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구약과 중간기의 불
본격적으로 누가-행전의 불의 ‘비심판/구원성’이 논증되기 전에 구약과 중간기 유대 문헌, 그리고 신약의 마가복음서와 마태복음서에 나타나는 불에 관한 언급들이 연구될 것이다. 먼저 본 장은 구약과 중간기 유대 문헌의 불을 살펴볼 것이다.
성경은 헬라신화와 고대 이란 창조신화와는 달리 불의 기원에 대해 침묵한다. 구약 성경에서 맨 처음 불(va@)이 등장하는 곳은 창 15:17이다. 아브람은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는 타는 횃불(va@ dyP!l*)을 보았다. 창세기 기자는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세우신 의식이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구약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는 약속의 상징으로서의 불을 말함으로써 불 이야기를 시작한다.
A. 구약의 불
구약에는 매우 다양한 불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불들을 책별로, 시대별로 하나하나 다루는 것은 이 연구의 목적도 아니며, 시간과 지면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본 연구는 누가-행전의 불에 대한 예비적 연구로서 구약의 불에 관한 언급들을 비슷한 성격을 띈 것들을 크게 주제별로 묶어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구약의 불에 대한 언급들은 먼저 불을 일으키는 주체들을 중심으로 묶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주체들은 ‘하나님,’ ‘천사,’ ‘인간,’ ‘자연’으로 나누어 질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불을 일으키는 주체들 중에서 주로 ‘하나님’에 집중한다.
또한 구약의 불에 대한 언급들은 불이 나오는 공간과 그 영향을 받는 공간에 의해 즉, 공간에 의해 나누어질 수 있을 것이다. 공간을 중심으로 구약의 불에 대한 언급들을 나눌 수 있는 범주들은 ‘하늘에서 땅으로’(혹은 위에서 아래로), ‘땅에서 하늘로,’(삿 13:20) ‘땅에서 땅으로,’ 그리고 ‘땅 속에서 땅으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주로 ‘하늘에서 땅으로’ 언급들을 다룰 것이다. 이러한 범주는 ‘하늘에서(혹은 하늘에서부터)’(<y!m^V*h^ /m!)(왕하 1:10, 대상 21:26, 대하 7:1 등) 혹은 ‘위에서부터’(<orM*m!, from on high)(애 1:13)라는 단어들과 함께 등장하는 불들을 포함한다. 또한 이 범주에는 하나님을 주체로 삼는 ‘불을 내려(혹은 내리사)’(창 19:24, 출 9:23, 대하 7:3 등) 혹은 ‘불을 보내어’(va@ jl^v**)(호 8:14 등)라는 문구들도 포함된다.
그리고 구약의 불에 대한 언급들은 이 이외에도 불의 재료를 기준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구약의 불의 재료는 크게 ‘물질’과 ‘비 물질’로 나누어질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일으키시는 비 물질적 불을 주로 다루려 한다.
또한 구약의 불은 발생 시간 기준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시간에 의해 구약의 불을 크게 나누어 보면 ‘현세에서의 불’ 그리고 ‘종말적 불’(마지막 날들의 심판의 불과 영원한 지옥의 불을 포함한다)이 될 것이다.
구약의 불은 감각적으로 분류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불이 촉각적으로 분류되면 따듯함 또는 뜨거움을 의미할 것이고 (사 44:16, 47:14 참조), 불이 시각적으로 분류되면 빛을 의미할 것이다 (시 78:14, 겔 1:13 참조). 또한 구약의 불은 심리적으로도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심리적으로 분류될 때 불은 열정과 분노 등의 심리적 상태가 은유적으로 표현된 것일 것이다 (렘 4:4 참조). 또한 구약의 불은 문자적인 불과 은유적인 불로 나주어 질 수도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분류 기준들 이외에도 중요한 기준을 하나 더 첨가한다. 그 기준은 바로 ‘심판’이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불들이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이냐, 아니면 심판하지 않는 것이냐에 따라 구약의 불에 대한 언급들을 분류하려한다. 이 심판에 의한 분류는 구약의 불뿐만 아니라 본 연구의 큰 틀이 될 것이다.
1. 심판의 불
랑(F. Lang)이 언급했듯 구약의 주요 관심사는 하나님께서 재판장으로서 역사에 개입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개입은 죄인들에 대한 심판과 형벌에서도 나타난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때로 불을 동반했다.
a. 이스라엘 심판의 불
하나님의 심판의 불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도 살라버렸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첫 불의 심판은 레위기에 등장한다. 레위기 기자에 의하면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 앞에서’(hw*hy= yn@p=L=m!) 나온 불(va@)에 여호와 앞에서(hw*hy= yn@p=l!) 죽임을 당했다. 그는 그 원인을 그들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불 이외에 ‘다른 불’(hr*z* va@)을 담아 ‘여호와 앞에’
(hw*hy= yn@p=l!) 분향하는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주었다 (레 10:1-2). 이렇게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첫 번째 불의 심판은 제의적 불과 관계가 있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두 번째 불의 심판은 민수기에 등장한다. 민수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범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소리를 들으시고 진노하시고 불을 그들 중에 붙게 하셔서 이스라엘 진 끝을 사르셨다고 전해주었다 (민 11:1). 그는 이때의 불이 ‘여호와의 불’(hw*hy= va@)이었다고 전해주었다.
모세는 모압평지에서 행한 설교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우상숭배를 금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신명기 기자는 그 이유를 하나님께서는 ‘소멸하는 불’(혹은 ‘삼키는 불’ hl*k=a) va@)이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신 4:24). 신명기 기자는 이 구절 에서 ‘소멸하는 불’과 ‘질투하는 하나님’을 평행법적으로 동일시했다.
A hl*k=a) va@ ;yOa$ hw*hy= yK!
B aN*q^^ la@ aWh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며
그분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A는 ‘a는 b와 같다’라는 은유문장이 아닌 ‘a는 b이다’라는 직유문장이다.
A S + C(능동분사+명사) (a = b)
B S + C(형용사+명사) (a = b)
신명기 기자는 하나님을 불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며,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다. 이 문장은 수사적으로 사랑으로 인해 촉발되는 하나님의 질투를 소멸하는 불로 강하게 은유한 문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장은 외형적으로, 문법적으로(A와 B를 동일시함으로써, A = B) 불을 하나님과 동일시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불을 의인화시키고(삼키는[lk^a**] 행동을 하는) 그 불을 하나님과 하나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즉, 그는 심중에 불을 의인화시킬 뿐만 아니라 신격화시켰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선지서들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불이 등장한다. 아모스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hw*hy= rm^a* hK))로 말문을 열면서 유다의 죄를 판결한다. 그리고 형벌의 말을 한다.
판결의 말
이는 저희가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 열조의 따라 가던 거짓 것에 미혹하였음이라
형벌의 말
a 내가 유다에 불을 보내리니 (va@ yT!j=L^v=)
b 예루살렘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lk^a*) (암 2:5)
유다에 대한 판결의 말은 앞의 6개국에 대한 판결의 말과 달리 언약과 관계된다. 언약위반이 유다의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그려진다. 신명기 기자는 불을 하나님과 동일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아모스는 하나님과 불을 분리한다. 아모스는 하나님과 불을 분리하고, 불을 인격화시킨다(characterization). 아모스는 형벌의 말의 a 문장에서 하나님을 주어로 삼고 불을 목적어로 삼음으로써 하나님과 불을 따로 분리한다. 그리고 그는 동사(jl^v*, 보내다)를 통해 불을 인격화하여 하나님의 대행자로 삼는다. 하나님의 대행자인 불(va@)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예루살렘 궁궐을 삼켜버릴 것이다 (lk^a*). 이렇게 아모스에 의해 불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기도 하고 하나님을 대신해 궁궐을 삼켜버리기도 하는 하나님의 대행자로 묘사됐다.
A S(여호와가) + V(보내다) + O(불을)
Conj(그리고)
B S(불이) + V(삼키다) + O(예루살렘 궁궐들을)
호세아는 아모스처럼 hw*hy= rm^a* hK)로 시작하지 않고 신명기의 전통(la@r*c=y! um^v=, 신6:4)을 따라 la@r*c=y! yn=B= hw*hy=-rb@d Wum=v!(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로 시작한다(호 4:1). 그리고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판결의 말을 한 후 형벌의 말을 한다.
판결의 말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은 자를 잊어버리고 전각들을 세웠으며
유다는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형벌의 말
A 내가 그 고을들에 불을 보내어(va@ yT=j=L^v=)
B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 (lk^a*) (호 8:14)
‘잊어버리다’(jk^v*)라는 말은 호세아서에서 언약 배신(covenant infidelity)를 지적할 때 사용된다 (2:15[13]; 4:6; 13:6). 호세아는 아모스처럼 하나님과 불을 분리하고, 불을 의인화시켰다. 하나님은 불을 보내시며
(va@ jl^v*), 불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행동한다.
예레미야는 아모스와 호세아와는 달리 하나님을 직접 형벌의 불을 피우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유다와 이스라엘을 ‘푸른 감람나무’(/n*u&r^ ty!!z^)로 비유하고 그들의 우상숭배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 나무에 불을 피우실 것
(va@ tx^y**)을 예언한다 (렘 11:16). 예레미야는 17:27과 21:14에서도 하나님을 유다백성들의 죄로 인해 그들의 대적이 되셔서 그들에게 불을 피우는(va@ tx^y*) 분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그는 22:7에서는 하나님을 그분의 말을 준행하지 않을 때 대행자(파멸할 자)를 통해 유다를 불에 던지시는(va@h*-lu^ lyP!h!![lp^n*의 hiphil형]) 분으로 묘사한다.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주변국가들에 의지하는 예루살렘을 음부로 규정하고 그 음부의 옷을 벗겨버리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분노의 피와 노여움의 피를 인격화시키고, 또한 예루살렘을 의인화시켜 예루살렘을 그 피들에게 준다 (/t^n*, 겔 16:38-39).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무리를 데리고 와서 음부로 묘사된 예루살렘을 태워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r^c*, 겔 16:41). 즉,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분노의 피와 노여움의 피를 하나님의 대행자로 삼아 우상을 숭배한 죄를 범한 예루살렘을 불태우실 것이라고 경고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신명기 기자는 이스라엘 심판의 말을 통해 불을 인격화시키고, 하나님을 불로 은유한다. 호세아와 아모스는 불을 하나님과 분리하고 하나님의 불형벌의 대행자로 삼았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대행자를 보내시지 않고 직접 불형벌을 내리시는 분으로 묘사했다. 이렇게 예언자들은 하나님을 죄를 짓는 그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를 심판하시는 수단으로서 불을 보내시고(va@ jl^v*), 그들에게 불을 붙이시고(va@ tx^y**), 그들을 불에 던지시고(va@h*-lu^ lyP!h!), 불살라 버리는([r^c*) 분으로 묘사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 대한 심판이 ‘하나님의 불’을 통해 나타난 것이다.
b. 이방인 심판의 불
하나님의 심판의 불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을 사른다. 그 대표적인 예가 족장시대의 소돔과 고모라 성 멸망사건이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불로 심판하신 첫 번째 예이다. 창 18:20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원인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 . .” 그리고 창세기 기자는 소돔성에 살고 있던 롯의 집에 방문했던 두 천사들을 소돔성 사람들이 상관하려했던 사건을 예로 들면서 그 성의 죄악상을 고발한다 (창 19:5). 창세기 기자는 해설을 통해 소돔과 고모라 성에 내리신 하나님의 심판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창 19:24-25)
하나님께서는 이 첫 번째 이방인 심판의 불을 하늘에서부터(<y!m*V*h* /m!) 땅에 비처럼 내리셨다 (ryf!m=h!). 이렇게 창세기 기자는 하나님을 대행자 없이 직접 형벌의 불을 내리시는 분으로 묘사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불로 심판하신 두 번째 예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애굽 땅에 내린 10가지 재앙 가운데 하나이다. 출애굽기 기자는 하나님의 불의 심판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A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매
B 여호와께서 뇌성과 우박을 보내시고
C 불을 내려 땅에 달리게 하시니라 (개역 출 9:23a)
그런데 개역성경의 이 부분 번역은 좀 더 분명히 해야할 점을 내포하고 있다. 개역성경은 B와 C의 주어가 ‘여호와’로 되어있으나, 사실은 B의 주어는 hw*hy=이지만 C의 주어는 va@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 대한 좀더 정확한 번역은 다음과 같다.
A 모세가 하늘을 향해 그의 지팡이를 뻗으니
B 여호와께서 뇌성과 우박을 주셨고(ן??),
C 불이 땅에 내려왔다(hx*r=a* va@ El^h(T=w^) (사역)
C 에서 불은 의인화되어 내려온다. 즉, 불은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한 것이다. 이렇게 출애굽기 기자는 불을 의인화시키고 하나님의 대행자로 묘사했다. 문맥상 하나님의 두 번째 이방인 심판의 불도 첫 번째 것처럼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다.
이방 민족 | 하나님의 유죄판결 말씀 | 하나님의 형벌의 말씀 | 본 문 |
다메섹 | 이는 저희가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음이라 | 내가 하사엘의 집에 불을 보내리니 벤하닷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 암1:3-4 |
가 사 | 이는 저희가 모든 사로잡은 자를 끌어 에돔에 붙였음이라 | 내가 가사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 암1:6-7 |
두 로 | 이는 저희가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치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붙였음이라 | 내가 두로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 암1:9-10 |
에 돔 | 이는 저가 칼로 그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노가 항상 맹렬하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 내가 데만에 불을 보내리니 보스라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 암1:11-12 |
암 몬 | 이는 저희가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 | 내가 랍바성에 불을 놓아 그 궁궐들을 사르되 전쟁의 날에 외침과 회리바람 날에 폭풍으로 할 것이며 | 암1:13-14 |
모 압 | 이는 자가 에돔 왕의 뼈를 불살라 회를 만들었음이라 | 내가 모압에 불을 보내리니 그리욧 궁궐들을 사르리라 | 암2:1-2 |
선지서들에서도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불이 등장한다. 아모스는 예언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의 불을 말한다. 아모스는 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 암몬, 모압의 죄를 말한 후 하나님께서 불(va@)을 자기의 대행자로 삼아 그 민족들에게 불을 보내시고(va@ jl^v*) 궁궐들에 불을 붙이셔서(va@ tx^y*) 불이 그들을 삼켜버리게 하실(lk^a*)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방인들에 대한 유죄판결+불같은 하나님의 형벌’이라는 형식을 띈다.
형 식 | 내 용 |
하나님의 불형벌의 말 씀 | 내가 애굽 신들의 집에 불을 놓을 것인즉 (va@ tx^y*) |
하나님의 불형벌의 대행자 | 느부갓네살이 그들을 불사르며 ([r^c*) 그들을 사로잡을 것이요 |
아모스는 불을 하나님의 형벌 대행자로 지목했는데, 예레미야는 먼저 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불의 형벌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애굽을 향한 불의 형벌의 대행자로서 느부갓네살을 지목한다 (렘43:12).
이처럼 구약은 이방인 심판의 말을 통해 하나님을 직접 불형벌을 내리시는 분으로 묘사하기도하고, 불을 하나님의 형벌의 대행자로 묘사하기도 하였으며, 사람을 하나님의 불형벌 대행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한 이방인들에게 하늘에서(<y!m*V*h* /m!) 땅에 불을 내리시고(ryf!m=h!), 보내셔서(va@ jl^v*) 불을 붙여(va@ tx^y*) 그들을 살라버리셨다([r^c*). 말하자면 ‘하나님의 불’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언약 백성뿐만 아니라 이방 민족들을 심판하시는 도구로 사용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들의 통치자/주관자이심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c. 종말적 심판의 불
선지서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불을 종말적 지평에까지 확대했다. 종말적 심판의 불은 시간적 순서에 따라 두 가지-‘여호와의 날에 임할 심판의 불’과 ‘영원한 형벌의 장소로서의 불’로 분류할 수 있다.
1) 여호와의 날에 임할 심판의 불
이사야서 기자는 여호와께서 임하시는 날 ‘불과 함께’(va@B*)오셔서 불꽃으로(va@-yb@h&l^B=) 견책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불과(va@B*)칼로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많은 사람들을 죽이실 것이라고 말하였다 (사 66:15-16). 이사야는 하나님을 전사(Divine Warrior)로 그려낸 것이다. 이사야서 기자는 하나님을 전사의 모습으로 그려낼 뿐만 아니라 ‘불’을 인격화시켜 하나님과 함께 임하는 전사로 그려냈다. 그는 불을 인격화시킬 뿐만 아니라 도구화시켜 전사이신 하나님의 무기로 삼았다.
그런데 이사야서 기자는 여호와께서 임하시는 날을 ‘여호와의 날’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사야서에서 ‘불’과 ‘여호와의 날’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사야서 기자는 여호와의 날을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날로, ‘죄인을 멸하시는’ 날로 묘사하였었다 (사 13:16, 19). 즉, 이사야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멸하실 여호와의 날의 모습은 여호와께서 오셔서 불로 사람들을 심판하실 날과 동일한 것이다. 이러한 이사야의 묘사는 ‘여호와의 분노의 날’(hw*hy!= tr^b=u*)에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 안에’(ota*n=q! va@b=)삼켜질 것이라고(lk@a*T@) 전해준 스바냐의 묘사와 일치한다 (습 1:18).
요엘서 기자는 ‘여호와의 날’과 ‘불’을 직접적으로 연결한다. 그는 여호와의 날이 임박하였는데 그 날에 불(va@)이 많고 강한 백성의 앞에서 삼킬 것이며 불꽃(hb*h*l#)이 그들의 뒤를 태울 것이므로 땅이 황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인격화된 불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행자인 ‘강한 많은 백성’의 앞에서 심판하는 일을 대행한다 (욜 2:1-3). 이 밖에도 에스겔은 여호와의 날에 하나님께서 애굽에 불을 일으키리라고 예언한다 (겔30:1-8).
2) 영원한 형벌의 장소/수단으로서의 불
영원한 형벌의 장소로서의 불은 구약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구약에 ‘꺼지지 않는 불’(hB#k=t! ol va@)이 등장하는 곳은 렘 17:27과 사 66:24 두 곳이다. 그런데 렘 17:27의 꺼지지 않는 불은 예루살렘 궁에 붙을 불로서 영원한 형벌의 장소라기보다는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예루살렘 공동체에 임할 형벌의 무거움을 은유한다. 사 66:24에 나타나는 꺼지지 않는 불은 영원한 형벌의 장소로 규정할 만 하다. 이사야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간 의인들과 시체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악인들의 최후를 대조했다. 이 구절은 마가가 인용한 구절이기도 한데, 마가는 그 구절을 ‘게엔나’(gevvenna, 개역은 ‘지옥’으로 번역하였다)와 관련시켰다.
사 66:24 | 막 9:47-49 |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 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γέεννα)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치듯 함을 받으리라 |
<))N)h!-/b# yG@이 하나님께 패역한 자들이 던져져 영원히 형벌 받을 장소의 대명사로 전락해 버린 것은 구약 속에서 긴 역사를 가진다. 모세는 모압 평지 설교에서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의 원주민들의 자취를 밟지 말 것을 명령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그들은 여호와의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그 자녀를 불살라 그 신들에게 드렸기 때문이다” 라고 설명하였다 (신 12:31). 모세는 후에 또 한 번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자녀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는 일을 하지 말도록 명령하였다 (신 18:10-12).
역대기 기자는 아하스와 므낫세가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자기의 자녀들을 불사르고,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했던 것을 고발하였다 (대하 28:3, 33:6). 열왕기 기자는 요시야가 단행했던 종교개혁을 전해주면서 힌놈 골짜기에서의 자녀를 태우는 행위가 몰렉 제의와 관련 있음을 밝혀주었다 (왕하 23:10). 예레미야는 유대인들이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는데 그러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렘 19:5).
이렇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녀들을 불에 태우지 말 것을 명령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지어 왕들도, 그러한 죄를 저질렀다. 예레미야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악행을 비판하고 <))N)h!-/b# yG@을 ‘종말적 장소’로, 즉 어떤 날에 ‘살륙의 골짜기’(hg*r@h&h^ ayG@)로 바뀔 것을 예언하였다 (렘 7:32 19:6, cf. 사 31:9; 66:24).
살펴본 바와 같이 구약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을 심판하는 수단/대행자로서 불을 사용하셨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구약은 하나님께서 불을 종말적 심판의 장소(게엔나)/수단으로 사용하실 것을 미리 내다보고 있다.
2. 비(非) 심판의 불
구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불이 다 형벌과 심판의 불은 아니며, 비심판적인 불들도 있다. ‘하나님의 언약의 불’, ‘하나님의 현현의 불’, ‘하나님의 응답의 불’, ‘하나님의 종말적 불’ 들이 하나님의 비 심판적 불이다.
a. 하나님의 언약의 불
창세기 기자는 하나님이 아브람과 언약을 맺은 이야기에서 불을 등장시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을 위해 짐승들을 취할 것을 명하셨고 아브람은 그것들을 취해 그 중간을 쪼개어 마주 놓았다. 창세기 기자는 이 아브람이 쪼개놓은 고기 사이로 ‘횃불’(va@ dyP!l^)이 지나갔다고 당시를 묘사하였다 (창 15:17). 그리고 그 날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셨다.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언약을 세우다’라는 뜻의 히브리어는 tyr!B= tr^K*이다. tr^K*는 ‘가르다, 잘라내다’(cut off, cut down)란 뜻을 가지며, tyr!B=는 성서외어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동의, 동맹, 언약, 조약’의 뜻을 갖는다. 그런데 LXX는 tyr!B=를 diaqhvkh로 번역하였는데, 이 말은 diativqhmi에서 온 말이다. diativqhmi는 본래 ‘ . . 사이로/통하여’(through)라는 의미의 전치사 diav와 ‘놓다’(set)라는 의미의 동사 tivqhmi가 만들어낸 합성어로서 ‘사이에 놓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tyr!B= tr^K*라는 말은 ‘희생물을 갈라 놓고 그 사이에 지나감으로서 약속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희생의 제물이 되는 짐승을 두 쪽으로 가르고 그 사이를 약속한 자가 지나가는 의식을 행함으로써 양자 사이에 언약이 맺어졌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백성들이 하나님과 가상 언약을 맺는 모습을 “송아지를 둘에 쪼개고 그 두 사이로 지나서 내 앞에 언약을 세우고”라고 묘사하였다 (렘 34:18). 갈라진 두 쪽 사이를 지나가는 의식은 죽은 짐승과 약속한 자를 상징적으로 일치시키는 것이며, 약속하는 자가 언약을 위반하게 되면 두 쪽으로 가른 짐승과 같은 운명이 될 것을 다짐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에 맺어진 언약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이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언약하신 것이었다. 그래서 아브람이 쪼갠 짐승들 사이를 지나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셔야 했다. 창세기 기자는 아브람이 쪼갠 짐승들 사이로 ‘횃불’이 지나갔다고 보고했다. 이는 ‘횃불’(va@ dyP!l^)이 하나님을 상징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창세기 기자는 하나님께서 횃불을 통해 쪼갠 고기들 사이를 상징적으로 지나가심으로써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셨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창 15:17의 ‘횃불’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비심판적인 ‘하나님의 언약의 불’이었다.
횃불을 통해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창 15:18).
b. 하나님의 현현의 불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분이시라고 말한다 (신 4:12, 15, cf. 골 1:15, 딤전 1:17, 히 11:27). 그런데 성경 기자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자기를 드러내신 사건들을 기록하기도 했다. 구약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현현’(Theophany)의 여러 형태들 중에 ‘불’을 통한 현현이 있다. 불을 통한 하나님의 현현의 가장 좋은 예는 시내산의 현현이다.
출애굽기 기자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불 가운데 두 번 나타나셨다고 기록했다. 그 첫 번째 현현은 시내산 떨기나무에 붙은 불을 통해서였으며 (출 3장), 두 번째 현현은 시내산 위에 나타난 불을 통해서였다 (출 19장). 보통 떨기나무에 붙은 불은 금새 사라지는데, 모세 앞에 보였던 떨기나무에 붙은 불은 꺼질 줄을 몰랐다. 이점이 모세의 호기심을 사로잡았으며, 모세로 하여금 떨기나무에 가까이 가게 했다. 이 떨기나무에 붙은 불은 떨기나무 자체를 태우는 물질적 불이 아닌 ‘비 물질적 불’이었을 것이다. 출애굽기 기자는 그 꺼지지 않고 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MT va@-tB^l^B=, LXX e*n flogiv puroV")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고 보고하였다 (출 3:2-4).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불로 현현하셨다. 불로 현현하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내어 아브람에게 약속해 주셨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게 하는 사명을 맡기셨다 (출 3:10-17). 출애굽기 기자는 불을 통해 현현하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 구원의 대행자로 삼으시고, 보내셨다(jl^v*)고 말한 것이다. 구약에서 보내는 자는 보냄을 받는 자들을 통해 말씀하시고 행동하셨다. 그래서 보냄을 받은 메신저들은 보내는 자 자신처럼 말할 수 있었다 (사 11:13, 삼하 3:12f 등).
출애굽기 기자는 19:18에서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불 가운데서 두 번째 현현하셨다고 기록했다. 출애굽기 기자는 시내산에 우뢰와 번개(불), 그리고 구름이 있었고, 큰 나팔소리가 났고(출 19:16), 하나님이 모세의 말에 음성으로 대답하셨다고(출 19:19)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 내려 오셨으며(va@B* dr^y*), 모세를 부르셨다고(출 19:18, 20) 기록했다. 불 가운데 강림하셔서 말씀하신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이 본문에서 최초로 발견된다.
출애굽기 기자는 불 가운데서 시내산에 내려오셔서 현현하셨던 하나님께서는 그 장소에만 한정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지켜주셨다고 기록했다. 출애굽기 기자는 하나님께서 그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셨다고 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계속 땅에서 활동하셨음을 보고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땅에서의 지속적인 활동은 구름 기둥과 불기둥 언급에서 발견할 수 있다. 출애굽기 기자는 그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출 13:21-22)
출애굽기 기자는 하나님의 활동을 스스로 ‘행하심’(El^h**),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떠나지 않으심’(vys!y*-al)), 이스라엘 백성의 ‘길 인도하심’(<t*j)n+l^),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진행하게 하심’(tk#l#l*)으로 묘사했다. 그런데 출애굽기 기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활동이 밤에는 ‘불기둥 안에서’(va#h* dWMu^B=) 이루어졌다고 기술했다. 개역성경은 ‘불기둥으로’라고 번역하였는데, MT는 그 부분을 va#h* dWMu^B=라고 기록했다. 이 문구에 등장하는 전치사 b=는 ‘ . . 안에서,’ 혹은 ‘ . . 으로,’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본문의 문맥이나 신학적 의도 면에서 볼 때, 이 문구에서의 b=는 장소를 나타내는 ‘ . . 안에서’(in)으로 번역되는 것이 타당하다.
a Er##D##h^^ <t*j))n=l^^ /n**u** dWMu^B= <m*oy <h##yn@@p==l!! El##h)) hw**hyw^^
b .hl*y==l**w** <m**oy tk##l#l** <h##l** rya!!l== va@@ dWMu^^B== hl**y++l^^w++
a의 전치사 b=가 이끄는 구를 개역처럼 도구적 부사구로 보는 것은 l=가 이끄는 부정사구 rya!h*l=의 동사 roa(비추다)를 꾸며주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주어인 hw*hy=가 어디에서 행하는지(El^h*)가 불분명해진다. b=가 이끄는 구를 본동사 El^h*(걷다)를 꾸미는 부사구로 보고 해석하면, ‘여호와께서 구름기둥 안에서 걸으셨다’(a), 그리고 ‘여호와께서 불기둥 안에서 걸으셨다’(b)로 번역할 수 있다. MT 기자는 /n*u* dWMu^B=를 부정사 구문 Er##D##h^^ <t*j))n=l앞에 놓음으로써 /n*u* dWMu^B=이 본동사 El^h*와 관계됨을 보였다. 개역이 번역한 문장을 구문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hw*hy+(S) El#h)(V)
<m*oy <t*j)n+l^
/n*u* dWMu^B=
hl*y+l^w+ rya!h*l+ <h#l*
vA@ dWMu^B=
그리고 필자가 보는 이 문장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hw*hy+(S) El#h)(In. V)
<m*oy(M-time) /n*u* dWMu^B=(M-place) <t*j)n+l^(M-purpose)
hl*y+l^w+(M-time) vA@ dWMu^B=(M-place) rya!h*l+ <h#l
(M-purpose)
이러한 필자의 분석은 MT /n*u* dWMu^B=를 e*n stulwV nefelhv"로 번역하고 vA@ dWMu^B=를 e*n stulwV purov"로 번역한 LXX에 의해 지지 받는다. 문장구조를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불기둥 안에 현현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다는 신학적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출애굽기 기자는 하나님께서 불기둥 안에서 걸으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떠나지 않고 길을 인도하셨음을 말한 것이다.
출애굽기 기자는 13장에서는 낮의 구름기둥과 밤의 불기둥을 따로 분리하였지만, 14장에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하나의 기둥으로 묘사하였다 (?/n*u*w+ vA@ dWMu^, a pillar of fire and cloud). 그리고 그 하나의 불-구름기둥이 등장한 때는 ‘아침’(rq#B))이었다고 그 기자는 기록했다. 출애굽기 기자는 이렇게 불과 구름이 혼재하는 기둥 안에서(b=) 하나님께서 애굽 군대가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 것을 보시고([=q^v*)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셔서(<m^h*), 그 병거의 바퀴를 벗겨버리셨다고(rsW) 전해주었다 (출 14:24). 이렇게 출애굽기 기자는 하나님께서 불기둥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불기둥 안에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무찌르는 행동도 하셨다고 기록했다.
민수기 기자도 역시 불기둥을 언급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이 하나 발견된다. 민수기 기자는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기둥’이 아니라 ‘구름’이 성막을 덮었으며, 저녁이 되면 ‘불기둥’도 아니고 ‘불’도 아니고 ‘불 모양 같은 것’(va@-ha@r+m^K=)이 나타났다고 해설했다.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민 9:15)
LXX는 MT의 va@-ha@r+m^K=를 w&" ei*doVV" purov"로 번역했다. 민수기 기자는 16절에서는 k=를 제외하고 va@-ha@r+m^(불 모양)라고 기록했다.
‘불같은’(va@K=, w&" purov")이란 말은 구약의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출애굽기 기자는 시내산 위에 머물렀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불 같이’(va@K=-ha@r+m^, w&sei pu'r) 보였다’고 전한다 (출 24:17). 개역 신명기 32:24은 더위를 ‘불같은 더위’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이 부분의 MT는 [v#r# ym@j%l=이며, 그 문구에는 ‘k=’(같은)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부분을 ‘삼키는 불’로 해석했어야 했다. 그러므로 신 32:24은 ‘ . . 같은 불’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개역 신명기 33:2은 율법을 하나님의 오른손에는 ‘불같은 율법’이라고 번역했다. 이 본문은 사본들 사이에서 그리고 역본들에서 서로 다르게 기록되고 번역됐다. MT는 이 부분을 tD*va#로 기록했다. B 사본(editio Bombergiana Iacobi ben Chajjim, Venetiis 1524/5)은 tD*va#를 가운데서 나누어 tD* va@로 보았다. 그리고 LXX는 a*ggeloiV met’ au*tou'로 번역했다. 영어역본들 중에서 NIV는 MT를 따라 “mountain slopes”으로, RSV는 B 사본을 약간 변형하여 tD^[y*] va@로 읽어 “with flaming fire at his right hand”로, KJV와 ASV는 B 사본을 t[r=b]^D^ va@로 읽어 “a fiery law”로 번역하였고, NRSV는 LXX를 변형하여 “a host of his own”로 번역했다. 개역은 KJV의 독법을 따라 ‘불같은 율법’으로 번역한 듯 하다. 그러므로 MT를 따르자면 NIV처럼 번역해야할 것이다(from his mountain slopes).
개역 잠언 16:27은 악인의 입술에 ‘맹렬한 불같은 것이 있다’고 번역했다. 이 번역은 대체로 잘된 것이다. 이 부분의 MT는 tb#r*x* va@K=로 기록하였고 이문이 없다.
개역 에스겔 8:2은 어떤 형상(tW<d=)을 ‘불같은 형상’(va@-ha@r+m^K= tW<d=)로 번역했다. va@-ha@r+m^K=(불같은)는 민수기 기자가 9:15에 성막에 떠오른 것을 묘사할 때 사용한 문구와 똑같다. ‘불같은 형상’(va@-ha@r+m^K= tW<d=)은 에스겔이 이상 중에 본 존재였다. 에스겔은 먼저 ‘주 여호와의 손’(hohy+ yn*d)a& dy*, LXX ceivr kuriou')이 자기 위에 떨어졌고(lp^n*)(겔 8:1), 자기가 ‘불같은 형상’(va@-ha@r+m^K= tW<d=, LXX)을 보았다는데 그 형상의 허리 이하의 모양은 불같았고, 허리 이상의 모양은 단 쇠 같은 광채 같았다고 전해 주었다. 그리고 에스겔은 3절에서 신비한 말을 한다. 에스겔은 ‘그 불같은 형상’(남성 단수)이 손 같은 것(dy* tyn!b=T^)을 펴서 자기 머리털을 잡았으며, ‘j^Wr’(여성 단수)가 자기를 하늘과 땅 사이로 들어올려 하나님의 이상 가운데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갔다고 기록한다. 에스겔은 hohy+ yn*d)a& dy*(ceivr kuriou', 주 여호와의 손)과 va@-ha@r+m^K= tW<d=(불같은 형상)을 ‘불같은 형상의 손 같은 것’(dy* tyn!!b=T^)으로 연결하고, 불같은 형상의 손 같은 것이 자기를 ‘잡았다’(yn!j@Q*Y!)는 것으로 j^Wr(pneu'ma)가 자기를 ‘들어올렸다’(aC*T!)는 것과 연결한다. 그는 그럼으로써 ‘주 여호와의 손’과 ‘불같은 형상’ 그리고 ‘영’을 하나로 묶는다.
주 여호와의 손이 내게 떨어졌다.
↓ ↓
불타는 형상의 손 같은 것이 내 머리털을 잡았다.
↓ ↓
영이 나를 들어올렸다.
에스겔서 기자는 ‘여호와의 영광’이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는 유다족속을 가증하다고 평가했다고 전한다 (겔 8:4-17).
이사야는 ‘여호와의 이름’을 의인화시키고 그 이름의 혀가 ‘삼키는 불같다’고 언급하였다 (사 30:27). MT는 이 어구를 va@K= /ovl=(불같은 혀)라고 읽었다. 이 어구를 헬라어로 그대로 옮기자면 glw'ssa w&" puroV"가 될 것이다. 그런데 LXX는 glw'ssa를 누락시켜 번역했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이름의 혀가 맹렬한 불같이 임할 때는 자기 백성을 괴롭히던 이방인들을 치시고(사 30:28, 31-32),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이라고 말하였다 (사 30:26).
이밖에 개역 말4:1에는 ‘풀무 불같은 날’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 번역대로라면 ‘한 날이 불같다’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개역의 이러한 번역은 ‘오고 있는 풀무 같이 타는 날’(NIV, burn like a furnace)을 오역한 것이다. k=는 ‘풀무’에 붙어있으며, ‘불’(ca@)은 본문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렇게 잠 16:27, 겔 8:2, 사 30:27이 민 9:15처럼 ‘불같은’(ca@K=)이란 문구를 사용했다.
c. 하나님의 응답의 불
구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불 가운데는 사람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불들도 나타난다 (왕상 18:24, 왕하 1:10, 12, 대상 21:26, 대하 7:1). 열왕기 기자는 엘리야 한 사람과 바알 선지자 사백 오십인이 벌였던 극적인 능력대결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의 불을 소개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에게 각각 단을 쌓고 제물을 올리되 불을 놓지 말고(Wmyc!y* al) va@) 각각의 신의 이름을 부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그 제물에 ‘불로 응답하는 신’(va@b* hn#u&y^-rv@a& <yh!l)a$h*) 그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였다 (왕상 18:23-24). 바알 선지자들이 아무리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그가 불로 응답하기를 기도했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 오정쯤 엘리야는 그들에게 잠든 바알을 깨우라고 조롱한다. 그리고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엘리야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이 응답하시기를 기도했다.
yn+n@u& hw*hy= yn+n@u&
내게 응답하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그러자 불이 내려 제물을 태웠다. 열왕기 기자는 이 불을 ‘여호와의 불’(hw*hy= va@)라고 이름 붙였다. 이 갈멜산에 떨어진 ‘여호와의 불’은 엘리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의 불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심을 선포하고 시위하는 불이었다. 또한 그 불은 엘리야가 진정한 하나님의 종임을 증거한 불이기도 했다.
왕하 1장에 나타나는 응답의 불은 왕상 18장에 나타나는 응답의 불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왕상 18 장에 나타나는 응답의 불은 제물만 태웠지만, 왕하 1장에 나타나는 두 번에 걸친 응답의 불들은 무려 102명(오십부장 2명과 100인의 군인들)을 태워버린다. 아하시야가 보낸 첫 번째 오십부장이 “하나님의 사람아, 왕이 말씀하신다. 내려오라!(hd*r@)”며 명령의 말을 한다. 그러자 엘리야는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yn!a* <yh!l)a$ vya! <a!),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너의 오십인을 삼키리라!” 라고 말한다 (왕하 1:10). 그러자 곧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렸다 (왕하 1:9-10). 열왕기 기자는 ‘하나님의 사람이면’이란 말을 통해 엘리야의 바램에 따라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간접적으로 말했다. 세 번째 엘리야 앞에 나타난 오십부장은 엘리야 앞에 엎드려 자기와 오십인의 ‘생명’을 귀히 여길 것을 간구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응답의 불’은 역대기 기자가 보고하는 다윗의 인구조사와 관련된 이야기에 등장한다. 역대기 기자는 사단이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 하게 하였으며 (대상 21:1), 하나님은 ‘멸하는 사자’를 보내사 온역을 일으키게 하셨다 (대상 21:14).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돌이키는 다윗에게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을 것을 명하셨다 (대상 21:18). 이 명령에 다윗은 그 타작 마당에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역대기 기자는 이 때의 모습을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었다”(hw*hy=-la# hr^q*)고 묘사하였다 (대상 21:26). 그러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렸으며, 사무엘 기자와는 달리 역대기 기자는 하나님의 불을 내리심으로 “응답하셨다”(hn^u*) 라고 기술하였다 (대상 21:26). 그리고 불을 내려 다윗에게 응답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렸던 재앙을 거두셨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응답하심을 보고 그곳을 ‘하나님의 전,’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고 이름 붙였으며, 그곳에 성전을 건축하려 하였다 (대상 22:1-4).
네 번째 ‘하나님의 응답의 불’은 다윗이 번제를 드리고 불의 응답을 받았던 바로 그곳에 떨어졌다. 솔로몬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에 성전을 건축하였다 (대하 3:1). 솔로몬은 그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였고(tL^p!T=)(대하 3:19),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자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번제물과 제물을 살랐다 (대하 7:1). 이 솔로몬의 성전 제단에 떨어졌던 불은 솔로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의 불인 동시에 솔로몬의 성전을 승인하는 불이기도 했다.
살펴본 바와 같이 구약은 하나님께서 불을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수 차례 사용하셨음을 말했다. 즉, 하나님께서는 땅에서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하늘에서 불을 여러 차례 내리셨다.
d. 하나님의 종말적 불
구약에는 악인들을 심판하는 종말적 불만 있지 않고, 종말적인 불이되 비심판의 불이 등장한다. 요엘서 기자는 ‘여호와의 날’(hw*hy= <oy)이 이르기 전에 펼쳐질 날들에 대해 기록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 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주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욜 2:28-32a, MT Jl 3:5a)
요엘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올 날들을 ‘그 날들’(<ym!y*)이라고 명명한다(개역은 ‘그때’라고 번역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날들에’(<ym!Y*B^) 하나님께서 ‘나의 영’(yj!Wr, 하나님의 영, 성령)을 만민에게 보내실 것이라고 외친다. 또한 요엘은 성령이 임하는 그 날들에 하나님에 의해 하늘과 땅에 주어질 ‘표적들’(<yt!p=om, 개역은 ‘이적’이라고 번역하였다) 세 가지를 말한다. 그 표적들은 ‘피’(<D*), ‘불’(ca@) 그리고 ‘연기 기둥들’(/v*u* torm&t=y!)이다. 요엘의 ‘불’과 ‘연기 기둥’ 언급은 광야생활의 ‘불기둥과 구름기둥’ 모티브를 따른 것이다. 요엘이 말하는 ‘불’과 ‘연기기둥’은 광야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 안에 현현하셔서 지켜주시고, 인도하시고, 싸워주실 것을 확인하는 표적인 것이다. 이처럼 ‘불’이 하늘과 땅에 주어질 표적으로 주어지는 때는 ‘여호와의 날’이 아닌 ‘그 날들’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구약은 하나님의 심판의 불 그리고 비 심판의 불을 말했다. 구약은 하나님의 심판의 불이 이방인들은 물론 이스라엘도 내렸으며, 여호와의 날은 불의 심판의 날이 될 것이고, 악인들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로 고통을 당할 것을 말했다. 구약은 또한 비심판의 불도 말했다. 구약은 하나님의 언약의 불, 하나님의 현현의 불, 하나님의 응답의 불, ‘그 날들’의 표적으로서의 종말적 불을 말했다.
구약에서 나타난 심판의 불과 비(非) 심판의 불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에만 미친 것이 아니요, 이방인들에게도 미쳤다는 것, 즉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 그리고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권이 구약시대에 나타난 심판과 비(非) 심판의 불을 통해 가시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B. 중간기 유대 문헌의 불
중간기 유대 문헌의 불은 크게 심판의 불과 비(非) 심판의 불로 나누어질 수 있다.
1. 심판의 불
a. 최후 심판의 불
묵시 문헌은 최후의 심판의 도구는 불이라고 말한다 (Eth. En.102:1, S. Bar. 37:1, 48:39, 43, 4 Esr.13:10f., Jub. 9:15, 36:10, Sib., 3, 53f., 71f., 542, 618, 673f., 761, 4, 159f., Apc. Eliae 40:17ff). 최후 심판 때 세상은 불로 살라질 것이다 (Sib., cf. 2, 186ff, 238ff., 3, 83ff., 4, 172ff., 5, 158ff., 211ff., 512-531. cf Eth. En.1:6ff, Vit. Ad. 49f., Apc. Eliae43:5f., Ps.-Sphocles, 2, 1-6).
쿰란 문헌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우주적 불의 심판일 것이라고 말한다 (1Qp Hab.10:5; 1QH 3:29-33; Sib. 937, 41ff). 하나님께서 심판의 집을 소돔처럼 유황불(tyrpwg vab)로 심판할 것이며 (1Qp10:13), 선민의 원수들이 심판을 받을 것임(va yfpvml, 1QS 2:15, 1QH 6:18f).
랍비 문헌에는 묵시 문헌에서 묘사하는 것과 같은 우주적 불탐이 등장하지 않는다.
b. 영원한 형벌의 불
묵시 문헌은 악인들이 불에서 영원히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Eth. En. 9:19, 100:9, 103:8, 4Esr. 7:38. S. Bar. 44:15, 59:2, Apc. Esr. 4:9ff, 16ff, Vis.Esr. 13ff, 19, 45f; Apc. of Sophonias 5:1, 15:6, Sib., 2286ff., 295). 형벌의 불은 영원한 불 (Gr. Bar. 4:16, Test. Zeb. Jud. 25:3, 4Macc. 12:12), 불못 (Eth. En. 90:25, Gr. En.10:6 [e*mpurismov"]), 불기둥 (Eth. En.18:11, 21:7, 90:26, Apc. of Shphonias 7:2, 3 1 En. 17:5, 2 En. 10:2), 불처럼 뜨거운 오븐 (Eth.En. 54:6, 98:3, 4Esr.7:36)으로 묘사된다. 게엔나는 이 저주받은 계곡은 영원히 저주받은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1 Enoch 27:2). 죽은 자들이 거하는 어두운 스올이 B.C. 2부터 불경건한 자들을 위한 불의 징벌 장소로 변한다 (게힌놈은 불로 징벌을 받는 곳 bChag., 15b, 불이 홍수짐 Mek. on Exod. 18:1, bZeb. 22a, Gen. Rab. 39:6, 49:9).
쿰란 문헌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영원한 불로 형벌 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1QS 2:8, 1QS 4:13, 1QH 17:13, 깊은 스올의 불 1QH 4:33, 6:25, 8:20, 30).
2. 비(非) 심판의 불
묵시 문헌에서 불은 흙, 물, 공기와 함께 세상을 이루는 네 가지 원소로 여긴다 (4 에스드라 4:10(제2에스드라), 8:8). 그리고 성령의 영감은 ‘불같은 색깔’을 띈 물 컵으로 묘사된다 (4 에스드라서 14:39).
랍비 문헌은 불을 창세 전에 존재했던 세 요소들 중 하나로 본다 (Ex. r.,15, 12:12). 하나님의 불은 불같은 존재들인 반역한 천사들을 그분의 손가락으로 태웠다 (bJoma,21b, Bar). 토라는 불과 동일시된다. 율법은 불로 구성되어 있는데 겉장은 흰 불, 글씨는 검은 불이 타고 있다 (jSota.8,4 (22d, 32ff)). 시내산에서 내려오는 모세의 ‘오른 손에는 율법의 불이 있었다’ (미드라쉬 신33:2). 율법의 두 불은 구전 율법과 기록된 율법이다 (Cant.r., 2, 5.) 지옥의 불은 서기관들에게 어떤 힘도 발휘할 수 없다 (bChag., 27a).
쿰란 문헌에도 비 심판의 불이 등장한다. 1Q29는 4Q37654에도 포함되어 보존되어있다. 밀리크는 1Q29가 ‘불의 혀들’이라는 말을 두 번 등장시키기 때문에 그 문서를 ‘불의 혀의 예식’(The Liturgy of the Three Tongues of Fire)라고 명명했다. 조각 1의 3행에는 va twnwvlb (불의 혀로)라는 말이 등장한다. 더 놀랍게도 조각 2의 3행에는 va twnwvl vwlv (불의 세 혀들, three tongues of fire)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 ‘불의 혀들’은 대제사장의 어깨에 달려있는 에봇에서 나오는 불을 묘사한 것으로 대속죄일에 선지자들의 진위 여부를 시험하는 의식에서 등장한다. 요세푸스(ben Matthias Josephus)는 하나님께서 제사를 인정하실 때마다 대제사장의 어깨에 있던 에봇이 빛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또한 그는 그러한 일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어긴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자기가 책을 쓰기 200년 전에 그쳐버렸다고 전한다.
살펴본 바와 같이 중간기 유대 문헌에서는 심판의 불이 나타나는데 그 불은 주로 최후의 심판과 영원한 형벌과 관련된다. 그리고 중간기 문헌에는 비심판의 불도 나타나는데 흥미로운 것은 예언의 진위를 가리는 ‘불의 혀’의 등장이다.
C. 요약
구약은 하나님의 심판의 불을 말한다. 레위기 기자는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 앞에’ 다른 불을 담아 분향하는 죄를 범했기 때문에 ‘여호와 앞에서 나온 불’로 죽임을 당했다고 말했다. 모세는 하나님을 ‘소멸하는 불’로 묘사했다. 신명기 기자는 불이 신성을 상징할 여지를 남겼다. 아모스와 호세아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죄를 판결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대행자로서 불을 말했다. 예레미야는 유다와 아스라엘이 숭배의 대상으로 삼은 ‘푸른 감람나무’에 직접 불을 피우시는 분으로 묘사했다.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음부 예루살렘을 태워버리시는 분으로 묘사했다. 하나님의 심판의 불은 구약시대에 이방인들에게도 내렸다. 소돔과 고모라 성은 그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하늘로서 내린 불로 멸망당했다. 애굽은 이스라엘을 놓아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불의 심판을 받았다. 아모스는 다메섹․가사․두로 등 이방 나라들이 그 죄로 인해 하나님의 불로 심판을 받을 것을 예언했다. 구약에는 종말적 심판의 불도 등장한다. 이사야, 요엘 등은 여호와의 날에 임할 심판의 불에 대해 말했다. 또한 예레미야, 이사야 등은 영원한 형벌의 장소/수단으로서 ‘꺼지지 않는 불’을 말했다. 구약은 또한 비(非) 심판의 불도 말했다. 구약은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의 언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언약의 불, 시내산과 광야에 나타난 하나님의 현현의 불, 엘리야와 다윗, 솔로몬에게 임한 하나님의 응답의 불, ‘그 날들’의 표적으로서의 종말적 불을 말했다.
유대 중간기 문헌에서는 심판의 불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불은 주로 최후의 심판, 영원한 형벌과, 즉 종말론과 관련된다. 중간기 문헌에는 비(非) 심판의 불도 나타난다. 묵시문헌과 랍비문헌은 불을 세상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 보았다. 랍비문헌은 율법이 흰 불과 검은 불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쿰란 문헌에서 예언의 진위를 가리는 ‘불의 혀’의 등장이다. 구약의 불과 비교할 때 중간기 유대문헌의 불에는 심판적 요소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즉, 중간기 유대 문헌에는―이 시대에 종말론이 득세했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인데―과거나 현재의 불보다는 미래에 내릴 우주 종말적 심판의 불이 압도적으로 많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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