당시 유명한 사회주의자이며 캔사스 주의 기라드(Girard)에서 발간되던 사회주의 신문,『이성에 호소』(Appeal to Reason)의 편집인이었던 줄리어스 웨일랜드(Julius Wayland, 1854–1912)의 사망기사를 썼다. 웨일랜드는 테네시 주의 딕슨에 유토피아적 부락을 세우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죽음과 자신이 사회주의의 이점을 대부분의 미국사람들에게 확신시키는데 실패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 사망 기사에서 파함은 더욱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위한 웨일랜드의 노력들을 칭찬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웨일랜드의 시도들이 실패했다고 판단했으며, 그 실패의 원인을 그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함은 만약 웨일랜드가 오직 그리스도만이 그분의 재림 때에 완전한 사회를 만드실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면, 그는 기독교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함이 판단하기에 웨일랜드를 포함한 사회주의자들의 맹점은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참된 개선 체계”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파함이 보기에 사회/공산주의는 “본성적인 측면에서(on the natural plane)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능력을 공의 안에서 발견하려는 그리고 보편적인 형제애를 세우려는 인간애의 울부짖음이며, 복음을 인간적 측면에서(on a human plane) 실현시키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파함이 판단하기에 그것이 인간의 개선을 위해 지속적인 유익을 주지 못하고 궁극적으로 실패하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적인 회심과 영적 중생”에 근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파함은 “만약 우리가 지부들(lodges)과 조합들(unions)의 세력을 우리 조상들의,” 회심과 영적 중생에 근거했던 “옛 종교에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들이 실현하기를 바라는 것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파함은 사회주의의 치명적인 약점을 인간의 영혼을 중생시키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파함에게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필요한 사람들에게 물질을 나누어 주는 것은 인류애적인 정신의 자연스러운 발로이지만, 그러나 그런 불신자의 자선은 종말론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큰 날”, 즉 심판의 날에 그에게 유익이 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영혼의 중생이 선행하고, 그 뒤를 물질적 자선이 따라야만 한다는 것이다. 파함에게 영원에 있어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영혼의 중생 없는 선행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나누어 주는 것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가 된 후에야 진정으로 유익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파함에게 영혼의 중생 없는 사람들 사이의 형제애, 중생한 사람들과 중생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형제애는 진정한 형제애가 아닌 것이다. 그에게 영혼의 중생과 형제애는 서로 대체될 수 없는 것이다.
파함이 사회주의가 실제적 기독교를, 물질적 필요를 채워주시는 실제적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라고 파악한 것은 또한 사회주의의 유물론적 성격을 지적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발전의 단계에서,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들은 현존하는 생산 관계들과 충돌한다”라고 말함으로써 그의 유물론적 관점을 분명하게 표명했다. 파함이 파악한 사회주의는 유물론에 입각하여 축적된 물질의 분배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파함에게 사회주의는 그리스도에게서 물질적 필요만을 채움 받으려 할 뿐, 그리스도께서 제공하시는 영혼의 구원은 도외시하고 거부하려 한다. 파함은 선행이 부족한 영혼의 중생은 영혼 구원이라는 유익만이라도 있겠지만, 유물론에 기반한 사회주의와 같은 영혼 중생 없는 선행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파함에게 영혼 중생의 결여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공산주의의 활개는 결국 중생을 필수적인 것으로 삼는 “교회의 생명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사람이 종교를 만들지, 종교가 사람을 만들지는 않는다(Der Mensch macht die Religion, die Religion macht nicht den Menschen)고 생각했으며, 종교는 인간의 자기의식 또는 자기 평가(Und zwar ist die Religion das Selbstbewußtsein und das Selbstgefühl des Menschen)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종교에 대한 투쟁은 종교를 정신적인 향기로 삼는 세상에 대한 투쟁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종교적 고통은 진짜 고통의 표현인 동시에 진짜 고통에 대한 저항이었으며, 인민들의 아편[마약]이었다(Sie ist das Opium des Volks.). 그래서 그는 인민들의 환각적 행복으로서 종교를 폐지하는 것은 인민들의 참된 행복을 위해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했다(Die Aufhebung der Religion als des illusorischen Glücks des Volkes ist die Forderung seines wirklichen Glücks.). 앵겔스는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모든 종교들은 개인이나 집단의 역사적 발전 단계들의 표현들이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모든 현존하는 종교들을 불필요하게 만들며, 그것들을 소용없게 만든다”고 주장했었다.
파함은 평등한 민중을 위한다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한 사람을 위한 독재에 이르게 될 것을 우려스런 눈으로 미리 보았다. 파함은 1912년 무렵에 사회주의는, 특히 러시아의 볼쉐비키는 한 독재자로 귀결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다니엘의 마지막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을 가지고 있다”(단 7:7). 파함은 이 짐승을 볼쉐비키로 해석했다. 그리고 그는 러시아가 시베리아 전체를 그 지배하에 놓을 것이고, 볼쉐비키가 러시아제국 내의 모든 불만스런 세력들을 규합하여 강력한 독재정권을 세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함은 그 독재자(dictator)는 “북쪽의 왕”으로서 북유럽, 독일, 오스트리아, 터키를 정복할 것이고, 나아가 중국과 페르시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볼쉐비키의 독재자가 계시록의 주홍빛 짐승인 아나키와 함께 부자와 가난한 자들 사이의 투쟁에서 현재의 나라들을 황폐화시킬 것이며, 다니엘이 말한 “그 이전에 없던 환난의 때”를 가져올 것(단 12:1)이라고 예견했다. 파함은 서로 상충되는 독재와 아나키가 사회/공산주의 안에서 이상하게 결합하여 파괴적인 결과를 산출할 것이라고 보았다.
파함은 윌슨이 추진하고 있던 국제연합은 실패하고, 도리어 사회주의적 독재자에 의해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함이 보기에, 윌슨이 제안한 평화회담(the Peace Conference)을 통한 국제연합의 실패의 근본적인 이유는 “국제 연합은 다루어야 할 잡다한 집단들이 요구하는 평화의 조건을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파함이 파악한 그런 연합이 평화의 조건을 만족시킬 수 없는 이유는 첫째로, 다양한 정치체제 때문이다. 군주국가들의 내부 상황들은 현대 공화국가들과 민주국가들의 내부 상황들과 결코 조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계급투쟁 때문이다. 유산자와 무산자들 사이에는 화해될 수 없는 간격이 있고, 그래서 모든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둘 사이의 투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어서 평화회담을 통한 국제 연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파함이 보기에 국제연합은 평화회담이 아닌 한 독재자에 의한 무력 정복에 의해 가능할 것이었다. 그 독재자는 왕들을 정복하고 왕들의 연합체의 의장이 될 것이다. 이때에, 그 여인(로마 카톨릭주의)은 붉은 짐승 위에 앉아서 그 힘을 시위할 것이다. 교황은 단지 아나키의 돌진을 멈출 만큼만 사람들의 의식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카톨릭주의의 연합군은 법과 질서의 회복을 위해 전쟁터로 소집될 것이다. 이로 인해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또는 다른 말로, 카톨릭주의가 아나키의 등에 올라 힘으로 제압할 것이다. 그 후 로마의 교황은 다니엘의 열 뿔 혹은 열 왕의 왕국을 다스리게 하기 위해 열 명의 왕을 임명할 것이다. 그리고 열 뿔들 중 작은 뿔이 다스리게 될 것이다. 그 작은 뿔은 독재자로서 그 연합을 통치할 것이다.
파함은 그 독재자의 통치에 의한 국제연합은 사회주의, 보다 좁혀서 사회적 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할 것이라고 보았다. “사회적 민주주의”(Sozialdemokrat)는 이미 19세기 후반에 등장하기 시작했었다. 유럽의 일부 사회주의자들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엽에 이르렀어도, 정통 마르크주의가 자본주의를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의 발전을 경제적으로만 한정지었고, 정치적 활동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자본주의가 태생적 모순으로 인해 스스로 작동을 멈추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렸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때 심지어 국가주의 우익에서 조차 만연한 개인주의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수정을 기도하며 인간의 적극적인 행위에 의해 자본주의를 붕괴시키고 사회주의를 도래시키려했다. 그 수정주의자들은 두 흐름으로 나뉘었다. 한 흐름은 생디칼리즘의 이론가 조루즈 소렐(Georges Sorel)에 의해 주창되었으며 그 능동적 수단으로서 폭력적 혁명을 선호했다. 반면에 다른 흐름은 에듀아르트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그 능동적 수단으로서 헌법 안에서의 선거 등을 통한 민주적 개혁을 선호했다. 베른슈타인의 방식은 사회 민주주의를 낳았다. 베른슈타인은 1899년에『사회주의를 위한 선행조건들과 사회적 민주주주의의 과업』(Die Voraussetzungen des Sozialismus und die Aufgaben der Sozialdemokratie)을 출판했다. 신문『사회적 민주주의』(Der Sozialdemokrat)는 1879년에 창간되어 1890까지 유지되었는데, 베른슈타인은 1881년에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 물질주의와 계급투쟁을 비판하고, 정치와 계급 간 협력(cross-class cooperation)에 바탕을 둔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자본주의가 그저 자본의 극단적 집중과 사회적 비참함에만 이르지는 않을 것이며, 보다 복합적이고 융통성 있게 되어가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붕괴하기를 기다리거나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붕괴시키기를 꾀하기 보다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개혁하려 했다. 그는 부를 감소시키지 않고 도리어 부를 증가시키는 사회주의를 꿈꾸었고, 그 방식은 개혁을 선택했다. 베른슈타인에게, 사회적 민주주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부르주아 사회로부터 분리된 어떤 사회주의를 창조해내려 하지 않았으며, 대신 서구 인도주의에 기반을 둔 어떤 유산자와 무산자의 공동의 발전을 창조해 내려했다. 파함은 앞으로 형성될 국제 연합의 의장이며 독재자는 사회주의 체제를 개시할 것인데 그것도 “완벽하게 확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이 가톨릭의 힘을 전장으로 집결시킬 때, 독재자가 될 사람은 “사회적 민주주의”(Socialistic Democracy)에 관한 책을 발간할 것이다. 민중은 한 사람처럼 일어나서 가톨릭 질서를 전복시키고 열 발가락을 갖는 “사회적 민주주의”(social democracy)를 세울 것이다. 국제연합은 열 사람으로 구성된 위원회에 의해 통치되는 붉은 공화국들, 또는 사회 민주주의 국가들일 것이다. 이 열 개의 나라의 조직은 이 세대의 마지막 칠 년의 시초에 결성될 것이다. 이 시기의 시작에,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아나키는 세계 경제의 사분의 삼을 쥐고 팔레스타인에 스스로를 다시 세우고,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을 모든 미래 활동의 중심으로 삼을 것이다. 이 국제연합의 수립은 유대인들에게 그들 특유의 나라를 수여할 것이다. 한 언약이 그들과 맺어질 것이며, 다니엘의 “일곱 째 주”가 시작될 것이다(단 9:24). 그 투쟁 가운데에서 세계 독재자가 부상할 것이며, “세계 사상의 독재자”는 사회적 민주주의를 꽃피울 것이다. 그 독재자는 “유토피아적 사회개혁론자들의 꿈을 실제로 실현할” 것이다. 그는 바빌론을 재건하려고 할 것이고, 그것을 그의 정권의 수도로 삼고 그 백성들에게 전리품들을 나누어줄 것이다. 곳곳마다 공공 곡물창고가 있어서 음식이 부족한 사람이 없고, 평화, 풍요, 그리고 행복이 그의 영토 전체를 지배할 것이다. 그의 독재 정부는 개인적 토지 소유나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 “열 발가락” 사회 민주주의 국가의 설립을 가르칠 그 사람은 세계 사상의 독점자가 될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을 그의 거주지로 선택할 것이다. 지난 시대에서 아무도 그런 존경과 숭배를 받아보지 못했으며, 그는 그것을 즐길 것이다. 그에게 역사상 가장 사심 없는 박애와 인류애의 극치라는 찬사가 쏟아질 것이다. 파함은 사회주의의 지상적 최상의 형태를 사회 민주주의라고 보았을 것이며, 그것이 역사의 최종 단계에서 어떤 독재자에 의해 꽃피울 것이라고 본 것이다.
파함의 사회주의적 독재자의 최종적인 출현이라는 견해는 마르크스의 과정적인 견해와는 달랐다. 마르크스는 한 사람의 독재를 말하지 않고 프롤레타리아라는 집단의 독재를 말했으며,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를 최종적인 것이 아닌 과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계급투쟁은 필수적으로 프롤레타리아의 독재에 이를 것이며, 그 독재 자체는 모든 계급의 철폐와 계급이 없는 사회에 이르기까지의 과도기에 발생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노동자들의 해방을 성취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들은 부르주아들을 타도해야만 하며, 정치적 힘을 무력으로 획득해야하며, 그들의 혁명적 독재를 세워야한다고 말했다. 역사는 마르크스의 견해보다는 파함의 견해에 가깝게 흘렀다. 예를 들면, 소비에트연방에서는 스탈린이, 중국에서는 마오가, 북한에서는 김일성 일가가, 쿠바에서 카스토르가 사회/공산주의적인 개인 독재자들이 되었다.
파함의 어떤 종말적 독재자에 의한 사회 민주주의에 대한 최대의 긍정과 찬사는 곧바로 극적인 역설, 반전으로 끝나는데, 그는 그 사회 민주주의를 꽃 피울 독재자가 적그리스도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종교적 운동들이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현대 노동조합과 지부들이 적그리스도라고 큰 소리로 비난하면서 주장하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파함은 사회주의적 국제 연합을 통치할 독재자는 “그 체제(사회 민주주의)가 거의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들을 따라 형성된 것 같아서, 사람들의 우상”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 독재자는 자기가 쓸 “사회적 민주주의”(Socialistic Democracy)에 관한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모든 법과 전 세계적 형제애의 기초, 새로운 사회 질서의 개시로 삼을 것이다. 그런데 파함에 따르면, 마지막 칠년의 중반에, 국제연맹의 완성 후 삼년 반이 지난 후, 그리고 아마겟돈 전쟁 삼년 반 전에, 이 독재자는 한 암살자의 손에 죽음에 이르는 상처를 입을 것이다. 전 세계가 그를 애도하는 중에 그의 사체 속으로 가룟 유다의 영, 적그리스도의 영이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는 되살아나 세계가 그 이전에 알았던 것보다 가장 강력한 독재정권을 세울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가 그들의 메시아에 대한 그들의 모든 성경을 성취한다고 믿고, 가장 열광적이고, 애국적인 열정으로 그를 인정할 것이다. 교황은 모든 형식적인 가톨릭적이고, 개혁주의적 기독교 시대를 대표하는 우두머리로서 그를 그리스도라고 선포할 것이며, 그는 그를 높이기 위해 계시록의 거짓 선지자의 역할을 떠맡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예배를 그치고 거짓 선지자인 교황에 동의하여 이 사람의 동상을 예루살렘에 재건된 성전 안의 지성소에 세울 것이다. 그 짐승 또는 동상에 절하지 않거나 이마나 오른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않으면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한다는 법령이 선포될 것이다. 또한 그 적그리스도에게 여러 가지 이적을 행할 능력이 주어질 것이며, 그는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고, 많은 이적을 행하여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다(계 13 등). 그 독재자는 마침내 (아마도 영혼의 중생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들을 격하시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유사한 자기의 박애와 인류애적인 물질적 나눔에 기초한 사회 민주적 가르침들을 세상에 모든 법과 새로운 사회 질서의 기초로 내놓음으로서 적그리스도가 될 것이다. 파함은 그가 보기에 사회주의의 최상의 형태인 사회적 민주주의가 표면상으로는 그리스도적인 것이지만, 사실은 적그리스도적인 것이라고 파악했던 것이다. 그가 사회 민주주의를 적그리스도적인 것으로 파악했던 이유는 아마도 그가 사회 민주주의를 포함하는 사회주의의 기반에 영혼 구원, 영혼의 중생이 없다고 판단했으며, 사회 민주주의가 그리스도를 대신하려 하려할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파함이 사회주의의 절정을 사회 민주주의로 파악했으나, 그 사회 민주주의를 실현시킨다는 독재자가 적그리스도가 될 것이라고 본 것은 사회주의의 종말적인 실패를 말한 것이다. 파함은 사회주의가 역사 속에서 자본주의를 전복시키고 세계를 제패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그 사회주의가 최종적으로는 실패할 것이라고 보았다. 파함은 사회 민주주의를 꽃 피울 것 같은 적그리스도가 끝내 강림하실 그리스도에 의해 패배를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함은 북쪽의 왕인 러시아의 독재자 그리고 열 뿔 민주주의의 전제적인 독재자로서 예루살렘의 적그리스도, 이 두 독재자들이 종말적 세계를 장악할 것이라고 보았다(단 11:40). “북쪽의 왕”은 남쪽의 왕을 압박할 것이고, 남쪽의 왕은 그 러시아의 독재자가 그의 모든 군대를 모아 남쪽으로 요단강 동부를 이집트로 몰아붙일 때까지 북쪽 왕을 후퇴시킬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그를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것에 대해 동쪽과 북쪽으로부터 이런 형세들을 들어서 파악하고는 또한 에디오피아인들의 큰 군대를 모을 것이며, 무력으로 해안까지 밀고 올라가(겔 39) 예루살렘을 포위할 것이다. 그 도시의 삼분의 일이 함락되고 그 집들이 강탈당하고 그 여인들이 폭행당할 것이다. 그런데 이 때, 하늘의 구름 속에서 인자가 오시는 표징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 두 독재자들은 즉시 휴전에 사인하고, 그들의 모든 군대를 에스드라엘론 골짜기에 집결시킬 것이며, 그곳에서 주님의 강림을 보게 될 것이며, 그들의 군대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격파될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는 한 전투로 모든 적군을 처리하시고 그분의 왕국의 설립을 위한 길을 닦으실 것이며, 그 천년 왕국에서 공의와 심판이 세우질 것이다. 파함은 사회 민주주의는 그리스도를 모방한 가짜 짝퉁 그리스도, 적그리스도적인 것이고, 진짜 그리스도가 왔을 때 사라질 것이라고 보았다.
IV. 나가는 말
파함은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주의 밖에서 사회주의를 이해하고 비판했다. 파함은 사회주의가 인류의 보편적 형제애에 기초하며, 그 형제애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능력과 복음을 그 기초로 삼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현시키려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파함의 이런 사회주의 이해는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을 기반으로 삼는 인간일 뿐인 예수의 모범을 따라가려는 기독교 사회주의와 관련된다. 파함은 사회주의를 실제적/실용적 기독교, 실제적인 필요를 채워주실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고대하는 몸부림으로 보았다. 파함은 사회주의의 기본 기법들 중의 하나인 “모든 산업의 국유화”를 언급했다. 파함에게 사회주의는 반애국주의 적이었으며, 반애국주의를 넘어 “모든 국경선의 소멸”을 추구한다고 보았다. 파함에게 전인류의 형제애를 찾는 사회주의는 반권위주의적이고 아나키즘 적이었다. 파함의 눈에 비친 사회주의의 사회화의 주요 수단은 파업과 무력 폭동으로 인한 혁명이었다. 파함이 파악한 사회주의 혁명의 목적은 가정 지키기, 노동 계급의 자유, 노동 계급의 정권쟁취, 나아가 노동 계급의 세계 통치였다. 파함은 “만족하지 못하는 노동자 계급, 사회주의자들, 세계산업노동자조합”을 포함하는 새 질서(the New order)에 볼쉐비키주의(Bolhseviks)를 포함시켰다. 파함은 볼쉐비키주의가 미국에도 상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함은 볼쉐비키의 역사적 역할을 실패할 윌슨의 국제연합을 대체할 사회주의적 국제 연합을 위한 길을 예비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파함은 사회주의자들이 혁명을 통해 미국의 자본주의적 정권을 전복시키고 그것을 탈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주의를 이해해 준 것 같지만, 사실 파함은 사회주의자가 아니었다. 파함은 사회주의를 졸업한, 사회주의 안에 있는 내부인이 아니었고, 바깥에 있던 외부인, 그리스도인이었다. 파함이 사회주의의 일면을 호의적으로 여겼으면서도, 자신을 사회주의 안에 두지 않은 이유들 중에서 가장 큰 것은 그가 유물론적 사회주의에는 개인의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의 참된 회심과 영적 중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파함은 평등한 민중을 위한다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한 사람을 위한 전체주의적 독재에 이르게 될 것을 우려스런 눈으로 미리 보았다. 파함에게 개인의 영혼의 중생이 결여된 전체주의적인 사회/공산주의의 독재는 결국 적그리스도로 귀결될 것이었다. 파함은 그 독재자의 통치에 의한 국제연합은 사회주의, 보다 좁혀서 토지 공유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파함의 어떤 종말적 독재자에 의한 사회 민주주의에 대한 최대의 긍정과 찬사는 곧바로 극적인 역설, 반전으로 끝나는데, 그는 그 사회 민주주의를 꽃 피울 독재자가 적그리스도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파함이 사회주의의 절정을 사회 민주주의로 파악했으나, 그 사회 민주주의를 실현시킨다는 독재자가 적그리스도가 될 것이라고 본 것은 사회주의의 종말적인 실패, 인간의 내재적 능력에 의한 모든 시도의 실패를 말한 것이다.
종합해 보자면, 파함은 유물론에 입각한 사회/공산주의의 평등/인류 형제애 추구를 개인의 자유에 의한 신앙의 무시에 기반한 것으로 이해했으며, 그러나 중생한 자유스런 개인의 존재 없이는 인류의 형제애도 진정으로 성립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함에게 자유스런 개인과 형제애로 묶여진 집단은 어느 하나가 상실되지 않고 함께 나란히 세워져야할 것이었다. 형제애는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대체할 수 없다. 개인의 신앙의 자유는 반드시 형제애를 선행해야하며, 개인의 신앙의 자유는 형제애로 나아가야 한다. 둘의 순서가 뒤바뀌지 말아야 하며, 둘 중 어느 하나가 제거되지도 말아야 한다. 파함에게 사회/공산주의는 자본주의적 공화국과 교회가 개인의 신앙의 자유와 형제애를 모두 상실해가고 있는 것에 대한 반발로 발생했지만, 사회주의도 물질적 분배에 초점을 맞춘 형제애만을 붙들고 중생을 일으키는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무시해버림으로써 결국 적그리스도 체제가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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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Charles F. Parham and Socialism
Lee, Chang-Soung
In the time of Parham, Socialism began to manifest its power composing political parties. How did he understand and respond to Socialism? Parham understanded and criticized Socialism as a christian beyond anti-capitalistic views and class conflict. He understanded the pursuit of Socialism/communism upon materialism as what was built on the neglect or exclusion of the faith produced by individual freedom, and he thought that without a regenerated and free individual, the brotherhood of humanity could not be truly possible. For Parham, a free individual and a group tied by the brotherhood should go side by side without the elimination of one of them. The freedom of individual faith could not be replaced by the brotherhood. The freedom of individual faith should precede the brotherhood, the freedom of individual should proceed to the brotherhood. The order between the two should not be reversed, and one of them should not be excluded. For Parham, although Socialism occurred as a reaction to the loss of the faith of free individual and the brotherhood of the capitalistic republic and church, it grasped only the brotherhood concentrating on materialistic distribution and eliminating the freedom of individual faith, and would eventually become the anti Christ system.
Key words: Charles F. Parham, Pentecostalism, Socialism, the Brotherhood of mankind, Practical Christianity, Jesus the Carpenter, the neglect or exclusion of regeneration, Materialism, Social Democracy, the Dictator, Anti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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