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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역사

몬타누스의 새 예언 성령운동

한오신 2023. 5. 17. 12:09

이창승

 

2003

 

몬타누스의 새 예언 성령운동(이창승).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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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 론

 

    몬타누스주의는 서로 상반되는 평가를 받아왔다. 힢폴리투스(Hippolytus)는 몬타누스주의자들이 교회가 그런 것처럼 하나님을 우주의 성부시오, 만물의 창조주라고 인정하며, 복음서의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를 받아들인다고 전했다. 또한 교회사가 필립 샤프(P. Schaff)몬타누스주의는 본질적인 교리에서 보편 교회와 일치했고, 전통적인 신앙의 규율을 확고히 강조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그 몬타누스주의는 160년 소아시아 교회 회의(최초의 공회)에서 정죄되었으며, 381년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도 정죄되었었다.

    몬타누스주의는 분파였는가? 아니면 이단이었는가? 몬타누스주의는 재흥이었는가? 아니면 받아들이지 못할 혁신이었는가? 상반된 평가를 받아 온 몬타누스주의의 실상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몬타누스주의는 혁신성을 띈 성령중심의 부흥운동이었다. 본 논문은 몬타누스주의의 여러 특징들을 살펴보면서 그것을 드러내 보려한다.

    한국에서의 몬타누스주의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한 상태다. 필자가 파악한 대로는 황은연, “몬타누스주의의 교회사적 고찰-그 정죄의 배경과 의의-,” 성령과 신학(1990): 443-457이 그 전부다. 그 연구도 사실 본격적인 연구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연구는 첫째로 몬타누스주의자들의 1차 자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며, 둘째로 외국에서 이루어져 온 몬타누스주의에 대한 지금까지의 전문적인 연구물들, 2차 자료를 인용하지 않았으며, 모든 인용물들이 3차 자료, 즉 교회사 전반에 대한 자료들에서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한국에서 발견되는 몬타누스주의의 1차 자료를 연구하며, 나아가 몬타누스주의에 대한 전문적인 2차 자료를 활용하고, 필요할 때 3차 자료를 참고할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한국에서 몬타누스주의 연구에 대한 본격적인 출발점이 될 것이다.

 

 

II. 본 론

 

A. 몬타누스의 생애

 

    존 웨슬리(John Wesley)는 몬타누스가 “2세기에서 가장 거룩한 사람들 중의 하나가 아닌가라고 생각했다.몬타누스’(Μοντανός , Montanus)라는 이름은 소아시아 지역 프뤼기아(Φρυγία, Phrygia) 지방의 한 비문(Le Bas, 755)과 그 주변 지방들의 다른 세 비문들(Boeckh-3662 Cyzicus, 4071 Ancyra, 4187 Amasia)에서 발견된다. 그는 우상을 숭배하는 이교 사제였다가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전해진다. 히에라폴리스의 아폴로니우스는 몬타누스가 크라투스(Cratus)라는 사람이 아시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 개종했다고 전한다. 몬타누스는 예루살렘이라는 새 이름이 부여된 페푸자와 티미움에 추종자들을 모았다. 그는 사역 조직을 갖추고 사역자들에게 급료를 지불하기도 하며 운동의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그가 일으킨 운동은 A. D. 200 년경 터툴리안(Tertullian)이라는 신학적 거목을 얻기도 했다. 몬타누스가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아폴로니우스는 몬타누스가 스스로 목매달아 자살했다고 기록했지만 그것은 의심스럽다. 그의 직접적인 가르침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그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의 원천은 그의 대적자들의 글이다. 그가 2세기 중엽에 일으킨 운동은 6세기까지 존재했다.

 

 

 

B. 몬타누스와 새 예언

 

    몬타누스는 새 예언 운동을 시작했다. ‘몬타누스주의’(Montanoi)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예루살렘의 키릴(Cyril of Jerusalem, d. 386 ce)이었다. 그런데 몬타누스를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새 예언’(The New Prophecy) 혹은 예언’(The Prophecy) 운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안디옥교회의 감독이었던 세라피온(Serapion)도 그들을 소위 새로운 예언을 하는 무리라고 불렀다. 유세비우스는 그리하여 그들은 몬타누스가 보혜사(Paraclete)이며, 그를 따르던 두 여인, 즉 브리스킬라(Priscilla)와 막시밀라(Maximilla)는 몬타누스의 여선지자라고 주장했다고 기록했다. 유세비우스는 헛소리를 하고 이상한 일들을 이야기했다고 아폴리나리스(Apolinaris)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종합해보면 몬타누스는 예언운동을 펼쳤던 것이다.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의 통치 중엽, c. 171-2에 예언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두 여인 브리스킬라와 막시밀라와 함께 예언운동을 펼쳐나갔다.

    새 예언은 예언의 은사의 재흥이었다. 몬타누스의 대적자들은 당시에 예언의 은사가 완전히 끝났다고 보지 않았다. 알시비아데스(Alcibiades)는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언자들인 아가부스(Ababus), 유다(Judas), 실라(Silas), 그리고 빌립의 딸들을 언급한 후 그들 이후의, 즉 성경시대 이후의 두 예언자, 필라델피아의 암미아(Ammias) 그리고 콰드라투스(Quadratus)를 언급한다. 즉 그는 성경시대 이후에도 예언자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반증했다. 또한 결정적으로, 알시비아데스는 사도들은 예언의 은사’(the prophetic gift)가 종말이 올 때까지 모든 교회에 계속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대적자들은 예언의 은사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1세기 후반에서 2세기 초엽사이에 기록된 디다케(Didache)의 저자는 성령에 의해 말하는 예언자를 언급하며, 거짓 예언자와 참 예언자 판별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너희들은 영에 의해 말하는 선지자들을 시험하거나 판단하지 말라. 왜냐하면 모든 죄가 다 용서 받을 수 있지만, 이 죄는 그렇지 못하니라.

따라서, 너희들을 위해 주의 이름에 합당한 자로서 겸손한 자 . . . 진실함을 인정받은 자들을 감독과 집사를 삼으라. 이들이 또한 너희들을 위해 선지자들과 교사들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리라.

성령으로 말하는 사람이라도 그가 주님처럼 행동하지 않는 한 모두가 다 예언자는 아니다. 그들의 행동으로 거짓 예언자와 참 예언자가 구별되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이름으로 식탁을 차리라고 명령했을 때 예언자라면 그것을 먹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다 . . . 만일 어떤 사람이 성령으로 내게 돈을 달라고 하든가 또는 다른 어떤 것을 달라고 하더라도 그의 말을 듣지 말라.

 

    A. D. 140-145년 경에 태어난 이레니우스(Irenaeus)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교사들과 기타의 모든 수단들을 세우셨으니 이를 통해 성령은 역사 하신다라고 말했다.

주후 165년경 순교한 저스틴(Justinus)은 당시에도 성령의 은사들이 존재했음을 말했다.

 

여러분 각자는 또한 은사를 받아서 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깨우침을 얻을 만한 가치가 있다. 어떤 사람은 이해의 영을, 다른 사람은 지도의 영을 또한 능력의 영, 치유의 영, 지식의 영, 가르침의 영,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은사에 대한 언급에는 예언의 은사와 방언의 은사들이 누락되어 있다. 저스틴은 당시의 예배의 요소를 성경읽기, 사회자의 연설, 기도, 회중의 감사와 아멘, 떡과 포도주의 분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헌납으로 요약했다. 그의 언급을 통해 예배에서 은사들특히 예언의 은사와 방언의 은사이 밀려났다는 것이 드러난다. 비록 그가 그의 저서에서 예언적 영’(prophetic spirit)27, ‘거룩한 영’(Holy Spirit)32회 언급하기도 했지만, 당시 신앙생활 속에서 예언이 약화되어 가고 있었던 것을 감추지는 못하는 것 같다. 종합해보면, 비록 몬타누스 당시의 사람들이 성령의 은사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점점 성령의 은사의 어떤 면들이 소홀히 여겨져 가고 있었다.

    몬타누스는 이런 감소에 저항하고 성령님 스스로 말씀하시는 예언의 은사의 재흥을 불러일으켰다. 힐겐펠트(Hilgenfeld)는 새 예언을 사역의 보다 근원적인, 은사적인 국면을 복원시키려는 시도라는 측면에서 연구했다.

 

D. 새 예언과 황홀경

 

    새 예언은 정신을 잃는 것과 관계가 없었다. 몬타누스의 대적자들은 예언의 은사 자체보다는 새 예언 운동의 예언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들의 공격은 예언의 은사 자체가 아닌 그의 예언들이 전달되는 황홀경에 집중되었다. 아폴로니우스는 몬타누스가 정신을 잃고 황홀경에 들어갔고, 헛소리를 하고, 지껄이다가 터무니없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몬타누스가 브리스킬라와 막시밀라의 오성을 은밀히 자극하고 불을 붙였다 . . . 이 두 여인도 몬타누스와 마찬가지로 이성을 벗어나 광적인 황홀경(parevkstasi": ecstasy)에 빠져 신기한 방법으로 이야기 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는 그런 황홀경적 예언은 교회전통에서 찾아볼 수 없던 것이라고 비평했다.

    그들이 몬타누스의 예언을 황홀경적이라고 공격한 이유는 그의 말에서도 비롯되었다. 몬타누스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잠들게 해놓고 수금처럼 연주한다고 보았다. 그런 그의 말을 대적자들은 그가 정신을 잃고 예언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몬타누스가 말한다:] 보라, 사람은 마치 수금과 같다. 그래서 나는 활처럼 그것을 연주한다. 사람은 잠들고 나는 깨어난다.

 

    몬타누스가 그런 표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언자가 예언을 할 때 정신이 없어진다는 것보다는 예언자는 수동적인 상태가 되고 하나님은 능동적인 상태가 되어 그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신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몬타누스주의의 황홀경적 예언은 인유적인 것이 최소화되는 성령 하나님의 직접 임재를 추구하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몬타누스가 헛소리를 하고 이상한 일들을 이야기했다”(he raved, and began to babble and utter strange things)는 것과 브리스킬라와 막시밀라가 몬타누스처럼 비이성적으로 이상하게 말했다(calei'n e*kfrovnw" kaiV aVkkotriotrovpw", talked unreasonably and strangely)는 대적자들의 묘사에서 몬타누스와 두 여예언자들이 방언을 말하며 예언했을 가능성도 있다. 샤프는 새 예언 운동의 집회에 어빙파(Irvingite) 집회 때 발생한 것과 비슷한 방언과 예언이 발생했다고 단정지었다.

 

E. 새 예언과 성경

 

    새 예언은 성경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었다. 몬타누스 당대의 주류 예언은 성경 중심적 예언이었던 것 같다. 알시비아데스는 암미아와 콰드라투스가 신약성경 아래서’(under the new covenant) 예언을 하였다고 보고했다. 즉 그는 당시의 예언의 주류는 신약성경 중심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그의 글을 인용한 유세비우스는 신약 성경 아래서 행하는 예언이 어떤 것인지 예를 들어 밝히지는 않았다. 그들은 몬타누스의 새 예언 운동을 성경을 중심으로 하는 주류의 예언과는 다르게 성경을 무시하고 또 다른 성경을 만드려는 시도로 파악했다.

    그러나 몬타누스와 함께 새 예언 운동을 펼쳤던 막시밀라는 자신을 성경을 대체하는 자가 아닌 언약, 약속의 설교자와 해석자로 이해했다.

 

[막시밀라가 말한다:] 주님께서 나를 지지자, 설교자 그리고 이 고난, 언약, 약속의 해석자(interpreter)로 보내셨다; 그분은 나를, 자발적이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의 지식을 배우지 않을 수 없게 하셨다.

 

    몬타누스주의에 합류한 터툴리안도 보혜사 성령에 의한 새 예언의 계시들은 성경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성경을 보충해 주는 것으로 이해했다.

 

마귀가 날이면 날마다 그 사악한 계략을 새로이 고안해 내고 있을진데, 어찌 하나님께서는 그것에 대한 상대 발전을 베푸시지 않고 계신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인간 기능의 한계는 모든 것이 단번에 전달되어 버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6:12, 13)고 하셨다. 전도서 기자가 말한 바와 같이 모든 것에는 각각 그 때가 있다. 처음에는 씨가 있고, 그 다음에는 유약한 새싹이 있으며, 그 다음에는 가지와 잎새가 있은 후, 그 다음에 이르러서야 성숙한 나무가 있게 된다. 그리고 나서는 꽃눈이 있고 꽃봉오리가 있으며 꽃과 그 열매가 있게 되는데, 그 열매 자체가 달콤하게 익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 이와 유사한 전개과정은 하나님의 계시 체계에서도 나타난다. 자연종교 상태에서는 그 계시의 형태가 매우 초보적인 원칙으로서 나타났고, 율법서와 예언서들 가운데서는 유아의 모습으로, 복음서에서는 유년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뿐이며, 그것이 성년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것은 단지 보혜사 성령의 역사 가운데서이다. 그 보혜사 성령의 계시를 통해 성경의 어두운 부분들은 명백해지게 되고, 비유로 언급된 사실들도 명백해지며, 이단들이 즐겨 사용했던 모든 애매한 구절들도 그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

 

F. 새 예언의 권위이신 성령

 

    새 예언의 권위는 성령 하나님이셨다. 또한 몬타누스의 대적자들은 몬타누스주의자들이 몬타누스를 보혜사 성령으로 여긴다고 비판했다. 그런 비판은 일차적으로 몬타누스가 신적 1인칭 직접 어법’(direct divine 1st person usage)을 사용한 것 때문이다.

 

[몬타누스가 말한다:] 나는 성부요, 나는 성자요, 나는 보혜사다.

[몬타누스가 말한다:] 나는 사람들 가운데 거하는 주,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몬타누스가 말한다:] 천사도 아니고, 대사도 아닌, , 주 하나님 아버지가 오신다.

 

    몬타누스는 보혜사께서 말씀하시기를이 아닌 간접화법이 아닌 나는 보혜사다라는 직접화법을 사용하여 예언한 것이다. 이 화법이 대적자들에게 몬타누스가 자신을 보혜사 하나님으로 신격화한다고 오해하게 만든 단초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 신적 1 인칭 직접화법에 의한 예언은 구약시대의 예언자들도 시도했던 것이었다. 아모스는 메신저 양식’(the messenger formula)야웨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hw*h*y= rm^a* hK))로 시작하여 여호와의 말씀”(hw*h*y-ma%n+)으로 끝을 맺었으며 그 중간에 내가 아모리 사람을 저희 앞에서 멸하였나니”(2:9)와 같은 내가라는 일인칭 화법을 사용했다(참조, 1:3-5; 2:6-16). 몬타누스는 때로 일인칭을 사용하지만 때로는 같은 문맥에서 삼인칭 화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몬타누스가 말한다:] 보라, 사람은 마치 수금과 같다. 그래서 나는 활처럼 사람을 연주한다. 사람은 잠들고 나는 깨어난다[1st]. 보라, 주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깨우시고, [그들을 황홀경(ecstasy)에 던져 넣으시고] 사람들에게 새 마음을 주시는 분이시다[3rd].

 

    몬타누스의 신적 1인칭 화법은 자기를 신격화시키기 위한 것이기 보다는 그의 예언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의도적인 어법이었을 수도 있으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성령께서 직접 몬타누스를 통해 말씀하신 것일 수도 있다. 몬타누스주의자들은 성령께서 떠나서 자기들 안에 들어오셨다고 주장한다라는 힢폴리투스(Hippolytus)의 말은 몬타누스의 예언이 성령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임을 반증한다. 몬타누스가 신적 1인칭 화법을 사용했다고 자신을 성령님으로 신격화 시켰다고 보지 말아야 한다. 그가 삼인칭 화법으로 예언했다는 것은 자기를 신격화하지 않았다는 좋은 증거인 것이다. 오히려 몬타누스는 신적 일인칭 화법 속에서 하나님을 삼위일체적으로 건실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었다.

    막시밀라는 예언에서 예언자의 말을 듣지 말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그녀의 예언은 몬타누스주의자들이 자신들을 신격화하지 않았다는 또 하나의 좋은 증거다.

 

[막시밀라가 말한다:] 내게 듣지 말고, 그리스도께 들으라.

 

    그러나 대적자들은 브리스킬라와 막시밀라 속에 성령이 아닌 귀신이 들어있다고 판단하고, 그들을 찾아가 귀신을 쫓으려 했다. 당시의 상황이 막시밀라의 예언의 말 속에 담겨있다.

 

[성령께서 막시밀라를 통해 말씀하신다:] 나는 늑대처럼 양[]로부터 쫓겨난다; 나는 늑대가 아니다. 나는 말씀이요, 영이요 능력이다.

 

     몬타누스주의의 신적 일인칭 예언은 인간의 자기 신격화가 아니었다. 그런 어법은 예언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었다. 또한 그런 어법은 성령 하나님의 직접적 임재를 드러낸 것이었다.

 

G. 새 예언과 여성

 

    새 예언은 여성들이 공동체 전면에서 활동한 운동이었다. 브리스킬라와 막시밀라의 예언은, 비록 대적자들에 의해 보존되어서 전해지지만, 최초로 기록된 기독교 여인들의 어록이었다. 젠센(Anne Jensen)은 몬타누스는 예언자가 아니었고, 사실은 브리스킬라와 막시밀라가 예언자들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남성 위주의 대적자들이 새 예언 운동에 이름을 붙일 때 여인들 대신 몬타누스를 대표자요 예언자로 내세우고 그의 이름으로 그 운동을 명명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녀는 브리스킬라와 막시밀라가 첫 번 자리’(in der erste Stelle)에 있었다 그러나 트레비는 몬타누스가 조직가’(organiser)였으며, 또한 예언자였다고 보았다. 그는 몬타니스가 브리스킬라와 막시밀라를 양육하여 여선지자들로 삼았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그는 몬타누스가 그랬던 것처럼 브리스킬라와 막시밀라에게도 보혜사가 들어왔다고 주장한다는 힢폴리투스의 기록을 인용하며 두 여 예언자들이 몬타누스와 함께 새 예언 운동에서 동등하게 중요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브리스킬라와 막시밀라의 이름은 몬타누스의 이름과 함께 등장하곤 했다(“through Montanus and Priscilla,” [Cyprian, Ep. lxxv.7; “Montanus and Priscilla,” [Basil, Ep. clxxxviii]).

    퀸틸리아주의자들은 더 나아가 여성들이 감독이나 다른 교회의 직무에 세워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어거스틴과 다마스커스의 요한은 후기 몬타니스주의자들인 페푸자주의자들 가운데 여성 목회자가 존재했다고 증언했다. 예언은 성직화 되고 직제화되었으며, 여예언자(prophtess)라는 명칭은 후기까지 존재했던 것이다. 새 예언 운동은 여인들을 목회자로 안수하기도 했다. 에피파니우스(Epiphanius)는 후기 몬타누스주의자들인 퀸틸라주의자들이 여인들을 목회자(clergy)로 안수해 세웠다고 전했다. 또한 암브로지애스터(Ambrosiaster)는 후기 프리기아주의자들이 여성 집사들을 세웠다고 보고했다.

    브리스킬라 혹은 퀸틸라는 그리스도께서 여인의 모습으로 환상 중에 오셔서 계시해주셨다고 전했다. 이 예언은 새 예언 운동의 여성성을 가장 잘 대변해 준다.

 

[퀸틸라 또는 브리스킬라가 말한다:] 그녀가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내게 빛나는 옷을 입은 한 여인의 모습으로 오셔서 내게 지혜를 주시고 . . . 내게 계시해주셨다.

 

    여인들의 그런 전면적인 활동은 당시 주류 교회 지도자들의 비판대상이었다. 디디무스는 여인들에게서 예언적인 책들이 나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현대인인 살몬(Salmon)조차 만일 몬타누스주의가 승리했었다면 기독교 교리는 가장 지혜롭다고 인정된 교회 선생들의 지휘 하에서보다는 일반적으로 거칠고 흥분하기 잘하는 여인들의 지휘 하에서 발전되어 왔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사실 사도 바울은 여인이 설교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었다라고 토를 달았다. 그러나 트레비는 몬타누스주의의 여성 성직의 기초는 성령께서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능력을 부여하셨다는 데에 있다고 갈파했다. 교회사가 샤프(P. Scaff)는 몬타누스주의자들은 보편교회(catholic church)가 주장했던 특별 사제직에 반대하여 심지어 여성들도 포함한 그리스도인들의 보편적 제사장직을 주장했다고 보았다. 그는 이런 면에서 그 운동은 이그나티우스 때부터 갈수록 모든 성직자들의 특권과 기능을 독점하던 성직자 귀족주의에 대한 민주적인 반발이라 부를 수 있다고 보았다. 그에게 몬타누스파는 교사 직분의 진정한 자격과 임명이 외형적 안수와 주교의 계승에 의해서 부여되는 게 아니라, 성령에 의해 직접 부여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기계적으로 경직된 교회 체제에 반대하여 초자연적 요소와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주장했다. 이런 면에서 당시 보편교회에게는 새 예언 운동이 혁신적이었다.

 

H. 새 예언과 성화

 

    새 예언 운동은 성화운동이었다. 힢폴리투스는 몬타누스주의자들이 하나님을 우주의 아버지요, 창조주로 인정하고 교회와 같이 그리스도에 관해 복음서가 증거하는 것을 받아들인다.”고 말한 후 역접속사 그러나로 시작하며 그들은 여인들의 가르침을 받아 금식과 향연, 그리고 마른 음식, 양배추 혹은 무 등을 받아들였다고 기록했다. 그런데 아폴로니우스는 금식에 관한 법을 몬타누스가 정했다고 기록했다. 샤프(P. Schaff)는 몬타누스주의가 이단이 아닌, 즉 원래 신앙에서 이탈해 나간 무리가 아니라 실천적 윤리성과 권징에 집착한 분파였다고 분류했다. 두 사람이 분석했듯이 몬타누스주의는 엄격한 금식 등 성화를 위한 규칙을 지키는 데 남달랐다. 몬타누스주의자였던 터툴리안은 여성의 의복, 순결, 정숙, 그리고 일부일처제와 금식에 관한 글을 남겼다.

    브리스카는 마음이 정결해지면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신비한 세계가 열린다고 예언했다. 즉 그녀는 새 예언의 전제조건으로 거룩, 마음의 정화, 곧 성화를 제시했던 것이다.

 

[거룩한 여선지자 브리스카가 선포한다:] 거룩한 사역자는 어떻게 거룩을 섬겨야할 지(how to minister holiness)를 파악해야만 한다. 그녀가 말한다. 왜냐하면 만약 그 마음이 정결해지면, 그들은 환상들을 볼 것이고, 그리고 만약 그들이 얼굴을 내리면, 그들은 구원하는 음성들을그것들이 모호했던 만큼 분명하게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죄와 불결에 대한 저항은 곧바로 세상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세상의 박해에 굽히지 말고 당당히 나설 것을 권고 받았다. 세상에게 박해를 받는 것은 패배가 아닌 승리요 치욕이 아닌 영광으로 인식되었다.

 

[성령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공개적으로 드러내져야만 한다: 그것이 너희에게 좋다; 왜냐하면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드러내지지 않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공개적으로 드러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너희를 난처하게 하지 못하게 하라! 의는 너희를 사람들 가운데로 데리고 간다. 무엇이 너희를 승리의 영광에 대해 난처하게 만드는가? 너희가 사람들에 의해 보여 질 때, 기회가 주어진다.

 

    더 나아가 몬타누스주의자들에게 죄와 불결의 세상에 대한 최후의 저항은 순교로 인식되었다. 순교는 고난당하시는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최선의 길이었다.

 

[성령께서 말씀하신다:] 자다가 죽거나, 아이를 낳다가 죽거나, 기력을 빼앗는 열병들로 인해 죽기를 바라지 말라. 그보다는 순교하라. 너희를 위해 고난을 받아오신 주님께서 영화롭게 되실 것이다.

 

    보편 교회의 권징은 갈수록 느슨해져 로마에서 제피리누스와 칼리스투스의 재위 기간에 면죄부 제도를 수립했었다. 그러나 몬타누스주의의 교회는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는 성령의 음성을 예언을 통해 전해 받았다. 이런 면에서 새 예언 운동은 혁신적이었다.

 

[새 예언자들 속에서 보혜사께서 말씀하신다:] 교회는 죄를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다시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I. 새 예언과 종말

 

    새 예언은 종말적이었다. 새 예언은 실현된 종말론과 더불어 미래적 종말론도 함께 내포하고 있었다. 아폴로니우스(Apollonius)는 몬타누스가 프리지아의 페푸자라는 지명을 예루살렘으로 바꾸었다고 전했다. 그런데 에피파니우스는 여예언자 퀸틸라 혹은 브리스킬라가 예루살렘의 하강을 예언했다고 전했다. 아마도 몬타누스가 여예언자들의 예언을 듣고 페푸자의 이름을 예루살렘으로 바꾸었을 것이다.

 

[퀸틸라 또는 브리스킬라가 말한다:] 그녀가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내게 빛나는 옷을 입은 한 여인의 모습으로 오셔서 내게 지혜를 주시고, 이곳을 거룩하여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여기에 내려올 것이라고 내게 계시해주셨다.

 

    에피파니우스이래로 학자들은 대부분 위의 예언을 근거로 몬타누스주의자들이 계시록 21장의 새 예루살렘이 이곳페푸자에 내려왔다고 믿었다고 판단하고, 몬타누스주의자들을 천년왕국주의자들’(chiliasts)로 분류해왔다. 그러나 폴웰(Powell)은 에피파니우스의 Pan. xlix.iw&de가 불분명하여, 그것이 문법적으로 이곳’(here)을 의미할 수도 있고, ‘그래서’(thus)를 의미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터툴리안은 새 예언자들이 예루살렘의 임박한 하강을 약속해왔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천년왕국을 물질적으로보다는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기를 선호했다. 몬타누스주의자라고 추정되는 3세기 가파도기야의 한 황홀경적 여예언자는 유대의 예루살렘이 자기의 진정한 집이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곳으로 가도록 종용했다. 터툴리안은 페푸자에 예루살렘의 하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듯하다. 이 사실은 비평가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왔다. 예루살렘은 새 예언자들에게 관심거리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페푸자로의 하강이 기대되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이라는 명칭이 채택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폴로니우스는 몬타누스가 사람들을 사방에서 끌어 모으려고페푸자를 예루살렘으로 바꾸어 불렀다고 분석했으며, 천년왕국주의자들을 의심스러워했던 유세비우스도 그것에 대해 다른 비평을 달지 않았다. 트레비는 계시록 3장의 예루살렘이 장소(place)라기보다는 백성들’(people)을 의미하는 것처럼 페푸자를 예루살렘으로 삼았다는 것은 페푸자의 예언적 백성들을 의미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폴웰은 몬타누스주의의 종말론은 묵시적 미래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현존하는 영적 경험 안에서 폭넓게 실현된 종말론(realized eschatology in a present spiritual experience)’이었다고 판단했다.

 

    막시밀라는 자기가 죽은 이후에는 종말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막시밀라가 말한다:] 그녀가 말한다. 나 이후에는 예언자들이 더 이상 없을 것이며, [오직] 종말이 있을 것이다.

 

    새 예언 운동에 합류했던 터툴리안은 시대를 3개 나누고 마지막 시기를 보혜사 성령의 시대로 보았다.

 

자연종교 상태에서는 그 계시의 형태가 매우 초보적인 원칙으로서 나타났고, 율법서와 예언서들 가운데서는 유아의 모습으로, 복음서에서는 유년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뿐이며, 그것이 성년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것은 단지 보혜사 성령의 역사 가운데서이다.

 

    그런데 그런 미래적 임박한 파루시아’(futuristic imminent Parousia)의 기대는 2세기에 생소한 것은 아니었다. Epistula Apostolorum언제입니까 주님?”하고 묻고 파루시아는 2세기 중엽에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는 지금은 종말이다라고 선포했다. 그러나 당시 보편 교회 안에서는 대체적으로 임박한 종말에 대한 긴장감이 점차 이완되어 가고 있었다. 주님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신앙이 감소한 것은 보편 교회에 현세적인 성격이 더욱 강해지면서 발생한 현상이었다. 150년경 보편 교회는 재림의 지연으로 임박한 종말론을 멀리하고 종말론적 공동체의 모습을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임박한 종말론을 내세웠던 새 예언 운동은 혁신적이었다.

 

 

III. 결론

 

    몬타누스주의는 혁신성을 띈 성령중심의 부흥운동이었다. 몬타누스는 새 예언 운동을 시작했다. 새 예언은 예언의 은사의 재흥이었다. 새 예언은 정신을 잃는 것과 관계가 없었다. 새 예언은 성경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었다. 새 예언의 권위는 성령 하나님이셨다. 새 예언은 종말적이었다. 새 예언은 여성들이 공동체 전면에서 활동한 운동이었다는 것과 새 예언 운동은 성화운동의 어떤 면에서 혁신적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