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승 역
2024.11.15.
출처: Tom Welchel, Azusa Street: They Told Me Their Stories (Dream Books McCowan & Morris Publishing Company, 2006), 12, (https://fatherslove.co.za/fhim-outside-resources/Azuza%20Street%20Revival%20-%20They%20told%20me%20their%20stories%20ebook.pdf)
아주사에 대한 모든 논의는 쉐키나 영광(the Shekinah Glory)으로 귀결될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영의 임재에 대한 그녀의 경험에 대해 묻자, 카니 자매(Sister Carney)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녀는 쉐키나의 영광을 마치 하늘에 있는 것과 같았다고 묘사했다. 그녀에게, 쉐키나의 영광은 마치 순수한 산소를 마시는 것과 같았고, 놀랍게도, 언제나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했던 “쉐키나 영광의 불”(the Shekinah Glory Fire)을 묘사해주기를 청하자,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소방서에서 불을 끄러 아주사 선교회 건물로 왔었는데, 그 이유는 그 건물이 불에 타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소방관들이 도착했으나, 그들은 그 어떤 불 냄새도 맡지 못했고 또한 그 어떤 화재의 증거도 찾지 못했다. 그녀는 그 소방관들과 함께 밖으로 뛰어나가지는 않았다. 그녀가 기억하기에 뛰어나간 사람들은 시무어(Seymour), 보스워스(Bosworth), 레이크(Lake), 스미스(Smith), 그리고 신스(Sines)였다.
카니 자매도 한 번은 자기 눈으로 그 불꽃을 보기 위해 나갔었다. 기억하라, 소방서는 여러 번 다른 제보들을 받았었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그 건물 지붕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을 보고는 신고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카니 자매는 왜 소방서가 계속 불을 끄러 오고 있는지 존 레이크(John Lake)에게 물었다. 그는 하늘로부터 그 건물 안으로 내려오고 있던 불이 건물로부터 올라가던 불과 만나서 내려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카니 자매는 밖으로 나가서 반 블록을 걸어가 자기 눈으로 그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그녀에게, 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불과 하늘로 올라가는 불의 신적인 결합은 하나님의 그 장소에 강력한 임재의 또 다른 증거였다. 카니 자매는 비록 그 쉐키나의 영광이 언제나 그 건물 안에 있었지만, 이 신적 결합은 날마다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 결합이 일어날 때면, 하나님의 권능이 그 집회에 더욱더 강력했다.
[역자 부연]
1906년 아주사 부흥에서 일어났던 성령의 강력한 임재로서 불의 역사는 1965년에 인도네시아에서 재현되었다.
사도행전 2장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인도네시아에서 재현된 사도행전 성령과 불 침례
Mel Tari and Cliff Dudley, Like A Mighty Wind (Carol Stream, Illinois: Creation House, 1971), 26-29.
멜·노나 태리,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정운교 역 (하늘기획, 2005).
사도행전 2장이 재현되다.
나는 장로교인이었고 우리는 모든 것을 질서 속에서 행했다. 예배를 드릴 때면 모든 순서가 주보에 기록된 대로 진행된다. 성경 봉독은 목사가 한 구절을 읽고 우리는 다음 구절을 읽으며 교독한다. 우리는 일어설 때와 앉을 때, 찬송할 때와 기도할 때를 잘 알고 있다. 나는 진정으로 우리 교회의 정숙함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했고,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사랑의 한 조각일 뿐이었다. 어떤 사람이 나를 보고 웃으면 나도 미소로 응답하였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호의를 보일 때에 나도 그를 사랑하는 그런 사랑을 배웠다. 나를 사랑치 않는 사람은 나도 사랑하지 않았다. 교회는 냉랭했고 능력이란 전혀 없었다. 부흥이 시작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능력과 사랑과 질서를 깨닫게 해 주셨다.
1965년 9월 26일 밤을 나는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다. 청년, 장년, 어린이, 노인 등 2백여 명의 교인들이 기도하기 위해 교회에 모였다. 기도회 도중에 갑자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당신이 성경을 읽어보면 사도행전 2장에서 우리 교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도행전 2장을 옛날 이야기로만 알았었다. 사실 우리 중의 거의 대부분이 사도행전 2장을 지식적으로 알고만 있었고 그것을 생활에서 체험해 보지는 못했었다.
우리 목사님은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하나님께서 2천 년 전에 교회에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은 자동적으로 성령 침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 밤에 하나님은 우리의 눈을 열어 성령 침례가 자동적이 아님을 보게 하셨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렇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전 인류에게 주셨다. 그렇지만 이 구절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천국에 갈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인류 전체에게 주었을지라도 천국에 갈 모든 사람은 구원을 위해 아들을 영접해야만 한다. 성령 침례를 위한 진리도 같은 것이다. 예수님은 예수를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하여 그리스도의 몸의 일원이 된 모든 사람에게 성령님을 주셨다. 그렇지만 우리는 스스로 성령 침례를 위해 끝까지 노력해야 하며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체험을 가져야만 한다. 이것은 자동적인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개인적으로 응답해야만 한다.
그날 밤에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고 우리의 마음에 성령 침례를 갈급해 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 침례 요한의 말을 우리는 기억한다. “나는 물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시리라.”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설교자들에 의해 어리석게 만들어져 있었다 설교자들은 우리가 2,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체험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주님은 그날 밤에 우리의 마음에 기독교는 타인의 경험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체험이었다. 이런 체험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날 밤 우리가 함께 기도하는 중에 성경에 기록된 오순절처럼 갑자기 성령님이 강림하셨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성령님이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나는 여동생 뒤에 앉아있다가 급하고 강한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작은 회오리바람 소리 같았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내 여동생의 등을 두드렸다.
“ 너 이상한 소리 못들었니?”
“ 응. 나도 들었어. 그렇지만 잊어버리고 기도하자. 오빠!”
그녀는 기도를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 귀에는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기도를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우리 교회가 엄격한 질서 속에서 항상 한 사람의 기도가 끝난 다음에 다음 사람이 기도하는 식으로 기도회를 해 왔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기도하려면, 그 사람 앞에 적혀있는 기도문이면 충분했다. 만일 여러 사람이 기도하게 되면, 우리는 전체 기도자의 기도문을 작성해야 한다.
그러나 그날 밤은 모든 교인들이 기도문과 대표 기도자의 기도 순서도 잊어버리고 영으로,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사람, 두 사람 시작되어서 내가 알게 되었을 때는 전교인이 동시에 기도를 시작한 것이었다.
“오! 예수님, 우리 교회가 이상해졌습니다. 교인들의 기도에 질서가 없어졌습니다.” 당황한 내가 엉겹결에 한 말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기도하는 중에 나는 목사님을 보았다. 걱정스러운 기색이 얼굴에 역력했다. 목사님은 단상에 앉아 계셨는데 갑자기 이상해진 200여명의 교인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고 계셨다. 목사님도 역시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를 들었다. 나는 재차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오직 소리뿐이었다
그때 화재 비상벨이 급하게 올렸다. 교회 맞은편에 있는 파출소의 비상벨 소리였다. 파출소의 한 경찰관이 우리 교회가 불타고 있는 것을 보고는 마을 사람들에게 화재 발생을 알리는 비상벨을 누른 것이었다. 인도네시아 특히 티모르에는 소방차가 없다. 화재 비상벨이 울리면 사람들은 불이 난 것을 알게 되고, 각 마을에서 물 양동이와 불 끄는 도구들을 가지고 몰려온다.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왔을 때 붉은 불길은 보였으나 교회는 불타지 않았다. 자연의 불이 아니라 하나님의 불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으며, 성령 침례도 받았다. 물론 우리는 장로교인 이었기 때문에 “성령 침례,” “성령 충만”이라는 말과는 친숙하지 못하다. 이런 말은 우리에게 아주 생소한 것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눈을 열어서 “성령 침례”와 “성령 충만”은 우리의 삶에서 각각 개인적으로 경험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은 2,000년 전의 오순절 경험에 의지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Of course, any discussion about Azusa turned to the Shekinah Glory. When I asked about her experience with the Presence of God‘s Spirit, Sister Carney‘s face would light up. She described it as being a part of heaven. To her, it was like breathing pure oxygen, and to her wonderment, it was always present.
When I asked her to describe the Shekinah Glory Fire reported by many, she told her story. She recalled the fire department coming because of a call that the building was on fire. When they arrived, they didn‘t smell any smoke or see any evidence of fire. She didn‘t run out with the firemen. She remembered that it was Seymour, Bosworth, Lake, Smith, and Sines that ran out.
Sister Carney did go out one time to see the flames for herself. Remember, the fire department had been called on several different occasions, as passers-by would report seeing flames leaping up from the roof of the building. Finally, Sister Carney asked John Lake why the fire department kept coming and looking for the fire. He explained that the fire was coming down from heaven into the building and fire was going up from the building and meeting the fire coming down. Fascinated, Sister Carney went out, walked about a half a block and saw the awesome sight for herself. To her, this divine connection of fire coming down from heaven and going up to heaven was just further evidence of God‘s mighty Presence in that place. Sister Carney noted that although the Shekinah Glory was present all the time within the building, this divine connection wasn‘t an everyday occurrence. Whenever this connection was present, the power of God was even more intense within the me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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