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rth of the Pentecostal Movement
J. 로스웰 플라우어
(J. Roswell Flower)
이창승 역
2023.7.11
The Pentecostal Evangel (November 26, 1950): 3, 12-15.
[번역자 서언]
로스웰 플라우어(1888-1970)는 19세가 되던 해에 글렌 쿡(Glenn A. Cook)이 1906년 12월에 인디아나폴리스(Indianapolis)에서 열었던 오순절 집회에 가족들과 함께 참석하여 성령침례에는 방언이라는 성경적 증거가 동반된다는 교리(the dogma)를 받아들였다. 글렌 쿡은 시무어의 아주사 집회에서 방언을 동반하는 성령침례를 받았었다. 그리고 플라우어는 21세에 그 교리를 경험했다.
플라우어는 25세가 되는 해인 1914년에 미국 하나님의 성회 창립총회에서 첫 총무(general secretary)로 선출되었고, 1919년에는 첫 해외선교국장(Foreign Missions Secretary)으로 일했다. 그 이후 1959년 은퇴하기까지 미국 하나님의 성회 총회를 위해 일했다. 미국 하나님의 성회는 1997년에 그의 공적을 기념하여 총회의 오순절자료실에 “Flower Pentecostal Heritage Center”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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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순절적 충만함으로 성령이 부어지는 마지막 날들 또는 “늦은 비”의 50주년에 빠르게 다가가고 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캔사스주, 토페카에 세워졌던 한 작은 성경학교에서 한 학생에게 부어지셨기 때문이다. 그때 영적 불꽃이 타올라 전 세계로 번져 모든 대륙들과 거의 모든 나라에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성령침례라고 불리는 동일한 경험을 받아왔다.
그 초기 경험의 중요성은 당시에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고 인정받지도 못했고, 그 이후로 영광스러운 성령침례를 구하고 받은 수 많은 사람들은 그 영광스런 사건을 발생시킨 상황에 대해 들어보지도 못했을 것이며, 그 사건을 오순절운동의 시작으로 간주해야만 하는 이유를 알지도 못할 것이다.
19세기 동안 수많은 대단한 영적 부흥들이 있었다. 그 부흥들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여겨지지 말아야만 한다. 대중 전도는 빌리 선데이(Billy Sunday)와 같은 복음전도자들의 장막 사역들 아래서 그 절정에 달했다. 동시에, 감리교도들의 집단들이 성결 연맹(Holiness Associations)을 결성했고, 개인적 성결의 진작을 위해 많은 야외 천막 집회들이 중부 그리고 중서부 주들 안에 세워졌다. 신유론은 A. B. 심슨, A. J. 고든, 그리고 알렉산더 도위와 같은 사람들의 사역 아래서 강조되어왔었다. 이렇게, 그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정도로 초자연적인 것을 강조하는 다른 부흥 운동을 위한 준비가 있었다.
19세기 말엽에, 찰스 파함(Charles F. Parham)이라는 이름의 한 감리교 복음전도자가 신유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한 부분이라는 소식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는 심슨을 만나러 뉴욕에, 그리고 도위의 사역을 탐사하기 위해 시카고에 갔다. 두 하나님의 종들의 사역에서 본 것에 고무된 파함은 그리스도는 영혼의 구원자이실 뿐만 아니라 몸의 치료자시라는 것을 전하고 가르치기 위해 캔사스로 돌아왔다. 그는 캔사스주 토페카에 한 성경학교를 열었다. 그리고 수십 명의 그의 회심자들이 학생으로 등록했다. 이 목적으로 준비된 건물은 거대한 성채와 같은 구조를 가졌고, 구조가 계속 변경되어 결코 완성되지 못했다. 그 건물은 토페카 주민들에 의해 “스톤의 무용지물”(Stone’s Folly)이라고 불렸다. 그는 그 학교에 “벧엘 성경 대학”(Bethel Bible College)라는 이름을 붙였다. 단순한 교육 방법이 뒤따랐다. 성경은 유일한 교과서로 사용되었고, 공부는 축어적인 분석과 관주에 한정되었다(being confined to textual analysis and references).
1900년 말엽에 그 지도자는 사역을 위해 떠나면서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사도행전을 연구했고, 주의 깊은 연구 후 그들은 성령침례의 신약성경적 증거라고 인정되어야 하는 것을 결정했다. 돌아온 파함은 그 학생들이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는 성령이 말하라고 주시는 것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라는 결정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가장 중대한 결정이었다. 1900년 이전에도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의 많은 사례들이 기록되어 왔었지만, 각 경우에 방언은 영적인 현상 또는 기껏해야 성령의 “은사” 정도로 여겨졌으며, 그래서 방언을 말해야만 한다는 기대를 할 정도로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게 하도록 그 어떤 특별한 강조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학생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도적 시대에 방언을 말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성령침례를 받았다는 것에 대한 최초의 육체적 증거로 간주되었다는 것(행 10:46- 그들이 방언을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 . .)을 추론해 내었다. 이 결정이 20세기 오순절운동을 일으켰다.
첫 번째 단계를 밟은 후, 사도행전의 두 번째 장에서 발견된 패턴에 부합하는 경험을 위해 학생들 사이에서 갈망이 조성될 것이라는 것은 논리적이었다. 우리는 이제 아그네스 오즈만 양이 “따르는 표적”이라는 글에 기록된 대로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게 하자:
“저는 수년 동안 성경학교 학생이었었습니다. 미네소타 주의 세인트 폴에 있는 호르톤(T. C. Horton)의 성경학교에 다니기도 했고, 뉴욕 시에 있는 심슨(A. B. Simpson)의 성경학교에 다니기도 했었습니다. 얼마동안 선교사로 일하기도 했었습니다. 1900년 가을에 캔사스 시에 있었는데 토페카에 한 성경 학교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학교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제가 가는 것이 주님의 계획이라면 교통비를 주십사고 기도했습니다. 한 자매가 교통비를 지불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주었고, 그래서 제가 그 학교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에 대한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빌립보서 4장 19절에 따라 모든 필요를 채우는 데 그분을 신뢰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벧엘 대학으로 알려진 이 학교에 간 때는 1900년 10월이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낮에는 성경을 공부했고, 밤에는 도심에서 많은 사역을 했습니다. 기도 탑으로 구별된 한 특별한 다락방에서 기도가 밤낮으로 계속 드려졌습니다. 저는 철야 기도회 동안 이 다락방에서 몇 시간 동안씩 기도하는 복을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때, 하나님께서는 기록된 모든 말씀에 우리 마음을 열게 하셨습니다.
주님에 대한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기쁨도 맛보았으며, 인도해주시고 필요를 채워달라는 기도에 놀라운 응답들을 체험했습니다. 주님의 임재의 복을 받았고, 주님께서는 저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어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셨습니다. 다른 어떤 사람들처럼, 저는 헌신(consecration) 때 성령 침례를 받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아직 더 충만함으로 부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배웠을 때, 제 마음은 약속된 보혜사를 갈망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높은 곳으로부터 능력을 부여받기 위해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제게 필요한 음식보다 성령께서 오시기를 더 갈망했습니다. 저녁이면 잠자기보다 성령님을 더 갈망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 마음에서 역사하도록 그 보혈을 존중하라고 권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큰 평화와 승리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자주 인용된 본문은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히 13:20-21)이었습니다.
연말이 다가 오면서 휴일을 우리와 지내기 위해 캔사스로부터 몇 친구들이 왔습니다. 송구영신 철야 시간에 우리는 복 받은 예배를 드렸고, 새해가 밝아오면서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기를 기도했습니다. 1901년 첫날에 주님의 임재가 더 큰 것을 위해 그분을 기다리도록 우리의 마음을 차분하게 하면서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와 함께 했습니다.
기도의 영이 그 밤에 우리 위에 계셨습니다. 파함 형제에게 제가 성령의 그 선물을 받도록 안수해 주기를 요청하자는 마음이 제게 들었던 때는 거의 그 일월 첫날 일곱 시 경이었습니다. 그가 저의 머리에 안수하자 성령께서 내게 떨어졌고 저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가지 언어들을 말했고, 이것은 어떤 새로운 방언이 말해졌을 때 분명했습니다. 더욱 기뻤고, 열망했던 영광과 전에는 알지 못했던 주님의 깊은 임재를 체험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생수의 강들이 저의 가장 내밀한 존재로부터 흘러나오는 것과 같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전날 밤의 저의 경험에 대한 질문이 저에게 쏟아졌습니다. 제가 대답하려 할 때, 저는 영광으로 충만하여 그들에게 성경 말씀들을 가리키며 제가 사도행전 2장 4절과 19장 1절에서 6절에 따라 성령 침례를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그 성경학교에서 방언을 말한 첫 번째 사람이었으며, 나머지 사람들도 또한 방언을 말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방언을 구하지 말고 성령을 구하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때 또 다른 어느 누가 방언을 말할지 몰랐습니다. 저는 성령께서 저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그분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타내시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1월 2일에 우리들 중 몇 사람이 전도를 위해 토페카에 내려갔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예배하는 동안 저는 영어로 기도했고 그리고 다른 언어 방언(another language in tongues)으로 기도했습니다. 그 집회에 참석했던 한 보헤미아인이 제가 말한 것을 이해했습니다. 몇 달 후 다른 사람들과 한 학교에서 집회 중에, 저는 성령의 능력으로 방언을 말했고 다른 보헤미아인이 저의 말을 이해했습니다. 그 이후로 다른 사람들이 제가 말한 다른 언어들을 이해해왔습니다.
다른 학생들의 마음은 성령을 갈망하게 되었고, 그들은 계속 주님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1월 3일에 몇 학생들이 그 전도 집회에 갔고, 다른 사람들은 성령을 위해 성경학교에서 모여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을 부어주심으로써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차례로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으며, 몇 사람은 통역 은사를 받았습니다.”
다른 학생, 릴리안 티스틀웨이트 양(Miss Lillian Thistlewaite [찰스 파함의 처제])도 유사한 경험을 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당시에 그 학교에 일어난 성령의 역사에 대해 썼다.
“다락방 하나가 주님 앞에서 기다리기 위해 마련되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찬양하기도 하고 소리내어 또는 조용히 기도하기도 하며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한 번에 한 사람만 소리 내어 기도했기 때문에 거기에는 그 어떤 혼란도 없었습니다. . . 주님의 임재는 너무도 실제적이었고,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셨습니다. 방언을 구하지 않고, 다만 제가 성령침례를 받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어떤 증거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제가 그렇게 보잘 것 없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 . . 그 후에 저는 성령을 통해 저의 영혼에 이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성령침례로 인해 주님을 찬양하라, 성령은 믿음으로 안수함을 통해 오시기 때문이다.’ 그리고나서 큰 기쁨이 저의 영혼에 임했고, 저는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을 찬양합니다.’ 저의 혀가 둔해지기 시작했고 큰 웃음이 저의 마음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봉인된 것처럼 더 이상 찬양의 말을 생각할 수 없었고, 다만 입은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이 폭포수처럼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님을 영어로 찬양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주어진 이 새로운 언어로 찬양이 나오게 했습니다. 영광의 폭포수의 문들이 크게 열렸습니다. 성령께서 저같은 자에게도 오셨고, 자신을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높이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오, 놀라운 그리스도께서 드러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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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우리는 함께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각자는 자신의 언어로 찬양했지만, 모두는 완전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모두 예수 이름의 능력을 찬양해’라고 찬양할 때, 다른 익숙한 곡조들로 찬양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임하신 주님의 현존의 거룩한 영광을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런 거룩한 기쁨, 그런 순전한 영광, 그런 풍성한 평화가 저의 삶에 온 적이 없었습니다.”
오순절이 이 마지막 날들에 반복되고 있다는 소식이 곧 널리 퍼졌고, 얼마 되지 않아 방언을 말하는 것을 조롱하는 한 신문 기사가 토페카에 등장했다. 다른 신문사들은 취재하라고 기자들을 보냈고, 캔사스와 세인트 루이스 신문들에 그 부어주심에 대한 기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들은 그 사역을 선전해주었다. 설명을 요청하는 편지들이 그 성경학교에 쇄도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들은 주님께서 행하고 계시는 것을 직접 보기 위해 찾아왔다.
그 성경학교의 사역이 끝나자 곧 그 학생들은 밖으로 나가 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먼저 캔사스주의 로렌스, 그리고 캔사스시, 그리고 캔사스주의 갈레나, 그리고 택사스주로 가서 어디든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성령으로 침례를 주고 계시며, 성령으로 침례를 받은 증거는 성령이 말하라고 주시는 대로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증거했다.
1941년에 필자는 미주리주, 캔사스 시를 지나고 있었다. 1941년 1월 30일자 『캔사스 스타』(the Kansas City Star) 신문을 집어 들었을 때,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고 매우 놀랐다.
40년 전 캔사스 시에서
찰스 F. 파함 목사와 그의 토페카, 벧엘 성경 대학 학생들은 어제 저녁에 메디슨가 1675에서 부흥집회를 열었다. 이 사람들은 성경에 언급된 “방언 은사”가 자신들에게 주어졌다고 그리고 온전한 기도를 통해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들을 말할 수 있다고 믿는 한 새로운 분파를 형성하고 있다.
오순절운동은 참으로 1901년 1월에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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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침례의 신약성경적 증거는 성령께서 말하라고 주시는 대로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는 교리가 받아들여졌었다. 그 운동은 곧 오대양 육대주로 퍼졌다. 수 세기 동안에 그 운동만큼 복음주의적 기독교에 그런 영향을 끼친 다른 운동은 없었다. 그 운동은 저항에 직면했고, 조롱을 당했고, 핍박을 받았다. 적대자들은 반대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하려 했지만, 그 운동은 계속 퍼져나가고 있다.
작은 불꽃이 캔사스주 토페카에서 일어나 영적 능력과 축복의 강력한 불길이 되었고, 이제 전 세계를 채우고 있다.
We are rapidly approaching the fiftieth anniversary of the last-days or “latter rain” outpouring of the Holy Spirit in Pentecostal fullness, for it was on January 1, 1901, that the Holy Spirit was outpoured upon a student in a small Bible School at Topeka, Kans. At that time a flame of spiritual fire was kindled which has since swept over the entire world, until hundreds of thousands in all continents and in nearly every country have received a similar experience called the Baptism in the Holy Ghost.
Perhaps the significance of that early experience was neither understood nor appreciated at the time, and it is also possible that many thousands of those who have since sought for and received a glorious Baptism in the Holy Spirit have not heard of the circumstances which led to that glorious event, nor the reason why it should be considered as the beginning of the Pentecostal Movement.
During the nineteenth century there were many great spiritual revivals, none of which should be discounted in any degree. Mass evangelism reached its peak under the tabernacle ministries of such evangelists as Billy Sunday. Simultaneously, groups of Methodists formed Holiness Associations, and many camp meetings for the promotion of personal holiness were established in the central and midwestern states. The doctrine of Divine Healing had been given emphasis under the ministry of such men as A. B. Simpson, A. J. Gordon, and Alexander Dowie. There was, therefore, a preparation for another revival movement which would give emphasis to the supernatural to a degree never before known.
In the late nineties, a Methodist evangelist by the name of Charles F. Parham became intrigued by rumors that Divine Healing is a part of the gospel of Christ. He made a trip to New York to interview Dr. Simpson and went to Chicago to investigate the ministry of Dr. Dowie. Having received much encouragement from what he saw of the ministry of these two servants of God, he returned to Kansas to preach and teach that Christ is the Healer of the body as well as the Savior of the soul. He opened a Bible School in Topeka, Kans., and a number of his converts enrolled as students. The building secured for this purpose was a huge castlelike structure which had never been fully structure which had never been fully completed, and which was referred to by the citizens of Topeka as “Stone’s Folly.” He named the school “Bethel Bible College.” A simple method of teaching was followed, the Bible being used as the only textbook, and study being confined to textual analysis and references.
It is recorded that late in the year 1900 the leader departed for filed ministry and left a charge for the students, who were then studying the Book of Acts, that after careful research they determine what should be considered the New Testament evidence of the Baptism in the Holy Ghost. When he returned, he was informed that the student body had reached the decision that the Scriptural evidence of the Baptism in the Holy Spirit is the speaking in other tongues as the Spirit gives utterance.
This was a most momentous decision. There had been recorded many instances of persons speaking in tongues prior to the year 1900, but in each case the speaking in tongues was considered to be a spiritual phenomenon or at the most a “gift” of the Spirit, with the result that no particular emphasis had been given which would cause those seeking for the fullness of the Spirit to expect that they should speak in other tongues. But these students had deduced from God’s Word that in apostolic times, the speaking in tongues was considered to be the initial physical evidence of a person’s having received the Baptism in the Holy Spirit (See Acts 10:46- “FOR they heard them speak with tongues . . .”). It was this decision which has made the Pentecostal Movement of the Twentieth Century.
The first step having been taken, it was logical that hunger should develop among the students for an experience which would measure up to the pattern found in the second chapter of the Acts of the Apostles. We will now permit Miss Agnes Ozman to tell her own story, as recorded in With Signs Following:
“I had been a Bible student for some years and had attended T. C. Horton’s Bible School at St. Paul, Minn., and A. B. Simpson’s Bible School in New York City . . . In the fall of 1900 I was in Kansas City and heard that a Bible School was to be opened at Topeka, Kans. I had a desire to go to this school, and asked the Lord, if it was His plan for me to go to provide the fare.” The fare was provided, and then : “We studied the Bible by day and did much work down town at night . . . Prayer a special upper room set apart as a prayer tower. I had many blessed hours of prayer in this upper room during the night watches . . . . Like some others, I thought that I had received the Baptism of the Holy Ghost at a time of consecration: but when I learned that the Holy Spirit was yet to be poured out in greater fullness, my heart became hungry for the promised Comforter and I began to cry out for an enduement with power from on high. At times I longed more for the Holy Spirit to come I had a greater desire for Him than for sleep.”
“On Watch Night we had a blessed service, praying that God’s blessing might rest upon us as the new year came in. During the first day of 1901, the presence of the Lord was with us in a marked way, stilling hearts to wait upon Him for greater things. The spirit of prayer was upon us in the evening. It was nearly eleven o’clock on this first of January when it came into my heart to ask that hands might be laid upon me that I might receive the gift of the Holy 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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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was as if hands were laid upon my head that the Holy Spirit fell on me and I began to speak in tongues, glorifying God. . . . I had the added joy that my heart longed for, and a depth of the presence of the Lord within that I never knew before. It was as if rivers of living water were proceeding from my innermost being.”
“Others were made hungry to receive the Holy Spirit. I pointed out to them the Bible references, showing that I had received the Baptism according to Acts 2:4 and 19:1-6. I was the first to speak in tongues in the Bible School, and it seemed to me that the rest were wanting to talk in tongues too. But I told them not to seek for tongues, but to seek for the Holy Ghost. . . . It was some months later that I was fully persuaded in my own heart about the evidence of the Baptism. . . . I watched nine different ones receive the Holy Spirit, saying to myself and before God. ‘I will see if every one talks in tongues,’ and one by one every one received the Holy Spirit and began to speak in other tongues as the Spirit gave them utterance.
“The hearts of the other students were made hungry for the Holy Spirit and they continued to tarry before the Lord. On the 3rd of January some of the students went to the mission and others gathered in prayer at the Bible School, praying for the Holy Spirit. God answered their prayers by pouring out His Spirit, and one after another began to speak in tongues and some were given interpretation.”
Another student, Miss Lillian Thistlewaite, who also received a similar experience, wrote of the Spirit being manifested in the school at that time, as follows:
“An upper room had been set aside for tarrying before the Lord, and here we spent every spare moment in audible or silent prayer, in song or in just waiting upon Him. There was no confusion as only one prayed audibly at a time. . . . The presence of the Lord was very real and there were definite heart-searchings. I was not looking for ‘tongues’ but for some evidence from God that would convince me that I had received that Baptism. We prayed for ourselves and we prayed for one another. I never felt so little and so utterly noting before. . . . Then through the Spirit I received this message in my soul: ‘Praise the Lord for the Baptism, for the Spirit does come in by faith through the laying on of hands.’ Then a great joy came into my soul and I began to say, ‘I praise Thee.’ My tongues began to get thick and great floods of laughter came into my heart. I could no longer think words of praise for my mind seemed to be sealed, but my mouth was filled with a rush of words I did not understand.”
“I tried to praise Him in English but could not, so I just let the praise come as it would in this new language that was given. The floodgates of glory were wide open. The Holy Spirit had come to me, even to me, to speak not of Himself but to magnify the Christ - and oh, what a wonderful, wonderful Christ was revealed. . . . With a simultane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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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ement we began to sing together, each one singing in his own language but all in perfect harmony. As we sang ‘All Hail the power of Jesus’ Name’ and other familiar tunes, it would be impossible to describe the hallowed glory of His presence in our midst. Never had such a hallowed joy, such refined glory, or such an abundance of peace ever come into my life before.”
It was soon noised abroad that Pentecost was being repeated in these last days, and shortly afterward an article appeared in a Topeka newspaper ridiculing the speaking in tongues. Other newspapers sent reporters to investigate, and articles began to appear in the Kansas City and St. Louis newspapers concerning the outpouring. These stories advertised the work. Letters began to pour into the school asking for explanations, and some came to see for themselves what the Lord was doing.
It was not long until it seemed that the work of the school was finished and the students branched out in evangelistic effort, first in Lawrence, Kans., then in Kansas City, then Calena, Kans. and on into Texas, the testimony being given everywhere that God is now baptizing believers in the Holy Spirit and the evidence of having been baptized in the Holy Spirit is speaking in other tongues as the Spirit gives utterance.
In the year 1941, the writer was passing through Kansas City, Mo., when he picked up a copy of the Kansas City Star, dated January 30, 1941. He was startled to read the following:
IN KANSAS CITY FORTY YEARS AGO
The Rev. Charles F. Parham and his Bible students from Bethel College, Topeka, held a revival meeting last night at 1675 Madison Street. These comprise a new sect who believe that the “gift of tongues” mentioned in the Scriptures, has come to them and that under the complete influence of prayer they are able to talk in languages they themselves do not understand.
The Pentecostal Movement was indeed fairly launched in January, 1901. The dog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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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d been accepted that the New Testament evidence of having received the Baptism in the Holy Spirit is the speaking in tongues as the Spirit gives utterance. The Movement was soon to spread all over seas to every continent. It has made an impact on evangelical Christianity such as no other movement has made in centuries of time. It has been opposed, ridiculed, and persecuted-opponents have endeavored to explain it away-but the Movement continues to spread with increasing insistence.
The little spark that was kindled in Topeka, Kans., has grown into a mighty flame of spiritual power and blessing, until it is filling the whol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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