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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역사

자본주의 안에서 사회주의 밖에서 찰스 F. 파함의 길: 오순절적 순복음 일치

한오신 2020. 12. 21. 21:36

파함의 길 자본주의 안에서 사회주의 밖에서(이창승).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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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안에서 사회주의 밖에서 찰스 F. 파함의 길:

오순절적 순복음 일치

 

이창승

2019.6.1

 

 

 

 

I. 들어가는 말

 

    두 가지 선행 연구들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파함은 신앙의 자유에서 신앙을 잃어버리고 자유만을 추구하며 부를 지나치게 편중시키고 금권정치를 하고, 상업적 제국주의를 추구하고, 돈을 위해 인류애를 파괴하는 애국주의적 자본주의 국가와 영혼의 중생 능력을 상실하고 돈만 사랑하는 자본주의적 교회를 비판했다. 그리고 그런 변질된 자본주의와 전 인류의 형제애를 바탕으로 물질의 평등한 분배와 국제주의를 추구하는 사회주의 사이의 투쟁 속에서, 사회주의가 최종 승리할 것 같지만, 영혼의 중생을 도외시하는 사회주의는 결국 독재적인 적그리스도로 변질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그런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살면서 사회주의를 졸업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길을 추구했던 것일까?

    역사학자 고프는 파함이 비정치적 입장(apolitical stand)을 취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파함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나드는 견해는 사회주의의 메시지를 선호하면서도, 동시에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자본주의의 메시지에 영향을 받고 있던 중서부 청중들에게 잘 먹혀들어갔다고 보았다. 그러나 파함은 비정치적이었다기 보다는, 정치인이 아닌 종교지도자로서 사람들에게 정치적 변혁을 주문하며 그 자신이 그 변혁을 추구하면서도, 보다 더 종교적 변혁에 집중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파함은 자본주의 체제를 긍정하면서도 그 부정적 산물들을 비판하며 교정을 주문했으며, 자본주의의 부정적 산물 더미에서 반동으로 생성된 사회주의도 그 단점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는 사회주의 바깥에서 그는 변질되고 있는 개인의 신앙의 자유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갖춘 형제애를 추구하는 미합중국 공화정을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로잡아 추구해 나가려 했다. 본 논문은 자본주의 안에 머물면서 사회주의의 도전에 응하려 개인의 신앙의 자유에 의한 중생에 기반을 둔 형제애에 따른 나눔 실천을 추구한 파함의 길인 오순절적 순복음 일치를 살펴볼 것이다.

 

 

II. 파함의 사라지지 않을 기독교

 

    파함은 캔사스 피츠버그에 있는 보스턴대학의 골드스타인 씨(Mr. Goldstein)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그가 언급한 사람은 데이비드 골드슈타인(David Goldstein, 1870-1958)이다. 골드슈타인은 유대교와 사회주의로부터 가톨릭으로 전향하여 양차 대전 사이 시대에 선구적 평신도 가톨릭 거리 전도자로 활동했다. 그는 1903년에사회주의: 고아들의 나라(Socialism: the nation of fatherless children)을 저술했다. 또한 1924년에 자기의 거리전도 경험을 정리한그리스도를 위한 운동(Campaigning for Christ)를 저술하기도 했다. 그는 자기가 유물주의적 사회주의란 사실 기독교와 바른 이성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가톨릭교회로 전향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사회주의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가르침들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알았다. 골드슈타인은 가톨릭교회가 밀려드는 사회주의의 홍수를 대항하는 방파제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에 따르면, 거리에서는 무신론과 사회주의 목소리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를 방어하고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그의 눈에 사회주의 운동은 오직 그것만이 자유, 평등,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위한 형제애(fraternity for all people)의 삶을 열어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골드슈타인은 가족을 위한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사회주의를 거부했다. 그는 마르크스적 사회주의는 개인을 경제적 상황들의 무책임한 희생자로 만들기 위해 자유의지를 부정한다고 보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파함은 골드스타인의 우려와는 달리 설령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국가들과 자본주의적 교회를 파괴시킨다 해도 기독교는 존속할 것이라고 보았다. 파함에 따르면, 골드스타인은 한 강의에서 만약 사회주의가 이긴다면, 교회들은 파괴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골드슈타인이 만약 사회주의가 이긴다면, 교회들은 파괴들은 파괴될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은, 그가 한 편으로는 교회에게 사회주의와 강력하게 싸울 것을 요구하고, 다른 한 편으로, 교회가 제대로 싸우지 않아 교회를 타도대상으로 삼는 사회주의가 정말로 이긴다면, 교회가 실제로 파괴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한 것일 것이다. 파함은 만약 사회주의가 이긴다면이라는 골드슈타인의 첫 번째 가정의 조건문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지 않고, 두 번째 가정의 우려가 서린 결과문에 이의를 제기했다. 파함은 골드슈타인의 우려에 반대하며, “하늘과 땅이 사라진다 해도 기독교는 영원히 서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파함은 선행연구들에서 살펴본 것처럼, 자본주의적 교회가 파괴될 것이라 내다보았다. 그러나 파함은 그런 변질된 교회가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파괴되어 사라진다 해도, 진정한 기독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III. 파함의 산 기독교(A Living Christianity)

 

    그렇다면, 파함이 기독교를 파괴하려는 사회주의가 승리할지라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기독교는 어떤 기독교였을까? 먼저 파함은 오순절운동을 시작시키기 이전에 성결운동가로서 활동했을 때 살아있는 기독교”(a living Christianity)를 추구했다. 파함은 벧엘 치유의 집을 살아있는 기독교”(a Living Christianity), 루트의 말에 따르면, “모범사례로 만들기를 꿈꾸었다. 이런 주장은 그가 19001월에 펴낸사도신앙지에서 밝힌 것처럼 그 선교회의 사역의 일반적 주제”(general theme)“A living Christianity”로 삼은 것에 의해 뒷받침 된다. 일반적 주제는 파함이 벧엘 치유의 집을 통해 펼치고 싶었던 사역 전체를 요약해주는 목표라고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파함이 당시에 생각했던 참된 기독교의 모습이라고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기독교앞에 형용사 살아있는을 첨부한 것은 그의 기성 기독교에 대한 진단에 따라 내려진 판단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가 판단하기에 기존의 기독교는 죽은것이었고, 그래서 그는 자기의 사역의 목표를 그 죽은 기독교를 살아있는기독교로 바꾸는 것으로 잡았을 것이다. 선행연구에서 수행된 파함의 자본주의적 기독교에 대한 고찰은 당시 미국 기독교가 영혼 구원의 힘을 잃어버리고, 더하여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와 사역을 상실해 버렸다는 것을 드러내었다. 아마도 파함은 그런 기독교를 죽은기독교로 이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파함은 그런 기독교를 대체할 진정한 살아있는기독교를 꿈꾸었을 것이다.

    그가 벧엘 치유의 집을 통해 이루고자 꿈꾸었던 살아있는 기독교는 어떤 것이었는가? 그의 살아있는 기독교의 대략적인 내용은 그가 사도신앙에 게시한 벧엘 치유의 집의 가르침들”(Teachings)의 요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가르침들은 첫째, 믿음에 의한 구원(salvation by faith), 둘째, 믿음에 의한 치유(healing by faith), 셋째, 안수와 기도(laying on of hands and prayer), 넷째, 믿음에 의한 성화(sanctification by faith), 넷째, 그리스도의 재림(전천년주의), 다섯째, 신부 인침이며 은사들의 부여인 성령과 불 침례(the baptism of the Holy Ghost and Fire, which seals the Bride and bestows the gifts)이다. 파함의 부인 사라 파함이 밝힌 벧엘 치유의 집의 설립 목적은 치유를 바라는 사람들을 위한 가정과 같은 편안함을 제공하는 것이며, 또한 그들의 육적 필요들을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영적 필요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었다. 병자들뿐만 아니라 고아들과 실직자들을 위한 사역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고프와 루트에 따르면 파함은 한 편으로 신유사역을 수행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 고아원, 취업지원소, 그 시의 창녀들의 탈출을 돕기 위한 정부적 노력의 일환인 여성 갱생원 등과 같은 토페카의 주변인들에 대한 구제 노력을 함께 수행했다. 파함은 19001월에 펴낸 사도신앙지에 , 당신의 곳간들을 헐고 더 크게 짓는가? 당신은 가난한 자들의 품, 과부들의 집, 고아들의 입인 곳간을 충분히 갖고 있다는 암브로스(St. Ambrose)의 글을 실었다. 파함이 벧엘 치유의 집에서 펼친 가난한 자들에 대한 사역들의 한 예는 토페카 시민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 300명이상을 새해 저녁 식사에서 초청해 먹인 것이었다. 성결운동가로서 파함은 살아 있는 기독교를 추구했으며, 산 기독교는 영혼의 구원, 즉 중생, 그리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과 구체적인 물질적 공급 사역을 포함했다.

 

 

IV. 파함의 실제적인 기독교(Practical Christianity)

 

    파함이 오순절운동을 출발시키고, 그 지도자로 활약하던 시기에 제시했던 진정한 기독교는 실제적인 기독교였다. 파함은 노동자들이 교회를 비판하고 공격하고 있지만, 그들은 타락한 기독교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고, 사실 그들은 실제적인 기독교”(practical Christianity)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파함은 몇 해 전에 런던에서 개최되었던 한 노동자 대회에서 교회가 언급되자 그 자리에 모였던 노동자들이 야유를 보냈다고 전한다. 파함은 이어 그들이 어떤 사람이 목수인 나사렛 예수에 대해 말하자 그에게 찬사를 보내며 박수를 쳤다고 전한다. 그리고 파함은 그들이 그런 태도를 취한 이유를 추정하면서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실제적인 기독교를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파함이 실제적인 기독교를 맨 처음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었다. 1845년에 존 보들러(John Bowdler Jr.)는 기독교의 십자가 교리의 실제적 힘(practical power)에 대해 말했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확신의 근거는 사람들의 마음과 삶에 미치는 기독교의 십자가 교리의 실제적 힘이라고 보았다. , 보들러는 복음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실제적인 결과를 산출해내는 힘에 대해 말했다. 1849년에 어떤 미명의 영국인은 실제적 기독교”(Practical Christianity)라는 글에서 정통 교리는 선행과 결합해야만 한다고 썼다. 그는 교리(doctrine)는 지적인 그리고 물질적인 외적 세계와의 관계성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통교리는 선행(beneficence)에 의해 아름답게 꾸며지고 강화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에게 선행은 참으로 단순하고 무식한 사람들에게 이르기까지 권위의 가장 고도의 가장 지적인 표명이다.” 그의 판단에 따르면 영국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의 조언자와 조력자로서 그 직무를, 가장 열성적이고 지적으로 실행된 직무를 경시함으로써 그 도덕적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한 그리고 그 지위를 강화하기 위한 큰 영향력을 상실해 왔다.” 그런데 그에 따르면, “새로운 정신이 깨어나고 있다.” 그는 성 맛디아, 베트날 그린(Bethnal Green) 목사, “가난한 사람의 소풍”(The Poor Man’s Picnic), 조셉 브라운(Joseph Brown) 목사 등에 의한 새롭고 바람직한 흐름에 대해 말했다. 그에게 그들의 적극적인 선행(active beneficence)은 진리에 적대적일 수 없거니와 하나님의 뜻에 적합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 미명의 영국인에게 실제적 기독교는 교리에 가난한 자들에 대한 선행을 더한 것이었다.

    1854년에 미국인 아딘은 실제적 기독교 사회주의”(Practical Christian Socialism)를 주장했다. 그에게 그것은 기독교적이면서도 사회주의적이고, 노동이 존중되고, 여성들은 완전히 평등을 누리며, 인종과 민족 차별을 금지하고, 전쟁 등 세속 사회의 정책들은 거부하며, 그리고 이론과 공상(speculative)에 빠지지 않는 실제적인(practical) 이었다. 그에게 실제적이란 말은 그리스도께서 정교하고 사색적인 글들을 친히 남기지 않고, 그에 실제 행동과 말에 관한 간략한 기록들만 존재한다는 것에 그 근거를 둔 것이다. 그는 종교적 교육은 이론적인 면과 실제적인 면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보고, 실제적인 것은 경건(piety), 인류애(philanthropy), 도덕(morality)로 구성된다고 말했다.실제적이란 기독교의 필수적 원리들은 모든 외적(external) 형식들, 격식들, 교회주의(ecclesiasticsims), 현학주의(scholasticisms), 분파주의(sectarianisms), 지역주의(localisms), 현세주의를 배격하는 내적인 것(interior)이며, 인간관계들과 행동에 보편적으로 적용하며, 정서에 있어서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동기에 있어서 하나님의 정결하심을, 이해에 있어서 하나님의 지혜를, 행동에 있어서 하나님의 청렴하심을,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질서를 모든 개인과 사회에 명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다. 1866년에 영국인 글로아그는 실제적 기독교를 믿어야할 교리적 진리 체계뿐만 아니라, 또한 실천되어야 할 복음적 의무들의 체계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에게 기독교는 마음의 종교일 뿐만 아니라 행위의 종교다. 실천적 행위가 없는 믿음은 진정한 유익을 주지 못한다.

    캔사스에서 일치(Unity)를 공동으로 설립한 필모어(Charles Fillmore, 1854-1948)에게 실제적 기독교는 사람의 일상생활에 실제적으로 적용되는 예수의 가르침들이다. 실제적 기독교는 인간으로부터 기원된 멋대로의 이론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그는 신유에 대해 글을 쓰기도 했다. 그에게 실제적 기독교”(Practical Christianity)는 기독교가 사람의 모든 필요(every need of man)에서 증명될 수 있기 때문에 실제적이다. 앨버트 심슨은 1901년에 야고보서를 중심으로 Practical Christianity라는 글을 썼다. 그 책의 일장은 삶의 실제적 훈련, 2장은 실제적 신앙, 3장은 실제적 순종, 4장은 실제적 사랑, 5장은 혀의 실제적 사용, 6장은 실제적 성화, 7장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실제적 소망, 8장은 실제적 기도로 채워졌다. 그는 1장에서 야고보서를 바울과 요한과 비교하며 그 특징들을 규정했다. 그에 따르면, 바울서신과 요한서신은 기독교적 삶의 내적, 실험적, 그리고 영적 측면을 대표한다. 반면에 야고보서는 실제적/실천적인 측면을 대표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런 다양한 조각들을 함께 섞어 그분의 모자이크의 온전한 전체를 만드신다. 바울은 신앙의 사도요, 요한은 사랑의 사도지만, 야고보는 선행의 사도, 실제적 삶의 사도다. 종합해보면, 심슨은 Practical Christianity를 삶속에서 외적이고, 실제적이고, 활동적/실천적으로 선하게 실행되는 기독교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그렇다면 파함이 생각했던 실제적 기독교는 어떤 것이었는가? 파함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론에 그치지 않는, 실제적인 필요들을 채워주시는 예수를 직접 만나게 해주는 실제적인 기독교(practical Christianity)를 구하고 있다. 그의 눈에 사회주의나 노동운동은 세상의 울부짖음”(the heart-cry)으로 보였으며, 그 울부짖음은 곧 예수를 만나려는몸부림이다(The heart-cry of the world is to see Jesus). 그는 한 편으로 교회들이 증가하는 이유를 조직들과 신조들을 통해 실제를 만나려고 몸부림치면서 예수를 찾는 울부짖음에서 찾는다. 또한 그는 다른 한 편으로 노동 지부들과, 조합들과 조직들이 증가하는 이유를 의로움 안에서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권능을 찾고, 보편적 형제애를 세우려는 인류의 부르짖음에서 찾는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목수인 나사렛 예수를 만나고 싶어 한다. , 그들은 실제적인 기독교”(practical Christianity)를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파함에게 기독교는 실제적이며, 그 실제성은 부분적으로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현재의 삶에 신유를 베푸시고 계시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이다. 그에게 하나님은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현재의 삶에 살아계시는 분이시다. 그는 온갖 질병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된 자신의 신유 체험을 근거로 하나님의 실제적 현존성을 주장한다. 그는 병에 걸려 큰 슬픔에 처했을 때, 성경을 통독하며 하나님께 그분이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들을 행하시도록 요청했다. 그는 만약 그 약속이 이행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성경을 불태워 버리고 무신론을 택할 것이라고 결심했다. 그런데 그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병을 고쳐주셨다. 그는 그 경험으로부터 하나님은 이 현재의 삶에 살아계시는 실재이시다라고 주장한다.

 

그분은 저를 구원하셨고, 저의 모든 관절들이 상하여 뼈들이 부딪혔을 때, 시력이 거의 상실되었을 때, 그리고 모든 기관이 병에 걸렸을 때 저를 고치셨습니다. 그분은 저를 성령으로 침례를 주셔서 여러 언어들을 말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친구들이여, 하나님은 이 현재의 삶에 살아계시는 실재이십니다(God is a reality in this present life).

 

    파함에게 기독교가 실제적인 이유는 또한 2000년 전에 병을 치유해 주셨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그분을 만나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파함은 자신이 지금도 삶 속에서 치료하고 계시는 나사렛 예수를 실제로 만났다고 외친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고통 받고 있는 인간의 흐름과 함께 시간의 골짜기를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그때 어떤 큰 손이 강물 안에 내려져 그를 고통에서부터 들어 올려 그의 발을 견고한 바위 위에 놓았을 때 죄와 병으로부터 자유가 그의 것이 되었다. 그는 그분, 모든 질병의 치료자를 만난 것이다. 그 치료자는 병, 불행, 비통함, 고통, 이 모든 것들을 없애버리시며, 생명, 자유, 해방, 구원 그리고 모든 영혼의 죄뿐만 아니라 육체적 병으로부터도 깨끗함을 주시는 분이시다. 이것은 이론(theory)이 아니며, 신학(theology)도 아닌 실재/사실(reality)이다. 그리스도는 오늘도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며, 무효화된 죄의 힘을 깨뜨릴 수 있게 하시며, 욕망, 정욕, 습관 그리고 번뇌의 지배로부터 구해내시고 계시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어떤 역사적 인물로 생각해왔거나, 추상적으로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시던 시대에 살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구체적으로 현재에도 이 땅에 실재하시는 분이다. 파함은 나사렛 예수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으며 그분을 만나라고 초청한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 속에 실재하는 그분을 만나셨습니까?(have you found Him, as a reality in your life?) 그분은 오늘날에도 선한 일을 행하시며, 병자들을 치료하고 계시며, 우리 가운데서 그리고 병상 곁에서 걷고 계십니다. 그분은 오늘날에 이 땅에서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만져주시고 계십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파함에게 기독교가 실제적일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인간의 삶에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결과들을 산출해 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적인 결과들에는 영적인 면, 심리적인 면, 그리고 육적인 면, 요즈음 용어로 말한다면, 전인적인 면을 다 포함한다. 파함에게 기독교는 인간의 영적인 필요는 물론이고 육적인 필요도 채워줄 수 있기 때문에 실제적이다. 그 영적 필요는 영혼의 중생이며, 육적 필요는 몸의 치유, 심리적 고통으로부터 자유케 됨 등이다. 파함은 타락한 이론적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영혼의 필요는 물론이고, 육적인 필요도 실제로 채워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실제적 기독교를 사람들에게 제시했다. 그는 교인들 가운데서도 예수를 만나고 싶은 울부짖음이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그들은 조직체들과 신조들을 통해 실재(reality)에 도달하려 헛되게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파함은 또한 노동지부들, 노동동맹들, 그리고 노동조합들 등등 사회주의의 노력은 복음을 인간적 측면에서 실현시키려는 몸부림이지만, 실제적인 회심과 영적 중생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인간의 개선을 위한 개혁도 지속적인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파함은 한편으로는 설교가들과 교인들에게 패션쇼를 그만 두고 옛 종교의 능력과 은혜에로 내려오라고 부탁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지부 사람들과 개혁가들에게 옛 회심의 능력 안에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라고 부탁했다.

 

 

V. 파함의 오순절적 순복음 일치(Pentecostal Full Gospel Unity)

 

    파함에게 방언을 동반하는 오순절적 순복음(Full Gospel)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투쟁 속에서, 그리고 최종적인 사회주의의 승리로 인한 교회들의 파괴와 그 사회주의가 독재 적그리스도로 귀결되는 상황 속에서도 자기와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이상적인 길이었다. 파함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투쟁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순복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함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재림이 임박한 시기에 사람들이 편협한 신조들을 던져버리고, 교파주의를 잊어버리고, 순복음의 모든 은혜들과 은사들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신다. 뒤이어 파함은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순복음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는 이유를 제시했다. 그 이유는 순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길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파함은 순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계급투쟁으로 인한 다가오는 국가들의 전복과 혼돈과 흑암 속에서 길을 잃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하며, 순복음을 받아들일 것을 종용했다. 파함은 오순절적 순복음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투쟁으로 타락한 교회가 무너진 후에도 존재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오순절적 순복음의 이 방언 운동은 현대 바벨탑들(현대 교회들)이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아나키적 투쟁으로 무너질 때 시온산 위에 영원히 설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파함에게 오순절적 순복음은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추천하는 길이며, 성도들이 계급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걸어가야 할 하나님의 길이었다.

    파함의 오순절적 순복음은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비조직과 조직, 무질서(아나키)와 독재라는 양 극단들을 배제하고 일치”(unity)라는 길을 채택했다. 그의 오순절적 순복음은 우선적으로 집단적이기 보다는 개인적인(personal) 경험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파함의 오순절적 순복음은 개인적인 경험을 요구했다. 파함에게 오순절적 순복음의 첫 복음인 죄로부터의 구원은 타인이나 집단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구원에 대한 경험적인 인식”(an experimental knowledge of salvation)을 가지고, 개개인이 경험적 구원’(experimental salvation)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파함의 방언을 성경적 증거로 동반하는 성령침례를 포함하며, 성령침례는 개인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파함은 오순절 운동을 일으키기 직전에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이 연구를 진행하면서 깊은 종교적 사상을 갖고 있는 단체들(무디나 심슨 등의)을 방문했다. 그 단체들은 성령의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런데 파함은 그 단체들 모두는 사도행전의 그 사건과 일치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주의 깊은 연구 후 많은 사람들이 사도행전 2장이 보고하는 대로 120문도가 오순절 날 받았던 개인적인 오순절”(personal Pentecost)의 능력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깊은 확신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1901년을 맞이하는 송구영신 집회에서 아그네스 오즈만 양(Miss Agnes N. Ozman)이 성경적 증거로서 방언을 동반하는 개인적인 오순절을 받은 후 파함을 포함한 참석자들 모두는 그 놀라운 사도적 권능의 회복을 유지하기를 갈망하게 되었고, 자기들의 삶 속에도 그와 동일한 개인적인 실현”(personal realization)을 진심으로 바랐다. 파함에게 오순절을 경험하게 하는 성령침례는 개인적인 성령침례(a personal Baptism of the Holy Ghost)였다. 파함에게는 집단보다는 우선 개인이 중요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선교회들과 파들, 교회들, 신조들 그리고 교파주의의 옹호보다는 하나님 안에서 개인적인 순결함과 온전함에로 우리의 관심을 돌려 봅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파함이 자유로운 개인의 신앙을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려던 미국의 정신 안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파함의 오순절적 순복음은 우선적으로 개인적인 것이었지만, 개인주의에 경도된 분열과 분파가 아닌 개인 개인이 모여 하나를 이루는 일치”(unity)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파함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일치의 사도”(an apostle of unity)로 삼았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교회의 일치를 생의 과업으로 삼고 그 소망을 이루려고 노력했다. 파함에게 일치는 비분파적인 것이었다. 파함은 열아홉 살에 캔사스 주 발드윈의 베이커 대학교의 설립자인 데이비스 박사(D. Davis)의 강단을 맡기 위해 부름을 받아 두 해를 지냈다. 그동안 그는 목사직의 한계를 알게 되었고, 교파적 교회주의의 편협성을 느끼면서 종종 위의 권위들과 마찰을 빚었다. 결국 공공연한 결렬이 일어났으며, 그 교회에게 모진 핍박을 받았고 그는 영원히 분파주의를 떠났다. 그의 아내 사라에 의하면 그는 교파주의에 다시 들어가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고통을 당해야했지만, 보복하지 않았다. 파함은 일찍이 성도들에게 전해졌던 그 믿음의 회복, 옛 시대의 종교, 캠프 집회들, 부흥회들, 선교들, 거리와 교소도 사역 그리고 모든 곳의 기독교 일치를 위해 싸웠다. 파함은 하나님에게는 비 분파적인 정신’(a non-sectarian spirit)으로 무장한 수천의 온전한 사랑과 full-gospel의 남자들과 여자들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파함에게 순복음은 비 분파적인 것, 파당을 짓지 않는 것, 즉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파함은 사랑, 믿음, 일치”(Love, Faith, Unity)를 오순절 운동의 표어로 삼았다.

    파함은 아나키, 즉 무질서를 혐오할 정도로 싫어했으며, 질서를 존중했다. 그는 당시 성결운동이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사도들과, 목사들과, 교사 등을 임명하신다는 것(고전 12:28)을 잊어버리고 인간 교사들이나 지도자들을 거부하거나, “개인주의,” “이탈주의”(come-outism)(종교적 무질서 religious anarchy) 안으로 미친 듯이 뛰어 들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들의 무질서를 사도적 교회의 질서와 빗대어 비판했다. 파함에게 사도적 교회는 어느 지역이든 하나님께서 보내신 모든 사도들과 목사들과 사역자들을 존경했던 신앙의 일치가 놀랍고 아름다웠던 교회였다. 파함은 성령은 성도들을 자기 통제또는 타인의 통제이상으로 인도하시지 않으시는 반면에, 다른 영들 또는 열광주의는 자기 통제와 타인의 통제 너머로 성도들을 데리고 간다고 말했다.

    파함은 어느 정도의 질서를 위한 일치를 추구했지만, 일정한 형태의 공식적인 전체주의적 조직을 만들려 하지는 않았다. 파함은 한 교회에서 목회할 수 있었지만, 교파주의를 버리고 그 교회에서 나와서 초교파적으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리와 명예, 물질을 잃었으며, 부모의 냉대를 감내해야했다. 그는 그 교회를 나온 후 얼마든지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고 목회자가 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조직하라고(to organize) 보내신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와 그분이 세상에 전하신 교리(doctrine), 순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셨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파함은 어떤 조직은 처음에는 신앙적 활기를 발휘하겠지만, 점차 세상적인 것이 들어오며, 경직화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시온시의 알렉산더 도위의 지도력 사례에서도 그것을 충분히 보았다. 파함은 오순절 순복음 운동이 분파(sectarian)가 되지 말고, 반대로 모든 사람들이 오순절 운동 안으로 와서 하나가 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그들에게 합류해야한다고 요구할 권리를 동등하게 갖고 있으며, 우리도 그만큼 그들이 우리에게 합류해야한다고 요구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모든 진정한 자녀들을 위해 비분파적(unsectarian), 구속받지 않는 친교를 보이자는 것을 오순절 순복음 운동의 제 일 원리로 삼았다. 파함에게는 그리스도 외에는 머리가 없었다. 파함은 성도들 모두가 오순절적 순복음 신앙의 일치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모두 함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사람의 모습의 온전함에 이르기까지 서로 정연하게 결합하고 단단하게 하나가 되어 모든 마디마다 보완하자고 호소했다.

    질서와 일치를 중요시한 파함이지만, 그는 질서유지를 핑계 삼아 휘두르는 독재를 용인하지는 않았다. 파함은 주님께의 헌신(devotion)은 사람들과 천사들의 승인을 받지만 이기심은 언제나 실패한다고 단언했다. 파함은 그가 가르친 제자들이 성경학교를 졸업 후 어느 지역에 가서 사역할지를 독재자처럼 강제로 지시하지 않았다. 그는 졸업생들에게 각자가 스스로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라고 기도하라고 조언했을 뿐이었다. 그는 성경학교”(Bible Schools), “시온시”(Zions), “거류지”(Colonies) 등등의 한 사람의 가르침을 추종하는 종교적 단체들은 곧 편협해지고, 이기적인 분파주의에 기울고, 스스로를 높여 버린다고 비판했다. 한 사람에 의한 단체는 급기야 그 단체 내의 사람들 이외의 다른 모든 사람들을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공공연히 비난하게 되고, 스스로를 유일한 기독교인들이라고 믿기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추종자들의 외적 일치와 광신적 순종에 고무되어 겸손을 잊고 스스로를 이런 저런 선지자(prophet)라고 요란하게 선언하게 된다는 것이다.

    파함의 기독교적 단체들의 독재화에 대한 비판의 화살은 주로 시온시를 건설한 알렉산더 도위(Alexander Dowie)를 향했다. 도위는 1895년에 자신의 추종자들을 모아서 시카고에 본부를 둔 기독교 가톨릭 교회(Christian Catholic Church)를 조직하였고, 1900년 시카고 북부에 의사, , 그리고 귀신들이 틈타지 못하는 시온시(Zion City)라는 이름의 공동체를 설립했다. 도위의 시온(Zion)은 사람들이 자신을 통치하는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치하시는 권리를 지지하였다. 시온은 민주정치(Democracy), 공화정치(Republic)도 아닌 신정정치(Theocracy)를 그것의 정치체제로 채택했다. 그런데 도위는 예언대로 만유를 회복하기 전에 엘리야가 와야 하는 데, “나는 현대에서도 고대에서도, 그 어떤 하나님의 예언자에 의해서도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던 일을 수행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택함을 받았다고 선포하였다. 급기야 1901년에 도위는 자신을 회복자 엘리야”(Elijah the Restorer), 1904년에는 시온 가톨릭 사도적 교회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첫 사도”(the First Apostle of the Lord Jesus the Christ in the Catholic Apostolic Church in Zion)라고 선포했다. 도위는 공식적으로 자신을 총감독”(General Overseer)이라고도 칭했다. 이런 일련의 선포를 통해 도위는 신정정치의 시온시에서 천상 통치자 하나님을 대리하는 지상 독재자가 되었다.

    이런 도위와 달랐던 파함은 미국이 채택한 평등한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선거에 의한 국민들의 대표자 선출과 그 대표들에 의한 공화정체를 선호했고,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여러 직책들에 의한 다스림을 인정했지만, 도위의 독재를 비판했다. 파함은 도위를 양이나 목자가 아닌 성도들을 그릇된 곳으로 몰아가는 염소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그는 도위의 추종자들이 맹목적으로 한 마리 염소’(a goat)의 지도를 따라가며 그 염소에게 하나님과 같은 권위와 무오성을 부여하면서 사람을 하나님의 자리에까지 올려놓았고 소위 그 염소의 계시들 안에서 사람을 높임과 난폭한 광신주의라는 비 성경적 가르침들의 정글에 이르기까지 따라가며 그에게 절대적인 순종을 바쳤다고 말했다. 파함은 도위를 비판하며, 시온시에 들어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올 때까지 그 시를 변화시키려했다.

    파함은 끊임없이 독재자가 되는 유혹을 뿌리치고 지도력을 끝까지 하나님께 돌렸다. 그는 사도적 신앙 운동(the Apostolic Faith Movement), 오순절적 순복음 운동을 시작시켰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파함을 교황 같은 사람, 도위 같은 사람 등등으로 불렀었고, 어디서든 한 지도자(a leader)나 지도자와 같은 자 그리고 개종시키는 자(proselyter)로 우러러보려 했다. 그러나 파함 자신은 그런 명칭들을 항상 싫어했다. 그는 단지 일치를 위해 1905년에 이르러서야 자신을 공식적으로 발기인”(Projector) 정도로 불렀을 뿐이었다. 파함은 그 직분조차도 무의미한 직함이라고 평가절하 했다. 파함은 도위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했을 때는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이 임하여 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는데, 시온시를 건설하고 성도들 위에 군림하며 세금을 걷으면서 그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떠났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했었다. 그래서 파함은 자신의 권세를 주장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에게 지도자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었다. 파함은 사람에 의한 지도력이 아닌, 하나님께서 그분의 능력으로 세운 지도력을 추구했다. 파함은 도위처럼 하나님과 그분이 세우신 사람들에 의한 신정정치를 내걸었지만, 도위와는 달리 독재로 변질되지 않았다. 파함은 2년 후인 1907년에 하나님께서 오순절에 관해 거의 모든 세계에 광범위한 빛을 비추어주셨기 때문에 제가 사도적 신앙 운동의 공식적 지도력을 유지하고 있을 필요가 더 이상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발기인이라는 직함조차 내려놓았다. 파함에 따르면, “주님께서 오순절의 진리가 전 세계적 축복이 되기까지 사도 신앙 운동을 그 진리를 전하기 위한 손수레로 사용하셨다. 그런데 사도적 신앙 운동은 그것의 임무를 다하였고, 이제 모든 순복음 운동들(all Full Gospel Movements)과 교회들에 사랑의 손을 펼침에 있어서 전 세계적인 친교의 인식의 빛 안에서 꺼져가고 있다(fades). 이 진리의 유산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신성한 권리(the divine right)이며, 그 성과는 한 사람이나 하나의 운동에 의해 거두어질 수 없다.” 그는 단지 한 증거자로서 이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만국에 전하기 위해 저의 형제들 가운데서 저의 자리(place)를 취합니다. 그러나 . . . 여전히 도움과 조언에 있어서 그리고 그들에게 나의 여유 돈을 기부함에 있어서 저의 형제들 안에 동일하게 남아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도위를 추종했던 사람들 중에 시온시에서 그의 독재에 환멸을 느낀 많은 사람들이 이렇듯 독재를 피했던 파함이 일으킨 오순절운동에 가담했다.

    개인주의나 아나키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 사람의 독재에 이를 전체주의적인 조직도 아닌 일치는 어떤 것이었을까? 파함은 모든 현존하는 운동들, 교회들 그리고 지도자들은 산산이 쪼개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오순절 순복음 운동 안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체계화하거나 조직화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그만 두자고 촉구했다. 파함은 일주일에 한 번씩 평일 날 기도와 선교에 대한 논의를 위해 20명에서 30명이 만나는 지역 성회들(Assemblies, 또는 Assembly meetings)을 구성하게 하고, 각 성회를 지역 장로에게 맡겼다. 그리고 파함은 세 개의 주에 관리자(director)들을 임명했으며, 사도적 신앙 운동의 총무(General Secretary of the Apostolic Faith Movement)를 임명했다. 그리고 그는 관리자들에게 자신의 사역을 진척시킬 것을,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한 자주 선교회들을 북돋우기 위해 재방문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는 성령의 사랑과 일치의 띠가 이기게 합시다. 이렇게, 그 진리가 스며듦에 따라,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조화를 일으키시며 그분의 백성들을 하나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파함은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그렇게 되었을 때 지배하는 교회 관리자들이라는 그 어떤 패거리도 다른 사람들의 노고와 노력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각자는 자기 자신의 사역의 공적들로 살아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파함은 오순절 순복음 운동의 처음부터 끝까지 비조직”(nonorganization), “교리”(doctrine), 그리고 ”(labor)에 관한 자신의 자세(attitude)에 완전히 만족해했다. 파함의 일치는 개인주의적인 비조직도 아니고, 전체주의적인 조직도 아니었다. 그는 일치(unity)는 조직체(organization)에 의해서나 또는 비조직체(non-organization)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연구나 관찰에 의하면, 조직체에 의한 일치는 1900년 동안이나 시도되어 왔으나 실패했다. 또한 비 조직체에 의한 일치도 몇 년 동안 시도되어 왔으나 무질서(anarchy)로 귀결되거나 종종 오류나 광신주의로 가득 찬 비 기록적인 신조나 규칙들을 가진 조그만 파당들”(cliques)에 한정되게 되었다. 종합해 보자면, 파함이 말하는 일치는 오순절 순복음이라는 교리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각 사역자 개인이 자신이 사역하는 지역에서 자신의 노고와 노력으로 자유스럽게 일하여 사역을 성공시키고, 반면에 극단적 개인주의에 경도된 비조직에 흐르지 않고, 다른 사역자들이나 지역들의 사역들을 격려할 수 있는 정도의 일치, 반면에 그 사역들이나 사역자들을 지역들을 초월하여 조직화함으로써 그 조직이나 조직의 장이 다른 사역자들이나 지역 사역들을 군림하고 지배하는 관리를 행사하지 않는 일치, 성령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사역자들과 지역들에 일으키시는 느슨한 연결로서 일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평등한 개개인이 자유롭게 최대한 자신의 가능성을 발휘하게 하고, 그러나 개인주의에 빠지지 않게 어떤 일정한 사상 체계를 바탕으로 집단을 형성하되, 그러면서도, 그 집단이 개입적 전체주의를 거부하여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며 구성원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북돋아 주며 서로 도와서 일을 효율적으로 하게 할 수 있는 집단. 이 집단이 파함이 추구했던 일치였던 것 같다.

    파함에게 비조직체도 아니면서 조직체도 아닌 일치의 중심에 무엇을 두었을까? , 그는 성도들이 무엇을 중심으로 모였을 때 비조직체도 아니고 조직체도 아닌 일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파함의 일치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파함은 역사적 연구를 통해 일치라는 것은 조직체에 의해서도 비조직체에 의해서도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일치의 근원을 알고자 노력했다. 파함에 따르면, 그는 일치를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연구하다가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2:11)라는 말씀을 발견했다. 파함에게 일치는 오직 진리로만 얻어질 수 있으며, 그 진리가 구성원들을 자유케 한다. 구성원들은 그 하나님의 진리를 취해야만 하며, 그 진리를 전하고, 그 진리를 실천하고, 그 진리의 영향력을 우리의 삶에서 발휘하여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숙성으로써 숙성되게 해야만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진정한 자녀들이 예수님의 기도에 응답으로서 한 몸으로 숙성될 것이다. 그가 발견한 진리이신 한 분, 모든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분열과 잘못된 조직체를 치료하고 전적인 일치 안으로 이끄는 치료약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분의 보혈이다. 파함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전적인 일치를 위한 치료약이며, 동시에 근원이다(This remedy is the blood of Jesus Christ, source of all unity). 파함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구원하는 능력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만이 비조직체도 아니고 조직체도 아닌 일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파함은 1901년에 출판된 책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공유”(forsaking all, all things in common)라는 글을 실었다. 그는 주님께서 모든 곳의 남자와 여자들이 자기들이 한 약속을 실천하도록, 자기의 삶을 온전히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김을 통해 온전하게 버림으로써 보호를 구하도록 부르고 계십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만약 네가 온전하려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온전하게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와서 나를 따르라(19:21)”는 말씀을 인용했다. 그는 교회의 선을 위해 친구들과 가정과 모든 것을 버리는 수녀들과 수사들의 헌신 맹세들을 연구했다.” 그리고 그는 남자와 여자들이 그리스도와 영혼들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면, 그들이 어떤 능력이 있게 될까 생각해 보았다.” 그 후 그는 남자와 여자들이 그렇게 하기를 촉구했다.” 그렇다면, 파함이 생각한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그는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모든 재산의 집단 소유화와 공유를 주장했는가?

    종교개혁시대의 급진주의자 토마스 뮨처(Thomas Müntzer)모든 재산은 공유되어야 하고(Omnia communia sunt), 분배는 필요에 따라 시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야곱 후터(Jakob Hutter)가 주도하던 급진적 재침례파의 한 지류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모델로 재산의 공동 소유권(all things in common)을 주장했다. 반면에 개혁주의자 칼빈은 재산의 사유를 옹호하고, 재침례파 사람들이 재산의 공유를 주장한 것에 반대했다. 그리고 그는 재산이란 열심히 일한 값으로 준 하나님의 선물이고 따라서 그것을 정당하게 취득한 사람이 그것에 대한 권리를 향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칼빈에게 재산권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 재산권 사용을 제한할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은 첫째,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임명한 수령인이다.

    파함의 오순절적 순복음은 자본주의적인 모든 재산 사유와 사회주의적인 모든 재산의 집단 소유와 공유라는 양 극단을 버리고 토지라는 부동산 사유와 재물 나눔을 추구했다. 파함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팔아 일정한 건물들을 차지하고 있는 어떤 종교적 단체에 합류해야만 한다는 가르침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이런 운동의 어리석음은 곧 밝혀집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이 자신의 집을 포기하고 곧 한 종교적 집단으로서 그들이 차지하는 건물들에 부속되는것을 거부했다. 파함이 거론한 어떤 종교적 단체중의 대표적인 것은 도위의 시온시였을 것이다. 도위는 시온시 들어오려는 사람들에게 모든 재산을 팔아 그 돈을 자기의 재량에 맡기라고 명령했다. 또한 그는 19041128일에 시온시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금을 시온시 은행에 맡기라고 명령했다. 시온시는 그 거주자들에게 세금으로서 모든 수입의 십일조를 요구했으며, 그 구성원들이 재정과 산업에 있어서 협력할 것을 요구했다. 시온시는 그 땅을 구성원들에게 규정된 제한들과 함께 1100년간 임대해 주었다. 기독교 가톨릭 교회(The Christian Catholic Church)가 모든 재산을 소유했고, 시의 모든 서비스들을 제공했다. 도위는 시온시가 완벽한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당시의 사회주의 개혁들을 시온시에 실현하려 했던 것이다. 파함은 도위와는 달리 그 추종자들에게 일치를 위해 토지를 비롯한 모든 사유 재산을 팔아 바칠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파함에게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forsaking all)은 버리는 것(desertion)을 의미하지 않았다. 파함은 부양해야할 가족들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부양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있도록 허락할 것이라고 믿었다. 파함은 개인의 재산을 거두어 한 집단의 공동재산으로 삼았던 뮨처나 후터의 사회/공산주의 체제를 채택하지 않았다.

반면에 파함은 칼빈처럼 사유재산을 인정했지만, 칼빈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유재산을 필요한 사람들과 나누려 했다. 파함은 사람들의 필요에 민감했다. 파함은 기성 교회들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으며, 그의 설교는 설교자가 설교하기 원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의 필요(the needs of the people)를 우선시하는 설교였다. 또한 그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재물을 나누어 줄 것을 설교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의 명령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분이 행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행하십시오. 그분의 명령은 일흔 두 가지입니다. 가난한 자를 먹이고, 벗은 자를 입히며, 병자들과 갇힌 자들을 돌보고, 자신을 흠 없도록 세상으로부터 지키며, 빌리고자 하는 자로부터 돌아서지 말라 등등입니다. 과부들과 고아들에게 주는 자선금과 모든 보험은 영원에 있어서는 여러분에게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할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가난한 자들과 필요한 자들에게 관심을 표명하려는 자선은 인류 안에서 생성되는 인류애적 정신의 자연스러운 발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관점에서는 오직 여러분이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가 된 후에 주는 것만이 하나님의 큰 날에 여러분에게 유익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주는 대신, 주님의 이름으로 주십시오.

 

    파함은 나눔을 설교하는데 그치지 않고, 달라는 자에게 주고, 빌리고자 하는 자에게 빌려주라는 예수님의 말씀(5:42)을 실천했다. 파함은 자기의 집을 사람들이 필요할 때 사용하도록 개방했다. 파함의 집은 멈추어가는 곳”(stopping place)로 불리웠으며, 언제나 방문자들로 붐볐다. 여러 사역자들이 파함의 집을 자기들의 본부들로 삼았다. 파함은 가진 모든 것을 사람들과 공유하려 했다. 그는 어느 것이라도, 옷들조차도, 자기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순전하고 흠 없는 종교란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1:27)라고 말했다. 그는 이 말씀을 달라하는 자에게 주고, 주린 자를 먹이며, 벗은 자를 입히라는 말씀과 함께 실천하려 했다. 그는 자주 집에 있는 모든 음식과 거의 모든 가족들의 옷을 남에게 주었다. 파함의 아내 사라는 파함의 가족에게 필요한 물질을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공급받은 체험들과 반대로, 파함이 다른 사람들이 필요한 물질을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 다른 사람들에게 공급한 체험들을 여러 사례를 들어 말했다. 파함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19:21)는 말씀을 어떤 단체에 속하거나 또는 빠져나오거나, 혹은 어떤 종교적 거류지(colony)의 일원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파함에게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그분의 사역을 행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단호하게내던지는 것을 의미했다. 그의 아내에 따르면,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사랑으로 가난한 자들, 타락한 자들을 사랑했으며 그들에게 의의 길을 보여주었고 그들에게 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도성을 가르쳐 주었다.

    그렇다고 파함이 필요가 많은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만 잘 대해주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아내에 따르면, 그가 언제나 신중하게 실천하려고 했던 성경 말씀은 야고보서 21절에서 4절이었다. “높은 자들이나 낮은 자들, 부자들이나 가난한 자들, 젊은 사람들이나 나이 든 사람들이나, 모든 사람들이 그의 집회들에서 마음으로부터의 환영을 받았다. 그는 가능한 한 그들을 동등하게 대우했다.”

    앞으로 파함의 재산 사유와 재산 나눔을 적절하게 경제학적으로 정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05년에 호주의 경제학자 스몰은 한 용어와 개념을 제안했다. 그는 아담 스미스 등 자본주의 경제학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신론(Deism) 등 세속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어왔다고 판단했다. 그는 아담 스미스의 글에서는 재산의 나눔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성경적 관점에서 재산이라는 주제를 연구하여 발표하면서 신약성경 그 어디에도 사유 재산을 금지한 곳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비록 예수께서 사유 재산을 금지하신 적은 없지만, 그분은 재산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지 말아야 하며 공동체를 위해 어느 정도 사용해야만 한다고 가르치셨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에게 사유 재산을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강제가 아닌 자발적인 자유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재산에 대한 사유재산 공적사용”(private ownership with common use)이라는 기독교적 관점을 재산에 대한 이중적 이론”(the dual theory of property)이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공적 사용이라는 용어는 소유자의 자유의사에 의한 나눔보다는 어떤 타력의 개입에 의한 사유물의 강탈과 강제적 분배를 내포할 수도 있다. 그래서 파함의 재산 사유와 재산 나눔을 대변할 수 있는 보다 명확한 경제학적 용어가 필요하다.

    파함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파괴하고 이상적인 사회 민주주의를 실현하려 하겠지만, 그리고 이기적인 교회의 파괴 이후에도 실제적 기독교, 오순절적 순복음은 존속하겠지만, 그러나 진정한 이상적인 세계와 복음의 실현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셔야 펼쳐질 것이라고 믿었다. 파함은 인간의 모든 계획들을 실패하게 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통치를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파함은 그는 사도적 신앙을 회복하자는 오순절적 순복음 운동이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에 의해 가르쳐지고 실천되었던 천국 복음을 전 세계에 증거로서 전파하고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사회 민주주의를 인간의 내재적 힘으로 실현시키려는 적그리스도와 그의 나라 위로 강림, 진입하실 것이라고 보았다. 파함에 따르면, 그때에야 사도적 신앙이 온전하게 회복될 것이고, 땅과 모든 것들의 사적 소유는 사라질 것이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의 돈과 모든 소유물들을 그리스도의 금고에 쏟아 넣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천년 왕국에서 비로소 노동은 그 온전한 보상을 받을 것이며, 가난한 자들은 범죄와 죽음 사이에서 택하도록 강요받지 않을 것이며, 인류는 모든 소유물들을 함께 공유할 것이다.”

 

 

VI. 나가는 말

 

    그리스도인으로서 파함은 비록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국가들과 자본주의적 교회를 파괴시킨다 해도 기독교는 존속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렇게 존속할 기독교는 살아있는 기독교,” “실제적 기독교,” 그리고 특히 오순절적 순복음 일치였으며, 자본주의 안에서 사회주의를 졸업한 파함의 길이었다. 먼저 파함은 오순절운동을 시작시키기 이전에 성결운동가로서 활동했을 때 살아있는 기독교”(a living Christianity)를 추구했다. 성결운동가로서 파함은 살아 있는 기독교를 추구했으며, 산 기독교는 영혼의 구원, 즉 중생, 그리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과 구체적인 물질적 공급 사역을 포함했다.

파함이 오순절운동을 출발시키고, 그 지도자로 활약하던 시기에 제시했던 진정한 기독교는 실제적인 기독교였다. 파함이 생각했던 실제적 기독교는 실제적인 필요들을 채워주시는 예수를 직접 만나게 해주는 기독교다. 파함에게 기독교는 실제적이며, 그 실제성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현재의 삶에 신유를 베푸시고 계시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이다. 파함에게 기독교가 실제적인 이유는 또한 2000년 전에 병을 치유해 주셨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그분을 만나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파함에게 기독교가 실제적일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인간의 삶에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결과들을 산출해 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적인 결과들에는 영적인 면과 육적인 면을 다 포함한다.

파함에게 방언을 동반하는 오순절적 순복음(Pentecostal Full Gospel)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투쟁 속에서, 그리고 최종적인 사회주의의 승리로 인한 교회들의 파괴와 그 사회주의가 독재 적그리스도로 귀결되는 상황 속에서도 자기와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이상적인 길이었다. 파함의 오순절적 순복음은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비조직과 조직, 무질서와 독재라는 양 극단들을 배제하고 일치”(unity)라는 길을 채택했다. 그의 오순절적 순복음은 우선적으로 집단적이기 보다는 개인적인(personal) 경험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파함의 오순절적 순복음은 우선적으로 개인적인 것이었지만, 개인주의에 경도된 분열과 분파가 아닌 개인 개인이 모여 하나를 이루는 일치”(unity)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파함은 아나키, 즉 무질서를 혐오할 정도로 싫어했으며, 질서를 존중했다. 파함은 어느 정도의 질서를 위한 일치를 추구했지만, 일정한 형태의 공식적인 조직을 만들려 하지는 않았다. 질서와 일치를 중요시한 파함이지만, 그는 질서유지를 핑계 삼아 휘두르는 독재를 용인하지는 않았다. 파함은 끊임없이 독재자가 되는 유혹을 뿌리치고 지도력을 끝까지 하나님께 돌렸다. 개인주의나 아나키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 사람의 독재에 이를 조직도 아닌 일치는 평등한 개개인이 자유롭게 최대한 자신의 가능성을 발휘하게 하고, 그러나 개인주의에 빠지지 않게 어떤 일정한 사상 체계를 바탕으로 집단을 형성하되, 그러면서도, 그 집단이 개입적 전체주의를 거부하여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며 구성원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북돋아 주며 서로 도와서 일을 효율적으로 하게 할 수 있는 집단이었다. 파함에게 비조직체도 아니면서 조직체도 아닌 일치의 중심에 무엇을 두었을까? 파함에게 일치는 오직 진리로만 얻어질 수 있으며, 그 진리가 구성원들을 자유케 한다. 파함이 발견한 진리이신 한 분, 모든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분열과 잘못된 조직체를 치료하고 전적인 일치 안으로 이끄는 치료약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분의 보혈이다. 파함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전적인 일치를 위한 치료약이며, 동시에 근원이다. 파함의 오순절적 순복음은 자본주의적인 모든 재산 사유와 사회주의적인 모든 재산의 집단 소유와 공유라는 양 극단을 버리고 토지라는 부동산 사유와 재물 나눔을 추구했다. 파함은 개인의 재산을 거두어 한 집단의 공동재산으로 삼았던 뮨처나 후터의 사회/공산주의 체제를 채택하지 않았다. 반면에 파함은 칼빈처럼 사유재산을 인정했지만, 칼빈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유재산을 필요한 사람들과 나누려 했다. 파함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파괴하고 이상적인 사회 민주주의를 실현하려 하겠지만, 그리고 이기적인 교회의 파괴 이후에도 실제적 기독교, 오순절적 순복음은 존속하겠지만, 그러나 진정한 이상적인 세계와 복음의 실현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셔야 펼쳐질 것이라고 믿었다.

두 가지 선행 연구들과 본 연구, 이 세 연구들의 결론을 내리자면, 오순절운동의 창시자 파함은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인 문제, 즉 자본주의와 사회/공산주의 사이의 투쟁을 심각하게 의식했고, 신앙의 자유에서 신앙을 잃어버리고 자유만을 구가하던 자본주의의 물질 축적 과정에서의 비윤리성과 사회주의의 물질 분배에만 초점을 맞추는 반신앙성 모두를 비판하였다. 그는 예수의 박애를 바탕으로 삼고 물질적 분배를 추구하는 사회주의가 자유스런 개인의 신앙에 의한 중생과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애를 버리고 물질적 축적과 부유함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적 교회를 이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비록 파함이 사회주의의 승리를 예측했지만, 그는 유물론에 입각하여 개인의 신앙에 의한 중생을 도외시하고 물질의 분배를 통한 보편적 형제애만을 추구하는 사회주의 세력에서 결국 그리스도를 격하시키고 대적하는 독재적 적그리스도가 출현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예수께서 우리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피흘리신 그리스도시라는 신앙을 확고히 가지면서, 병들고 가난한 자들도 사랑하시고 그들의 필요를 실제적으로 채우시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필요에 따라 사유물을 나누는 오순절적 순복음 일치라는 길을 추구했다. 개인의 영육 간의 구원과 공동체 안에서 윤리적 생활, 그리고 나눔, 그 세 가지를 적절하게 조직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일치, 이것이 파함이 추구했던 대안적 길이었다.

파함은 비록 자본주의를 비판했지만, 자본주의 바깥에 있지는 않았다. 그가 자본주의의 근간인 개인의 자유와 일에서 발생하는 이익으로 구매한 토지 등의 사유재산을 인정했다는 것은 그가 여전히 자본주의 안에 있었다는 것을 증거 한다. 반면에 그는 사회주의의의 일면을 이해했지만, 사회주의 안에 있지 않고 밖에 있었다.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파함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반위에서 성장하던 미국 자본주의 안에서 사회주의의 도전에 응전하며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온전케 하실 이상적인 세계를 바라보며 자기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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