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오순절적 성경 해석을 향해
이창승
순복음총회신학교, 조직신학, 조교수
jesusgate@daum.net
국문초록
소위 현대 오순절 신학자들은 저자 중심 모던적 오순절 해석가들이든 독자 중심 포스트모던적 오순절 해석가들이든 둘 다 계몽주의적/칸트적 이성관과 인식론을 전제로 삼고 역사 안으로의 초월적인 것의 개입을 배제하는 고등/역사비평을 통해 성경을 읽고 있다. 그 결과, 성경에 기록된 경험들이 역사성을 박탈당하게 되었고, 연쇄적으로 현대 독자들이 성경의 경험들을 재경험해야만 한다는 오순절주의의 기초가 무너지고 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바람직한 오순절 해석은 구약을 덮었던 모세의 수건처럼 성경과 현대 독자 사이에 놓여 눈을 가리고 있는 역사비평과 은사중단론을 걷어낸, 기록 이전 경험과 기록된 경험과 현대 독자의 경험을 일치시키는 “일치 경험적 해석,” 반계몽주의적인 “거듭난 이성에 의한 해석,” “성경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는 해석,” 반고등비평적/반역사비평적인 “역사적 해석,” “은사지속론적인 정경적-역사적-문법적-신학적 해석”이어야 할 것이다.
I. 들어가는 말
지금, 오순절주의 안에서는 적합하지 않은 성경해석법에 의해 성경에 기록된 경험들이 그 역사성을 박탈당하고 있으며, 현대 독자들이 성경의 경험들을 재경험해야만 한다는 오순절주의의 기초가 무너지고 있다. 그래서 본 논문은 오순절주의의 근간을 보존하고 오순절 운동과 신학을 보존하고, 나아가 건강하게 육성시키기 위한 성경 해석을 탐구한다. 건강하고 적절한 오순절 해석은 기록 이전 경험과 기록된 경험과 현대 독자의 경험을 일치시키는 “일치 경험적 해석,” 반계몽주의적인 “거듭난 이성에 의한 해석,” “성경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는 해석,” 반고등비평적/반역사비평적인 “역사적 해석,” “은사지속론적인 정경적-역사적-문법적-신학적 해석”이어야 할 것이다.
II. 일치 경험적 해석:
기록 이전 경험과 기록된 경험과 현대 독자의 경험 일치
바람직한 오순절 해석은 무엇보다도 파함의 프리모던/전 비평적 해석처럼 성경에 기록되기 이전의 오순절 경험의 역사성과 기록된 오순절 경험의 역사성(historicity)을 인정하고, 그 두 경험들과 현대 독자의 오순절적 경험을 일치시킬 수 있는 해석, “일치 경험적 해석”이어야 한다. 아링턴이 말한 것처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신앙은 역사 속에서 증거된 사건들에 근거한다고 주장했다. 신앙과 해석학은 성경 본문이 지시하고 그리고 성경 본문이 그것으로부터 일어난 역사에 대한 관심을 요구한다.” 그리고 워링턴이 올바르게 말한 것처럼 오순절주의자들은 “성경 시대에 발생했던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초자연적인 역사들은 오늘날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성경 본문에 기록된 경험은 기록되기 이전에 역사 속에서 발생했던 경험을 지시한다. 오순절 해석은 현대 독자로 하여금 기록된 경험이 가리키는 것을 따라가서 기록되기 이전의 경험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 현대 독자가 그 경험을 재경험(re-experience)할 여지를 마련해 주어야한다. 바람직한 오순절 해석은 기록되기 이전 경험(pre-written experience)과 기록된 경험(written experience), 그리고 현대 독자의 경험(present experience)을 동일하게 일치시키는 해석이다. 바람직한 오순절 해석은 기록되기 이전 경험과 기록된 경험을 일치시키고, 나아가 그 경험을 현대 독자가 재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해석인 것이다.
기록되기 이전 오순절 경험 = 기록된 오순절 경험 = 현대 오순절 경험
Pre-written Pentecostal Experience = Written Pentecostal Experience = Present Pentecostal Experience
III. 거듭난 이성 / 반계몽주의적 이성에 의한 해석
역사비평방법은 어떤 일정한 인식론적 “전제”로부터 나온 것이다. 어떤 석의 방법은 어떤 전제로부터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신약 역사비평학자 레이몬드 브라운은 역사비평적 석의는 철학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크 기작도 언급한 것처럼 “연구의 모든 현장은 철학의 지원을 받는다. 철학적 모델들은 모든 학문이 그 위에 근거하는 기초를 형성한다. 형이상학, 인식론(epistemology), 논리 등등은 모든 과학의 무심결의 동료들이다.” 맥카티가 지적하듯이 역사 비평 학자들은 자신들의 방법을 한 철학 체계와 결합시키기를 결코 중단하지 않았고,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에 그 학자들은 자기들이 사용하고 있는 철학적 체계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모던적이든 포스트모던적이든 오순절 신학자들도 역사비평방법의 근저에 어떤 전제가 놓여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거나, 그 전제에 무관심하거나, 그 전제의 핵심에 도달하지 못했다.
모던적 오순절해석과 포스트모던적 오순절해석이 해석의 1차 단계, 즉 성경 석의 단계에서 사용하고자 하는 역사비평의 근저에 있는 인식론적 전제(epistemological presupposition)는 칸트의 이성관이다. 미셸 푸코와 맥카티가 파악한대로 “역사 비평”(historical criticism)에서 “비평적”(critical)이라는 말은 과거 칸트의 “비평적” 접근과 칸트의 “과학적 척도들”(scientific criteria)의 사용을 가리킨다. “19세기의 ‘고등 비평’과 그것의 20세기의 특히 헤르만 궁켈, 마틴 디벨리우스, 루돌프 불트만의 양식 비평으로 특징되는 ‘역사 비평’ 안에서의 지속은 18세기의 ‘계몽주의의 산물’이며, 칸트는 그것에 상당히 기여했다.” 역사비평에 아직도 유효한, 계몽주의로부터 유래한 전제에 대해 의문을 갖고 밝혀내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칸트의 순수 이성은 신 등 초월적인 것들을 허구로 전락시킨다. 그에게 이성의 특별한 기능은 외부의 사물들로부터 초험적인 이념들을 하나의 체계로 정리하는 것, 즉 그 이념들에게 한 원리에 따라 연관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칸트는 “초험적”(transzendentalen)이란 용어를 대상들 자체에 의해 점유되기 보다는 대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의 양식에 의해 점유되는 모든 지식에 적용한다. 감각 경험으로부터 직접 유래되지 않는 대상들이나 또는 관념들에 대한 추론은 언제나 공상적인 것이다. 초월적 관념주의는 정신적 현상들은 사물들 그 자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신적 현상들은 인식되는 것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 그저 상상에 불과한 가상들(transzendentalen Scheine)이다. 칸트는 모든 실재적인 것은 어떤 내적 현상(Erscheinung, Phänomenon)으로 우리에게 제시되는 것이지, 결코 실체(Noumenon) 또는 물 자체(Ding an Sich selbst)로 제시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칸트의 “초월적 형이상학”에서 영혼, 자유, 그리고 신의 존재와 같은 관념들은 지식의 대상들이라기보다는 신앙의 대상들이 된다. 실재(Realität)는 경험의 문제로서 오직 감각과만 관계가 있지, 사고의 형식과는 관계가 없으며, 인간은 그것으로 공상을 만드는데 탐닉할 수 있다. 실재에 대한 유일한 척도는 질료를 그 개념에 제시하는 지각이다. 칸트에게 절대필연 존재인 신과 세계는 순수한 이성의 개념, 즉 나의 관념(Idee)들 밖에 있는 객관적 실체들이 아니고, 실제여부는 알려지지 않은, 가능성(Möglichkeit)만 있는, 생각 안에 있는 것인데, 우리는 생각으로 선험적 인식들을 종합함으로써 스스로 대상들을 만들어 내며, 우리는 생각으로, 주관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대상들을 스스로 창조하는 자들이다.
칸트는 하나님에 대한 논의를 실천 이성에만 한정시키고, 나아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명증적이지 않은, 인간이 자신의 도덕적 행위를 스스로 격려하기 위한, 실천 이성의 요청(Die Postulate der reinen praktischen Vernunft)에 의해서만, 한낱 필연적 가설 안에서 허구(Erdichtungen)적으로 존재하게 하였다. 따라서 칸트의 이성은 기록되기 이전의 경험과 기록된 경험을 허구로 만들기 때문에, 기록이전의 경험과 기록된 경험을 다르게 만들고, 기록된 경험과 현대 독자의 경험을 다르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현대의 독자들이 그 경험을 동일하게 경험할 수 없게 만든다.
기록되기 이전의 경험 ≠ 기록된 경험(허구) ≠ 현대 독자의 경험
모던을 극복해 보겠다는 포스트모던 해석은 모던적 이성과 합리성의 지배를 거부하는 것이지 계몽적 이성과 합리성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포스트모던은 칸트류의 계몽주의적 이성을 극복하거나 제거하지 못하고, 공생을 선택한 것이다. 볼프강 반디는 같은 맥락에서 오순절주의자들의 반지성주의(Pentecostal anti-intellectualism)를 옹호하면서, 오순절주의자들의 반지성주의는 지성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 추구에 있어서 그것의 패권을 거부하는 것이며, 이성과 합리성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성만이 진리 판별을 위한 적합하고 충분한 도구라는 것을 의문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순절해석을 위해 칸트의 계몽주의적 이성관을 버리고, 절대적 초월성을 인정하고 인식할 수 있는 이성관을 다시 세워야 한다. 성경을 기록했던 누가나 바울 등 성경 저자들, 어거스틴, 칼빈, 웨슬리의 이성이나 계몽주의자들의 이성은 똑같은 이성이다. 그러나 양자가 가졌던 이성관은 서로 다른 것이었다. 문제는 이성이 아니라 인식론을 결정하는 이성관이다.
사도 바울은 인간 이성의 신성 인식 가능성과 왜곡, 그리고 이성의 보다 정확한 신성 인식의 길을 제시했다. 바울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이성(nou'")이 눈으로 만물을 관찰함으로써 창조자의 “신성”(noouvmena)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taV gaVr a*ovrata au*tou')을 언급했으며,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것들이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te a*i?dio" au*tou' duvnami" kaiV qeiovth")이라고 부연하였다(롬 1:19-20).
그런데 바울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이성을 어둠에 빠뜨렸으며, 하나님을 왜곡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을 통해 인간에게 자신의 신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하셨지만,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음으로써 생각(dialogismov")이 허망해지고 마음이 어두워지게 되었다(e*skotivsqh)고 말했다. 그 어두움 속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왜곡하여 피조물들로 우상(ei*kovno")을 만들고 있다(롬 1:21-23).
바울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이런 왜곡된 하나님 이해를 주도적으로 바로 잡으려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통해 자신의 능력과 신성을 인간에게 알게 하는 방법에 더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영광을 인간에게 더 정확하게 알게 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셨다. 바울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스스로 어둠에 빠진 인간의 마음에 빛을 비추실(lavmpw) 때,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된다(고후 4:6).
어거스틴의 이성은 감각적 표상 너머로 향한다. 어거스틴에게 이성(mens, ratio)이란 사고(cogitatio)를 포함하는 정신(nous, animus) 혹은 영(spiritus) 심지어는 영혼(anima)과 동의어로 쓰인다. 이성의 대상은 육체 감관이 제공해 준 표상(phantasmata)이 아니고 순수이성적 사물이며, 지성이 영혼의 중심부(acies mentis) 또는 이성의 빛 자체(ipsum lumen rationis)가 발현하는 거기에서 사물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거스틴에 따르면 이성은 이런 능력이 죄로 인해 부패되어 진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인간의 오성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파악 못하는 이유는 죄로 인한 세 가지 장애물 때문이다. 그는 요한일서 2장 16절(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좆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좆아 온 것이라)에 근거하여 그 장애물을 욕망(concupiscentia [passiones])과 오만(superbia[iactantia])과 지적 호기심(curiositas)로 간추린다. 다만 이 악습도 사실은 영원한 사물의 인식, 진리의 완전한 장악, 진리 안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희구하는 영혼의 동력이 죄로 인한 부패로 왜곡, 전도되어 나타난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어거스틴은 이런 인간 이성의 어두운 무능력 때문에 하나님의 빛의 조명을 통한 인간 이성의 온전한 인식을 주장했다. 어거스틴에게는 지성의 대상들과 구별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빛이다. 영혼은 그 빛에 의해 비춤을 받으면, 볼 수 있으며 모든 것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빛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다. 반면에 영혼은 피조물이다. 그렇지만,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이성적이고 지적이다. 그리고 영혼이 그 빛을 보려한다면, 그것은 그것의 연약함으로 인해 무서워 떨 것이며 스스로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빛의] 근원으로부터 모든 이해가 나온다. 진리는 이성에 의해 발견되기 전에 그 자체로 존재한다. 그런데 이성이 그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시간과 공간과 환영들을 초월하는 빛(lumen sine spatio locorum et temporum et sine ullo spatiorum talium phantasmate)이 이성에 비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빛이 곧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진리이기 때문이다(Deus veritas).
칼빈은 한편으로는 적절하게 사용되었을 때의 이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자들의 사용처럼 과도하게 사용되었을 때의 이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칼빈이 이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이성이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신 것이기 때문이며,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이성이 인간의 원죄로 인해 부패되어 기형적 잔재로 남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패된 이성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자비에 의한 구원을 아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 택하신 사람들에게 중생의 영을 통해서(참조, 딛 3:5) 주시는 것이다.
존 웨슬리의 신학 방법은 “이성”을 포함하는 “웨슬리적 사중법”(The Wesleyan Quadrilateral)이라고 일컬어진다. 아우틀러는 웨슬리가 성경, 전통, 이성이라는 전통적인 영국 성공회의 신학 삼중법에 “경험”을 더했다고 보았다. 웨슬리도 이성을 사용하여 성경을 연구하고 설교했던 것이다. 웨슬리는 이성을 “하나님의 귀한 선물”(reason is the highest gift of God)이라고 일컬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명백한 성경과 설득력 있는 이성으로 가르쳐진 모든 교리를 증명하는데 실패한 적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웨슬리는 “우리는 이성 위에 세우진 종교를 바라는 데 있어서 당신과 일치합니다. 영원한 이성 위에 확고하게 근거한, 이성에 모든 점에서 조화되는 종교,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설교하는 종교입니다. 그 종교의 기초는 하나님의 본성과 사람의 본성 위에 그 본성들의 상호관계와 함께 놓여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웨슬리는 이성을 경멸하는 것과 과대평가하는 것 사이에 중도를 택했다. 그는 이성이 비록 제한 적이지만 계시된 진리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적합하고 필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에게 이성은 기독교적 교리를 창출해낼 수 없고, 다만 계시에 의해 성경에 제시된 것에 논리적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성의 기능을 성경 그리고 다른 종교적 권위 있는 출처들로부터 진리를 추론해 내는 데 도움을 주는 것에 한정시켰지만 이성에 의한 논리적 사고를 높게 평가했다.
웨슬리의 인식론은 플라톤을 따라 신에 의해 신을 아는 능력이 이미 사람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합리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 사람은 오직 오감각적 경험에 의해서만 알게 된다는 경험주의를 종합했다고 볼 수 있다. 웨슬리 시대에 존 로크의 경험론이 득세하고 있었고, 그가 경험주의를 포용했지만, 오감각적이지 않은 하나님의 지식에 있어서는 그가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지식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합리주의 쪽으로 기울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웨슬리는 “영적 감각”(spiritual sensorium, spiritual senses)이라는 개념을 개발함으로써 그 두 전통을 통합했다. “영적 감각”은 이 감각이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에 일종의 경험주의적 요소를 갖는다. 그리고 반면에 이 영적 감각이 하나님 자신에 의해 인간 안에 심겨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합리주의적이다. 영적 실재에 대한 직접적 지각(immediate perception of spirituality reality)인 영적 감각은 성령을 인간의 영혼에 거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창조적으로 만드신 것이다. 웨슬리는 1703년에 태어나 1791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칸트는 1724년에 태어나 1804년에 세상을 떠났다. 둘은 거의 동시대인이었지만, 인식론적 이성관은 서로 달랐으며, 그 결과도 판이하게 달랐다. 웨슬리의 이성 사용은 동시대의 계몽주의적 이성 사용과는 달랐던 것이다.
오순절 해석에 적합한 이성은 “거듭난 이성”이다. 이성에 의한 성경 연구는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으며, 적절한 이성의 사용에 의한 지식추구는 장려되어야만 할 것이다. 문제는 이성관이다. 병들고 잘못된 이성으로 성경을 연구하지 말아야만 한다. 바울과 어거스킨, 그리고 칼빈이 간파했던 것처럼 현실 이성은 서로 상충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이성은 한 편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원죄로 인해 부패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무능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칸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무능력을 순수 이성에 부여하고, 그 무능력을 선천적인 것으로 삼았다. 그리고 칸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인간의 이성의 능력을 실천적 이성에만 한정시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명증적이지 않은 인간의 실천 이성의 요청에 의해서만, 가설 안에서 허구적으로 존재하게 하였다. 하지만 사실은 이성의 무능력은 원죄의 유전이라는 입장에서는 선천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성의 무능력은 본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원죄로 인해 발생한 비본래적인 것이며, 죄로 인해 인간의 부패된 이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어느 정도 회복되어,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이 이성은 “거듭난 이성”(born again reason)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거듭난 이성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분의 빛을 조명해 주시고, 들려주시면, 칸트의 “빛을 받은 그러나 분열적 이성”(enlightened but schizophrenic reason)과 달리 분열되지 않은 한 이성으로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칸트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칸트는 하나님의 빛을 거부하고, 스스로 만든 빛을 받은 것이다. 역사 비평은 칸트의 그 분열된 이성으로 성경을 봄으로써 순수 이성으로는 성경에서 초월적인 것을 제거하고 성경을 신화로 만들려 하였으며, 실천 이성으로는 그 제거된 자리에 허구적으로 요청하여 스스로 창조해낸 비신화화 된 신의 말씀, 즉 자신의 윤리 의식 등 다양하고 잡다한 것들을 투사하려 했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이성의 역할은 지대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자기 분열적인, 병든 계몽주의적 이성을 들이대지 말아야 한다. 적절한 오순절 성경 해석을 위해 절대적인 초월의 역사로의 개입을 인정했던 성경 저자들과 어거스틴, 칼빈, 웨슬리 등등의 “거듭난 반계몽주의적 이성”을 회복시키고 성숙시켜야 한다. 그런 “건강한 이성”(sana ratio)으로 성경을 해석할 때 비로소 진정한 오순절 해석이 가능해질 것이다.
IV. 성경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는 해석
칸트적 이성에 근거를 두는 모더니스트들의 세계관(world-view)은 신약성경시대의 사두개인들의 세계관과 흡사하다. 모더니스트들은 현대인은 마땅히 초월적인 본질에 대한 불가지적인 계몽주의적 이성을 시인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이성관은 고대시대 사두개인들도 가졌던 것이었다. 그들은 몸만 현대에 살뿐 철학적 전제로서는 고대의 사두개인과 동시대적이다. 1925년에 미 하나님의 성회 총회장이었던 로스웰 플라우어는 중앙 성경 학교(Central Bible Institute) 졸업식에서 모더니스트들을 사두개인들로 비유했다. 그에 따르면 모더니스트들은 성경에 기록된 이적 자체를 믿지 않기 때문에 사두개인들이다. 모더니스트들은 현대판 사두개인들로서, 고대 사두개인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포스트모던의 세계관은 “개방적 시스템들 패러다임”(Open Systems paradigm)으로 묘사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포스트모던 세계관을 오순절 세계관과 유사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오순절적 세계관은 모더니스트들이 칸트적 이성의 분리에 따라 존재를 “영적 영역”(spiritual realm)과 “물질적 영역”(materialistic realm)으로 나누는 것을 극복하려는 통전적이고 포괄적인 세계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영적 영역과 물리적이고 물질적 영역 사이의 상호작용을 인식한다. 이런 두 영역 사이의 상호작용을 포스트모던 세계관도 인정한다. 그렇다고 포스트모던 세계관이 오순절적 세계관과 양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현대인들이 다 사두개인적인 모더니스트들이 아니다. 어빈도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어떤 현대인들은 “기적이나 심지어 사이비 기적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그 어떤 현대인들은 성경시대에 바알이나 아세라 등 다른 영들을 숭배했던 우상 숭배자들과 같은 현대판 우상숭배자들인 것이다. 이점을 현대판 우상숭배자들이 될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간과했다. 포스트모던 세계관에 내재된 상대성은 아인슈타인의 우주론과 상대성이론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런 초월적인 것에 개방적이지만 상대적이고 다원적, 혼합주의적이어서 악한 영들과 선한 영들 사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세계관은 오순절주의의 성경적 절대 신론을 수용하지 못한다. 클락이 잘 지적하는 것처럼 두 세계관은 대립적이기 때문에, 오순절주의자들은 현대의 비 성경적 세계관들에 관련성 있고 적절하게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포스트모던적 이거나 모던적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오히려 현대인들의 세속적인 세계관들을 성경의 세계관으로 바꾸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바람직한 오순절 해석에서 성경 기록 이전의 인물들의 세계관과 기록자의 세계관과 원독자의 세계관, 그리고 현대 독자의 세계관은 서로 상충되지 않는 거의 동일한 세계관이다. 바람직한 오순절 해석은 성경의 초자연적인 기술들이 기록되기 이전의 역사 속에서 실제로 발생한 경험들에 대한 것임을 전제로 삼는다. 그리고 해석의 목표를 성경의 초자연적인 기술들에 대한 읽기/연구를 통해 기록되기 이전의 역사 속에서 실제로 발생한 경험들을 현대의 독자들의 신앙생활 속에서 재현하여 경험하는데 둔다. 바람직한 오순절 해석에서는 기록 이전의 인물들과 저자, 저자와 원독자, 그리고 저자와 현독자 사이에 “시간적 거리”는 존재하지만 “세계관적인 거리(distance)”는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바람직한 오순절 해석에게 성경에 묘사되고 보고되어 있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선한 천사들, 마귀, 악한 천사들, 귀신들, 사람의 영이라는 영적 존재들은 여전히 현대에도 존재하고 있으며, 그 존재들이 성경 시대에 초월적 영역과 내재적 영역에서 상호작용하며 사건들을 일으킨 것처럼, 현대에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 세계관적인 무거리는 바로 인간이 이성적 존재일 뿐만 아니라, 영적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성경적인 오순절 세계관은 영적 세계를 단절시키는 모던적 세계관과는 다르게 그리고 영적 혼합 평화를 주장하는 포스트모던적 세계관과도 다르게 분리 구원을 위한 영적 전쟁을 용인하는 “성경적 영적 세계관”(Biblical Spiritual Worldview)이어야 한다.
V. 역사적 해석: 반고등비평적/반역사비평적 해석
홀렌베거는 “역사 비평적 주석은 성경 본문들을 그 역사적 정황에서(in their historical context) 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그의 말은 지극히 당연한 것 같다. 그러나 그 말의 의미를 곱씹어 보면 결코 당연하지 않다. 모더니즘과 근본주의자들이 “역사비평”(historical criticism)과 “역사적 해석”(historical interpretation)이라는 말을 할 때 “역사”(history)라는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지만, 양자는 그 단어에 완전히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이런 동일한 기표(signifiant)에 내포된 상이한 기의(signifie)에 대해, 매튜 클락은 “그들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정의했다”(they probably define ‘history’ in different ways)라고 말했다. 홀렌베거가 말한 역사 비평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성경이 기록된 배경역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성경 본문이 말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의심(의심의 해석학)을 가지고 무엇이 정말 일어났는가를 역사적으로 새롭게 규명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성경이 진술하고 있는 대부분의 초자연적인 사건들은 신화적인 성격이며, 실제로 발생한 사실 역사로서는 인정될 수 없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홀렌베거가 “역사”라고 말했을 때 그 “역사”의 의미는 에른스트 트뢸치(Ernst Troeltsch)가 역사비평 방법론의 근본원리를 대변하면서 공식화한 역사이다. 그 역사는 개연성만 가지는 것이며, 소위 현대인의 경험에서 유추된 것이고, 자연적인 법칙들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역사는 오늘날 우리 자신의 경험에서 유추하여 이해되는 역사, 즉 계몽주의적 이성을 사용하는 소위 현대인의 경험에서 유추된, 칸트적 이성을 통해 이해된 역사다. 칸트는 원인과 결과를 일으키는 자유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오직 자연 법칙에 따라 발생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불트만도 트뢸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역사비평에서 사용하는 역사의 의미에 대해 “역사적 방법은 역사는 원인과 결과의 연속에 의해 연결된 각 사건들 안에 있는 결과들의 닫힌 연속체(closed continuum)라는 의미에서 단일체라는 전제를 갖는다. . . 이 폐쇄성(closedness)은 그 역사적 사건들의 연속체에는 초자연적, 초월적 힘들이 개입할 수 없으며, 그래서 그 어떤 기적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홀렌베거와 트뢸치와 불트만이 말하는 “역사”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개입이 거세당하는 역사인 것이다. 역사비평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성경 본문들을 발생시킨 역사적 과정들(the historical processes which gave rise to biblical texts)에 빛을 던져주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의 역사적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들에 따르면, 역사 비평 방법은 “그것이 그것의 각 단계들 안에서(본문 비평으로부터 편집-비평까지) 가능한 한 객관적이기를 추구하는 과학적 척도의 도움에 의해 작동하기 때문에 역사적 방법이다.” 그래서, “역사 비평은, 분석적 방법으로서, 그 어떤 다른 고대 문헌을 연구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성경 본문을 연구하며, 인간 담론의 한 표현처럼 그것에 대해 논평한다.” 또한 전용란도 역사비평을 사용하는 모던적 오순절 해석의 특징을 객관성(objectivity) 추구와 저자 의도(the intent of the inspired authors) 중심 읽기로 분석했다. 그러나 역사 비평 방법은 객관적인 과학적인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역사적이지도 않으며(neither scientific nor historical), 그것의 칸트에 의해 제안된 합리주의 철학적 전제들(rationalist presuppositions)의 무비판적이고 지속적인 사용은 그것의 결론들에서 그 어떤 진정한 객관성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칸트적 접근은 문서화된 역사적 사실들(historical events)을 외적 실재의 영역에서 제거해버리고, 문서화된 역사적 사실들을 일종의 허용되는 허구(permissible fiction)로 축소시킨다. 그래서 성경에 역사비평을 가하면, 성경의 서사들, 성경의 경험들의 역사성(historicity)은 제거되며, 역사성이 제거된 신화를 현대에 동일하게 재경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도 계몽주의적 이성에 의한 역사비평을 인정한다. 포스트모던도 이성관에 있어서는 계몽주의적이다. 그래서 “포스트모던”이란 명칭은 “극단적 모던”(ultra modernity)이라고 불러야 할 것을 잘못 부른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포스트모던은 “후 비평적 입장”(a post-critical stance)을 취한다. 그것은 비평과 비평적 사고가 이제 “한물 간”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경 해석에 있어서 “전-비평”(pre-critical study)으로 돌아가자고도 하지 않는다. 그보다 그것은 비평적 방법이 텍스트에게 의미 있는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텍스트에 대해 무언가 중요한 것을 말해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평적 방법이 제공한다는 그 중요한 것은 성경의 본문을 칸트의 물자체의 불가지론적 인식 이성에 따라 구전군으로 또는 자료군으로, 갈래갈래 찢어 그 덩어리들에 각각 다른 저자 혹은 편집자, 다른 시대, 다른 독자들을 인위적으로 덧붙인 넝마, 프랭큰쉬타인 괴물 같은 것이다. 성경 이해의 첫 단계에서는 저자 중심적 역사비평을, 두 번째 단계에서는 독자 중심적 포스트모던적 비평을 시도하는 것은 계몽주의적 이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필연코 성경의 오순절 경험과 현대 오순절적 신앙과 경험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포스트모던은 초월적인 것을 논할 수 있는 철학적 자리를 제공하지만 그 제공은 결국 성경의 초월적 존재인 성령을 다른 종교들의 영들의 수준으로 격하시키고 혼합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포스트모던은 모던이 역사비평을 통해 성경에 창조되어 덧붙여졌다는 신화들을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하면서 제거해 버린 것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집어 들고 붙여서 “재신화화”(remythologization)하려 한다. 포스트모던에게 모던적 역사비평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경 서사의 재신화화를 위해서는 역사비평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모던적 역사비평을 통해 성경을 신화로 묶어두어야 비로소 포스트모던이 신화의 세계에서 활개를 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비평에 의해 재신화화된 신화는 그리스 신화나, 로마 신화, 힌두 신화와 동등한 반열에 놓인다. 그 결과 성령은 문학적 신화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인격화된 허구나, 다른 영들의 수준으로 격하되며, 진리의 영이 아닌, 상대의 영이 된다.
이와 달리, 과거나 현재에나 “하나님께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개인사와 보편사 속에서 행하실 것을 인정하는, “하나님에 대한 급진적 개방성”(radical openness to God)을 갖고 있는 진정한 오순절주의는 성경의 초자연적 경험들을 실제로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이해하며, 그래서 역사비평을 거부해야 한다. 성경은 역사적 성격을 가졌고 성경 저자들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진실한 증거자들이었다. 성경의 권위는 일차적으로 역사적 권위이다. 즉 성경의 역사적 사건들이 진실한 증인들의 증거에 근거한 것이므로 믿을 만하다. 물론 성경의 역사적 지식은 “표준적 지식”과 “역사적 저작”의 복잡하게 얽인 줄과의 결합이다. 마크 기작이 묘사한 것처럼 역사적 지식은 그 무엇이든 1차적이지 않고, 2차적으로(또는 3차적이거나 4차적으로) 얻어진 지식이다. 지식이 말과 같다면, 역사적 지식은 잡종 노새와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역사가/목격자 또는 증인으로부터 무언가를 들을 때, 독자는 무언가를 알게 된다. 지식의 조각을 얻고 역사가 너머에 있는 역사적 사건 자체를 실제로 파악한다. 나아가 사건들에 대한 단순한 역사적 지식을 얻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들의 의미에 대한 통찰력과 그것들의 실재성에 대한 영적이고 초자연적 수용이 주어진다. 그렇게 오순절주의는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경험들을 성경에 기록된 경험들을 통해 확인하고, 그 경험들을 현대에 동일하게 재경험하려한다.
오순절 해석은 성경의 다양한 문학 형태들에 담겨있는 사건들과 강화, 이야기들은 성경 저자들에 의해 창작된 것이 아니고, “역사적 사실과 상응한다”(corresponds to historical fact)는 성경해석에 대한 시카고 선언 14항만큼은 전폭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설혹 아모스 영이 주장하는 것처럼 오순절 해석학이 성경의 기술들의 역사성보다는 현대 독자들의 가능성을 더 강조한다고 할지라도, 그 강조가 성경의 기술들의 역사성을 부정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현대 독자의 가능성은 오직 성경의 기술들의 역사성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성경의 경험의 역사성을 부정하면서, 성경의 경험과 현대 독자의 성령론적 연속성(pneumatic continuity)을 주장하는 것은 모순을 범하는 것이다. 성령께서 기록되기 이전의 경험을 역사 속에서 일으키셨고, 동일한 성령께서 그 경험을 역사 속에서 성경에 기록하게 하셨고, 동일한 성령께서 역사 속에서 현대 독자들에게 그 경험을 재경험시키신다는 것이 인정될 때 비로소 진정한 성령론적 연속성을 말할 수 있다.
오순절 해석은 성경의 정경을 대상으로 삼으며 정경에 담긴 서사들의 역사성을 인정하는 “역사적 해석”을 포함한다. 그런데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역사적 해석과 역사 비평은 역사와 그 정황을 중요시 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유사하지만, “역사”에 대한 정의와 그 적용이 서로 확연히 다른 것이다. 양식사 비평, 자료 비평, 편집 비평 등의 역사 비평은 칸트적 이성에 따라 성경의 책들을 해체하여 소위 구전 단위나 자료 단위로 조각내고, 그 조각들에 서로 다른 저자와 기록 시기, 시대적 정황, 독자를 부여하지만, 역사적 해석은 반 칸트적 이성에 따라 성경의 책들의 전통적인 저자와 기록 시기, 시대적 정황, 독자를 유지할 수 있으므로 정경을 조각내지 않아도 된다. 역사비평을 배제하는 “성경적 역사적 해석”을 주장하는 게르하르트 마이어는 “지금까지의 성경 비평적 의견과는 달리, ‘성경적–역사적 해석’(biblisch-historischeen Auslegung)은 어떤 경우에도 ‘정경의 최종 형태에 기반을 둔다’(auf der Endgestalt des kanonischen Textes fußen)”라고 말했다. 정경으로 주어진 본문 자체를 해석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 이점이 역사비평에 의한 해석과 역사적 해석 사이의 외형적으로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며, 그 차이는 실로 크다. 오경의 예를 들면, 역사 비평은 대부분 오경을 J E D P라는 조각으로 나누고 각각에 다른 저자 또는 편집자를 부여하고, 기록시기를 포로기 이후까지로 늦춘다. 칸트적 이성의 눈을 가진 역사 비평에게 신명기에서 모세가 약속의 땅을 보며 이스라엘의 앞날을 말했던 부분은 “사건 후 예언”(Vaticinium ex eventu), 즉 모세의 진짜 예언이 아닌, 후대에 소위 예언의 양식을 빌어 모세의 말로 덧붙여진 것으로 전락한다. 반면에 역사적 해석은 전통적인 모세 저작설을 유지할 수 있으며, 오경을 통째로 해석할 수 있고, 기록 시기를 모세 시대로 설정할 수 있다. 그리고 모세가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유대인들의 앞날을 예견한 말들(예를 들면, 신 4:26-28)도 초월적인 실제 예언, “사건 전 예언”(Vaticinium ante eventum)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그래서 오경을 모세의 글이라고 지칭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눅 16:29, 31; 20:37; 24:27, 44)은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사야서 문제에 있어서도 역사 비평은 요시야 왕 시대의 이사야가 미래의 느부갓네살의 이름까지 예언할 수 없다고 단정 지어 버린다. 그리고는 그 이름이 나오는 부분과 그 이전 부분을 나누어 각기 다른 저자들과 기록시기들을 설정해 버린다. 그러나 역사적 해석은 요시야 시대의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에 의해 미래의 일을 영적으로 볼 수 있었으며, 그래서 미래에 존재할 사람의 이름까지 기록할 수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정경의 서사는 그 기록된 대로의 역사성을 유지한다. 게르하르트 마이어는 역사 비평적 이해의 중요한 기초인, 계몽주의의 이성에 의한 유추(analogie)를 버리면 초자연적인 것이 합법적인 자리로 돌아오며, 신학에서 쫓겨났던 기적과 예언이 다시 돌아온다고 말했다. 이점이 역사 비평과 역사적 해석의 질적 차이이다. 물론 누가는 자기 복음서의 서문에서 구술적인 또는 기록적인 전승의 발생과 자료의 수집과 기록, 편집적 종합에 대해 밝힌 바 있으며(눅 1:1-3), 민수기에는 모세 후대의 것인 것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전쟁기”(hwhy tmjlm)로부터 인용이 등장하기도 한다(민 21:14). 그러나 이런 누가의 언급을 본문 속에서 확인할 정확한 방법도 없으며, 확인할 수도 없다. 누가는 최종 본문으로부터 그런 과정들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 단계 별로 자료들이나 전승들을 확인하고 가려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또한 누가의 그런 과정에 대한 언급을 그런 언급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그런 전승과정을 거치지 않은, 증인이 곧 저자인 성경의 다른 책들에도 유추하여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민수기의 그 후대 자료 사용 언급을 오경의 다른 부분들의 후대의 자료들의 집합물로 만드는 명분으로 삼는 것은 잘못된 비약이다. 오경 안에 오경의 나머지 부분들이 모세 이후의 여러 자료들로부터 편집되었다는 언급도 없거니와 그런 편집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한두 가지의 소위 보충 자료 언급을 나머지 전체를 분석하는 틀로 삼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나아가 그런 언급들을 바탕으로 칸트의 이성을 기준으로 역사비평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더더욱 부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순절 해석은 필히 이런 정경의 최종 본문을 대상으로 삼으며 성경의 역사성을 인정하는 역사적 해석을 그 방법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므로 정통 오순절 해석은 역사적 해석을 견지하면서, 성경의 경험의 역사성을 파괴함으로써 그런 동일한 재경험을 가로막는 계몽주의적 이성에 의한 고등비평적/역사비평적 해석을 미련 없이 결연히 버려야 한다. 정통 오순절주의는 “성서에 대한 고등비평”(higher criticism of Scripture) 방법을 버리고, “성경에 대한 고등 관점”(high view of the Bible)을 확고하게 가져야만 한다. 역사비평을 버리는 것은 역사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역사 비평을 버리는 것은 역사를 보는 잘못된 역사관과 틀과 방법, 그리고 그 그릇된 결과들을 버리는 것일 뿐이다. 역사 비평을 버리는 것은 왜곡된 역사를 버리고, 본래의 역사를 직시하고 대면하게 하는 것이다. 역사 비평의 왜곡된 역사를 버리면, 역사적 해석의 참된 역사가 다가온다. 역사비평의 단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손에서 역사비평을 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역사비평을 버리면 “구체적인 인간 경험이라는 역사적 차원”을 잃을 것이라는 공포에 가까운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개혁주의 신학자 로퍼는 “새롭게 단장한 역사비평”(renovate historical-critical methodology)의 도래를 고대했다. 하지만 역사 비평을 칸트의 불가지론적 전제라는 핵심 뼈대는 남기고 벽과 천장, 장식품들을 리모델링(remodeling)만 해서는 똑같은 결과만 낳을 뿐이다. 역사비평을 불도저로 뼈대 채 부수어 밀어내 버리고 성경해석학을 진정한 역사적 해석을 뼈대로 삼는 리빌딩(rebuilding)한 재건축물로 만들어야 한다. 정통 오순절 해석은 모던적 해석처럼 성경 저자들에 의해 이미 비-신화화된(de-mythologize) 성경의 서사들(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전승이 교묘히 만든 신화들[sesogismevnoi" muvqoi"]을 따른 것이 아니며, 자기가 친히 그분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보았다고 밝힌다[벧후 1:16])을 역사비평을 통해 “더-비-신화화”(more-de-mythologize)하려 하지 않아야하며, 포스트모던처럼 역사비평을 통해 성경의 서사를 “재-신화화”(re-mythologize)하려 하지도 않아야 하고, 오히려 모던과 포스트모던이 역사비평을 통해 성경의 서사를 “비-성경화”(de-biblize)한 것을 역사비평을 버리고 역사적 해석을 수행함으로써 “재-성경화”(re-biblize) 또는 “성경화”(biblize) 해야만 한다.
VI. 은사지속론적 정경적-역사적-문법적-신학적 해석
바람직한 오순절 해석은 적극적으로 “반계몽주의적 이성관”에 의한 은사지속론적 “정경적-역사적-문법적-신학적 해석”(Grammatic-Historic-Theological Interpretation)을 시도해야 한다. 그럴 때 성경과 공명하는 오순절적 신앙과 체험을 확립하고 배양하는 진정한 오순절 해석이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벌코프가 언급한대로 “역사적-문법적 방법”은 서유럽 교회의 종교개혁과 포스트 종교개혁의 산물이다. 이 방법의 어떤 국면들은 루터 이전에도 알려졌었고, 때때로 사용되었었지만, 루터, 칼빈, 쯔빙글리, 존 낙스 그리고 다른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발전되었다. 역사-문법 방법은 라틴 교회에서 천여 년 간 발전시켜 사용해왔던 알레고리적 방법의 대안으로 개발된 것이다. 그리고 루터 사후에 17세기 18세기 동안 이 방법은 루터주의, 칼빈주의, 그리고 알미니우스주의 진영에서 폭넓게 사용되었다.
벌코프는 “역사적 해석”(historical interpretation)을 정의하면서 전통적인 근본주의자들의 “역사적 해석”과 제믈러(Johann Salomo Semler)가 진화론이라는 철학을 역사에 적용하며 동일한 이름을 사용한 “역사 비평”(historical criticism)과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벌코프는 “역사적 해석”이라는 용어를 성경의 다양하게 다른 책들의 빛 안에서 성경에 대한 연구를 의미하는데 사용했다. 그는 역사적 해석의 기본 전제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 속에서 발생했으며, 그러므로 오직 역사의 빛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 . . 성경의 내용들은 역사적으로 결정된 것이며, 그 만큼 역사 속에서 그 설명을 찾는다”라고 말했다.
박형용은 “문법적-역사적-정경적 해석”을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그 해석은 성경 내에 그 원리가 내재해 있는 해석법이다. 만약 성경 밖에서 원리를 만들어 그 원리로 성경을 해석하려 한다면 성경 내에서 상충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문법적-역사적-정경적 해석은 성경 속에 내재한 원리로 성경을 해석하기 때문에 상충 없이 원 저자의 뜻을 찾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박형용은 문법적 해석에 대해 “성경 저자의 문법으로 해석자가 자신의 문법으로 삼고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이라고 정의한다. 역사적 해석은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연구하여 그 역사적 상황이 하나님의 말씀의 메시지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정경적 해석은 “성경 66권을 통일성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성경해석에 임한다.” 그에게 “문법적 해석, 역사적 해석, 정경적 해석은 편의상 따로 생각할 수는 있으나 사실은 이 세 가지 부분을 함께 생각하면서 성경의 뜻을 찾는” 것이다.
오순절 해석은 정경적-문법적-역사적-신학적 해석이라는 근본주의적 해석과 맥을 같이 한다. 스트론슈타트가 말한 것처럼 오순절주의는 역사적으로 19세기 후반 근본주의, 종말론적 세대주의, 그리고 성결신학의 종합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킨스가 본 것처럼, 근본주의로부터 유산으로 받은 것 중에 긍정적인 것은 성경 무오류 축자영감설(the verbal inerrancy of Scripture)이다. 그리고 근본주의와 오순절주의에게 성경은 신앙을 위해 그리고 신학적으로 진정한 것일 뿐만 아니라, 문자적으로 그 본질과, 역사와 교리에 있어서도 오류가 없는 진정한 것이다. 계몽주의적 이성관에 기초하지 않은 근본주의의 축자영감설에 바탕을 두는 역사적(전 비평적, pre critical)-문법적-신학적인 해석과 바람직한 오순절 해석은 그 방법에서 차이가 거의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주의해석과 오순절해석의 이런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성령의 은사들이 성경시대로 종결되었느냐, 계속되고 있느냐에 대한 견해차로 인한 상이함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보수주의는 성경으로 특별계시가 종결되었으므로, 방언이나 예언 등 계시적 은사는 성경 종결이후 더 이상 주어지고 있지 않았다는 “은사중단론”(Cessationism)을 성경이나 체험을 해석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은사중단론적 해석을 취하게 되면, 기록 이전 경험과 기록된 경험은 일치하지만, 그 경험들과 현대 독자의 경험은 불일치하게 된다.
기록 이전 경험 = 기록된 경험 ≠ 현대 독자 경험
윌리엄 데아테아가는 중단론이 가톨릭의 중세적 신화만들기를 회피하게는 했지만 개신교도들로부터 “성경적 검증”(biblical verification)이라는 중요한 수단을 빼앗아버렸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그 성경적 검증 수단은 “유비적인 영적 사건들”(analogous spiritual events)이다. 그는 개신교 신학자들은 사람들이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이적적 사건을 믿기를 바라면서도, 그런 이적적 사건들을 위한 그 어떤 현대의 증거도 거짓된 것으로 거부하려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현대에 알려진 치유는 유비적으로(by analogy) 과거의 알려지지 않은 치유를 검증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성경적 사건들이나 또는 초대 교회의 이적들이 중단론적 해석에 의해 해석되면, 이런 유형의 검증은 불가능하게 된다. 성경의 이적들에 대한 믿음 없이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선포들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반대로, 신약에 기록된 예수님의 이적들은 현대에 발생하고 있는 이적들이라는 유비들 없이는 받아들여지기가 어려울 것이다. 오순절주의는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발생하고 있는 성령의 모든 은사적 역사들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정통 오순절 해석은 근본주의 해석과 많은 부분을 공유할 것이지만, 은사중단론을 극복하고 “은사지속론”(Continuationism)을 해석의 기준으로 취해야 한다.
VII. 나가는 말
이상과 같이 미래의 건강한 오순절 운동과 신학을 위해 바람직한 오순절 해석학을 위한 대안을 기초적이고 간략하게 몇 가지 측면에서 모색해 보았다. 정통 오순절주의(Classical Pentecostalism)가 자신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기록되기 이전의 경험들과 성경에 기록된 경험들과 현대 독자의 경험들을 일치시킬 수 있는 해석학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칸트의 이성관을 대체할 수 있는 반계몽주의적 이성관, 오순절에 적합한 이성관과 인식론을 개발해야하며, 성경적 세계관에 근거한 해석을 시도해야하고, 역사비평을 대체하는 역사적 해석을 발전시키고, 은사지속론적 정경적-역사적-문법적-신학적 해석을 실시해야 한다.
고등/역사비평과 은사중단론은 마치 모세의 얼굴을 덮었던 수건과 같다(고후 3:13-18). 그것들은 구약을 가렸던 그 수건처럼 성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독자의 눈을 가린다. 오순절주의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세의 수건을 벗겨내는 것처럼, 파함 등 초기 오순절주의자들이 거부했던, 칸트의 계몽주의적 이성을 근간으로 삼고 성경시대의 경험들을 허구로 만드는 고등비평/역사비평과 현대의 어떤 은사들의 중단을 주장하는 은사중단론을 성경과 현대 독자 사이에서 걷어내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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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oward A Desirable Pentecostal Biblical Hermeneutics
Chang-Soung Lee
Most of so called modern Pentecostal scholars: author centered modern interpreters and reader centered post-modern interpreters, have a common feature that they are reading the Bible through Higher/Historical Criticism. As a result, the written experiences is deprived of the historicity, and they become different from pre-written experiences. And because of the outcome, the basis of Pentecostalism, modern readers should re-experience the experiences written in the Bible, especially the Baptism in the Spirit with speaking in tongues, is being destroyed.
To overcome such problem, a desirable Pentecostal Hermeneutics must be “Consistent Experiences Interpretation” which makes the experiences of modern readers consistent with pre-written experiences and written experiences(of the Bible), anti-Enlightenmental “Interpretation Performed with Born Again Reason,” “Interpretation Based upon the Biblical World View,” and “Continuational-Cannonical-Historical-Grammatical-Theological Interpretation.”
Both Higher Criticism/Historical Criticism and Cessationism are similar with the towel covered the face of Moses(2 Cor. 3:13-18). They are between the Bible and modern readers, and cover up the eyes of readers like the towel which covered the Old Testament. Pentecostals who are in the Spirit have to take away Historical Criticism and Cessationism as Paul took away Moses’ towel and as earl Pentecostalist, such as Parham, rejected Higher-historical Criticism. In doing so, Classical Petecostalists have to develop peculiar Hermeneutics which can overcome cessational Fundamentalism, Modern Liberalism rejecting supernatural things, Neo-Orthodox/Neo Evangelism mixing modern historical criticism with revelation, and Postmodernism rejecting the absolute, and can protect cannonical orthodoxy Pentecostal theology and experiences and make them abundant.
주제어
오순절 해석학, 경험, 일치경험적 해석, 반계몽주의적 이성, 성경적 세계관, 은사지속론, 정경적-역사적-문법적-신학적 해석
Keywords
Pentecostal Hermeneutics, Consistent Experiences Interpretation, Anti-Enlightenmental Reason, Biblical World View, Continuational-Cannonical-Historical-Grammatical-Theological Interpre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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