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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해외선교 글로벌 컨퀘스트의 파일럿 프로젝트로서 한국 선정에 대한 연구

한오신 2025. 5. 1. 19:47

1959년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해외선교 글로벌 컨퀘스트의 파일럿 프로젝트로서 

한국 선정에 대한 연구

 

Korea and 1959 The Pilot Project of the Global Conquest, a Special Foreign Mission Program of Assemblies of God(USA)

 

 

이창승

 

2025427/2025525

 

 

 

1959년한국선교파일럿프로젝트지정국.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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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들어가는 말

 

    19591228일 미 하나님의 성회 해외선교국 아시아 지부장 켓참(Maynard L. Ketcham)이 방한했다. 그는 미국 하나님의 성회가 한국을 세계 복음화 운동 지정국으로 결정하고 상당한 선교비를 지원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갖고 왔다. 이러한 사업의 제 일보로 2만 달러의 선교비를 투입하여 교회 사업, 문서사업, 선교 사업, 신학교 확장 등을 추진하기로 결정했고, 구체적으로 (1) 신학교 대지 확보 및 교사 신축이전 (2) 미국 하나님의 성회 본부의 부흥 목사 파송 (3) 중앙 복음 회관 설립을 계획했다. 이 프로젝트의 실행은 기독교대한 하나님의 성회의 급속한 발전에 큰 토대와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이 프로젝트 실행의 한국에서의 경과와 결과에 대해 간략한 기술이 기독교대한 하나님의 성회 공식문서들 가운데서 이루어졌었다. 또한 미국에서 김신호가 2007년에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한국에서 글로벌 컨퀘스트 실행에 대해 연구했었다. 당시 드류 대학교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던 그는 테네시, 클리브랜드(Cleveland, TN)에서 열렸던 제36차 북미 오순절신학회 연례회에서 그 연구를 발표했었다. 그런데 김신호는 8쪽의 비교적 짧은 논문에서 정작 글로벌 컨퀘스트에 대해서는 불과 7줄을 할애했을 뿐이었다. 그의 연구는 그 프로젝트가 미국 하나님의 성회 안에서 어떻게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상황에서 처음 입안되었고, 언제 미 하나님의 성회 총회에 의해 승인되었고, 그 목적은 무엇이었으며, 그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이 어떻게 모아졌는지, 그리고 그 프로젝트 실행에 대한 평가는 어떤 것이었는지 등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자기의 연구 성과를 한국에 알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 프로젝트의 입안과 실행 후 칠십여 년이 지난 지금 본 글은 이 알려지지 않았던 면을 소개하려 한다.

 

김신호 박사

 

 

II. 글로벌 컨퀘스트(Global Conquest) 입안

 

    1927년부터 1959년까지 하나님의 성회의 해외선교국장으로 섬기며 미스터 미션(Mr. Missions)”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노엘 퍼킨(Noel Perkin)1941년 총회에서 누가복음 1913절을 본문으로 내가 올 때까지 장사하라”(Occupy Till I Come)는 제목으로 연설했다. 그는 당시의 세계적 위기와 선교사들의 역할에 대해 말함으로써 선교를 지구적 관점에서(from a global perspective)에서 접근하기를 주문했다. 그는 그 연설 말미에서 위기입니다, 우리는 당면한 도전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The crisis is, what shall we do with the challenge that is set before us?)라고 질문한 후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움츠러들지 말고 더 일합시다”(Not do less but more, for the night settles down upon us when no man may work)라고 대답했다. 그는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해외 개별국가 선교를 보다 큰 국제 지정학적인 정치적 상황이라는 틀을 고려하며 어려움을 돌파하고 더 열심히 선교해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1957년에 퍼킨은 미 하나님의 성회 해외선교를 위한 새로운 선교 전략(a new missions strategy)으로서 글로벌 컨퀘스트”(Global Conquest)라고 명명한 프로젝트를 입안했다. 글로벌 컨퀘스트는 선교의 초점을 외진 시골 지역들로부터 도시 중심지들로 옮겼다. 퍼킨의 세 가지 영역의 강조는 더 많은 복음적 문서의 배포, 더 높은 중요한 대도시 센터들의 복음화, 그리고 보다 더 성경학교 프로그램을 통한 현지 목사들과 지도자들을 훈련시키기를 요구했다.

    이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1948815일을 기점으로 종식되고, 한국에서 일어난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 사이의 열전이 끝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자유 민주주의 세력이 소비에트연방을 중심으로 한 공산 세력과 맞서며 재건을 위해 매진할 때였다. 그 시기에 아이젠하워 독트린(Eisenhower Doctrine), 1957년에서 1959년까지의 독감 유행, 그리고 소비에트연방의 스푸트니크(Sputnik) 우주 계획의 착수를 포함하는 전 세계적인 사건들이 일어났었다. 195715일 아이젠 하워(Dwight D. Eisenhower) 미국 대통령은 국회에서 중동 문제에 대해 연설하면서 소비에트연방 등 국제적 공산주의(international communism)의 무력 공격에 대항하는 국가들을 돕겠다고 천명했다. 9개월 후 소비에트연방은 1957104일 미국보다 먼저 스푸트니크호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 이것은 미연방과 소비에트연방 사이의 냉전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켰다.

 

 

 

    퍼킨은 글로벌 컨퀘스트를 위해서는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19587월에 글로벌 컨퀘스트를 위한 국가적 자금 증진을 위해 Light for the Lost라는 출판사의 사장 코크란(Sam Cochran)과 함께 하나님의 성회 복음 선교회”(the Missionary Gospel Society of the Assemblies of God)를 설립했다.

 

 

III. 절정에 달한 한국 선교에 대한 관심과 한국 정황

 

    퍼킨이 이끌던 미국 하나님의 성회 해외선교국이 글로벌 컨퀘스트라는 새로운 개념의 프로그램을 구상하기 시작하고 1년 정도가 지났다. 19586월에 미국 하나님의 성회는 펜테코스탈 에반젤』(Pentecostal Evangel)을 통해 한국에 대한 대단한 관심을 드러냈다. 미 하나님의 성회는 한국을 그대로 두면 6.25와 같은 다른 비극이, 다시 말하면, 한국이 공산화되어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 오순절 신자들이 처형당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미 하나님의 성회는 이것을 막고, 그 반대의 결과인 부흥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방법은 미 하나님의 성회와 구성원들이 빨리 순복음 메시지를 이 나라의 구석구석까지 전하는 것이었다. 미 하나님의 성회는 이것을 과업이라고 여겼고, 그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물질적인 그리고 영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나아가 한국을 순복음화하는 과업을 정복”(conquest)이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에는 한국을 구상 중인 글로벌 컨퀘스트의 대상국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 하나님의 성회는 한국을 순복음으로 정복하는 것을 자기(our)의 직무로 삼았으며, 그 직무를 수행할 시기는 바로 지금이라고 역설했다.

 

최근, 성령께서는 한국이 매우 중요한 고비에 처해있다는 예언적 메시지와 깊은 확신으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해 오셨다. 한국은 또 다른 비극에 처해질 것인가, 아니면 영적 복과 부흥에 처해질 것인가?(Will this be another tragedy, or will it be spiritual blessing and revival?)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얼마나 빨리 순복음 메시지(the Full Gospel message)를 이 나라의 구석구석까지 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이 과업을 달성하려면 여러분의 도움과 기도가 있어야만 한다. 때는 우리가 한국을 위해 정복할 시간이다(This is our hour of conquest for Korea)!

 

    미 하나님의 성회는 이 사설에서 한국 오순절주의자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할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 한국 오순절주의자들 스스로 교회를 세우고 한국을 복음화하도록 내 버려두지 않고, 미국 하나님의 성회가 개입해야만 하는가? 그 이유를 미 하나님의 성회는 한국인들의 가난 때문이라고 썼다. 미 하나님의 성회가 파악하기에 한국 오순절주의자들은 헌신적이었다. 그들은 교회를 세우거나 복음화하는 비용을 스스로 충당하기 위해 기꺼이 힘을 다해 바치고 있었다. 그러나 지독한 가난 때문에 빠르게 규모 있는 사역을 수행할 만한 자금을 조달할 수는 없었다. 미 하나님의 성회는 한국 오순절주의들이 전력을 다해도 모자라는 부분을 도와서 채워주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미 하나님의 성회는 1958년 여름에 한국 전역의 다섯 개 도시에서 대규모 전도집회를 열 계획을 세운 것을 알리고 그 정복을 위해 헌금해 줄 것을 호소했다.

 

한국인들은 기꺼이 바치는 사람들이어서 건물들이나 천막들 등을 위한 비용을 감당하려 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가난하고, 더욱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우리는 인적 자원과 장비를 가지고 있지만, 이번 여름에 한국 전역의 다섯 개 도시 집회들을 열려면 돈이 모자라다.

 

    미 하나님의 성회는 이 사설에서 지정학적 국제정세 속에서 가지고 있는 한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 하나님의 성회는 한국을 공산 진영에 대항하는 세계에서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자유의 전초기지”(the world’s most strategic outpost of freedom)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미 하나님의 성회는 이렇게 한국이 전체주의적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싸우는 자유의 전초기지이기 때문에, 33,500명 이상의 미군이 피와 생명을 한국의 자유를 위해 바쳤다고 보았다.

미 하나님의 성회는 그렇게 피로써 지켜낸 자유의 전초기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미 하나님의 성회가 한국을 오순절적 순복음으로 정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한국 오순절신자들은 마음은 있지만 너무도 가난하고, 미 하나님의 성회 구성원들은 한국 선교에 마음이 별로 없어 선교사로 지원하지도 않고, 한국 선교를 위해 헌금하지도 않고 있었다. 미 하나님의 성회는 이런 현실을 개탄하고, 구성원들에게 관심을 가져줄 것을, 헌금하고, 선교사로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33,500명 이상의 미국 군인들이 그들의 피와 생명을 한국의 자유를 위해 바쳤다. 우리가 이것을 잊었는가? 한국을 위해 지원하는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에, 선교사들을 일본에서 빌려오고 있다. , 세계에서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자유의 전초기지(the world’s most strategic outpost of freedom)를 위해 지원하는 사람이 그렇게도 적은가? , 도시 집회, 복음 서적, 성경학교, 그리고 그 선교지에 새로운 지원자들을 보내기 위한 자금이 이렇게 적은 것인가? 우리의 대답은 무엇일까?

 

 

 

 

    당시 한국은 제1공화국(大韓民國第一 共和國)의 말기였다. 제헌 헌법을 기반으로 한 1948815일 정부 수립 이후, 1950년 한국 전쟁을 거치고, 10여 년이 지난 19604·19 혁명이 발생하기 전까지의 시기였다. 한국전쟁 휴전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소련, 그리고 중공 등 공산진영과의 재충돌을 우려한 이승만은 미국에 한국의 안전보장을 담보할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미국에 요구, 관철시켰다. 그럼으로써 유엔사와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게 했다. 그리고 반공주의 정책을 강화하고 대통령 직선제로 헌법을 개정했다.

    또한 당시 한국은 60년대 이후 개발원조가 시작되기 전 1960년 초까지 전쟁복구와 경제원조 시기였다.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한국의 경제와 사회를 복구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이었다. 유엔한국재건단(UNKRA), 미국 등 해외 원조를 통한 경제재건 사업이 추진되었고, 도시 계획과 주택 건설 등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1960년대 초부터 경제 개발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IV. 글로벌 컨퀘스트를 위한 모금과 총회 승인

 

    미 하나님의 성회와 해외선교국은 1959830일을 글로벌 컨퀘스트 데이”(Global Conquest Day)로 정하고 입안 상태로 머물러 있던 글로벌 컨퀘스트 실행에 필요한 자금 모금 행사를 열었다. 28차 총회가 텍사스, 샌안토니오에서 1959826일에 진행되는 동안 830일에 전화기를 여러 대 설치하고 헌금을 보낸 사람들의 전화를 받았다. 아프리카 선교지부장 에베렛 필립(Everett L. Phillips)이 그 행사에서 연설했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해외에서 활동하고 선교사들의 수가 147% 이상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여섯 대의 전화기들이 미 전역에서 걸려오는 헌금을 접수하느라 불이 났다. 전화를 통한 52,629 달러, 그리고 현금과 약정서 22,458 달러, 도합 75,087 달러가 글로벌 컨퀘스트를 위해 모금되었다.

 

 

 

 

 

 

    제임스 호간(James P. Hogan)1959826일부터 91일까지 열렸던 미 하나님의 성회 제28차 총회에서 노엘 퍼킨(Noel Perkin)이 사임하고 명예 해외선교국장이 되고, 플라우어가 사임하고 명예 총무가 되자, 총무로 선출된 짐머만(T. F. Zimmerman)과 함께 네 번의 선거 만에 어렵게 부총회장(Assistant General Superintendent)과 해외선교국 국장(Executive Director Foreign Missions Department)으로 선출되었다. 이 소식은 한 달 후 펜테코스탈 에반젤을 통해 미 하나님의 성회 구성원 전체에게 알려졌다.

 

 

제임스 P. 호간

 

 

    그 총회에서 호간은 세계선교에 대한 세 가지 영역적 접근인, 일명 글로벌 컨퀘스트”(Global Conquest)에 대해 설명했다. 28차 총회는 글로벌 컨퀘스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의하고 결정했다. 세계 복음화의 긴급한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글로벌 컨퀘스트”(Global Conquest)라고 명명된 새로운 촉진 프로그램(a new promotional program)을 착수한다. 이 프로그램은 삼중적인 목적을 갖고 있다. a. 복음 문서 출판과 배포의 촉진과 증진. b.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고, 성경 교육을 받은 현지 사역자를 훈련시키고, 나가게 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더하기. c. 인구가 많은 전략적 중심 지역들에 집중하기, 그래서 조정되고 집중된 선교 노력에 의해 교회가 더욱 전 세계에 보다 넓게 그리고 견고하게 되게 하기. 전 해외선교국장 퍼킨에 의해 입안된 것이 총회에 제출되고, 승인된 것이었다.

    그런데 글로벌 컨퀘스트라는 새로운 선교 프로그램이 제시되자, 기존에 진행되어왔던 세계선교 계획(the World Missions Plan)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었다. 총회는 그 양자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대해 글로벌 컨퀘스트는 기존의 세계선교계획(the World Missions Plan)을 폐지하거나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다만 이 특수한 노력을 위해 기꺼이 헌금하려는 개인적 기부자의 관심을 끄는 것과 관련이 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일차적으로 기존의 세계선교 계획을 위한 헌금과 글로벌 컨퀘스트를 위한 헌금을 분리했다. 기존의 세계선교 계획을 위한 헌금은 개교회를 통해 총회로 보내고, 글로벌 컨퀘스트를 위한 헌금은 어떤 개인이 지정하여 직접 또는 개교회를 통해 해외선교국이나 총회로 보내도록 했다.

 

총회 기간 중 주일 오후에 드릴 헌금은 산하 교회들이 이 특별헌금을 포함시켜 보내는 헌금과 합해져 세계선교계획을 위해 나누어질 것이다. 총회 헌금과 별도로 해외선교국으로 보내지는 글로벌 컨퀘스트를 위한 것으로 지정된 헌금은 세계선교회를 위해 나누어지지 않고, 다른 모든 지정된 헌금들이 한 가지 지정된 특별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것처럼 고려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성회들이 선교 헌금을 위한 현재의 프로그램 방식을 바꾸라고 제안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개인들은 글로벌 컨퀘스트를 위한 헌금이라고 지정하고 그들의 교회들을 통해 보낼 수 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한 헌금은 바로 해외선교국으로 보내질 것이다. 우리는 기부자가 소속 교회의 명칭과 주소를 알려주어서 우리의 공식 보고서들에서 그 지역 교회에 적절한 감사를 표할 수 있게 되기를 기부자에게 권한다.

 

    이렇게 총회가 대답했지만, 그럼에도 총회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우려가 남아 있었다. 새로운 글로벌 컨퀘스트 계획의 수용은 기존의 세계선교 계획과 상충되는 결과를 초래될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그래서 글로벌 컨퀘스트 자금이 세계선교 계획을 위해 나누어져야 한다는 의제를 놓고 실행위원회가 회동했다. 긴 논의 끝에 동의안이 통과되었다. 그런데 이 안은 다시 혼란을 야기시켰다. 문제는 글로벌 컨퀘스트를 위해 지정되어 해외선교국으로 보내지는 모든 돈을 나누어, 20%를 지방회들로 돌려보내야 하는지였다. 그 문제가 모두에게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동했고 이 문제를 재고하기로 결정했다. 이 문제를 놓고 논의가 재개되었고, 두 번의 회동이 있었다. 그래도 최종 결정이 내려지지 못하여 전체 실행위원회에 회부하여 결정을 내리도록 했다.

    글로벌 컨퀘스트를 실행시키려면 국내선교국과 해외선교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임을 인식하고 두 기관 간에 긴밀한 협력을 천명했다. “글로벌 컨퀘스트가 해외선교국에 위탁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해외선교는 국내선교국에 의한 국내 기반 발전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국내선교국은 글로벌 컨퀘스트에 협력해야 한다(Home Missions be incorporated into Global Conquest).”

    총회는 세계선교 계획 이외에 특별 프로그램으로써 글로벌 컨퀘스트를 실시하려면 물적 인적 지원이 더 필요하겠지만, , 총회 소속 목회자들이나 지역교회들이나 구성원들이 더 힘이 들겠지만, “선교가 하나님의 성회라는 교단을 형성한 가장 크고 중요한 목적이라는 것을 되새기고 함께 감당하자고 설득했다.

 

하나님의 성회에 소속된 우리는 세계선교에 헌신되어 있다는 그리고 선교는 우리의 사역의 한 부차적인 국면이 아니라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한다. 선교는 그것을 위해 우리가 함께 협회를 결성한 주요 목적 자체이며, 나머지 다른 것은 이것에 부차적인 것이다.

 

 

V. 글로벌 컨퀘스트의 파일럿 프로젝트(The Pilot Project of Global Conquest)

 

    해외선교국 국장이 된 호간의 첫 직무는 퍼킨이 입안하고 28차 미국 하나님의 성회 총회가 승인한 글로벌 컨퀘스트를 실제로 착수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글로벌 컨퀘스트는 아직 실행된 사례가 없는 새로운 것이었다. 그래서 호간은 대규모의 지속적인 글로벌 컨퀘스트를 실시하기 위한 예비적 실험이 필요했다. 글로벌 컨퀘스트 입안이 실제로 선교 현장에서 구체화시킬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을 실행했을 때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지를 미리 테스트해 볼 수 있는 비교적 소규모의 실험이 필요했다. 그 실험은 파일럿 프로젝트”(Pilot Project)라고 명명되었다.파일럿 프로젝트는 여러 분야에서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가 실제로 작동되거나 구체화 될 수 있는지 실험적으로 실시해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위해 호간은 대규모 전도화를 위한 인구 밀집 지역들을 선정하기 시작했다.

    19591228일에 방한한 아시아 선교지부장 케참은 기독교대한 하나님의 성회에 한국이 세계 복음화 운동의 지정국이 되었고, 대규모 선교비가 투입될 것이라는 것을 알렸다. 그때 케참이 언급한 지원비가 2만 달러이었으니, 글로벌 컨퀘스트를 위해 모금된 75천 달러의 약 4분의 1이 한국에 투입되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미 하나님의 성회 28차 총회가 195991일에 끝났으니, 그 후 3개월 동안 해외선교국이 글로벌 컨퀘스트의 첫 대상 지역을 물색했고, 최종적으로 그 대상이 한국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 말하면 글로벌 컨퀘스트를 위한 파일럿 프로젝트라는 실험 대상국으로 한국이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켓참 선교사 가족

 

    그런데 정작 미 하나님의 성회 구성원들 전체에게 그 소식이 알려진 때는 19603월이었다. 호간은 펜테코스탈 에반젤을 통해 미 하나님의 성회 전체 구성원들에게 글로벌 컨퀘스트를 위한 실험적 파일럿 프로젝트에 대해 알렸다. 호간은 이 보고에서 먼저, 글로벌 컨퀘스트가 무엇인지 간략하게 언급했다. 그는 글로벌 컨퀘스트를 장기간의 정규 세계선교 계획과는 달리 특정 지역을 단기간에 완전하게 선교하려는 특수한 충격(또는 속성, 집중) 프로그램”(crash program)이라고 묘사했다. 그에 의하면, 그 충격 프로그램은 문서, 현지인 사역자 훈련, 그리고 대규모 전도 집회 개최라는 세 가지 영역을 포함했다.

 

이제 글로벌 컨퀘스트는 6개월의 나이를 먹었다. 충격 프로그램”(crash program)이 너무도 많은 출처들에 의해 너무도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프로그램 책임자로서] 나는 진전되고 있는 것을 보고하려 한다. . . .

글로벌 컨퀘스트의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보자. 글로벌 컨퀘스트는 우리의 통상적인 선교 프로그램에서는 그렇게 다루어지지 않은 어떤 선교 지역들을 빠르고 완전하게 계발시키려고 고안된 것이다(Designed to develop quickly and completely some areas of missionary ministry not being so treated in our regular missionary program). 그래서 글로벌 컨퀘스트는 충격 프로그램”(crash program)이라고도 묘사되어 왔다. 다음 영역들에서의 사역은 전략적이기 때문에 통상적인 사업기반(business as usual basis)에서 고려될 수 없다. 그 영역은 문서, 현지인 사역자들의 훈련, 그리고 대규모 전도화이다.

 

    그다음 호간은 글로벌 컨퀘스트를 위한 파일럿 프로젝트”(pilot project)에 대해 보고했다. 그는 글로벌 컨퀘스트를 위해 모금되었던 75천 달러 중에서 일부(2만 달러)가 이미 한 나라의 선교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 투입은 해외선교국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여 입안한 파일럿 프로젝트를 따라 이미 실행되고 있는 것이었다. 호간은 파일럿 프로젝트의 첫 대상국은 한국(Korea)이며, 중점 지역은 서울(Seoul)임을 밝혔다. 그는 한국에 글로벌 컨퀘스트의 자금의 일부를 투입하며 모든 종류의 복음화 방식을 사용해 볼 것이라고 천명했다. , 호간은 글로벌 컨퀘스트를 위한 실험으로써 파일럿 프로젝트를 한국에서 실시하고 있다고 알린 것이었다.

 

글로벌 컨퀘스트 자금의 첫 분할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안다면, 여러분은 기뻐할 것이다. 이미, 이 자금의 상당 부분이 그 선교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한동안, 이 자금의 관리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역 지부장들은 현장 선교사들과 함께 글로벌 컨퀘스트 프로그램 포맷 안에서 이 자금의 분할을 위해 논의하고 계획해 왔다. 또한, 글로벌 컨퀘스트를 위해 조성된 자금 중에서 상당 분량이 파일럿 프로젝트”(pilot project)를 위해 확보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전방위적 선교 사역을 포함한다. 그 지역은 한국(Korea)이고, 가장 중점 지역은 서울(the city of Seoul)이다. 여기서, 글로벌 컨퀘스트는 모든 종류의 복음화 방식을 사용해볼 것이다. 이 실행(operation)에 대한 앞으로의 보고들에 관심을 가져달라.

 

    해외선교국장 호간의 보고로부터 약 20일 후 당시 아시아 선교부 지부장이었던 켓참이 펜테코스탈 에반젤에 파일럿 프로젝트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는 이 설명에서 파일럿 프로젝트를 실행할 지역으로 한국이 선정되었다는 것을 다시 알리고, 호간이 알리지 않았던, 적어도 2만 달러가 될 투입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지금 해외선교국은 문서, 현지인 사역자들 훈련, 전도집회라는 삼지창으로 공격하는 글로벌 컨퀘스트를 착수했다. 그리고 글로벌 컨퀘스트 자금의 사용을 위한 파일럿 프로젝트의 대상국으로 한국이 선정되었다. 적어도 $20,000이 한국에서의 우리의 시도에 즉시 투입될 것이다.

 

    그로부터 10일 후 펜테코스탈 에반젤은 그 소식지의 집필진 중의 하나인 카미젤(Christine Carmichael)을 통해 한국”(Korea)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한국 선교에 대해 짧지만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그 기사는 종래의 언급에 새로운 성경학교 교사 건립, 그리고 서울에 중앙 복음전도회관 건립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언급을 더했다.

 

한국은 글로벌 컨퀘스트의 파일럿 프로젝트로 선정되었다. 어떤 위대한 복음전도 성전(a great evangelistic crusade)을 준비하기 위해, 글로벌 컨퀘스트는 문서 배포 프로그램, 그리고 또한 새로운 성경학교 교사 건립, 그리고 서울에 중앙 복음전도회관 건립을 지원할 것이다.

 

    레이몬드 브로크(Raymond Brock)19608월에 글로벌 컨퀘스트의 실행 1주년을 기념하며 그동안 진행되었던 사업들을 통합하고 요약하여 알렸다. 그 보고에 의하면, 파일럿 프로젝트에 따라 문서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준비되어 왔고, 현지인 사역자들이 한국 성경 학교에서 훈련을 받아왔다. 그리고 이제 서울 중앙복음회관을 열 시간이 되었다. 선교사들과 현지인 사역자들은 이 충격”(crash) 프로그램의 착수를 준비하기 위해 몇 달 동안 일하고 기도해 왔다. 브로크는 특히 정치적 사건들은 지금이 한국의 복음화를 위한 적기라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 언급에는 1960419일에 부정선거 문제를 제기하며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것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브로크는 그런 한국의 정치적 위기가 오히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그런 위기가 한국인의 마음이 복음에 열리게 하는 순기능을 일으키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복음을 갈망하는 한국인의 마음에 대규모 전도집회를 통해 오순절적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복음전도자 샘 토드(Sam Todd)가 이미 한국에 들어갔다.

 

Sam Todd

 

 

    당시 한국에서 실시되었던 파일럿 프로젝트의 면모는 1993년 국제신학연구원이 펴낸 하나님의 성회 교회사에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미국 하나님의 성회는 토드 전도회”(Todd Mission) 치료의 목소리”(Voice of Healing) 두 전도단과 중앙복음회관 건립을 위해 협약을 맺고 우선 서대문에 292평의 대지를 구입했다. 또한 신학교 대지 확보 및 건축 계획도 잘 추진되어서 대조동에 약 1만 평의 대지를 사들였으며, 19603월에 신축 기공식을 가졌다. 문서 운동에 있어서도 서울에 중앙 도서관을 두었고 부산에도 도서관을 두며 오순절잡지를 발간하여 오순절 신앙을 한국에 널리 전파하기로 했다.

순복음 부흥회관은 조용기 전도사의 주도 아래 선교부의 지원으로 세운 지상 5층 건물로 서대문 네거리의 명문으로 등장했고, 이 중앙부흥회관이 순복음중앙교회로 발전되었다. 순복음부흥회관(Full Gospel Revival Center)19611015일에 개척되었는데 불과 4개월 후인 1962218일 교인 수 530명에 달하였다는 것은 부흥회의 성과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총회는 문서전도도 시행하여 19631014일자로 문화공보부로부터 정기간행물 등록증을 교부 받고, 1964921일 제3종 우편물 인가를 받았다. 이때를 계기로 총회 기관지로 4×6배판의 16페이지 분량의 월간 순복음지를 매월 발행하기 시작했다.

 

 

VI. 파일럿 프로젝트 평가와 글로벌 컨퀘스트 수정

 

    195991일 미 하나님의 성회 28차 총회에서 글로벌 컨퀘스트가 승인된 지 10년 후인, 19699월에 미 하나님의 성회는 글로벌 컨퀘스트의 첫 대상국 한국에 적용했던 파일럿 프로젝트를 평가하는 기사를 냈다. 그 기사는 파일럿 프로젝트가 지향했던 본래 목적을 밝혔다. 그 목적은 만약 우리 구성원들이 전심으로 지원한다면, 한국이 글로벌 컨퀘스트가 수행할 수 있는 것의 한 사례가 되게 하는 것”(Korea will become an example of what Global Conquest can do if our people will back it wholeheartedly)이었다. , 그 이후에 본격적으로 수행할, 집중적으로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하는 글로벌 컨퀘스트라는 프로그램을 위한 실험적 프로젝트였다는 것이다.

    중앙회관의 건립으로 이어진 전도 집회, 문서 배포 프로그램, 그리고 한국 성경 학교[순복음신학교]의 이전을 포함하며 미 하나님의 성회 구성원들이 전심으로 참여했던 파일럿 프로젝트 수행은 이후 글로벌 컨퀘스트 수행을 위한 지침이 되었고, 그 결과 미 하나님의 성회는 굿 뉴스 크루세이즈(Good News Crusades)라는 전면적인 복음전도적 공격, 라이트 포어 더 로스트를 통한 수천 톤의 복음 문서, 그리고 다른 그 어떤 교단보다 더 많은 해외 성경 학교들의 보유라는 탁월성을 갖게 되었다.

 

 

대조동 순복음신학교 신축

 

 

    그 기사를 통해 미 하나님의 성회는 파일럿 프로젝트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다. 미 하나님의 성회는 그 성공의 초점을 중앙복음회관(the Evangelistic Center)에 맞추었다. 그 성공은 이후의 글로벌 컨퀘스트 프로그램들 중에서 가장 독특한 것이었다. 미 하나님의 성회는 한국에 파일럿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써 그 회관을 건립해야만 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10년 전, 남한은 그 도시들을 파괴해버린 그리고 수백만 명을 노숙자로 만든 전쟁의 여파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우리의 선교사들은 거기에 있었지만, 그들의 목소리들은 사회적, 물질적, 그리고 경제적 혼란을 벗어나 국가 재건이라는 소음 너머로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한국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오순절적 메시지로 어떤 확실한 영향을 주는 유일한 방법은 큰 전도회관을 여는 것이었다. 그 서울 교회의 현재의 영향력으로의 발전은 그런 선교적 전략(missionary strategy)의 지혜에 대한 한 증언이다.

 

 

 

 

    그리고는 당시 7,000여 명의 교세로 성장한 중앙복음회관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요인은 복잡하지만, 두 가지로 요약했다. 미 하나님의 성회가 꼽은 첫 번째 성공 요인은 10년 전 한국의 국가적이고 사회적 상황과 관련된 것이었다. 당시 한국의 키워드는 재건”(reconstruction)이었고, 그 재건기에는 한국의 단체들마다 무언가를 건설하고 있었고, 그에 필요한 해외로부터의 대규모 원조를 적극적으로 원하였고 때로 그 원조를 받았음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 때 미 하나님의 성회의 기독교대한 하나님의 성회를 위한 건물로서 회관 건립에 대한 대규모 원조는 거부감없이 환영받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 필요한 때에 필요한 것을 제대로 지원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미 하나님의 성회가 꼽은 파일럿 프로젝트 성공의 두 번째 요인은 한 유능한 한국인이었다. “서울 중앙복음회관은 특별하게 유능하고 영적인 한국인 목사 때문에 잘 발전했다는 것이다. 파일럿 프로젝트의 자금 지원으로 건립된 서울 중앙복음회관의 담임을 맡게 된 조 용기는 서울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오순절 지도자가 되었다. , 미 하나님의 성회는 적합한 한국인 사역자를 교육, 훈련시키고 발탁하여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에 서울 중앙복음회관도 성장하고, 그 한국인도 세계적인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고, 파일럿 프로젝트도 성공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미 하나님의 성회는 그 중앙회관은 백만 달러짜리 건설 프로젝트(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착수하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구 교회 건물은 늘어나고 있는 성도들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없어서 매 주일에 5부 예배를 드릴 정도가 되었고, 전국을 커버하는 라디오 방송과 널리 배포될 잡지를 준비하기에는 너무도 협소했다. 그래서 새로운 건물을 지어야 하는 데, 조 용기와 교회 성도들은 그 건축에 소요될 자금을 미국인 형제들의 지원을 거의 받지 않고, 스스로 감당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한국을 위한 미국 선교 자금들은 대부분 선교사 지원, 신학교, 군인 센터, 그리고 많은 복음 운동들(Good News Crusades)에 사용되게 되었다.

 

 

 

 

 

    미 하나님의 성회는 한국에서 파일럿 프로젝트 실행하면서 글로벌 컨퀘스트에 내재되어 있는 문제를 인식하고 차후 글로벌 컨퀘스트의 방식을 바꾸게 되었다. 1959년에 글로벌 컨퀘스트는 대규모 전도집회, 복음적 문서, 그리고 현지인 사역자 훈련이라는 세 가지 공격을 이방 세계에 가하는 것으로 소개되었다. 그 프로그램의 성공은 그것 자체의 가장 심각한 문제들을 유발시켰다. 대규모 전도집회는 너무도 잘 진행되어 글로벌 컨퀘스트가 제공 가능한 것보다 더욱 많은 복음적 문서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성경학교들은 크기와 구성원에 있어서 너무도 빠르게 성장해서, 곧 글로벌 컨퀘스트가 나누어 줄 수 있는 것 보다 더 많은 자금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7년 후, 글로벌 컨퀘스트는 굿 뉴스 크루세이즈”(Good News Crusades)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고, 그 초점을 대규모 전도집회에 맞추기 시작했다. 떼 내어진 문서 사역은 하나님의 성회 구성원들에 의해 운영되는 출판사 더 라이트 포어 더 로스트”(Light for the Lost)가 담당하게 되었다. 또한 성경학교들은 미국의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현지인 자신의 출처들에 의한 자생을 모색하게 되었다.

 

 

VII. 나가는 말

 

    1959년 말에 알려지고, 이후 몇 년 동안 지속되었던 기독교대한 하나님의 성회에 대한 미 하나님의 성회의 전폭적인 지원은 미 하나님의 성회의 해외선교 전략으로 채택된 글로벌 컨퀘스트”(Global Conquest)를 위한 실험적 파일럿 프로젝트”(Pilot Project)였다.

    “글로벌 컨퀘스트라는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해외선교 전략은 1957년 당시 해외선교국장 노엘 퍼킨에 의해 입안되었고, 19598월부터 91일까지 열렸던 미 하나님의 성회 제28차 총회에서 승인되었다. 그 새로운 전략은 집중적이고 단기적인 프로그램(Crash Program)으로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세계선교 계획과 평행하여 실시되었다. 세계선교 계획을 지역교회가 지원했던 것과는 달리, 글로벌 컨퀘스트를 위한 자금은 거의 개인의 특별헌금에 의해 충당되었다. 미 하나님의 성회의 총회와 해외선교국은 글로벌 컨퀘스트를 위한 모금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하여 75천 달러라는 첫 자금을 확보했다.

    1957년 해외선교국의 글로벌 컨퀘스트 입안과 1959년 미 하나님의 성회 총회의 승인 사이에, 미 하나님의 성회의 한국 선교에 대한 관심은 절정에 달했다. 한국은 자유진영의 최전방 보루로 인식되었고, 한국을 지키지 않으면, 아시아는 물론 전세계가 공산화된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미 하나님의 성회는 한국의 오순절 신자들의 신앙과 열정, 헌신, 즉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전쟁으로 파괴된 경제로 인한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가난이 성장을 강력하게 저지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그래서 한국을 적극 지원하여 오순절적 순복음으로 복음화하고 부흥시켜, 오순절 신자들로 한국을 채워야 하는 것을 당장 감당해야 할 의무로 여기고, 그 구성원들에게 한국 선교에 관심을 가질 것, 헌금할 것, 헌신할 것을 요청했다.

    제28차 총회에서 사임한 노엘 퍼킨에 이어 새 해외선교국장으로 선출된 J. 필립 호간은 입안 상태였던 글로벌 컨퀘스트를 실제로 구현해내야 하는 책무를 갖게 되었다. 호간이 이끄는 해외선교국은 본격적인 글로벌 컨퀘스트를 착수하기 전에 그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실험적 사례가 필요했다. 그 사례 대상국을 물색하다가 한국을 지정하게 되었다. 이 지정에 따라 글로벌 컨퀘스트를 위해 형성된 자금 중 4분의 1일에 해당하는 2만 달러를 한국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미 하나님의 성회는 그로부터 10년 후, 1969년에 글로벌 컨퀘스트를 위한 파일럿 프로젝트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다. 특히 서울에 중앙복음회관 건립은 한국에 적합한 특수 프로젝트였고, 지혜로운 선교 전략적 결정이었다고 자평했다. 미 하나님의 성회는 그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외부요인과 내부요인으로 파악했다. 외부 요인은 미 하나님의 성회의 전폭적인 지원이었고, 내부요인은 유능한 현지인, 즉 한국인, 조용기였다. 미 하나님의 성회는 파일럿 프로젝트를 통해 이후 글로벌 컨퀘스트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했고, 향후 전략을 조정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