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운동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이 창 승
순복음총회신학교, 조직신학, 조교수
jesusgate@daum.net
국문초록
오순절운동의 기원에 대한 설들이 분분하다. 그 설들 가운데 어떤 설이 진정한 것인가? 오순절의 기원에 대한 주장들은 오순절의 정체성 규정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그러므로 오순절운동을 올바로 규정하기 위해 진정한 오순절운동의 기원을 탐구하는 것이 요구된다. 본 논문은 파함 기원설, 성령 기원설, 시무어 기원설, 자생설/동시다발설을 살피며 파함이 오순절운동의 아버지임을 주장한다. 오순절 운동의 영적인 토대, 천상적 창시자는 성령 하나님이시지만, 지상적으로 말하자면 오순절 운동은 1901년 토페카에서 찰스 F. 파함(Charles F. Parham)에 의해 성령침례에 방언이 동반된다는 교리가 세워지고 시작되었으며, 파함에게 오순절 교리를 배운 윌리엄 J. 시무어(William J. Seymour)에 의해 1906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국제적인 운동으로 파급되었다. 다시 말하면, 오순절 운동의 아버지, 인적 창시자는 역사적으로 교리적으로 파함이었다. 오순절운동 기원의 판결 기준은 인종혼합성이나 구술성, 또는 다양한 성령의 은사들의 나타남이 아닌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는 신학적 명제, 교리이다. 오순절의 정체성은 이미 그 이름 안에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날 성령침례에 최초로 방언이 동반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그 기초를 두어야 한다. 파함은 현대 오순절 운동의 근간이 되는 이런 교리를 최초로 세움으로써 오순절 운동의 기원이 되었다.
I. 들어가는 말
오순절운동의 기원에 대한 설들이 분분하다. 그 설들 가운데 어떤 설이 진정한 것인가? 로벡이 잘 지적한 것처럼 오순절의 기원에 대한 주장들은 오순절의 정체성 규정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그러므로 오순절운동을 올바로 규정하기 위해 진정한 오순절운동의 기원을 탐구하는 것이 요구된다. 본 글은 파함 기원설, 성령 기원설, 시무어 기원설, 자생설/동시다발설을 살피며 파함이 오순절운동의 아버지임을 주장할 것이다. 오순절 운동의 영적인 토대, 천상적 창시자는 성령 하나님이시지만, 지상적으로 말하자면 오순절 운동은 1901년 토페카에서 찰스 F. 파함(Charles F. Parham)에 의해, 오순절운동의 정체성인, 성령침례에 최초로 방언이 동반된다는 기초 교리가 세워지고 시작되었으며, 파함에게 오순절 교리를 배운 윌리엄 J. 시무어(William J. Seymour)에 의해 1906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국제적인 운동으로 파급되었다. 다시 말하면, 오순절 운동의 아버지, 인적 창시자는 역사적으로 교리적으로 파함이었다.
II. 파함 기원설
오순절운동 안에서 역사적으로 제일 먼저 제기된 기원설은 “파함 기원설”(Parham origin)이다. 오순절운동의 기원이 찰스 F. 파함이었다는 것은 파함 자신의 간접적 언급에서 드러난다. 파함은 1902년에 펴낸 그의 첫 책에 실은 “성령 침례”라는 제목의 글의 부제에서 벧엘성경학교에서의 일어났던 것을 “오순절”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그 글에 “첫 부어주심 후 21일째 되는 날 미주리 주 C. 캔사스 시의 음악 아카데미 홀에서 행한 오순절에 관한 첫 설교”라는 부제를 붙였다. “첫 부어주심”(First Outpouring)은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나는 예루살렘에 임한 첫 오순절의 성령부어주심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 어구는 벧엘성경학교에서 시작된 “첫 부어주심”을 의미했다. 파함은 “첫 부어주심”과 “오순절”을 동일시했으며 두 어구는 1901년의 벧엘성경학교에서 시작된 운동을 지칭했다. 이런 해석은 그의 직접적인 언급에 의해 정당해 진다. 그는 “늦은 비”라는 글에서 그 음악 아카데미 홀에서 행하고 그런 부제를 붙였던 “성령침례”라는 설교를 “모든 현대 오순절적 사도적 순복음 운동들”(all modern Pentecostal Apostolic Full Gospel movements) 중에서 성령침례에 대한 첫 번째 설교였다고 말했다.
파함은 직접적으로 자신이 일으킨 운동을 “오순절 부흥” 또는 “오순절 운동”이라고 지칭했다. 그는 1907년 4월에 사도신앙지에 쓴 동부지역전도에 대한 글에서 “그 도시(보스턴) 전체가 지금 ‘옛 오순절 부흥’(an old-time Pentecostal revival)을 위해 무르익었다”라고 썼다. 그리고 그의 두 번째 책에 실린 캔사스 윗치타(Wichita, Kansas)에서 행한 설교의 서두를 “사도 또는 오순절 운동(The Apostolic or Pentecostal movement)은 평신도들에게나 사역자들에게도 백배의 헌신(consecration)을 요구합니다”라고 열었다. 그는 자신이 일으킨 운동을 “오순절 운동”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운동을 “이 오순절 운동”(this Pentecostal movement)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파함은 완전 성화 이후의 지속적인 성결의 필요에 대해 말하면서 “이 오순절 운동”이라고 말했다.
이 오순절 운동(this Pentecostal movement)은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와 길이와 넓이가 그 앞에서 언제나 헤아릴 수 없는 경험 안으로 사람을 이끌어 갑니다. 그 사람은 성장과 발전에 있어서 결코 멈출 수 없습니다.
파함은 자신의 글 “늦은 비”(The Latter Rain)의 부제를 “원조 사도적 운동 또는 오순절운동의 기원 이야기”(The Story of The Origin of The Original Apostolic Or Pentecostal Movement)라고 붙였다. 그 부제는 파함이 자신이 벧엘성경학교에서 일으킨 운동을 “오순절운동”으로 파악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파함 자신이외에 파함 기원설을 최초로 주장한 자는 바로 시무어의 아주사 선교회였다. 시무어의 아주사 공동체는 처음에 오순절 운동의 기원을 “파함”이라 규정했다. 시무어를 포함하는 아주사 선교회는 1906년에 펴낸『사도신앙』(The Apostolic Faith) 제 1 호에 실은 “옛 오순절”(the old-time Pentecost)이라는 글에서 파함을 오순절 운동의 기원이라고 공식적으로 알렸었다. 그 글은 파함의 주도하에 진정한 오순절적 능력을 받기 원하던 벧엘 성경학교 학생들이 기도하며 성경을 연구하고, 급기야 불의 혀가 머리 위에임하며 사도행전처럼 방언이 동반되는 오순절적 성령침례를 받았던 것을 서술했다. 그리고 아주사 선교회에 따르면, 파함이 시작한 오순절운동은 5년이 지나는 동안 그곳으로부터 널리 퍼져나가 로스앤젤레스에도 이르렀다. 아주사 선교회는 이 오순절의 기원에 대한 언급에서 “이 복음”(this gospel)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 복음”은 성령침례에는 성경적 증거인 방언이 동반된다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옛 오순절. 이 역사는 일단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던 찰스 파함이라는 리더 아래서 캔사스주의 토페카에서 오순절을 기다리고 있던 약 5년 전 1월에 시작되었다. . . 5년이 지난 지금 약 만 삼천 명의 사람들이 이 복음을 받아왔다. 오순절운동은 모든 곳으로 퍼지고 있으며, 교회들은 퇴보하지 않고 그들이 경험하는 것을 잃지 않고 있다. 이 운동 안에서 . . . 큰 표적과 기사가 그들을 따르고 있다.
『사도신앙』2호에서는 오순절운동에 대한 보다 더 구체적인 서술이 발견된다. 아주사 선교회는 그 이전에는 부분적인 복음이 전해졌었지만, 중생의 복음과 성화의 복음과 신유의 복음을 차례로 회복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성령침례의 복음을 회복시키고 계시다고 보았다. 그리고 벧엘성경학교에서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the Bible evidence)를 찾기 위해 성경을 연구한 것과 그 경험을 서술했다. 아주사선교회는 하나님께서 “그[파함]를 ‘그 오순절의 교리’(the doctrine of the Pentecost)의 사도를 삼으시기 위해 일으키셨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아주사 공동체는 “이 오순절적 복음(this Pentecostal Gospel)이 그로부터 퍼져나가고 있고, 바로 이 태평양 연안에서 이 오순절 복음이 놀라운 능력으로 폭발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고 기술했다. 이렇게 시무어와 아주사 선교회는 초기에 오순절의 기원을 파함에, 오순절의 정체성을 성령침례와 결합된 방언이라는 교리에 두었었다.
파함의 벧엘성경학교에 참여했었던 터틀(Capt. L. H. Tuttle)은 파함의 벧엘성경학교에서 일어났던 것을 “오순절”로 인식했다. 그는 1910년에 발행된 파함의 책『광야에서 외치는 소리』(A Voice Crying in the Wilderness)의 두 번째 판 서문에서 “몇 달 전에, 우리는 우리 머리 위에 하늘에서 막 쏟아 부어지려는 큰 생수의 호수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 호수는 모든 목마른 영혼을 충분히 만족시킬 만했다. 강력한 오순절(a mighty Pentecost)이 뒤따랐으며, 방언을 말함으로 증거 되었다. 이것은 강력한 영적 각성의 파도를 일으켰다”라고 회상했다. 파함은 터틀의 회상을 “그 성경학교를 봉헌하는 것을 거들었던 터틀 대위(Captain Tuttle)는 성령께서 오순절적 능력으로 그곳에 임하신 후 그 건물 위에(above) 커다란 생수의 호수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호수는 온 땅이 그 엄청난 물로 새롭게 될 때까지 흘러 넘쳤습니다”라고 지지했다.
1947년 프랭크 에와르트(Frank J. Ewart)는 파함의 토페카 부흥을 현대오순절운동의 시작으로 그렸다. 그는 그의 책 1장에서 3장까지 이른 비가 내렸던 예루살렘의 오순절을 다룬 후, 그 이후 1899년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있었던 부흥에 이르기까지의 간헐적 소나기들에 대해 기술하고 말미에 20세기 시초에 미국에서 늦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며 다음 장에 추수를 위한 늦은 비의 시작을 예고했다. 그리고 4장을 파함이 이끌었던 토페카의 부흥을 기술하는데 할애하였다. 그는 찰스 파함이 토페카에서 열었던 벧엘성경학교에서 성경연구를 통해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는 방언임을 발견하고 기도하여 경험함으로써 시작된 부흥을 자세히 기술하였다. 그리고 그는 “오순절의 불길이 휴스턴에 이르러 자리 잡게 되었을 때 이 남부 대도시는 본 운동의 기지가 되었고 여기에서 전 세계로 파급되어 나갔다,” “이 최초 수년간에 있었던 쇄도는 엄청난 것이었으며 회중에 속한 자 뿐만 아니라 이 운동에 휩쓸려 들어간 자라면 누구나 그 메시지를 받아들였고 방언을 말함으로 성령침례를 받았다. . . . 불길은 휴스톤에서 또 로스앤젤레스로 파급되고, 그곳에서 기독교가 있어 왔던 방방곡곡으로 나갔다”라고 썼다. 에와르트에게 오순절 정체성은 성령침례에는 방언이라는 성경적 증거가 동반된다는 메시지(교리)였으며, 오순절의 기원은 파함이었다.
1950년에 로스웰 플라우어(J. Roswell Flower)는 미국 하나님의성회 기관지 Pentecostal Evangel에 오순절의 기원에 대한 글을 게재했다. 그는 그 해를 오순절운동이 발발한지 50주년이 되는 해라고 보았다. 그가 제시한 오순절의 기점은 1901년 1월 1일이었으며, 장소는 찰스 파함이 주도했던 캔사스주 토페카의 벧엘성경학교였다. 그는 그 학교에서의 일들이 당시에도 잘 이해되지 못했으며, 또한 그 이래로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침례를 받아왔지만 그 사건들이 발생한 상황에 대해 듣거나 그 사건이 오순절운동의 시작으로 간주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래서 그는 오순절운동 탄생 50주년에 그 운동의 기원을 비교적 자세히 밝혔다.
플라우어는 1901년 토페카 이전의 부흥들을 높게 평가했지만, 그것들에 오순절의 기원의 영예를 부여하지는 않고 파함의 성경학교에 부여했다. 그는 1900년 이전에도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각 경우에 방언이 영적 현상들 중의 하나 또는 성령의 은사들 중의 하나로 여겨졌을 뿐이었으며, 그래서 방언을 말하기 위해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지는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어서 플라우어는 파함과 학생들이 사도적 시대의 하나님의 말씀인 사도행전에서 방언을 한 사람이 성령침례를 받는 최초의 육체적 증거라는 것을 추론해 내었는데, 이것이 20세기 오순절운동을 만들어 온 결정이었다고 평가했다. 플라우어는 성령침례의 신약성경적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는 교리(dogma)가 오순절운동의 기원을 설정하는 시금석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파함에 의해 토페카에서 시작된 오순절운동이 미국 전역에 퍼지고, 나아가 오대양육대주에 퍼져나갔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토페카에서 일어난 작은 불꽃 하나가 자라나 불길이 되어 전 세계를 사르고 있다. 플라우어는 1947년에 결성된 오순절세계연맹(Pentecostal World Conference, PWC)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그리고 1955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그 회의에서 “오순절운동의 내력”(The Genesis of the Pentecostal Movement)이라는 글을 발표하였다. 이 발표문은 그가 세상을 떠난 29년 후인 1999년에 Enrichment Journal에 실렸다. 그는 이 발표문에서 예언이나 방언, 신유 같은 영적 나타남들이 동반된 성령의 부어주심이 사도시대 이후로 있어왔지만, 그것들이 오순절운동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찰스 파함의 벧엘성경학교에서 성경을 연구하고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 결정하고 기대하며 기다렸다가 그것을 경험함으로써 오순절운동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마치 핵폭탄이 터져 퍼지는 것처럼, 영적 핵이 토페카에서 터져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유럽, 러시아, 아프리카, 인도, 중국, 일본, 남미, 호주, 뉴질랜드 등 거의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플라우어가 오순절운동의 파함의 교리와 경험에 의한 미국 발생 후 세계 전파설을 주장한 것은 영국인 도날드 기를 염두에 둔 것이었을 것이다. 플라우어는 도날드 기가 오순절의 정체성을 성령침례에 최초 증거로 방언이 동반된다는 교리에 두는 것에는 공감했지만, 도날드 기가 오순절운동의 전 세계에서 자생적으로 동시에 발생했다고 주장한 것을 거부했을 것이다. 플라우어는 미국 하나님의 성회 안에서 흔들리고 흐려지던 오순절기원과 정체성 확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니콜(John Thomas Nichol)은 파함을 오순절 운동의 창시자로 시무어를 오순절 운동의 파급자로 인식했다. 그의 1966년 작품『오순절주의』(Pentecostalism)는 파함을 탁월한 위치에 놓았으며, 그는 그 빛나는 오순절역사 연구의 “미국: 20세기 오순절주의의 발생지”라는 장에서 제일 먼저 “캔사스 주 토페카에서 오순절주의의 격발”(Outburst of Pentecostalism in Topeka, Kansas)이라는 표제어 밑에서 파함의 성경학교 파함과 학생들이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는 방언을 말함이라는 오순절주의의 중심 교리를 발견하고 경험했던 과정을 기술했다. 그리고 그는 “잘 알려진 아주사 거리 부흥”(The Renowned Azusa Street Revival)이라는 표제어 밑에서 시무어를 다루었다. 즉, 그는 그 표제어를 통해 오순절 운동이 시무어를 통해 널리 국제적으로 파급된 것을 피력한 것이다. 그는 “아주사 거리는 진정한 오순절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순례자들이 전 세계로부터 그곳으로 왔고,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초자연적인 표적들과 기사들에 대한 소식들이 퍼져나갔다”는 호르톤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시무어가 오순절의 파급자임을 확실하게 표명했다.
니콜은 파함을 오순절운동의 창시자라고 주장하기 위한 다섯 가지의 기준을 열거했다. 1) 파함은 아주사 거리 부흥운동의 태동 이전과 그 동안에도 중서부에서 오순절 지도자로 인식되었던 사람이었다. 2) “사도적 신앙”(Apostolic Faith)이라는 그의 용어는 그 운동의 초기 멤버들에 의해 사용된 보편적인 용어가 되었다. 3) 파함은『사도적 신앙』(Apostolic Faith [Topeka, Kansas])이라는 최초의 오순절 정기 간행물을 출판했다. 4) 파함은 최초의 각 주 연합 오순절 회합들을 조직했다. 5) 파함은 느슨하게 조직된 오순절 운동 안에서 최초의 목회 자격증들을 발부했다. 니콜의 연구는 오순절 선구자인 파함의 명성의 격하를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
니콜에 따르면, 많은 오순절주의자들에 의해 기록된 그 운동의 초기 발달사들은 파함의 공헌을 강조하는데 실패했다. 파함의 복음 전도적 노력들은 자주 그의 이름 언급 없이 기록되었다. 이 누락은 처음으로 프랭크 에와르트(Frank J. Ewart)에 의해『오순절 사건』(The Phenomenon of Pentecost)에서, 그리고 그 다음에 클라우드 켄드릭(Klaude Kendrick)에 의해『성취된 약속: 현대오순절운동의 역사』(The Promise Fulfilled: A History of the Modern Pentecostal Movement)에서 바로잡혔다. 특히 켄드릭은 오순절주의의 개척 단계에 있어서 파함의 역할에 대한 면밀한 묘사를 제공했다. 비오순절주의 연구자 찰스 셤웨이(Charles William Shumway)는 1914년 이전의 그 운동의 한 중요한 부분으로서 파함을 언급했다. 후에 니콜과 로버트 앤더슨 같은 연구자들은 파함의 역할에 강화된 탁월성을 부여했다.
1970년 이래로 사이난(Vinson Synan)은 비록 이중 기원설을 주장했지만, 오순절주의를 최초의 증거로서 방언과의 그 독특한 신학적 결합으로 규정지었다. 그는 백인 캔사스 신유 전도자 찰스 파함이 그 신조 형성의 지휘자라고, 윌리엄 시무어는 1906년부터 1909년까지 삼년동안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났던 아주사 거리 부흥의 국제적인 영향력을 통한 그 교리 보급의 감독자라고 믿었다. 사이난은 방언 체험을 하나의 공식적 교리로, 방언을 말하는 것이 성령침례를 받은 증거라고 말하기 시작한 사람은 바로 파함이었으며, 파함의 가르침이 오순절 운동의 교리적, 경험적 기초를 놓았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그는 아주사 거리로부터 미전역으로 오순절운동이 퍼져나갔으며, 또한 “캘리포니아에 특이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유럽으로 전해져서, 대륙의 목사들 수백 명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했으며, 자신들이 직접 방언 같은 오순절 체험을 하고 각자의 교회로 돌아갔다”고 기술했다. 사이난은 “현대적 의미에서 첫 ‘오순절주의자들’은 1901년에 찰스 F. 파함의 지휘 아래 있던 캔사스 주의 토페카 시의 한 성경학교에서 나타났다”고 기록했다. 알란 앤더슨도 멀리 유럽에서부터 사람들이 와서 성령침례를 받아 가지고 돌아갔으며, 두 해 동안 오순절적 선교사들이 아주사 거리로부터 스물다섯 이상의 나라로, 거의 전 세계로 보내졌다고 기술한 파우펠의 글을 인용했다.
윌리엄 멘지스(William Menzies)는 1971년에 펴낸 미국 하나님의 성회 역사에 관한 책 2장에서 파함을 오순절 운동의 교리적 기원으로 기술했다. 그는 현대 오순절 운동의 큰 부흥에 특별하고 응집력을 부여했던 것은 캔사스주 토페카에서 찰스 파함의 사역에서 발생했던 사건들에로 추적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에게 성령의 나타나심들, 특별히 방언을 말함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위한 근거를 제공한 것은 1901년에 일어난 그 부흥이었다. 멘지스는 토페카 부흥의 중요성을 논하면서 그 이전에도 방언현상들이 있었고, 성령침례에 대한 가르침들이 있었지만, 이 두 가지 요소들이 토페카에서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첫 째로, 글로솔라리아, 방언 말하기라는 현상이 최초의 육체적 증거로서 성령침례의 경험과 연결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 이전에도 방언에 대한 일화들이 존재해 왔었고, 또한 19세기 후반에 성령침례에 대한 미국 교회들의 다양한 스펙트럼 안에 공통적인 가르침이 있었지만, 이 두 요소들이 그 이전에는 그렇게 하나로 결합되지 않았었다.
그는 또한 한 가지 더 중요하고 흥미로운 주장을 하였다. 멘지스는 비록 1905년과 1910년 사이에 전 세계 곳곳에서 서로 독립적인 은사적 부어주심들이 자생적으로(spontaneously) 발생했었지만, 그것을 통해 오순절운동이 퍼져나갔던 최초의 근원은 바로 1901년의 토페카 부흥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설혹 파함을 오순절운동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할지라도 오순절운동에 중요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그는 “현대 오순절운동의 아버지로(as father of modern Pentecostal Movement)서 가장 유력한(the most likely) 후보는 아무래도 찰스 폭스 파함일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윌리엄 멘지스는 현대 오순절 운동의 탄생이래로 그 부흥에 정체성과 지속성을 부여했던 것은 이 신학적 주장이었다고 본 것이다. 이런 멘지스의 주장은 칼 브럼백의 천상적인 성령 기원설보다는 로스웰 플라우어의 지상적인 파함 기원설의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비오순절주의자인 제이콥슨(Douglas Jacobsen)도 2003년에 파함을 오순절 신학의 설립자(the founder of pentecostal theology)라고 규정했다. 그는 파함이 방언을 성령침례의 경험의 부분이 되어야만 하다는 주장, 증거 방언이라는 오순절 교리를 첫 번째로 형성시킨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 제이콥슨은 비록 오순절 운동이 급격하게 폭발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한 곳은 아주사 집회였지만, 오순절적 경험의 신학적 측면의 형성은 이미 파함에게서 시작되었다고 본 것이다.
III. 신적/성령 기원설
1906년부터 제기된 “신적/성령 기원설(Divine/Pneumatic origin)”은 오순절 운동의 기원을 특정한 인간보다는 하나님께 둔다. 이 설은 흔히 “섭리적”(providential)이라고 불린다. 그 대표적 형태는 시무어의 아주사 공동체, 프랑크 바틀맨(Frank Bartleman), 포르드샴(Stanley E. Frodsham), 칼 브럼백(Carl Brumback) 등이 주장했던 “성령 기원설”이다. 그들에게 오순절 운동은 특정한 인물이 아닌 성령께서 일으키신 운동이다. 스테펜슨은 이 접근을 바틀맨의 “하늘로부터 갑자기”(Suddenly From Heaven)와 같은 오순절운동에 대한 초기 저작들의 제목에서 엿볼 수 있다고 보았다.
오순절운동의 신적 기원설을 최초로 주장한 자는 개인이 아닌 집단이었다. 그 집단은 바로 윌리엄 시무어(William J. Seymour)가 주도했던 아주사 공동체였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주사 선교회는 처음에는 파함을 오순절운동의 창시자로 소개했었다. 그러나 그런데 시무어의 공동체는『사도신앙』4호에서는 그 공동체의 운동의 기원, 설립자(the founder)와 프로젝터(projector)를 “주님”(the Lord)으로 변경시켰다. 파함이나 시무어 같은 지상적 존재가 아닌 천상적 존재이신 주님께서 아주사 오순절의 “창시자”(the founder), “발기자”(The Projector)이시라는 것이다. 아주사 공동체는 그 오순절적 공동체의 기원을 특정한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돌린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주사 선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누가 선교회의 창시자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주님이 창시자(the founder)이셨고, 주님이 이 운동의 발기자(the Projector)이십니다.
파함은 1902년에 초판을 발행하고, 1910년에 재판한『광야에서 외치는 소리』(A Voice Crying in the Wilderness)의 표지에 저자를 “by Charles F. Parham Projector of the Apostolic Faith Movement”라고, 즉 자신을 “발기자”(Projector)로 소개했었다. 시무어의 공동체는 이것을 염두에 두며, 그 공동체의 발기자가 파함이 아닌 “주님”이라고 말하였을 것이다. 이런 오순절 기원에 대한 아주사 선교회의 입장 변화는 분명 파함과의 마찰의 산물이었다. 파함은 시무어의 아주사 집회를 바로잡으려 하였고, 아주사 선교회는 파함의 교정시도를 거부했다. 이 마찰 후에, 아마도 아주사 선교회는 파함과 시무어의 대립을 해소시키기 위해 파함도 시무어도 아닌 “주님”을 오순절운동의 창시자로 삼았을 것이다. 홀렌베거도 원래 아주사 거리 부흥의 지도자가 파함이라고 인식되었었지만, 1907년 11월 이후로 그 조직의 공식 문서에서 그의 이름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아주사의 오순절이 “주님”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아주사 선교회의 변경된 주장은 그 운동을 이끌었던 시무어에 대한 아주사 선교회의 호칭과 시무어 자신의 그 선교회에 관련된 자기규정에 의해 뒷받침된다. 시무어는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은 오직 “예수님의 동역자”(coworkers with Him) 또는 “성령의 분담자”(partakers of the Holy Ghost)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에게 모든 사역의 의장 자리에 성령님을 모시라고 권고했다.
미국 하나님의 성회는 1916년 5월에『회복된 사도적 신앙』(The Apostolic Faith Restored)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 책의 서언에서 당시 하나님의 성회 총회장이었던 웰크(John W. Welch)는 오순절운동을 신적 섭리의 역사 관점에서 회고했다. 그 책의 주저자 로렌스(Bernard F. Lawrence)는 하나님께서 신약 교회에서 하신 것과 하나님께서 오순절운동 안에서 하시고 계시는 것을 기록하려 했다.
사람을 창시자로 삼지 않았던 아주사 부흥의 분위기는 그곳에서 오순절적 성령침례를 경험했던 프랑크 바틀맨(Frank Bartleman)에게도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바틀맨은 아주사 오순절의 신적 기원, 즉 성령 기원을 주장했다. 1925년에 바틀맨은 로스앤젤레스 오순절이 발발하기까지, 그리고 시무어와 더함 등에 의해 주도된 로스앤젤레스 오순절의 역사를 기록했다. 그는 모세와 여호수아의 예를 들어 스메일과 시무어의 역할을 비교했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요단강까지 인도하기 위해 모세를 택하시고,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여보내시기 위해 여호수아를 택하셨던 것처럼, 그분의 성도들을 오순절직전까지 인도하시기 위해 스메일(Brother Smale)을, 그리고 오순절 안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 시무어(Brother Seymour)를 택하셨다. 즉, 바틀맨은 시무어가 사람들을 오순절 안으로 들어가게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시무어를 일군으로 택하셔서 그렇게 하셨다고 주장했다.
바틀맨에게 오순절 집회에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의 교리보다도 성령의 산 역사였다. 그는 아주사에서 교리는 논쟁만 일으켰다고 회고했다. 바틀맨은 그의 책에서 아주사 집회에 와서 설교했던 파함의 이름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그 교리 논쟁 중에는 파함과의 방언과 집회 성격에 대한 논쟁도 포함될 것이다. 그에 따르면, 아주사에서 교리는 몸의 구성요소들 중에서 “뼈대”일 뿐이고, 그 위에 “살”이 붙어야 하는데, 그 살은 “성령”이시다.
바틀맨에게 아주사의 실제적 지도자는 성령이셨다. 바틀맨에 따르면, 아주사 선교회 안에서 시무어 형제(Brother Seymour)는 관리하는 명목상의 지도자(the nominal leader in charge)로 인식되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아주사 선교회에서는 그 어떤 교황이나 성직계급도 없었고, 그 선교회의 구성원은 모두 “형제들”(brethren)이었다. 바틀맨이 보고하는 아주사 오순절은 그 어떤 인간적 프로그램도 없이, 주님께서 친히 이끄시는(The Lord Himself was leading) 집회였다. 그 집회는 그 사람 지도자(아마도 시무어)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아주사 오순절 집회의 모든 것은 즉흥적(spontaneous)이었고, 성령의 질서를 따랐다(were . . . ordered of the Spirit). 바틀맨은 아주사의 집회는 “성령께서 이끄시며, 모든 인간 지도력을 거절하신다. 이기적으로 지시하거나 지배하고 싶어서 그분의 길에 끼어드는 사람에게 화가 있으라. 성령은 이런 훼방을 허용하지 않으신다”며 아주사 오순절의 실제적 지도자는 성령임을 강조했다. 그는 비록 하나님이 신뢰하는 위인들(아마도 시무어, 파함, 더함)이 아주사에 나타났지만 그 위인들은 각 자가 부여받은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졌을 때, 재빨리 물러났다고 보고했다. 바틀맨은 “사람들이 그들의 시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또한 올바르게 말한 것처럼,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Men do not make their times, as some one has also truly said, but the times make the man). 그 시간이 되기까지는 아무도 어떤 부흥을 일으킬 수 없다. 사람들은 도구처럼 준비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바틀맨의 이 문구는 캠벨 모르간(G. Campbell Morgan)이 웨일즈 부흥에 대해 한 말을 연상시킨다. 모르간은 “그 부흥은 로버츠와 함께 발생했습니다. 로버츠는 그 부흥의 산물이었습니다(the revival originates with Roberts. Roberts is a product of the revival). 만약 웨일즈 위에 서서 본다면, 부흥의 불길이 공모나 미리 조정함 없이 여기저기에서 그리고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바틀맨의 오순절운동의 성령 기원설은 스텐리 프로드샴(Stanley H. Frodsham)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그는 영국에서 자라나 미국에 건너와 30년 동안 하나님의 성회의 기관지 The Pentecostal Evangel의 편집자로 일하기도 했다. 프로드샴은 1926년에 20세기 오순절 운동의 이야기에 대한 표준적 작품으로 평가되어온『따르는 표적으로』(With Signs Following)라는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벧엘 성경학교에서 일어났던 오순절을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었다. 그런데 그는 벧엘 성경학교 교장이었던 찰스 파함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포르드샴은 파함의 존재 자체를 거론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바틀맨이 로스앤젤레스에서의 파함의 행적에 침묵했던 것보다 더 심한 것이었다. 포르드샴은 로스앤젤레스 오순절을 시무어로부터 시작했지만, 그곳에서 시무어는 창시자가 아닌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한 사람으로 그려졌다. 포르드샴은 아주사 집회의 증인의 말(아마도 바틀맨의 말), “하나님의 만지심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집회에 들어가자마자 성령께서 그 지도자이심을 깨닫는다”를 인용했다.
미국 하나님의 성회 산하 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던 칼 브럼백(Carl Brumback)은 1961년에 오순절운동의 기원이 세속적 원인에 돌려져 온 것을 바로잡아 신적 원인에 올바로 돌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회사가들이 오로지 천상적인 것(the heavenly)보다는 지상적인 것(the earthly)을 기반으로 부흥들을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주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영적으로 다시 오심(the coming again, spiritually)이라는 신적 요소(the divine element)를 거의 무시한 채 그 시대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또는 단지 종교적 문제들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현대 오순절 부흥의 기원과 성장의 원인도 세속적인 원인들(mundane causes)에 잘못 돌려져 왔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나름대로 그 경향을 바로잡아 오순절운동의 시작은 지상적 원인이 아닌 천상적인 “제 일 원인”(the First Cause)의 작용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비록 브럼백이 오순절운동의 신적 원인에 집중했지만, 그는 인적 원인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는 오순절적 부흥에 대한 지상적 상황들(conditions)의 영향을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오순절 운동의 발흥을 위한 배경을 제공했다는 상황들을 열거했다. 또한 그런 상황들 안에서 오순절운동을 이끌었던 찰스 파함(Charles F. Parham), 윌리엄 시무어(William J. Seymour) 등 인간 지도자들의 사역을 소개했다.
그러나 브럼백은 그런 인적 요인들을 소개한 후 눈을 돌려 진정한 오순절의 기원인 신적 요인에 주목한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오순절주의자들에게 “사람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Call No Man . . . Father)고 외쳤다. 1세기 오순절의 아버지를 발견하기 위해 사도들 너머를 보아야 하는 것처럼, 20세기 오순절의 아버지(the Father of twentieth-century Pentecost)를 찾기 위해서는 그저 인간을 바라보지 말고 그 너머로 눈을 돌려 하나님을 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오순절운동을 창시한 사람(a progenitor)이 없다는 것을 강력한 오순절 부흥이 직접적으로 성령의 특별한 부어주심에 의해 태어났다는 표시로 간주했다. 그에게 이 점이 한 사람에 의해 주도되어 탄생했던 다른 기독교적 집단들로부터 오순절운동을 구별시켜주는 것이었다.
브럼백은 파함과 시무어도 오순절운동의 아버지로 간주될 수 없다며, 성령이야말로 오순절의 아버지라고 주장했다. 그는 오순절운동의 걸출한 지도자들로서 오순절의 기원으로 지칭되는 파함과 시무어도 스스로를 오순절운동의 아버지라고 자청한 적이 없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는 파함이 비록 자신을 오순절 운동의 지도자로 자청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오순절적 교단을 만들어 권위를 내세운 적이 없었다는 점, 성령침례에 방언이 동반된다는 성경적 사실을 발견한 사람은 파함이 아닌, 그의 학생들이었다고 해석하며 그를 오순절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시무어도 역시 그의 사역의 시초에는 오순절의 창시자를 파함이라고 인정하고 파함이 펴냈던 사도신앙지의 이름을 그대로 모방하여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도신앙지를 펴냈다는 점, 시무어 자신이 오순절의 아버지로 자청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그 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런 이유를 제시한 후, 그는 “그래서 우리 오순절 영광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그 어떤 지상적 아버지(no earthly father)도 없다”고 말했다. 그에게 오순절적 부흥은 한 사람의 종교적 천재의 마음에서 잉태되지 않았으며, 성령 충만에 방언의 동반에 관한 그것의 독특한 선언조차도 한 집단에 의해 성경적인 것이라고 파악된 것이지 한 개인에 의해 된 것이 아니었다. 최종적으로 그는 오순절운동을 “성령의 자녀”(a child of the Holy Ghost)라고, 즉 오순절운동의 아버지를 성령이라고 규정지었다.
브럼백이 오순절운동의 천상적 기원을 강조한 것은 격한 충돌을 피하려는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미국 하나님의 성회는 성령침례에 방언이 동반되는 점에서는 파함을 따르지만, 성화론에서는 더함(William H. Durham)을 따르고, 방언의 성격에 있어서는 파함의 언어적 방언(Xenolalia)도 인정하지만, 시무어의 집회에서 일어나기도 했던 천상적 방언(glossolalia)도 인정한다. 미국 하나님의 성회 세미나리에서 가르치던 브럼백은 어느 한 면을 부각시키고, 그 면을 주도한 한 사람을 오순절 창시자로 삼기를 주저했을 수도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신적 기원설은 아주사 공동체에서 처음 제기되었다. 파함도 아니고 시무어도 아닌, 즉 인간이 아닌 “주님”께서 오순절운동을 일으키셨다는 것이다. 바틀맨의 말에게서도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신적 기원설은 주도적 지도자들 간의 충돌을 겪으면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일 것이다.
바틀맨과 브럼백의 특정한 교리와 사역을 주장했던 사람을 기원으로 삼지 않으려는, 그런 평화를 위한 대안적 선택은 성령침례에 방언이 최초로 동반된다는 오순절운동만의 특징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특히 브럼백은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역사를 집필하기 20여 년 전인 1947년에 방언에 대한 훌륭한 변증서를 썼다. 그런 브럼백의 노고는 1961년에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역사를 기록하며 성령침례에 동반되는 방언 교리를 오순절운동의 주장들 중 하나로 치부하고, 그 교리의 형성을 주도했던 파함의 창조적 업적을 약화시킴으로써 빛이 바랬다. 오순절운동의 기원을 설정하는 기준은 오순절운동을 다른 운동들로부터 구별시켜주는 성령침례에 방언이 동반된다는 신학적 교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오순절운동의 특징이 명확해지고, 그 기원도 명확해지는 것이다.
비록 브럼백이 지적했던 것처럼 사도행전에서 성령침례의 증거를 찾았던 사람들은 그의 학생들이었지만, 그들에게 그런 성경연구를 지시하고 그 연구에 따라 방언이 동반되는 성령침례의 경험을 주도했던 사람은 바로 파함이었던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기독교 2000년 역사 가운데서 성령이 계속 역사하셨지만, 그 동안 성령침례 역사가 활발하지 못했던 원인은 사람들의 성령에 대한 올바르지 못한 인식이었다. 그 파함이 그 올바르지 못한 성령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자, 성령께서 활발하게 역사하기 시작하셨고, 그 모든 과정이 오순절운동의 시작이었다. 그러므로 오순절운동에서 신적 요소도 중요하지만, 인적 요소도 그만큼 중요하다. 지상에 존재하는 사람들 중에 지상적 아버지는 없고 천상적 아버지만 존재하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가? 이런 의미에서, 브럼백의 주장과는 달리 오순절운동에게는 천상적 아버지(heavenly father)뿐만 아니라, 지상적 아버지(earthly father)도 존재한다. 오순절운동은 성령의 자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사람의 자녀이기도 하다.
성령은 인간 대행자와 함께 역사하신다는 점에서 성령 기원설에만 치우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로벳은 성령 기원설이 성령께서 특별한 시대에 특별한 인간 대행자를 통해 일하신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그런 지적만큼은 정확한 것이었다. 물론 성령 기원설은 오순절운동이 영적으로 성령께서 그 시작과 경과를 주도하신 운동이라는 측면에서 그 신적 기원을 잘 설명하지만, 성령께서는 지상의 대행자를 통해 그렇게 하셨다는 인간적 측면을 약화시킨다.
오순절운동이 신적인 기원만을 갖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오순절 역사(Pentecostal history)의 기록이 불가능하게 된다. 오순절 역사 연구와 기록 문제에 관심이 있는 윌리엄 케이(William Kay)는 물론 오순절 운동에는 방언 등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오순절 역사에 대한 섭리적 관점(the providential view of history)없이는 오순절적 역사를 기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긴 하지만, 또한 섭리적 관점에만 치우쳐 오순절 운동의 발흥의 자연적 요인들을 무시한다면, 이 또한 오순절 역사 기록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IV. 시무어 기원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된 설은 “시무어 기원설”(Seymour origin)이다. 스위스인 홀렌베거(Walter Hollenweger)는 시무어 기원설의 주도자이다. 그는 일찍이 1972년에『오순절주의자들』(The Pentecostals)이라는 책을 내었는데, 그 책에서 시무어를 오순절운동의 기원으로 삼았다. 그는 오순절주의의 창시자가 백인 파함이나 흑인 시무어 둘 중에 하나인데 둘 사이의 선택은 오순절주의의 본질의 설정에 달려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오순절주의의 기초가 방언을 말함(speaking in tongues as languages)이라는 특별한 경험에 대한 교리에 있거나, 아니면 아주사 거리 부흥의 아프리카 흑인적인 구술적(oral) 선교적 특성과 장애들을 넘어서는 능력이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말했다. 그리고 홀렌베거는 그곳으로부터 오순절적 메시지가 전 세계로 퍼져나간 아주사 거리 부흥 운동의 주도자였던 흑인 시무어를 오순절 운동의 창시자로 선택했다. 그는 오순절주의의 배경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 아프리카 흑인 노예 구술 종교 그리고 유럽 백인 웨슬리 성결운동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홀렌베거는 오순절주의의 놀라운 성장이 역사적 요인이나 특별한 교리보다도 구술적 구조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비록 홀렌베거가 오순절의 본질을 자기 나름대로 설정하고 시무어를 그 창시자로 내세웠다고 할지라도, 그 역시 파함이 오순절의 시발점이 되는 특별한 교리(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는)의 창시자라는 것을 외면하지는 못했다. 그는 시무어가 파함의 성령침례론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적어도 교리적인 면에서는 파함이 오순절 운동의 창시자임을 인정했던 것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며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 in Christ) 소속인 레오나르드 로벳(Leonard Lovett)은 1973년에 “늦은 비” 모델을 오순절기원설정을 위한 적합한 틀로 제시했다. 로벳은 오순절운동의 기원 설정에 있어서 “이른 비와 늦은 비”라는 틀을 중요시 했다. 그는 오순절 운동을 “늦은 비 운동”(Latter Rain Movement)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그는 성령의 이른 비가 성경의 오순절에 폭포수처럼 내렸으며, 교회사라는 긴 가뭄 기간 동안 간간이 소나기들이 내렸었다고 보았다. 그는 1901년 파함에 의해 늦은 비가 처음 내리기 시작은 했는데, 그 늦은 비는 지극히 적은 양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다가 마침내 1906년 시무어의 아주사 집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늦은 비가 퍼부어지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로벳은 오순절기원에 대한 여러 설을 반박하고 시무어가 오순절의 유일한 기원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존 하든과 빈슨 사이난이 오순절운동의 기원을 백인 파함과 흑인 시무어 두 사람에게 이중으로 둠으로써 오순절운동의 특징을 “인종혼합적인”(interracial) 것으로 파악했다. 로벳은 인종혼합을 오순절의 기원으로 둔다면, 하든과 사이난이 주장한 두 이중기원설이 아닌, 아주사 집회에서 완전한 인종혼합을 이끌어낸 흑인 시무어의 단독 기원설이 더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로벳은 파함과 시무어를 이중기원으로 삼는 사람들은 늦은 비가 진정으로 폭포수처럼 내리기 시작했던 것은 바로 시무어의 집회에서부터였던 것을 간과해왔고, 이것이 인종혼합 이중기원설의 약점이라고 주장했다. 로벳은 이렇게 인종혼합과 영향력의 크기를 기준으로 시무어를 오순절의 기원으로 삼았다.
그런데 로벳이 그렇게 동일한 늦은 비를 양에 따라 나누어 구분하는 것은 너무도 억지스럽고 타당하지 않은 것이었다. 시무어를 오순절의 기원으로 등극시키기 위한 로벳의 그런 억지스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로벳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오순절 늦은 비가 파함의 사역에서, 실제적으로는 엄청난 비가 내렸지만, 비록 양이 상대적으로 적었다할지라도, 내리기 시작했던 것은 여전히 사실로 남는다.
1981년에 더글라스 넬슨(Douglas J. Nelson)은 오순절운동의 기원 안에서 찰스 파함의 역할은 사이난-발드포겔과 앤더슨 각본 모두에서 역사가들에 의해 과장되었다고 주장했다. 홀렌베거의 우산 아래서 연구한 넬슨은 “인종적 음모 이론”(racial conspiracy theory)을 발전시키며 “이런 때를 위해: 감독 윌리엄 J. 시무어와 아주사 거리 부흥의 이야기”(For Such a Time as This: The Story of Bishop William J. Seymour and the Azusa Street Revival)에서 시무어를 한 영웅적인 종교 운동의 “절대적인 창시자”(unqualified founder)로 소개한다. 넬슨은 그 영웅적인 종교 운동의 기원은 방언으로 입증되는 성령 경험이 아닌 인종적이고 계급적인 장벽들의 진정한 와해에서 찾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넬슨은 아주사 거리 부흥의 초기에 일어난 “인종혼합예배”(the interracial worship)가 방언보다도 사도행전 2장에 묘사된 신약 성경적 오순절 경험의 정신을 재현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고프(James Rudolph. Goff)에 따르면 넬슨의 논지는, “인종혼합예배의 명백하게 짧은 수명과 후속적인 오순절주의자들의 ‘인종 교회 분리의 예방 실패’(the subsequent failure of Pentecostals to prevent racial church segregation)를 전제할 때, 오순절주의에 대한 그런 재정의를 뒷받침할 수 없다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결국 “인종적 평등”(racial equality)은 아주사에서의 흑인 오순절주의자들의 한 이상적 교리였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와 같이 그것은 20세기 초엽에 흑인 공동체의 사고방식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백인들은 의식적으로 백인 우월의 메시지를 전했다. 넬슨은 아주사 집회에 참석했던 백인 오순절주의자들은 일반 대중과는 아주 달랐다는 것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는데 실패했다. 아주사 부흥의 중심점에 의한 운동 통합의 실패는 그와 정반대를 입증한다.
홀렌베거가 시작한 버밍햄 학파의 현재 리더 격인 알란 앤더슨도 2004년에 파함을 오순절주의의 “역사적 신학적 배경”(Historical and theological background) 표제어 밑에서 다룬다. 그리고 시무어를 “북미 고전 오순절주의”(North American Classical Pentecostalism)라는 표제어 밑에서 첫 번째로 다룬다. 그러나 그도 역시 홀렌베거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파함] 북미 고전 오순절주의의 특징(hallmark)인 ‘표적 방언 교리’(evidential tongues doctrine)를 공식화했다”고 말함으로써 파함을 역사적 그리고 교리적인 면에서 창시자로 인정했다.
데일 어빈도 2005년에 파함을 오순절 안의 근본적인 교리의 창시자(the originator of the primary doctrine in Pentecostalism)로 규정하였다. 반면에 그는 시무어를 오순절운동의 아버지(he father of the movement)로 규정했다. 이런 데일 어빈의 규정은 홀렌베거의 버밍햄 학파의 맥락 안에 있는 것이다.
시무어 기원설은 시무어 자신과 아주사 선교회 자체가 오순절운동의 기원을 시무어라고 규정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의해 와해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시무어의 공동체는 그 공동체의 운동의 기원을 먼저 “파함”이라 규정했었지만 몇 달 뒤에는 오순절운동의 기원을 “주님”께 돌렸다. 그리고 아주사 공동체 안에서 시무어는 대부분 “시무어 형제”(Bro. W. J. Seymour)로 불렸다. 그 선교회는 시무어를 그 운동의 창시자가 아닌 그 공동체의 모든 다른 구성원들과 동등한 “형제”라고 부른 것이다. 시무어도 자신을 아주사 오순절의 창시자라고 부른 적이 없다.『사도신앙』에 나타나는 시무어의 18편의 설교 말미에는 “William J. Seymour”라는 이름이 아무런 직함도 없이 등장한다.
파함의 아내 사라 파함은 파함이 1929년에 별세한 후 1930년에 파함의 전기를 썼다. 그녀는 그 전기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며 시무어의 공동체의 오순절운동 기원에 대한 언급 변화를 다루었다. 사라 파함은 시무어가 오순절 기원을 파함으로 삼았다가 변경한 이유를 시무어의 지도자가 되고 싶은 교만 혹은 욕심으로 규정했다.
시무어는 그의 첫 신문에서는 그 사역의 기원에 대해 올바르게 기술했다. 그러나 그는 파함의 메시지를 받는 데 실패한 후, 지도자가 되고 싶은 나머지 성령침례가 첫 번째로 내린 곳이 아주사거리 선교회였다고 입증하려 했다. 파함은 그에게 가서 그가 사람들을 속이고, 지도력을 거부하고, 자기를 높인 것을 하나님께 회개하기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를 낮추실 것이라고 간절하게 말했다. 우리는 사람들을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V. 자생/동시다발 기원설
1940년대부터 1990년대, 2004년을 거쳐 제기되고 있는 설은 “자생적/동시다발 기원설”(spontaneous and simultaneous origines)이다. 자생/동시다발 기원설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은 아마도 영국에서 태어나 1905년에 웨일즈 부흥의 영향아래서 은혜를 받고 후에 오순절세계연맹에서 일하기도 했던 도날드 기(Donald Gee)였을 것이다. 1941년에 도날드 기(Donald Gee)는 오순절 운동은 그 기원을 그 어떤 탁월한 인물이나 종교적 지도자에게 빚지지 않았고, 전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거의 동시에(almost simultaneously) 나타난 자생적 부흥(a spontaneous revival)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순절운동의 창시자(founder)로 인식되어온 사람들을 단지 오순절운동의 지도자(leader)로만 인식했다. 그는, 부정적 의미에서, 어떤 지도자들은 오순절운동의 범위를 확장시키려는 일단의 사람들에 의해 창시자로 인식되어왔다고 분석했다. 또한 그는 어떤 지도자들은 오순절운동 안의 특별한 지역 단체의 창시자로 추앙을 받아왔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런 판단의 이유에 대해 그 지도자들이 오순절운동을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오순절운동이 그들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But the outstanding leaders of the Pentecostal Movement are themselves the products of the Movement. They did not make it; it made them). 그리고 그는 오순절운동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성령께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공급하시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런 도날드 기의 주장은 바틀맨의 주장과 공통점을 갖는다. 도날드 기는 오순절운동의 특징 가운데 하나를 성령께서 제공하시는 특별한 것으로 보았다. 오순절운동에 있어서 이러한 성령의 능동적인 역사는 또한 바틀맨이 부각시킨 것이기도 했다. 오순절 지도자들이 오순절운동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오순절운동이 그들을 만들었다는 기의 주장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시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라고 말했던 프랑크 바틀맨의 말을 연상시킨다. 아마도 기는 바틀맨의 글을 읽었을 것이다. 도날드 기는 바틀맨의 “사람”을 “오순절운동”으로만 대체한 것 같다.
도날드 기의 주장은 바틀맨의 주장과 차이점도 갖는다. 바틀맨은 성령께서 시무어 더함 등의 미국 지도자들을 통해 일으키신 오순절운동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도날드 기는 성령께서 세계 여러 지역의 많은 지도자들을 통해 거의 동시에 자생적으로 오순절운동을 각 지역별로 독립적으로 발생시키셨다고 주장했다. 즉, 기와 바틀맨은 둘 다 성령기원설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발생 기점에 대해서는 차이를 드러냈다. 아마도 기는 바틀맨의 주장에 자기 경험을 더하여 성령께서 오순절운동을 일으키셨다면 한 특정한 지역이 아니라 전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일으키실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둘 사이의 차이점은 또 하나있다. 그 차이점은 오순절운동의 정체성과 관련된다. 바틀맨은 오순절운동에 있어서 교리(dogma)는 다툼의 원천일 뿐이었고, 오순절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성령의 산역사라고 주장했다. 이와는 달리 도날드 기는 “오순절운동은 방언 말하기는 성령침례의 성경적 최초의 증거라고 끊임없이 가르쳐 왔다(speaking with tongues is the scriptural initial evidence of that baptism)”고 말했다. 기는 이것을 “교리”(doctrine)라고 칭하고, 오순절운동의 간증 안에서 가장 도전적인 특징(challenging doctrine)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그 교리가 역사 속에서 실제로 구현되고 있는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이므로, 그 교리에 대한 논쟁을 그치고, 그 교리가 실제로 현실 속에서 실현되어 역사(history)가 되게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는 방언이 성령침례의 성경적 최초 증거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으나, 더 중요한 것은 그 교리가 역사 속에서 구현되어 온 것처럼, 현재에도 실현시키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의 이런 방언과 성령침례와의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성에 대한 교리적 역사적 고수는 20년이 지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1961년에 “방언 말하기는 성령침례의 성경적 최초 증거”라는 교리를 “우리의 교리”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는 “나는 이 교리가 옳다고 생각한다”(I hold that doctrine to be right)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실제성을 결여하는 가정된 오순절적 경험의 결과들은 아무 것도 아니며, 아무 것도 아닌 것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경계했다. 즉, 그는 그 교리를 철회한 적이 없으며, 오지 그 교리의 역사 속에서 구현에 몰두했다. 도날드 기에게 오순절운동의 정체성은 성령침례에 방언이 최초로 동반된다는 교리에 있었다.
도날드 기가 오순절운동의 정체성을 성령침례에 방언이 최초로 동반된다는 교리에 둔 것은 그가 오순절운동을 찰스 파함과 연관시켰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프랑크 바틀맨은 오순절운동에 대한 글을 쓰면서 오순절운동의 성령침례에 대한 교리의 내용과 그 교리를 발생시켰던 찰스 파함에 대한 언급을 회피했다. 도날드 기는 바틀맨과 달리 교리의 내용을 언급하고 강조하기는 했지만, 바틀맨처럼 그 교리를 발생시킨 파함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도날드 기는 그 교리를 오순절운동의 정체성으로 파악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오순절운동에 있어서 파함의 지대한 중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그 교리를 오순절운동의 정체성으로 파악했으면서도, 파함을 오순절운동의 기원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모순된 일이다.
1993년에 풀러신학교의 흑인 신학자 세실 로벡(Cecil M. Robeck Jr.)은 오순절의 기원을 규정하는데 있어서 오순절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을 인식했다. 그리고 로벡은 오순절의 정체성에 대한 규정의 변이를 추적했다. 그에 따르면, 제일 먼저 제기된 규정은 성령침례의 최초 증거(the initial evidence)는 방언이라는 교리와 연결되며, 이 교리는 오순절의 특성(the Pentecostal distinctive)으로 인식된다. 두 번째로 제기된 규정은 도날드 데이턴(Donald Dayton)에 의한 신학적 사중복음(four fold Gospel)과 관련된다. 세 번째로 제기된 규정은 홀렌베거가 제시한 문화적, 사회적 심리학적 요인들 그리고 세풀베다(J. Sepulveda)가 제기한 방언이외에 예언이나 신유 같은 다른 다양한 은사들과 관련된다.
로벡은 오순절 정체성에 대한 세 번째 규정(다양한 성령의 은사들)을 자신의 틀로 삼았다. 이는 바틀맨의 성령 기원설과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바틀맨의 주장과 달라지는 점은 그가 바틀맨이 주장했던 미국 기원설은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는 오순절운동을 전 세계에 걸친 성령의 자생적이고 동시다발적 부어주심(a spontaneous and simultaneous outpouring of the Holy Spirit around the world)과 연결시켰다. 그리고 오순절의 기원은 북미의 한 백인(파함)이나 한 흑인(시무어)에 의한 유일 기원이 아니며, 오순절에는 전 세계에 걸친 성령의 자생적이고 동시다발적인 부어주심에 의한 “다중 기원들”(multiple origins)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도날드 기로부터 이 다중기원설을 유산으로 받았을 것이다. 로벡이 도날드 기와 다른 점은, 그가 도날드 기의 자생/동시다발설을 수용했지만, 성령침례에 방언에 동반된다는 교리가 오순절운동의 특징이라는 도날드 기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아프리카계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프리카에서 자란 알란 앤더슨(Allan Anderson)은 로벡의 자생적/동시다발적 기원설, 다중 기원설을 이어받아 확장시켰다. 그는 2004년에 옥스퍼드 선교 연구 센터(the Oxford Centre for Mission Studies)에서 행한 강의에서 자생/동시다발 기원설을 주장했다. 앤더슨은 오순절 운동이 미국 아주사 부흥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는 인식을 오순절 역사 안의 편견에 불과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사실 여러 나라들에서 오순절 운동은 미국에서 수입되었다기 보다는 미국 선교사들이 아닌 각 지역의 개척자들의 노력과 비전에 의해 확산되었다고 주장했다. 앤더슨은 그런 서구적 관점의 역사는 교단이나 인종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고 분석했다. 앤더슨은 이런 편견에는 정치적 사회적 요인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오순절주의자들의 영적 경험들이 정치적이고 사회적 환경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리고 그는 오순절운동이 미국으로부터 시작하여 다른 민족과 나라들로 퍼져나갔다는 편견은 문화적으로 월등한 서구인이 열등한 지역의 민족들을 식민지로 삼았던 식민주의(colonialism)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앤더슨은 홀렌베거와 그의 버밍햄 제자들이 1970년대에 아주사를 오순절주의의 중심 또는 요람, 예루살렘(the Pentecostal Jerusalem)으로 삼기 시작한 것을 언급했다. 버밍햄 학파의 노력으로 아프리카계 미국 교회가 전 세계로 이식되어 오순절 교회들을 낳았다는 점이 재조명되었다며 그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오순절주의에 대한 미국인 중심 역사는 오순절주의의 다양하고 전지구적 성격을 올바로 나타내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그에게 미국 안에서 생성된 오순주의는 여러 다양한 지역 오순절주의의 다양한 형태의 총체적 모습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숨겨진 지역 역사들이 재발견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세계 여러 지역의 오순절적 부흥들이 북미의 오순절적 역사들을 앞서거나 그 역사들로부터 독립적이었다고 보았다. 앤더슨은 그런 시각에 따라 1905년 인도의 푸네(Pune), 1907년 한국의 평양, 남아프리카의 왁커스트롬(Wakkerstroom), 1918년 나이제리아의 라고스, 칠레의 발파라이소(Valparaiso) 등을 미국의 아주사와 동등한 오순절운동의 “예루살렘들”(Jerusalems)로 승격시켰다.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의 은사적 부흥들에 대한 홀렌베거 그리고 그의 제자들에 의한 방대한 자료수집과 연구들은 앤더슨의 이런 조치의 근거를 제공했을 것이다.
앤더슨은 오순절의 기원을 설정하는 것은 오순절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처럼 치유, 예언, 방언, 다른 나타남들과 정서적 기도회를 오순절주의의 특성으로 삼는다면, 오순절 운동이 미국에서만이 아닌 세계 곳곳에서 미국과 연결고리 없이 자생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는 자신의 주장을 인정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앤더슨은 파함을 오순절 시조에서 축출하고 시무어를 등용시킴으로써 성령침례와 방언의 연결이 풀어졌고, 그 교리가 아닌, 성령침례뿐만 아니라 치유, 예언, 성령침례로부터 분리된 방언 등등의 성령의 나타남들을 오순절주의의 특성으로 삼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오순절의 특성에 대한 규정의 변화는 오순절 기원 규정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일단 오순절의 특성을 여러 다양한 성령의 나타남들로 규정하자, 1906년의 시무어를 오순절 기원으로 삼는 것이 가능해졌고, 성령의 나타남들이 오순절 기원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자, 아주사뿐만 아니라 1906년 전후로 거의 동시에 세계 여러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했던 부흥들이 오순절의 기원들로 재해석되었다.
앤더슨이 편견이라고 낙인찍은 오순절운동이 한 지역에서 시작되어 점차 다른 지역들에로 퍼져나갔다는 시간차적-연속적-확산적 인식은 앞에서도 살펴보았던 것처럼 앤더슨이 미국의 오순절 예루살렘이라고 규정한 시무어의 아주사 선교회에서 잉태된 것이었다. 이런 시간차적-연속적-확산적 인식의 토대에는 성령침례에는 방언말하기라는 성경적 증거가 동반된다는 교리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교리가 성결주의로부터 구별된 파함의 벧엘 오순절을 발생시켰고, 시무어의 아주사 오순절을 발생시켰다. 이 교리가 없었다면, 파함의 벧엘 오순절도 단순히 그 이전의 다른 부흥들과 동일한 것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며, 시무어의 아주사 오순절도 그랬을 것이다. 이 교리가 벧엘 부흥을 다른 부흥들과 구분지어 오순절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한 것이다. 성령침례의 증거가 방언이라는 교리가 오순절주의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순절”이라는 이름 자체에 오순절의 정체성이 내포되어 있다.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날(Penthkosth)에 성령침례에 방언이 동반된 것을 현대에 재현하려는 움직임이 오순절운동(Pentecostal Movement)이다. 홀렌베거나 앤더슨처럼 오순절운동의 정체성을 그 교리가 아닌 성령의 나타남들로 삼는다면, 단지 1905년부터 최근까지 발생한 부흥들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발생했던 몬타누스의 새예언운동이나 까미사드, 어빙, 어윈의 부흥 등등 기독교 역사 안에서 일어났던 모든 성령의 나타남이 있었던 지역들을 오순절운동의 예루살렘들로 삼아야할 것이다. 오히려 그런 다중적 기원 인식이 억지스런 편견이다. 시간차적-연속적-확산적 인식은 편견이 아니라 오순절운동을 배태시키고, 출생시키고, 성장시킨 자연스런 정견이다.
앤더슨이 오순절의 다중적 기원설을 확장한 2년 후, 2006년에 아프리카의 두 교회사가 호프마이어(J. W. Hofmeyr)와 칼루(O. U. Kalu)도 오순절운동의 자생/동시다발 기원을 지지했다. 그들은 오순절운동이 북미에서 발생하여 선교사들에 의해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는 주장은 북미 바깥의 주역들이 외부에 의존했다는 문제를 야기시켜왔다고 분석했다. 그들은 그런 북미 중심적 틀은 그 지역 바깥에서는 맞지 않고, 혼란만 일으킨다고 보았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호프마이어와 칼루는 북미 오순절의 틀을 버리고 오순절주의의 재정의를 시도했다. 그들에 따르면, 북미 바깥의 오순절주의자들은 북미에서 건너온 것 대신에 성경을 그 운동의 기원으로 삼았다. 그들은 그들의 혈통을 성경에 나타나는 초대교회의 특징들을 회복하려 했던 움직임들에서 찾았다. 이런 접근은 오순절주의의 정체성을 구원받은 자로서 변화된 개인들의 종교적 경험들과 그들의 삶 속에서 성령의 폭발적인 표적들에서 찾게 했다. 신자들의 삶 속에서 성령의 은사들의 나타남이 이 은사들의 종결을 믿어 온 옛 복음주의로부터 오순절주의를 구분시켜주는 시금석이 되었으며, 이로서 오순절주의자들은 다른 가르침과 다른 역사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주사 부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은 단지 북미에서 첫 번째로 오순절로 불릴 수 있을 만큼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아주사의 오순절 이전에도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서 아주사와 동일한 현상을 경험한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았었는가를 묻고, 만약 다른 지역들의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를 독립적으로 경험했다면, 오순절운동이 미국에서 다른 지역으로 배달되었다는 역사는 수정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여기까지는 그들이 앤더슨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 같으며, 앤더슨과 달라지는 점은, 그들이 아주사 선교회와 바틀맨 등의 신적/성령 기원설과 유사한 주장을 펼쳤다는 것이다. 호프마이어와 칼루는 “성령은 인간 대리자 없이 성령침례를 주실 수 있으시다!”(the Spirit could baptize without a human agency)라고 주장했다. 그 명제의 근거로, 그들은 유럽의 웨일즈 부흥, 남미의 브라질, 칠레 등에서 외부인인 북미 선교사들의 도착 이전에 성령 침례를 받는 은사적 부흥이 자생적으로 일어난 것을 제시했다. 그들에 따르면, 그래서 그 지역에서는 북미 선교사들이 강조했던 교리가 토착민들에게는 오순절주의 정체성으로 규정되지 않았다. 그들은 성령이 북미 선교사들 없이도 세계 여러 지역의 토착민들에게 침례를 주심으로써 오순절운동의 다중적 기원론이 가능해졌다고 보았다.
물론 호프마이어와 칼루가 주장하는 것처럼 성령은 인간 대행자 없이도 침례를 주실 수 있으실 것이다. 하지만 성령께서 인간 대행자 없이 침례를 주신 모든 부흥을 오순절 부흥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 성령께서 인간 대행자 없이 침례를 주신 모든 부흥을 오순절 부흥으로 삼는다면, 기독교 역사 가운데서 발생한 성령의 그런 모든 역사들을 오순절 부흥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의 독립적이고 토착적 역사들을 오순절의 판별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 오순절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시금석은 성령침례에는 방언이 동반된다는 교리가 되어야 한다. 한 개인은 그 교리를 인정한 다음 성령침례를 받는 경험을 하든, 성령침례의 경험이 있은 후 그 교리를 인정하든, 그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오순절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설혹 어떤 사람이 방언이 동반되는 성령침례를 받고도 그 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는 은사주의자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순절주의자가 될 수 없다. 오순절운동은 신학적 운동이다. 성령은 인간 대리자 없이 침례를 주실 수 있으시지만, 성령침례에 방언이 동반된다는 교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오순절주의자로 만드실 수는 없으시다.
VI. 나가는 말
오순절운동 안에서 역사적으로 제일 먼저 제기된 기원설은 1902년부터 제기된 “파함 기원설”이다. 파함 기원설은 오순절운동이 성령침례에는 성경적 증거인 방언이 뒤따른다는 교리를 기반으로 1900년 말에서 1901년 초 사이에 파함에 의해 토페카에서 발생했음을 밝힌다. 성령침례 추구와 방언 경험이 그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파함에 의해 두 요소가 신학적으로 최초로 결합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파함 기원설에 따른 오순절운동의 정체성은 성령침례와 방언의 결합에 있다. 파함 기원설의 초기 주장자는 1901년 파함 자신과 1906년 초기 시무어의 공동체였으며, 플라우어, 니콜 멘지스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신적/성령 기원설”은 1906년에 파함과 시무어의 다툼을 해소시키기 위해 시무어의 공동체에서 처음 제기되었다. 시무어의 공동체는 처음에는 오순절운동의 기원을 파함이라고 주장했다가, 파함과의 다툼 이후에 입장을 바꾸어 신적/성령 기원설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브럼백, 바틀맨 등이 주장한 신적/성령 기원설은 오순절운동이 1906년에 특정한 인간이 아닌 성령에 의해 로스앤젤레스의 아주사거리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성령 기원설에 의해 파함이라는 지상적/인간적 기원이 약화되었고, 성령침례와 방언사이의 결합을 강조하는 교리가 약화되었으며, 발생 시간이 5년 뒤로 밀려났다.
1970년대부터 제기된 “시무어 기원설”은 신적/성령 기원설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미국 하나님의 교회의 흑인 학자들과 유럽인 홀렌베거에 의해 주도된 시무어 기원설은 1906년에 아주사 부흥을 주도했던 흑인 시무어가 오순절의 기원이라고 주장했다. 시무어 기원설은 “신적/성령 기원설”이 성령과 함께 일했던 지상적 지도자라고만 평했던 시무어를 오순절운동의 창시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시무어의 기원설에 의해 방언이 성령침례로부터 분리되었고, 그에 따라 교리보다는 방언에서 분리된 성령침례에 대한 경험이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으며, 그 경험에 대한 간증, 즉 구술성 그리고 흑인적/아프리카적 요소들이 부각되었다.
1940년대에 도날드 기에 의해 제기되었지만, 1990년대, 2004년을 거쳐 로벡과 홀렌베거 학파인 알란 앤더슨 등에 의해 최근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설은 “자생적/동시다발 기원설”이다. 자생/동시다발 기원설은 오순절운동이 1905년부터 1910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동시적으로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이 설은 오순절운동의 발원지를 미국이 아닌 유럽, 중앙아시아, 동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등의 전지구로 확대하며, 창시자를 파함이나 시무어라는 일인이나 이인의 미국 사람이 아닌 세계 각지의 문화적으로 인종적으로 다양한 다수의 토착민들로 삼으려 한다. 자생적/동시다발설은 시무어 기원설과 겹친다. 시무어 기원설은 자생적/동시다발 기원설을 예비했다. 오순절의 기원설의 미국 백인 중심을 벗어난 흑인성, 아프리카성, 구술성은 자생설에서 다양한 지역들의 문화적 인종적 토착성으로 확장되었으며, 방언을 벗은 성령침례에 대한 경험은 다양한 지역에서 성령침례와 은사들을 일으키시는 성령에 대한 경험으로 대체되었다. 시무어 기원설이 오순절 기원을 1906년으로 설정하고, 오순절의 정체성을 교리보다는 성령침례에 대한 경험에 두자, 1905년부터 세계 곳곳에서 발생했던 그런 성격과 유사한 부흥들이 모두 오순절운동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자생적/동시다발 기원설은 오순절주의를 성령의 은사들이 발현한 대부분의 부흥운동들과 은사주의와 신오순절주의를 포함하는 뒤죽박죽 혼합체로 변질시키려 하고 있다.
오순절 운동의 영적인 토대, 천상적 창시자는 성령 하나님이시지만, 지상적으로 말하자면 오순절 운동은 1901년 토페카에서 찰스 F. 파함(Charles F. Parham)에 의해 성령침례에 방언이 동반된다는 교리가 세워지고 시작되었으며, 파함에게 오순절 교리를 배운 윌리엄 J. 시무어(William J. Seymour)에 의해 1906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국제적인 운동으로 파급되었다. 다시 말하면, 오순절 운동의 아버지, 인적 창시자는 역사적으로 교리적으로 파함이었다. 오순절운동 기원의 판결 기준은 인종혼합성이나 구술성, 또는 다양한 성령의 은사들의 나타남이 아닌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는 신학적 명제, 교리이다. 오순절의 정체성은 이미 그 이름 안에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날 성령침례에 최초로 방언이 동반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그 기초를 두어야 한다. 파함은 현대 오순절 운동의 근간이 되는 이런 신학적 명제를 최초로 세움으로써 오순절 운동의 기원이 되었다.
오순절기원설표
설 시기 |
인적 기원설 | 신적 기원설 | ||
단일설 | 섭리설 | 다중설 | ||
북미설 | 북미설 | 전지구설 | ||
파함 기원설 | 시무어 기원설 | 성령 기원설 | 자생/동시다발설 | |
1902 | 파함 | |||
1906 | 아주사 선교회 | 아주사 선교회 | ||
1916 | 윌크(미하나님의성회) | |||
1925 | 바틀맨, 포르드샴 | |||
1930 | ||||
1947 | 에와르트(연합오순절) | 도날드 기(영국엘림) (성령침례+방언) |
||
1950 | 플라우어(미하나님의성회) | |||
1960 | 니콜(국제오순절성회) | 브럼백(미하나님의성회) | ||
1970 | 멘지스(미하나님의성회), 사이난(오순절성결) | 홀렌베거(버밍햄), 로벳(하나님의교회) |
||
1981 | 넬슨(하나님의교회) | |||
1993 | 로벡(미하나님의성회) | |||
2003 | 제이콥슨 | 데일 어빈 | 알란 앤더슨(버밍햄) | |
2006 | 호프마이어, 칼루 | |||
정체성 | 성령침례+방언 교리 | 경험, 구술(간증,서사성) | 성령 역사 | 성령 은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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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Who is the Father of Pentecostal Movement?
Chang-Soung Lee
There are many theories of the origin of Pentecostal Movement or Pentecsotalism. Which is true among them? The origin is closely connected with the identity of Pentecostalism. Therefore, to define Pentecostalism, one more inquiry of the origin is needed. Examining various theories of the origin: Parham theory, Pneumatic theory, Seymour theory, an
d Spontaneous/simultaneous theory, this article insists the father of Pentecostalism is Charles F. Parham. Although the heavenly father and spiritual base of Pentecostalism is the Holy Spirit, but to speak earthly, Pentecostalism was started by Parham’s establishing the doctrine: the Spirit baptism should be companied with speaking in tongues, and then was spread from Los Angeles to all over the world by William J. Seymour in 1906. Historically and doctrinally, the earthly father or founder of Pentecostalism is Parham. The yardstick for the determination of the origin is not race mixture, orality, or manifestations of gifts of the Spirit, but the theological proposition, doctrine: the Bible evidence of the Spirit baptism is speaking in tongues. The identity of Pentecostalism, as it is included in the name already, must be based on the historical fact: the first Pentecostal Spirit baptism of Acts 2 was accompanied with speaking in tongues. Parham became the father and origin of Pentecostalism through establishing such a theological doctrine of Pentecostalism.
주제어: 오순절주의의 기원/아버지, 파함설, 시무어설, 성령설, 자생/동시다발설, 오순절주의의 정체성, 성경적 증거로서 방언
Keywords: the Origin/Father of Pentecostalism, Parham origin, Seymour origin, Pneumatic origin, Spontaneous/simultaneous origins, the Identity of Pentecostalism, Speaking in tongues as the Bible e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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