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저자의 간략한 생애
(LIFE SKETCH)
한 사람의 생애에 일어난 갈보리의 역사
Charles F. Parham, A Voice Crying in The Wilderness (Joplin, MO: Joplin Printing Corporation, 1902, 1910), 1-14.
설교로의 부르심
설교로의 부르심: 설교자들은 태어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Preachers are born, not manufactured). 모든 성경의 인물들에 대한 기록은 이 사실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목회를 직업으로 선택합니다. 목회의 편안하고 윤리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또는 어떤 사람들이 학문적인 재능으로 좋은 목회지를 차지하고 높은 보수를 받는 것을 보고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그런 목회자들은 많은 사람들을 윤리적인 사회로 끌어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그들의 추종자 가운데서 죄로부터의 구원에 대한 경험적인 인식(an experimental knowledge of salvation)이라는 진정한 회심을 일으키는데 실패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사람들을 설교하도록 부르고 계십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회심뿐만 아니라 그 부르심을 압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더 민감하게 압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성실하게 따릅니다. 그리고 당연히 성공합니다.
우리가 경험한 목회로의 최초의 부르심은 아홉 살 때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 비록 회심하지는 않았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수하셨다는 것을 사무엘이 그랬던 것처럼 분명하게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후 수년 동안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전 9:16]라는 바울의 감정을 경험했습니다. 그 두려움은 사람들이 어떻게 남북전쟁에 징병 당했으며,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자원했는지를 읽었을 때까지 우리에게 엄습했습니다. 징병을 당한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싸웠지만, 자원병들은 그 안에 있는 영광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라는 감정과 징병된 군인으로서의 모든 기록들을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군대에 자원병으로 입대했습니다. 그 이후 우리는 그 영광을 위해 싸워왔습니다.
이제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인정받은 사람이든, 받지 못한 사람이든 하나님으로부터 설교로의 소명을 받은 남자들과 여자들에게 충고합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설교해야만 합니다. 정당하게 면허를 받았든지, 받지 않았든지 설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역은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여러분에게는 오직 가시밭길―불행, 화, 궁핍만 남을 것입니다. 손대서 잘되는 일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세에서는 더 이상 아침은 없고, 길고 긴 밤만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매우 병약했기에 어린 시절을 가벼운 일들하며, 또는 견딜 만하면 소떼를 치며 지냈습니다.
우리 부모는 내가 어렸을 때 캔사스로 이사했습니다. 포장마차로 이동하느라 집 서재는 보잘 것 없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기로 서재에는 “지옥에서 온 편지”, 자연사 한 권, 낡은 교과서 몇 권, 사전 한 권, 고대사로부터 1878년까지의 사실들(facts)을 기록한 세계사 한 권, 그리고 마지막으로(last) 그러나 결코 시시하지(least) 않은 성경이 있었습니다. 그 마지막 두 권은 지금까지 우리가 발전시켜 온 사역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는 데 가장 유익한 것들이었습니다.
성경은 거의 변치 않는 동반자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비록 회심하지 않았어도, 소떼를 몰아서 언덕에 모아놓고는 “천국의 기쁨의 찬양”이나 “지옥에 떨어진 영혼들의 통곡”에 관한 것 등 미래의 삶의 실체에 대해 감동적인 설교를 하곤 했습니다.
우리는 요즈음 “당신은 당신의 견해들을 주의 깊게 따르지 않는 젊은이들이나 노인들에게 큰 인내를 보이십니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소떼에게 설교하면서 목회 훈련을 받았다고 기꺼이 말해줍니다. 우리가 기발한 상상력으로 미래의 상태를 열심히 묘사해도 그것들은 고개를 돌리고 냉담하게 우적우적 먹기만 했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선입견도, 신조들과 교리들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그 어떤 지식도, 그것을 통해 볼 수 있는 그 어떤 전통적인 안경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종교적이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교회와 주일학교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설교자들은 그 지방에 닭 이빨처럼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진정으로 우리는 그 시골이 인구가 아주 많아져서 노란색 발을 가진 병아리 같은 시장성 있는 상품을 내는 곳이 되고, 그리고 이따금―적어도 그 설교자가 왔을 때―우리가 몹시 필요했던 먹거리를 바꾸게 되었을 때까지 그들이 그곳에 몰려들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열세 살이 될 때까지 한 두 사람의 설교자이외에 들어 보았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회중 교회의 립파드 형제(Brother Lippard)에 의해 열린 한 집회에서 회심했습니다.
우리의 어렸을 때의 성경 연구나 인상은 완전히 편견 없는 것이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 사실들을 진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구석구석까지 잘 알게 되었고, 성경을 기록된 대로 읽고, 그리고 선입견으로 물든 생각이나 해석들에 의해 휩싸이지 않음으로써 신학적 폭풍들을 뚫고 나갈 수 있었고, 돛을 찢어버리려고 그리고 그것을 오직 하나의 기관의 교리적 한계에 가두어 버리려고 애쓰는 목사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그 배의 방향타를 돌림으로써 핍박의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인도함을 받아왔고, 불같은 증오와 잔혹한 편견을 장전한 대포들로 무장한 요새들을 통과하여 오늘 “그 배는 온전한 구원(full salvation)의 잔잔한 바다를 항해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천년의 새벽에 날개에 치유를 싣고 날아오르시는 의의 아드님께서(the Son of Righteousness) 세상의 종말의 능력, 오는 세대, 만물의 회복을 실현시키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사도들과 함께 서는 특권을 가지면서 또 다시 표적들과 이적들, 그리고 기사들을 보시고, 성령의 모든 아홉 가지 은사들을 가지고 교회를 재방문하시고 계십니다.
다른 장면들과 기억들은 희미해질지라도, 그 누가 하나님께서 자기 영혼에게 첫 번째로 말씀하신 장소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어느 학교 교정에서 열렸던 집회를 인도하던 설교자는 목요일 저녁에 누군가가 회심하지 않으면, 그 집회는 주일에 끝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다음날 저녁에 회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 결정을 하게 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집회가 계속 열리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집회는 아주 신기했고, 그 긴 밤들을 즐거이 보내기에 좋은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우리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하는 때를 결코 마음에 결정하지는 않았었지만, 그것은 막연한 미래의 그 언젠가에 있을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병 때문에, 그리고 언제나 그런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결정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일어섰고 즉시 회심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진정으로 회심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했습니다. 다만 만약 어떤 사람이 할 수 있는 한 굳게 결심했다면, 그것은 요구되는 전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깊고 날카로운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으로부터 이미 얻은 지식으로 진정한 회심 없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사람들도 그것을 시도해보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 속에서 모든 악 때문에 사람들에게 배상함으로써, 경건한 슬픔으로써 회개하면서 죄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확신이 없이 기독교적 삶을 성공적으로 산 사람을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사람들 사이에서 바로잡힐 수 있는 죄들을 결코 없애지 않는다는 것을 또한 배워왔습니다.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은혜롭게 덮을 것입니다. 그렇게 엄청난 확신으로 눌리던 그날 밤에 기도할 수 없어서 우리는 찬양하려 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주셔서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고, 집회에서 찬양을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을 때까지 찬양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랫동안 친숙했던 찬양 “십자가로 옵니다”(I am Coming to the Cross)를 콧노래 불렀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들고 그 가사 하나하나의 의미를 새기다가 3절에 이르렀습니다.
여기, 친구들과 시간과 세상 것,
내 모든 것 주께 드리옵니다.
내 영혼과 몸은 당신 것,
이 모든 것 영원히 당신 것이옵니다.
Here, I give my all to Thee,
Friends, and time and earthly store,
Soul and body Thine to be;
Wholly Thine forever more.
“이 모든 것”(wholly)이라는 가사를 반복하는데 햇빛보다 더 밝은 한 줄기 빛이 갑자기 하늘에서 비추었습니다. 그 빛은 번개처럼 우리 존재의 모든 세포들과 섬유소들을 관통하며 떨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옛날에 베드로가 알았던 경험적 지식으로 그분이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습니다. 비록 마귀는 우리의 마음에 다른 일들에 관하여 고소하고, 많은 의심과 두려움을 주어왔지만, 그리고 많은 소위 기독교인들의 불신과 무관심은 우리를 거의 불신앙으로 던져 넣어 왔지만, 그러나 수년 전 그날 밤의 경험은 “우리 영혼에 확실하고 확고부동한 닻”이 되어왔습니다.
오, 즐거운 날, 오직 당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택한 날.
Oh happy day, that fixed my choice.
On Thee, my Saviour and my God.
그 다음 수년 동안 일어났던 일들은 언급할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일학교 교사와 사역자가 되어(15세에) 놀라운 결과들을 낸 대중 집회들을 열었습니다. 잠시 가르친 후, 16세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공부하는 것보다는 종교적 사역을 더욱 더 추구했기 때문에 종종 심하게 질책을 받았고, 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교단 학교들은 퇴보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을 제공합니다. 그 종교적 영향력은 종종 퇴보한, 퇴직한 설교자들에 의해 지배됩니다. 그들이 이전에 퇴보하지 않았다면, 퇴직한 후 자기 교단의 대학 마을에 배정된 후 그럴 위험에 놓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고, 오랜 동안 살아온 자기들 나름대로의 습관대로 구시대적이고 단조로운 방침위에서 교회와 대학의 일들을 규정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곧바로 진보적인, 그리고 많은 경우에, 보다 깊은 영적 진실들을 가진 보다 젊은 사람들에 의해 뒤쳐졌습니다.
사우스웨스턴 캔사스 대학(Southwestern Kansas College)은 그 때나 지금이나 퇴보하기에 좋은 곳은 아닙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퇴보했습니다.
목회라는 것이 특별한 정착지 없는, 많은 굶주림의 상황들과 힘겨운 순회들이라고 생각하자, 그것은 다른 어떤 직업들만큼도 매력적이지 못했습니다. 특히 일반적으로 목회자는 사회가 제거할 수 없는, 그리고 부양하려 하지 않는 큰 짐으로 여겨졌을 때 그 매력은 배로 감소했습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일반적으로 학교 교사들의 노동시간의 육분의 일만큼만 일하면서도 그들보다 더 많은 급료를 요구하지만, 그 대신에 사회에 거의 또는 전혀 공헌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자주 말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지갑 끈들을 잡아당기거나 터트려 열기위해서는 사람들의 배에 굴, 딸기 케이크 또는 아이스크림을 놓아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금자가 되는 그리고 돈을 뜯어내는데 사용되는 모든 책략들과 도박 기술들을 철저하게 교육받고 훈련받습니다.
우리는 그 전망이 싫어졌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회심했을 때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가겠다고 주님께 했던 약속 때문에 괴로워했습니다.
많은 세월 동안 병약했던 우리에게 마귀는 인류의 고통을 경감시키고, 그리고 이윽고 이 세상에서 좋은 집과 안락함을 얻게 해주는 의사가 되는 것이 가장 인간을 사랑하는 일일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목표를 바라보며 과목들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등불이 꺼져갔습니다.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의사 겸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고 믿게 만들려 했습니다. 날마다 설 땅을 잃어가다가 우리의 친구들이 우리가 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생각할 지경에 이르기까지 소극적인 죄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죄도 짓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가 분명한 것처럼, 그분의 심판도 분명합니다. 그 분의 심판은 종종 변장한 자비입니다.
몇 달 동안 우리는 지옥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 류마티스 열병의 불길에 모든 의사들과 친구들이 두 손을 들었습니다. 많은 죽음의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반항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죽기를 바라고 갈망하면서도, 헛되게 영혼과 몸의 쉼을 기대하면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다루고 계시며, 그래서 우리는 죽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설교자가 우리를 보러 왔지만 우리는 그 모습을 경멸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설교자나 다른 하나님의 성도들을 비난하는 사람이야말로 타락한 자들이라는 것은 진정으로 사실입니다.
그것은 목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진리들을 누릴 때 우리는 마음의 복음 또는 사랑을 설교했고, 경험 속에서 타락 했을 때 우리는 동호회들의 복음을 설교했습니다.
콜로라도의 들에서는, 수천 마리의 양떼들이 매우 추운 겨울이 되어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 서로의 털을 뜯어 먹습니다. 하나님의 양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목회자든 평신도든 먹을 것이 부족한 추운 분위기 속에 놓여 지면, 서로의 털을 뜯어 먹는 것을 항상 발견할 것입니다.
그 설교자가 우리에게 왔을 때,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매우 경건한 채 가장했으며, 내적으로 느끼지 않던 많은 듣기 좋은 표현들을 쏟아냈습니다.
그처럼 몇 달을 고생하다가 우리는 아주 쇠약해졌습니다. 어느 날 한 의사가 그 집의 다른 사람들을 보기 위해 왔다가 우리에게 안내되었습니다. 쇠약함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는 특권이 있었던 모르핀을 과다 복용해서 우리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의사가 우리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우리가 훨씬 더 잘 안다고 그에게 말하고 싶었는지요! 우리가 비록 불순종과 심한 징벌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반항하던 두 손을 들어 항복하고, 영원한 복음을 전할 것이라는 의식이 우리 속에 있었습니다.
다음날 예수님께서 어떻게 치료하셨다는 놀라운 모든 말씀들이 우리에게 강력하게 밀려왔습니다. 왜 그분은 오늘이라고 치료하실 수 없겠습니까?
우리는 마치 탕자처럼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용서의 키스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헌신했으며, 하나님께 어떤 대가를 치르든지 아프리카든, 길거리든, 슬럼가든, 살든지 죽든지 그분을 섬기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자 내가 후에 “성화시키시는 은혜”(sanctifying grace)라고 알게 된 놀라운 성결케 하는 능력(cleansing power)이 우리의 내적 생명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동시에 강력한 치료의 능력(the mighty power of healing)이 우리의 몸에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결의를 원하셨습니다.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아프리카로의 부르심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 병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당시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해야할 특별한 일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그분이 단순하게 우리를 치료하셨다고 느꼈습니다. 비록 불가사의한 치료의 만지심을 받았으면서도, 오늘날의 많은 우리의 형제들처럼 우리가 구속함을 받지 못한 병의 증상 하나가 남았습니다.
우리의 발목은 몇 달 동안 부어올라 붉게 열이 났었는데, 그 병이 떠나자, 힘줄들과 연골들이 어긋나서 발목을 완전히 지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걷기를 배웠지만, 그보다는 양 발의 옆면으로 비틀거렸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완전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우리도 왜 완전히 치료되지 않았는지 궁금했습니다.
우리의 경험은 당신에게 유익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분은 완전한 치료를 거부하셨습니다.
의사들은 그 발목 쇠약에는 약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의학에서는 그 경우에 도움 되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실히 행한 우리의 서원 후 몇 달 지난 어느 날 밤에 우리는 한 오래된 떡갈나무 아래서 무릎을 꿇고, 우리의 모든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끌려 다닐 수는 없지 않느냐고, 당신은 심방 없이는 성공적인 전도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시지 않느냐고, 우리가 게으른 설교자로 알려지지 않겠노라고 결심하고 우리의 생명을 목회에 던지기로 했으니, 날마다 할 일을 우리에게 주셔야 한다고 강력한 논거를 제시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치료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갑자기 미문 곁에 있던 사람이 발견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발목들이 즉시 치료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발목들로 껑충껑충 뛰었으며, 그리고 그 후 지금까지 그곳에 더 이상 통증을 느낀 적이 없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의롭다함을 받은 삶의 경험과 유사한 것을 신유에서 경험했습니다. 때로는 좋았다가도 때로는 나빠지고, 아프기도 하고 주님을 치료자로 삼기도 하고, 그리고 다른 때는 약을 먹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전된 죄에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병에서 몸을 성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the mighty power of God in sanctifying the body from disease as He had from inbred sin)을 실감했던 스물네 살에 이르기까지 그랬습니다.
열아홉 살에 우리는 캔사스 주 발드윈의 베이커 대학교의 설립자인 데이비스 박사(D. Davis)의 강단을 맡기 위해 부름을 받아 두 해를 지냈습니다.
목사직의 한계를 알게 되고, 교파적 교회주의의 편협성을 느끼면서 우리는 종종 위의 권위들과 마찰을 빚었습니다. 결국 공공연한 결렬이 일어났으며, 그 교회에게 모진 핍박을 받기도 했지만 우리는 영원히 분파주의를 떠났습니다. 우리 영혼은 결코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 안식을 얻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오, 스스로를 주님의 것이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의 편협함이여!
전도 사역에 5년을 보냈습니다. 수백 명이 회심했으며, 수십 명이 성화되었으며, 몇 사람이 치료받았습니다.
우리는 그 사역의 마지막 분야, 병자들을 위한 기도에서 손을 뗐었습니다. 그리고 그 반항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성부로부터 호된 처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신 분의 비길 것 없는 능력을 선포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그분께서 그분의 임재를 거두셨던 때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당시에는 병자의 치료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침내 이기셨습니다. 우리는 죄로부터 구원을 설교하는 것뿐만 아니라 신유를 설교하는 것에 우리의 삶을 양도했습니다.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몇 사람의 치료로부터 캔사스 주의 토페카(Topeka, Kansas)에 신유의 집(Healing Home)을 설립하기까지 인도받았는지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 학교의 개교가 뒤따랐습니다. 그 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는 사도 사대 이후 다른 그 어떤 사람들 가운데서보다도 더 놀랍게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회심 때 받았던 하나님의 생명(divine life)의 시작으로부터 우리가 오늘날 처하게 된 위치에 이르기까지 이 진흙으로 만들어진 도구를 통해 이루어진 것은 그 무엇이든: 정당한 것이든, 유익한 것이든, 혹은 가치 있는 것이든,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모두 그리스도에게서 난 것이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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