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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F. 파함의 글들/찰스 F. 파함의 글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찰스 F. 파함의 글: 일치 (Unity)

한오신 2023. 2. 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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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치

(UNITY)

 

찰스 파함의 가족

 

이창승 역

 

 

    약 이 년 전에 우리 생애에서 한 가지 아주 기묘한 일이 일어났었습니다.

    어떤 아주 경건한 남자가 우리 사무실에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전에 그를 보거나 알지 못했습니다. 그날 오후와 하나님의 깊은 일들에 대해 대화를 나눈 그 날 밤의 멋진 부분을 보낸 후에, 그는 마침내 하나님께서 자신으로 하여금 자기의 아내를 돌보기 위한 농사일과 관련된 자기의 팀을 떠나도록 하셨으며, 자기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30마일을 걸어 우리 집에 도착했으며, 주님께서 우리를 일치의 사도’(an apostle of unity)로 기름 붓는 위임령과 함께 자신을 보냈다고 선포했습니다.

    약 일 년 전에 두 번째 일이 있었습니다. 동부에 있는 한 주에서 어떤 강단에 들어서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뚜렷하게 주셨습니다. “그 몸을 열 두 지파에게 나누어 주어라(Divide the Body unto the 12 tribes).”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시와 환상과 꿈을 주시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믿으며 알고 있지만, 마귀도 종종 빛의 천사를 가장하여, 음성으로, 계시로 환상으로 온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매력적이고 아름다워 보일지라도 사람이나 자기 자신을 높이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받아들이지 않고, 그분을 높이며 영화롭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완전히 부합하는 것만을 믿고 받아들이자는 엄격한 규칙을 정했습니다. 그 위임령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고 1900년대에 성취되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귀에 간청했던 예수님의 기도와 온전히 부합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우리는 그 몸을 열 두 지파들을 위해 나누었던 것에서 교훈을 발견하려고 애썼습니다(18-21장을 읽어 보십시오). 당시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는 시온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교훈에서 그 레위인은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그의 첩은 그녀의 아버지의 집(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살기 위해 떠난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녀는 그 레위인을 떠나 구경꾼들이 그녀가 결혼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거의 말하지 못할 정도가 될 때까지 자기 아버지와 살기 위해 되돌아갔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다정하게 말하기 위해 내려갔을 때, 그녀의 아버지(세상)은 그를 아첨과 설득과 잔치들로서 붙잡아 두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머무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집은 가나안의 산꼭대기들 가운데 있었지, 그런 사악한 낮은 평지위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교회를 취하신 주님께서는 그녀와 함께 영적 달성이라는 보다 높은 평지로 나아가십니다. 그것처럼 지난 수 년 동안 강력한 영적 능력의 파도’(a mighty wave of spiritual power)가 일어 교회를 경험적 구원’(experimental salvation), 성결(holiness) 그리고 신유(healing) 안으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그러나 밤이 찾아왔고, 성결의 사람들은 보다 깊은 진리들 안에서 걷는데 실패했으며, 그 보혈은 청결케 하기를 그쳤고, 그들은 편협한 분파주의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미쳐 날뛰는 광신주의 안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들은 바빌론이 갖는 온갖 조직적 특징들을 천명하면서 더 이상 이런 저런 단체에서 예배할 수 없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들은 바빌론 교외의 구석진 곳에 있는 한 창고에 자리 잡은 어떤 작은 포교단(mission)에 모였습니다. 수년 안에, 그들이 자신의 친구들이 더 이상 그것을 인정하지 않자, 바빌론의 의복을 숨겨놓았던 곳에서 그것을 꺼내 입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교회들이라고 선포한 자신들의 작은 포교단들 안에서 편협한 분파주의자들이 되어 하나님께서 그 구성원들을 그분을 기쁘게 하시는 그 몸 안에 두신다라고 떠들썩하게 선포하면서, 반면에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사도들과, 목사들과, 교사 등을 임명하신다는 것(고전 12:28)을 잊어버렸습니다. 성결 운동들은 급기야 인간 교사들이나 지도자들을 거부하거나, 개인주의, ‘이탈주의’(come-outism)(종교적 무정부주의) 안으로 미친 듯이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맹목적으로 어떤 염소”(goat)의 지도를 따라갔습니다. 그들은 그 염소를 하나님과 같은 권위와 무오성을 부여하면서 사람을 하나님의 자리에까지 올려놓았습니다. 그들은 소위 그 염소의 계시들 안에서 사람을 높임과 난폭한 광신주의라는 비 성경적 가르침들의 정글에 이르기까지 따라가며 그에게 절대적인 순종을 바쳤습니다.

    성경적 일치(bible unity)는 집중 캠프들(concentration camps)에 모여드는 것으로 성취될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일치가 성경해석에 있어서 중심적인 것’(the majority)이 포기되고 부수적인 것’(the minority)에 의해 세우지는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는 모든 개인적인 견해들이 짓밟히고, 각 자는 무오하다고 받아들여진 표준적 견해에 굴복합니다(어떤 새로운 빛이 받아들여지면 그들은 그 이전의 것을 버리고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무오하다고 받아들였던 그 이전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또 무오하다고 받아들입니다. 그들은 외견상의 일치를 드러내면서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듭니다. 모든 것을 신앙과 행위의 어떤 일치에 기꺼이 양도함으로써, 자신들의 캠프의 존경하는 직책들인 사도들, 목사들, 선생들에게 명예를 줌으로써 그들은 진정한 교회라고 속기 쉬운 모조품을 내놓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생들과 지도자들이 무오하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적그리스도로 매도합니다.

    신앙의 일치가 놀라웠던 사도적 교회(the Apostolic Church)는 참으로 더욱더 아름다웠습니다. 그 구성원들이 당시에 알려진 전 세계로 흩어져 갔지만, 그들은 그 어디에서 왔건 하나님께서 보내신 모든 사도들과, 목사들과 사역자들을 존경했습니다. 우리와 동시대의 어떤 지도자들에게도 주입된 편협성에 동화된 어떤 사도들이 주님께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막지 말아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9:49).

    그처럼 이런 혼돈의 시대에 우리는 온전한 사랑과 일치의 정신을 드러내야 합니다. 어떤 이름이나 교단에 속하건, 존경할 만한 직분에 적절하게 모든 진정한 사도, 목사, 교사 그리고 사역자들을 존경함으로써,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열렬하게 깨달으면서 순전한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빛이나 경험을 제거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더하거나 그것을 밝혀주는, 어떤 근원에서 오건 빛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그런 행복한 길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어떤 분파주의에도 얽매이지 않도록 지키면서 모든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자유롭게 사랑하고, 우리가 도달해온 높이와 깊이를 아직 파악하지 못한 더 약한 사람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지 말고, 주님 안에서 우리를 다스리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그 날 밤이 찾아오자 그 레위인은 기브아에서 묶을 곳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자기 집에 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친절한 레위지파 노인이 그를 자기 집에 들이고 그에게 묶을 곳을 제공했습니다. 그 불량배들은 그의 손님과 관계하겠다고 다그쳤습니다. 그 노인은 그들을 달래기 위해 자신의 딸과 손님의 첩을 내어주었습니다. 그들의 그런 행동은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아침에 그 레위인이 밖에 나갔을 때, 그는 계단 위에 죽어있는 자신의 첩을 발견했습니다. 그녀의 시신을 집으로 가져간 그는 그녀의 몸을 열 두 토막 내어 열 두 지파에게 보냈습니다. 그 토막들은 열 두 지파를 이스라엘에서 그런 죄를 제거하는 일에 한 사람처럼 뭉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현대적 해석입니다. 그 기브아 사람들은 아첨과 속임수로서 이스라엘의 몸을 더럽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날 때 마다 그런 사람들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그처럼 오늘날에도 기브아적 아첨꾼들은 자신들만이 유일하며,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자기들 생각대로 하다가 결국 타락할 것이라고 믿도록 함으로써 많은 순복음 운동들(full gospel movements)을 장악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 자신이 그분의 정금 같은 교회”(Church all of gold)를 예정된 그분의 아드님의 모습에 이르도록,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람의 충만한 성장에 이르도록 앞으로 더 이끌고 나가시기 위해 정리하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밤이 오고 기브아적 악한들은 자신들의 이기주의에 의해 그리고 자신들의 세속적 출세를 위해 주님의 자녀들을 그렇게 분열시켜 왔으며, 그분의 몸 된 교회의 일치를 욕보여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께서 나오셔서 자신의 교회가 성공적인 여행을 위해 건강하게 준비된 것을 보고 싶어 하지시만, 그 대신 자신의 소중한 배우자가 머리를 들어 다가오는 구속’(Redemption)을 바라볼 수 없도록 반응 없이 무력하게 현관 계단위에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위임령을 주셨습니다. “그 몸을 열 두 지파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래서 이스라엘이 한 사람처럼 모이게 하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에 의해 지지를 받으며, 흠이나 티 없는 영광스러운 구속받은 교회가 성령에 의해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을 때 동일한 생각과 판단을 갖고, 동일한 것을 말하며, 참된 엘리야의 인도를 받아 그 영원한 복음을 들고 동족과 모든 나라에 전하러 나가는 것을 보기를 바랍니다. 이 일치와 복음화에도 가짜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눈을 들어 하나님께서 진짜를 드러내시는 것을 보려 합니다.

주    님께서는 우리가 여러 교회들, 협회들, 모임들로 찢겨져 피 흘리고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지탱하려면, 그들에게 여러분의 편협한 분파적 이기주의와 광신주의는 내 주님의 몸을 파괴해 왔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면서, 장대한 기브아 사람들을 그들이 찬탈한 권좌에서 몰아내어 제거하는데 필요한 굴욕과 수치를 가져올 무서운 싸움에도 불구하고, 어떤 도시들이나 장소들이나 단체들을 선호하는 분파적 사랑을, 우리가 하나님은 어떤 장소나 사람들을 차별하시는 분이 아니시며 그래서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어디서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리로 예배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 때까지,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의 용광로에서 녹여야만 한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편견 없이 그리고 비난하지 않으시며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고 계십니다.

    갈라지고 찢겨진 이 몸을 보는 모든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기도들에 응답하실 것이라는 영원하신 그분의 뜻에 굴복할 것입니다.

    일치(unity)는 조직체(organization)에 의해서나 또는 비 조직체(non-organization)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조직체에 의한 일치는 1900년 동안이나 시도되어 왔으나 실패했습니다. 비 조직체에 의한 일치는 몇 년 동안 시도되어 왔으나 무질서(anarchy)로 귀결되거나 종종 오류나 광신주의로 가득 찬 비 기록적인 신조나 규칙들을 가진 조그만 파당들”(cliques)에 한정되게 되었습니다.

일치를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연구하다가 우리는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2:11)라는 말씀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틀림없으며, 지켜진다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여러분이 성화 안에서 지속적으로 빛 속을 걸으며, 가나안의 봉우리들을 걸으며, 원수들을 몰아내며, 더욱 많은 땅을 취하여 소유한다면, 여러분은 성령침례(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를 발견할 것이며, 영과 혼과 몸의 전적인 성화’(entire sanctification)에 이르러 하나님 안에 굳게 자리 잡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화를 주시는 은혜의 시작은 여러분에게 성결(holiness)과 완전(perfection)을 가져다주는데 그것은 여러분에게 완전함 안의 성숙에로 계속 들어가도록 명령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야(perfecting holiness) 합니다(고후 7:1).

    우리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거짓된 교리들, 신조들, 오류들이 우리의 삶에 몰래 기어들어왔습니다. 최고의 신조란 인간들의 견해들의 톱밥에 불과하며, 겉모습으로 그들을 현혹시키려고, 사람들로 하여금 조직된 교회만능주의나 개인적 단체를 먹여 살리게 하려고 진리의 가죽과 깃털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월급쟁이 설교자들이나 어떤 교활한 협잡꾼을 우두머리로 삼고 있는 그 어떤 종교적 단체의 건물을 부양하기 위해 무거운 짐을 지도록 성경이 가르치거나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군은 자기 보수를 받을만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든 진정한 사역자는 약정된 급료 없이도 자기에게 합당한 것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오늘날의 직업적인 사역자를 제거하는 것일 것입니다. 여섯 달의 설교를 위해 일 달러를 받는 한 인디언에게 어떤 사람이 참으로 형편없는 보수라고 말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설교는 더 빈약합니다.”

    우리는 순복음에게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헌신된 사역자에게 자신의 수입의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기독교인들마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십일조는 가난한 인척들이나 다른 자선의 목적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안식일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봉사하는 다른 직업이 없는 제사장을 위한 것입니다. 만약 목회가 우리의 전 생애의 사역이라면, 우리는 매 순간을 우리의 소명 안에서 충성스럽게 사용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속적 직업에 종사하는 우리의 형제들만큼 주님의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우리는 그 교리들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갈라지게 하는 동력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정한 성경적 교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갈라지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성령께서는 두 사람을 다르게 가르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대 파괴를 일으키는 것은 틀림없이 바로 사람들이 정한 규칙들과 거짓된 가르침입니다.

    조직적 형태이든 아니면 비조직적 형태이든 일치를 표방하면서 나타나는 모든 새로운 선생들은 자신들이 정금 같은 진정한 교회라고 일컫는 것 안으로 받아들여질 자격을 얻기 전에 자신들의 신조나 침례의식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양들은 목자 잃은 양과 같이 산 위에서 무서워 울며, 갈 곳을 몰라 교리의 바람에 밀려다니고 있습니다. 양 무리 사이를 돌진하고 있는 어떤 거짓 영에 의해 고무된 어떤 마른번개와 같은 염소가 벼랑에서 광신주의 안으로 뛰어들어 많은 양들을 흩어서 따르게 만드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기 양을 아시는 정 많은 목자는 오류의 산들에서 길을 잃은 모든 진정한 영혼들을 찾으실 때까지 아흔 아홉 마리 양을 떠나실 것 때문에 매우 안심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가정의 모든 환경에서도 거리낌 없이 사용될 수 있는 치료약을 충실히 제공하고 계셨으며, 그리고 나아가 모든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전적인 일치 안으로 이끄신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참으로 귀한 것이었습니다. 무오를 주장하는 지도자들의 신조나 교리들에 대한 신뢰나 추종에의 서명을 요구하지 않는 치료약입니다. 그 치료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모든 일치의 근원입니다(This remedy is the blood of Jesus Christ, source of all unity).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 1:18-19). 우리를 거짓 교리, 생활양식들, 조상들의 유전들로부터 씻어주는 그 피의 능력에 우리의 믿음을 둘 때 우리는 진정으로 일치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고수하고 지극히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 것은, 하나로 묶고 있는 어떤 성경 말씀들과 결부되어있는 논증들과 추론들에 의해 우리가 그것을 믿도록 설득당해 온 그럴듯한 진리는, 사실은 아주 잘못된 것일 수 있습니다. 성경적 일치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가 우리의 삶을 헌신했을 때 그분의 성결케 하시는 능력을 구했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모든 신조들, 교리들, 가르침들을 예수님의 발 앞에 내려놓고, 그분께 그것들을 완전히 정화시켜주시도록 간구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겼던 것들 중 많은 것들이 여러분의 삶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곳이 어느 곳에 있든 여러분은 여러분의 집에 있고 저는 우리 집에 있을 때, 모든 오류와 거짓 가르침을 정화시키는 그 순결한 피를 찾아 아십시오. 그러면 그 피는 우리를 일치 안으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서로를 알았든 그렇지 않았든지 상관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았다면, 그 피의 정결케 함 그리고 우리의 교사이신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참으로 눈과 눈으로 알게(하나가 되게) 만드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그렇게 많은 종교적 운동들이 잦아들고, 반면에 산에 올려져 세상을 본 후 마귀에게 지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권세를 약속받아 온 지도자들을 둔 사람들이 번성하는 이유는 그들이 성령께서는 그들을 가르치거나 올바른 길로 이끌어 갈 수 없으시다는 오류에 의해 무서워 떨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이렇게 어떤 사람을 정결케 한다면, 그는 무오한 선생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결케 하는 그 피에 대한 무오한 믿음(infallible faith)을 갖게 된다면, 우리는 무오한 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34장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지 않고 있는 현대의 설교자들과 이 최근의 운동들의 염소들을 꾸짖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을 처리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성취되고 있습니다. 그 장과 관련된 모든 난외주들을 읽어보십시오.

    그 장은 여러분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참으로 교회를 그 최후 승리를 위해 세우실 때 영광스러운 구속에로 오를 돌계단을 보여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