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최종 비판적 평가
(1) 시무어와 아주사의 의미
교회가 교회 되어야 한다는 기독교의 가장 절박한 필요에 부응하는 윌리엄 J. 시무어와 아주사 거리 부흥의 이야기는 이와 같은 때를 위한 것이다. 시무어는 오순절/은사주의 운동의 뿌리들은 사도적 기독교의 뿌리들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주사 거리의 이적은 초기 기독교의 정신의 현대적 형태를 드러냈다. 그의 이야기는 그의 비전적 지도력이 하나로 만들어진 그리스도인들의 몸에 의해 산출된 혁명적인 사랑과 능력의 표본을 20세기 사람들에게 제시했던 한 위대한 예언자적 성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최근에 해방된 노예들의 아들은 외진 루이지애나 베이유 지방이라는 궁벽한 땅으로부터 한 회중의 목사로서 1906년부터 1909년까지 로스앤젤레스에서 예기치 않게 부상했다. 그곳에서 모든 신앙고백의 그리스도인들이 놀라운 운동을 이루면서 인종, 성, 계급, 그리고 국가라는 장벽들을 넘어서는 황홀한 평등과 일치 안에서 합류했다. 몇 주 안에 신학적으로 훈련받은 사람들과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 미국 전역으로 그리고 선교사들로서 전 세계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다른 사람들은 귀로 들었던 것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지 자기 눈으로 보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그 나라와 세계를 가로질러 왔다. 이 현상 전체는 현대 신학과 기독교적 삶에 대단히 중요하다.
시무어와 아주사 거리로의 이적적인 하나 됨(coming together)은 시대를 너무 앞섰기 때문에 완전히 또는 적절하게 평가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인간의 분열과 기독교적 분열의 치유는 사도 바울의 지도력 아래서 1세기에 그랬었던 것처럼 20세기에 달갑지 않은 것으로 입증되었다. 바울에 의해 감지되고, 기술되고, 그리고 이행되었던 기독교적 하나 됨(Christian wholeness)은 곧 교회에 의해 간과되었고, 후에 형식적인 신조적 진술들에만 남고 잊혀졌다. 이것은 그 하나 됨이 언제나 비전적이고 혁명적인 것이라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그 비전과 실제는 아주사에서 시무어에 의해 다시 환영을 받을 때까지 교회의 생활과 역사에서 사라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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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무어의 성취
이 글을 쓰고 있을 때에, 1906년 4월 9일의 75주년 기념일이 막 지나갔다. 시무어가 하나로 만들었던 집단들이 다시 갈라졌고, 아주사에서 일어났던 일을 잊어버린 것을 보면, 시무어가 실패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실패는 바울의 결과들을 답습하기 때문에 실제보다 더 분명하다. 바울의 교회들은 교회 안에서 완전한 평등과 일치에 대한 그의 독특한 강조를 잊었음에도 불구하고 확장되었다. 시무어가 바울의 비전을 다시 붙잡았을 때, 아주사에서 시작된 것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성취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비록 잊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무어는 초대 기독교 공동체의 황홀한 평등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구했고, 모든 종류의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오순절 운동의 창시자가 되었다. 시무어의 독특한 아주사적 강도의 상실에도 불구하고, 알스트롬의 평가에 의하면, 백인들 뿐만 아니라 모든 다른 사람들을 분발시키기 위해 피부색에 의한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그 어떤 다른 흑인 지도자보다도 더 미국 기독교에 큰 영향을 주었다. 알스트롬은 또한 인종혼합적 일치(interracial unity)는 1908년의 미국에서는 거의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시무어의 성취는 거의 과장될 수 없을 것이다. 1947년에 영국 역사가 토인비는, 분명 시무어를 알지는 못했을 것이지만, 몰락하고 있던 서양 문명을 위한 유일한 희망을 제공한 미국 흑인 기독교를 강조했다.
흑인들은 서양 문명이 오랫동안 무시해 왔던 초기의 어떤 의미들과 가치들을 기독교 안에서 재발견해 냄으로써 새로운 사회적 환경에 적응해 왔다. . . . 로마적 이탈리아에 기독교를 전파해 주었던 시리아 노예 이민자들은 이미 죽어버렸던 옛 종교를 대체하는 살아있는 새로운 종교를 세우는 기적을 일으켰다. 미국에 기독교를 세워왔던 그 흑인 노예 이민자들이 그 죽은 것을 살리는 더 큰 이적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 . . 그들이 우리에 의해 지금까지 전달되어온 기독교의 차가운 회색 재들에 다시 불을 붙일 수 있다면, 하나님의 불이 다시 타오를 것이다. 따라서 아마도 기독교가 두 번째로 죽어가는 문명의 산 신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이적이 참으로 미국 흑인 교회에 의해 행해질 수 있다면, 지금까지 인간에 의해 이루어진 사회적 처벌(social penalization)이라는 도전에 대한 가장 역동적인 응전이 될 것이다.
토인비가 이 글을 쓰기 오래전에, 듀보이스는 1903년에 “백인 기독교의 파산”을 인용하고, 단순한 인간 평등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흑인의 피는 한 메시지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매튜스(Mathews)는 하나님께서 흑인들에게 “기독교의 온전한 성숙”을 보여주시기로 작정하셨다는, 많은 흑인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믿음을 인식했다. 이 모든 희망들은 초기에 그리고 아주사에서 시무어의 지도력에 의해 성취되었다.
(3) 본회퍼의 경험
드트리히 본회퍼는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 직전 1930년대에 뉴욕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할렘의 흑인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토인비보다 전에 오순절 회중들과의 상당한 접촉들을 포함하는 그에게 가장 의미있는 경험을 했다. 그는 놀랍게도 백인 미국인의 설교들은 복음 이외에 모든 가능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반면에 흑인 설교가들은 복음을 정기적으로 선포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회중들은 그 선포에 강력하게 반응했다.
흑인들 가운데서 전통적인 따뜻한 환영을 받은 본회퍼는 그의 가장 결정적인 신학적 통찰을 발견했다. 그 통찰이란 교회는 인종, 나라, 그리고 계급의 장벽들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그런 그 인식을 가지고 기독교가 국가와 인종으로 전락한 것에 항거하기 위해, 특히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축출에 저항하기 위해 독일로 돌아갔다. 그렇게 그는 시무어와 흑인 기독교 유산의 신학적 상속자가 되었다.
(4) 미래를 위한 희망
그 비전이 교회 안에서 더 성취되는 것을 위해 또 다른 1900년대가 요구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바랄 이유가 있다. 훌륭한 교단들이 오순절의 중요성을 선포하면서 나타나 전세계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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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전통적인 교단들과 신앙 안의 그리스도인들은 오순절을 현대 교회에 회복시키는 문제를 제기해 왔다. 맥도넬의 풍부한 글은 이 관심이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분명히 오순절은 더 신학적으로 심오한 모든 인간적 장벽들의 극복에 대한 언급 없이 보통 주로 글로솔라리아(방언)라는 부분적인 용어에 의해서만 이해되어왔다. 동시에, 오순절적 “관계망” 또는 “드러나지 않은 조직”은 모든 기독교의 다양한 표현들 사이의 한 목소리와 다리로 공헌하며 그야말로 지구를 덮고 있다. 기독교적 갱신을 위한 그 가능성은 대단히 크다. 시무어의 비전과 아주사의 이적을 재발견할 가장 중요한 필요는 남아있다. 그 필요는 기본적으로 바울과 초대 교회의 필요이다. 이 초기 기독교적 그리고 현대 오순절적 뿌리들은 미래를 위한 역동적인 혁명을 제공한다.
이 연구 동안 산 소망들이 아주사 부음에 근접한 로스앤젤레스 흑인 오순절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표출되었다. 한 초기 로스앤젤레스 지도자의 아들이며 마더 엠미 코튼에 의해 설립된 교회의 목사, 사무엘 크루취 목사(Rev. Samuel Crouch, Jr.)는 인터뷰할 당시 그의 교인들과 함께 철야 금식 기도를 막 마쳤었었다. 그는 “아주사의 정신은 다시 올 것이다”라고 예언적으로 강조했다. 아들처럼 시무어와 함께 여행했던 89세의 프랑크 커밍스(Frank Cummings)는 그와 동일한 희망을 표현하기 위해 손상되지 않은 눈으로 사려 깊게 말했다.
20세기에 종교적 관점에서 세계에 아주사 거리에서 일어났던 것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 . . 오늘날 많은 아우성, 고함, 비명이 있습니다. 엘리야는 지진 가운데서, 불 가운데서, 그리고 바람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았지만, 하나님은 조용하고 작은 음성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음성을 들었을 때, 그는 그의 얼굴을 조아렸습니다 . . . 이해했습니까? . . . 기다리십시오, 이해했습니까? 그 비전이 지체되더라도, 기다리십시오. 당신은 사람들에게 한 백발의 노인과 함께 이야기 했다고, 그가 당신에게 그 조용하고 작은 음성을 기다리라고 말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 그것은 성취될 것입니다.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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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학자로서 시무어
시무어는 20세기에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온전한 인간 평등과 일치 문제에 대한 신학자로서 사도 바울 다음으로 서 있었다. 국제적 기독교 지도자, 후프트(Visser’t Hooft)는 이 문제를 기독교의 가장 큰 신학적 필요로 보았다.
나는 우리가 인류의 일치에 대한 분명한 성경적 교리를 신학에서, 우리의 가르침에서, 그리고 우리의 설교에서 먼저 회복하지 않으면, 그 어떤 문제해결책과 윤리화도 우리가 당면한 상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 . .
시무어의 위대함은 단순히 그의 신학, 교육, 또는 설교로부터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가 묘사한 것의 실제, 사랑스런 공동체를 구현해낸 능력에서 나온다. 참으로 그의 설교와 모습은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것처럼 위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는 아마도 그것 때문에, 그의 추종자들은 하나님의 현존과 능력 안으로 들어갔고, 그래서 한 참된 기독교 공동체가 탄생했었다. 사도 바울의 모습과 설교는 또한 인상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그러나 그것들은 아주사와 같은 영적 능력을 산출해 내었다.
시무어는 무한하게 다양한 배경의 모든 사람들을 상호간의 사랑 안에 함께 모을 수 있는, 드물게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교만, 증오, 그리고 두려움이 회개, 겸손, 그리고 사랑의 선호 안에서 사라졌다. 그런 분위기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질의 사랑과 삶 자체의 깊이를 경험했고, 그들의 기쁨은 넘쳤다. 이것은 값비싼 진주, 또는 밭에 숨겨진 보물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할 그 무엇이든 제쳐두고 자신을 낮추었다.
아마도 오직 그 노예들의 아들만 완전히 구체화시킬 수 있을 이 놀라운 사랑 안에서, 교회는 하나 됨 안에서 새로운 인류가 되었다. 그 복음의 심오한 사회적 기초가 드러났다. 지구상의 평범한 인종들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종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완전히 다른 기회를 제공했다.
이 독특한 공동체는 사람들을 지구를 가로질러 사람들을 보내고 끌어들이기 위해 그 자신의 가장 효과적인 선교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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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적 선교사들의 능력과 설득력은 이 새로운 교제에 그리고 단순히 그것에 대해 말만하지 않고, 적어도 부분적으로 그들이 가는 곳에서마다 그것을 재생산해내는 그들의 능력에 의존했다. 오순절이 다시 나타나던 곳은 시무어의 아주사 공동체였고, 그 전도는 첫 오순절에서처럼 즉각적이었다.
시무어의 기본적인 신학적 통찰은, 신학자들에게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이해할만한 기독교 교회의 의미 자체를 대표했다. 유명한 오순절적 기독교 복음성가 가수 마할리아 잭슨(Mahalia Jackson)은 그녀가 유일하게 진정한 기독교라고 간주한 것을 쉽게 소통했다. 그녀는 그것을 설명했고, 그녀의 텔레비전 출연 때문에, 많은 백인들이 그녀가 미국에서 순회공연을 했을 때 그녀의 말을 기꺼이 들으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인들로서 함께 앉기를 원하지 않았다. 한쪽에는 백인들이 한쪽에는 흑인들이 있을 것이지만, 그러나 나는 내 자신에게 이것은 그들이 내 노래를 듣기 위해 오면서 진일보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첫 노래 중간에 나는 그것에 대한 비유를 말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피부색들, 인종들의 사람들이 함께 모였지만, 분리하여 앉아있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기독교가 아닙니다.”. . . 그러자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었던 많은 사람들이 즉시 일어나 형제와 자매에게 더 가까이 앉았다.
낙스는 그의 학문성으로부터 질문들을 찾음으로써 이 신학을 뒷받침한다.
교회는 어떻게 그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인종, 신조, 분파]라는 깊은 상처를 다루어야만 할 때 그 국가들의 치유를 위한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 . . 교회는 어떻게 그리스도를 증거 할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교회는 어떻게 진정한 교회로서 간주 될 수 있겠는가?
시무어의 신학의 단순한 진리는 분열된 기독교는 기독교가 전혀 아니고, 그보다는 그것의 부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분열된 선들은, 종종 교만의 원천인데, 모두 거룩성 또는 온전성에 반대되는 교회 안에 수용된 “세상”의 윤리를 대표한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장벽들은 효과적인 기독교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분열되면, 사랑은 부정된다.
시무어는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가 됨을 대표했다. 그로부터 돌아서는 사람들은 신앙의 이 사회적으로 혁명적인 측면을 잃은 것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시무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바울의 비전과 바람을 거부한 비극적인 타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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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특성은, 동등한 기반 위에서, 교만보다는 겸손에 의해 구분되는, 그리스도의 이음매 없는 통옷 안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포함시키는 어떤 전체성이다.
시무어의 관점에서 죄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형성된 몸을 방해하거나, 약화시키거나, 또는 파괴하는 것이다. 인종혼합적 일치가 복음의 효과적인 선포나 확장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백인들이 흑인들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죄의 본질이고, 일종의 자기기만이다. 분리하겠다는 또는 분리된 채로 남겠다는 결정은 그것을 위해 분열하고 계속 분열된 채 남아있겠다는 그 복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드워(Dewar)는 초기 기독교 안에 있던 이 진리를 다음과 말했다.
우리는 죄란 “그 영혼과 하나님 사이의” 개인적인 문제라는 현대적 가정을 지속적으로 경계해야만 한다. 죄는 온전하게 그 몸이 되는 것을 방해한다. 왜냐하면 그 방해는 그 몸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죄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참으로 분열이라는 죄는 가증스러운 것이다. 그 죄는 공개적으로 그 몸을 파괴한다. . . . 교회가 그것의 본질적인 직무가 교회 되는 것임을 망각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그 큰 재앙이 기독교계를 덮칠 것이다. 그 진리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명확하게 인식되기 전에는, 기독교계의 재결합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 . .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기독교 “단체들”이, 우리가 세상에게 그렇게 크게 말하는 것을 세상이 듣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잊은 채 교회의 근본적 직무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기독교계 대부분의 상황이다.
(6) 세상의 필요
세상은 교회가 교회 되는 것, 또한 기독교가 기독교 되는 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또한 옳다. 미국 교단들이 노예제 문제에 관해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1845년에 분열되었을 때,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했던 아브라함 링컨 조차도 무서운 전쟁 이외에는 그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지 못했다. 어떤 의미에서, 교회가 시무어와 그가 제시했던 일치와 전체성을 위한 기회를 거부했을 때, 무대는 20세기의 파국적인 정치적 사건들을 위해 마련되었다. 학자들은 교회 안에서 증가하고 있던 인종적 분열을 그리고 주변의 사회 안의, 또한 미국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전 세계 안의 인종주의를 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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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일치 안에서 살아갈 수 없을 때,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살 것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문제들에 대한 정치적 해결책들은 영적 해결책들의 결핍을 만족스럽게 대체할 수 없다.
두 세계대전 사이인 그리고 그로부터 일 년 후 끝이 날 환각적인 평화와 번영의 와중인 1929년에 니버는 증가하는 국가적 분열과 교회들의 인종적 배척을 보고는 다음과 같이 예언적으로 썼다.
현대 문명은 무지한 국가주의의 교만보다 더 높은 이념을 인식하지 못했었던 사회들 사이의 어떤 분쟁의 결과들에 놀라서 자신이 키워온 증오와 열정의 더 강력한 발생을 두려워하며 거의 무기력하게 앞을 보고 있다. 윤리적 어리석음이 불붙고 과학이 연료를 공급한 대학살을 기억하며, 현대 문명은 그것의 전사들이 열정적으로 찾고 있는 파괴적 지식의 더 결정적인 적용의 전조를 직면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현대 문명은 자살을 구상하고 있다. 그것은 그것의 지적, 종교적, 예술적, 그리고 경제적 활동의 불가능하지 않은 몰락을 예측하고 있다. . . . 현대 문명은 그것의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의 살해를, 그것의 보물들의 파괴를, 빚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노예화를 회상하고 예견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 문명은 분열적인 자기 중심주의의 길은 멸망의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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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치의 길은 회개의 길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포용성을 거부하는 자아, 교단, 그리고 국가라는 보다 낮은 가치들에 대한 그들의 모든 충성으로부터 결연한 돌아 섬을 요구한다.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분열된 단체와 배타적인 신조들을 자부심보다는 통회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기를 배우는 것을 요구한다.
(7) 시무어의 아주사의 특징 요약
시무어와 그의 아주사 신학은 니이버가 그렇게 필요하다고 보았던 “회개의 길”일 것이다. 오스터버그는 시무어의 아주사의 의미를 본질적으로 눈물이라고 특징 지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주사 부흥은 회개의 눈물로 시작되었다. 이것이 모든 부흥이 올바르게 시작되어야 할 조건이다. 아주사 부흥은 눈물로 시작되었고, 눈물 속에서 생존했고, 눈물이 멈추었을 때, 아주사 부흥도 멈추었다!
그의 말에 덧붙여질 수 있을 것은 눈물이 교회에 돌아올 때, 아주사의 정신도 헛되지 않을 것이며, 교회를 위한 치유라는 그 복된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시무어와 그의 비전을 엿보는 것은 갱신의 눈물을 아는 것이다.
(8) 최종 질문들
이 논문은 교회가 교회 되는 것을 방해하는 인간적 그리고 교리적 장애물들의 문제와 씨름했던 한 기독교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를 제시한다. 두 가지 중요한 질문들이 이 글에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시무어는 오늘날 기독교의 일치를 위해 바라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들에 대한 모든 해결책을 가지고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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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에 대한 대답은 분명히 부정적이다. 그 이유는 시무어가 75년 전이라는 다른 상황들 안에서 살았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이 문제들의 상세한 고려사항은 이 연구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시무어와 아주사의 이야기는, 아마도 유비적인 형식으로, 한 새로운 응전이 오늘날의 도전들에 적용될 수 있는 기반 위에서 독자에게 역사적 진실을 제공한다.
둘째로, 시무어의 부드러운 방법이 오늘날 교회와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타당한가 의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영국과 미국의 주요 도시들은 인종적 폭력에 저항하는 그야말로 전쟁터들이 되어 왔다. 거의 매일 신문은 정치적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한 어디선가에서 일으켜진 폭력 또는 테러의 어떤 유형을 기사화해 왔다. 만약 시무어가 더 지배적인 백인종에 의해 무시당했기 때문에 한 실패자로 평가된다면, 도대체 그의 방법이 타당하기는 한 것인가라고 의심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라는 것은 완전히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무어의 이야기는 여러 측면에서 고통, 고난, 그리고 슬픔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가 거절의 영향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백인 지도자들이 자기들에게 주어진 역사적 기회의 많은 부분을 놓쳤다.
양자택일이 노예였으며 침례교 설교가였던 터너(Nat Turner)에 의해 제시되는 것 같다. 그는 버지니아에서 1831년에 폭력적인 반란을 일으켜 60명의 백인들과 100명 이상의 노예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이어서 노예 13명과 유색 자유인 3명을 처형했다. 터너는 성경 구절들, 환상들, 그리고 그 해의 개기 일식과 같은 “하늘의 징조들”에서 영감을 얻었다. 물론 수백 명의 다른 노예 모반들과 반란들이 그랬던 것처럼 터너의 시도는 실패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폭력적 방법이 시무어의 방법보다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그런 방법의 역사적 실패들에 의해 제기되는 어려움들과 씨름해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궁극적인 선택은 명확한 역사적 보장보다는 다른 요인들에 기반할 가능성이 더 높다.
시무어의 아주사에서 급부상은 최초 기독교 오순절 이외에 역사적 선례가 없이 완전히 놀랍게 일어났었다. 인생이 이러한 예기치 않은 사건을 초래하는 한, 역사는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것을 제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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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오순절적 의미와 기독교적 갱신의 문제는 모든 교회들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 관심의 결과는 윌리엄 시무어 감독과 아주사 거리 부흥에 대한 정보에 입각한 평가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순절/은사주의 운동의 이 뿌리들이 보다 분명하게 살펴진다면, 그리고 미래를 위한 어떤 새로운 지침을 제공한다면, 이 연구는 성공한 것일 것이다. 이 놀라운 사람과 그의 이적적인 성취는 진정으로 이러한 때를 위한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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