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 성경 해석의 역사와 평가
이창승
순복음총회학교, 신약학, 조직신학
jesusgate@daum.net
국문초록
오순절이 태동한 이래로 오순절 성경 해석학은 “프리모던적,” “모던적,” 그리고 “포스트모던적” 형태를 띄어왔다. 초기 오순절주의자들의 프리모던적 해석은 고등비평을 거부하고 은사지속론적 관점에서 전 비평적으로 성경을 읽었으며, 성경에 기록되기 이전의 경험과 성경에 기록된 경험을 일치시키고, 성경에 기록된 경험을 현대 독자가 재경험하게 했다. 그런데 소위 저자 중심 모던적 오순절 해석가들이든 독자 중심 포스트모던적 오순절 해석가들이든 둘 다 계몽주의적/칸트적 이성관을 전제로 삼고 역사 안으로의 초월적인 것의 개입을 배제하는 고등/역사 고등비평을 통해 성경을 읽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 결과 성경에 기록된 경험들이 그 역사성을 박탈당하고, 기록되기 이전의 경험들과 다른 것이 되고 있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경험들이 역사성을 박탈당하게 됨으로써 현대 독자들이 성경의 경험들을 재경험해야만 한다는 오순절주의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다. 모던적 해석과 포스트모던적 해석은 둘 다 오순절에 적합하지 않은 해석이다.
I. 서 론
바른 오순절 신학을 위해서 성경과 세계에 대한 인식과 분석을 위해 바람직한 눈을 제공하는 오순절 해석학적 기반을 올바르게 세워야 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오순절신학은 그동안의 오순절 성경 해석의 역사를 되돌아볼 뿐만 아니라, 적절하게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반추를 바탕으로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오순절 해석을 설계해 보아야 한다. 본 소고는 기존의 오순절 해석의 흐름들을 시기별로, 형태별(프리모던, 모던, 포스트모던)로 살펴보고 평가하여 초기 오순절주의자들은 역사/고등비평을 거부하고 기록이전의 경험과 기록된 경험과 현대 경험을 일치시켰으나, 현대 모던적 그리고 포스트모던적 오순절 학자들은 역사/고등비평을 받아드림으로써 그 경험들의 일치를 파괴시키고 있으며, 그래서 모던적 그리고 포스트 모던적 해석은 오순절해석에 적합하지 않음을 드러낼 것이다.
II. 프리모던적 오순절 해석
A. 찰스 파함의 전-비평적/프리모던적 해석
찰스 F. 파함이 촉발시킨 현대 오순절운동을 경험 중심이라고, 텍스트보다 개인적 경험을 중요시한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그 운동은 체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성경 연구에서 시작되었다. 이렇게 오순절운동은 텍스트 중심이지 경험 중심이 아니므로 해석학이 중요하다.
파함의 해석은 사도행전의 경험과 현대 독자의 경험을 일치시켰다. 파함은 그의 학생들이 경험한 성령침례에 동반되는 방언을 말하는 현대적 체험이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사도시대의 경험과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의 삶 속에도 그와 동일한 개인적인 실현을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려는 일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경험을 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 . 우리가 주장하는 모든 것은 만약 우리가 성령침례를 받는다면, 그것은 사도행전 2장의 경험과 일치하는 것일 것이라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파함은 이 일치성을 파괴하는 모더니즘을 추종하는 고등비평을 비판하고 거부했다. 고등비평, 즉 역사 비평은 순수이성은 초월적인 것을 알 수 없다는 칸트의 이성관에 따라 역사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은 자연법칙의 인과율의 지배를 받으므로 성경 속의 초자연적인 이적들이나 하나님의 초월적 행동에 관한 언급들을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는 비역사적인 것으로 치부했다. 파함에게 이런 모더니즘 고등비평은 성경의 경험을 비역사적인 허구로 만듦으로써 성경의 경험과 현대 독자의 경험을 일치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파함은 고등비평을 배격하였다.
파함도 성경해석을 위해 비 계몽주의적 이성을 사용하였으며, 과학적 방법을 사용했다. 브레들리는 파함이 기존의 교리들을 부정함으로써 이성/합리주의(Rationalism)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 파함은 근본주의자들의 은사중단론이나 고등비평에 의한 이론 등 잘못된 성경 읽기와 해석 방법론의 결과물들을 거부했으며, 성경시대로 회복된 참된 교리를 주장했다. 파함도 이성을 사용하여 설교를 하고 글을 쓰고 교리를 주장했지만 그 이성은 비 계몽주의적 이성이었다. 파함은 해석에서 과학적인 것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가 사용한 성령침례의 “증거”(evidence)라는 용어는 스피틀러에 의하면 20세기 초에 과학적 방법에 관해 논의된 대중적인 책들에서부터 온 것이다.
파함은 성경을 주로 문자적으로 해석했다. 그의 그런 성향에 대해 《캔사스 월드》(K. C. World)는 “이 믿음[사도적 믿음]이 성경을 문자적으로(literally) 취하게 하는데, 이것은 토페카 근처 ‘벧엘 대학’이라 불리는 성경학교에서 가르쳐지고 있다”고 기록했다. 파함은 사도행전의 성령강림에 대한 구절들을 문자적으로 읽었으며, 그 구절들에 기록된 대로 현대에도 성령강림이 문자적으로 동일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오순절운동을 일으켰다. 파함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었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서사들을 실제로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것에 대한 보고나 앞으로 역사 속에서 일어날 것에 대한 예언으로 인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파함의 프리모던적 해석은 전 비평적이고 은사지속론적이었다. 고든 피와 스트론슈타드는 파함의 해석에 “실용적 해석”(Pragmatic hermeneutic)이라고 이름 붙였고, 올리베리우는 “오리지널 정통 오순절 해석”(The original Classical Pentecostal hermeneutic)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필자는 “은사지속적인 프리모던적 오순절 해석”(Continuational Premodernic Pentecostal hermeneutic)이라고 이름 붙인다. 파함의 성경 접근은 고등비평을 거부한 전 비평적이었으며, 은사중단론을 거부한 은사지속론적이었다. 파함의 전 비평적 은사지속론 해석은 성경에 기록되기 이전의 경험과 성경에 기록된 경험과 현대 독자의 경험을 일치시키는 해석이었다.
B. 칼 브럼백의 근본주의적-은사지속적 해석
칼 브럼백(Carl Brumback)은 성경의 오순절적 경험이 현대 오순절적 경험의 원형 또는 선례라고 주장했다. 브럼백은 현대의 오순절 경험이 성경의 경험과 같은 것인가라고 묻고, 성경의 오순절적 경험이 현대 오순절 경험의 원형이라고 대답했다. 또한 그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성령침례 또는 충만과 이에 수반된 방언이 오늘날의 모든 신자들에게도 표준이 되며 나아가 방언은 모든 유사한 은사적 능력부여의 “성경적 원형”(the Scriptural pattern)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성경에 기록된 첫 오순절날의 여러 국면들은 그날에만 해당하는, 반복될 수 없는 독특한 것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신자들이 반복하여 재경험 할 수 있는 원형(a pattern for future believers), 성경적 선례를 확립했다. 그에 따르면, 미래의 신자들을 위해 반복될 수 있는(repeated) 첫 오순절의 국면들은 첫째,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직접적인 소통이라는 성령침례의 개인적 특성(the personal nature of the Baptism), 둘째로,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부여하는 성령침례의 목적, 셋째로, 방언이라는 성령침례의 증거(the Evidence of the Baptism)이다.
브럼백은 오순절 운동을 근본주의적이라고 규정했다. 브럼백에게 “오순절 운동은 전적으로 근본주의적이다(thoroughly fundamental).” 그는 성경의 무오류성(the infallibility of the Scriptures), 인간의 부패성,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잉태, 대속적 죽음, 문자적 부활, 승천, 재림, 천국과 지옥의 실제성은 오순절주의자들에 의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또한 오순절주의자들이 근본주의적이라는 것은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을 거부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브럼백은 오순절운동의 발발을 가져온 부정적 상황에 대한 분석 중에서 “교회가 다윈주의와 고등비평으로 인해 믿음에서 떠난 것”을 언급했다. 즉, 그는 오순절운동이 고등비평에 대한 반발로서 일어난 운동이라고 파악한 것이다. 스트론쉬타드는 브럼백의 해석학을 정통 오순절주의의 실용주의적 해석(Pragmatic Hermeneutics)의 전형이라고 평가했는데, 그런 평가는 정당하지 않은 것이었다. 스트론쉬타드는 고등비평을 중립적이고 정당한 성경연구방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고등비평을 사용하지 않은 브럼백의 해석학을 순진한 실용주의적 해석으로 평가절하 했을 것이다. 이런 추측의 근거는 그가 초기 오순절 해석을 “분석적/비평적 진공”(analytical vacuum)이라고 절하한 발언이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오순절주의자 브럼백의 해석학은 실용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브럼백 자신의 주장처럼 고등비평을 배격한 근본주의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브럼백은 비고등비평적인 근본주의의 해석학을 채택하되, 근본주의의 은사중단론은 버렸다. 브럼백은 오순절주의자들이 근본주의자들의 신조들을 공유하지만, 거기에 더하여 오순절 특유의 믿음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오순절주의자들은 성경의 무오류성 등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이외에 사도적 교회의 초자연적인 표적들과 은사들은 오늘날에도 신자들에 의해 경험될 수 있다는 것을, 즉 은사지속론을 채택한다.
결론적으로 브럼백의 해석은 고등비평을 거부하는 근본주의의 해석에 은사지속론을 더한 “근본주의적 은사지속 해석”(Fundamental - Continuational Hermeneutics)이었다. 이런 해석은 한 편으로는 고등비평을 거부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은사중단론을 거부했던 파함의 해석학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브럼백의 해석은 파함의 해석과 같이 성경에 기록되기 이전의 오순절적 경험과 성경에 기록된 오순절적 경험과, 현대 독자의 오순절적 경험을 일치시키는 해석이었다.
C. 프리모던적 해석 평가
초기 오순절 해석은 “프리모던적”(premodern)이었다. 아처는 파함이 당시의 과학적 방법에 사용했던 “증거”(evidence)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을 근거로 초기 오순절주의를 “준-모더니즘”(para-modernism)으로 규정했다. 쉐파드는 초기 오순절주의자들이 하류계층이나 비주류였다는 점을 들어 초기 오순절주의를 “하류-모던”(submodern)이라고 평가했다. 아처와 쉐파드의 견해는 초기 오순절 해석을 어떻게든 모던과 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보려한 결과다. 반면에 카갈은 초기 오순절주의를 “전-비평적”(precritical)이라고 분석했다. 카갈의 의견은 초기 오순절해석을 모던의 비평과 대립각을 세운 것으로 파악한 것이며, 그의 시각이 아처와 쉐파드의 시각 보다 초기 오순절해석에 적합하다. 그런데 “비평적”(critic)이란 모더니즘의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초기 오순절해석을 “프리모던적(premodern)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프리모던적 오순절 해석은 성경을 해석하고 그 해석에서 추출된 원리를 경험에서 확증하는 근본주의적인 해석 체계와 유사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근본주의적 성경해석은 피어슨(A. T. Peirson)이 말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들을 귀납적으로 모으고, 다음에 그 위에 사실들을 배열할 수 있는 어떤 일반적 법칙을 추출 혹은 연역해내는 베이컨적 경험에 의한 상식실재론을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프리모던적 오순절 해석은 성경의 초자연적인 기술들이 기록되기 이전의 역사 속에서 실제로 발생한 경험들에 대한 것임을 전제로 삼았다. 그리고 해석의 목표를 성경의 초자연적인 기술들에 대한 읽기/연구를 통해 기록되기 이전의 역사 속에서 실제로 발생한 경험들을 현대의 독자들의 신앙생활 속에서 재현하여 경험하는데 두었다. 프리모던적 오순절 해석에서 성경 기록 이전의 인물들의 세계관과 기록자의 세계관과 원독자의 세계관, 그리고 현대 독자의 세계관이 서로 상충되지 않는 거의 동일한 세계관이었다. 그래서 프리모던적 오순절 해석에서는 기록 이전의 인물들과 저자, 저자와 원독자, 그리고 저자와 현독자 사이에 시간적 거리는 존재하지만 세계관적인 거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기록 이전의 초자연적 경험, 기록된 초자연적 경험, 현대의 초자연적 경험이 일치했다.
문자적으로 성경을 읽고, 경험으로 확증하려는 프리모던적 해석은 오순절운동과 신학에 적절한 것이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었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경험의 역사성을 그대로 살려 읽는 독법이었다. 그리고 성경의 경험을 문자적으로, 즉 기록되기 전에 역사 속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것으로 읽어내고, 그 읽기를 동일하게 재경험하려는 해석은 오순절운동과 신학에 정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전용란은 역사비평을 사용하는 현대 해석학의 기준에서는 그런 문자적 읽기와 경험으로 확증하려는 프리모던적 해석이 “부적절한”(inappropriate) 것일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부적절함을 “문제”(problem)로 인식했다. 하지만, 프리모던적 오순절 해석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고 그 읽기를 경험으로 확증했던 것은 적절했으며, 반면에 그 적절함을 부적절하게 평가하는 그 기준이 오히려 오순절 해석에 부적절하며 큰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프리모던적 오순절 해석은 한편으로는 계몽주의적 이성관을 전제로 한 모던적 고등비평을, 다른 한편으로는 은사중단론을 배제하거나 극복하기 위한 해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프리모던적 오순절 해석은 성경의 오순절 서사를 문자적으로 역사 속에서 발생했던 것으로 읽었다. 그런데 그랜트 웨커가 초기 오순절 성경 해석을 “무역사적”(ahistorical)이라고 평가한 것은 초기 오순절 성경 해석의 역사성 사수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웨커의 “무역사적”이란 말은 초기 오순절 해석이 비고등비평적, 비역사비평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초기 오순절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신앙과 해석이 계몽주의적 정신에 의한 역사비평과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것임을 알고, 그 정신에 의한 고등비평/역사비평을 거부했다. 초기 오순절주의는 초자연적인 것을 대면하기 위한 대체를 제공함으로써 모더니티에 대한 저항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III. 모던적 오순절 해석
세계 오순절진영에서 가장 큰 교단인 미 하나님의 성회는 1928년 근본주의에서 탈퇴한 후 고립을 면하려고 1942년 국제 복음주의 연맹에 가입했다. 그런데 이것은 오순절 교회에서 자라나 신학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오순절 신학교육기관들이 모던적 비평 방법들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어 버렸다. 안타깝게도 오순절의 아버지 파함과 성화론적 방향전환자 더함이 마귀적이라고 비난했던 고등비평이라는 판도라상자의 뚜껑을 활짝 열어 버린 것이다.
A. 고든 피의 문학적 양식에 의한 해석
오순절 해석에 고등비평 등 모던적 요소의 도입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신약 신학자 고든 피(Gordon D. Fee)일 것이다. 피는 해석학에 있어서 오순절주의에게 결정적인 문제는 그것의 “독특성들”(distinctives)에 있다고 파악한다. 그리고 그는 그 독특성을 “(1) 후속성 교리, 즉 구원의 체험으로부터 구분되고, 그 체험에 후속하는 성령침례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있다는 것 (2) 성령침례의 최초의 육체적 증거로서 방언 교리”라고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오순절주의자들은 회심에 후속하고 방언에 의해 증거되는 성령침례를 성경적 역사적 선례(biblical historical precedence)에 근거한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으로 삼으며, 사도행전을 규범적 초대 교회(normative primitive church)의 규범적 기록(the normative record)으로 삼으며, 따라서 그 사도적 경험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규범적 모델(the normative model)로 삼는다.
고든 피는 이런 오순절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한 비오순절주의자들, 특히 신복음주의자들의 비판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피에 따르면, 오순절주의자들에 동의하는 않는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측면들에서 이견을 제시한다. 첫째, 그들은 성경의 교훈적 부분(didactic portions)과 역사적 부분(historical portions)을 구분해야만 하며, 기독교 교리와 경험의 정형화(formulation)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교훈적 부분이 중요하며, 역사적 부분은 오직 부차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둘째, 초대교회의 서술적 역사(descriptive history)는 그 이후의 교회들을 위해 규범적 경험으로 해석되지 말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고든 피는 성경의 저자의 의도를 규범적인(normative) 것과 정상적인(normal) 것으로 나누면서 이러한 오순절주의의 해석과 그에 대한 비오순절주의의 비판 사이에서 중도의 길을 걷는다. 먼저 피는 오순절주의자들에게 비오순절주의자들의 비판이 정당함으로 그 비판을 수용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오순절주의자들이 과학적 해석학 대신에 일종의 실용적 해석학(pragmatic hermeneutics)을 개발해왔고, 문자적으로(literally) 취해야 할 것은 준행해야만 하고, 나머지는 영해하거나(spiritualize), 알레고리화하거나(allegorize), 또는 경건화 한다(devotionalize)고 비판한다. 그는 오순절주의자들이 그들의 독특한 교리를 성경에서 끌어낸 것이 아니고, 반대로 실용적 해석학에 따라 그들의 경험을 성경(사도행전)에 투사하여 규범화시켰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오순절주의 해석자는 과학적 성경 해석학의 한 공리(axiom)를 따라 해석하고자 하는 본문의 문법(grammar), 어의(philology), 역사(history)와 함께 또한 문학적 장르(literary genre)를 고려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저자중심 해석의 흐름을 따라 성경 역사에 대한 해석학에 있어서 해석자의 주요 직무는 그 역사의 기록에 있어서 저자이신 성령의 의도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피에 따르면, 그 저자의 의도는 모든 시대의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근본적이고, 규범적이고, 교훈적인 것(didactic value)과, 부수적인 것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그런데 어떤 규범(norm)을 세우기 위해 유추로서 역사적 선례를 사용하는 것은 결코 그 자체로 타당하지 않다. 역사적 이야기들(narrative)은 단지 예화적이고, 때로는 “표본적”(pattern) 가치를 가질 뿐이다. 결론적으로, 그에게 신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한다는 것(또는 계속 충만해야 한다는 것), 성령 안에서 걷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근본적이고 일차적 수준이며 규범적인(normative) 것이다. 반면에 한 사람이 언제 그리고 어떻게 기독교 경험의 그 차원 안으로 들어가는지는, 비록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닐지라도, 그와 동일한 “규범적인” 속성을 갖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언제 그리고 어떻게”는 오직 선례(precedent)와/또는 유추(analogy)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심에 후속(subsequent)하고 방언이 동반된다(는accompanied by tongues) 성령침례 교리는 이차적 수준의 교리적 진술에 속하는 것이다. 고든 피는 소위 과학적, 저자중심적 해석학에 따라 회심에 후속하는 성령침례에 반드시 첫 육체적 증거로서 방언이 동반된다는 오순절주의의 독특한 교리가 규범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그는 오순절주의자들이 모든 신자들에게 성령침례와 더불어 반드시 방언을 말해야한다고 강요하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오순절주의를 비판한 다음, 고든 피는 비오순절주의의 주장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비오순절주의자들이 소위 과학적 해석법에 따라 성경의 저자의 의도를 근본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으로 나누고 오순절주의자들의 독특한 교리를 규범화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피는 비오순절주의자들이 그 교리를 비규범화하는 것에 그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는 비록 사도행전이 역사서이지만 그 안에 규범적인 것이 있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사도행전 안에서 규범적인 것은 성령의 임재이며, 그 규범적 성령의 임재는 오늘날 기독교인에게도 규범적인 것이다. 또한 그는 성령침례에 방언이 따르는 사도행전의 역사적 선례들은 비록 규범적인(normative) 것은 아니라할지라도 그 이후에 반복될 만한 정상적(normal)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피에 따르면, “신약에서 성령의 임재(the presence of the Spirit)는 기독교적 회심과 기독교적 삶의 주요 요소(the chief element)였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또한 바울서신에 등장하는 교회들에서 은사적 차원(charismatic dimension)은 성령 받음에 있어서 정상적인 현상(normal phenomenon)이었다.” 또한 “방언은, 규범적인(normative) 것이 아니라면, 성령의 오심의 은사적 차원에 대한 반복된 표현이었다. 그가 보기에는 고린도전서 12장에서 14장 안에서 자신과 고린도인들에 관련된 이 현상에 대한 바울의 명백하게 호의적인 태도를 염두에 둘 때, 오순절주의자들은 그 은사적 차원이 초대교회에서 신자들의 정상적인 경험(the normal experience)이었다고 주장하는데 있어서 그들에게 유리한 많은 것들을 갖고 있다” 피는 현대 기독교인들은 신약 패턴을 따라 여전히 성령 안에서 삶의 그런 차원을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은사적 차원은 반복될만한(repeatable) 것이며, 성령 안에서 삶의 소중한 차원이다.
피의 해석학은 신학적으로 분열된 두 진영 사이에 중재를 위한 중도의 길을 내려다가 성경을 억지로 두 동강 낸다. 그는 오순절주의자들의 방언 규범화와 비오순절주의자들의 방언 비규범화를 중재하기위해 성경을 본질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규범적인 것과 정상적인 것으로 나누고는 성령의 임재를 규범적인 것으로 방언을 정상적인 것으로 규정하려한다. 그러나 성경을 그렇게 본질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으로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성경에 성경을 그렇게 나누라는 명령이 있는가? 성경은 그런 나눔의 기준을 제시하는가? 피는 “누가는 그가 그의 역사(history)가 어떤 방식으로 교회를 위한 선례가 되기를 의도한다는 것을 어디에서도 명기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피의 언급은 역시 자신의 찢음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누가는 자신의 역사서가 본질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으로 나누어져야 한다고 말한 적도 없으며, 그 기준도 명기하지 않았다. 피가 성경을 본질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으로 나누는 것은 억지로 정경 안에서 정경을 찾으려는 자유주의자들이 신약을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로 나누는 것, 불트만이 성경을 케리그마와 신화로 나누는 것과 같다. 피가 주장하는 소위 “과학적 해석학”은 성경을 찢어발기는 자유주의자들이나 신정통주의자들/신복음주의자들의 과학적 해석학과 다르지 않다.
침례주의자들은 피가 죽음과 살아남이라는 침례는 본질적이고 규범적인 것으로, 물에 잠김과 물에서 나옴이라는 침례의 방식은 부수적이고 정상적인 것으로 분리시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과 살아남이라는 침례의 본질과 물에 잠김과 나옴이라는 침례의 방식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며, 하나의 규범이다. 침례의 방식에서 침수를 시행하는 오순절주의자들도 역시 피가 성령침례를 본질적이고 규범적인 것으로, 방언을 부수적이고 정상적인 것으로 분리시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오순절의 창시자 파함은 성령침례와 방언을 분리될 수 없는 하나로 보았다. 파함에게 방언은 내적인 성령침례의 외적 증거였다. 그는 방언을 “이 침례의 결과로 나타난 증거”(the manifest evidence resulting from this Baptism)라고 말했다. 파함에게는 원인(cause)인 성령침례가 내적으로 베풀어질 때, 그 결과(result)가 외적으로 방언이 나타난다. 성령침례의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은 원인과 결과이며,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규범적인 성령침례에 결합된 방언은 역시 규범적인 것이다.
고든 피의 해석학은 오순절주의를 위한 해석학이 아니라 은사갱신주의를 위한 해석학일 것이다. 그의 해석은 성경에 기록된 오순절 경험을 반드시 반복하여 재경험해야하는 규범적인 것이 아닌, 경험하면 좋겠지만, 경험하지 않아도 무방한 정상적인 것으로 전락시킴으로써 성경의 오순절 경험을 현대 독자가 반드시 재경험해야한다는 파함과 브럼백의 오순절 신학과 그 신학을 태동시킨 해석을 파기시키려 했다.
B. 하워드 어빈의 성령적 해석
하워드 어빈(Howard M. Ervin)은 이성과 경험을 각각 따로 강조하는 이분설적 해석학들을 반대하고, 그 양분을 극복하려는 신해석학의 노력도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그에게 해석학 연구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은 인식론(epistemology)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인식에는 감각적 경험(sensory experience) 그리고 이성(reason)을 통한 길들이 있다. 어빈은 그 두 가지 길들 중에서 오직 하나에만 제한하는 신학은 그 어떤 것이든 신앙(faith)과 이성(reason) 사이의 영원한 이분법(dichotomy)에 갇힐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전통적인 해석학에 의한 신앙과 이성의 이분법에 대한 해결책은 그리 만족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전통적인 해석학은 그것의 역사 비평적 주석에 대한 강한 헌신과 함께 이성을 위해 신앙을 포기하거나 또는 반대로 명제적 신학(propositional theology)에 대한 관심사들을 특별히 변론하려는 범주에 의해 신앙을 인식론적으로 정당하게 만들려 한다. 오직 믿음(sola fidei)의 논리적 확장으로서 경건주의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의 직접성에 대한 믿음을 위해 이성의 역할을 버리려 했다. 그가 보기에, 해석학의 결과는 한 쪽에서는 파괴적인 이성주의(a destructive rationalism)였고, 또 다른 쪽에서는 비이성적인 신비주의(a non-rational mysticism)였다. 또한 어빈은 소위 신 해석학(New Hermeneutic)이 그 이분법을 극복해보려고 노력 하지만, 그렇게 성공적이지 않다고 평가한다. 실존 신학 풍조에 뿌리를 두는 신해석학은 신비한 것에 민감함에도 불구하고, 본문의 신비한 의도성을 재구성하려 노력하는 중에 그것의 주관성에 의해 그 해석학적 기획을 위협한다. 신해석학은 성경적 세계관(biblical world view)에 의해 변질되었다는 이유로 성경(Scripture)을 비신화화함으로써 성경의 비평적-정황적 역사성(critical-contextual historicity)과 사실성(facticity)에 대한 석의를 강탈한다. 그래서 해석학은 본문의 의도의 개인적 재구성 시도가 되어버린다. 비신화하는 사람들에게 신화(myth)인 것은 정통주의자에게는 신비(mystery)이며, 그 차이는 성령께 돌려지거나 또는 그 사례가 그런 것처럼 성령께 돌려지지 않는 역할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빈에게 성경해석에 필요한 것은 경험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감각 경험(치유, 이적들, 등등)에 대한 척도들을 만족시키면서도 이성적 범주들의 일관성을 침해하지 않는 현상학과 함께 성경적 신앙에 굳건하게 뿌리박고 있는 인식론이다. 그는 성령론적 인식론(a pneumatic epistemology)은 이 척도들을 만족시키며, (a) 실존주의(existentialism)가 성령적 요소(the pneumatic)의 희생을 초래하면서 의식적으로 다리를 놓으려 하는 신앙과 이성 사이의 이분법에 대한 해결책; (b) 종종 역사 비평적 석의(a critical-historical exegesis)를 동반하는 파괴적인 이성주의에 대한 해독제; 그리고 (c) 오직 믿음에 근거를 둔 경건에 의해 신비주의를 위한 이성적 책무라는 해결책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어빈에게 있어서 성령론적 해석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그에게 성경은 저자들이 성령에 대한 경험을 현상적이고 성령론적 언어로 기록한 것이다.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필수조건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아시는 성령에 의한 인간의 존재론적 재창조(중생)이며 중생함으로써 창조주와 피조물간의 가교가 세워지는 것이다. 이 가교는 성령의 역사로 이해된다. 독자가 사도적 경험과 동일한 것을 경험으로 성령과 대면할 때, 그 사도적 증언을 진정한 실존적 견지에서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현상은 현 독자와 성경을 기록했던 사도적 신앙 공동체와의 성령론적 연속성(pneumatic continuity)이다. 그는 수평적 차원의 시간-공간 연속성, 심리-사회-문화-실존적 연속성에 수직적 차원의 조물주-피조물 연속성, 성령론적 연속성 등의 영적 연속성을 더한다.
어빈은 해석을 통해 알려지는 내용(What is known)에 관해서는 “성령론적 방법”(Pneumatic Method)을 제안했지만, 그 내용이 알려지는 방법(How is known)에 관해서는 “언어학적, 문학적, 역사 비평적 방법”(Critical Method)을 수용했다. 어빈은 오순절 해석의 그 어떤 기획적 발전에도 영향을 줄 요소들을 네 가지로 요약하여 제시했다. 그 요소 제시에서 한 편으로 어빈은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들의 신화성을 거부하고 역사적 객관적 사실성을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어빈은 전통적인 문법-역사적 석의(grammatico-historical exegesis)와 더불어 비평-정황적 석의(critical-contextual exegesis)의 방법론적이고 소위 실재적인 공헌들 모두를 받아들였다. 그에게는 성경이 성령에 대한 직접적 경험이 기록된 것이지만, 현상적인 언어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엄밀히 성육신 때문에 언어적, 문학적 그리고 역사적[또한 역사비평적] 분석들이 성령의 이해를 위한 첫 번째 단계로서 불가결한 것”이다. 어빈은 고등비평을 통해 성경을 보면서도, 성경에 기록된 사건 경험들은 기록되기 전에 역사 속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경험이라고, 그래서 현대 독자들이 성령론적인 연속성을 통해 그 경험들이 재 경험될 수 있다고 단정지었다.
어빈이 기존의 해석학을 이성중심 해석과 신앙경험중심 해석으로 나누고 둘을 대립시킨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에게 이성중심 해석이란 역사비평을 수용하는 해석이며, 반면에 신앙경험중심 해석은 역사비평을 수용하지 않는 해석이다. 그리고 그는 그 중용의 길을 온건한 역사비평, 즉 신비를 허용하는 역사비평, 신비한 경험을 허용하는 이성적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성적 해석은 꼭 역사비평을 수용해야만 하는 해석인가? 신앙경험중심 해석은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가? 어빈이 이성적 해석은 역사비평을 수용하는 해석이라고 전제한 것이 잘못되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그가 역사비평을 수용하지 않는 경건주의적 해석은 비이성적 해석이라고 전제한 것도 잘못이다. 경건주의적 해석도 이성을 사용한다. 사실 역사비평을 수용하는 이성은 칸트의 계몽주의적 이성이며, 역사비평을 수용하지 않는 이성은 비 칸트적, 비계몽주의적 이성이다. 따라서 어빈은 역사비평을 수용하는 계몽주의적 이성적 해석과 역사비평을 수용하지 않는 비계몽주의적 이성적 해석을 대립시켜야 했다. 신비를 허용하는 이성, 신비를 허용하는 역사비평이라는 가능하지 않은 허상적 중도의 길은 계몽주의적 이성과 비계몽주의적 이성의 대립사이에 존재할 수 없다. 두 대립은 중재될 수 없다.
어빈이 신해석학의 중재가 신비를 신화로 전락시킴으로써 실패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도 잘못된 것이다. 어빈은 신해석학이 성경의 신비를 신화로 전락시키고, 현대인의 해석을 위해 비신화화의 칼을 휘두른다고 비판한다. 그는 신해석학의 비신화화를 신해석학 자체의 오류로만 판단하는데, 이는 지극히 잘못된 것이다. 그는 그가 말하는 이성적 해석이 수용하는 역사비평이 성경의 신비를 신화로 전락시킨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신해석학이 신비를 신화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위 이성적 해석과 신해석학이 둘 다 성경해석의 근간으로 삼는 역사비평이 신비를 신화로 만든다. 맥카티도 분석하듯이 불트만이 실존주의 철학을 해석학에 도입하고 비신화를 시도한 것은 역사비평으로 인해 성경의 신비가 신화로 전락되었기 때문이었다. 불트만은 다만 그 신화를 버리지 않고 실존주의적으로 비신화하여 사용하려했던 것뿐이다. 어빈은 신해석학에서 신비를 신화로 변질시키는 것만 제거한다면 신해석학이 이성과 경험을 중재하려는 신해석학의 노력은 결실을 맺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는 비신화화가 그 논거를 18세기 또는 19세기 과학적 세계관의 참조 틀에 두었으나 20세기 현대인의 인식이나 세계관은 그런 획일적인 세계관과 달리 다양하다고 분석하고 20세기 현대인에게 어필하기 위해 신비를 신화로 바꿀 필요가 없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어빈의 바람과는 달리 신해석학만이 18세기와 19세기 과학적 세계관에 의해 신비를 신화로 변질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기꺼이 수용하는 역사비평 자체가, 역사비평의 전제인 18세기 19세기의 계몽주의적 이성, 인식론이 신비를 신화로 변질시키기 때문에 신해석학의 중재노력은 헛된 것이며, 역사비평을 수용하며 중재하려는 어빈의 노력도 신해석학의 그것처럼 헛것이 될 뿐이다.
어빈의 해석학은 성경의 경험을 현 독자에게 경험시키려는 오순절운동과 신학의 중요한 근간을 파괴한다. 그의 해석학의 가장 큰 문제는, 그가 제시했던 것처럼 성경의 초자연적인 언급들을 허구, 즉 신화로 취급하는 고등비평을 통해 성경을 읽었을 때, 과연 성경에 기록된 경험들이 기록되기 전에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경험들이었다는 것을 주장할 수 있느냐이다. 고등/역사비평을 하게 되면, 필경은 기록되기 이전의 경험들은 실제로 역사 속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허구로 인식되며, 성경의 초월적 경험들에 관한 기록들은 허구적 신화로 해석되고, 따라서 그 허구들을 현대 독자가 경험할 수 없게 되며, 무언가 경험하더라도 그 경험은 성경의 경험과 공명되지 않는 다른 경험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어빈은 고등비평을 수용하면서도 성경에 기록된 경험을 그저 실제로 일어났던 경험이라고 전제해 버린다. 이것은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다.
C. 윌리엄 W. 멘지스의 총체적 해석
윌리엄 멘지스는 고든 피와 어빈이 받아들인 계몽적 이성에 의한 분석적 고등비평을 수용하고, 그것을 “귀납적 관찰→가설연역→경험적 검증→정설확립”이라는 과학적 방법과 결합하여 “총체적 해석”이라는 해석 모델을 제안했다. 윌리엄 멘지스는 고든 피가 오순절주의자들이 누가 행전에서 역사적 선례를 규범화해 온 것을 장르 비평 방법을 통해 비판한 것에 대응하기 위해 귀납적 단계에서 고등비평의 편집 비평 방법을 용인했다. 그는 귀납적 단계에서 “성경 기자의 의미와 의도를 찾아내기 위해 과학적 해석의 도구들과 기술들을 사용한다. 성경해석을 위해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기본적인 규칙들은 여기서 간과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과학적 해석의 도구들과 기술들”은 고등/역사비평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는 고든 피의 장르 비평에 맞서서 누가-행전은 비록 서사문이지만 편집 비평의 주장에 따라 그 서사문에도 바울 신학과는 다른 누가만의 독특한 신학이 담겨있다고 역설했다.
윌리엄 멘지스는 “만약 어떤 성경 진리가 반포되려면, 그것이 삶에서 실연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이것이 바로 현대 오순절적 부흥이 보다 넓은 교회 세계에 보고해온 것이다. “베델 성경 학교의 학생들로 하여금 방언 말하기라는 표징을 동반하는 성령침례를 기대하게 했던 것은 바로 그 귀납적인 성경 연구였다. 그들이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경험했을 때, 그들은 성경적 개념(biblical concept)과 경험적 실제(experiential reality) 사이의 연속성을 선포할 수 있었다.” 멘지스에게 이것은 “작동하지 않으면, 진리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실용주의적 의견과 동일하지 않다. 여기에서, “성경 저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증명(verification), 또는 실연(demonstration)이지, 창작(origination)이 아니다.”
윌리엄 멘지스의 해석학의 목적은 성경에 기록된 경험을 현대 독자들로 하여금 재경험 시키는 것이었지만, 고등비평이라는 장애물이 그 중간에 놓임으로써 그 목적 달성은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윌리엄 멘지스의 해석 방법은 성경에 대한 귀납적 읽기, 연역적 가설 설정, 경험으로 가설 검증이라는 과정을 거쳤던 파함과 벧엘 성경학교에서 사용했던 해석 방법과 유사하다. 윌리엄 멘지스의 방법이 파함의 방법과 다른 점은 멘지스는 귀납 단계에서 파함이 격렬하게 비판하고 거부했던 고등비평을 수용한 것이다. 윌리엄 멘지스의 해석 방법의 문제는 그가 삽입한 고등비평이 현대 독자가 성경에 기록된 경험을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으로 볼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기대하고 설정했던 검증 단계에서 성경에 기록된 허구적 경험을 현대 독자가 실제로 재경험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윌리엄 멘지스는 성경에 기록된 경험과 현대 독자 사이에 고등비평을 놓으면서 이런 약점을 인식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는 누가-행전 연구에 편집 비평 등 고등비평 도입하면서도, 각주 12번에서 성경에 기록된 경험의 역사성을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그렇지만, 그 복음서 기자 측에서의 신학적 목적들과 가능한 편집적 활동들에 대한 논의를 시도하는 데 있어서, 그 기자가 전달하려 했던 역사성(the historicity)을 보존하는데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 누가는 역사적 실제성을 묘사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윌리엄 멘지스는 성경 이야기나 경험의 역사성을 주장하는 것은 편집 비평적 입장에서는 터무니없는 것임을 잘 인식했을 것이다. 그는 편집 비평과 역사성은 양립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편집비평을 도입하는 본문에서는 역사성에 대한 주장을 하지 못하고, 각주에서 아무런 근거 제시도 없이 그저 그 역사성을 슬그머니 덧붙인 것이다.
D. 로버트 멘지스의 저자 중심 모던 비평적 해석
로버트 멘지스는 바울의 성령론과 누가의 성령론을 구분하고 누가의 성령론의 독특성을 주장하기 위해 편집비평 등 고등비평을 수용했다. 그는 바울의 성령 침례론이 회심입문적이고 전반적으로 바울의 성령론이 신앙인들의 생활과 관련된 윤리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반면에, 그에 따르면, 누가의 성령 침례론은 중생에 후속적이며, 성령은 예언의 영(the Spirit of Prophecy)으로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도록 능력을 부여한다. 로버트 멘지스는 정통 오순절 운동과 신학을 지키고 세우기 위해 신복음주의자들이 수용한 저자/편집자 의도 중심의 모던적 역사 비평을 택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복음주의자들의 해석학의 기본적인 목표는 일반적으로 텍스트의 역사적 의미를 규명하는 것이다. 그는 역사적 의미에 관한 복음주의자들의 관심의 근거로서 덴버 세미나리(Denver Seminary)의 세 명의 교수들(William W. Klein, Craig L. Blomberg, and Robert L. Hubbard, Jr)이 저술한 해석학 교재를 소개했다. 로버트 멘지스에 따르면, 그들은 본문의 의미를 “그 본문의 단어들과 문법적인 구조들이 저자/편집자의 개연적인 의도와 예정된 독자들의 개연적인 본문 이해에 관하여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들에게 과거의 재구성은 본문의 의미를 탐구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차원이라는 것이다.
로버트 멘지스는 역사성의 두 국면을 언급했다. 역사성의 한 국면은 기록되기 이전의 경험들의 역사성이며, 다른 국면은 기록되기까지 전승들과 자료들과 본문들의 역사성이다. 그런데, 그에 따르면, “자료비평과 편집비평은 본문 뒤의 어떤 본래적이며 권위적인 핵심(kernel)에 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본문 자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위해 사용된다.” 그의 말의 요지는 자료비평과 편집비평 등 고등비평은 기록되기 이전의 예수와 제자들의 경험과 이야기의 역사성을 밝히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구전전승과 자료전승 그리고 최종 편집 단계의 역사성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로버트 멘지스는 윌리엄 멘지스가 그랬던 것처럼 고등비평을 사용하면서도 기록되기 이전의 경험의 역사성을 단순히 전제해 버린다. 그는 역사적인 것이 되도록 의도된 그 본문들의 의미와 현실성은 그것들의 역사성과 분리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부활이 실제로 일어났었는지가 부활에 대해 기록한 바울에게는 중요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상반되게, 로버트 멘지스는 고등역사비평에 의한 연구는 어느 정도의 개연성만 제공할 뿐 확실한 것을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로버트 멘지스는 기록 이전의 경험들의 역사성은 단순히 전제해 버리면서도, 반면에 고등비평에 의해 추구되는 기록된 경험들의 의미와 역사성은 불확실한 것이라고 보았다.
E. 모던적 해석의 평가
고든 피에게 대응했던 오순절 학자들은 복음주의에 의해 받아들여진 해석학적 방법을 적용하여 반응하였다. 그 토론에 임했던 학자들 중에서 아무도 해석학적 문제들에 오순절 특유의 접근을 제안하지 않았다. 대신에 복음주의적 해석학을 향한 엄청난 해석학적 전환이 양쪽 진영에 의해 표출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복음주의적 해석학이란 계몽주의적 이성관을 전제로 한 고등비평, 즉 역사비평을 중립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역사비평을 받아들여 건설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중도적 성경비평”을 기반으로 하는 유럽의 신정통주의적 또는 미국의 신복음주의적 해석학이다.
신정통주의는 자유주의의 전형적 성서연구 방법인 역사 비평을 수용하고 있다. 신정통주의의 원조 칼 바르트는 “역사 비평의 원수”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역사 비평을 성서 본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밝힐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그에게 역사 비평은 “이해를 위한 준비”(preparation for understanding)였다. 오순절 조직신학자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프랑크 마키아는 유감스럽게도 비평 방법들(critical methods)은 “성경의 이질적인 새로운 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준비시킨다는 신정통주의자 칼 바르트의 견해를 “통찰”(insight)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오순절주의자들은 칼 바르트의 그런 통찰의 안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일반적으로 복음주의로 알려져 있는 신복음주의는 신정통주의처럼 역사비평을 받아들이며, 성경의 무오류성을 희석시킨다. 린드셀(Harold Lindsell)은 과거의 복음주의는 성경의 무오성(inerrancy)을 주장했지만, 신복음주의는 그것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분석했다. 신복음주의자들은 성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앙과 구원을 위한 그것의 기능을 성취하는데 있어서는 오류가 없지만, 그러나 역사, 지리, 그리고 우주론에 대한 그것의 선언과 가르침에는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설은 “제한적 무오설”(Limitted Inerrancy)로 불리는데, 베네마(Cornelis P. Venema)는 그런 설을 “기능적 무오설”(Functional Inerrancy)이라고도 부른다. 기능적 무오설은 성경에 역사비평을 가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 설은 성경은 인간에의 적응(accommodation)을 위해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다고 보고, 소위 계몽주의적 전제들이 제거된 역사비평을 성경 해석에 도입하려 한다. 이런 신앙과 역사비평 방법의 혼합은 “신앙적 비평”(believing criticism)이라고 불린다. 미국의 부흥운동은 현대 복음주의(신복음주의)에 의해 무너졌는데, 오순절 신학의 중요한 교리도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오순절주의자들이 성경에 접근하는 길, 즉 오순절주의 신학을 받쳐주어야 할 해석학은 발전한 것이 아니라 심각하게 변질되었다. 신정통주의/신복음주의적 해석학이 오순절주의의 해석학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순절주의 신학자들은 신복음주의를 통해 모더니즘적 해석을 받아들이면서 모더니즘의 철학적 전제를 살펴보지 않았으며 그 결과는 파괴적이다. 계몽주의 철학은 이적을 부인하며 초자연적인 것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인간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개입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존 로크(John Locke)나 데이비드 흄(David Hume)같은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성경의 이야기들을 고대 그리스 신들의 이야기와 같은 신화(myth)로 간주했다. 초월적인 것에 대해 불가지론적인 계몽주의적 이성관이라는 모더니즘의 철학적 전제는 복음주의를 통해 오순절 신학 안으로 들어와 오순절주의 해석의 숨겨진 전제가 되어 버렸다. 구약과 예수의 공생애, 그리고 신약의 초월적 부분을 꾸며낸 신화로 처리하거나 예언을 사건 후 기록(Vaticinium ex eventu)으로 치부하게 하는 고등비평의 모더니즘적 전제는 하나님의 초월적이고 직접적인 개입을 경험하는 오순절적 경험과 상치되며, 그 경험을 파괴하고 있다.
그런데도 모던적 해석을 주장하는 오순절 신학자들은 그런 점을 간과하고, 그 둘을 억지로 결합시키려 하지만 그 노력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성경이 신적 요소와 인간적 요소가 통합되어 있으므로, 성경해석에 있어서 성령적 해석과 이성적 해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성적 해석을 오직 계몽주의적 이성을 통해서만 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강요에 불과하다. 이렇게 소위 오순절 신학자들의 믿음과 계몽주의적 이성에 근거한 역사비평을 억지로 결합하려는 노력은 물과 기름을 섞으려는 것과도 같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제베르크가 규정한 것처럼 “믿으면서 하는 비판”(gläubige Kritik)은 더 이상 비판이 아니며, 나아가 믿는 것도 아니다. 이미 게르하르트 마이어는『역사비평학의 종말』에서 역사비평방법이 성경과 계시를 연구하는데 적합한 것인가 묻고, 성경은 전체가 신적 계시에 대한 증언이므로 정경 안에 부분적으로 담겨있다는 하나님의 말씀(Kanon im Kanon)을 찾으려는 역사비평은 성경 연구에 부적합하다고 결론지었다.
IV. 포스트모던적 오순절 해석
오순절주의자들이 역사비평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때는 다른 신학자들이 그 모던적 해석을 극복하기 위해 포스트모던적 해석을 행해 가고 있던 때였다. 계몽주의적 이성관을 전제로 하는 역사비평 방법은 오순절 공동체들의 필요를 만족시키는데 실패했다. 이에 일군의 오순절 신학자들은 오순절적 신앙과 체험을 더 지지해 줄 수 있는 포스트모던 방법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역사비평을 버리지 못한 포스트모던적 해석 역시 오순절 해석에 적합하지 않다
A. 카갈의 모던적 비평과 포스트모던적 해석의 혼합
카갈은 모던적 오순절 해석학이 양립할 수 없는, 성경의 서사의 역사성과 성경의 서사의 역사성을 파괴하는 역사비평을 억지로 결합시키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오순절 학자들이 한편으로는 성경 서사의 확실성을 견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복음주의자들처럼 역사 비평 방법들을 채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카갈은 오순절 학자들이 복음주의 교육기관에서 배워서 사용하고 있는 모던적 역사 비평이 결과적으로는 성경의 서사의 확실성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카갈이 보기에 역사비평은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나 경험들을 결국 역사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던 신화적 이야기에 불과하게 만드는데, 모던적 오순절 해석학은 이 비 사실적인 신화를 역사로 해석하려고 헛발질을 하고 있다. 그래서 카갈은 오순절주의자들에게 성경 서사의 역사성을 아예 포기하고, 포스트모더니즘처럼 “오직 역사적이고 객관적으로 참된 것이 의미 있다”는 개념을 거절하라고 촉구했다.
카갈은 모던적 오순절 해석이 역사비평을 사용하는 것을 비판하면서도, 또한 역사비평을 수용했다. 브레들리는 카갈이 역사 비평 방법을 버렸다고 보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카갈은 포스트모던 해석은 모던적 이성과 합리성의 지배를 거부하는 것이지 계몽적 이성과 합리성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카갈은 계몽적/모던적 이성에 의한 역사비평을 성경 서사의 역사성, 즉 성경의 서사는 성경에 기록되기 이전에 실제로 발생했던 사건의 기록임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하지 말고, 그저 성경 이해의 첫 단계, 즉 그 사건 이후 전승과 자료, 편집, 그리고 기록의 역사성의 이해를 위해 사용하기를 제안했다.
카갈은 성경의 진리의 반은 모던적 역사비평에 의해 나머지 반은 포스트모던 비평에 의해 찾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말하는 전자의 “진리의 반”은 기록되기 이전의 경험의 역사성이 아닌, 구전 단계와 자료 전승 단계와 편집 단계에서의 창작적 부가의 역사성일 것이다. 그리고 후자의 “나머지 반”은 비평적 역사 연구의 기준들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성경 본문들에도 담겨있을 수 있다는 진리와 의미이다. 이 나머지 반은 포스트모던적 해석에 의해 추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카갈의 이런 후 비평적 해석법은 성경에 기록된 경험과 현대 독자의 경험을 이질화시켜 동일시하지 못하게 하며, 결국은 성경의 경험을 현대 독자가 동일하게 재경험해야 한다는 오순절주의의 기초를 제거하는 것이다. 카갈에게 성경의 이야기나 경험들은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인 것이 아니며, 그래서 현대에 동일하게 경험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의 이야기의 역사적 확실성(historical reliability)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 안에서 감당하는 그 세부 사항의 기능의 문제이다. 성경에 기록된 경험들은 창작된 허구이기 때문에, 현대 독자가 경험하는 것은 성경의 경험과 동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오순절주의자들은, 매튜 클락을 따라, 그런 성경의 역사성을 부정함으로써 오순절주의의 근간을 제거하려는 카갈의 해석에 이의를 제기해야만 한다.
카갈의 후 비평 방법에 의한 성경 경험과 현대 독자 경험의 이질화는 오순절적 경험을 상대화시키며, 상대화된 오순절 경험은 한 사람이나 어떤 특정한 집단이 스스로 만들어낸 경험에 불과하게 된다. 이런 상대화는 오순절적 경험을 겨우 성경에 대한 방대한 인간 경험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게 만든다. 카갈에게 인간의 경험은 남성과 여성, 유럽계 미국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미계 미국인 그리고 다른 다양한 문화의 후계자들, 타인을 억압하는 것에서 이득을 얻는 자들 그리고 억압받는 자들로서 경험 등 다양하다. 그는 20세기 해석자들이 그 경험들로부터 본문의 지평을 탐사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이 경험들의 다양성은 다중적 의미를 산출해내는 성경 본문들의 차원들 중의 하나 또는 여럿을 전유하기 위한 정당한 방법이다. 카갈은 리차드 이스라엘이 “해석학의 초점은 저자가 무엇을 의도했느냐가 아니라 언어학의 용어로 설명된 본문이 세계에 대해 무엇을 주장하느냐와 본문 자체의 경향 안에서 해석자에 의한 본문의 그 메시지의 전유이다”라고 말하며 저자의 의도에 대한 강조와 관계를 끊을 때 의미의 다중적 차원을 위한 이런 가능성을 깨닫기에 가까이 다가간다고 평가했다. 성경의 경험을 창작된 허구로 전락시키는 후 비평 해석에게는 성경의 경험을 절대화시켜 현대 독자에게 강요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어차피 성경의 경험이 허구적 경험이라면, 반대로 현대인들의 다양한 경험들을 성경의 경험에 투영해, 성경의 경험을 그 다양한 경험들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는 도구로 사용하자는 것이다. 이럴 때 오순절적 경험은 상대화되어 다양한 인간 경험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게 된다. 오순절적 경험이 성경의 경험과 다른 것이라는 것은 오순절적 경험이 사실은 어떤 특정인과 특정 집단이 스스로 만들어낸 경험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다른 현대인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경험들과 분간할 수 없는 것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B. 비르드의 비평과 후 비평의 혼합
비르드(J. K. Byrd)는 오순절 설교를 위한 해석학은 성경 본문을 재경험시킬 수 있는 해석학이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초기 오순절주의자들이 현 시대에서 성경적 경험들을 자기들의 것으로 주장하는 한, 그들의 해석은 성경 인물들의 영적이고 비범한 초자연적 경험들은 현대 신자들에게도 가능하다는 확신을 지속적으로 강화했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그는 이 확신들을 고려하면서 오순절적 설교는 성경 본문의 “재-경험”을 촉진시키는 해석 이론과 해석 방법을 요구한다고 보았다.
비르드는 폴 리꾀르(Paul Ricoeur)의 해석학이 성경 본문에 대한 객관적 연구와 주관적 전유 사이를 중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리꾀르의 이론을 어떤 본문의 의미를 그것의 본래 맥락 안에서 객관적으로 재구성하려는 해석과 어떤 본문을 실존적으로 전유하려는 해석 사이를 중재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비르드에 따르면, 본문과 해석자 사이의 거리는 초기 그리스도인들 시대로부터 해석적 문제가 되어 왔다. 그렇지만, 이 거리는 과학적 문화 안에서 살고 있는 현대 해석자에게 더욱 멀다. 리꾀르는 본문과 해석자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거리 두기”(distanciation)라고 묘사했다. 해석자는 본문의 거리 두기(distanciation)와 “전유”(appropriation)의 변증법 안에 붙잡힌다. 그에게 거리 두기는 객관적 재구성에 해당하며, 전유는 그 거리를 주관적으로 극복함으로써 가능해질 것이다. 거리 두기는 성경의 서사를 신화로 인식한다. 리꾀르에 따르면, 십구 세기 이후로 비평 방법(the critical method)의 발생과 증식 때문에 신화들은 더 이상 현대인을 위한 해설이 아니다. 그렇지만, 신화들은 “알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사실 너머”(beyond known and tangible reality)에 있는 것에 “세상적 형태를 부여하는 것”(giving worldly form)으로 구성된다. 리꾀르는 상징들에 대한 해석은 “신화에 의해 명확하게 된 경험의 재현”에 의해 가능하게 된다고 단정한다.
비르드는 리꾀르를 따라 모던적 비평적 방법을 해석 단계에서 사용하는 것을 허용했다. 리꾀르는 현대 청자들이 성경적 서사들 안에 있는 상징들의 의미를 전유하기 위해서는, 비평적 방법이 회피되지 말아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리꾀르의 해석은 상징들에 대한 경험, 그 경험에 대한 표현, 그 표현에 대한 숙고(reflection), 재경험으로 인한 해석의 확증(validation), 그리고 그 상징을 후-비평적으로 이차적 순진함으로서 “재-경험함”이라는 다섯 단계들을 포함한다. 이 과정 중에서 숙고와 확증은 비평적 단계이며 재경험은 후 비평적 단계이다. 리꾀르의 “후 비평 방법”(post critical method)은 비평 방법(critical method)에 의한 텍스트의 본래 의미의 재구성과 현대의 포스트모던적 텍스트 읽기를 통합한다.
비르드는 리꾀르가 성경의 서사들의 역사성을 거부하고 성경의 서사들에 담겨 있는 상징들만을 붙잡는 것을 인지하고, 상징을 붙잡는 측면만을 오순절 해석에 받아들이자고 제안했다. 그는 리꾀르의 “신화” 그리고 “상징”이라는 말들은 성경에 대한 오순절적 견해와는 이질적인 것으로 보일 것이라는 점을 인식했다. 분명히, 리꾀르의 성경의 역사성에 대한 가혹한 모던 비평적 견해는 많은 보수적 오순절주의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리꾀르는 해석 과정에의 역사비평을 도입함으로써 성경의 서사나 경험의 역사성을 부인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리꾀르의 역사성 부정은 받아들이지 말고, 상징에의 집중만 받아들여 그 상징들을 해석함으로써 회중에게 전유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C. 포스트모던 해석 평가
어떤 사람들은 포스트모던이 오순절주의와 유사하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런 유사성을 근거로 포스트모던을 오순절 해석에 도입하면 여러 난점이 생긴다. 예를 들면, 포스트모던과 오순절이 유사하게 “이야기”를 중요시 하지만, 포스트모던에게 이야기는 기껏해야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 꾸며낸 것(fiction), 역사성(historicity)이 없는 비역사적인 것일 뿐이다. 롱맨이 지적하는 대로 현대 문학 이론에서 문학 작품이 지시하는 것은 문학 작품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문학 작품 안에서만 존재하고 작동되는 것이며, “문학작품과 그것이 지시하는 것 사이의 파열”은 현대 문학 이론의 공리다. 그런 이론 아래서 문학 작품으로서 성서 안의 이름들은 성서 바깥에 그 지시체를 갖지 않는다. 현대 문학 이론으로 무장하는 포스트모던적 해석의 관심은 본문에 기록된 경험들의 역사성이나 객관적 진리에 있지 않다. 그래서 당연히 포스트모던적 해석가들에게 현대 독자의 경험은 성경에 기록된 경험과 동일할 수 없다. 따라서 포스트모던적 해석에게는 꾸며낸 이야기를 현대 독자가 재경험해야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런 것이다. 매튜 클락도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의 직접적인 행동을 고려하는 오순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권위 있는 기록인 성경이 “역사적인 허구”를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포스트모던적 해석의 함정을 용인할 수 없다.
포스트모던적 해석은 모던적 방법의 전제가 되는 계몽주의적 이성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모던적 역사비평 방법을 버리지 않고 성경 이해의 첫 단계로 삼음으로써 성경의 초월적 언급을 역사성이나 대응하는 실재가 없는 신화로 전락시키고, 두 번째 단계에 포스트모던적 해석을 도입하여 진리의 상대화를 긍정하게 만든다. 그런 성경에 대한 혼합적이고 이중적 접근은 텍스트의 절대적 진리성을 포기하고 상대적 진리를 수용하게 한다. 그 말은 성경의 기록들은 절대적이지 않은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므로 특정 해석자나 공동체에 의해 얼마든지 이렇게 저렇게 해석되어도 무방하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계몽주의적 이성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다.
포스트모던적 해석은 오순절주의를 변질시킬 수 있다. 다양한 공동체에 의한 다중적 해석을 인정하는 포스트모던 해석을 따라가다 보면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는 정통 오순절주의의 핵심 등과 같은 오순절주의에게 수호할 가치가 있는 점들은 현 세대에 의해 수정되는 것이 당연해져 버린다. 포스트모던적 해석은 오순절주의가 이름만 남고 내용은 전혀 오순절주의가 아닌, 유명무실한 껍데기 오순절주의가 되게 할 수 있다.
VI. 나가는 말
살펴본 것처럼, 찰스 파함과 브럼백 등 프리모던적 오순절주의자들의 전 비평적 읽기는 성경에 기록되기 이전의 경험과 성경에 기록된 경험을 일치시키고, 성경에 기록된 경험을 현대 독자가 재경험하게 했다. 그런데 그들로부터 100년도 지나지 않아서 고든 피, 하워드 어빈, 윌리엄 멘지스, 로버트 멘지스 등 소위 현대 오순절 신학자들은 저자 중심 모던적 오순절 해석가들이든, 티모시 카갈이나 조셉 비르드 등 독자 중심 포스트모던적 오순절 해석가들이든 둘 다 계몽주의적/칸트적 이성관과 인식론을 숨겨진 전제로 삼고 역사 안으로의 초월적인 것의 개입을 배제하는 고등/역사비평을 통해 성경을 읽고 있다. 그 결과 성경에 기록된 경험들이 그 역사성(historicity)을 박탈당하고, 기록되기 이전의 경험들과 다른 것이 되고 있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경험들이 역사성을 박탈당하게 됨으로서 현대 독자들이 성경의 경험들을 재경험해야만 한다는 오순절주의의 근간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러므로 모던적인 그리고 포스트모던적인 해석은 오순절주의에 적합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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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History and an Evaluation of Pentecostal Biblical Hermeneutics
Chang-Soung Lee
Since the birth of modern Pentecostal movement, Pentecostal hermeneutics for Pentecostal theology, by and large, has formed three types. one is pre-modern type, one is modern, and the other is post-modern. The pre-modern hermeneutics of early Pentecostals rejected Higher/Historical Criticism, and read the Bible pre-critically through the Continuation of all spiritual Gifts. Pre-critical bible reading of early Pentecostals made the pre-written experiences correspond with the written experiences in the Bible as facts, and modern readers be reexperienced the written experiences. That is to say, the pre-critical reading was a proper interpretation for making the pre-written experiences agree with the written experiences, and modern readers be reexperienced the written experiences.
But, so called modern Pentecostal scholars, both author centered modern interpreters and reader centered post-modern interpreters, have a common feature that they are reading the Bible through Higher/Historical Criticism which presupposes the agnostic enlightenment/Kantian view of reason and excludes the supernatural in-breaking into history. Namely, they are laying an obstacle, higher/historical criticism between the Bible and modern readers. As a result, the written experiences is deprived of the historicity, and they become different from pre-written experiences. And because of the outcome, the basis of Pentecostalism, modern readers should re-experience the experiences written in the Bible, especially the Baptism in the Spirit with speaking in tongues, is being destroyed. Therefore, both modern and post-modern hermeneutics are not proper interpretation ways for Pentecostal movement and theology.
주제어
오순절주의, 해석학, 프리모던, 모던, 포스트모던, 고등/역사 비평, 역사성, 전비평적 성경 읽기, 재경험
Key words
Pentecostalism, Hermeneutics, Premodern, Modern, Postmodern, Higher/Historical Criticism, Historicity, Pre-critical Bible reading, Re-exper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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