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승
2015.6/2024.6.01
순복음총회신학교, 조직신학
jesusgate@daum.net
국문초록
오순절 운동의 아버지 찰스 F. 파함(Charles F. Parham)은 한편으로 평생 능력 사역을 추구하면서도 또한 다른 한 편으로는 평생 성화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내외를 망라하여 파함의 성화론을 전반적으로 연구한 논문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본 소고는 파함의 성화론을 전반적으로 탐구한다. 파함의 성화론은 크게는 “성화”(sanctification)와 “성결”(holiness)과 “종말적 구속”(eschatological redemption)으로 구성된다. “성화”는 다시 “법정적 성화”와 “온전한 성화”로 구성된다. 그래서 파함의 성화론은 “법정적 성화”, “온전한 성화”, “성결”, 그리고 “구속”이라는 네 가지 국면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 네 가지 국면들은 “법정적 성화”로부터 시작하여 “온전한 성화”로, “온전한 성화”로부터 옛 사람과 싸우는 “성결”로, “성결”로부터 “종말적 구속”으로 이행하는 논리적이고 연속적인 순서에 따라 구조화 된다. 법정적 성화와 온전한 성화와 종말적 구속은 순간적인 것이지만, 법정적 성화에서 온전한 성화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온전한 성화에서 종말적 구속에 이르기까지의 성결은 점진적인 것이다. 또한 그에게 성화는 백보좌 심판을 면하거나 받는 기준이 아니고, 칭의가 바로 그 기준이다.
I. 들어가는 말
오순절 운동의 아버지 찰스 F. 파함(Charles F. Parham)은 한편으로 평생 능력 사역을 추구하면서도 또한 다른 한 편으로는 평생 성화를 추구하였다. 파함의 눈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거의 밤낮으로, 고린도전서 13장에 기록된 완전한 사랑의 경험을 추구하고 있는 반면에, 고린도전서 12장에 기록된 표적들과 은사들을 깔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파함이 이끌었던 순복음 오순절 운동은 지혜, 지식, 믿음, 병 고치는 은사, 이적 행함, 방언, 영분별, 예언, 그리고 방언통역 같은 “성령의 은사들”(the gifts of the Spirit) 뿐만 아니라,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모든 열매를 맺는 것을 추구했다. 그는 하나님 안에서 “성품을 개선시키는 것”(developing . . . character in God)을 중요시 했던 것이다. 파함은 현대 오순절 성령침례 역사를 늦은 비의 역사로 보았는데, 그 늦은 비의 목적은 이중적인 것이어서 성령침례와 함께 주어지는 방언을 말함과 같이 증인으로서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 세계에 전하는 것과 열매들의 속을 꽉 채우는 것이었다.
파함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증명(demonstrations)을 원하시고, 종교적 활동들을 원하시지만, 그분은 또한 엄격한 기독교적 삶(strenuous Christian life)을 원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신자의 경험들이 타인에게 유익이 되기를 바라시지, 단순한 자신의 감정의 만족을 위한 것이 되지 않기를 원하신다. 파함은 “교회를 어디 위에 세워야 하는가? 교회를 주님의 재림 위나, 신유 위에 세워야 할까, 아니면 다른 것 위에 세워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리고 스스로 대답했다. “성결 위에 세우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결은 하나님의 큰 구원이라는 계획안의 한 단계(one step)이기 때문이다.”
파함이 그토록 성화를 추구했지만, 지금까지 국내외를 망라하여 파함의 성화론을 전반적으로 연구한 논문이 없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칼라한은 2004년에 파함의 성화론을 영혼뿐만 아니라 몸의 치유와 몸의 영화됨까지 포함하는 전인적인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파함의 글에서 몸과 영혼의 성화와 온전한 성화로의 이행과 마지막 종말적 구속에서 온전한 몸으로의 변화를 찾아냈지만, 그 이상 진전시키지 않았다. 파함의 성화론은 그 이외에도 다른 성화의 단계를 포함하고 있으며 칼라한이 파악한 것보다 더 풍성하다.
그래서 본 소고는 파함의 성화론을 전반적으로 탐구할 것이다. 파함의 성화론에 대한 연구의 자료는 파함이 직접 저술한 두 권의 책이 될 것이다. 파함은 그의 첫 책인『광야에서 외치는 소리』(A Voice Crying in The Wilderness)를 1902년에 출판했으며,『영원한 복음』(Everlasting Gospel)을 1911년에 펴냈다. 파함의 성화론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는 향후 더함의 성화론과의 비교 연구의 바탕이 되기도 할 것이다.
파함은 “그리스도인의 삶 안에서 은혜의 단계들을 보여주는 도표”를 제시했는데 그 도표는 곧 그가 추구한 성화의 거의 전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도표는 “조명, 죄의 자각”(Enlightenment, Conviction) → “회개”(Repentance) → “회심(Conversion): 용서, 중생, 중생의 씻음, 착상(conception)” → “신유”(Healing) → “헌신(Consecration): 감정적인, 실제적인” → “성화(Sanctification): 영의 성화, 혼의 성화, 몸의 성화, 신생(new birth)” → “성령의 기름 부으심”(Anointing of the Holy Ghost) → “성령침례”(Baptism of the Holy Ghost) → “구속, 영화”(Redemption, Glorification) 등의 단계를 보여준다. 이 도표에서는 그가 성화 이후에 놓는 “성결”이라는 단계가 누락되었다.
파함의 성화론은 크게는 “성화”(sanctification)와 “성결”(holiness)과 “종말적 구속”(eschatological redemption)으로 구성된다. “성화”는 다시 “법정적 성화”와 “온전한 성화”로 구성된다. 그래서 파함의 성화론은 “법정적 성화”, “온전한 성화”, “성결”, 그리고 “구속”이라는 네 가지 국면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 네 가지 국면들은 “법정적 성화”로부터 시작하여 “온전한 성화”로, “온전한 성화”로부터 “성결”로, “성결”로부터 “종말적 구속”으로 이행하는 논리적이고 연속적인 순서에 따라 구조화 된다. 법정적 성화와 온전한 성화와 종말적 구속은 순간적인 것이지만, 법정적 성화에서 온전한 성화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온전한 성화에서 종말적 구속에 이르기까지의 성결은 점진적이며 과정적인 것이다. 성결이 필요한 이유는 여전히 “옛 사람”(old man)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결국 파함에게 성화는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칭의의 순간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르러 구속을 받기까지 지속되어야하는 것이다. 파함에게 성화는 기독론적이며 성령론적이고, 전인적이며, 칭의로부터 시작하지만, 구속이후 영원까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대장정이다. 또한 그에게 성화는 백보좌 심판을 면하거나 받는 기준이 아니고, 칭의가 바로 그 기준이다.
II. 법정적 성화 (Legal Sanctification)
파함에게 성화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은혜로 주시는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죄 용서와 관계되며, 법정적 성화와 온전한 성화로 구성된다. 파함은 “법정적으로 성화된”(legally sanctified)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법정적 성화는 그가 제시하는 성화의 연속적 전체 구조에서 첫 번째 국면이다. 파함에게 법정적 성화는 비성령론적이고, 회심이나 칭의 등 구원의 초기 단계와 관련되며,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A. 기독론적인 법정적 성화
파함이 법정적 성화라고 명명한 성화는 기독론적이다. 그는 법정적 성화에 대한 문맥에서 성경은 이방인들 즉, 불신자들이 “성령으로 성화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의미는 법정적 성화가 성령론적인 것이 아닌 기독론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그 갈보리의 역사의 효력이 삶 속에 효력이 끼쳐짐으로써 구원이 발생한다. 그래서 파함에게 칭의로 말미암는 구원은 갈보리 언덕에서 값없이 주어진 구원이다.
B. 구원의 서정의 초기 단계와 관련된 법정적 성화
법정적 성화는 구원의 초기 단계인 회심과 관련된다. 파함에게 법정적 성화는 이방인으로 하여금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회심을 의미할 것이다. 법정적 성화는 칭의와 관련된다. 그리고 법정적 성화는 자범죄와 관련된다. “칭의는 자범죄들을 다룬다.”
C. 순간적인 법정적 성화
법정적 성화는 순간적인 것이다. 파함은 법정적 성화는 “정화의 과정”(a process of purification)이 아니라고 말했다. 법정적 성화가 과정이 아니라는 것은, 그것이 순간적인(instantaneous) 것임을 의미할 것이다.
D. 의로운 삶으로 연결되어야 할 법정적 성화
파함은 회심 이후, 즉 법정적 성화 이후의 지속적인 의로운 삶을 언급했다. 그는 신자들이 회심하여 구원의 생명에 도달했다면, 그것에 그치지 말고 “의롭게 된 삶을 살아야만 한다”고 말했다. 파함이 말한 법정적 성화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회심과 칭의, 그리고 순간적 성화를 포함한다. 그렇다면 파함은 신자는 순간적으로 칭의에 의해 의롭게 된 법정적 성화를 얻었다할지라도, 그 이후에 지속적으로 그 “의롭게 된 삶”을 “살아야만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의롭게 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지속적인 성화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III. 성화/온전한 성화 (Sanctification/Entire Sanctification)
파함의 법정적 성화 이후 지속적인 성화의 추구는 다음 단계인 온전한 성화로 나아간다. 엄격하게 말하면, 파함에게 온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는 영과 혼과 몸 전체를 포함하는 성화이다. 영과 혼의 온전한 성화만을 다룰 때는, 그는 그저 “성화”(sanctification)라는 용어를 선호했다. 그는 “온전한 성화”라는 말을 몸의 성화까지 포함시키는 전인적 성화에만 사용했던 것이다.
A. 은혜의 두 번째 사역으로서 성화
파함에게 성화는 하나님 은혜와 신자의 전적 헌신에 의해 발생한다. 먼저 파함은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grace)에 의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화는 “거룩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성화는 값없는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기는 한데, 첫 번째 은혜의 사역이 아닌 두 번째 은혜의 사역에 의한 것이다. “두 번째”라는 언급은 “첫 번째”를 전제한다. 당시 성결운동 안에서 은혜의 첫 번째 사역은 “중생”을 의미했다. 파함은 성화의 주요한 주체는 하나님이시라고 주장했다. 그에게 성경에서 성화가 언급되는 곳은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한다. 신자를 “정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그래서 “신자가 전적으로 구별된다면, 하나님께서 성화시키실 것이다.”
그러나 파함은 성화의 원인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만 들지 않았다. 그에게 성화는 또한 신자의 전적 헌신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는 성화가 신자의 “전적인 헌신의 결과”로서 “주어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성화를 원한다면, 열매를 맺어야만 하며, 정결하게 씻겨져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더하여, 그에게 하나님의 뜻에 굴복함도 또한 성화로 향한 길이기도하다. 그는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과 하나님의 뜻에 굴복함(abandonment)은 성화와 씻음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전적인 헌신”, “열매를 맺음”, “정결하게 씻겨짐”, 하나님의 뜻에 굴복함 등은 칭의로 말미암는 순간적인 법정적 성화 이후에도 신자가 의로운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가는 것과 동일한 것일 것이다.
파함은 더함이 중생와 동시에 완전한 성화를 얻는다고 주장한 것을 비판했다. 파함이 더함의 “갈보리에서 완성된 사역”(The finished work of Calvary)을 비판한 이유는, 그의 눈에 더함은 온전한 성화의 인간적 원인으로서 “정화/헌신”(consecration)을 폐기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정화와 헌신의 폐기는 “퇴보적(back-slidden), 비성화적 경험들을 위한 피난처나 정당성”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B. 타고난 유전된 죄 제거로서 성화
파함에게 성화는 타고난 유전된 죄의 제거이다. 칭의가 자범죄를 다루는 것과는 달리, 성화는 자범죄들의 뿌리인 타고난 유전된 죄를 다루는 것이다. 파함은 신자 안에는 여전히 자범죄들의 뿌리인 타고난 죄가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타고난 죄는 뿌리와 같아서 그 죄로부터 여러 가지 자범죄들이 일어난다. 그 죄의 뿌리는 회심에서도 제거되지 않는다. 그래서 회심한 신자들에게는 그 뿌리까지 뽑아 제거하는 성화가 필요하다. 성화는 소극적으로 죄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죄를 제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신자를 성화시키실 때, 그분은 그 모든 것을 제거하신다. 그분은 본성적 유산인 타고난 죄를 제거하시지(take out) 단순히 억제하시지(suppress) 않으실 것이다. 파함은 죄 제거를 옛 본성의 정복(conquer)이라고도 이해했다. 정복할 수 없었던 옛 본성이 성화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 의해 정복당한다. 그리고 육적 본성이 그리스도께 정복당함은 또한 육적 본성이 깨끗하게 되는 것이다
C. 순간적으로 얻는 성화
파함에게 성화는 과정적인 것이 아닌 순간적인 것이다. 그는 “성화는 정화의 과정(process of purification)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에게 은혜의 사역들 중의 하나인 성화는 “순간적인 일”(instantaneous operation)이다. 파함은 신자가 순간적으로 법정적 성화를 얻은 이후에 지속적으로 의로운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고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과정을 지나다 보면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두 번째 은혜를 베푸셔서 유전된 죄를 제거하심으로써 순간적으로 성화가 발생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D. 그리스도의 갈보리의 역사로 흘린 피로 말미암는 성화
파함에게 성화는 성령론적이지 않다. 그는 “여러분은 성령으로 성화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말씀은 이방인들이 성령에 의해 성화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성령은 성화를 제공하시는 분이 아니다. 성령은 성화의 원인이 아니다. 성령은 다만 성화를 증거하시는 분이시다.
파함에게 성화는 기독론적이다. 그는 칭의와 성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성화를 얻은 자는 칭의를 통해 용서 받았고, 성화를 통해 씻음 받았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보호를 받고 있다. 그에게 성화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보혈의 능력을 통해 깨끗하게 하는 사역(the work of cleansing)이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독생자를 세상에 주셔서 사람으로 하여금 회심하게 하시며, 예수께서는 자신을 교회에 주셔서 그분의 보혈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고 씻어주신다. 파함에게 성화의 원인은 그리스도의 보혈인 것이다. 성령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한 칭의와 성화라는 두 국면에 대해 증거하신다.
파함은 구분되고 분리되는 서로 다른 칭의와 성화의 원인을 동일한 갈보리의 역사에 두었다. 그는 칭의와 성화를 시간적이고 논리적인 뚜렷한 선후 관계로 구분하고 분리시켰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분리시킨 칭의와 성화의 원인을 그리스도의 보혈에 두되 갈보리 언덕에서 단 번에 흘린 보혈에 두었다. 파함에게는 그리스도께서 한 번에 갈보리 언덕에서 흘리신 보혈이 서로 다른 칭의와 성화의 동일한 원인인 것이다. 그에게 칭의와 성화는 동일한 뿌리인 “갈보리의 역사”(the work of Galvary)로부터 앞 다투며 뻗어 나온 가지들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갈보리 언덕에서 뿌려진 그리스도의 동일한 보혈이 칭의에서 자범죄를 용서하며, 성화에서 원죄를 용서한다는 것이다.
E.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성화
파함에게 성화의 원인은 갈보리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이며, 성화의 결과들 중 하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는 “성화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연합시킬 것입니다”(will make you one with Christ)라고 말했다. 그는 성화로 인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성부와 성자가 본질적으로 하나이신 것에 비유했다. 그만큼 파함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성화가 일으키는 결과들 중 본질적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측면으로 이해했다. 그에 따르면, 그리스도와 하나로 만들어 주지 않는 것은 “생티피케이션”(sanctification)이 아닌 “괴상화” 또는 “불완정화”되는 “크랭크티피케이션”(cranktification)이다.
파함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 놓이는 것을 동일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는 위에서 밝힌 것처럼 “성화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하나로 만들어 줄 것이다”라고도 말했고, 또한 “그리스도 안에 놓는 성화의 은혜”(the grace of sanctification that puts you in Him)라는 어구를 사용했다. 그에게 성화는 그리스도와 하나로 만들어 주는 것이며,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은 또한 그리스도 안에 놓이는 것이다.
파함은 그리스도 안에 놓이는 것을 성화의 공동체적인 측면을 다루면서 언급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거룩해지는 것, 모든 것을 제단 위에 내려놓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제단 위에 놓으셨고, 그분이 제단 위에 있을 때, 신자는 자신의 자리를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얻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자를 갈비뼈, 발가락, 또는 손가락으로 취하시고, 그리스도의 몸 전체는 잘 결합되고 꽉 짜여 온전한 조화와 아름다움 안에서 그리스도이신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움직인다.
F. 온전한 헌신이 선행되어야하는 성화
파함은 성화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라고만 말하지 않고, 인간의 온전한 헌신에 의한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회개가 회심에 필요한 것처럼, 온전한 헌신이 성화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회개와 항복(surrender)은 진정한 구원을 일으키고, 하나님께로의 전적인 헌신과 자신의 뜻의 포기는 성화와 삶의 정화를 일으킨다고도 말했다.
G. 영적 영향력을 끼치는 성화
파함은 온전한 성화를 얻은 사람들의 타인을 향한 선한 영향력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필요한 것은 “성화된 영향력”(a sanctified influence), “성화된 영”(a sanctified spirit)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그 영향력은 성화된 사람으로부터 흘러나가는 따뜻하고 유익한 영향력이며, 타인은 그 영적 생명력을 느끼고 알게 될 것이다. 몸이 다른 유형의 타고난 죄와 육욕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병을 향한 타고난 성향과 경향으로부터 성화될 때, 그 영적 영향력은 가족, 이웃 나아가 세계로 뻗어나갈 것이라는 것이다. 그 영향력의 파동의 힘(the power)은 선을 위한(for good) 것이며, 타인을 성화에로 이끄는 영향력(sanctifying influence)이다.
파함이 말하는 성화시키는 영향력은 불가시적인 것이지만 힘을 갖고 있다. 그에게 그 영향력은 성화된 사람의 내부로부터 생수의 물줄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감지할 수 없게 흘러가는 것이고, 다른 사람은 그것은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려놓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성화된 사람 각자로부터 영적 영향력의 파동이 나온다. 그 영향력은 때때로 너무 강력하여 방안에 앉아 있을 때, 그 방안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데도, 그의 현존이 느껴진다. 어떤 사람은 이 영향력이 너무도 강하여 눈이 가려졌는데도 그 방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단순히 분위기 또는 기운에 의해 구분할 수 있다.
그는 마담 기용(Madam Guyon)의 일화를 그러한 영향력의 한 예로 든다. 그에 따르면 마담 기용은 “라꽁브 신부(Father LaCombe)가 그녀를 찾아 왔을 때, 그녀의 남편이 그녀가 그 사제에게 말하도록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런 영향력이 그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부터 나와 발하였기 때문에, 그 신부가 그녀의 남편과 말하기 시작했을 때 힘이 그녀에게 밀려 왔다.” 파함은 라꽁브 신부의 영적 영향력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고, 기용이 그 신부와 대화도 나누지 않았지만, 기용은 그 영향력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 것이다. 마담 기용(Jeanne-Marie Bouvier de la Motte-Guyon)은 1648년에 태어나 1717년에 세상을 떠난 프랑스 신비주의자로서 정적주의(Quietism)로 분류되어 로마 가톨릭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 받았었다.
그런데 비록 그가 신비주의자를 언급하였지만, 그가 직접적으로 신비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파함은 라꽁브 신부의 영적 영향력이 마담 기용에게 밀려왔다고 전했다. 그러나 사실은, 마담 기용의 회고에 따르면, 마담 기용의 보이지 않는 영적 영향력이 대화 가운데 라꽁브 신부에게 전해졌었다. 이로 미루어 보다 파함이 마담 기용의 글을 직접 읽어본 것 같지 않다. 그러므로 파함이 신비주의자 아담 기용으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함이 언급했던 영적 영향력은 마담 기용과 라꽁브 신부의 만남을 지속시켰던 결정적인 요인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마담 기용은 그녀에게서 나갔던 그 영향력의 원인을 지속적인 기도로 인한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였다고 말했다. 그녀는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와 부재 둘 다를 민감하게 경험하고서 항상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했다. 그녀에 따르면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는 자신 밖으로 뚫고 나가는 것이어서 자기가 가로막지 못하는 것이었다.
H. 몸의 성화를 포함하는 온전한 성화
파함은 성결주의자들이 통상적으로 사용하던 “온전한 성화” 개념을 자기 특유의 관점에서 확장시켰다. 성결주의자들은 영혼의 원죄를 용서받는 것을 “온전한 성화”라고 지칭해 왔었다. 그런데 파함은 영혼의 원죄를 용서받는 것에는 그저 “성화”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가 “온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성화는 영혼뿐만 아니라 몸의 국면까지 포함했다. 파함은 그가 첫 번째로 저술했던『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성화 받았고, 그들 중 상당수는 . . . 몸과, 혼과 영의 온전한 성화(the entire sanctification)를 받았으며, 다수는 약속의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인치심을 받았습니다”라고 자기의 사역을 평가했다. 그는 “이따금 받는 치유”(occasional healing)를 중생/칭의 때에 영혼의 자범죄를 용서받는 것과 유사한 것으로 이해했으며, “몸을 위한 속죄”(the atonement for our bodies)를 성화 때에 영혼의 내재적인 죄, 원죄를 용서받는 것과 유사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는 영혼의 자범죄들의 뿌리인 유전된 내재적인 죄를 용서받는 성화와 여러 병들의 뿌리까지 치유받는 “몸을 위한 속죄”를 포함하는 성화를 “온전한 성화”라고 불렀다.
온전한 성화는 내적인 영으로부터 시작하여 혼의 성화를 거쳐 외적인 몸으로 확장되는 전인적인 성화다. 파함에게 성화는 “내적 사람”(영, inner man)에서 시작하여 “혼”(the soul)이 전적으로 성화될(sanctified entirely) 때까지 계속된다(Sanctification begins in the inner man and reaches out until the soul is sanctified entirely). 그 다음, 모든 타고난 병(inbred disease)으로부터 그리고 병의 유전된 법칙(the inbred principle of disease)으로부터 몸의 성화(the sanctification of the body)가 온다.
이렇게 그가 “이따금 받는 치유”와 “몸을 위한 속죄”를 구별하는 것은 자신과 타인들의 경험의 산물이었다. 그는 “비록 여러 번 치료를 받았지만 우리는 그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질병들의 재발에 의해 끊임없이 괴로움을 당했다. 우리는 신유를 위한 기도를 받으려고 우리에게 오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당시에는 치료를 받지만 곧 다시 아프게 되는 것을 보았다”라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고침을 받은 후 다시 재발하는 현상에 대해 반추했다. 그는 “칭의를 받을 때 그랬던 것처럼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최선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분의 신부요, 몸인 교회는 반드시 완전 성화(entire sanctification)를 얻어야 하고 얻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자신은 류마티스 열병으로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렀었지만, 하나님의 치유하심으로 고침을 받았었다. 그럼에도 발목은 아직 완전하게 치유 받지 못했었다. 그는 다시 기도하여 발목도 치료 받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질병으로 고통 받지 않게 되었다. 그는 이런 경험에 대해 “하나님께서 유전된 죄에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병에서 몸을 성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the mighty power of God in sanctifying the body from disease as He had from inbred sin)을 실감했다”고 썼다.
그는 영과 혼과 몸의 온전한 성화를 위한 성경적 근거를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서 찾았다. 그는 경험과 성결주의의 성화 신학을 통해 “이따금 일어나는 치유”와 “몸의 속죄”를 구별하고, 영혼뿐만 아니라 몸까지도 그 뿌리로부터 속죄 받는 것을 “온전한 성화”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그는 그것의 성경적 근거를 찾다가 “평화의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흠이 없이 완전하게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살전 5:23)라는 말씀을 읽게 되었다. 그에 따르면, “여기에 주님의 재림 때까지 성화되고 흠 없이 보전되는 몸을 누릴 것이라는 약속이 있었다.”
I. 출생으로서 성화
파함에게 온전한 성화는 끝이 아닌 또 다른 국면의 성화의 시작이다. 파함은 출생, 영아기, 유아기 등의 인생의 발달 단계를 통해 연속적인 성화의 국면들을 설명했다. 그는 온전한 “성화는 그리스도인의 경험의 끝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합니다”라고 말했다. 파함이 말한 이 시작은 출생으로서 시작이다. 파함은 “당신은 회심으로 잉태되고, 성화로 태어나고, 그리고 구속이 일어나기까지 어린아이로 남아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그가 회심을 어머니의 태에 착상되는 단계로, 온전한 성화를 출생으로, 그리고 온전한 성화 이후 이 세상에서의 삶을 유아기로 비유한 것이다.
IV. 성결 (Holiness)
A. 온전한 성화로 시작되는 성결
파함의 성화론은 온전한 성화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온전한 성화 다음 단계로 성결을 제시한다. 파함에게 순간적인 온전한 성화는 그가 “성결”(holiness)이라고 일컫는 또 다른 국면의 성화의 시작점이다. 성화는 성결(holiness)과 완전(perfection)을 가져다주는 “시작”이다. 지난 장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파함은 온전한 성화를 “신생”으로, 온전한 성화 이후 단계를 “어린 아이”로 비유하였다. 또한 파함에게 성화는 “해안가, 저인망, 모래톱”과 같으며, 성결은 그곳으로부터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더하여 그는 “성결(holiness)은 여러분이 성화의 은혜를 통해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라고도 말했다. 파함은 성화를 성결로 들어가는 문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렇게 파함은 온전한 성화를 또 다른 성화의 국면인 성결의 시작점, 성결로 들어가는 문으로 이해했다.
B. 과정적이며, 한계가 없는 성결
파함은 성화를 순간적인 것이라고 규정한 것과는 달리 성결을 과정적인 것으로 규정했다. 그는 “성화(sanctification)는 은혜의 사역들 중의 하나이며, 순간적인 일(instantaneous operation)입니다. 그러나 성결(holiness)은 여러분이 성화의 은혜를 통해 그 안으로 들어가는, 전 생애에 걸쳐 일어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파함에게 온전한 성화는 생애에 어느 시점에서 순간적으로 일어나지만, 성결은 전 생애에 걸쳐서 일어나는 과정적인 것이다.
파함은 전 생애에 걸쳐서 일어나는 성결은 한계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성결은 그 자라남과 발전에 있어 경계나 한계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온전한 성화가 출생이며, 성결은 어린 아이와 같은 데, 어린 아이의 특성은 자라나는 것이다. 그런데, 일정한 한계를 갖는 생물학적이고 인간적인 어린 아이의 자라남과 달리 성결적 자라남은 한계가 없다. 파함은 성결의 무한계성을 “하나님의 광대한 사랑의 바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파함에게 성결은 한계가 없는 자라남, 바다와 같다.
C. 위로 향한 경향성으로서 성결
파함에게 성결은 긍정적으로 경향성의 전환의 산물이다. 그는 인간의 경향성을 “묘지로 향하는 경향성”(graveyard proneness)과 “위로 향하는 경향성”(looking-up attitude)으로 나누었다. 파함은 몸의 온전한 성화를 언급한 다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생명의 영으로 말미암는 경향성의 전환에 대해 언급한다. 그는 성령께서 사망의 법을 제거하시고, 묘지로 향하는 경향성을 위로 향하는 경향성으로 바꾸신다(change)고 말한다. 성화를 기독론적 측면에서만 언급하던 파함은 이곳에서 성령론적 측면을 언급한다. 파함에게 성화는 아래로 향하는 경향성에서 위로 향하는 경향성으로의 방향 전환이며, 그 이후의 성화는 위로 향하는 경향성을 갖는다.
D. 싸움으로서 성결
파함은 성결을 또한 부정적으로 죄악과의 싸움으로 보았다. 파함에게 성화는 신자를 “가나안에 들여 놓는 것”이다. 그리고 성화는 신자가 “모든 적들”을 그 땅에서 몰아내기까지는 결코 그의 유산이 되지 못한다. 파함은 가나안을 “싸움의 땅”으로 보았다. 그곳에서 신자들은 모든 땅이 그들의 것이 되기까지 “패배하지 말고 정복하기 위해 싸워야한다.” 그에게 모든 적들은 모든 죄악을 의미할 것이다.
E. 그리스도를 닮음으로서 성결
파함의 성결론은 그리스도를 닮음을 포함한다. 그에게 성결은 옛 사람의 매일매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과 그리스도의 내주하심,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그리스도의 정신을 보여주기 등의 모범자 그리스도를 닮음이기도 하다. 파함은 “구속”이라는 성화의 최종 단계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서 준비해야할 것들에 대해 말하는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닮음에 대해 언급한다. 파함은 성결 과정에서 옛 사람/ 옛 자아의 십자가에 못 박음에 대해 말한다. 그에게 구속을 기다리는 성결의 과정에서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준비는 옛 사람, 또는 옛 자아의 죽음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신자를 진정으로 예수님처럼 되게 하기 위해 부르셨다면, 그분은 신자를 십자가에 못 박힘과 비하의 삶으로 이끌어 가실 것이다. 성화는 “죄의 법”(the law of sin), 또는 “육적 본성”(carnal nature)을 순간에 제거해버리지만(cleanses out), 그러나 “옛 사람”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성결의 과정에서 매일 매일의 십자가형의 방법을 통해 그 옛 사람을 나무에 못 박아 죽여야 한다(the old man is nailed to the tree and dies by the daily crucifixion route). 주를 만나기 원하는 자들은 “옛 사람”, 또는 “이기적인 삶”에 대해 참으로 죽어야 한다. 그런데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다. 그는 성결과 구속 사이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경험의 근거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든다.
강조하자면, 파함에게 온전한 성화를 받은 사람들도 그 이후에 그리스도를 닮는 성결이 필요한 이유는 “죄의 법”과 “육적 본성”은 제거되었지만, 여전히 “옛 사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파함의 성화론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빈슨 사이난이 오순절주의의 첫 번째 주요 분리(the first major split)이라고 평한 파함과 더함의 성화론의 대립은 이 점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F. 공동체적 성결
파함의 그리스도와 연합에 의한 성화의 공동체성은 순복음 공동체의 성화와 연결된다. 파함은 순복음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비 분파적인 정신(a non-sectarian spirit)으로 무장한 수천의 온전한 사랑과 순복음의 남자들과 여자들”이라고 규정했다. 파함에게 성화로 이룩된 “온전한 사랑”은 순복음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자격이었다. 순복음 공동체는 “수년 동안 모든 것을 공유했다.” 그 공동체는 어느 것이라도, 옷들조차도, 각자의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온전한 사랑의 공동체, 순복음 공동체는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습니까”(요일 3:17)라는 사도 요한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려 했다.
G. 성결의 과정 속의 성령침례
파함에게 성령침례는 온전한 성화 이후의 단계인 성결의 과정 중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성령침례는 성화된 삶에 주어진다. “성화 안에서 지속적으로 빛 속을 걸으며, 가나안의 봉우리들을 걸으며, 원수들을 몰아내며, 더욱 많은 땅을 취하여 소유한다면, 성령침례(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를 발견할 것이다.” 파함은 성령침례는 은혜와 헌신을 통해 얻은 온전한 성화를 받은 자들에게만 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령침례가 순간적인 온전한 성화 이후에 오는 것이라면, 성령침례는 온전한 성화 이후에 오는 성결의 과정 중에 오는 것이다.
성결의 과정 중에 오는 성령침례는 성화적 측면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파함에게 성령침례는 능력을 부여하는 “능력의 은사”(a gift of Power)이기도 하지만, 또한 성령침례의 삶 위에 임한 효력은 그것이 삶을 하나님을 위한 희생적 봉사에 쏟아 붓도록 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 희생적 삶은 성령침례의 결과들 중 성화적 측면을 갖는 것이다. 파함에게 성령침례는 또한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게 한다. 영과 혼과 몸이 온전하게 성화된 신자는 성령침례를 통해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인정받는 도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H. 성숙과 완성이라는 목표를 향한 성결
파함에게 평생에 걸쳐 진행되는 과정적인 성결은 일정한 목표를 갖는다. 성화를 시작점으로 삼고 진행되어야 하는 성결(holiness)은 “완전함 안의 성숙에로” 계속 들어가야 한다. 파함은 과정적인 성결의 목표를 “완전함 안의 성숙”(the maturity in perfection)으로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그 목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야(perfecting holiness) 한다”(고후 7:1)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위로 향하는 경향성은 “온전한 결실”(the full fruition)에로 이끌어 간다. 그런데 이 성결의 목표는 신자의 생애 가운데서, 이 세상에서 달성될 수 없는 것이다. 파함에게 성결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발생할 최종적 성화의 단계인 “구속”에서 달성될 것이다.
V. 구속 (Redemption)
A. 임박한 종말적 “구속”
파함에게 “구속”(Redemption)의 완성은 미래의 일이다. 파함의 구속론은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일어서서 너희의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구원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눅 21:28)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과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립니다”(롬 2:21-23)라는 바울의 말에 근거를 둔다. 파함은 “구원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속을 기다립니다”라는 말씀들에 근거하여 구속을 과거에 일어난 것으로 보지 않고, 미래에 일어날 것으로 본다. 물론 구속은 에베소서 1장 7절에 의하면 죄 용서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구속은 때가 차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셨을 때 그리스도께 역사하셨던 그 큰 능력을 실감할 때, 즉 몸이 부활될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구속의 미래성은 임박한 종말과 맞물린다. 파함에 따르면 “구속(Redemption)이란 오늘날 교회에 의해 예견될 수 있는 가장 임박한 사건이다.” 구속의 임박성은 천국 복음이 전 세계에 증거로서 전파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파함에게 복음의 전 세계로의 전파는 “이 세대의 끝”(the end of the age)을 가져온다. 이 세계의 끝에 비로소 구속이 일어날 것이다. “이 세대의 끝”은 바로 세상의 종말을 의미한다. “이 세대”의 끝은 “저 세대”의 시작이기도 하다. 구속은 이 세대의 끝에, 저 세대의 시작에 발생할 것이다. 이렇게 파함에게 구속의 미래성은 임박한 종말과 겹친다.
B. 성화와 성결의 완성으로서 구속
파함이 제시하는 신자의 성화와 성결은 구속에서 그 정점과 끝에 이른다. 그에게 성화는 법정적 성화를 시작으로 온전한 성화의 단계를 거쳐, 성결의 단계를 지나 그 최종 단계인 “구속”(redemption)에 이른다. 파함에게 구속은 성화의 단계들의 최종 단계인 것이다. 파함은 성화로부터 성결의 과정에 들어선 사람들은 “완전함 안의 성숙”에로 지속적으로 들어가도록 명령을 받는다고 말한다. 성결은 마침내 이 세대가 끝나고 저 세대가 시작되는 시점에 발생할 구속에 의해 “완전함 안의 성숙”에 이를 것이다. 구속이 일어나면 성결은 완성(maturity)에 도달하여 드디어 가나안 땅을 상속받을 것이다. 성화는 모든 적들을 그 땅에서 몰아내기까지는 결코 신자의 유산이 되지 못한다. 가나안은 싸움의 땅이다. 그곳에서 신자는 모든 땅이 신자의 것이 되기까지 패배하지 말고 정복하기 위해 싸워야한다. “구속이 일어나면 비로소 땅이 분배될 것이다.” 구속의 순간에 위로 향하는 경향성은 “온전한 결실”(the full fruition)에 도달할 것이다.
구속으로 말미암는 성화와 성결의 완성은 영과 혼과 몸을 포함하는 전인적 완성이다. 파함에게 위로 향하는 경향성의 온전한 결실(the full fruition)은 몸이 불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포함한다. 만약 “성화 안에서 지속적으로 빛 속을 걸으며, 가나안의 봉우리들을 걸으며, 원수들을 몰아내며, 더욱 많은 땅을 취하여 소유한다면, 성령침례(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를 발견할 것이며,” 나아가 “영과 혼과 몸의 ‘전적인 성화’(entire sanctification)에 이르러 하나님 안에 굳게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할 것인데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살아 있던 자들도 변화할 것이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것이다(고전 15:51-53).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일 것이기 때문이다(눅 20:34, 35). 영과 혼과 몸의 전인적 완성, 파함에게 이것이 구속의 완성(the perfection of Redemption)이다.
C. 구속의 모형인 예수 그리스도
파함에게 구속으로 인한 완성은 구속의 모형인 예수님의 변화와 부활에 그 근거를 둔다. 먼저 예수님의 변화산에서의 변화가 구속으로 인한 완성의 모형이다. 예수님의 변화는 성화되고 성결 과정에 있는 신자들에게 일어날 구속의 모형(a type of coming redemption)이다. 그분의 자연적 몸이 영화되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나타나셨던 것처럼, 그 마지막 날들에 그 구성원들인 모든 세대의 합당한 성도들을 포함하는 몸 된 교회가 영화될 것이다. 또한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부활이 구속으로 인한 완성의 모형이다. 신자는 때가 차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셨을 때 그리스도께 역사하셨던 그 큰 능력을 실감할 것이다. 그 부활의 능력에 의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무덤에서 일으키신 후의 예수님의 몸과 같은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
D.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히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구속
파함에게 구속은 창세전에 계획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예정과 관련되며, 구속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아버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다. 그는 신자는 “세상의 창설이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자녀들로 입양되기로 예정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에게 신자들은 비록 상속자들이 되었지만, 구속(Redemption)이 일어날 때 비로소 진정한 자녀신분(sonship)을 얻을 수 있다. 회심으로 착상되고, 성화로 태어나고, 그리고 구속이 일어나기까지 어린아이로 남아 있다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며 구속이 일어날 때 성인(maturity)이 되어 부활의 자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눅 20:34, 35), 양자(Adoption)가 되어서야 그때에야 비로소 실제로 가나안 땅을 상속받을 것이다.
파함은 구속으로 인한 성화가 영원까지 지속되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신자가 구속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가 된다고만 말하지 않는다. 파함은 신자가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비로소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다”(벧후 1:4)고 주장했다.
E. 백보좌 심판과 성화/구속
파함에게 신자로 하여금 심판을 면하게 하는 것은 성화와 구속이 아닌 회심이다. 파함은 성화가 심판을 면하게 해주는 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대신 그는 회심이 심판을 면하게 해주는 기준이라고 여겼다. 파함에게 성화의 정도는 심판을 면한 삶의 질의 정도와 관련된다. 첫째로, 온전한 성화를 얻고 성령침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신부로 예비 된 신자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 공중으로 휴거되면서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되어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되며,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공동 상속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 때 함께 모든 나라를 다스릴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부들은 백보좌 심판대 앞에 서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진정으로 거듭나서 진정한 성결의 삶을 살지만 성령침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지는 못하지만 주의 재림 이전에 혹은 재림 때 부활될 것이다(계 20:4, 6). 예수를 개인적인 구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고 회심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린 후 그리스도께서 백보좌에 심판자로 앉으실 때 그리스도의 배심원으로서 나라들을 심판하기 위해 그 보좌에 앉혀질 것이다.
죽은 자들의 나머지, 즉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천년의 안식이 지날 때까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다. 천년의 안식이 지난 후 그리스도께서 제 칠일의 안식 질서를 바꾸시고 백보좌 심판대에 오르시면서 천년의 안식에 이어 제 팔일 또는 천년을 여실 것이다. 모든 죽은 자들이 심판을 받기 위해 나아올 것이다. 그리고 모든 유아들, 모든 종교들의 형식적인 추종자들, 지독하게 사악한 자들, 그리고 우매한 이방인들, 육천 년 동안 진정으로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거기 있을 것이다. 백보좌 심판에서 사람은 그가 회심했느냐 혹은 회심하지 않았느냐에 따라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이 심판에서 중생한 사람들 이외의 모든 사람들, 즉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삶과 행위가 어떠했느냐에 따라 공정한 판결을 받을 것이다. 살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면, 오른 편에, 그렇지 않으면 왼편에 세워질 것이다(계 20:4, 11, 15).
회심하지는 않았지만, 오른 편에 세워진 윤리적인 사람들은 영원한 불멸의 삶을 살게 될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상속을 받지는 못할 것이며, 또는 거룩한 성 안에서 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죽지 않고 천년 동안 그리스도의 자비롭고 은혜로운 통치 아래서 살았던 사람들은 악을 행하는 미혹을 당하지 않고, 시험에 들지 않으며, 새 땅을 상속받는 온유한 자들(the meek)이며 영원히 살기에 합당한지 합당하지 않은지에 관한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다. 죽었다가 부활하였기 때문에 천년왕국에서 살지 못한 온유한 자들은 아담 안에서 잃어버렸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 보혈 속죄를 통해 회복된 새 땅을 상속받을 것이다. 그들은 영원하고 온전한 인간 생활, 에덴동산 같이 새롭게 만들어진 땅 위에서의 삶을 얻을 것이다. 이 무리는 모든 유아들, 형식적인 교회들에서 온 모든 자들, 가엾은 정치가들과 매춘부들, 또는 우매한 이방인들 중에서 하나님의 그리스도께서 살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일 것이다. 백보좌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개인적인 구주로 받아들였느냐 아니면 거부했느냐에 따라 받지 않을 것이다. 심판은 행위에 따라 받을 것이다.
VI. 나가는 말
파함의 성화론은 “법정적 성화”, “온전한 성화”, “성결”, 그리고 “종말적 구속”이라는 네 가지 국면들로 구성된다. 이 네 가지 국면들은 “법정적 성화”로부터 시작하여 “온전한 성화”로, “온전한 성화”로부터 “성결”로, “성결”로부터 “종말적 구속”으로 이행하는 논리적이고 연속적인 순서를 따라 전개된다. 법정적 성화와 온전한 성화와 종말적 구속은 순간적인 것이지만, 법정적 성화에서 온전한 성화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온전한 성화에서 종말적 구속에 이르기까지의 성결은 과정적인 것이다. 파함에게 성화는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칭의의 순간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르러 구속을 받기까지 지속되어야하는 것이다. 이렇게 파함에게 성화는 기독론적이며 성령론적이고, 전인적이며, 칭의로부터 시작하지만, 구속이후 영원까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대장정이다.
법정적 성화는 성화의 연속적 전체 구조에서 첫 번째 국면이다. 법정적 성화는 기독론적이며, 칭의와 관련되고 순간적인 것이다. 파함은 회심 이후, 즉 법정적 성화 이후의 지속적인 의로운 삶을 살 것을 주장했다. 정적 성화 이후 지속적인 성화의 추구는 우리를 다음 단계인 온전한 성화로 인도한다. 엄격하게 말하면, 온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는 영과 혼과 몸 전체를 포함하는 성화이다. 파함은 영과 혼의 온전한 성화만을 다룰 때는, 그저 “성화”(sanctification)라는 용어를 선호했다. 성화는 하나님 은혜와 신자의 전적 헌신에 의해 발생한다. 성화는 타고난 유전된 죄의 제거이다. 정복할 수 없었던 옛 본성이 성화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 의해 정복당한다. 성화는 과정적인 것이 아닌 순간적인 것이다. 파함에게 성화는 성령론적이지 않고 기독론적이다. 그는 칭의와 성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파함은 구분되고 분리되는 서로 다른 칭의와 성화의 원인을 동일한 갈보리의 역사에 두었다. 성화의 원인은 갈보리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이며, 성화의 결과들 중 하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파함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 놓이는 것을 동일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스도 안에 놓이는 것을 성화의 공동체적인 측면을 다루면서 언급한다. 온전한 성화를 얻은 사람들은 타인을 향한 선한 영향력을 흘러가게 한다. 성화시키는 영향력은 불가시적인 것이지만 힘을 갖고 있다. 파함은 영혼의 원죄를 용서받는 것에는 그저 “성화”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가 “온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성화는 영혼뿐만 아니라 몸의 국면까지 포함했다. 온전한 성화는 내적인 영으로부터 시작하여 혼의 성화를 거쳐 외적인 몸으로 확장되는 전인적인 성화다. 온전한 성화는 끝이 아닌 또 다른 국면의 성화의 시작이다.
순간적인 온전한 성화는 “성결”(holiness)이라고 일컫는 또 다른 국면의 성화의 시작점이다. 성화는 순간적인 것이지만, 성결은 과정적인 것이다. 전 생애에 걸쳐서 일어나는 성결은 한계가 없는 것이다. 성결은 긍정적으로 경향성의 전환의 산물이다. 성화는 아래로 향하는 경향성에서 위로 향하는 경향성으로의 방향 전환이며, 그 이후의 성화는 위로 향하는 경향성을 갖는다. 여기서 파함의 성화론은 성령론적 측면을 띈다. 성결은 또한 부정적으로 죄악과의 싸움이다. 파함의 성결론은 그리스도를 닮음을 포함한다. 성결은 옛 사람의 매일매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과 그리스도의 내주하심,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그리스도의 정신을 보여주기 등의 모범자 그리스도를 닮음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와 연합에 의한 성화의 공동체성은 순복음 공동체의 성화와 연결된다. 성령침례는 온전한 성화 이후의 단계인 성결의 과정 중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결의 과정 중에 오는 성령침례는 성화적 측면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성령침례의 삶 위에 임한 효력은 그것이 삶을 하나님을 위한 희생적 봉사에 쏟아 붓도록 하게 하는 것이다. 성령침례는 또한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게 한다. 파함은 과정적인 성결의 목표를 “완전함 안의 성숙”(the maturity in perfection)으로 제시한다.
파함에게 순간적인 온전한 성화 이후에도 지속적인 성결이 필요한 이유는 온전한 성화가 “죄의 법”, 또는 “육적 본성”을 순간에 제거해버리지만, 그러나 “옛 사람”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파함의 성화론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구속”의 완성은 미래의 일이다. 구속의 미래성은 임박한 종말과 맞물린다. 파함이 제시하는 신자의 성화와 성결은 구속에서 그 정점과 끝에 이른다. 구속으로 말미암는 성화와 성결의 완성은 영과 혼과 몸을 포함하는 전인적 완성이다. 구속으로 인한 완성은 구속의 모형인 예수님의 변화와 부활에 그 근거를 둔다. 구속은 창세전에 계획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예정과 관련되며, 구속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아버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다. 파함은 구속으로 인한 성화가 영원까지 지속되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비로소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다. 신자로 하여금 심판을 면하게 하는 것은 성화와 구속이 아닌 회심이다.
파함은 신자들에게 마땅히 성화를 추구해야함을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권고한다.
진정한 회심을 얻었다면, 그리고 구원의 생명에 도달했다면, 회심에 따라 의롭게 된 삶을 살아야만 한다. 그리고 성화되고, 이 경험으로부터의 결과인 성결의 삶을 살아갈 때, 성화된 경험과 성결의 삶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어야만 한다. 성화는 당신을 가나안에 들여 놓겠지만, 그러나 오순절적 축복을 얻으면, 그것은 당신을 하늘에 들여 놓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선택을 예수 안에서 얻어왔다. 그러니 당신의 삶은 오순절에 따라 아름답고, 달콤하고, 감미롭고, 의로워야만 한다.
그러나 파함은 신자들의 현재적 미완성을 또한 깊이 이해하며 다음과 같이 위로하며, 조언한다.
형제자매여, 그 건물의 미완성된 부분들 때문에 그 건축물에 대해 불평하여 그 건축가를 슬프게 했습니까? 그분을 믿고 신뢰하십시오! 그분은 그 건축을 끝내고 그것을 아름답게 장식하실 것이며, 마침내 그것이 그 건축가가 영원을 위해 짓고 계시는 위대한 성전의 부분이 되기에 합당하게 될 것입니다.
파함의 성화론 표
주장자 | 시초 성화 → | 과정 성화 → | 최종 성화 | |
파함의성화론 | 법정 성화(중생) → | 완전 성화(중생 이후) → | 성결 → | 구속 |
순간적 갈보리 십자가 그리스도의 피 자범죄 제거 |
순간적 그리스도의 피 결과로서 그리스도와 연합 원죄(육적 본성) 제거 인간적 원인: “정화/헌신” 영적 영향력: 성령 내주적 기름부음 몸의 성화 |
점진적 위로 향한 경향성 소극적: 옛 사람(old man)과 싸움 적극적: 그리스도를 닮음 성령침례: 방언+희생적 봉사 능력 성령생활 |
종말적 성숙, 영,혼,몸의 전인적 완성 구속의 모형이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자녀: 신의 성품에 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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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는 백보좌 심판을 면하거나 받는 기준이 아님 칭의가 그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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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태 | 출생 | 성장 | 성인 | |
첫 은혜 | 둘째 은혜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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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Sanctification of Charles F. Parham, the Father of Pentecostalism
Chang-Soung, Lee
The Father of Pentecostalism, Charles F. Parham pursued not only charismatic work, but also sanctification through his life time. But there has been no article which studied Parham’s view of sanctification overall. So, this article explored his sanctification in all its aspects. Sanctification of Parham has three successive phases: sanctification, holiness, and eschatological redemption. Sanctification can be divided into two phases: legal sanctification and entire sanctification. Therefore, his sanctification is organized by a logical and successive order shifting from legal sanctification to entire sanctification, and then from entire sanctification to holiness, and then from holiness fighting against old man to eschatological redemption. For him, legal sanctification and entire sanctification, and eschatological redemption are instantaneous, but sanctification between legal sanctification and entire sanctification, and holiness between entire sanctification and eschatological sanctification are gradual. And sanctification will not be the criterion through which one will be exempted or judged at the White Throne Judgement, but justification will be the criter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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