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마 16:1-3)
이창승
2024.11.4. 순복음총회신학교 채플 설교문
I. 들어가는 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또 세메이온 엑 뚜 우라누; to shmeion e*k tou ou*ranou)을 구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그들이 천기는 분별하면서 “시대의 표적”(또 세메이온 똔 까이론; to shmeion twn kairwn)을 보지 못하느냐고 꾸짖으셨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나 “시대의 표적”은 동일한 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천기는 분별하면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즉 “시대의 표적”이 바로 자기들 눈앞에 서 있는 것을 분별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시대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은 바로 예수님이셨으며,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구원자, 그리스도로 보내신 구원의 시대의 표적이셨습니다.
각 시대에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표적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지 못하느냐?라고 물의시며 “분별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분별해야 할 시대의 표적은 무엇일까요?
II. 자유와 평등에 대한 과거의 현재의 두 흐름
10월 27일에 광화문 광장에 한국 교회의 100여만 명의 교인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왜, 모였을까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고 막기 위해서입니다. 차별금지법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모든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며, 그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 인간의 발전이며 진보다. 남성이 여성이 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여성이 남성이 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남성과 남성이 여성과 여성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자유가 있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니 모든 사람이 그런 자유를 똑같이 동등하게 누리도록 교육하고 살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광장에 모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자유와 평등을 반대하고 나선 것입니다. 왜 그들은 그런 자유와 평등을 반대하는 것일까요? 그들은 “성경이 사람이 남자와 여자로 구별하여 창조되었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하고 자녀들을 낳는 한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고, 남자와 남자가 그리고 여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성경은 자유와 평등을 반대할까요? 성경은 자유와 차별 없는 평등을 말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한복음 8:36)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골로새서 3:11) 광화문에 모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초하여 남성과 여성으로 구별하여 창조된 질서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모든 사람 개개인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창조된, 침범당할 수 없는 존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인도 아니고, 성경도 보지 않는 사람들일까요? 한국의 모든 교인들이 다 광화문에 모이지는 않았습니다. 한국 기독교 교인들 중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읽는 성경은 광화문에 모인 그리스도인들이 보는 성경과 다를까요? 시각적으로 보자면, 아닙니다! 반대자들이나 찬성자들이나 똑같은 한국성서공회에서 펴낸 성경을 육체적 눈으로 봅니다. 그러나 학적으로 보자면, 그렇습니다! 반대자들과 찬성자들은 같은 성경을 서로 다른 마음의 눈으로 봅니다. 찬성자들은 반대자들이 그 근거로 제시하는 성경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 남성과 여성으로 구별되어 창조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찬성자들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하고,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창세기는 모세가 그 시대에 쓴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자료들과 고대의 편집자들에 의해 다윗 시대 이후에 써지거나 구전된 것들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주장은 각종 자료들과 구전들을 자기 생각 안에서 짜깁기 했던 어떤 고대의 특정 편집자의 신학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찬성자들은 실제로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한 것도 아니고, 남성과 여성으로 구별하여 창조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각 개인의 존엄성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것에서 찾지 않습니다.
차별금지법 찬성자들이 추구하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은 어디에 그 근거를 두는 것일까요? 더 멀리 갈 수 있겠지만, 5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당시 유럽은 두 가지 중요한 흐름이 일어났습니다. 종교개혁과 인문주의가 그것입니다. 두 흐름 다 크리스텐덤(Christendom)이라는 전체주의적 중세 기독교 세계에서 탈피하여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추구했습니다. 루터를 통해 대표적으로 표출된 흐름은 성경에 기반을 둔 개개인의 신앙의 자유와 모든 신자들의 평등한 제사장 됨을 주장했습니다. 반면에 인문주의는 인간중심의 헬라문명의 재조명을 통한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했습니다.
성경에 기반을 둔 개인의 신앙의 자유와 평등을 추구했던 그리스도인들은 자유를 찾아 북유럽으로,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성경적 신앙의 자유와 평등이 꽃피고 열매 맺는 천년왕국을 건설하려 했습니다.
반면에 헬라문명을 기반으로 한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프랑스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신을 포함한 과거의 모든 권위를 무너트리고 그 최고 존재의 자리인 왕좌에 계몽주의적 이성을 앉혔습니다. 칸트의 이성관으로 대표되는 계몽주의적 이성은 밖에 있는 본질을 알 수 없고, 인간의 몸의 감각기관들을 통해 감지되는 것들만을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의 순수이성이란 초월적이고 신적인 것을 인식할 수 없게 되었고, 신은 인간의 실천 이성이 도덕적 필요를 위해 요청한 것에 불과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이성의 한계 내에 있는 성경, 그런 이성의 한계 내에 있는 종교를 추구했습니다.
칸트적 순수이성으로 성경을 보자는 것이 소위 문서비평, 편집비평, 양식비평, 신문학비평 등을 포함하는 역사비평, 고등비평입니다. 계몽주의적 이성의 한계 내에서 성경을 보면 신의 인간 역사로의 개입은 알 수 없는 불가지의 것, 불가능한 것이 됩니다. 창조, 예언, 신유, 이적들은 실제로 일어난 적이 없는 신화가 됩니다. 그들에게 성경에 남는 것은 인간이 투사된 신입니다. 신은 인간의 투사에 불과한, 인간이 가공하여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인간화된 신이, 인간이 만든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황당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의 기원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게 됩니다. 인간이 남성과 여성으로 구별되어 창조되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J자료 E자료 등 서로 다른 여러 문서들이나 구전들의 짜깁기 또는 편집의 결과이며, 인간 자신 안의 분열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들에게 인간의 자유와 평등은 신의 지배나 간섭을 받지 않는, 신에 의해 창조되지 않은 자연적 존재로서 개인의 자유와 평등입니다. 이런 자유와 평등은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기반을 둔 개인의 신앙의 자유와 평등을 찾아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던 사람들이 세운 미국, 그 미국의 대표적 항구 뉴욕항, 그 입구에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습니다.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을 기념하며 미국에 기증하며 세워준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아세라를 연상시키는 여신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의 상반되는 두 얼굴을 상징합니다.
한 얼굴은 미국을 성경에 기초하여 자유롭게 평등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천년왕국으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고 각성하여 1차 대각성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다른 얼굴은 신을 제거한, 하나님을 제거한 인간 자신만의 자유와 평등을 추구했습니다. 이 흐름은 프랑스 혁명을 통해 표출된 계몽주의적 이성을 왕좌에 앉힌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19세기 말엽에 유럽에서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을 받아들였습니다. 성경은 인간끼리 서로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만 남은 도덕적 교훈서가 되었습니다. 19세기 말엽과 20세기 초엽에 미국에서는 하나님을 쫓아낸 인간 자신의 자유와 평등이 판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에 최선을 다하여 부를 창출해내어 자본주의를 정착시켰으나, 그 중심에서 하나님이 제거되었고, 그 자리에 인간의 한없는 욕심이 들어앉았습니다. 창조론을 비웃는 진화론이 미국을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미국에 상륙했습니다.
미국을 하나님을 자유롭고 평등하게 예배할 수 있는 천년왕국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은 절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눈과 마음에 미국과 세계는 하나님이 개입하여 정리하기 전에는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 종말적 상황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자로 재림하셔서 이 참담한 상황을 바꾸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제2차 대각성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 각성운동, 성결운동 가운데서 오순절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각성운동은 전 세계에 영향을 주어 선교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미국과 전 세계에 교회들이 급격하게 설립되었습니다. 그 시기에 한국에도 그리스도가 본격적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는 큰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인간 중심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라졌을까요? 유럽에서 외형상으로 공산주의 체제는 무너진 것 같지만,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젠더, 동성애, 기본소득, 공유, 공공 사회보장 등등의 문화적 맠스주의,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 디지털 레닌주의 등으로 변환되어 유럽과 그곳의 신학교들과 교회들을 점령했습니다. 2차 대각성운동은 그들을 잠시 억누르는 것 같았지만, 그들은 더 커져 미국을 삼켰습니다. 공교육 기관들에서는 창조론이 배격되고 진화론만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한국에도 이 두 흐름이 존재해 왔습니다. 2000년대 이전에는 성경에 기반을 둔 자유와 평등이 대세였지만, 이제 하나님을 배제하고 진화론에 기반을 둔 인간만의 자유와 평등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와 그리스도인들의 10월 27일 광화문 집회는 두 흐름의 격돌입니다. 현재 미국의 대선도 바로 이 두 흐름이 맞붙는 전장이 되고 있습니다. 유럽은 이미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며 싸움이 끝났습니다. 성경에 기반을 둔 자유와 평등이 패배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III. 미래 시대의 표적
세계는 인공지능(AI), 로봇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로봇은 인간화되고, 인간은 로봇화되고 있습니다. 로봇은 점차 그러나 빠르게 인간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몸에는 착용하는 로봇을 비롯하여 인공심장 등 인공장기, 인공 뼈들이 심어지고 있어, 인간의 몸은 로봇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시점, 특이점에 도달하면, 무엇이 로봇이고, 무엇이 인간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이때 남성과 여성의 구별은 불필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로봇들이 인간 대신 노동을 하게 되면, 사람은 거의 불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구 감축이 필요하답니다. 트렌스젠더, 동성애가 일반화되어 여성과 여성이 남성과 남성이 결혼하면 인구증가를 막게 된답니다. 세계는 평등하게 남성도 여성도, 국가도 사라진, 모든 차별이 사라진 하나가 될 거라는 것입니다.
소수의 엘리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간은 사유재산을 잃고 기본소득만 받고 사는, 일거수일투족이 CCTV, 각종 디지털 기기에 의해 감시당하고 통제되는 가축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모든 차별이 사라진 평등한, 그러나 획일화되고 자유가 없는 세상이 도래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문학서적, 신화책이 되어 평범한 고서가 되어 버리고, 기독교는 세계의 단일종교로 흡수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제한 인간만의 자유와 평등 추구는 더욱더 고도화되어 결국, 자유가 상실된 평등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인간 중심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인류의 진화, 진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중심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극우, 인류의 진보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 인류의 진화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대의 표적은 인공지능과 로봇, 인간 중심의 자유와 평등일 것입니다.
IV. 대응책
이런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으며, 하나님의 지혜와 성결과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학교에서 고등비평, 역사비평, 문서비평, 편집비평, 양식비평, 신문학비평을 쫓아내야 합니다. 둘째는 이런 시대를 일시라도 저지하고, 나아가 그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부흥을 갈구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는 이미 가깝게는 100년 전에 2차 대각성운동에 참여했던 성도들과 찰스 파함과, 윌리엄 시무어, 윌리엄 더함 등 초기 오순절지도자들과 그들과 함께 했던 그리스도인들이 했던 일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고등비평에 물들지 않은 중생, 성화, 성령침례, 신유, 재림을 포함하는 Full Gospel을 성경에서 회복시켰습니다. 그리고 동양인들은 Full Gospel을 고등비평에 의해 물들지 않은 “순복음”으로 번역했습니다. 이 두 가지를 해내어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표되는 4차산업혁명이 인간 중심의 자유와 평등을 구현하려 하는 방향을 틀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성경에 기반을 두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게 해야 합니다.
V. 나가는 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시대는 반성경적이고 적그리스도적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계의 대부분은 인공지능, 로봇, 동성애, 트렌스젠더, 공유, 나눔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을 배제한 인간 만의 자유와 평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렵지 않은 시대가 없었지만, 우리에게 펼쳐질 미래 시대만큼 어려운 시대는 없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순교적 신앙을 갖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참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며, 인간 개개인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믿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며 개개인이 대각성하고(Great Awakening), 세계의 대부흥을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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