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승
|순복음총회신학교 조직신학 조교수|
2015. 6. 7
I. 들어가는 말
시무어(William J. Seymour)는 파함이 일으킨 오순절운동을 국제적으로 보급시킨 인물로 평가받아왔다. 또한 그는 일각의 사람들에 의해 오순절운동의 아버지라고까지 지칭되기도 할 정도로 오순절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므로 시무어의 방언론에 대한 연구는 오순절 방언론에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시무어의 방언론에 대한 연구는 그 수가 매우 적었으며, 포괄적이지 못했다.
세실 로벡(Cecil M. Robeck, Jr.)은 시무어의 방언관을 최초 증거론(Initial Evidence)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로벡은 시무어가 초기에는 파함을 따라 방언을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로 보았으나, 파함을 포함한 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성숙해가면서 방언이 성령침례의 그 성경적 증거(the Bible evidence)라는 생각을 버리고, 방언을 하나의 표적(a sign)으로만 인정했으며, 성령침례의 진정한 증거들을 추구했고, 그 증거들은 윤리적인 것이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로벡은 시무어를 현대 은사주의의 선구자로, 오순절주의의 범위를 확장시킨 기초자라고도 평가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문제에 대한 로벡의 견해를 결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왔다. 프랑크 마키아(Frank Macchia)는 시무어가 방언의 증거적 가치의 수위성에 대한 그의 견해를 변경시켰다는 로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케네스 아처(Kenneth J. Archer)도 역시 시무어가 성경적 증거론을 버렸다며 로벡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에 반해 레나 브라스웨이트(Renea Brathwaite)는 로벡과는 달리 시무어가 최초 증거론을 완전히 거부했던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시무어가 초기에 파함의 증거론을 받아들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브라스웨이트와 로벡의 의견이 일치했다. 차이점은 시무어가 그의 생각을 바꾸어 그 증거론을 완전히 거부했느냐 하는 것이다. 로벡은 시무어가 파함의 아주사 집회 방문 후 일 년도 지나지 않은 1907년 중반에 “성경적 증거”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증거론에 대한 견해를 바꾸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브라스웨이트는 로벡의 그런 주장은 시무어의 사인이 없는 글에 근거를 둔 것이기 때문에 인정될 수 없다고 평가했다. 브라스웨이트에 따르면,『사도신앙』에서 다른 사람들도 어떤 사람이 성령침례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열매를 통해서이다. 그렇지만 시무어는 성령침례의 “그 성경적 증거로서 방언”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 하지는 않았다. 브라스웨이트는 사도신앙에는 표적과 상징 사이에 명확한 구별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내적 증거인 사랑과 외적 증거인 방언 사이에 아무런 마찰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브라스웨이트는 시무어가『교리와 계율』에서 방언을 “그 증거”가 아닌 여러 표적들 중의 하나라고 규정한 것을 주목했다. 그리고 브라스웨이트는 시무어는 방언에 관한 그의 생각을 수정한 것이 아니고, 성결주의적인 영향 아래서 처음부터 방언과 윤리와의 관계성을 지속해 갔다고 주장했다. 로벡의 주장보다는 브라스웨이트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로벡의 연구나 브라스웨이트의 시무어 방언 연구도 포괄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방언의 증거적 성격과 표적적 성격만큼이나 중요한 시무어와 그의 공동체가 언어적 방언과 비언어적 방언을 구분한 것에 대해서는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또한 로벡은 시무어가 방서에 대한 견해를 수정하게 된 것을 언급했으나, 브라스웨이트는 시무어와 그의 공동체의 방서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도 무관심했다. 본 소고는 시무어의 방언론을 보다 포괄적으로 접근함으로써 기존의 시무어의 방언론을 연구한 학자들의 제한적인 그러나 빛나는 연구들을 보강하여 더욱 빛나게 하려 한다.
브라스웨이트는『사도신앙』의 글들 가운데 시무어의 사인이 없는 글들을 시무어의 연구에서 배제했다. 그러나 본 소고는 시무어의 사인이 없다 해도, 모든 글들이 책임 편집자였던 시무어의 감수를 거쳐 실리게 되었다는 점에서 시무어의 관점을 반영하고 있으므로 시무어의 사인이 있는 글들뿐만 아니라 사인이 없는 글들도 “시무어의 공동체”라는 용어 아래 묶어 연구 본문으로 삼는다.
II. 성령침례와 방언
A. 성령침례에 언제나 뒤따르는 방언
시무어와 그가 이끄는 공동체에게는 성령침례에 예외 없이 방언이 동반되었다. 한 간증자는 성령침례에 “언제나”(always) 방언이라는 증거가 뒤따른다고 말했다. 그는 “그리고 나는 나의 모든 친구들에게 성령 침례를 구하면, 마침내 방언이라는 증거를 받을 것이라고, 왜냐하면 방언이 언제나(always) 뒤따르기 때문이라고, 예외가 없다고 권고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B. 성령침례의 표적과 증거로서 방언
시무어와 그 공동체는 초기에는 성령침례에 동반되는 방언에 “표적”과 “증거”라는 용어를 대등하게 붙였었다. 시무어의 공동체는 방언의 은사를 성령침례의 “표적과 증거”(sign and evidence)가 되기 위해 오순절날을 위해 예비 된 것으로 이해했다. 물론 방언을 성령침례의 표적으로 보고 “증거”와 나란히 놓은 것은 시무어의 공동체가 처음은 아니었다. 파함은 “the only Bible sign given as the evidence of the Baptism of the Holy Ghost”라는 한 문장 안에 표적과 증거를 나란히 놓았었다.
또한 시무어의 공동체에게 방언은 믿음과 침례를 소유하고 받았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주어지는 “표적 또는 증거”(the sign or evidence)로 이해했다. 그 공동체는 마가복음 16장 16절과 17절을 근거로 “여기에서 믿음과 침례가 그리고 당신이 믿음과 침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표적 또는 증거가 언급된다”고 말했다.
C.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로서 방언
시무어는 파함의 영향력을 인정했던 초기에 성령의 임재인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아주사 부흥이 파함의 지도력에 의해 시작되었음을 인정했던『사도신앙』1호는 “지금 하나님의 능력이 이 도시를 뒤 흔들어 왔다. 진정으로 오순절이 따르는 성경적 증거들(the Bible evidences)과 함께 도래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회심했고 성화되었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오순절 날에 그랬던 것처럼 방언을 말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또한 “로스앤젤레스에서 160명 정도의 성령의 은사와 그 성경적 증거(the Bible evidence), 방언 은사(the gift of tongues)를 받았다”고 기록했다. 아주사 부흥이 사람의 지도력이 아닌 주님의 지도력에 의해 발생했다고 수정했던『사도신앙』4호에서 조차 시무어는 방언을 “온전한 성경적 증거”(the full Bible evidence)라고 칭했다. 9호에서도 W. J. S. 라는 자신의 이름의 약자로 명확하게 자기가 필자인 것을 밝힌 시무어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는 성령님을 신자들의 마음에 보내셔서 그분의 복된 성령으로 채우시고, 사도행전 2장 1절에서 4절 말씀대로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들을 말하는 성경적 증거(the Bible evidence)를 주신다. 그리고 1908년 13호에서도 방언을 여전히 “온전한 성경적 증거”(the full Bible evidence)라고 칭했다.
D. 성령침례의 외적 증거로서 방언
시무어의 공동체에게 방언은 초기부터 성령침례의 “외적 증거”(outward evidence)였다. 시무어의 공동체는『사도신앙』1호에서 성령침례의 증거를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즉 이중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 공동체에게 성령침례의 내적인 증거는 “하나님의 사랑”(Divine love), 즉 “자애”(charity)이며, 이것이야말로 성령침례의 “진정한 성경적 증거”(the real Bible evidence)였다. 내적인 진정한 증거가 외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방언이었다.
성령침례를 받은 진정한 증거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랑, 즉 자애다. 자애는 예수의 영이다. 진정 성령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갈5:22). 이것이야말로 일상생활이나 대화에서 나타나는 진정한 성경적 증거다. 그리고 그 진정한 증거의 외적 나타남들이 있다. 그것들은 방언과 귀신축사, 병든 자에게 안수하면 나음이라는 믿는 자들에게 뒤따르는 표적들이다. 이런 외적 표적들이 나타나면서 영혼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속에서 점점 더 커지는 것이다.
시무어의 공동체에게 사랑은 성령침례의 내적인 증거일 뿐만 아니라 외적 증거인 방언을 조절해야 하는 것이었다. 쉐퍼드(Arthur B. Shepherd)는 “하나님께서는 내게 고린도전서 12장과 14장이 방언을 제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방언 나타남을 사랑의 법(the law of love)으로 조절(regulating)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고 간증했다.
그런데 시무어가 성령침례의 내적 증거를 사랑으로 외적 증거를 방언으로 구분한 것은 파함과 웨슬리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었다. 방언을 내적인 성령침례의 외적 증거로 본 사람은 시무어가 최초는 아니었다. 방언의 외적 증거성을 최초로 언급한 사람은 바로 파함이었다. 파함은 성령침례의 국면을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으로 구분하고, 방언을 “이 침례의 결과로 나타난 증거”(the manifest evidence resulting from this Baptism)라고 말했었다. 시무어는 파함에게서 방언은 내적인 성령침례의 외적 증거라고 배우고, 웨슬리의 전통을 따라 성령침례의 내적 증거를 사랑이라고 덧붙였을 것이다. 웨슬리는 성령세례를 통해 성령을 받는 완전한 성화를 완전한 사랑으로 충만해짐(the being perfected in love, filled with love) 하나님을 사랑함, 하나님의 형상의 온전한 회복(a recovery of the whole image of God, the loving of God)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렇다면, 브라스웨이트가 시무어는 방언의 외적인 면에 관한 그의 생각을 수정한 것이 아니고, 성결주의적인 영향 아래서 처음부터 방언과 윤리와의 관계성을 지속해 갔다고 주장한 것은 타당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파함 | 시무어 | ||
나타난 증거: 방언 그 성경적 유일한 증거 성령침례 받음 확증 |
표적 신자 됨 확증 |
외적 나타남: 방언 외적 증거 |
따르는 표적 외적 표적 |
성령침례의 내적/영적 유익 |
신자의 | 성령침례의 진정한 (내적) 성경적 증거 하나님의 사랑, 자애 |
신자들에게 |
E. 성령침례의 여러 표적들 또는 증거들 가운데 하나로서 방언
시무어는 1907년에는 방언을 성령침례의 “그 성경적 증거”(the Bible evidence)라고 말했지만, 1915년에 펴낸 아주사 선교회의『교리와 계율』(The Doctrines and Discipline)에서는 성령침례의 여러 표적들 또는 증거들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시무어는 아주사 선교회의 교리와 헌법에 대한 글에서 “넷째로, 개정된 바와 같이 방언을 말함은 침례 받은 신자들에게 따르는 표적들 그리고 다른 성경적 증거들(other evidences of the Bible) 중의 하나다. 그 표적들과 증거들은 귀신을 쫓아내기, 병자 고치기 그리고 표적들에게 동반되는 성령의 열매들이다(고전 13; 막 16:16; 행 2:2-3, 10:44-45, 19:6)”라고 적었다. 시무어는 방언을 성령 침례의 유일한 성경적 증거로 삼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한 말씀을 방치하고 우리 자신만의 가르침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방언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자녀들에게 따르는 표적들 가운데 하나라는 진리를 그들은 알아야하고 행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극악한 이리들이 양떼 가운데 들어와 양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다. 그 이리들이 어떻게 그 안에 들어올 수 있는가? 그 이리들은 “그 [유일] 표적 은사 방언론”(the sign gift of speaking in tongues)을 통해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방언이 그 유일한 증거라는 것 그 이상 다른 것을 알지 못할 때, 그것들은 양떼 가운데 들어가 양떼를 흩어버리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시무어가 방언이 성령침례의 “그 증거”가 아닌 표적들 중 하나라고 주장한 것은 파함의 유일 증거론에 반대한 것이었다. 파함에게 방언은 성령침례의 증거이되 “그 유일한 성경적 증거”(the only Bible sign)였다. 시무어는 파함의 유일 증거론을 거부한 이유를 파함이 악인 멸절설을 주장하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시무어는 파함이 주장한 악인 멸절설(the doctrine of the annihilation of the wicked)을 거부했다. 시무어에게 파함이 주장한 악인 멸절설은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파함이 주장했던 방언이 성령과 불 침례의 유일한 증거라는 것도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시무어에게 방언은 성령 침례의 유일한 증거가 아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들은 그것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진리를, 내적이고 진정한 증거를 결여할 수도 있다. 마가복음이 기록한 대로 방언은 그 표적들 중의 하나이지 그 유일한 증거는 아니라는 것이다(It’s one of the signs, not the evidence)(막 16:16-18).
그런데 시무어의 이런 주장은 파함을 오해한 것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비록 파함이 유일증거론을 주장했지만, 그가 성령침례의 내적인 면과 방언 이외에 다른 은사들도 동반된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C 항에서 살펴본 것처럼, 파함도 또한 시무어처럼 성령침례는 내적으로 주어지며, 그것이 외적으로 나타나는 증거가 방언이라고 보았다. 파함은 성령께서 모든 아홉 가지 은사들을 교회에 베푸시고 계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오순절의 순복음(full gospel)은 방언뿐만 아니라 지혜, 지식, 믿음, 병 고치는 은사, 이적 행함, 방언, 영분별, 예언, 그리고 방언통역 같은 성령의 은사들이 “동반되는”(attended with) 복음이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파함에게 방언이 성령침례의 유일 증거라는 것은 방언이 성령침례를 받을 때 최초로 나타나는 은사라는 것을 의미하며, 그와 동시에 또는 후속하여 다른 은사들도 동반된다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또한 시무어가 방언은 성령침례에 동반되는 표적들 중의 하나라고 주장한 것은 방언이 성령침례에 최초로 외적으로 동반되는 은사라는 것을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시무어가 방언을 성령침례의 증거에서 완전히 제외시켰다거나, 방언은 나타나지 않고 방언이외에 다른 은사들이 나타나더라도 성령침례를 받은 것이라고 인정했다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III. 다양한 측면의 방언
A.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동적 역사로서 방언
시무어는 방언을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동적 역사로 이해하기도 했다. 그에게 방언은 성령의 한없는 자유스러운 역사다. 시무어는 다음과 같이 방언을 말하게 하시는 성령의 능동적이고 직접적인 역사를 말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방언으로 말하는 것에 너무 관심을 쏟지 말고, 성령께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방언은 우리가 숨 쉬는 공기처럼 자유롭게 올 것입니다.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라,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It is nothing worked up, but it comes from the heart).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그래서 생명의 성령께서 들어오실 때, 마음속에서의 성령의 능력을 통해 입이 열립니다.
B. 언어적 방언과 비언어적 방언
오순절운동의 창시자 파함은 초기에는 방언을 언어적으로만 이해했고, 시무어도 역시 방언을 기본적으로 선교를 위한 이 세상 언어라고 생각했었다. 시무어는 방언을 “언어의 은사”(the gift of the language)라 지칭하기도 했다. 그는 아주사의 오순절을 보고하며, “많은 사람들이 방언을 말하고 있으며, 몇 사람은 언어의 은사와 함께 선교지로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시무어에게 “언어의 은사”는 “너희는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대위임령과 함께 주어진다. 언어의 은사로서 주어지는 배우지 않은 언어들은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불어, 독일어, 이태리어, 중국어, 일본어, 아프리카어들, 힌두어와 벵갈어, 인디안어들을 망라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언어 은사 목록에는 “청각 언어 장애자들을 위한 언어”(the deaf mute language)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시무어 공동체에게 성령께서는 언어 은사를 통해 세계의 모든 언어들을 말씀하신다. 로스앤젤레스 거주자로서 아주사 집회에서 성령침례를 받았고 배우지 않은 방언(unknown tongues)을 말하던 버그(G. E. Berg)는 아주사 부흥에 주어진 언어들에 관해서 견해를 표명했었다. 그는 그것들이 진정한 언어들이라고 증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가 각기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말해진 영어, 인도어로 말해진 적어도 다섯 가지 메시지들을 통역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언어들은 그가 인도에서 살았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언어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주사 거리에서 일어난 방언의 양상은 파함과 시무어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아주사 거리에서의 방언현상에는 파함과 시무어의 이해와는 달리 이 세상 언어 방언들뿐만 아니라, 언어적 방언이 아닌, 비언어적 방언을 말하는 현상도 나타났던 것이다. 아주사 집회에서는 파함이 판단하기에 “재잘거림이나 캑캑거림”(chattering or jabbering) 현상이 발생했다. 방언을 언어적으로만 이해했던 파함은 시무어의 공동체에서 발화되고 있는 방언을 겨냥해 “방언이라고 말하는 삼분의 이는 오순절적인 것이 아닙니다. 모조품들은 진정한 언어들을 말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러한 발화는 성령이 아닌 “턱이 일하는 것 또는 목구멍의 메시지”(the working of the chin, or the massage of the throat), 마귀가 주는 현상이라고 평가절하 했다. 파함은 그러한 현상들을 바로잡으려했으나 아주사 거리의 오순절적 신앙인들은 파함이 그들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함으로써 파함의 가르침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반면에, 파함은 그런 소리나 캑캑거림의 반복은 그 다음에는 반드시 신속하게 분명하고 진정한 언어(real language)로 바뀌어 그 언어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즉, 파함은 시무어의 집회에서 발생했던 비언어적 방언이 성령침례를 받는 초기에 발생할 수 있는 것임을 어느 정도 인정한 것이었다. 로벡은 시무어의 방언론을 연구했으나 시무어가 성령침례의 증거를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으로 분류하고 내적 증거를 성결주의의 전통을 따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는 윤리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외적 표적들 중의 하나를 방언으로 규정하게 된 것과 방언을 성령침례의 증거에서 표적들 중 하나로 인식하게 된 것에만 집중했고, 비언어적 방언과 언어적 방언을 구분하게 된 것은 감지하지 못했다.
배덕만이 “unknown language”를 비언어적인 것으로 해석한 것은 수정되어야 한다. 배덕만은 오순절운동 초창기의 방언을 “unknown language”와 “unlearned language”로 구분하고 “unknown language”를 “알지 못하는 언어”라고 해석하고 “실제 외국어가 아닌 형태,” “무슨 언어인지 분별할 수 없는 형태의 언어”라고 정의했다. 그는 “unknown language”를 비언어적인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프리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왔다가 아주사 집회에서 “unknown language”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한 사람의 간증은 배덕만의 이해와 상충된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방언을 “unknown tongues”라고도 칭하기도 하고, “unknown language”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는 방언을 말하게 된 후 거리로 나가 방언(unknown language)으로 설교했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감옥에 갇힌 후에도 계속 방언으로 설교했는데, 듣고 있던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그가 말하던 방언들(the languages) 중에 하나를 통역했다. 그 통역자는 아프리카계 사람으로서 그루어(Kru language)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시무어의 공동체는 배덕만의 이해와는 달리 언어적 방언을 “unknown language”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시무어가 책임 편집인이었던『사도신앙』을 보면 사도행전적, 마가적, 고린도적 방언 중에서 자기 공동체에 발생하고 있는 방언을 어느 곳에 귀속시키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탐색은 후에 오순절주의자들이 고린도적 방언을 비언어적인 것으로도 이해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륍톤(Rev. Levi R. Lupton)은 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는 것을 근거로 자기 공동체에 발생하는 방언을 사도행전의 오순절적 방언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시카고의 한 오순절 공동체는 방언의 다면성을 인식했다. 그 공동체의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임하고 있는 방언이 사람에게 보다는 하나님께 향하는 면에서 고린도적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는 면에서 소수에게만 임하는 고린도적인 은사적 방언만도 아니고, 모든 신자들에게 따르는 마가적이기도 하다고 보았다.
C. 증거로서 방언과 은사로서 방언
1906년 파함과의 방언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을 때, 시무어를 따르던 사람들은 “증거로서 방언”과 “은사로서 방언”을 구분하였다. “여러분은 성령침례를 받을 때 은사로서 방언(the gift of tongues)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증거로서 방언(the witness of tongues)을 받습니다. 즉, 여러분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을 때 방언을 말할 것입니다.” “증거로서 방언”은 성령침례를 받는 모든 신자들이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은사로서 방언”은 모든 신자들이 갖지는 못하는 것으로 이해된 것이다.
또한 시무어의 공동체에게 “증거로서 방언”은 비언어적인 것이고, “은사로서 방언”은 언어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런던에서 살던 힌머스(J. Hinmers)는 함께 기도하던 한 여인이 어느 날 자정에 “증거로서 방언”(the witness of tongues)을 받았었고, 그 다음 날에 “두 가지 또는 세 가지의 방언들”을 받았다고 보고했다. 노턴(Albert Norton)은 인도에서의 방언 경험을 간증했다. 그가 어느 주일에 무크티에 있을 때 스물 네 명의 사람들이 “은사로서 방언(the gift of tongues)을 받았는데,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그 이전에는 그들에게 모르는 언어였던 영어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다.” 두 언급을 비교해 보면, “세 가지 방언들”과 “은사로서 방언”이 겹치는데, 이 방언은 언어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명확하게는,『사도신앙』은 “은사로서 방언”(the gift of tongues)과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할 “은사로서 언어”(the gift of languages)를 동일한 의미로 교환하며 사용했다. 시무어의 공동체가 언어적인 “은사로서 방언”으로부터 “증거로서 방언”을 구분한 것은 그 공동체에서 나타난 비언어적 방언을 지칭할 말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무어의 공동체의 “증거로서 방언”은 파함의 “최초의 방언의 은사”(the initial gift of tongues)와 유사하며, 시무어의 “은사로서 방언”은 파함의 “진정한 언어의 은사”(a real gift of language)와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프는 파함과 모든 오순절주의자들이 1908년 이전에는 방언을 실제 언어라고 믿었지만, 그 후에 방언 경험은 천상적 언어인 글로솔라리아(glossolalia)와 실제 외국어인 제노글로사(xenoglossa)로 확장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무어와 시무어의 공동체는 맥기가 제대로 파악한 것처럼 1906년에 이미 언어적인 방언과 비언어적인 방언을 구분하기 시작했으며, 파함도 차츰 비언어적인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D. 배울 수 없는 방언
시무어와 그 공동체는 방언이 배울 수 없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시무어의 공동체에 의하면, 언어의 은사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말할 것을 주신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 은사는 모국어(the native tongues)처럼 학습될 수는 없고(cannot be learned), 오직 주님께서 그분의 뜻대로 음성 기관을 통제하심으로 가능한 것이다.
E. 기록할 수 없는 방언
시무어의 공동체는 초기에는 방언을 쓰는 것을 하나의 은사(the gift of writing in unknown languages)로 받아들였다. 시무어는 방언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언어라고 이해했기 때문에 그 언어를 쓰는 것도 외국어를 쓰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사도신앙』은 “배우지 않은 언어들을 쓰는 은사”(the gift of writing in unknown languages)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사도신앙』에 의하면 방서는 선교지에서도 나타났다. 스웨덴에 갔던 엔드류 존슨(Andrew G. Johnson)이라는 사람이『사도신앙』에 기고한 글을 보면 시리아어와 아르메니아어 방언을 쓰고 있었다. 또한 인도에서 기고한 글에 따르면 13명 정도의 선교사들과 다른 사역자들이 방언을 썼다.
그런데 시무어의 공동체의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던 비언어적 방언에 대한 주목과 더불어 방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일어났다. 시무어의 공동체는 1907년 1월경에 바벨론 왕궁의 벽에 써졌던 글에 대해 언급했다. 벨사살이 연회를 베풀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해온 금, 은, 동 잔으로 술을 마시고 신상을 만들었다. 그러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왕궁 벽에 글을 썼다. 벨사살 왕과 술객, 술사, 점장이, 바벨론 박사들은 그 글을 해독하지 못했다. 그런데 다니엘이 그 글의 의미를 해독했다. “메네 메네 테켈 우파르신”(/ys!r+p^W lq}T= an}m= an}m+). 달아 보니 함량 미달이라는 뜻이었다. 벨사살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이었다. 그 판단과 함께 바벨론은 메대와 바사로 양분되었다(단5). 시무어의 공동체는 그 기록을 방서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제시한 것 보다는 방언 해석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강조한 듯하다. 이 언급은 방서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초기에『사도신앙』여기 저기서 발견되는 방서에 대한 글들은 이 언급이 방서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 놓는다. “메네 메네 테켈 우파르신”이 방언을 말하는 자에 의해서 써진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 손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이 언급은 방서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런 까닭인지『사도신앙』1907년 9월 판에서는 방서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부정했다. 시무어 공동체는 비록 초기에 방서를 인정했지만 1년여 만에 성경에서 방서를 위한 그 어떤 근거도 찾을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방서를 광신에서 발생한 것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방서는 개인이나 교회 전체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F. 교회사 속에서 계속된 방언
시무어는 교회사 속에서 방언이 계속된 역사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 인식에 따르면, 허스트 주교(Bishop Hurst)는 그의 교회사에서 방언 은사가 카미사드, 초기 퀘이커교도들, 1841년에서 43년의 스웨덴 라사레, 1859년 아일랜드 부흥, 카톨릭 사도 교회(어윈주의자들)에서처럼 강력한 종교적 자극 아래 있는 공동체들 안에서 나타나 왔었다고 밝혔다. 시무어가 언급한 허스트의 책은 사실, 번역서였다. 감리교 에피스코팔 교단(Methodist Episcopal Church)의 주교였던 존 플레처 허스트(John Fletcher Hurst; August 17, 1834 – May 4, 1903)는 1868년에 하겐스바흐(K. R. Hagensbach)의 Die Kirchengeschichte des 18. und 19. Jahrhunderts: Aus dem Standpunkte des evangelischen Protestantismus를 History of the Church로 번역 출판했었다. 예를 들면, 그 책의 8쪽은 카미사드의 “새 방언”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G. 재림까지 계속될 방언
시무어와 그의 공동체는 방언이 주님의 재림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그런데 바울이 이것들[방언 포함]이 끝날 것이라고 예언했지 않은가?”라고 질문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3장 8절의 말씀을 인용했다. 그들은 “온전한 것이 오는 때”를 “주님의 날”로 해석하고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비로소 방언이 그칠 것이지만, 그때까지는 방언을 포함한 은사들이 계속될 것이라고 보았다.
IV. 다양한 기능의 방언
A. 기도로서 방언
시무어는 방언을 기도의 한 길로 여겼다.『사도신앙』제작에 참여하고 있던 마리 퍼킨스 자매(Sister Mary Perkins)는 집에서나 집회에서나 자주 외국 방언으로 기도한다고 간증했다. 노르웨이인 바디는 “열 두어 명이 방언으로 말하거나 기도하거나 예언하고 찬양하고 있었다”고 보고했다. 시무어의 공동체는 방언을 사적 기도의 길로만 보지 않고, 공적 기도의 길로도 본 것이다.
B. 찬양으로서 방언
시무어의 공동체는 “성령으로 침례”에 동반되는 방언 경험이 찬양을 일으켰다고 간증했다. 수천 가지의 악기들로 구성된 악단이 연주하는 듯한 찬양이 내부로부터 넘쳐 나왔다는 것이다. 시무어는 성령침례가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성령으로 침례에 동반되는 방언은 기쁨 넘치는 찬양이기도 했다. 시무어의 공동체의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영감 안에서 말하는 은사뿐만 아니라 찬양하는 은사도 받았다. 주님께서는 새로운 목소리들을 주셨고, 옛 찬양 가사들을 새 방언으로 바꾸셨다. 그분은 천사들이 부르는 음악을 주셨으며, 모든 대원들이 같은 천상적 찬양을 조화롭게 부르는 천상적 성가대를 갖고 계셨다. 그 음악은 아름다웠지만, 그 어떤 악기들도 필요 없었다. 시무어의 공동체는 방언 찬양을 사적인 상황에만 국한 시키지 않고, 공적인 상황에까지 확장시켰다. 시무어의 공동체는 방언 찬양을 단지 사람이 부르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사람들을 통해 노래하는 것(the Spirit sang songs through them)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방언 찬양은 시무어의 공동체에서 “천상적 찬양”(heavenly anthem)으로 불렸다.
C. 예언의 한 통로로서 통역된 방언
시무어의 집회에서는 방언 통역이 메시지를 갖는 예언의 기능을 담당했다.『사도신앙』에는 “방언으로 말해진 예언”(the prophesies spoken in unknown tongues)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시무어의 공동체에게 방언은 “하나님의 메시지”(God’s message)의 통로들 중에 하나였다. 방언 통역을 통한 예언은 때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것이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재림에 관한 것과 신앙생활에 관한 것이었다.
많은 “방언으로 말해진 예언들”(the prophesies spoken in unknown tongues)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에 관해 보여주시는 많은 환상들이 일어나고 있다. 어떤 방언으로 말해진 한 예언은 “매우 임박했다. 그래서 나는 성령의 능력으로 순복음을 전하라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많은 사람들을 내보내고 있다”라고 통역되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방언을 통해 주어진 한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아래 겸손하라.” 그분은 지금 오순절적 능력과 구원의 강력한 파도로 세상에서 일하고 계시다.
시무어의 공동체에서 방언은 사람의 숨겨진 일을 드러내는 예언과 같은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 콜로라도 푸에블로(Pueblo, Colorado)의 한 자매는 아주사 선교회로 오다가 한 사람을 만나 그를 선교회에 초청했다. 그 사람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도 못한다면, 방언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라고 비꼬듯 말했다. 그 자매는 즉시 그 이전에 말해본 적이 없는 어떤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하얗게 질리더니 허둥지둥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달아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성령께서 그에게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통해 그가 살아왔던 악한 삶과 그가 저질렀던 죄악들을 말씀하셨다고 한다.
V. 나가는 말
살펴본 것처럼, 시무어의 방언관은 주로 성령침례와 관련되어 있으며, 파함의 방언관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형성되었다. 시무어와 그가 이끄는 공동체는 성령침례에 방언이 동반된다고 믿었다. 시무어의 공동체는 방언의 은사를 성령침례의 “표적과 증거”(sign and evidence)가 되기 위해 오순절날을 위해 예비 된 것으로 이해했다. 또한 시무어의 공동체에게 방언은 믿음과 침례를 소유하고 받았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주어지는 “표적 또는 증거”로 이해했다. 시무어는 초기에 성령의 임재인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시무어의 공동체에게 방언은 성령침례의 “외적 증거”(outward evidence)이다. 그런데 시무어가 성령침례의 내적 증거를 사랑으로, 외적 증거를 방언으로 구분한 것은 파함과 웨슬리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었다.
시무어는 1907년에는 방언을 성령침례의 “그 성경적 증거”(the Bible evidence)라고 말했지만, 1915년에 펴낸 아주사 선교회의『교리와 계율』에서는 성령침례의 여러 표적들 또는 증거들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시무어가 방언이 성령침례의 “그 증거”가 아닌 표적들 중 하나라고 주장한 것은 파함의 유일 증거론에 반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성령침례의 증거에서 방언을 완전히 제거하거나, 방언이 아닌 다른 은사들이 나타나도 성령침례를 받은 것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다.
시무어는 방언을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동적 역사로 이해하기도 했다. 오순절운동의 창시자 파함은 방언을 언어적으로만 이해했고, 시무어도 성령침례에 뒤따르는 방언은 이 세상 언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주사 거리에서의 방언현상에는 파함과 시무어의 이해와는 달리 세상에 없는 것 같은 언어를 말하는 현상도 나타났다.『사도신앙』에는 사도행전적, 마가적, 고린도적 방언 중에서 자기 공동체에 발생하는 방언을 어느 곳에 귀속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나타난다. 1906년 파함과의 방언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을 때, 시무어를 따르던 사람들은 “증거로서 방언”과 “은사로서 방언”을 구분하였다. 또한 시무어의 공동체에게 “증거로서 방언”은 비언어적인 것이고, “은사로서 방언”은 언어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시무어의 공동체의 “증거로서 방언”은 파함의 “최초의 방언의 은사”와 유사하며, 시무어의 “은사로서 방언”은 파함의 “진정한 언어의 은사”와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무어와 그 공동체는 방언이 배울 수 없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시무어의 공동체는 초기에는 방언을 쓰는 것을 하나의 은사(the gift of writing in unknown languages)로 받아들였다.『사도신앙』에 의하면 방서는 선교지에서도 나타났다. 그런데 시무어의 공동체의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던 비언어적 방언에 대한 주목과 더불어 방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일어났다. 그런 까닭인지『사도신앙』1907년 9월 판에서는 방서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부정했다. 시무어는 카미사드, 어빙주의 등 교회사 속에서 방언이 계속된 역사를 인식하고 있었다. 시무어와 그의 공동체는 방언이 주님의 재림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믿었다. 시무어는 방언을 기도의 한 길로 여겼다. 시무어의 공동체는 “성령으로 침례”에 동반되는 방언 경험이 찬양을 일으켰다고 간증했다. 시무어의 집회에서는 방언 통역이 메시지를 갖는 예언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 방언 통역을 통한 예언은 때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것이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재림에 관한 것과 신앙생활에 관한 것이었다. 시무어의 공동체에서 방언은 사람의 숨겨진 일을 드러내는 예언과 같은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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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파함이 일으킨 오순절운동을 국제적으로 보급시킨 인물로 평가받아온 시무어(William J. Seymour)의 방언론에 대한 연구는 그 수가 매우 적었으며, 포괄적이지 못했다. 세실 로벡(Cecil M. Robeck, Jr.)은 파함을 포함한 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성숙해가면서 방언이 성령침례의 그 성경적 증거(the Bible evidence)라는 생각을 버리고, 방언을 하나의 표적(a sign)으로만 인정했으며, 성령침례의 진정한 증거들을 추구했고, 그 증거들은 윤리적인 것이었다고 보았다. 이에 반해 레나 브라스웨이트(Renea Brathwaite)는 로벡과는 달리 시무어가 최초 증거론을 완전히 거부했던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브라스웨이트는 시무어는 방언에 관한 그의 생각을 수정한 것이 아니고, 성결주의적인 영향 아래서 처음부터 방언과 윤리와의 관계성을 지속해 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로벡의 연구나 브라스웨이트의 시무어 방언 연구도 포괄적이지 못하다.
본 소고는 시무어의 방언론을 보다 포괄적으로 접근함으로써 기존의 시무어의 방언론을 연구한 학자들의 제한적인 그러나 빛나는 연구들을 보강한다. 시무어는 성령침례의 내적 증거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는 것이며, 외적 증거는 방언 등의 표적들이라고 보았는데, 그런 시각에는 파함의 영향력이 서려있다. 시무어는 성령침례의 증거에서 방언을 완전히 제거하거나, 방언이 아닌 다른 은사들이 나타나도 성령침례를 받은 것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다. 그는 1907년 9월 이후에는 방서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부정했다. 그는 “증거로서 방언”과 “은사로서 방언”을 구분했다. 시무어는 방언을 하나님께 향한 기도, 찬양, 그리고 통역될 시 예언의 기능을 담당한다고 생각했다.
주제어: 오순절, 방언, 최초 증거론, 방언과 윤리, 성령침례의 내적 증거의 외적 증거, 방언의 기능들
Abstract
Pentecostal Speaking in Tongues of William J. Seymour
Lee, Chang-Soung (Ph. D.)
Assistant Professor, Systematic Theology
Korea Christian College
Republic of Korea
Studies on Speaking in tongues of William J. Seymour who internationally propagated Pentecostal movement were very few and not comprehensive. Cecil M. Robeck, Jr. insisted that Seymour discarded the Bible evidence of Charls F. Parham, and recognized speaking in tongues only as a sign, and pursued true ethical evidence. On the contrary, Renea Brathwaite insisted that Seymour did not revise his thought on speaking in tongues, but held continuously speaking in tongues in the relation with ethic. This article is trying to complement such studies through comprehensive approach. For Seymour, the inner evidence of the Spirit Baptism was to be filled with the love of God, and the outer evidence was speaking in tongues. He never excluded speaking in tongues from the evidence of the Spirit Baptism. After July, 1907, he rejected writing glossolalia because of the absence of Biblical support. Seymour classified speaking tongues as “evidence” or “gift.”
Keyword: Pentecostal, Speaking in tongues, Initial evidence, Speaking in tongues and Ethic, the inner evidence and the outer evidence of Speaking in tongues, Functions of Speaking in tong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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