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신학저널 Vol. 51 (2020): 000-000
https://doi.org/10.18804/jyt.2020.3.51.000
오순절주의 아버지 찰스 F. 파함과 자본주의
이 창 승
|순복음총회신학교 조교수, 조직신학|
jesusgat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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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운동의 아버지 찰스 F. 파함(Charles F. Parham)이 보기에 세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거대 세력으로 나뉘어 그 생존을 위해 서로 싸우고 있었다. 본 논문은 이런 상황 속에서 파함이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문명의 기초로서 크게 영혼 구원과 적절한 물질적 분배라는 두 가지 상태를 제시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이해‧평가‧비판하고, 그가 대안으로서 “오순절 순복음 일치”(Pentecostal Full Gospel Unity)라는 길을 독자적으로 걷고자 했던 것을 추적하는 일련의 세 개의 논문들 중에서 그 첫 번째 것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파함의 이해와 비판에 대해 살펴본다. 파함은 교회가 세속적인 사상과 문화에 젖어들고 변질되어 스스로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고, 나아가 불신자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고 부의 복음에 치우쳐 물질적 부유함과 외적 치장에만 치중하게 되자, 그 여파로 개인의 신앙의 자유와 박애라는 미연방공화국 자본주의의 뿌리가 썩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그가 보기에 개인의 신앙의 자유에서 신앙이 배제되자, 의무와 통제력을 상실한 개인의 세속적 사상에 의한 자유가 난무하게 되고, 진정한 신앙에서 발생하는 건전한 윤리가 상실되었다. 그 세속적 개인 중심에 따른 윤리의 상실은 자본가들의 비정상적 연합과 담합, 자본가의 지나친 사익추구로 인한 근로자의 열악한 작업환경과 임금착취를 통한 큰 빈부의 격차, 근로자들의 담배와 술 중독‧매춘 등에 의한 타락과 건강 상실, 돈을 위해 그 구조를 만들어낸 자본가와 행정가들의 담합, 편중된 부를 이용한 금권정치로 인한 선거와 대표에 의한 법률제정, 행정실행의 부패, 나아가 자유와 박애에 입각한 공화정과 자본주의 체제의 부패를 낳았다는 것이다. 또한 개인의 신앙의 자유와 박애가 변질되자, 안으로는 비정상적인 국가주의와 애국주의가 형성되었고, 그 변질과 비정상이 밖으로 뻗어나가 제국주의가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이렇게 파함이 자본주의를 비판했지만, 그는 여전히 자본주의 안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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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들어가는 말
역사신학자 니콜은 대부분의 초기 오순절주의자들이 사회적 문제들에 무관심했었다고 주장했다. 1873년 6월에 태어나 1929년 1월에 별세한, 1901년에 오순절 운동의 신호탄을 쏘아올리고 1920년까지 오순절주의자로서 활동했던 찰스 파함(Charles F. Parham)은 어떠했을까? 1865년부터 1918년까지 미국의 역사는 긍정적으로 남북시민전쟁(1861‐1865)으로 인한 파괴로부터 재건의 시대, 혁신의 시대(the Progressive Era)였다. 이 때 급속한 공업화와 자본주의화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한편으로는 이민의 물결이 미국 안으로 밀어닥쳤으며,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밖으로 팽창해 나갔다. 국내총생산(GDP)은 1865년에서 1920년 사이에 7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에, “황금 시대”(the Golden Age)와는 상반되는 “도금 시대”(the Gilded Age)라는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 시대는 부정적으로 또한 자본가와 근로자 사이의 계급투쟁의 시기로도 기록된다. 1919년에 베블렌(Thorstein Veblen)은 사람들은 부를 소유하고 나머지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계급과 지배를 받는 계급으로 나뉜다고 썼다. 이런 격동의 시기에 파함도 니콜의 평가처럼 사회적 문제들에 무관심했었을까?
파함은 니콜의 그런 평가에 속할 수 없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파함이 보기에 세계는 그 역사상 가장 큰 위험에 직면해 있었다. 왜냐하면 두 거대 세력들이 그 생존을 위해 서로 싸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파함에 따르면 구질서는 정부, 부자들(자본가들), 교회들, 애국주의자들로 구성된다. 새 질서는 사회주의자들, 볼셰비키주의자들, 민중들로 구성되는데 그 민중들은 국가적 경계들을 초월한 범세계적인 가난한 근로자들로 구성된다. 파함은 이 구질서와 새 질서의 투쟁으로 인해 벌어질 국가들의 전복이라는 대혼란과 어둠이 피할 수 없는 것이며, 그래서 그런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고 파악했다. 그가 보기에 근로자들의 문제들로부터 일어나는 상황들은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 사이에 깊은 골을 내고 있고, 나사로가 음부에 있는 부자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처럼 화해의 물을 가지고 그 깊은 골을 건너는 것은 불가능했다. 모든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본가와 근로자 사이의 투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자본가는 민중을 완전히 박멸시키거나 노예로 만들지 않으면 오히려 박멸을 당할 것이다. 그 죽음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으며, 양측의 조화 가능성은 없고, 둘 중 하나는 멸망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이렇게 당시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했던 파함은 과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는 그 두 세력의 투쟁 속에서 어느 측에 있었으며, 어떤 길을 걸어갔을까? 본 논문은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파함이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문명의 기초로서 크게 두 가지 상태를 제시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이해, 평가, 비판하고, 그가 “오순절 순복음 일치”(Pentecostal Full Gospel Unity)라는 길을 걸으려 했던 것을 추적하는 일련의 세 개의 논문들 중에서 그 첫 것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파함의 이해와 비판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파함은 자본주의 안에서 머물러 있으면서, 개인의 신앙에 의한 중생과 나눔의 윤리를 바탕으로 성장한 공화적 자본주의 국가와 교회가 변질된 것을 비판했다.
II. 파함의 문명 건강성 판별 시금석
1. 종교적이며 윤리적 건강성: 영혼 구원과 거룩한 삶
파함은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문명을 판별하는 시금석으로서 크게 두 가지 상태를 제시했다. 파함의 시금석의 본질은 “기독교 초기 교훈”이었다. 그 첫째 상태는 중생과 성결에 기반을 둔 덕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옛 문명은 기독교의 초기 교훈들에 의해 가능했었습니다. 중생과 성결의 교훈은 덕 있는 삶을 살게 했습니다. 이것은 ... 모든 옛 세상의 문명을 위한 기초였습니다.”라고 말했다. 파함은 고대 문명들의 멸망 원인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윤리적 건강성의 손상이라는 주요한 원인을 찾아내었다. 그는 바빌론, 이집트, 그리고 로마는 부가 소수의 손아귀에 들어갔을 때, 그리고 총체적인 부도덕성이 그 백성들을 부패시켰을 때 망했다고 파악했다. 로마에 있어서는 이것 이외에 대부분의 젊은 남자들이 농업지역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었다는 사실이 더해진다. 그들은 먹거리 생산자이기를 그치고 단지 먹어치우는 소비자로 전락했고, 그들의 에너지는 집을 짓고 국가의 길을 놓는 데 허비되었다.
파함은 로마 멸망의 주요한 원인으로서 먼저 윤리적인 타락을 꼽았는데, 이는 폴리비우스와 몽테스키외의 주장을 반영한다. 윤리적 타락설은 그리스인이지만 로마에서 지내기도 했던 역사가 폴리비우스(BC 200-118)로부터 일찍이 시작되었다. 그는 당시에 이미 로마의 멸망을 예견했고 그 시작을 BC 140년 카르타고의 멸망으로 인식했다. 폴리비우스는 “로마에 다가올 위험들”이라는 글에서 한 국가가 많은 큰 위험들을 받아넘긴 후 번영의 절정과 의심할 것 없는 힘에 도달하면, 그 안의 큰 부의 지속에 의해 그 시민들의 삶의 방식은 점점 더 사치스러워질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는 관직에 오르기 위한 경쟁은 정상적인 것을 넘어서 점점 더 격심해질 것이며, 로마의 이런 상황들이 그 정도를 더하며 지속되는 것은 멸망의 시작을 알릴 것이라고 보았다. 폴리비우스의 역사책은 1889년에도 미국에서 영역되었다. 그들은 과도한 부의 유입이 로마인을 타락시켰고, 이 타락이 로마인들이 자신들의 자유와 생명 상실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2. 경제적 건강성: 부의 분배
파함이 제시한 어떤 문명의 건강성을 판별하는 두 번째 기준은 사람들 사이에서 부의 편중되지 않는 분배(general distribution of wealth)였다. 그는 “이것[중생과 성결이라는 기독교 초기 교훈으로 말미암아 덕 있는 삶을 사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부의 편중되지 않는 분배(general distribution of wealth)와 함께 모든 옛 세상의 문명을 위한 기초였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부의 적정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한 문명이 멸망했다고 판단했다.
파함의 로마(정확히는 서로마)의 멸망에 관한 경제적인 원인 제시는 그와 동시대인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학자들의 로마 멸망에 관한 연구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에 계몽주의자 기본(E. Gibbon)은 로마의 멸망 주요 원인을 종교적인 것, 즉 기독교의 승리라고 보았다. 19세기에 기조(F. Guizot) 등은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관점에서 로마의 멸망 원인을 규명하려 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의 연구는 주로 경제적 원인에 집중되었다. 퓌스뗄 드쿨랑주(Fustel de Coulanges)는 로마 식민지, 토지 제도 등을 다루면서 로마의 멸망이 대지주 세력의 지나친 비대화라고 보았다. 또한 호드킨(T. Hodgkin)은 노예제의 폐단, 로마 무산자들의 극빈화, 자치 도시의 붕괴, 페르시아와 게르만의 침입 등을 서로마 멸망의 원인들로 들었다. 그 두 사람은 대지주에게로의 지나친 부의 편중과 무산자들의 극빈화, 즉 극심한 양극화가 로마의 멸망이었다고 본 것이다. 로마는 2-4세기에 소지주들, 농업근로자, 소작인(Colonus)들을 토지에 묶어 유랑으로 인한 토지조세 손실 방지와 생산력 증가, 신병 확보 등을 꾀했었다. 그러나 거대농장(Latifundium)의 확산과 과중한 세금은 소작인들이 농업을 포기하게 만들었고, 무산자가 된 그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서로마 말기에 대토지를 소유했던 지주들은 노예 노동을 활용하여 농사를 지었다. 반면에 노예를 소유할 수 없었던 소지주들이나 소작농들은 노예 소유자들보다 싼값으로 농산물을 내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대지주들은 소지주들이나 소작인들보다 더 싼값으로 농산물을 생산해 내었다. 그 결과 과중한 세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또한 이 저가품과 경쟁할 수 없었던 대부분의 소작농들은 토지와 농사를 포기하였다. 수만 명의 이들 실업자들은 로마제국의 도시들을 채웠으나, 그들에게는 충분한 직업이 주어지지 않았다.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로마는 실업자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화를 무마시키기 위한 검투경기 등 문화적 위안거리를 제공해야 했다고 말했다. 로마는 일하지 않는 자들로 가득 찼고, 그들을 먹이고 달래기 위해 국고를 낭비해야 했다. 쇼는 이것이 고대 로마의 종말의 시작이라고 보았다. 로마는 주로 부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했고 그 결과 빈자들은 계속 늘어갔다.
III. 파함의 미국 자본주의 이해와 비판
찰스 파함은 미국이 자본주의적으로 비약적 발전을 이루고 있던 시기에 살았다. 메이어 웨인버그(Meyer Weinberg)는 자본주의의 기본 성격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제시했다: (1) 생산 수단의 개인 소유, (2) 이익의 축적을 확대시키는 것을 촉진시키기 위해 개인 소유자들에 의해 구성된 개인 소유자들과 자유 임금 근로자들이라는 사회적 계급 구조, (3) 판매를 위한 재화의 생산. 그리고 웨인버그는 그런 의미에서 미국 경제는 1900년대에 진정으로 자본주의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1900년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자본주의는 세 단계로 나누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첫 단계는 1600년에서 1790년의 시기로 노예와 반 노예 근로자(semi slave workers)들에 기반을 둔 담배의 생산과 유통을 위한 반 자본주의(semi-capitalist) 경제의 요소들과 함께 수공업이 성행했으며, 둘째 단계는 1790년에서 1865년의 시기로 몇 산업들이 자본주의적으로 조직화되었고, 셋째 단계는 1865년에서 1920년의 시기로 공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모든 자본경제가 상업화되었다. 셋째 단계 시기에 토지는 더 이상 생산 수단의 중심이 아니었으며, 제조업과 철도가 새롭게 발흥하고 있던 금융 산업과 함께 그 중심이 되었다. 이 시기에 미국은 바야흐로 “세계를 선도하는 산업 자본주의 국가”가 되었다. 1906년에 한 독일 경제학자는 “미국은 자본주의의 가나안, 그것의 약속의 땅이다.”라고 썼다. 웨인버그의 구분에 따르면, 1901년에 오순절 운동을 촉발시켰던 파함은 미국 자본주의의 셋째 단계, 즉 미국이 진정으로 자본주의 국가가 된 단계에 오순절주의자로서 활동했다.
파함은 자본주의 국가로 급성장하고 있는 미합중국의 긍정적 측면을 인식했다. 파함은 긍정적으로 미국을 “시민 정권이라는 근본적 원리로서 신앙의 자유와 전 인류의 형제애를 세운 최초의 나라”(the United States, the first nation to establish a religious liberty and common brotherhood of mankind as the fundamental principles of civil government)로 보았다. 1776에 작성된 미국 독립선언문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된다는 것, 그들은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일정한 권리를 부여받는다는 것, 그리고 이에는 생명, 자유 및 행복의 추구 등이 포함된다는 것”을 자명한 것으로 규정하였는데, 파함은 “만인의 평등”을 “전 인류의 형제애”라고 표현한 것이었을 것이다. 또한 미독립선언문은 “이러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간들 사이에 정부들이 수립되며, 이들의 정당한 권력은 피치자의 동의에 연유한다는 것, 어떠한 형태의 정부라도 그러한 목적들을 파괴하는 것이 될 때에는 그 정부를 바꾸거나 없애버려 새 정부를 수립하되, 인민들에게 자신들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잘 이룩할 것 같이 보이는 그런 원칙들에 입각하여 그 토대를 마련하고 또 그런 형태 하에 권력을 조직하는 것이 인민의 권리라는 것 등이다.”라고 쓰고 있는데, 파함은 이 구절들을 바탕으로 미국을 “시민 정권”이라고 규정했을 것이다. 또한 1787에 제정된 미 헌법 제2조는 각 주가 임명한 선거인에 의해 대통령을 선출하고, 그 대통령에게 행정권이 귀속된다고 쓰고 있는데 이 점이 파함이 미국을 “시민 정권”으로 규정한 근거일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1791년의 수정헌법은 “의회는 어떤 종교의 설립에 관여하려 하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언론의 자유를, 출판의 자유를,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를,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쓰여 있다. 파함은 이 수정헌법을 염두에 두고 미국을 유럽처럼 국가가 종교를 법으로 강제하여 국교를 만들지 않은 “신앙의 자유”를 시민 정권의 근본 원리 중의 하나로 파악한 나라로 규정했을 것이다.
파함에게 미국에서 신앙의 자유라는 개인적 측면과 전 인류의 형제애라는 집단적 측면은 시민 정권이라는 공화정에 의한 국가 조직에 의해 통합된다. 그에게 개인의 자유의 근원은 기독교적 신앙이었으며, 그 개인의 자유는 전 인류의 형제애로 표출되어 사회화되어야 하며, 그 사회화는 선거로 선출된 대표들에 의한 공화정치를 통해 국가화 되어야 한다. 이것은 파함이 건강한 문명의 척도로 제시한 영혼 중생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건강성, 정당한 부의 분배에서 나타나는 경제적 건강성을 만족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개개인의 신앙의 자유는 영혼의 중생을 가능케 하는 것이며, 영혼의 중생은 윤리적 삶의 기초가 된다. 개인의 자유스러운 신앙에 의한 영혼의 중생은 인류의 형제애로 확장되어 개인의 무형과 유형의 것들을 다른 사회구성원들과 나누는 것을 가능하게 하며, 이러한 신앙의 자유와 형제애를 대표에 의한 공화국이 보호하고 촉진하는 체제, 이 체제가 파함이 파악한 미국의 긍정적 측면이었다.
파함이 파악한 기독교를 기반으로 삼은 미국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프랑스인 토크빌(Alexis de Toequeville)도 1831년에 미국을 방문하여 직접 확인한 것이었다. 토크빌은 미국에서 평등이 놀랍게 실현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종교(기독교)가 지식에로의 길이며, 하나님의 법의 준수가 사람들을 시민의 자유로 이끈다,” “윤리의 안전장치가 종교이며, 윤리는 법의 최선의 안전장치이며, 자유의 가장 확고한 보증이다.”라고 썼다. 또한 그의 눈에 미국에서 “종교는 민주적이고 공화적인 나라가 유지되는 데 강력하게 공헌하는 정치적 기관”이었다.
반면에 파함은 미국의 부정적인 측면도 인식했다. 파함이 생각한 미국의 부정적 측면은 미국 체제의 근본적 결함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닌, 다만 운영자들의 타락에 의한 긍정적 측면의 변질에서 오는 것이었다. 1899년 3월에 사도신앙지에 실린 “미국 공화정체의 멸망”이라는 표제어의 논설은 파함의 미국에 대한 견해를 반영한다. 그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라며 자유의 종이 울려 퍼졌다. 이것은 분명 옛 세상의 제국들의 전제정치로부터의 변혁이었고, 여기에 평화, 자유 그리고 박애/인류애(peace, liberty and philanthropy)의 한 나라가 있었다. 그러나, 슬프도다, 지금은 어떤가? 옛 세상의 모든 죄에 더하여 많은 새로운 죄들이 만연하도다.”라고 한탄했다. 파함은 미국 공화정에 사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파함은 미국 공화체제의 멸망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 즉, 개인의 신앙의 자유, 사회 구성원의 형제애, 대표 선출이 잘못된 것에서 오는 것으로 파악했고, 그 잘못됨을 “새로운 죄”라고 표현한 것이다. 한 예로, 공화정부는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라는 세 가지 서로 동등하게 견제하는 분립된 머리들이 있어야 하는데, 입법부가 제왕적 권력(imperial power)을 갖게 된 것이다. 미국 공화정의 멸망은 개인의 신앙의 상실, 선거 과정의 변질, 대표들의 타락, 평등한 형제애의 파괴라는 요인들, 즉, “새로운 죄들”에 의한 것이다.
파함은 윤리적 측면에서 미국을 비판했는데 이 비판은 알콜중독과 매춘에 집중되었다. 파함은 매년 “무감각한 눈”을 가진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갈보집들에서 성적 타락에 빠지고 있으며, 이런 윤리적 타락은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이런 파함의 비판은 당시의 상황에 대한 기독교계의 인식과 행동을 반영했다. 식민 시대에 미국에서 주류의 생산과 소비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생활을 지배하며 일상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헌법 작성자들은 그것의 완성을 술과 함께 경축했고, 술집들은 잭슨 시대 동안 정치적 회합을 위한 장소였다. 그리고 지역사회의 모임들, 군사적 모임들, 그리고 농사일에는 술 마시기가 동반되었다. 성인들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도 술 마시기에 젖어 있었다. 소다수와 맥주가 보통 저녁 식사에 제공되었고 “어린 아이들조차 가족 맥주를 마셨다.” 미국의 19세기는 술의 전성시대(the Golden Age of Alcohol)였다. 술집들은 도시에서부터 시골에 이르기까지 미국 어디에나 있었다. 1860년에서 1920년에 이르기까지 술집들은 근로자 대부분의 사회적 생활을 지배했다. 로젠(Ruth Rosen)은 미국의 여성 매춘이 1850년에서 1900년에 최고조에 달했다고 보았다. 빅토리안 시대에 미국인들은 매춘을 “필요 악”(necessary evil)이라고 보았지만, 진보의 시대에는 “사회적 악”(social evil)이라고 보기 시작했다. 술과 금주는 문화적 전쟁의 초점이 되었다. 그 문제를 놓고 소도시와 대도시, 정착 미국인들과 이민자들, 농업적 남부와 공업적 북동부, 개신교와 가톨릭과 유대교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 지나친 음주는 여러 문제를 발생시켰으며, 공장과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있어서도 문제가 되었다. 개신교 교회들은 술 자체를 악으로 보기 시작했다. 기독교 여성들은 배우자의 폭력, 자녀 방치, 실직, 매춘, 공공 건강 등등의 가장 큰 원인을 술로 보았다. 오하이오에서는 “기독교 여성 금주 연합”(the Woman’s Christian Temperance Union [WCTU])을 조직하고 활동했다. 주류양조 금지주의자들(Prohibitionists)은 효율성, 합리성, 질서, 그리고 진보와 같은 20세기 산업사회의 새로운 요구들과 상황들은 주류를 완전히 금지하는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파함의 윤리적 측면의 미국 자본주의 비판은 경제적이고 정치적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가 보기에 그 윤리적 문제는 부정한 노동과 출처의 재정이라는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문제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을 설립한 정치가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증류주 제조업자들이었다. 워싱턴은 버지니아에서 가장 큰 술 제조공장을 가졌던 위스키 사업자였다. 제퍼슨은 버지니아 땅에서 유럽 포도주를 재현하고자 포도밭을 만들었다. 이런 정치, 행정 관리자의 기업 운영은 19세기에도 비단 주류산업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에서도 보편적이었다. 예를 들면, 베들레헴 철강 회사의 부사장은 펜실베이니아의 시장이었다. 파함은 정부와 술 산업 자본가들의 부정한 결탁에 주목했다. 그는 도시들의 재정이 부정한 술집들과 갈보집들, 그리고 포도주 제조소로부터 채워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당시 미국은 “술집들과 매춘굴들로부터 거두어들이는 세금, 벌금, 면허료의 이익을 위해 매년 수십만 명의 남자들을 알콜중독자들의 묘에 들어가게 하고 있으며, 수만 명의 여자들과 소녀들을 이름 없는 묘에 들어가게 하고 있었다.” 미국 역사에서 술 사업자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세금을 냈다. 1868년부터 1913년에 현대 세금징수 체계가 세워질 때까지 연방정부의 세수에서 증류주, 맥주, 포도주 그리고 담배에서 거두어들이는 세금이 90%를 차지했다. 이런 세금은 “범죄 세금”(sin taxes)이라고 불린다.
파함은 또한 술을 제조하는 과정에 투입되는 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과 저임금에 주목했다. 그는 포도주 제조라는 부정한 사업에 더하여, 포도주 제조를 위해 남녀 근로자들이 “무자비하게 짓밟혀 으깨지고 있는,”(where the blood of your sons and daughters is ruthlessly trodden out) 즉 열악하고 부당한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그래서 그는 그런 포도주 제조소들로부터 거두어진 돈을 “피 묻은 돈”(blood money)이라고 칭했다. 파함은 부자/자본가가 포도주 농장과 공장을 짓고 근로자에게 저임금을 지급함으로써 폭리를 취하고, 그 착취금의 일부를 세금으로 납부하며, 그 농장과 공장을 허가해준 정부는 그 피 묻은 돈으로 재정을 채우고 있다고 인식한 것이다. 이렇게 파함은 부의 축적과 세수의 증가를 위한 자본가와 정부의 피 묻은 돈을 위한 결탁이 노동 착취와 알콜중독, 매춘이라는 문제들을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파함은 미국 자본주의의 부정적 산물인 “부의 편중”을 바탕으로 형성된 “금권정치”에도 민감했다. 어떤 사람들은 남북전쟁과 대공황 초기 사이의 진보의 시대(the Progressive Era)가 사실상 금권정치적(plutocratic)이었다고 주장한다. 테오도레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Jr.)는 모든 전제정치의 유형 가운데 가장 저속한 것은 “전적인 부의 폭정”, 즉 “금권정치의 폭정”이라고 말했다. 세계 1차 대전 후에 기업가들이 정치/행정관리들이 되는 것이 더욱 증가했다. 1912년에 윌슨 대통령은 “미국의 지배적인 행정관리들은 자본가들과 기업가들이다.”라고 말했다. 남북전쟁 이전에는 농업중심이어서 부의 편중이 그다지 크지 않았었지만, 남북전쟁 이후에 산업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급격하게 커졌다. 1900년 이전에 미국의 부와 수입의 분배는 유럽보다 덜 편중되었으나, 1900년 이후 미국의 부의 편중은 다른 산업 자본 국가들의 그것을 넘어서거나 같아졌다.
당시 금권정치의 주요 자금원인 편중된 부는 독점에서 형성된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독점은 신탁(Trust)에 의해 가능했다. 신탁은 여러 기업의 주주가 그들이 소유한 주식을 특정의 수탁자(trustee)에 위탁해 경영을 수탁자에게 일임하는 방식이다.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19세기 미국 자본주의는 두 가지 장애물을 만났었는데, 그중 하나는 기업들 사이의 경쟁이 극심해졌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은 몇 개 되지 않았고, 대부분이 평균 일곱 명의 종업원이 일하는 중소기업들이었으며, 그런 기업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졌다. 그런 경쟁 속에서 작은 기업들이 트러스트를 이루기 시작했다. 철도, 석유 등등의 영역에서 이런 트러스트가 많이 형성됐고 그 결과 트러스트는 독점(monopoly)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미국은 금지된 행위를 통한 독점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의 편중을 해결하고자 1890년 존 셔먼 상원의원이 추진한 셔먼 반트러스트 법(The Sherman Antitrust Act)을 만들었다. 이 법은 정당한 경쟁을 무력화시키는 담합적 독점을 금지했다.
파함의 눈에 당시 미국은 소수의 손아귀에 들어간 세계의 부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야고보서 5장에 기록된 대로 주님의 임박한 재림의 증거들 중 하나로서, 그 부를 제휴사들과 주식회사들과 신탁회사들에 쌓았다. 파함의 우편에는 정부들과, 부자들이 있고, 좌편에는 공장 안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착취당해 온 “임금 노예들”(wage slaves)의 집단들이 있었다. 파함은 옛 질서의 집권세력은 언제나 부자들이었으며, 그들은 이익을 위해 근로자들을 착취하고, 전쟁과 끝없는 무정부상태로 내몬다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세상 정부들은 부자들, 귀족들, 그리고 금권정치가들의 손아귀에 있었고, 그들은 민중의 이익에 관련된 모든 법적 조치를 사전에 차단하여, 결국 세상의 임금 노예(wage-slavery)들은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에 따르면, 독일과의 전쟁은 독재정치(autocracy)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왔겠지만, 편중된 부를 이용한 금권정치(plutocracy)의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모든 나라에서 동맹 파업과 폭동을 통해 혁명들을 일으키고 있었다. 파함은 야고보서 5장을 인용하며 부를 독차지한 사람들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실, 파함은 자본가 정신이나 부의 창출의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분적이고 부정적 측면에 관심을 기울였다. 2002년에 졸탄 엑스(Zoltan J. Acs)는 미국 자본가들의 긍정적 기여를 재조명했다. 그는 미국 자본주의는 다른 나라의 산업 자본주의 유형들과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 점은 그것의 초점이 역사적으로 자본가 정신(entrepreneurship)에 의한 “부의 창출”(the creation of wealth)뿐만 아니라, 인류애 또는 박애/인류애(philanthropy)에 의한 “부의 분배”(the reconstitution of wealth)에도 맞추어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라모레욱스(Naomi R. Lamoreaux)는 기업가들이 가장 존경을 받은 시기는 미국의 19세기 후엽이었다고 보았다. 그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파함은 미국 자본주의의 두 가지 긍정적인 측면들 중에서 자본가 정신에 의한 “부의 창출”의 전체적이고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분적이고 부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고, 인류애에 의한 “부의 분배”에 관심이 더 많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파함의 비판은 주로 “신앙이 없으면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자들과 부자들”(the ungodly profiteers and the rich)에게 행해졌던 것이다.
파함의 금권정치에 대한 비판은 파함의 초기 주요 활동무대였던 캔사스주에서 발흥했던 인민당의 기득권 세력의 금권정치 비난을 떠올리게 한다. 캔사스와 네브래스카는 기계화된 농업단지가 되었고, 농업의 기계화는 과잉생산을 낳았으며, 그 결과 농민들의 수입이 감소했다. 농민들은 자기들의 수입은 감소하는 반면에 철도회사와 중간업자들만 이득을 보고 있다고 판단했으며,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인민당(The Populist Party)과 같은 정치적 농민 연대를 결성하고자 했다. 인민주의는 복음주의적 기독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인민적 복음주의자들은 교권의 중앙집중을 반대하고 개교회의 자율성과 개인적 영적 표출들을 강조했다. 인민주의는 미국의 농업인들(farmers)의 연합으로서 계급 입법과 집중된 자본의 잠식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인민주의자들은 기득권 세력들이 경제적이고 정치적 특권의 금권정치를 확립시키려는 소위 “금권”(money-power)을 비난했다. 그들은 그런 부와 특권의 체계가 중노동자들의 희생에서 획득된 것이라고 믿었으며, 그리고 이것이 미국에서 빈곤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그런 체계는 그 질서에서 노동이 마땅한 대가를 받는 하나님의 자연적 질서를 어지럽혔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들은 정치적이고 경제적 권력이 정직한 노동을 하지 않는 소수의 집단의 손에 쥐어져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노동에서 착취한 이득으로 부를 쌓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파함은 자본주의와 비정상적으로 결탁한 기독교적 국가주의(Christian Nationalism)와 애국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옛 문명은 국가주의라는 이념에 의해 유지되고, 또한 애국주의라는 이념에 의해 지지를 받습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1898년부터 파함이 벧엘성경학교를 세웠으며 오순절 운동을 시작시켰던 1900년까지 스페인과의 전쟁을 벌였다. 맥컬러프(M. McCullough)에 의하면, 그 스페인과의 전쟁은 “메시아닉 개입주의”(messianic interventionism)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그것은 미국은 공의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 충성을 증명하는 이스라엘의 정신을 유산으로 받았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이라는 짐을 지는 데 있어서 예수님의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구받았다는 것이다. 당시 장로교 목사였던 다이크(Henry van Dyke)는 그 전쟁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에서 자신의 싸움을 싸우셨던 정신과 동일한 정신으로 수행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파함은 기독교 국가들과 개인들이 애국이라는 명예를 제1신조로 삼는다고 비꼬았다. 그리고 파함은 그들이 그 알량한 제1신조를 위해 전쟁에 나가서 매우 적은 돈을 받고 타인을 죽이기도 하며 자기 죽임을 당한다고 파악했다. 파함은 그런 행태를 몰렉 신에게 자신을 양도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제물로 선정된 어린아이들을 불로 달구어진 소머리에 사람의 형상의 우상신 몰렉에게 인신공양 했던 행태는 모세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결단코 자녀를 몰렉에게 주어 불로 통과하게 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레 18:21). 파함은 그런 무모한 죽음을 몰렉신에게 인신공양 하는 것과 빗대어 말했으며, 그래서 그런 행위를 “부끄러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소위 기독교 국가들이 스스로 전쟁에 휩싸이는 것은 “자신들의 게걸스런 식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고 간파했다. 즉, 그는 당시 기독교 국가들이 선과 정의 실현을 위해서보다는 경제적 또는 정치적 이득을 위해 제국주의 팽창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1904년에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은 제국주의의 기반인 군국주의를 금권정치와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 파함은 기독교 국가들이 부추기고 있는 군국주의에 그 기반을 두는 애국주의를 결국 돈벌이를 위한 명분에 불과한 것이며, 국민들이 그 애국몰이에 착취당하며 희생당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파함의 자본주의 비판 목록에는 상업적 제국주의의 팽창도 있었다. 그는 미국이 저임금으로 근로자들을 착취하여 생산한 상품을 식민지에 팔아 폭리를 남기고 있는 팽창을 추구하는 상업적 제국주의국가로 규정했으며, 그런 “상업적 제국주의 팽창”을 위해 미국과 식민지의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의 피를 흘리고 있다고 보았다. 파함이 활동했던 시기인, 1870년에서 1914년은 신제국주의 시대(The Age of New Imperialism)라고 일컬어진다. “신제국주의”는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모든 산업화 국가들에 의해 주도된 전 세계적 움직임이었다. 1890년에 미국은 영국보다 거의 두 배의 산업물을 생산해냈다. 1800년대 말부터 미국에서는 미국이 막강한 경제력을 활용하여 영국 등 다른 나라들과 힘을 겨룰 수 있도록 팽창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증가하였다. 이들의 주장에는 “적자생존”이라는 사회적 다윈주의(social Darwinism)가 내포되었다. 미국은 이 시기에 파나마 운하,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하와이, 하이티 등 남미, 태평양 연안 지역을 식민지로 삼았다. 파함의 오순절 운동의 신학적 기반과 시작의 해인 1900년에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브라이언이 세운 전략은 공화당을 “제국주의”(Imperialism) 당으로 몰아세우는 것이었다. 파함은 이런 제국주의적 야망에 대해 “교만하여져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 힘과 자기 영광으로 해외로 진출하여, 임금을 미끼로 근로자들을 탄압”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파함은 소위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삼은 기독교 국가들이 기독교 전파를 명분으로 삼고 전쟁으로 제국주의를 확장시키며 인류애를 파괴하는 것을 비판했다. “인류애”(philantrophy)는 파함이 추구하던 중요한 것이었다. 그의 아내 사라(Sarah E. Parham)에 따르면 파함은 종종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인류(humanity)를 위해 바쳐야 합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파함은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다 목사보다는 의사가 인류를 사랑하는 일을 더 잘 한다고 판단하여 의학 공부로 방향을 전환했던 적도 있었다. 파함은 “소위 기독교 국가들이 전쟁과 칼로 세상을 기독교화 하려 함으로써 적그리스도의 영을 계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파함에게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미국을 포함한 서구의 기독교 국가들의 이런 인명 경시가 “그리스도의 대의”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파함의 눈에는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국가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박애와 인류애”를 몸소 보여주시며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대의”를 파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대의”(the cause of Christ), “박애와 인류애”(philantrophy, humanity)가 사망의 싸움에 먹히고, “천국은 쇠하고 지옥은 그 입을 열고 있다.”고 한탄했다. 생명을 살리고 지옥의 문을 막으며 천국을 흥하게 해야 할 기독교 국가들과 그 국민들이 반대의 길을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파함은 자본주의 자체를 거부했는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본주의에 대한 파함의 날카로운 비판의 표적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 또는 그것의 핵심 요소들이 아니었고, 그것의 부정적 산물들이었다. 예를 들면, 파함은 자본주의의 근본 요소인 “재산의 사유”를 비판하거나 거부한 적이 없다. 파함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forsaking all)은 버리는 것(desertion)을 의미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만약 모든 것을 버리려 하는데 그러나 아버지나 어머니 같은 우리를 의지하고 있는 가족들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이 그들을 부양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있도록 허락할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즉, 파함은 자본주의의 근간인 사유 재산을 부정하지 않았고, 필요한 만큼의 적절한 사유 재산을 인정했다. 파함에게 “신앙의 자유”라는 미국의 토대는 미국이 개인의 자유, 나아가 개인의 소유의 자유를 옹호하는 기반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파함은 결코 개인의 사유라는 그 기반을 공격하거나 허물기를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하나 예를 들자면, 파함은 자본주의 국가 미국의 부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그는 “미국과 같은 부유하고 훌륭한 나라”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파함은 천국의 대사들이 먹을 것을 위해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것을 미국과 영국을 빗대어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만약 “미국과 같은 부유하고 훌륭한 나라”(a wealthy and respectable country)의 장관이 영국 관헌들에게 자신의 증명서들을 제시하면서 “저는 미국의 장관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저에게 일 년에 오천 달러를 주어서 저에게 관사를 제공해 주셔야 한다는 것을 양해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에드워드 왕(King Edward)은 그 장관을 최저 요금 객실에 태워 정중하게 미국으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파함은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 미국을 “존경할 만한” 나라로 인식했다. 파함은 “부유한”과 “존경할 만한”을 대립시키지 않았다. 만약, 그가 자본주의의 “부”를 경멸하기만 했다면, 그렇게 “존경”과 나란히 동등하게 양립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IV. 파함의 자본주의적 교회 이해와 비판
파함은 두 세력의 싸움에서 교회가 정부, 부자들(자본가들), 애국주의자들과 함께 구질서 측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개신교와 자본주의의 밀접한 관계를 인식했던 것이다. 막스 베버(Max Weber)가 파악한 것처럼 유럽 자본주의의 발전은 구교도들보다는 개신교도들, 특히 칼빈주의자들에 의한 것이었다. 미국 자본주의의 발전에 있어서도 미국 교회, 특히 개신교회들과 개신교도들의 공헌은 지대한 것이었다. 1904년에 미국을 방문한 베버는 미국 개신교와 자본주의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실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한 세대 전 미국에서는 교회와 국가와의 엄격한 분리에도 불구하고, 사업가들은 “어떤 교파 교회에 다니십니까?”(To what church do you belong?)라며 서로 소속 교파(Konfessionszugehörigkeit)를 물어보았다. 베버는 유럽인의 관점에서는 생소한 이런 관습이 신용과 관련된(Kreditgewährung) 조사의 기능을 발휘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어나는 모든 사람의 유아세례와 더불어 회원의 자격을 부여했던 구교회와는 달리 종교개혁 이래로 개신교회는 그 회원의 자격을 자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에 제한해 왔었다. 그런 전통 안에서 미국의 사업가들은 자발적인 종교단체 가입 여부를 물었다. 그리고 같은 업종의 사람들만을 회원으로 받아들였던 중세의 길드와는 달리 그 사업가들은 오직 어떤 표준적인 윤리적 특성(der ethischen Qualitäten)을 드러내 보여 온 사람들만을 선별하여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베버에 따르면, 그래서 분파교회에의 소속은 그 개인의 “윤리적 자격증명서, 특히 사업 윤리의 자격증명서”(ein ethisches, insbesondere auch ein geschäftsethisches, Qualifikationsattest)를 의미했다. 그런데, 베버에 따르면, 당시에는 이런 어떤 교파에 속하는가가 아닌, 개신교의 세속적 금욕주의를 반영하는 덕을 살펴보는 시험과 윤리적 입증 후 선거에 의해 어떤 조직에 어떤 사람이 받아들여졌다. 미국에서 자본주의와 교회의 밀접한 관계는 부의 추구와 윤리의 조화 문제를 야기시켰다. 미국 기독교 시초로부터 교회의 땅, 주식, 사람 투자와 선한 목적을 위한 그 수익의 사용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성경적 윤리를 삶의 모든 곳에, 특히 교회가 그 부를 투자하기를 선택하는 곳에 적용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논쟁이 있어 왔다.
사이난(Vinson Synan)에 따르면, 1867년 시작된 남북전쟁 이후 미국의 모든 교회들은 진화론, 사회주의, 고등비평, 그리고 사회복음이 던진 도전들을 경험했다.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물결이 농촌 생활의 근간을 위협하였다. 재벌 기업들의 출현, 대도시에 만연한 악, 정치적 부패, 그리고 불균등한 부의 분배 등이 개신교 내에서 딜레마를 가져왔다. 대기업의 윤리와 도덕이 점점 더 교회의 사고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레만(Chris Lehmann)은 미국의 신앙적 문화는 그것의 전천년주의적 종말론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진전과 긍정적 사고라는 강한 미국적 신앙의 인큐베이터였다고 보았다. 마티(Martin E. Marty)에 따르면, 기독교화 된 사회적 다윈주의는 “부의 복음”(The Gospel of Wealth)으로 귀결되었고, 물질적 번영은 하나님의 은총의 표식이 되었으며, 물질적 번영을 누리는 사람은 시장의 경쟁에 잘 적응하여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로 인식되게 되었다. “부의 복음”(The Gospel of Wealth)은 “철강 왕”(King Iron)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카네기(Andrew Carnegie)가 만든 말이며, 그의 저서들 중 하나의 제목이기도 했다. 그는 기독교적 소명에 입각하여 성실하게 일하여 부를 창출하고 축적하는 것을 옹호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그 부를 다시 적절하게 분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것이 인류와 국가와 사회를 진화(evolution)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19세기 후반에 개신교회는 중산층의 사고와 가치의 중심이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파함은 기독교적 자본주의 국가들이 돈벌이를 위해 국민들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만 비판하지 않고, 그런 국가들과 결탁하여 그 국가들에 자양분을 공급해 주는 교회들을 비판했다. 19세기 이래로 목사들의 다양한 기독교 국가주의운동들과의 연루는 “성직자 국가주의”(clerical/clero/clerico nationalism)로 알려진 기독교 국가주의의 특이한 형태의 발생 원인이 되었다. 심지어 어떤 특이하게 급진화된 유형들의 성직자 국가주의는 다양한 유럽 국가들(특히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특히 20세기 상반기, 즉 양차 대전 사이 동안 극우 정치 스펙트럼 상에서 성직자적 파시즘(clerical Fascism)을 낳았다. 파함은 기독교 국가들과 국민들이 비정상적인 애국주의에 빠지게 된 데에는 교회의 책임이 크다고 비판했다. 그는 교회들이 그런 애국주의를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그 가르침에 의해 의식화된 그들을 전쟁터에 내몰고 있는데, 이는 전쟁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국가들을 유지시키는 자양분을 제공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본 것이다. 파함은 “국가주의를 유지시키는 애국주의의 주요 선생들은 교회들입니다. 목사들이 백주에 이방인들을 총으로 쏨으로써 그들의 교화를 소리 높여 권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정부, 부자들, 교회들, 그리고 그들이 조종할 수 있거나 그들을 위해 싸우도록 애국적으로 고무시킬 수 있는 세력들”을 동일한 부류로 분류했다. 파함의 이런 비정상적인 돈을 위한 호전적 애국주의적 교회에 대한 비판은 파함의 주무대였던 캔사스에서 발흥한 인민주의(Populist)의 비판과 유사하다. 당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 전쟁이 선교사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기 때문에 그 전쟁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에 대해 인민주의자 보킨(Jeremiah D. Botkin)은 “기독교는 힘으로 정복하려 하지 않고, 사랑이라는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정복하려 한다. 당신들은 13인치 총으로 예수의 종교를 필리핀 사람들 안으로 욱여넣을 수 없으며, 미국의 무력으로 그것을 그들 안에 찔러 넣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파함도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검으로 이기는 자는 검으로 망하리라’ 말씀을 따라 전쟁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쳐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파함은 교회들이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헐벗은 자들을 입히고, 돌아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애적 가르침을 외면해 왔다고 판단했다. 그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 과부와 고아들처럼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 것을 “보편적 인류애”(universal humanity), “박애”(philantrophy), “형제애”(brotherhood)라고 칭했다. 파함에게 형제애는 인간이라는 피조물 위에 지울 수 없게 생득적(innate)으로 새겨진 창조주의 속성들 중의 하나이다. 루트에 따르면, 파함은 캔사스 인민주의자들(Populists)과 유사하게 미합중국의 신앙의 자유와 인류의 보편적 형제애라는 설립 원칙을 그 시민 정부의 기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파함이 보기에 그 국가가 이 원칙을 버렸고 이것은 동시에 하나님을 버린 것이었다. 비록 인민주의자들은 종교적 신념들에 다양한 입장을 취했지만, 대부분 자신들의 비전을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삼아 정치적 행동으로 실현하려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the fatherhood of God)과 “사람의 형제 됨”(the brotherhood of man)이라는 원리위에 기반을 둔 보편적 인류애(common humanitarian)를 공유했다. 인민주의 대다수에게 이것은 강자로부터 약자를 보호하고 개인의 존엄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했다. 캔사스 인민주의자들은 나라가 이 기본적 모범을 무시해 왔었다고 믿었다.
파함은 기성 교회를 돈 때문에 정치권과 야합한 부패한 “교회주의”로 규정했다. 파함은 “하나님은 이 차갑고, 생명 없고, 유행만 따르는 교회주의(churchianity), 고용되어 강단에 진열된 꼭두각시들을 역겨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바빌론을 뭉개버리시기 위해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싸움을 허락하려 하십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교회주의”는 인민주의자들이 기성 교회를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기도 했다. 인민주의자들은 기성 교회들이 돈 때문에 정치권과 야합하기 때문에 잘못된 정당이 흥왕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들은 진정한 “기독교” 대 부패한 “교회주의”(Christianity vs Churchianity)의 싸움으로 설정하고, 교회주의에 대한 적의를 드러냈다. 그리고 다른 미국 안의 불의라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교훈을 존재하는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상황에 적용할 것을 요구했다. 교회는 인민주의의 타깃들 중의 하나가 되었는데, 인민주의자들은 주류 교회들이 유린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변호해 주는 그것들의 전통적인 역할에 익숙해져 버려 둔감하게 되어졌었다는 인식 때문에 기성 교회들을 통렬하게 비난했다. 루트는 파함이 기성 교회의 목회자들을 돈을 위해 성도들을 기만하는 자들이라고 비판한 것에서 “초기 오순절주의와 인민주의의 유사성”(the parallels between early Pentecostalism and Populism)을 이끌어 내기도 하였다. 루트에게 파함의 그런 비판은 정치적 경제적 엘리트들이 사람들을 유기해 왔었다는 1890년대의 정치적 경제적 인민주의자들의 반기득권(antiestablishment) 신념과 매우 유사했다.
파함은 노동조합 출현의 원인을 교회의 가난하고 소외된 자의 외면에서 찾았다. 파함은 노동조합원은 아니지만 그것을 반대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교회가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헐벗은 자들을 입혔다면, 그런 운동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현대 노동조합과 지부들이 적그리스도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파함은 기독교 교회가 가난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을 돌보아야 할 의무를 수행했다면, 그런 기관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노동조합들이 존재하고 번창하고 있는 이유는 “기독교 교회들이 과부와 고아들을 돌보며 순전하고 흠 없는 신앙을 실천하기를 배우기까지, 우쭐대는 광신자들과 괴짜들이 자기들의 불경하고 장황한 이야기를 그칠 때까지 그것들에 대한 수요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파함은 사람들이 현대 교회들 안에서 박애, 인간애, 형제애를 발견하지 못하게 되면, 모든 사람 안에는 그런 것에 대한 생득적인 욕구가 있기 때문에, 수천의 다른 경로들을 통해 그런 형제애라는 공통 정서를 추구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파함은 돈을 사랑하는 목사들을 비판했다. 그는 목사들의 노동과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공헌을 저울질하기도 했다. 한때 파함에게 목회라는 것은 특별한 정착지 없는, 많은 굶주림의 상황들과 힘겨운 순회들이라고 여겨졌으며, 그래서 그것은 다른 어떤 직업들만큼도 매력적이지 못했다. 특히 목회자는 사회가 제거할 수 없는, 그리고 부양하려 하지 않는 큰 짐으로 여겨졌을 때 그 매력은 배로 감소했다. 파함에 따르면, 사람들이 자주 “어떤 목회자들은 일반적으로 학교 교사들의 근로시간의 육분의 일만큼만 일하면서도 그들보다 더 많은 급료를 요구하지만, 그 대신에 사회에 거의 또는 전혀 공헌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곤 했다. 파함은 목사들의 노동이 성도들의 지갑을 여는 데 집중되며, 그 지갑은 부정한 돈으로 차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는 목사들이 “사람들의 지갑 끈들을 잡아당기거나 터트려 열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배에 굴, 딸기 케이크 또는 아이스크림을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금자가 되는, 그리고 돈을 뜯어내는 데 사용되는 모든 책략들과 도박 기술들을 철저하게 교육받고 훈련받는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조플린 신문(Joplin Daily Globe)에 따르면, 파함은 지역 목회자들의 분노를 자아내었는데, 그 분노의 주요한 이유들 중의 하나가 바로 파함이 직업적 성직자들을 통렬하게 공격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들이 병자들과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자기들의 목회적 책무들을 묵살하고는 돈 벌 궁리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파함에 의하면, 이런 “천국의 독자적 방식의 대사들”(self-styled ambassadors of the heavenly country)이 사람들(the people)이 교회에 등을 돌리고 있는 원인이다.
파함은 물질적 부유함과 외적 치장만을 추구하는 교회가 영혼을 구원시키지 못하는 마지막 시대인 라오디게아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보았다. 그의 눈에 당시 교회들은 차지도 뜨겁지도 않고 미지근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가난하고, 부족하고, 눈멀고, 헐벗었다”는 판결을 받았다. 교회들은 “거칠고 투기적인 상업주의로 달려 들어가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데 사용되어야 할 하나님의 돈을 장식품들과 교회 건물들을 위한 불필요한 지출에 낭비하고 있었다.” 남북전쟁 이후 젊고 진보적인 목사들이 감리교 내에서 부상하면서 나이 든 설교가들은 화려한 가운을 입은 성가대, 웅장한 오르간 그리고 빛나는 신학대학교 출신 목회자들과 같은 일련의 혁신들을 그저 서글픈 눈빛으로 바라보아야만 했다. 그런데 파함은 그런 “진보적인 목사들”이 목회하는 교회들을 “비진보적(unprogressive)”이라고 비꼬았다. 그리고 교회들은 주님으로부터 “불로 연단된 금(경험적 구원experimental salvation)을, 그들이 가려질 수 있는 흰 옷(그리스도의 의)을 사도록, 그래서 그들의 벌거벗은 부끄러움(자기 의라는 추악한 누더기 옷이나 혹은 회심하지 못한 상태)이 덮어지도록, 그리고 안약을 그들의 눈에 바르라(성령의 기름 부으심)”는 권고를 받았다. 파함의 판단에 따르면, 교회는 옹색한 신조주의, 교파주의에 빠져, 영혼을 구원하는 영적 힘을 상실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
파함의 교회 비판은 셀던(Charles M. Sheldon, 1857‐1946)의 비판과 닮은 점도 가졌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점을 가졌다. 둘의 유사점은 첫째로, 파함과 셀던은 같은 시기에 토페카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둘째로, 사회적 복음(Social Gospel)을 추종했던 셀던과 오순절 운동을 일으킨 파함은 자기들의 에너지를 불행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당대의 사회적 부정들과 인민주의의 요구들에 반응했다는 것이다. 토페카에서, 그 서부 농업의 난제들은 19세기 후반의 도시화, 미국 종교사의 이야기에서 중심적인 것으로 출현했던 사회적 복음과 오순절주의라는 난제들과 만났다. 파함은 1898년에 벧엘 치유의 집(Bethel Healing Home)을 토페카에 설립하여 병자들과 고아들과 실직자들을 돌보기도 했다.
벧엘 치유의 집의 목적은 치유를 바라는 사람들을 위한 가정과 같은 안락함을 제공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그들의 몸의 필요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적 필요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또한 그 기독교 치유의 집을 고아들에게 제공했고, 실직자들을 위해 사역했습니다.
남북전쟁 후 미국 산업의 급격한 팽창 시기에 노동조합을 인식시키기 위해 씨름하던 근로자들은 교회와 그들을 착취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문제시했다. 교회가 때때로 악덕 집주인과 같다고 느낀 도시 사람들도 그 관계를 문제시했다. 노동조합 결성자들, 추문 폭로자들, 인민주의자들, 그리고 진보주의자들은 미국의 경제 시스템의 윤리와 교회의 그 시스템에 참여 윤리의 심각한 문제를 비판하면서 셀던과 같은 사회적 복음주의자들과 합류했다. 사회복음 운동은 제어되지 않는 자본주의와 제한된 민주주의에 이의를 제기하고, 근로자들을 위한 정당한 임금을 지지하였다. 사회복음 운동은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난과 어린이 노동 등 다른 문제들을 포함하는 사회문제 개선과 재건 프로그램을 제공하려 했다.
파함과 셀던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파함이 영혼의 중생에 보다 집중했다면, 셀던은 그 점을 도외시했다는 것이다. 19세기에 문자적 성경주의(literal Biblicism)는 개신교 “복음주의”(old evangelicalism)라는 기치 아래서 진화론, 고등비평, 에큐메니즘, 후천년주의, 사회적 복음에 기우는 요소들을 배척하는 전천년주의, 근본주의 그리고 성결운동 신학과 함께 발전했었다. 전천년주의자들은 천년왕국/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노력과 역사를 끝장내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비로소 시작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재림이 임박하였으므로 불신자의 영혼을 구원해야 한다는 촉박함을 느꼈다. 파함은 불신자의 영혼 중생을 기본으로 삼는 성결운동에 투신하였고, 이어 오순절 운동을 일으켰으며, 신학적 자유주의의 근간인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을 거부하였다. 반면에 후천년주의자들은 천년왕국은 인간의 노력에 의한 사회 개선에 의해 이 땅에, 좁혀서 미국에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베어만과 밀스(Alan F. Bearman & Jennifer L. Mills)가 잘 파악한 것처럼 셀던은 기독교의 전통적인 믿음으로 개인적 영혼 구원을 도외시하고 윤리적으로 사회구조를 변혁시키려 한 고전적인 신학적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기독교 사회주의 또는 사회복음의 전형이었다. 그의 유명한 소설은『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In His Steps: What Would Jesus Do?)이다. 예수를 한 사람의 윤리적 모범으로 다루는 것은 셀던 특유의 것이 아니다. 버니지(Cara L. Burnidge)가 간파한 것처럼 셀던의 소설은 예수가 어떻게 사회복음주의자들에게 다루어졌는지에 대한 가장 간명하고 주요한 설명을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자유주의적 개신교 사상사 그리고 특별하게 사회적 복음이 이 질문에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복음 추종자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의 노력에 의해 여기 역사 안에서 지금 창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등비평에 바탕을 둔 자유주의 신학은 역사적 예수와 신앙적/신화적 그리스도로 분리하고, 예수의 죽음의 의미를 인간의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대속자 예수”가 아닌, 인간일 뿐인 “모범자 예수”의 관점에서 모든 인간에게 희생적 삶의 모범을 보인 것에 한정해 왔다. 파함의 영혼 구원이라는 모든 문명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좁혀서 본질적으로 영혼 구원을 도외시할 수밖에 없는 셀던의 사회복음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파함은 비정상적으로 부자들만 비호하는 교회가 파괴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는 “이 부자들과 빈자들 사이의 싸움에서 조합들과 지부들이 파괴될 뿐만 아니라, 계시록 17장과 18장에 기록된 대로 바빌론과 그 딸들인 로마 가톨릭 그리고 개신교들이 완전히 파괴되어 와해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계시록 3장의 후반부를 성취할 것이었다. 파함은 상인들과 선장들을 대표하는, 돈을 위해 일하는 목사들과 선교사들은 “아, 슬프도다! 아, 슬프도다! 아, 슬프도다!” 하고 울부짖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입에서 그들을 토해 버리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파함에 따르면 교회의 파괴는 민중들의 불과 검에 의해 수행될 것이었다. 그리고 민중들의 교회 파괴는 하나님께서 교회들의 교만, 허식, 무감각, 불신앙,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의 결여 때문에 민중들에게 바빌론과 그 딸들인 로마 가톨릭과 그 개혁주의 딸들인 교회들을 응징하도록 허락하실 것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었다.
V. 나가는 말
파함은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문명을 판별하는 시금석으로서 크게 두 가지 상태를 제시했다. 파함의 시금석의 본질은 “기독교 초기 교훈”이었으며, 그 첫째 상태는 영혼의 중생과 성결에 기반을 둔 덕 있는 삶을 사는 것이었으며, 두 번째 상태는 사람들 사이에서 부의 편중되지 않는 분배였다.
파함의 자본주의 평가는 그의 건강한 교회관과 건강한 국가관의 관점에서 내려진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파함에게 건강한 교회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신앙을 고백하고 중생한 개인들의 모임, 내부 구성원들 개개인의 성결한 윤리적 삶, 외부의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부자든 빈자든 형제처럼 평등하게 대하는 교회였다. 그리고 그에게 건강한 국가는 중생한 자유스런 개인들이 공화정 집단을 구성하고 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여 국회에 보내어 국가의 구성원들의 자유스럽고 평등한 삶을 보장하는 법률을 제정하게 하고, 또한 국가수반을 선출하여 국민들의 자유스럽고 평등한 삶을 위한 행정을 집행하게 하고, 또한 중생한 자유스런 개인들이 기업가도 되고 근로자도 되어 재화를 생산해 내고, 발생하는 이익을 타당하게 분배하여 토지를 포함한 사유재산을 축적하고 건강하고 존경할 만한 자본주의를 형성하고, 다른 국가들을 식민지로 만들지 않고, 그 국가들과 자유스럽고 평등한 통상 관계들을 유지하고, 다른 국가들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무력으로 강제하지 않고, 자유스런 의사에 따라 신앙고백에 의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개신교적 윤리에 기반을 둔 공화정적 복지적 자본주의 국가였다.
파함은 그런 건강한 교회와 건강한 국가의 관점에서 교회와 국가가 건강을 잃어버린 것을 비판했다. 파함은 교회가 세속적인 사상과 문화에 젖어들어 변질되어 스스로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고, 나아가 불신자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고, 물질적 부유함과 외적 치장에만 치중하게 되자, 그 여파로 개인의 신앙의 자유와 더불어 평등/박애/형제애에 기초한 미연방공화국 자본주의가 뿌리째 썩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그가 보기에 개인의 신앙의 자유에서 신앙이 배제되자, 의무와 통제력을 상실한 개인의 세속적 사상에 의한 자유가 난무하게 되고, 진정한 신앙에서 발생하는 건전한 윤리가 상실되었다. 그 세속적 개인 중심에 따른 윤리의 상실은 자본가들의 비정상적 연합과 담합, 자본가의 물질 축적 과정에서의 비윤리성으로 인한 근로자의 열악한 작업환경과 임금착취를 통한 큰 빈부의 격차, 근로자들의 담배와 술 중독, 매춘 등에 의한 타락과 건강 상실, 돈을 위해 그 구조를 만들어낸 자본가와 행정가들의 담합, 편중된 부를 이용한 금권정치로 인한 선거와 대표에 의한 법률제정‧행정실행‧사법판단의 부패, 나아가 자유와 평등/박애에 입각한 공화정과 자본주의 체제의 부패를 낳았다는 것이다. 또한 개인의 신앙의 자유와 평등이 변질되자, 안으로는 물질적 부를 위한 비정상적인 국가주의와 애국주의가 형성되었고, 그 변질과 비정상이 밖으로 뻗어나가 물질적 부만을 추구하는 제국주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파함이 이렇게 자본주의를 비판하였지만, 그는 여전히 자본주의 안에 있었다. 파함은 기독교적 자본주의자의 한 사람으로서 진정한 자본주의에서 벗어난 미국을 정상으로 돌아오도록 애정을 가지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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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Pentecostal Father Charles F. Parham and Capitalism
Lee, Chang-Soung (Ph. D.)
Assistant Professor, Systematic Theology
Korea Christian College
Republic of Korea
In the eyes of the founder of the Pentecostal movement Charles F. Parham, the world was divided between two huge powers: Capitalism and Socialism, and they were fighting against each other. This article is the first of the three successive articles tracing that in this context, Parham presented two states: the regeneration of the soul and the general distribution of material goods as the normal and ideal foundation of civilization. He attempted to understand, evaluate, and criticize Capitalism and Socialism, and then walk independently, proposing “Pentecostal Full Gospel Unity” as an alternative. Parham saw that the capitalistic church and the capitalistic nation decayed because the church indulged in secular thinking and culture and was unable to save herself and the souls of unbelievers, and thus concentrated her attention and action upon material wealth and outer decorations. As a result, the capitalistic United States, rooted in the freedom of faith and philanthropy, had deteriorated. For Parham, after faith itself had been excluded from the "freedom of faith," the freedom of secular individual thought, which had lost duty and control prevailed and a healthy morality which sprang up from true faith disappeared. This loss of morality through secular individual centeredness produced the abnormal alliance and collusion of capitalists, poorer labor conditions for workers, a big gap in wages, the depravation and loss of working people's health from tobacco, liquor, and prostitution, the conspiration between capitalists and administrators for money, the plutocracy using abnormally concentrated wealth, the corruption of the republic and capitalistic system, and the growth of an abnormal nationalism and patriotism, without imperialism. In the end, although Parham criticised Capitalism, he never abandoned Capitalism but remained in it.
주제어
찰스 F. 파함, 오순절주의, 자본주의, 개인 신앙의 자유, 중생, 재산의 사유, 부의 분배, 부의 복음, 사회복음, 인민주의자
Charles F. Parham, Pentecostalism, Capitalism, the Freedom of Individual Faith, Regeneration, Private Ownership, the Distribution of Wealth, the Gospel of Wealth, Social Gospel, Populist
논문투고일: 2019. 12. 1. 논문심사일: 2020. 2. 12.
게재확정일: 2020.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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