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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F. 파함의 글들/찰스 F. 파함의 글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찰스 F. 파함의 글: 물침례(Water Baptism)

한오신 2023. 2. 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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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침례

(WATER BAPTISM)

 

 

 

 

이창승 역

 

    목회에 뛰어든 이후 수년 동안, 우리는 물침례에 대해서는 특별하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성령 침례(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를 비할 바 없는 필수적인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놀랍게 기름부음을 받고(anointed), “내주하시는 기름 부으심”(the anointing that abideth)을 받으면서도 우리는 물 침례(water baptism) 문제를 제쳐놓았었습니다.

    어느 날 숲 속에서 홀로 묵상에 잠겨있는데, 성령(the Spirit)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말씀 속에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모든 것에 순종했느냐?"

    우리는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같은 질문을 던지셨고, 우리는 같은 대답을 드렸습니다. 세 번째 성령께서 똑같은 질문을 하셨을 때, 우리는 아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복종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설득력 있는 증거가 홍수처럼 우리 위에 쏟아졌습니다. 베드로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2:38]고 말하지 않았었습니까? 그것은 하나의 침례가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두 번째 말씀이 왔습니다.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the gift of the Holy Ghost)을 받으리니.” 다시 베드로는 방언이라는 성경적 증거를 동반하는(with the Bible evidence of speaking with tongues) 성령 침례를 받은 고넬료와 그의 모든 집 사람들에게 물침례를 주었습니다. 모든 논쟁들을 밀어젖히면서 그는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침례 베풂을 금하리요(10:47).

 

    바울은 요한의 회개를 위한 침례를 충분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들로 하여금 성령침례를 받게 하기 위해 그들에게 안수하기 전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침례를 주었습니다[19:1-7].

    그 말씀들과 다른 말씀들이 너무도 설득력 있어서 우리는 다음날 한 번 잠김으로(by single immersion) 물침례 받았습니다.

    수 년 후에 세 번 잠김(triune immersion)에 대한 많은 논거들과 논의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것이 옳다고 지적으로 설득당하여,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 방법으로 물침례 받도록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 번 잠김으로 물침례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두 해 전에 우리는 우리가 찾아왔었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조직체든 비조직체든, 신조들이든 어떤 도시로나 광야로나 어떤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든 일치(unity)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우리는 이 노선에 도움을 주시도록 간절하게 바라며 하나님께로 돌아섰습니다. 우리는 그 몸의 단일체인 교회를 설교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지시를 받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 고귀한 약속을 발견했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 1:18-19).

 

여기서 우리는 사람들이 추구해왔던 그리고 자신의 사역들과 노력들로 성취하고자 애써왔던 그 능력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비성경적인 가르침들을 쓸어내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조직체든 비조직체든 어떤 교파적 단체의 한 일원이 되는 것이나 또는 여러분에게 자기의 모든 가르침을 오류가 없는 것으로 믿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오늘 날의 어떤 예언자의 추종자가 되는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단지 칭의나 성화에서 했던 것처럼 행하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의 죄들과 죄를 그분의 발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랬던 것처럼 이제 여러분의 가르침들, 신조들과 교리들을 그분의 발에 내려놓고, 그분의 정결케 하시는 피를 믿음으로써 모든 잘못, 거짓된 가르침이나 비성경적인 사상들이 씻겨 나간 것을 확신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그렇게 우리를 정결케 하실 때, 우리는 견해가 일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런 정화를 하나님께 구했을 때 우리가 그렇게 성경적인 것으로 믿어왔었던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사랑해왔었던, 그리고 선포에서 가장 잊지 않았었던 어떤 가르침들이 어떻게 우리 마음으로부터 흔적도 없이 지워져 버렸는지 잘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 중에 세 번 잠김도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그 문제를 한 시간 가량이나 논의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그것을 지지할 만 한 단 하나의 논거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참으로 몇 달 동안 그 문제에 대해 찬성이든 반대든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성경 학교에서 우리는 물침례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알기 위해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6:4]. 우리는 그것을 수 년 동안 알고 있었습니다. 또다시 성령(the Spirit)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부와 성령 하나님은 결코 죽지 않으셨다.”

    그리고 우리는 참으로 빨리 우리는 성부의 이름과 성령의 이름으로 장사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분들이 결코 죽거나 부활하지 않으셨기에 그분들의 이름으로 장사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들이 섬광처럼 우리 마음을 지나갔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분에게 그분의 신성(His divinity)에 대한 표적을 구했을 때, 그분은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12:38-39)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신성을 그분이 행하셨던 이적들을 통해 증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분이 이적을 통해 그렇게 하셨다고 우리를 설득시키려고 하지만, 그 주장은 이적들이 항상 교회의 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볼 때(seeing that miracles were always a part of the Church) 설득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사도들, 목사들과 교사들과 함께 이적들과, 신유 그리고 방언을 두어 오셨습니다. 사도들과, 목사들 그리고 교사들이 그친 적이 없는데, 왜 이적들과 신유와 방언들이 그치겠습니까!(고전 12:28, 30).

    요나가 삼일 밤낮을 고래의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인자도 삼일 밤낮을 땅속에 있다가 그곳으로부터 당당하게 일어나심으로써 자신의 신성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정결한 양심을 공적으로 고백하기를 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고, 한 번 잠김으로 물침례를 받을 것입니다. 그 잠김은 죽음과 장사지냄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물침례를 받되 예수 이름으로”(in the name of Jesus),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into the name of the Father, Son and Holy Ghost) 받을 것입니다. 그분들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와 하나가 될 때 한분이십니다.

    마귀는, 고등비평이라는 입을 통해(through the mouth of higher criticism), 요나의 이야기를 비웃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라는 상부 구조적 가르침(the superstructural teaching)이 세워져있기에 그것을 치는 것은 모퉁이의 머릿돌을 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