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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신학

오순절운동에서 신학 선행, 경험 후행성

한오신 2017. 6. 3. 10:02

 

 

오순절운동에서 경험보다 신학의 우선성(이창승영산신학폼).pdf

 

 

 

태초에 신학이 있었다:

오순절운동에서 신학 선행, 경험 후행성

 

 

이창승

 

국문초록

 

경험 선행설은 바르지 않은 것이다. 경험 선행설은 오순절운동이 경험에서 시작되었고 그 후에 신학적 연구와 설명이 뒤따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오순절운동은 신학에서 시작되었으며, 경험이 뒤따랐다. 오순절운동은 일련의 과정과 함께 탄생했다. 1) 신학적 성경 연구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는 무엇인가라는 신학 주제적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2) 그 신학적 성경연구로부터 신학적 가설 도출(방언 말하는 것), 3) 경험 (방언 말하기),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한 신학적 가설 확증과 원리 확립. 오순절운동의 시초에 신학 주제적 성경연구가 경험을 선행했다. 다른 말로, 오순절운동의 태초에 신학이 있었다.

본 소고는 먼저 주로 시무어를 오순절의 시조로 삼음으로써 경험 선행설을 주장하는 잘못된 견해와, 그 견해가 산출해 내고 있는 수정주의를 살펴볼 것이다. 그 다음, 신학 선행설을 확증할 것이다. 이 직무는 찰스 파함이 오순절운동을 시작시킨 과정 분석과 신학 선행성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있는 견해들을 살펴봄으로써 달성될 것이다. 그 결과, 경험 선행성과 수정주의가 반박될 것이다.

 

I. 서론

    오순절운동은 경험(experience)에서 시작된 것인가, 아니면 신학(theology)에서 시작된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오순절운동이 경험에서 시작되었고, 신학이 뒤따른 운동이라고 잘못 주장하고 있다. 경험 선행 또는 우선 위설은 오순절운동의 근간이 되는 성령침례와 방언과의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를 떼어놓고 수정하려는 수정주의를 생산해 내고 있다. 그러나 오순절운동은 경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신학적 주제에 따른 성경연구로부터 시작되었다. , 오순절 운동은 신학에서 시작되었고, 경험이 뒤따른 운동이다. 오순절운동의 태초에 신학이 있었다(In the beginning of Pentecostal movement there was a theology). 이런 오순절운동에 있어서 신학의 선행성을 바르게 인식해야 올바른 오순절신학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소고는 먼저 경험 선행 위설의 근원을 찾고, 주로 시무어를 오순절의 시조로 삼음으로써 오순절운동에서 경험이 선행한다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견해들과 그 주장이 산출해 내고 있는 수정주의를 살펴볼 것이다. 그 다음 찰스 파함이 오순절운동을 시작시킨 역사적 추이를 분석하여 오순절운동에서 신학이 선행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신학의 선행성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의 견해들을 언급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오순절주의의 신학 선행성이 확립되고, 경험 선행설과 수정주의가 반박될 것이다.

 

II. 오순절 운동에 대한 경험 선행적 위설

 

    오순절운동이 방언 경험에서 시작되었고, 이후에 성경적, 신학적 이론을 첨부한 것으로 오해하거나 의도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오순절운동에 대한 경험 선행 위설은 신약 신학자 고든 피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통 오순절주의자들(Classical Pentecostals)은 성령침례에 방언이 동반되는 사도행전적 오순절 경험은 오늘날 신자들이 따라야 할 규범(norm)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 출신 고든 피(Gordon Fee)는 그 사도행전적 경험을 규범(norm)이 아닌 그저 정상적인(normative) 것이라고 치부함으로써 정통 오순절의 범위를 벗어났다. 그런 그는 일반적으로 오순절주의자들의 경험은 그들의 해석학을 선행했다. 오순절주의자는 자신의 경험을 주석하는 경향이 있다”(in general the Pentecostals’ experience has preceded their hermeneutics. In a sense, the Pentecost tends to exegete his experience)고 주장했다.

    친오순절주의자이면서 오순절운동을 역사적으로 연구해온 배덕만은 파함이 190111일 아그네스 오즈만이 방언을 말하는 것을 목격한 후 방언을 명확한 성령침례의 증거로 인식하게 되었고, 이런 과정을 통해 오순절운동의 신학적 기초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는 “19001231일 송구영신예배 중, 학생인 아그네스 오즈만이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고, 팔함은 방언을 성령세례의 일차적 증거로 해석하며, 감리교 및 성결운동과 구별된 독특한 오순절 교리를 만들어 냈다고도 말했다. 배덕만은 결정적으로 근대오순절운동의 방언은 방언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사색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탄생한 것이 아니라, 방언의 경험이 선행하고, 이 경험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논쟁이 뒤따랐다고 보았다.

    오순절운동에 있어서 신학에 대한 잘못된 경험의 선행성 주장은 특히 시무어를 오순절운동의 시조로 삼는 흐름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영국 버밍햄 대학에 오순절연구소를 설립한 홀렌베거는 오순절운동의 기원을 흑인 시무어로 보고 오순절운동을 흑인의 구전적 문화(oral culture)의 영향력 아래 놓는다. 그리고 오순절운동의 성장의 원인을 어떤 독특한 교리(doctrine)에 두지 않고 구전성(orality), 그리고 신학과 간증의 서사성”(narrativity of theology and witness)에 둔다. 홀렌베거는 오순절운동의 교리적 기초를 놓은 파함을 오순절의 시조로 간주하지 않음으로써 그런 경향을 띄게 된 것이다.

    또한 스위스 개혁주의 교회 소속이면서 시무어로부터 시작된 아주사 운동을 연구한 장 다니엘 플뤼스도 오순절주의에서는 경험이 먼저 왔고, 신학이 그 뒤를 따랐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순절운동 시초에 경험과 간증이 있었다. 그리고 신학적 구성의 양식을 띄는 설명이 뒤따라 왔다”(In the beginning there was an experience and a testimony, then came an explanation in the form of a theological construct)고 말함으로써 경험 선행설을 명문화하였다. 폴란드 출신 오순절주의 신학자로 인식되어온 그러나 교회일치운동적 신학에 주안점을 두어온 풀러신학교의 조직신학자 벨리-마티 케케이넌 또한 플뤼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오순절주의의 특징을 구전성”(orality)에 두었다. 그리고 홀렌베거를 이어 영국 버밍햄대학교에서 오순절주의를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다는 아프리카 출신의 앤더슨도 그 시초에(in its beginning), 서방세계에서 오순절주의는 공통 교리(a common doctrine) 보다는 공통 경험(a common experience)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일치운동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오순절운동에 대한 경험 선행 위설은 오순절운동에 대한 경험 우선성 주장과 짝을 이루고 있다. 영국 엘림 오순절주의 학교인 리젠트 대학의 위링턴(Keith Warrington)은 오늘날 전 세계 오순절 진영에서 핵심교리들은 통일되지 못하고 서로 다르므로 신학적 교리를 오순절주의의 핵심으로 삼을 수 없다고 분석하고, 오순절주의와 경험과의 관계를 “Experience: The sina qua non of Pentecostalism”이라는 문구로 규정함으로써 교리보다는 경험을 오순절주의의 필수 조건으로 삼았다. 워링턴은 또한 오순절 신학이 독특한 것은 비록 신학적 신념들과 실천들이 다양할지라도 경험을 강조하는 것이 중심적이라는데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오순절 운동은 신조적이나 신학적 운동이 아니다라고 잘못 규정짓는다.

    경험 선행 위설은 당연히 그 경험의 분별 기준 설정 문제에 봉착한다. 영국 가톨릭 은사주의자 호켄은 감각적으로 경험과 신학적 교리 사이에 분별을 삽입함으로서 "경험(experience) → 분별(discernment) → 교리(doctrine)"라는 도식을 만들었다. 그런데 신학적 기준이 설정된 후 경험하게 되면, 경험의 진위 여부를 분별하는 데 그다지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지만, 그런 기준 없이 경험한 후 그 경험이 잘된 것인지 못된 것인지를 분별하려 한다면 그 기준 설정을 놓고 의견히 분분하여 분열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정통 오순절(Classical Pentecostal) 진영의 대표적 조직신학자로 손꼽히고 있는 미국 방가드 대학교(Vanguard University)의 프랑크 마키아 마저도 경험 선행 위설에 오염되어 오순절운동이 먼저 방언에 대한 경험이 있었고, 후에 이 경험에 대한 신학적 성찰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방언은 오순절주의에서 교리로부터 시작되지 않았고, 성령침례에 동반될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가 말하는 교리는 아마도 미 하나님의 성회의 신앙진술문을 의미할 것이다. 그는 오순절의 태초에 신학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함으로써 이런 오류를 범하였다.

우리가 교리라는 형식 안에서 방언의 성령침례와의 관련성을 형식화함으로써 경험으로서 방언의 적절한 자리와 직접성으로부터 나왔다는 확신을 더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언은 오순절주의자들 가운데서 하나의 교리로서 시작하지 않았고, 위에서 설명된 분명한 이유 때문에 성령침례에 동반될 것으로 기대된 하나의 경험으로서 시작되었다. 방언과 성령침례 사이의 연결은 하나의 교리로서 시작되지 않았고, 성령침례 경험과 방언이라는 상징 사이의 필수적인 관계를 함축하는 간증으로서 시작되었다. 그 교리가 수행한 것은 의견이 일치될 수 있는 언어로 이 관계에 대한 공식 진술을 제공하려 한 것이었다.

 

    이렇게 오순절운동에 있어서 신학적 교리보다 경험을 앞세우는 경향은 시간이 흘러 오순절운동의 경험이 바뀌었으므로 신학적 교리도 바뀌어야 한다는 수정주의(revisionism)를 낳고 있다. 프랑크 마키아는 라너(Rahner)와 쉴레벡스(Schillebeeckx) 같은 가톨릭 신학자들의 예전 신학의 바탕 위에서 영적 실제(성령침례)표의 과정에서가시적 표징(방언) 안에 있는, 그 가시적 표징을 통해 경험되는 무언가로 본다. 그런데 그에게 육체적 증거는 반드시 방언으로 말하기일 필요가 없다. 사도행전적 원형들(the Acts pattern)은 오순절주의자들에게 그 연결 확립을 위한 어떤 기반을 제공하는 데, 마키아는 사실상 이것은 고정된 법칙으로 발전되지 말아야한다고 경고한다. 마키아는 증거”(evidence)라는 말이 너무 과학적인 용어라고 판단하고 그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순절운동의 시작을 신학적 교리가 아닌 경험에 두는 프랑크 마키아는 오순절운동과 신학의 기반인 성령침례와 방언과의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를 강하게 나타내는 증거라는 파함이 창조해낸 신학적 용어를 버리고 상징/표징”(sign)이라는 용어만을 채택하여 약화시킴으로써 성령침례와 방언 사이를 갈라놓는 수정주의 물결에 휩쓸려 빠져 버리고 말았다.

 

성령침례는 단지 방언과만 관련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성령침례를 방언에 구속시킬 수는 없다. 그렇게 하면 성령침례는 방언을 떠나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우리의 논의의 맥락에서 보면, 성령침례는 근본적으로 그리고 필수적으로 방언이 상징하는 것(what tongues symbolize)과 관련된다. 그래서 최초 증거 교리는 비록 신학적 반성과 수정(revisioning)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치 있다.

 

 

III. 오순절 운동에서 신학적 성경 연구의 선행성과 경험 후행성

 

사도행전적 오순절의 성령침례와 방언의 동반은 경험이 선행하였고, 교리와 신학이 그 후에 이어졌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순절운동을 세계교회협의회(WCC)에 알리며 교회일치 운동에 앞장섬으로써 미스터 펜테코스트”(Mr. Pentecost)로 칭해졌던 미국 출신 듀 플레시스는 사도들의 삶에서 오순절적 성령침례의 경험이 앞섰으며, 그 후에 사도들이 그 교리와 신학을 발전시켰다. 사도들은 당시에 경험을 했지만 교리는 없었다고 말했다. 사도행전적 오순절에 발생했던 성령침례와 방언의 동반 경험은 사도들이 예기치 못했던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방언을 제외한 성령침례에 대한 교리, 즉 가르침은 오순절 이전에 존재했다. 침례 요한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침례를 주실 것이라고 선포했으며(3:1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성령의 임하심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가르치셨고(14, 16), 성령으로 침례를 받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명령하시기도 하셨다(1:4-5). 그러니 사도들은 오순절 경험 이전에 성령침례에 대한 교리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보다는 어느 정도의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사도행전적 오순절에서 성령침례만 놓고 보자면, 신학 이후에 경험이 왔고, 성령침례에 동반되는 방언을 놓고 보자면, 경험 이후에 신학이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오순절운동은 경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신학적 주제에 따른 성경연구로부터 신학적 가설을 세운 후 그 가설을 경험으로 입증함으로써 시작되었다. 현대 오순절운동은 이미 오순절에 성령침례에 동반되는 방언을 경험한 사도들의 간증과 신학이 기록된 성경을 읽고 연구하여 신학적 원리를 추출해내고, 그 원리를 적용하여 그와 동일한, 성령침례에 동반되는 방언을 경험함으로써 발발하였다. 이런 오순절 운동에 있어서 신학 선행성과 경험 후행성은 현대 오순절 운동을 촉발시켰던 찰스 파함(Charles F. Parham)의 글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190010월 중순 경에 미국 중부 캔사스주의 동북부 토페카(Topeka)에 벧엘 성경학교(Bethel Bible School)을 설립했다. 그런데 그 성경학교의 교과서는 오직 하나였는데 그것은 바로 성경이었다. 파함은 그것이 당시로서는 비인습적이었고 비현실적이었지만 오직 예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회고했다.

 

19001015일 우리는 캔사스주의 토페카에 후에 벧엘 대학”(the College of Bethel)이라고 널리 알려지게 된 성경학교를 열도록 인도되었다. 그것의 독특한 특징과 가르침들은 그 지역 전역에 걸쳐 일간지의 주제가 되었다. 그 학교의 유일한 교과서는 성경이었다. 그것은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서는 비인습적이고(unconventional), 비현실적(impractical)인 것 같았겠지만 그 유일한 목적은 예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완전히 버리는 것이었다.

 

그 성경학교의 목적은 성경에 있는 갖가지의 것들을 머리로만 배우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아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주신 모든 명령을 문자적으로 순종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 목적은 문자적 성경 해석과 경험적 이해였다.

 

이 성경학교에서 우리의 목적은 성경에 있는 것들을 단지 우리의 머리로만 배울 뿐만 아니라 그것들 각각을 우리의 마음으로 아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모든 명령은 문자적으로 준행되어야 했다.

 

벧엘성경학교 학생이었던 디스틀스웨이트 양은 그 학교의 공부방식을 설명해 주었다. 그것은 한 주제(a subject)를 선정한 다음, 그 주제에 관련된 성경적 언급들을 조사하고 그 구절들을 학급생들 앞에서 암송하였으며, 성령께서 그 메시지에 대해 확신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었다. 또한 파함은 강의를 통해서도 가르치기도 했다. 파함은 40여명의 학생들에게 회개”, “회심”, “성별”, “성화”, “신유그리고 재림등의 신학적 주제들에 관해 가르쳤다. 그리고 학생들은 190012월에 그 주제들에 관한 시험을 치렀다. 그런데 한 가지 주제에 문제가 제기 되었다. 그것은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the Bible evidence of the Baptism of the Holy Ghost)는 무엇인가?”였다. 당시 성결주의 등 다양한 운동들은 성령침례의 증거로 외치기”, “껑충껑충 뛰기”, “뛰어 오르기등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파함에게 그것들은 사도행전 2장이 제시하는 모습에는 무언가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파함은 학생들에게 성령침례의 증거를 성경에서 찾도록 과제를 내주었다.

 

12월에 우리는 회개, 회심, 성별, 성화, 신유 그리고 주님의 임박한 재림이라는 주제들에 관해 시험을 치렀다. 우리는 우리의 연구에 있어서 한 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사도행전 2장은 어떤가? . . . 매우 다양한 단체들이 오순절적 침례(Pentecostal Baptism)를 받음에 대한 증거로서 서로 다른 것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나는 학생들에게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열심히 연구하게 했다.

 

벧엘 성경학교의 학생들은 그 과제를 받고 성경과 씨름했다. 그리고 삼일간의 집회에서 돌아온 파함에게 연구결과를 제출했다. 그런데 40여명의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에 대한 답은 동일했다. 그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성령침례에 대한 성경적인 증거는 곧 방언”(speaking in other tongues)이라고 결론지었다.

 

나는 삼일 동안의 집회를 위해 캔자스 시에 가야만 했기 때문에 삼일동안 학교를 떠난 후 1900년 송구영신예배 인도를 위해 그 날 아침 학교로 돌아왔다. 아침 10시경에 나는 학교 종을 울려 학생들을 예배실로 모으고 숙제의 답을 제출하게 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같은 대답을 했다. 비록 오순절적 축복이 내렸을 때 여러 가지 것들이 다양하게 나타났지만, 각 경우에 반박의 여지가 없는 증거(the indisputable proof)는 다른 방언을 말하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약 75명의 사람들이 예배실에 모였다. 저녁 1030분경에 오즈만(Agnes N. Ozman)이라는 자매가 파함에게 자기 머리에 안수해주기를 요청했다. 그녀는 성령침례를 받아 해외선교지에 가고자 했다. 처음에 파함은 자신이 방언을 말하는 체험이 없었으므로 안수를 거절했다. 그러나 그는 곧 예수 이름에 자신을 낮추고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파함이 몇 마디도 채 말하지 않았을 때 오즈만 양은 중국어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후 3일 동안 영어를 말할 수 없었다.

 

40명의 학생들을 포함한 약 75명이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였다. 강력한 영적 힘이 학교 전체를 덮고 있었다. 오후 1030분경에 아그네스 오즈만 자매가 자신은 해외선교지로 가고 싶기 때문에 성령침례를 받고 싶으니 자기에게 안수해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처음에는 나 자신이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거절했다. 그러나 계속 요청을 받으며 나 자신을 낮추어 예수 이름으로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내가 30마디도 말하기도 전에 영광이 그녀에게 떨어졌으며, 빛이 그녀의 머리와 얼굴 주위를 둘러싸는 듯 했다. 그리고 그녀는 중국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으며, 3일 동안 영어를 말할 수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경험을 알리기 위해 영어로 글을 쓰려고 했을 때 그녀는 중국어를 썼다. 그 사진이 당시에 발간된 신문에 지금도 여전히 실려 있다.

 

파함을 비롯해서 그 놀라운 오순절적 능력의 회복의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다락에 있는 기숙사의 방에서 침대들을 들어내고 23일 동안 밤낮으로 성령강림을 기다렸다. 190113일 파함은 토페카 시에 있는 자유 감리교회에서 간증집회를 한 후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그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면서 가장 놀라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가 그 방의 문을 열었을 때 그는 그 방이 램프 빛보다 밝은 흰 빛으로 가득 찬 것을 보았다. 12명의 사역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해 다른 방언을 말하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불의 혀(tongues of fire)가 임했다. 파함이 한 테이블 뒤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들은 예수 나의 사랑이라는 찬양을 적어도 여섯 가지 언어로 부르기 시작했다. 파함은 자기에게도 동일한 축복을 주시기를 기도했다. 그 때 그의 혀가 뒤틀리며 스웨덴어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다음 날 아침까지 여러 언어로 방언을 말했다.

방언현상은 파함의 사역이전에도 성결운동 현장 등에서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신학적 주제에 따른 성경연구를 통해 성령침례의 증거방언이라는 신학적 가설/원리가 세워지고 그 신학에 따라 기도하여 성경과 동일한 성령침례에 동반되는 오순절적 방언을 경험한 것은 파함의 사역에서 처음 발생했다. 신학적 가설이 먼저 세워지고, 그 후 경험이 그 가설을 확증함으로써그 가설이 오순절운동의 근거가 되는 정설이 되었다. 그럼으로써 현대 오순절 운동이 촉발되었던 것이다. , 오순절운동은 경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신학적 주제에 따른 성경연구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오순절운동의 태초에 신학이 있었다(There was a theology in the beginning of Pentecostal Movement).

그런데 미국 하나님의성회 세미나리(AGTS)의 역사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폴 루이스는 찰스 파함 이래로 지금까지 신앙이 오순절적 경험의 기초가 되었다”(it was beliefs that predicated the Pentecostal experience)고 주장했다. 그는 파함이 벧엘 성경학교에서 실시했던 성령침례라는 신학적 주제에 대한 성경적 증거 연구와 가설의 도출 등을 신학적 작업(theological work)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저 신앙”(belief)이라고 치부해버린 것이다. 아마도 그는 파함이 그가 중립적이라고 인정하는 역사비평에 의해 성경을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파함의 신학적 성경연구를 그저 신앙이라고 격하시켜 버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자기의 전제에 의해 오순절 아버지의 신학적 성경연구를 무시한 것이다. 폴 루이스의 신앙 선행설 또한 경험 선행설처럼 자신 만의 전제에 왜곡된, 피해야만 할 위설이다.

그렇게 하면 않되겠지만, 설혹 윌리암 시무어를 오순절의 기점으로 삼는다할지라도 아주사 운동에서도 역시 신학이 경험을 선행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는다. 아주사 운동은 시무어가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 가르침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운동의 발발 시점에 정작 시무어 자신은 방언을 말하지 못했다. 시무어는 텍사스 휴스턴에 개설된 파함의 성경학교에서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우고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그는 그때 방언을 체험하지 못했다.

시무어에 대해 박사논문을 쓰면서 시무어를 오순절주의 시조로 삼고, 시무어에게서 되도록 파함의 영향력을 지우려 했던 더글라스 넬슨은 시무어가 파함이 가르쳤던 방언에 사로잡혔다고만 말할 뿐, 시무어가 파함으로부터 성령침례와 방언의 밀접성과 방언이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라는 것을 배웠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는 편향성을 드러냈다. 그런 넬슨조차도 시무어가 그때 방언을 말하지 못했다는 것을 시인했다. 넬슨은 시무어가 로스엔젤레스로 가서 자신은 말하지 못하는 방언을 성령침례에 동반되는 표징으로 선포했던 것에 대해 시무어 자신은 그런 방언을 말한 적이 없지만, 그것을 믿었다”(Seymour himself had not so spoken but he believed in it)라고 썼다. 시무어는 그 아주사 운동이 진행되던 어느 날 비로소 방언을 말할 수 있었다. 시무어의 아주사 거리 운동에서도 토페카에서처럼 신학이 경험보다 선행했다. 시무어는 그때를 아래와 같이 회고했다.

 

[로버츠(Bro. Roberts)라는 성결협회의] 총회장은 내게 진정한 성령침례에 대해 물은 후에, 그 자신도 성령침례를 받고 싶으니, 내가 [방언을 동반하는] 진정한 성령침례를 받으면, 자기에게 알려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진정한 성령침례를 받았을 때 그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시무어의 공동체는 시무어의 회고를 담고 있는 동일한 지면에서 아주사 거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운동의 효시를 파함의 베델 성경학교로 명시했다. 그리고 그 학교에서 성령침례라는 신학적 주제를 내걸고 성경공부로부터 시작하여 방언을 동반하는 성령침례를 경험함으로써 촉발된 그 운동의 시작의 역사를 소개했다. 시무어를 포함한 시무어의 공동체는 오순절운동이 경험이 아닌 신학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1960년대에 오순절운동의 역사를 기록한 니콜은 오순절운동에 있어서 경험보다 성경연구의 선행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190012월 말경에 파함은 캔사스 시로 가야만했다. 떠나기 전에 그는 각 학생들은 개인적으로 성경을 연구해서 어떤 사람이 성령 침례를 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특별한 증거가 있는지 찾아보도록 했다.” 니콜에 따르면, 파함이 돌아와 학생들에게 물었을 때 그들은 사도 시대에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침례를 주셨을 때, 한 가지 외적인 나타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방언을 말하는 것이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파함의 안수 후 아그네스 오즈만이 성령을 받으며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고 보고한다.

파함의 벧엘 공동체에서 방언 경험보다 성경 연구가 선행되었다는 것은 1970년대에 오순절적 성결운동의 역사를 쓴 빈슨 사이난도 그의 연구에서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는 파함은 190012월까지 성화와 신유를 포함한 성결교회의 주요 교리들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학생들을 이끌었다. 그들이 사도행전 2장을 공부하게 되었을 때, 방언을 포함하여 예루살렘에서 오순절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서 연구하였다고 기록한다. 그는 또한 파함은 설교약속 때문에 3일간 학교를 떠나있게 되었다. 떠나기 전에 그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성령침례를 받은 성경적 증거들을 성경에서 찾아보라는 과제를 주었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학생들에게 자신들이 공부한 결과들을 말해보라고 했고, 놀랍게도 학생들은 만장일치로 그 증거가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기록했다. 또한 더 나아가 그는 파함과 그의 학생들은 19001231일 송구영신 예배를 드렸다. 이 예배에서 아그네스 오즈만이란 학생이 파함에게 안수기도를 청하면서, 성령침례를 받고 방언을 말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 . . 오즈만 양은 광채가 그녀의 머리와 얼굴을 비추는 동안 중국방언으로 말하기시작했다고 한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그는 일반적으로 이 사건이 미국에서 근대 오순절 운동의 시작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덧붙인다.

1980년대에 파함의 전기로 박사학위를 받은 제임스 고프도 역시 오순절운동에 있어서 경험보다 주제적 성경연구의 선행성을 인식한다. 그는 파함의 글을 직접 인용하며 파함의 벧엘성경학교에서 사도행전 2장 연구와 그 이후 아그네스 오즈만 양의 방언 경험에 대해 언급한다.

미 하나님의 성회 소속 대학과 세미나리에서 오랫동안 가르쳤던 오순절신학자 윌리엄 멘지스(William W. Menzies)는 토페카에서 아그네스 오즈만 양(Agnes Ozman)의 방언 이전에도 방언을 말함이 있었지만, “오즈만 양의 경험이 특별히 독특했던 것은 그녀의 경험이 인식 될 수 있는 신학적 이해의 범주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부연하여 이러한 영적 부흥이 성경 연구라는 현실적 상황에서 시작되었으며 그러한 상황에서 신학적 정체성이 규정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 윌리엄 멘지스는 오순절운동은 신학적 성경 연구에서 시작되었으며, 경험이 이미 세워둔 신학에 의해 규정되었다고 바르게 판단한 것이다.

위와 같이 초기 오순절운동의 신학 우선성을 주장하는 윌리엄 멘지스의 해석은 파함의 것과 매우 흡사하다. 윌리엄 멘지스의 관심사는 오순절 신학: 해석학에 관한 소론”(Pentecostal Theology: An Essay in Hermeneutics)에서 요약된다. 멘지스의 총체적 해석은 1) 귀납적 단계(the inductive level), 2) 연역적 단계(the deductive level), 3) 검증 단계(the verification level)라는 세 가지 단계를 갖는다. 귀납적 단계는 성경에 대한 주석이다. 멘지스의 총체적 해석에서 연역적 단계는 귀납적 단계를 보완한다. 귀납적 단계가 주석이라면, 연역적 단계는 성경 신학의 주석이다. 연역적 단계는 “. . . 공통점이 없는 그리고 때로는 따로따로 떨어진 구절들을 총체적 의미로통합한다. 그것은 신앙의 유비의 원리에로 나아간다.” 마지막으로, 멘지스의 총체적 해석은 검증 단계를 포함한다. 이것은 현대적 경험의 단계다. 멘지스는 만약 어떤 성경적 진리가 보급되려면, 그것이 삶에서, 검증되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바꾸어 말하면, 비록 경험이 신학을 세우지는 않지만, 경험은 신학적 진리를 입증하거나 검증한다. 윌리엄 멘지스의 해석학은 성경연구 후에 신학적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경험으로써 확증하여, 그 경험을 증거라고 명명한 파함의 신학 주제적 성경 연구를 반영한다. 윌리엄 멘지스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1900-01에 캔사스 토페카의 베델 성경 학교에서는 성경에 대한 귀납적 연구가 학생들로 하여금 방언을 말하는 표징을 동반하는 성령침례를 기대하게 했다. 그들이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사실적으로 경험했을 때, 그들은 성경적 개념(biblical concept)과 경험적 실제(experiential reality) 사이의 연속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able to affirm the continuity). 사도적 교회에 대한 그들의 이해 전체가 바뀌었다. 그들은 귀납적 단계에서의 진리, 연역적 단계에서의 진리, 그리고 검증 단계에서의 진리의 통합을 발견했다.!

 

신학적 교리의 선행성 측면에서, 복음주의자 도날드 데이턴이 오순절주의를 단순한 경험적 사건이 아닌 독특한 신학적 발전이라고 주장한 것은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갖는다. 물론 오순절주의가 방언에만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 그의 신학적 안경은 수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오순절운동의 전 단계인 성결운동 진영 안에서 성결로부터 능력부여로의 성령침례 개념의 신학적 변이를 상세하게 연구하였다. 데이턴에게 오순절운동은 경험적인 것보다는 신학적 운동인 것이다.

재침례주의와 경건주의, 그리고 웨슬리주의에 뿌리를 둔 메시야 대학에서 교회사와 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더글라스 제이콥슨은 초기 오순절 지도자들을 신학자로 간주하였다. 그는 19세기 오순절 지도자들을 사상가”(thinker)라고 부르고, 그들은 신학적 문구로 전환시킬 줄 알았던 창조적인 사상가들”(creative thinkers)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그는 비록 경험(experience)이 초기 오순절운동에서 중요하기는 했지만, 신학적 진리가 경험의 길잡이였다고 분석했다. 그의 눈에는 경험이 홀로 한 사람을 오순절주의자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오순절적 방식으로 해석된 경험이 한 사람을 오순절주의자로 만들었다”(Experience alone did not make one a pentecostal. It was experience interpreted in a pentecostal way that made one a pentecostal). 제이콥슨은 조금 심했지만 심지어 파함의 신학이 그의 제자들의 경험을 창조해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까지 말했다. 제이콥슨은 오순절주의 밖에서 오순절주의를 정확하게 간파했다. 그에게 파함의 베델 성경학교에서는 신학이 경험을 선행했다”(theology preceded experience).

 

 

IV. 결론

 

 

오순절운동은 신학에서 시작되었으며, 경험이 뒤따랐다. 오순절운동은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는 무엇인가라는 신학 주제적 질문에 따라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연구에서 신학적 가설을 도출한 후, 그 가설에 따라 기도하여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로서 방언을 경험함으로써 그 가설이 확증되어 원리가 된 일련의 과정과 함께 시작되었다. 오순절운동의 시초에 신학 주제적 성경연구가 경험을 선행했다. 그러므로 오순절운동이 경험에서 시작되었다는 경험 선행 주장은 위설이므로 폐기되어야 한다. 성경연구를 통한 신학 선행성이 오순절 운동과 신학에 확고하게 자리 잡게 해야 한다. 오순절운동은 신학에서 시작되고 경험으로 입증된 신학적 운동이다.

경험 선행 위설에 바탕을 두고 성령침례에서 방언을 떼어놓거나 그 둘 사이의 관계를 약화시키려는 수정주의 또한 바로 잡혀야 한다. 물론 경험은 오순절운동과 신학에서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경험이 성경 연구를 바탕으로 하는 신학적 탐색을 선행한다느니, 경험이 성경연구와 신학적 탐색을 대체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과 행태들은 그야말로 중단되어야 한다. 오순절운동의 태초에 신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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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In the Beginning There Was a Theology:

The Priority of Theology to Experience in Pentecostal Movement

 

Chang-Soung Lee

 

Experience first theory is not correct. The theory has persisted in that Pentecostal Movement started with experience, and then theological explanation followed. But, in fact, it began with theology, and next experience followed. Pentecostal Movement was born with the process: 1) theological Bible study (to give answer to the theological thematic question, “What is the Bible evidence of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2) extraction of a theological hypothesis from the theological bible study (speaking in tongues), 3) experience (speaking in tongues), the confirmation of the hypothesis and establishment of the principle through the experience. In the beginning of Pentecostal Movement, theology preceeded experience. In other words, there was a theology in the beginning!

As the first step, this writing will examine the wrong opinion which has insisted experience first theory, and the product of the opinion, revisionism. And then, it will confirm theology first theory. This work will be accomplished by analyzing the process through which Charles F. Parham started Pentecostal Movement and searching the views which grasp theology priority correctly. As a result, experience priority and revisionism will be refuted.

 

 

 

주제어: 오순절운동, 신학, 경험, 성경 연구, 성령침례, 방언

Pentecostal Movement, theology, experience, Bible Study, Baptism in the Spirit, Speaking in tongues

 

 

 
오순절운동에서 경험보다 신학의 우선성(이창승영산신학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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