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오순절지도자 파함과 더함의 신학적 이중전선(이창승).pdf
『영산신학저널』 33 (June 2015), 71-98.
초기 오순절지도자 파함과 더함의
두 가지 신학적 전선들
이창승
순복음총회신학교, 조직신학
jesusgate@daum.net
국문초록
초기 오순절지도자 파함과 더함은 한편으로 보수주의의 은사중단론(Cessationism)에 저항하고 은사지속론(Continuationism)을 주장하였으며, 또한 다른 한편으로 자유주의의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Higher Criticism)을 비판하며 거부하고 전-비평적(pre-critical)으로 읽기를 고수함으로써 신학적으로 이중적인 전선에서 분투했다. 파함과 더함에게 은사중단론과 고등비평은 둘 다 성경의 경험을 현대에 재경험하는 것을 가로막으려는 사단의 계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오순절주의가 보수주의의 핵심인 근본주의와 함께 갖는 공통점은 성경에 대한 전-비평적(pre-critical) 접근 방법이다. 반면에 오순절주의는 보수주의는 성경시대 이후 특정 은사의 중단이냐 지속이냐에 대한 논의에서는 상이점을 보인다. 그런데 오순절주의의 은사지속론과 보수주의의 은사중단론의 대립은 1920년대에 와서야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 대립은 초기 오순절주의자들, 특히 오순절운동의 아버지 파함에게서 벌써 드러났었다. 이적은 사도들의교회에 한정된 것이었다고 주장한 워필드는 파함이 가장 염두에 두었던 은사론에 있어서 상대자였을 것이다. 오순절 운동의 성화론적 방향 전환자 더함도 과거 성경시대의 이적을 옹호했던 워필드 등등이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는 모든 현대의 이적들에 반대해 온 것을 비판했다.
오순절운동은 그 시초부터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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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함은 1901년 오순절 운동을 일으키고 그 다음 해인 1902년에 쓴 첫 책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에서 전기, 중력 등의 보이지 않는 힘을 시인하면서 하나님의 개입에 의한 초자연적인 이적들을 거부하는 고등비평을 마귀의 입이라고 통렬히 비판하며, 고등비평가들을 과학자와 불신자와 함께 “동일한 족속들의 삼위일체”라고 평가했다. 더함도 역시 파함처럼 완강하게 고등비평을 비판하고 거부했다. 더함에게 엘리옷 등등이 주장한 고등비평은 성경의 영감성을 손상시키고 성경에 기록된 이적들을 신화로 전락시키려 했다. 또한 더함에게 고등비평은 기독교를 구원을 위한 종교가 아닌 도덕성 함양을 위한 집단으로 전락시키려 했다. 더함은 교육적이고 과학적 세계를 통해 옛 이적들, 즉 성경에 기록된 이적들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파괴하는 존재는 “사단”이라고 말했다.
I. 들어가는 말
초기 오순절운동의 지도자 파함(Charles F. Parham)과 더함William H. Durham)은 성경연구가 또는 신학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신학자들인 그들은 성결주의자들과의 성령침례와 성화와의 관계 그리고 성령침례의 증거에 대한 논쟁 이외에도 신학적으로 두 가지 중요한 전선에서 분투했다. 그 두 가지 전선은 그들이 한편으로는 보수주의에,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다.
파함과 더함은 한편으로 보수주의의 은사중단론(Cessationism)에 제동을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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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지속론(Continuationism)을 주장하였으며, 또한 다른 한편으로 자유주의의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Higher Criticism)을 비판하며 거부하고 전-비평적으로 읽기를 고수했다. 파함과 더함에게 은사중단론과 고등비평은 둘 다 성경의 경험을 현대에 재경험하는 것을 가로막으려는 사단의 계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은사중단론은 성경시대의 은사발생은 인정하지만, 성경시대 이후 이적들, 특히 방언이나 예언 등 소위 새로운 계시를 발생시킨다는 발성적 은사들 또는 임시적 은사들의 발현이 중지되었다고 주장해왔었다. 고등비평은 계몽주의적 이성을 바탕으로 초월적인 것의 역사 안으로의 개입은 물론 순수이성의 초월적인 것의 인식을 부정함으로써 성경시대에 조차 아무런 초자연적 은사도 발생할 수 없었다고 주장해왔었다. 파함과 더함은 성경의 경험들을 현대에 재경험하는 오순절 운동을 일으키고 지속해가면서 이런 보수주의의 은사중단 교리와 자유주의의 고등비평 방법과 그 결과물들과 싸웠다.
본 소고는 II장에서 파함과 더함이 당시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했던 은사중단론에 대해 어떤 반응을 했는지 살펴볼 것이며, III장에서 그들이 자유주의자들이 사용하고 있던 고등비평에 대해 썼던 글들을 분석해 볼 것이다. 그리고 이 작업은 주로 그들의 시대를 배경삼고 수행될 것이다.
II. 보수주의진영의 은사중단론에 대항한 전선
1. 오순절주의와 근본주의의 공통점과 상이점
오순절주의는 보수주의의 핵심인 근본주의와 공통점을 갖는다. 그 공통점은 성경에 대한 접근 방법이다. 오순절 교회에서 자라나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와 임마누엘 대학에서 가르쳤던 구약학자 쉐파드는 미 하나님의 성회의 근본 진리 진술이 특별히 성경에 관해 근본주의 언어들을 채용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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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오순절주의자이면서 풀러 신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치고 있는 스피틀러도 오순절주의와 근본주의는 성경을 전-비평적(pre-critical)으로 접근함에 있어서 “사실상 동일하다”(virtually identical)고 말했다.
그러나 오순절주의는 보수주의와 현저한 차이점을 갖기도 한다. 오순절주의는 근본주의와 성경에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일치를 보이지만, 성경시대 이후 특정 은사의 중단이냐 지속이냐에 대한 논의에서는 상이점을 보인다. 하나님의 성회 목사였다가 에즈베리 신학교 도서관장으로 일하며 글을 쓰고 있는 파우펠은 “오순절주의는 대체로 구 프린스턴 신학에 의존하면서 부상하고 있던 근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서 일어났다.”라고 보았다. 영국 엘림 오순절주의자 프로드샴은 1924년에 “우리는 오늘날 성경을 알 필요가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또한 성경에 더하여 하나님의 능력(the Scripture plus the power of God)을 알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순절주의가 근본주의와 유사하지만 한 가지 “더하기”(plus)에서 달라진다고 보았는데, 그 더해야 할 한 가지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다. 1910년에 성령침례를 받고 후에 미 하나님의 성회 총회장이 되었던 로스웰 플라우어는 1925년에 중앙 성경 학교(Central Bible Institute) 졸업식에서 행한 연설에서 근본주의자들을 바리새인들로, 모더니스트들을 사두개인들로 비유했다. 그에 의하면 모더니스트들은 성경에 기록된 이적 자체를 믿지 않기 때문에 사두개인들이며, 근본주의자들은 이적을 믿지만 오직 성경시대, 즉 과거에만 일어났던 것으로 믿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이다. 반면에 오순절주의자들은 “근본주의자들 중에서도 근본주의자들”인데, 그 이유는 오순절주의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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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도 하나님께서 능력을 행하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스피틀러가 지적한 것처럼 오순절주의와 근본주의는 현대에 방언 말하기라든가 육체적 치유 등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다.
근본주의자들은 오순절주의자들의 “더하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드디어 1928년 세계기독교근본주의연합회(the World's Christian Fundamentals Association)는 오순절주의를 “비성경적”(unscriptural)이고 근본주의적 기독교인들의 건전한 증언을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것으로 정죄하며 결별을 선언했다. 현재에도 오순절주의와 근본주의는 성경을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서 유사하지만, 특정한 성령의 은사들의 중단과 지속 문제에 있어서 중대한 이견을 보이고 있다.
2. 파함의 은사중단론 비판과 은사지속론 주장
은사중지론은 일찌기 교부시대부터 제기된 것이었다. 어거스틴은 초대교회 시대에는 믿는 자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말했는데, 그것은 복음이 방언을 통해 온 땅에 전해져야만 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그런 역할을 다한 후에 방언은 끝났다고 주장했다. 종교개혁시대에 루터는 성령께서 가시적 표적이 없이 말씀을 통해 오시는 것만 인정하고, 가시적이고 외적인 성령의 사역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며 거부했다. 그는 교회가 성립된 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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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가시적 오심이 그쳤다고 주장하여 외적 은사중단론의 근거를 “교회 확립”에 두었다. 칼빈은 로마가톨릭에 대항하기 위해 이적들을 원사도들에 제한시켰다. 미드레톤은 1700년대 중엽에 계몽주의적 역사비평 방법을 로마가톨릭이 교부 시대 이후 교리들을 지지한다고 주장하는 교부들의 이적에 관한 기록들에 적용하며 그 이적들이 발생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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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주의의 은사지속론과 보수주의의 은사중단론의 대립은 1920년대에 와서야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 대립은 초기 오순절주의자들, 특히 오순절운동의 아버지 파함에게서 벌써 드러났었다. 파함 시대에 이르러, 성경을 시대에 따라 구분하고, 성경 시대 이후에는 은사가 중단되었다고 주장하는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는『스코필드 관주성경』에 의해 대중화되었는데, 그 첫 판이 1909년에 출현했었다. 아마도 워필드는 파함이 가장 염두에 두었던 은사론에 있어서 상대자였을 것이다. 그 둘은 동시대인이었다. 워필드는 1851년에 태어나 1921에 세상을 떠났으며, 파함은 1873년에 태어나 1929년에 세상을 떠났다. 워필드는 1887년에서 1921년까지 프린스턴 신학교(Princeton Seminary)의 신학 교수로 일했다. 파함은 1900년에 벧엘 성경학교를 세웠고, 1901에 오순절 운동을 시작시켰다. 그리고 그의 첫 책인『광야에서 외치는 소리』(A Voice Crying in The Wilderness)를 1902년에 출판했으며『영원한 복음』(Everlasting Gospel)을 1919년에 펴냈다. 이 시기 전후에 워필드는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연구하고 강의하며 이적중단론을 펼쳤다. 그의 이적중단론은 1918년에 펴낸 한 권의 책에 집약되었다. 워필드는 1917년에서 1918년에 걸쳐 컬럼비아 신학교(Columbia Theological Seminary)에서 행한 토마스 스미스 강의(Thomas Smyth Lectures)를 1918년에『가짜 이적들』(Counterfeit Miracles)이란 제목으로 출판했다. 이 책의 첫 장의 제목은 “은사의 중단”(THE CESSATION OF THE CHARISMATA)이었다. 그는 이적은 “사도 시대의 교회를 구별하는 특징”이었으므로 “철저히 사도시대에 속한 것이었다.”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이적은 하나님께서 교회 설립을 위해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권위를 부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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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에 대한 보증” 또는 “사도들이 지닌 신임장”이었다. 따라서 이적은 “사도들의 교회”에 한정된 것이었고 사도들의 교회와 함께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파함은 보수주의의 그런 은사중단론 등 비성경적인 교리들에 대항했다. 파함은 오순절운동은 “사람들이나 교회들과 싸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죽은 형식들과 교리들이나 거친 광신주의를 살아 있는 진리들로 대체하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파함이 주도했던 오순절운동은 비성경적이라고 여겨지는 교리들(doctrines)을 성경적인 것들로 대체하려는 운동이었다. 그는 죄를 예수의 발에 내려놓았던 것처럼 인간이 만든 교리들을 그분의 발에 내려놓아 그런 비성경적 사상들이 씻겨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교리들 중에는 분명 은사중단론도 포함되었다.
파함은 은사중단론이 가져오는 폐해를 한 가지 예를 들어 말하면서 그 교리를 비판했다. 파함에 따르면 아이오와 주 마샬타운 침례교회의 일원인 한 아주 경건한 사람이 성경적 증거인 방언을 동반하는 성령침례를 받았다. 그런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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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교회는 “그들 가운데서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즉, 은사중단 교리를 주장했다. 그는 완강한 자기 교회의 은사중단론 주장에 흔들려 자기 체험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 교회에서 설 자리를 잃은 그는 “그의 오순절적 능력은 단지 자신들의 사악한 영매법의 한 현현에 불과하다고 그를 설득한 강신술사들에게 붙잡혔다.” 그는 그 교회에 의해 버림을 받고, 오히려 초자연적인 역사를 인정하는 강신술사에게 설득을 당하게 된 것이다. 차차 영적 능력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다가 결국 상실하면서 그는 병들어 괴롭힘을 당하다가 미쳐서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렸다. 파함은 “현대 기독교 교회의 편협성”, 즉 은사중단론에 치우침은 은사지속론을 포함하는 “진정한 성경적 교리들”을 믿거나 받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을 “강신술, 신지학(Theosophy), 크리스챤 사이언스 그리고 배교로 몰아붙이고 있다.”라고 말하여 은사중단론을 비판했다.
파함은 소극적으로 은사중단론을 비판만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은사지속을 주장했다. 그는 “이적들이 항상 교회의 한 부분 이었습니다.”(Miracles were always a part of the Church.)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사도들, 목사들과 교사들과 함께 이적들과, 신유 그리고 방언을 두어 오셨습니다. 사도들과, 목사들 그리고 교사들이 그친 적이 없는데, 왜 이적들과 신유와 방언들이 그치겠습니까!(고전 12:28, 30)”라고 말했다. 파함은 성경시대 이후 교회사 속에서 면면히 신유와 방언이 그치지 않고 존재해 왔다고 말함으로써 은사지속론을 주장한 것이다.
3. 더함의 은사중단론 비판
오순절 운동의 성화론적 방향 전환자 더함은 한편으로 보수주의자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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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면을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그들은 고등비평을 통해 성경을 접근하는 자유주의자들에 대항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그렇게 훌륭하게 방어했다.” 즉, 그들은 성경의 영감성을 옹호했다. 그들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그리고 그분이 그분의 보배로운 피를 잃어버린 세상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영원한 구속을 얻게 하기 위해 흘리셨다는 것을” 주장했다. 나아가 그들은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모든 이적들이 실제로 일어났던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아마도 보수주의에 대한 더함의 그런 평가는 당시에 출판된 보수주의자들의 글들을 읽어 본 결과였을 것이다. 더함은 1873년에 태어나 1912년에 별세했다. 그가 오순절주의자로서 글을 쓰며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기는 1907년에서 1912년까지였다. 그는 1907년에 시무어가 이끌었던 아주사거리 부흥회에 참석하여 방언을 동반하는 성령침례를 받은 후『오순절적 증언』(The Pentecostal Testimony)이라는 회보를 펴냈다. 그가 오순절주의자로서 가장 열정적으로 일했던 1910년에『근본주의자들: 진리에 대한 증언』(The Fundamentals: A Testimony To The Truth)이 딕슨과 토레이(A. C. Dixon and Reuben Archer Torrey)의 편집에 의해 출판되어 광범위하게 무료로 배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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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에 실린 글들은 다윈주의와 고등비평 거부와 성경의 영감성 옹호, 그리스도의 신성 주장 등을 담고 있었다. 제2권에서 제임스 오르(James Orr)는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벤자민 워필드(Benjamin B. Warfield)는 그리스도의 신성, 캠밸 모르간(G. Campbell Morgan)은 성육신의 목적, 토레이(R. A. Torrey)는 성령의 인격성과 신성, 피어슨(Arthur James T. Pierson)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의 증거에 대해 글을 썼으며, 제3권에서 제임스 그레이(James M. Gray)는 성경의 영감성(Inspiration of the Bible—Definition, Extent, and Proof)에 대해, 제6권에서 프랭클린 존슨은 속죄(The Atonement)에 대해 썼다. 그리고 특히 헤이그(Dyson Hague)는 제1권에서 고등비평의 역사(History of the Higher Criticism)에 대해 썼고, 프랭클린 존슨(Franklin Johnson)은 고등비평의 오류들(Fallacies of the Higher Criticism)에 대해 쓰면서 고등비평을 비판하고 거부했다. 당시에 근본주의자들은 더함이 평가했던 것처럼 성경의 영감성과 그리스도의 신성 등을 방어하려 했으며, 자유주의의 고등비평에 저항했다.
보수주의자들의 이런 점들을 높게 평가한 그는 반면에 그들의 심각한 단점을 거론하며 비판했다. 더함은 그렇게 과거 성경시대의 이적을 옹호했던 워필드 등이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는 모든 현대의 이적들에 반대해 왔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낀다. 더함에 따르면 보수주의자들의 가르침, 즉 은사중단론은 “비록 성경이 하나님께서 옛날에 자기 백성들을 놀랍게 대하시는 것에 대한,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 행하셨던 놀라운 일들에 대한 정확한 역사를 제공한다 해도, 어떤 이유들 때문에 그 이적의 시대는 지나간 과거가 되었다.”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더함은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자기들의 신념을 뒷받침할 만한 성경적 증거를 하나라도 주거나 제공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은사중단론이 비성경적이라고 비판했다.
더함은 “종교적 세계”, 즉 보수주의자들을 통해 “현대의 이적들이 모두 가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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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사람들로 하여금 확신하게 만든다거나, 사람들로 하여금 “능력의 현대적 나타남들은 마귀적이든지 아니면 속임수”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더함의 이 발언에 따르면 은사중단론자들에게는 현대에 발생하고 있는 은사들은 하나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귀가 눈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더함은 그들의 잘못된 이해와는 반대로 현대의 은사들을 부정하는 것이 오히려 사단에게 농락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계획들을 변경하셨다느니,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침묵하시는 시대에 살고 있다느니,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그 어떤 기적적인 일들도 사단과 그의 대행자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글들을 읽는 것은 구역질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은사중단론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피력했다.
III. 자유주의 진영의 고등비평에 대항한 전선
1. 고등비평의 미국 유입
파함이 1900-1901년에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는 신학적 명제와 함께 방언을 경험함으로써 오순절운동을 촉발시켰던 당시 유럽에서 시작된 진화론과 고등비평(Higher Criticism)은 미국에 상륙하여 기독교계를 파괴해 가고 있었다. 찰스 다윈이 1860년에 미국에서『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을 발표한 이후로 창세기의 창조 기사를 비웃음거리로 만들려 했으며, 1885년에 헨리 워드 비처(Henry Ward Beecher)는 다윈주의를 바탕으로『종교의 진화』(Evolution and Religion)를 썼다. 그리고 1892년에 레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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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봇(Lyman Abbot)이『기독교의 진화』(The Evolution of Christianity)를 1897년에『한 진화론자의 신학』(The Theology of an Evolutionist)이라는 글을 썼다. 또한 독일에서 시작된 고등비평은 1866년에 유럽에서 공부한 찰스 브릭스(Charles Briggs)나 프레드릭 로버슨(Frederick W. Robertson) 등에 의해 미국에 수입되었다. 그들은 유럽에서 배운 벨하우젠이나 슐라이어마허, 트뢸치, 하르낙 등의 고등비평 방법을 가르쳤다. 브릭스는 1876년에 유니온 신학교 교수가 되었고, 1891년에 종신 교수 취임 연설에서 고등비평에 입각해 구약 오경의 모세 저작성을 부정했으며, 이사야서의 다저자설을 주장했다. 얼마 가지 않아 거의 대부분의 신학교들이 고등비평으로 물들게 되었다. 예를 들면 1808년에 설립된 보수적인 회중주의 학교 앤도버 신학교(Andover Seminary)는 하버드의 유니테리언들에게 점령당하고는 1886년에 “진보적 정통주의”(Progressive Orthodoxy)를 표방하기에 이르렀다. 진화론과 고등비평은 성경을 시대에 따라 변하는 문화의 산물로 격하시켰고, 다른 세속적인 문서들과 같은 비평 대상으로 삼아버렸으며, 계시로서의 성경의 독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2. 파함의 고등비평 비판과 거부
요즈음의 소위 오순절 신학자라고 칭해지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오순절주의자들은 성경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보수적이고 반-고등비평적(anti-higher critical)이었다는 점은 종종 지적되어 왔다. 1924년에 프로드샴은 오순절주의자들은 인간의 진화를 주장하며 성경 안에 기록된 초자연적인 사건들을 비웃는 모더니스트들의 이론들에 동조하지 않으며, 성경의 절대 무오류(the verbal inspiration and the absolute inerrancy of Scripture)를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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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원석은 종종 고등비평은 오순절 교회에게는 거슬리는 것이라고 보았다. 오순절주의자들에게 성경적 기록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점에서 윌리엄 멘지스와 러셀 스피틀러가 잘 간파한 것처럼 오순절주의자들은 근본주의자들과 유사하게 성경을 전-비평적이고(pre-critical) 문자적으로 읽어왔다. 브리지스에 따르면 미 하나님의 성회 산하의 학교들의 설립자들도 역시 다윈적 진화 개념과 독일 고등비평에 대항했다. 오순절주의자들의 성경해석은 모더니티의 근간인 고등비평에 저항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오순절주의자들의 고등비평에 대한 반감이나 저항이 오순절 운동의 창시자 파함의 유산이었다는 점에 대해서 그리고 그 근거에 대해서는 정확한 언급이 부족했다. 심지어 소위 오순절 학자들 가운데는 초기 오순절주의가 자유주의 신학과 관계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파우펠은 오순절주의의 미래를 가늠하기 위해 오순절주의의 정체성을 논했다. 그는 자기 박사학위 논문에서는 오순절주의가 자유주의에 대항하여 발생했다고 주장했었는데, 후에 초기 오순절주의자들의 자료들을 더 조사하면서 그와는 반대로 초기 오순절주의자들은 신학적 자유주의에 대한 그 어떤 의식도 없었다는 것을 발견했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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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오순절주의자들이 자유주의를 의식하기 시작한 때는 근본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의 논쟁이 극심해졌을 때였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과는 달리 오순절주의는 그 시작부터 자유주의의 고등비평을 거부했다.
파함이 확실하게 자유의의의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을 비판하고 완강하게 거부했다는 사실은 그의 글들에서 드러난다. 파함은 1891년부터 3년여 동안 사우스웨스트 캔사스 대학(Southwest Kansas Conference College)에서 신학 교육을 받았다. 아마도 그는 이때 고등비평을 접했을 것이다. 그는 1901년 오순절 운동을 일으키고 그 다음 해인 1902년에 쓴 첫 책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에서 고등비평(higher criticism)을 마귀의 입이라고 통렬히 비판하며, 고등비평가들(higher critics)을 “과학자”와 “불신자”와 함께 “동일한 족속들의 삼위일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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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함이 이렇게 고등비평을 비난하며 거부하는 이유를 그의 글들 가운데서 유추해 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고등비평은 과학자들이나 불신자들과 함께 “전기, 중력, 공기, 열기와 한기 등의 보이지 않는 힘들을 시인한다.” 반면에 그들은 하나님의 개입에 의한 “이적적이고 초자연적인 것을 소리 높여 비난한다.” 이런 파함의 분석은 인간의 순수이성은 초월적인 것, 본질을 알 수 없다는 칸트의 계몽주의적인 불가지론적 이성관에 따라 성경의 초월적인 언급들을 초월적인 것이 개입될 수 없는 역사에 가공되어 첨부된 신화로 격하시키는 고등비평의 근본적 성격에 대한 것이다.
파함은 마귀가 고등비평이라는 입(the mouth of higher criticism)을 통해 요나의 이야기를 비웃는다고 판단한다. 아마도 그의 이런 발언은 고등비평이 요나서의 기록을 사실이 아닌 허구, 하나의 이야기적인 문학작품으로 격하시키는 것에 관한 것일 것이다. 파함은 고등비평이 요나서를 단순한 허구적 문학작품으로 격하시킴으로써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나의 이야기를 사실로 전제하고, 요나의 이야기를 “요나의 표적”(cf. 마 12:39-40)으로 삼아 자신의 죽음뿐만 아니라 부활을 설명하신 것을,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부활이라는 신성적 측면을 또한 허구로 만들어 버린다고 비판한다. 그에게 요나의 이야기는 그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라는 상부 구조적 가르침(the superstructural teaching)이 세워져 있기에 그것을 치는 것은 모퉁이의 머릿돌을 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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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함은 이런 고등비평을 “불신앙으로 가는 대기실”(the ante-room to infidelity)이라고 빗대어 말했다. 이런 비꼼은 고등비평이 초월성과 예수의 신성을 파괴하여 결국은 불신앙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꼬집는다. 그에 따르면 고등비평은 신학교의 강의실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그런 신학교에서 배운 목회자들의 설교들에 심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 영향력은 “교회의 사역을 훼손시키는 것”이다. 그의 눈에는 “지옥의 불가지론적 도깨비들(agnostic imps of hell)이 고등비평의 모습으로 교회들의 설교단들을 차지하고 가능한 한 주님의 양들로부터 평안과 믿음의 모든 흔적들을 탈취하며 파괴하고 있다.” 그런 사악한 영향력은 과거 성경시대의 하나님의 초월적 역사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현재적인 강력한 하나님의 초월적 역사도 부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파함은 조만간 하나님께서 고등비평가들을 심판하고 형벌을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고등비평가들은 “악한 자들”과 동등한 사람들이다. 그에 따르면,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는데, 재림 때 하나님께서 “‘영원한 복음 사역’(the everlasting gospel crusade)을 방해하는 모든 악한 자들과 고등 비평가들을 처리하실 것이다.” 그는 고등비평을 통해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영원한 복음 사역”, 즉 오순절운동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오순절운동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초월적인 것의 역사 안으로의 개입을 부정하는 고등비평의 눈으로 성경을 읽어서는 결코 오순절운동을 할 수 없다고 단언한 것이다. 그런 고등비평적 방해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형벌을 내리실 것이다.
3. 더함의 고등비평 거부
오순절운동의 성화론을 웨슬리적인 것에서,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칼빈적인 구조로 전환시킨 더함도 역시 파함처럼 완강하게 고등비평을 비판하고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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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함에게 고등비평은 성경의 영감성(the inspiration of the Bible)을 손상시키고 성경에 기록된 이적들을 신화로 전락시키려 했다. 그는 고등비평이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을 제외시키고, 그분이 성경시대에 행하신 이적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신화나 우화”(myths and fables)로 만들어 버렸다고 비판했다. 또한 더함에게 고등비평은 기독교를 구원을 위한 종교가 아닌 도덕성 함양을 위한 집단으로 전락시키려 했다. 그는 그리스도가 과학계에서 뿐만 아니라 고등 교육계(higher education)에서도 제외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더함은 교육적이고 과학적 세계를 통해 “옛 이적들”, 즉 성경에 기록된 이적들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파괴하는 존재는 “사단”이라고 말했다.
더함은 그 한 예로서 하버드 대학교의 총장이었던 엘리옷(Elliott)의 주장을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엘리옷은 기독교를 “새로운 종교”(New Religion) 대신 “도덕성”(morality)이라고 불리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엘리옷이 1909년 7월 22일 하버드 대학교의 여름학기에 행한 한 신학 강의에서 그런 성향이 발견된다. 그는 그 강의에서 자기가 구상하는 “새로운 종교”(New Religion)를 설파했다. 그는 종교는 고정된 것이 아니고 유동적인 것이기 때문에 종교적 교리는 지적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새로운 경향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런 새로운 경향들의 예를 들면서 허버트 스펜서가 진화에 관해 글을 쓴 것, 벨하우젠 등이 성경 비평을 개발한 것 등을 언급했다. 그는 성경의 축자영감은 이미 크게 파괴되었다고 공언했으며, 이제 그 어떤 초자연적인 힘의 개입이나 죄 용서를 위한다는 그 어떤 희생제사도 필요 없고, 이러한 때 새 종교는 개인적인 복이나 구원을 목표로 삼지 않고 타인을 위한 사랑과 봉사와 공익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함은 고등비평이 당시에 끼치고 있던 폐해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사람들은 신학교들이나, 대학교들, 그리고 대학들에서 사역을 위해 준비하며 수년을 보낸다. 그리고 지성적 지식을 얻기를 바라는 열망 속에서 그들의 영적 생활은 많은 경우에 슬프게도 방치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기관들을 졸업한 후, 그들이 그곳들에 들어갔을 때보다 훨씬 더 영적으로 좋지 않은 상태에 처해지면서 도움의 손길을 구한다. 이 기관들의 많은 곳들이 강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던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믿음 대신에 고등비평으로 벌집처럼 구멍 투성이가 되어 슬프게도 약해진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사람들이 어떤 일을 잘못된 방향에서 구할 때, 더 많은 노력과 고통이 요구되며, 결국 그들은 그것을 받기에 못 미치게 된다. 그들은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결국 절망 중에 포기하거나, 불신자나 그와 거의 동일한 고등비평가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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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에 서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고등비평으로 충만해 있으며, 그들의 선생들과 함께 모든 성경에 기록된 고대의 이적들을 부인한다. 물론 이것은 그들을 세상과 가장 친밀한 사이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더함은 교회의 강단이나 선교 현장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에 의해 준비되고, 성령으로 충만해져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된 복음을 두려움 없이 전하는 사람들로 대체되기를 바란다.” 그는 그런 바람을 가지고 고등비평으로 피폐해진 사역자들에게 그 폐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그는 “[고등비평이 점령한] 신학 공부와 [그 폐해를 벗어나 사역의 힘을 얻기 위해 떠난] 여행으로 수년을 소비해 왔으면서도 여전히 마음에 깊은 필요를 느끼고 있다면, 하나님 이외에 그 어떤 근원으로부터 얻을 것을 기대하기를 그치라. 사도행전을 읽으라. 거기에 주어진 경험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 하나님께 그분이 그들이 받았던 것을 당신에게 주실 때까지 결코 쉬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라.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마음을 낮추라.”라고 권면한다. 그는 고등비평의 안경을 깨뜨려 버리고, 순수한 눈으로 사도행전을 읽고 성령침례에 동반되는 방언, 신유, 귀신축출 등의 은사적 경험들을 면밀히 연구한 후, 그런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고 사역을 위한 능력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충고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보기에 고등비평의 기세가 쉽사리 꺾일 것 같지 않았다. 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불신앙과 고등비평(higher criticism)이 많은 곳에서 점점 더 견고한 성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의 힘이 꺾이지 않을까봐 염려하고 있는 상황을 위한 유일한 해결책은 주님의 재림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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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나가는 말
살펴본 것처럼, 초기 오순절주의자 파함과 더함은 보수주의의 은사중단론에 대항해서 은사지속론을 주장하는 한편, 다른 편에서는 자유주의의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higher-criticism)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성경을 전-비평적(pre-critical)으로 읽었다. 파함과 더함에게 은사중단론과 고등비평은 둘 다 성경의 경험을 현대에 재경험하는 것을 가로막으려는 사단의 계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은사중단론은 성경에 기록된 경험들을 현대에 재현하여 경험하고 있던 파함과 더함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은사중단론은 성경에 기록된 경험들을 기록되기 이전에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경험들을 오늘날에는 더 이상 재현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 은사중단론자들의 눈에는 성경에 기록된 경험들을 오늘날 재현한다는 것은 허무맹랑하게 보일 것이다. 반면에 파함과 더함은 성경에 기록된 경험들을 오늘날에도 재경험하고자 했으며, 재경험했다. 그런 파함과 더함에게 은사중단론은 하나님의 지속적인 역사를 가로막는 장애물, 그래서 제거되어야 할 인간 스스로 만든 바벨탑 같은 애물단지에 불과했다.
고등비평도 또한 성경에 기록된 경험들을 현대에 재현하여 경험하고 있던 파함과 더함에게는 결코 함께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고등비평은 성경에 기록된 경험들을 기록 이전에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던, 후대의 구전 단계나 편집 단계에서 꾸며져 더해진 허구적 신화로 전락시킨다. 고등비평가들의 눈에는 그런 허구적 신화를 현대에 재현시켜 경험한다는 파함과 더함 등의 오순절주의자들이 허무맹랑할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파함과 더함은 성경의 경험들을 역사 속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것이라고 확신했으며, 그리고 성경의 경험들을 실제로 자신들의 삶속에서 재경험하고자 했으며, 재경험했다. 그런 파함과 더함에게 고등비평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성경의 경험들을 한낱 허구로 만들어 버리는 마귀의 아바타일 뿐이었다.
파함과 더함이 은사중단론과 고등비평을 걷어내고 은사지속론과 전-비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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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성경을 읽었기 때문에 기록 이전의 오순절 경험과 성경에 기록된 오순절 경험을 일치시킬 수 있었고, 나아가 그 일치된 경험을 현대의 오순절적 경험으로 동일하게 재현시킬 수 있었다. 성경에 기록된 오순절 경험을 재현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파함과 더함처럼 은사중단론과 고등비평을 거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별세하고 겨우 10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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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wo Theological Battle Lines
of Early Pentecostal Leaders,
Charles F. Parham and William H. Durham
Chang-Soung Lee
Early Pentecostal leaders Charles F. Parham and William H. Durham fought in the two theological front lines: on the one hand resisting against Cessationism of conservatism and insisting on Continuationism, on the other hand criticising and rejecting Higher Criticism of Liberalism on the Bible and adhering to Pre-Critical Reading. For Parham and Durham, both of Cessationism and Higher Criticism were only the trick of Satan to prevent modern people re-experiencing the experiences of the Bible.
Chapter II looks into the responses of Parham and Durham to the stimulus of Cessationism of Conservatism/Fundamentalism. Pentecostalism has difference as well as commonness with conservatism. The commonness is pre-critical approach to the Bible. The difference is on the point that whether some charismatic gifts were ceased or whole gifts are continued. Confrontation was already appeared in the works of Charles F. Parham, A Voice Crying in The Wilderness in 1902 and 1910. one of representative works of dispensational cessationism, Scofield Reference Bible was published in 1909 and the other, Counterfeit Miracles in 1918. Parham criticized cessationism as un-biblical and insisted the continuation of all the gifts.
Durham who made a shift on sanctification in Penteceostalism mentioned the negative side as well as the positive side of conservatism. The Fundamentals: A Testimony To The Truth was distributed in 1910, when Durham was working most passionately as a Pentecostalist. According to him Fundamentalists defended the Bible as the word of God excellently against Liberalists who attacked the Bible through Higher Criticism. But, for him, Fundamentalists had a serious defect. The defect was that defending the miracles in the Bible, but they opposed modern miracles.
Chapter III analyzes the writings of Parham and Durham against Higher Criticism. These works are undertaken mainly on the background of their time. It has been pointed very well that most of Pentecostalists are conservative and anti higher critic. But there has been no reference to the fact that the antipathy and resistance to higher criticism were the legacy of Parham. Around the time when Parham started Pentecostalism with the theological affirmation that the Bible evidence of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was speaking in tongues, Higher Criticism of Europe landed and was occupying Christianity of America more and more.
Parham criticized higher criticism as the mouth of the Devil, and evaluated higher critic as one member of trinity consisted of scientist and unbeliever. The reason why he rejected higher criticism was that they acknowledged unseen powers: electricity, gravity, and air etc., but they were strongly denying the supernatural inbreaking of God. Parham thought that the Devil ridiculed the real story of Jonah as a myth through his mouth, higher criticism. For Parham, the upper structure, the deity of Jesus Christ, was established on the story of Jonah. So, destroying the story was denying the deity. He described such higher criticism as an ante-room for the train of unbelief toward hell. He said that God would judge and punish higher critics soon.
Durham also criticized and rejected higher criticism. For Durham, higher criticism destroyed the inspiration of the Bible and made the miracles written in the Bible myths. He mentioned Eliot's supporting higher criticism and suggesting to call Christianity "New Religion" and "Morality". Eliot did actually assert such thing in a summer lecture of Harvard University in July 22, 1909. Durham depicted the evil influences of higher criticism graphically. Many people spent several years preparing for ministry in seminaries, universities, and colleges. But, sadly, they became weak because of higher criticism, and, worst of all, became higher critics too. To his eyes, the vigor of higher criticism would not be broken down, and it was building its strong fortress. So, he lamented saying the only solution for such a situation would be the second coming of the Lord.
주제어: 오순절주의, 파함, 더함, 은사중단론, 은사지속론, 고등비평, 전-비평적 성경읽기
Pentecostalism, Charles F. Parham, William H. Durham, Cessationism, Continuationism, Higher Criticism, Pre-critical Bible Reading
원고접수: 2015. 5. 1.
수정본 접수: 2015. 6. 3. 게재승인: 2015.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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