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복음총회신학교 조교수 이창승
2022.10.26
I. 들어가는 말
2023년이 되면,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는 창립 70주년을 맞이한다. 1953년 4월 8일, 전쟁의 포화가 아직 다 가시지 않았을 때 교단은 그 탄생의 종을 울렸다. 그런데 사실 교단의 역사는 그보다 더 길다. 그 역사의 굽이진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1932년 11월 8일이라는 샘에 다다른다. 그 샘으로부터 도도히 흘러내려 온 역사는 90년이다. 이런 경사스런 때에 교단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좋은 것에 좋은 것을 더 얹어 놓는 것일 것이다.
구십 살 먹은 교단의 명칭은 세 시기에 걸쳐 바뀌어 왔다. 첫 시기는 1932년부터 1949년까지였다. 두 번째 시기는 1950년부터 1952년까지였다. 그리고 세 번째 시기는 1953년부터 현재까지다. 본 소고는 그 첫 시기인 1932년부터 1949년까지의 교단 명칭을 추적해 보고, 그 명칭에 담긴 의미들을 되새겨볼 것이다. 그럼으로써 교단 탄생 90주년을 자축할 것이다.
II. 교단의 공식 명칭
교단의 공식 문서들은 이 시기의 교단 명칭을 “조선 오순절 교회”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30년사 편찬위원회는 “1938년 10월 럼시선교사가 한국에 온지 10년 만에 조선오순절교회 최초의 목사안수식이 있었는 바 이 때에 안수위원은 영국 오순절교회 감독 카타목사 썽무라목사였으며 임직받은 이들은 허홍, 박성산, 배부근등 삼인이었는데 장소는 정동 시병원에 위치한 조선오순절교회 선교본부였다”라고 쓴다.
“조선 오순절 교회”라는 명칭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조선 오순절 교회”라는 명칭은 30년사 편찬위원회에서 만든 것이었을까? 그 명칭의 기원은 한국에 오순절을 전해 준 첫 선교사로 인식되어왔던 메리 C. 럼시(Mary C. Rumsey)였다. 럼시가 사용했던 명칭은 “기독교 조선 오순절 교회”(基督敎 朝鮮 五旬節 敎會)였다.
그 명칭은 럼시가 1939년 4월 18일에 미국 하나님의 성회 선교국장 퍼킨스(Rev. Noel E. Perkins)에게 보낸 편지에서 드러난다. 그 편지의 아래 본문은 럼시가 손으로 직접 쓴 것이었다. 그런데 그 편지의 윗부분은 공문처럼 인쇄되었다. 그 윗부분의 왼편에는 “宣敎師 嚴世, 基督敎 朝鮮 五旬節 敎會”라는 한문이, 윗부분의 가운데에는 “KOREA MISSION OF THE PENTECOSTAL CHURCH”라는 명칭이 찍혀있다. 그리고 그 윗부분의 오른편에는 “京城府 貞洞町 三四 朝鮮”이라는 한문과 “34 TEIDO CHO. 3, SEOUL, KOREA”라는 영문으로 주소가 기록되어 있다. “KOREA MISSION OF THE PENTECOSTAL CHURCH”는 한문 “基督敎 朝鮮 五旬節 敎會”에 대한 영문이었을 것이다. 언제부터 럼시가 그 명칭을 사용했는지는 자료가 없어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기독교 조선 오순절 교회”는 럼시가 사적으로 사용한 명칭이었고, 공식 교단 명칭은 아니었다. 공식 교단 명칭은 1932년 11월 8일에 조선총독부에 제출한 “포교관리자 설치 신청서”에서 등장했다. 이 신청서에 기록된 포교관리자는 럼시가 아니었고, 팔선이라고 알려진 글레이디스 마가렛 파슨스(巴善, パールツソ, Gladys Margaret Parsons)였다. 그리고 이 신청서에 기록된 “교파 명칭”(敎派 名稱)은 “基督敎 五旬節 敎會”였다. 변종호는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교단 이름이 “조선 오순절 교회”라고 말하며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조선오순절교회의 통계를 제시했었다. 그런데 그가 인용한 『조선에 있어서 종교 및 향사 일람』이라는 통계 책에서도 “조선 오순절 교회”가 아닌 “기독교 오순절 교회”라는 교단 명칭이 사용되었다.
럼시가 사용했던 “기독교 조선 오순절 교회”와 팔선이 사용한 “기독교 오순절 교회”는 서로 다른 두 단체들에 대한 상이한 명칭들이었을까? 럼시가 “기독교 조선 오순절 교회”라는 명칭으로 편지를 보내며 기록한 그 선교회의 주소는 경성의 정동이었고, 팔선(파슨스)이 “기독교 오순절 교회”라는 명칭으로 제출한 서류에 등장하는 “포교관리자 사무소 위치”는 경성의 죽첨정 삼정목 3번지 26호였다. 서로 다른 명칭들과 서로 다른 주소가 사용되었다. 그 명칭들과 주소들은 상이한 교단들이 존재했음을 의미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먼저 조선총독부의 두 자료에서 유추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신청서에 따르면, 1930년에 팔선과 함께 “오프스테드”(吳世德, Elfreeda Ofstead)라는 여 선교사도 조선에 입국했다. 그리고 1937년 조선총독부 통계에 따르면, 기독교 오순절 교회 소속 외국인 선교사 수는 영국인 2명, 미국인 3명이었다. 아마도, 그 통계가 언급한 영국인은 “메르디트”(Elsie Hannah Meredith)와 “베시”(Lillian Vessey)였을 것이며, 미국인은 파슨스(Gladys Margaret Parsons)과 “오프스테드”(Elfreeda Ofstead), 그리고 럼시(Mary C. Rumsey)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두 명칭들은 두 교단들이 존재했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유추는 30년사 위원회가 1938년 10월에 있었던 3인의 목사안수에 대해 기록한 것에 의해 확실하게 입증되는 사실이 된다. 위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30년사 위원회는 조선오순절교회 최초의 목사안수식이 1938년 10월에 열렸다고 전한다. 이때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들은 “허홍, 박성산, 배부근”이었다. 30년사 위원회는 당시 사역은 두 팀으로 나누어 이루어졌는데, 럼시는 허홍, 박성산과 그리고 벳시, 메르테트, 팔선은 배부근과 동역했다고 쓴다. 그런데 따로 사역을 했던 박성산과 배부근이 함께 목사안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럼시의 사역과 팔선의 사역이 동일한 교단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입증한다. 또한 팔선과 함께 동역했던 배부근이 럼시가 자신의 사역의 중심지로 삼았던 정동 시병원에 위치한 조선 오순절교회 선교본부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것도 그렇다.
그 등록 이후 소속 교회는 앞에 교단 이름을 그리고 뒤에 개교회의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예를 들면, 한국 오순절 교회 역사에서 서빙고 교회에 이어 두 번째로 1933년에 세워진, 수창동 교회의 공식 명칭은 “기독교오순절교회 경성포교소”(基督敎五巡節敎會 京城布敎所)였다. 경성포교소는 소화 11년, 즉 1939년 9월 12일자로 조선총독부에 내수동에서 사직동으로 포교지 주소 변경신고를 했는데, 그 서류에 의하면, 그 교회의 소속 종파는 “基督敎五巡節敎會”였고, 그 교회의 공식 명칭은 “基督敎五巡節敎會 京城布敎所”였다. 또한 1937년 11월 10에 합정동에 개척된 경성포교소의 지교회의 공식 명칭은 “기독교오순절교회 합정교회”(基督敎五巡節敎會 合井敎會)였다. 동년 동월 19일에 허홍과 럼시에 의해 개척된 교회의 공식 명칭은 “기독교오순절교회 흑석교회”(基督敎五巡節敎會 黑石敎會)였다.
III. 교단 명칭에 담긴 뜻
팔선과 럼시는 왜, 교단 명칭을 “오순절 교회”라고 붙였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신청서에서 드러난다. 그 신청서에 기입된 “오순절교회 교규 제 1 장 교회의 연혁”은 다음과 같이 그 유래를 기술한다.
오순절교회의 시작은 신약성서중 사도행전 2장에 예수 승천하신 후 사도들이 성신에 충만함을 입고 타국의 방언을 말하니 성신이 말하게 하신대로 하더라. 이와 같이 성신의 세례가 있은 뒤에 교회가 비로소 설립 되니라. 그 후에 교회는 여러 상황 중에서 그 시대와 그 지방의 형편을 따라 혹은 번영하고 혹은 쇠퇴하니라. 서력 1898년에 미국 각 주에 있는 교회들 중에 대부흥이 있었는데 루터교회, 침목교회, 감리교회, 장로교회, 성결교회, 침례교회 등이 열심히 기도하는 중에 교인들이 특별한 성신의 불을 받았으니, 성경에 있었더라. 그때에 특별히 성신의 세례를 받은 자들이 교회를 조직하니 즉 오순절 교회이다.
팔선과 럼시는 오순절에 방언을 말하며 성령 침례를 받으며, 교회가 설립되었고, 그 후 특별히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방언을 말하며 성령 침례를 받은 자들이 교회를 조직했는데 그 교회가 “오순절 교회”라고 기술했다. 이렇게 “오순절교회”라는 이름에는 성령 침례와 방언의 밀접한 관계성이 내포된 것이었다.
그 신청서에 기입된 기독교 오순절교회의 “교의신조”(敎義信條)에서도 팔선과 럼시가 교단명칭을 “오순절교회”라고 정한 이유가 드러난다. 1항은 “聖書는 聖神에 感化하심으로 記錄된 冊이 됨을 信함”이었다. 2항은 “하나님은 三位一體이심을 信함”이었다. 3항은 “基督으로 由하야 義에 至함을 信함”이었다. 4항은 “悔改와 赦罪를 信함”이었다. 5항은 “重生함을 信함”이었다. 6항은 “水의 洗禮를 信함”이었다. 제 7 항은 “聖神의 洗禮를 信함”이었다. 8항은 “主의 晩餐을 新함”이었다. 9항은 “神癒을 信함”이었다. 그리고 10항은 “基督의 再臨을 信함”이었다. 즉, 이 신조에는 중생, 신유, 방언을 동반하는 성령침례, 재림이라는 오순절적 4중 복음(四重福音)이 내포되어있었다. 이 7항은 “성신의 세례”는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날 방언을 말하며 성령침례를 받았던 오순절적 역사를 담고 있었다.
팔선과 럼시가 교단명칭을 “오순절교회”라고 지은 이유는 그 신청서의 “제 3 장 교회의 조직” 3항에서도 드러난다. 그 신청서는 “교회의 회원”을 네 종류로 분류해 놓았다. 첫 번째는 “구도자,” 두 번째는 “중생자,” 세 번째는 “세례자,” 그리고 네 번째가 “聖神洗禮者”이다. 그 교회의 회원 네 종류는 불신자로부터 사람이 시간상 또는 논리상 순서대로 경험해야 할 이상적인 단계를 드러낸다. 팔선과 럼시가 “기독교 오순절교회”라고 교단명칭을 정한 것은 조선의 사람들이 이 네 번째 단계에 이르도록 하겠다는 의지에 의한 것이었다. 그 신청서의 풀이에 의하면, 성신세례자는 “聖書中 使徒行傳 二章에 잇는대로 聖神에 充滿함을 밧은 자”이다. 팔선과 럼시는 조선 사람들로 하여금 중생하고, 물세례를 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대로 방언을 말하며 성령침례를 받는 오순절적 경험에 이르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교단을 “오순절교회”라고 명명했다.
팔선과 럼시가 교단명을 “오순절교회”라고 붙인 이유는 또한 “교회조직”에서도 드러난다. 그 신청서는 4장 교회의 조직에서 “집사”의 자격을 제시했다. 그 자격은 “잘 밋고 聖神의 洗禮를 받은 者 中에셔 品行이 方正하고 他人의게 稱讚을 받는 者”였다. “성신의 세례를 받은 자”라는 조건은 집사의 자격뿐만 아니라, 선교사, 목사, 전도사에게도 요구되는 것이었다. 이렇듯 팔선과 럼시가 교단을 “오순절교회”라고 명명한 것에는 방언을 동반하는 오순절적 성령침례를 받은 사람들만을 그 교단 교회의 직분자들로 세우겠다는 그들의 뜻이 담겨있었다.
IV. 미 하나님의 성회의 전통 안에 있는 교단 명칭
팔선과 럼시가 교단 명칭을 조선사람들로 하여금 성령침례를 받게 하기 위해 “오순절교회”라고 칭한 것은 방언을 그 증거로서 동반하는 성령침례를 강조하는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전통 안에 있는 것이었다. 1914년에 설립된 미 하나님의 성회 총회는 2년 후인 1916년에 “근본 진리 선언”(A Statememt of Fundametal Truths)를 승인했다. 그 선언의 5항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The Promise of the Father)이었다. 그 항목은 “모든 신자들”에게는 성령침례를 “받을 권리가 주어졌고, 그래서 모든 신자들은 그것을 열렬하게 기대하고, 열심히 구해야만 한다”고 썼다.
모든 신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성령침례라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받을 권리가 주어졌고, 그래서 그것을 열렬하게 기대하고, 열심히 구해야만 한다. 이것은 초대교회에서 모든 신자들의 정상적인 경험(the normal experience)이었다. 성령침례와 함께 삶과 봉사를 위한 능력이 부여되며, 은사들과 그 사역에서 그것들의 사용들이 부여된다. 누가복음 24:49; 사도행전 1장 4절, 8절; 고린도전서 12:1-31.
그리고 그 진술문은 6항은 다음과 같이 쓴다.
성령과 불 침례의 온전한 달성”(The full consummation of the baptism of believers in the Holy Ghost and fire)은 사도행전 2장 4절에서처럼 하나님의 성령께서 말하라고 주시는 대로 방언을 말함이라는 최초의 표적(the initial sign of speaking in tongues)에 의해 나타난다. 이 놀라운 경험은 중생의 경험과 구분되고 중생의 경험에 후속한다.
미국 하나님의 성회는 모든 신자들은 방언이 그 최초의 표적으로 동반되는 성령과 불침례를 받을 권리가 있고, 또한 그 경험을 열심히 구해야 한다고 진술했다.
팔선과 럼시 등이 조선에 세운 “기독교 오순절 교회”가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전통 안에 있었다는 것은 팔선이 미국 “하나님의 성회” 소속 사역자라는데서도 드러난다. 그런 그녀의 소속은 그녀의 “안수례증”(按手禮證)에서 드러난다. “기독교 오순절교회”의 첫 포교관리자 팔선이 신청서에 첨부했던 그녀의 “안수례증”은 그녀가 “신의 교회(神-敎會)” 회원이라고 적었다.
위 자는 신의 교회(神-敎會)(히 12:23) 회원으로 하나님(神)의 은덕(賜物)과 그리스도(기독)의 예복음(禮福音) 전도에 대한 소명을 받았음을 표시하는 바 기도와 안수를 정식으로 성별함으로 이에 우리들이 서명하고, 복음의 사역자로 그가 일반 복음 전도에 관한 모든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승인함. 서력 1930년 7월 23일
그녀의 “안수례증” 자체가 영어본이 일본어로 번역된 것이기 때문에 “神-敎會”도 역시 영어로부터 번역된 것이다. 그렇다면, “神-敎會”에 해당하는 영어는 무엇이었을까? 직역과 의역을 염두에 두며 추리해 보자. 먼저 “神-敎會”를 영어로 뒤집어 직역한다면, “Church of God”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재번역은 맞는 것일까? 검증해 보자. Church of God은 실제로 미국에서 1886년에 세워져 지금까지도 존재하는 교단이다. 또한 Church of God은 오순절적 교단이다. 그 교단은 “성령께서 말하라고 주시는대로 방언으로 말하는 것, 그리고 방언이 성령 침례의 최초의 증거라는 것을 믿는다”고 진술한다. Church of God은 기독교 오순절교회와 그 강조점에서 서로 유사성을 갖는다.
그렇다면, 팔선은 Church of God 소속이었을까? 그리고 팔선이 세운 기독교 오순절교회는 Church of God의 성격을 갖는 것이었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안수례증”을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증서는 “神-敎會” 옆에 괄호치고 “ヘブル 十二, 二十三”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 부연 설명을 번역하면, “히브리서 12:23”이다. 이 부연 설명은 “神-敎會”의 성경적 근거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Church of God 교단이 교단 명칭의 근거로 삼는 성경 본문과 팔선의 안수례증에 등장하는 “神-敎會”의 근거로 삼은 성경 본문을 대조해보면, 두 교단 사이의 유사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미국 Church of God는 그 “정관”(bylaws) 제 1 조에서 그 교단의 공식 명칭을 “Church of God”이라고 명기하고 그 옆에 그 명칭의 근거가 되는 성경 본문을 제시한다. 그 성경 본문은 고린도전서 1장 2절이다. 그 본문을 킹제임스역본(KJV)은 “Unto the church of God which is at Corinth . . . 라고 쓴다. “The church of God” 교단은 고린도전서 1장 2절을 근거로 삼아 그 교단 명칭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팔선의 “안수례증”에서는 “神-敎會”라는 교단 명칭의 근거 본문으로 히브리서 12장 23절이 제시되었다. 킹제임스역본(KJV)은 그 본문을 “To the general assembly and church of the firstborn, which are written in heaven, and to God the Judge of all, and to the spirits of just men made perfect”라고 쓴다. 그 본문에는 “church”라는 단어도 등장하지만, 그 단어 앞에는 “the general assembly”라는 문구가 있다. 그 본문에서 “church of God”라는 명칭을 뽑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The church of God” 교단은 근거 본문으로 히브리서 12장 23절을 채택하지 않고, 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고린도전서 1장 2절을 택했다. 그러므로 “神-敎會”가 “The Church of God”의 번역어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미국의 오순절적 교단들 중에서 히브리서 12장 23절을 그 교단 명칭의 근거로 삼은 교단이 있을까? 그 교단은 1914년에 창립총회를 연 미국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였다. 그 창립총회는 “헌법 전문과 결의”(Preamble and Resolution of Constitution) 중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몸인,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the GENERAL ASSEMBLY (Church)”에 그 어떤 분열(분파주의)도 없어야 한다고 명령하셨다 (히 12:23). 우리는 (하나님의 몸인) “GENERAL ASSEMBLY OF GOD”의 지체들임을 인정한다.
“Assembly of God”이라는 용어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복음전도에 열심이었던 지역 교회들이 보통 사용하던 것이었으며, 오순절운동에서도 사용되었다. 오순절 진영 안에서 “Assembly”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찰스 F. 파함(Charles F. Parham)이었다. 파함은 잠시 담임목사로 섬기던 한 감리교회에서 나온 후 초교파적인 오순절운동을 펼치면서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거나 기성 형태의 교단을 세우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1906년 3월경에 각 지역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평일에 기도와 선교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30명 미만이 만나는 “Assemblies,” 또는 “Assembly meetings”을 구성하게 했다. 그리고 각 성회를 지역 장로에게 맡겼다. 그리고 파함은 세 개의 주를 묶어 한 관리자(director)를 임명했으며, 사도적 신앙 운동의 총무(General Secretary of the Apostolic Faith Movement)를 세웠다.
“Assembly”는 윌리엄 시무어(William J. Seymour)가 이끌던 아주사 선교회에서도 등장했다. 뉴욕에 살던 존슨(Andrew Johnson)이라는 사람은 스페인을 거쳐 이스라엘로 선교를 떠나면서, 1906년 10월에 사도신앙지에 편지를 보냈다. 그는 그 편지에서 아주사 선교회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을 “the whole assembly”라고 칭했다. 사도신앙지는 구독자들에게 아주사 선교회 그리고 관계된 모든 신앙인들을 “assemblies” 또는, 아주 놀랍게도, “the assembliy of God”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파함은 시무어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끄는 아주사 선교회로부터 파생된 단체들을 “Pentecostal Assemblies”라고 칭하기도 했다. 실제로 시무어의 사도신앙지는 1907년 4월 호에 뉴욕시에 있는 스프링 스트리트(Spring St.)에 있는 “The Pentecostal Assembly”에 대한 글을 싣기도 했다.
더함(William H. Durham)도 “Assembly”란 명칭을 사용했다. 더함은 성결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을 때 시카고에 세운 선교 센터의 이름을 “The North Avenue Full Gospel Mission”이라고 불렀었다. 그런데 그가 오순절주의에 뛰어든 후에는 그 명칭을 바꾸었다. 당시 더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pastor of the assembly”라고 불렸다. 그가 편집했던 오순절 소식지는 한 스웨덴 침례교회의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성령침례를 받고 “Pentecostal Assembly”로 바뀐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더함은 시카고에 세운 그리고 후에 로스앤젤레스로 옮긴 오순절적 선교회의 이름을 “The Full Gospel Assembly”라고 정했다. 그 선교회의 시카고 건물을 담은 한 사진 속의 간판에는 “North Ave. Full Gospel Assembly”라는 명칭이 담겨있었다.
핫 스프링스에서 열렸던 미 하나님의 성회 창립총회가 “Assemblies of God”이라는 용어를 승인하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던 사람은 레오나르드(T. K. Leonard)였다. 레오나르드는 그 창립총회가 열리기 2년 전인 1912년 4월에 “The Assembly of God”을 오하이오주 핀드레이(Findlay, Ohio)에 세운 교회명으로 사용했었다. 이 교회는 Findlay First Assembly of God이란 이름으로 현존하고 있다.
창립총회의 실행 위원회(Conference Committee)는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 “그리스도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 in Christ), “사도적 믿음 선교회”(Apostolic Faith Mission), “순복음 오순절 선교회”(Full Gospel Pentecostal Mission) 등등 당시에 존재하고 있던 오순절적 단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명칭에 대해 논의했다. 국제신학연구원은 창립총회에서 그런 다양한 명칭들이 교단 명칭으로 제안되었었다고 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고려해 볼 때 그런 명칭들이 제안되었다기 보다는, 그런 명칭들을 사용하던 단체들을 통합할 수 있는 큰 우산 같은 명칭에 대한 토의가 있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첫째, 우리는 미국, 캐나다, 그리고 해외 여러 나라들에 존재하는 지역 Churches of God in Christ, Assemblies of God, 그리고 다양한 Apostolic Faith Missions and Churches, 그리고 Full Gospel Pentecostal Missions, 그리고 그 같은 믿음을 표명하는 Assemblies의 (성령 침례를 받은) 오순절적 성도들의 General Council임을 인정한다.
당시 벨(E. N. Bell)은 Word and Witness에 통합 명칭은 반드시 성경에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Church of God in Christ” 또는 “Assembly of God”을 제안하는 글을 싣기도 했다. 이 글에서 벨은 윌리엄 더함(Willaim H. Durham)이 사역명칭을 “Full Gospel Mission”이라고 사용하고 있을 때 자신이 Mission보다는 “Assembly”가 더 좋다고 제안했고, 더함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레오나르드는 실행위원회에 “히브리서 12장 23절”을 근거로 “Assemblies of God”이라는 명칭을 제안했고 그 안이 채택되었다. 그리고 레오나르드에 의해 총회원들에게 그 안이 낭독되었고, 총회는 그 안을 통과시켰다. 아마도 실행위원들과 총회원들은 벨이 Word and Witness에서 제안했던 “Church of God in Christ”의 대부분은 이미 다른 교단이 사용하고 있는 명칭이었으므로, 새로운 교단의 명칭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神-敎會”가 “Church of God”의 직역이 아니고 “Assemblies of God”의 의역어인 것은 두 교단의 교회 의식의 차이에서도 드러난다. “The Church of God”은 그 교단 교회의 의식에 침례와 주의 만찬 이외에 또 하나의 의식을 갖고 있다. 그 의식은 “세족식”이다. 그 교단은 “신앙 진술” 제 12 항에서 “우리는 주의 만찬과 세족식을 믿는다”라고 쓴다. 1912년 총회록이 제시하는 하나님의 교회의 교리들에는 3가지 교회의식들이 등장한다. “7. Water Baptism-Matt. 28:19, Mark 1:9, 10, John 3:22, 23, Acts 8:36-38. . . 14. The Lord’s Supper-Luke 22:17-20, 1 Cor. 11:23-26. 15. Washing the saints feet- John 13:4-17, 1 Tim. 5:9, 10.”
Church of God의 형성 이전에 오순절 진영에서 세족식을 교회의식으로 삼았던 단체는 윌리엄 시무어의 아주사선교회였다. 찰스 F. 파함은 교회의식으로서 “침례”와 “주의 만찬”을 시행했고, 더함도 “침례”와 “주의 만찬”을 시행했다. 시무어는 "침례"와 "주의 만찬"에 더하여 “세족식”을 자신이 편집한 “교리와 계율”의 “교회 의식”에 포함시켰었다.
그런데 “Assemblies of God”은 교회의 의식에 “침례식”과 “주의 만찬”만을 택했고, 세족식은 제외시켰다.
팔선의 “안수례증”의 “神-敎會”는 이런 두 교단 명칭의 근거 성경 본문, 역사, 그리고 교회의 의식의 차이들과 함께 묶어서 재번역된다면, “Church of God”보다는 “Assemblies of God”로 번역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 “안수례증”의 번역자는 “Assemblies”를 의역하여 “敎會”라고 번역했던 것이다.
이렇게 유추해보았을 때 팔선은 “神-敎會,” 즉 미국 하나님의 성회 소속 사역자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유추의 결과는 30년사 편찬위원회가 팔선의 소속에 대해 언급한 것과 일치한다. 그 위원회는 “팔선은 미국 A‧G에 속한 교인이었다”라고 썼다. 그런데 팔선은, 보다 더 정확하게는, 미국의 스칸디나비아계 “Independent Assemblies of God”(1973년 이후 the Fellowship of Christian Assemblies)의 중심교회인 “the Duluth Gospel Tabernacle”에 의해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Independent Assemblies of God은 1922년경 더함(William H. Durham)의 사역의 영향하에 있던 Elmer C. Erickson (1896-1980)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그 교단은 “미국 A.G”와 교리적으로는 거의 동일하지만, 각 지역교회의 독립성에 더 무게중심을 두었다. 이렇게 팔선은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맥락 안에 있었으며, 그녀가 “기독교 오순절 교회”라는 명칭으로 세운 교단 안에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전통이 오롯이 녹아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하나님의 성회”라는 교단 명칭의 최초기록은 팔선의 “안수례증”에서 “神-敎會”라는 번역어를 통해 이루어졌다.
V. 일본 교단 명칭과 구분된 교단 명칭
팔선과 럼시는 의식적으로 당시 일본의 오순절 교단이 사용하던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독자적인 명칭을 사용했다. 그 신청서의 연혁은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그 역사를 기술한다.
一千九百十二年에 宣敎師 주르겐센(ヅエルケソセソ)이 日本에 渡來하야 宣敎하니 敎會名稱은 聖書敎會라 하엿더라. 一九三十 年에 米國 위스콘신주 스피리아(スピリア) 市에서 여 宣敎師 오세덕, 파선 두 사람이 조선에 와서 선교 준비 중이다. 일본에 있는 聖書敎會와 교의신조는 동일하지만 미국에 있는 宣敎本部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相異한 故로) 조선에 교회를 설립함에 있어서는 일본의 성서교회와 전혀 관계가 없다.
그 신청서는 조선에 세우는 “기독교 오순절 교회”는 그 역사와 교의 신조는 동일하지만, 일본의 “성서교회”와 관계가 없다고 진술한 것이다. 즉, 팔선과 럼시는 의식적으로 일본의 “성서교회”로부터 독립된 교단을 설립하면서, 독립된 교단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
일본 오순절 역사학자 수주키에 따르면, 일본에서 1929년부터 1937년까지 “日本 聖書敎會”(Japan Bible Church)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그는 태평양 전쟁 발발전 일본 하나님의 성회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그 역사의 시기를 구분했다. 그 구분에 따르면, 두 번째 시기인 1929년부터 1937년까지 일본 하나님의 성회는 “일본 성서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오순절적 선교사들과 일본인 신자들은 1928년에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고, 1929년에 새로운 행정체계를 갖추고, “일본 성서 교회”라는 새로운 교단 명칭을 붙이고 첫 회의를 개회했다. 박성산은 1931년 3월 5일에 일본에 “나고야 조선 성서교회”(名古屋 朝鮮 聖書 教会, Nagoya Korean Bible Church)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런데 수주키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1920년에서 1929년까지 “일본 오순절 교회”(日本 五旬節 敎會, Japan Pentecostal Church)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었다. 일본 선교사 주르겐센(C. F. Juergensen)은 처음에는 “Full Gospel Chapel”과 “Assembly of God Kirisuto Kyokai”라는 명칭을 사용했었다. 그런데 1920년, 그는 “Pentecostal Church”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었다.
럼시와 팔선은 당시에 사용되고 있던 일본의 “성서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일본에서 그 이전 시대에 사용되었던 “오순절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들이 “성서 교회”라는 교단 명칭에서는 성경에 기록된 오순절날 방언을 말하며 시작된 교회, 그리고 그것을 이어받는다는 교단의 정체성을 찾아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럼시와 팔선이 공식 교단 명칭을 위해 “오순절 교회” 앞에 “기독교”를 붙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들은 럼시가 그랬던 것처럼 “일본 오순절 교회”와 구별하기 위해 “조선 오순절 교회”를 교단 명칭으로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당시에 한국에서 교단 명칭에 “基督敎”라는 단어와 “朝鮮”이라는 두 단어를 사용한 교단은 감리회였다. 감리회는 자기 교단에 “基督敎 朝鮮 監理會”라는 명칭을 붙였다. 럼시와 팔선은 공식 교단 명칭에 “기독교”와 “조선”이라는 두 단어를 다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럼시는 자기 선교사역 명칭에 “조선”이라는 말은 사용했지만, 럼시와 팔선은 교단 명칭에 “조선”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고 “기독교”라는 단어는 사용했다.
교단 명칭에 위치를 나타내는 “조선”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던 이유는 아마도 당시에 “일본 오순절 교회”가 사용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오순절 교회”라고만 표기를 해도 일본에 있는 오순절적 교회와 조선에 있는 오순절적 교회를 어느 정도 서로 구분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 같다. 그리고 “기독교”라는 말을 “오순절 교회” 앞에 붙임으로써, 일본의 오순절적 교회와 점 더 확실하게 구분시키려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럼시는 사적으로는 가장 확실히 구분시키기 위해 “조선”이라는 말을 “오순절 교회” 앞에 덧붙였을 것이다.
그러나 파슨스와 럼시가 일본의 오순절교단으로부터 독립적인 명칭을 조선에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오순절교회라는 교단은, 실질적으로는, 조선에서는 독립적인 교단을 이루었지만, 일본의 교단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독립적이지 못했다. 1934년 6월 파슨스(팔선)의 갑작스런 귀국으로 기독교오순절교회의 포교관리자가 공석이 되었고, 그 뒤를 이을 사람을 선정해야 했다. 1938년에 이 문제를 위해 영국과 아일랜드 하나님의 성회 부총회장 도날드 기가 한국에 와서 상황을 파악한 후 다음과 같은 보고를 총회에 보고했다.
나는 H.M.R.C.가 클레멘트 군에게 한국으로의 여행에 필요한 경비를 제공해 줄 것을 제안한다. 일본과 한국은 정치적으로 연합되어 있고, 그래서 일본과 한국은 선교 사역을 위해 한 지역 선교지를 형성한다(Japan and Korea are united politically, and they make one logical Field for missionary work). 지금 클레멘트 군은 그런 선교지를 위한 우리의 선교 지부장으로서 손색이 없고, 나는 그런 조정은 아주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교단은 1939년에 자기 교단 출신 영국인 선교사들이었던 임시 포교관리자 메레디트 그리고 베시에게 공식 선교사 증서를 발부하는 것을 보류했다. 그 총회는 클레멘트의 보고서가 올라오기까지 더하여 메레디트와 베시가 한국어를 확실하게 익힐 때까지 증서발급을 미룬다고 결정한 것이다.
한국에 있는 릴리안 베시 양과 엘시 메레디트로부터 서신이 더 왔다. 이에 총회는 클레멘드(Mr. J. J. Clement)의 보고가 오기까지 그리고 그 두 여성이 한국어를 확실하게 익힐 때까지 결정을 보류하기로 동의했다.
이런 이유는 표면적이었을 것이다. 드러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도날드 기의 보고에도 나타나는 것처럼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것을 고려하여 일본지부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한국 선교지에 부여하기가 어려웠던 것이었을 것이다. 영국 하나님의 성회 일본지부장 클레멘트와 함께 미국 하나님의 성회 일본지부장 바르트(Norman H. Barth)를 조선에 파송했던 미국 하나님의 성회도 1939년에 미국인 럼시를 공식 선교로 인정하는 것을 보류했다. 기독교 오순절교회는 1930년대 말부터 실질적으로는 미국과 영국 하나님의 성회의 일본지부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영국과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공동 관리하에 있던 조선 지방회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VI. 나가는 말
이상과 같이 1932년부터 1949년까지 사용된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의 교단 명칭에 대해 살펴보았다. 당시 공식 교단 명칭은 “기독교 오순절 교회”였으며, 팔선 등 선교사들은 그 명칭 아래서 조선인들에게 방언을 동반하는 오순절적 성령침례를 받게 하기 위해 분투했으며, 이는 방언을 성령침례의 최초의 증거라고 선언하는 “神-敎會,” 즉 미 하나님의 성회의 전통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교단명칭은 일본 오순절 교단인 “日本 聖書敎會”와는 별개로 독립적인 것이었다.
현재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의 문서들은 일제강점기의 교단 명칭을 “조선 오순절 교회”라고 부르는데, 그 명칭의 기원은 메리 C. 럼시(Mary C. Rumsey)였다. 그런데, 럼시가 사용했던 “기독교 조선 오순절 교회”는 공식 교단 명칭은 아니었고, 1932년 11월 8일에 팔선이 조선총독부에 제출한 “포교관리자 설치 신청서”에서 등장하는 “基督敎 五旬節 敎會”가 공식 명칭이었다. 그리고 럼시가 사용했던 “기독교 조선 오순절 교회”와 팔선이 사용한 “기독교 오순절 교회”는 서로 다른 두 단체들에 대한 상이한 명칭은 아니었다.
“오순절교회”라는 교단 명칭에 담겨진 뜻은 그 신청서에 기입된 “교단 연혁,” “교의 신조,” “교회 회원,” “교회 조직” 등에서 특별히 강조된 “성령침례”에서 드러난다. 그 연혁은 “오순절교회”는 오순절에 방언을 말하며 성령 침례를 받으며 설립된 교회(행 2)를 이어받아 창립되는 교파라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교단의 “교의 신조”의 “성령침례를 믿는 다”는 조항, “교회 회원”의 “성령침례자,” 그리고 “교회 조직”에서 집사, 선교사, 목사, 전도사의 조건으로 제시된 “성령침례 받은 자” 등에서 팔선과 럼시 등이 교단 명칭을 “기독교 오순절 교회”라고 정했던 뜻이 나타난다.
팔선과 럼시가 조선인들로 하여금 성령침례를 받게 하기 위해 교단을 “오순절교회”라고 칭한 것은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전통 안에 있는 것이었다. 미국 하나님의 성회는 1916년에 모든 신자들에게는 성령과 불침례를 받을 권리가 부여되어 있고, 그래서 모든 신자들은 성령침례를 열성을 다해 추구해야한다고, 그리고 “성령침례의 온전한 달성”이라는 문구가 담긴 신앙 진술문을 발표했었다. 팔선이 신청서에 첨부했던 그녀의 “목사안수증”은 그녀가 “神-敎會 회원”이라고 적었는데, “神-敎會”는 히브리서 12장 23절을 근거로 채택된 “Assemblies of God”를 의역한 말이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팔선은 미 하나님의 성회 계열 사역자였다. 그래서 그녀는 교단의 연혁, 교의, 회원, 조직에서 성경에 기록된, 오순절날 임한 방언을 동반하는 성령침례를 가장 중요하고 다른 교파들과 구별되는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렇게 “기독교 오순절교회”는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전통 안에서 설립되었다.
팔선과 럼시는 의식적으로 당시 일본의 오순절 교단이 사용하던 “성서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오순절교회”라는 독자적인 명칭을 사용했다. 일본에서 1929년부터 1937년까지 “日本 聖書敎會”(Japan Bible Church)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그런데 1920년에서 1929년까지는 “일본 오순절 교회”(日本 五旬節 敎會, Japan Pentecostal Church)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었다. 그들이“성서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독자적인 명칭을 사용한 이유는 “성서 교회”라는 교단 명칭에는 성경에 기록된 오순절날 방언을 말하며 시작된 교회, 그리고 그것을 이어받는다는 교단의 정체성을 담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조선의 “기독교오순절교회”라는 독립적인 명칭에도 불구하고, 이 교단은 1930년대 말부터 미국과 영국 하나님의 성회 입장에서는 두 교단의 일본지부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한 지방회였다라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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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의 교단의 명칭은 세 시기에 걸쳐 바뀌어 왔다. 첫 시기는 1933년부터 1949년까지였다. 두 번째 시기는 1950년부터 1952년까지였다. 그리고 세 번째 시기는 1953년부터 현재까지다. 본 연구는 그 첫 시기인 1933년부터 1949년까지의 교단 명칭을 추적해 보고, 그 명칭에 담긴 의미들을 되새겨 본다. 럼시가 사적으로 사용했던 “기독교 조선 오순절 교회”는 공식 교단 명칭이 아니었다. 공식 교단 명칭은 팔선이 1933년 교단 등록에 사용했던 “基督敎 五旬節 敎會”(Korea Pentecostal Church)였다. 그 등록 서류에 따르면, “기독교 오순절 교회”의 기원은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첫 오순절 교회였다. 럼시와 팔선 등 오순절적 선교사들은 그 명칭 아래서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에 방언을 말하며 탄생한 첫 교회를 따라 그 교회의 신조 제 7 항에 “성신의 세례”를 넣었다. 또한 그들은 그 명칭 아래서 교회 회원의 분류 중에서, 방언을 말함이라는 최초의 표적으로 증명되는, “성령세례자”라는 카테고리를 마련했고, 임직자의 자격 등에서 “성령의 세례를 받은 자”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이는 한국인들에게 방언을 동반하는 오순절적 성령침례를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뜻과 노력은 방언을 성령침례의 최초의 증거라고 선언하는 “神-敎會,” 즉 미 하나님의 성회의 전통 안에서 수행되었다. 그리고 그 “기독교 오순절 교회”라는 교단 명칭은 일본 오순절 교단인 “日本 聖書敎會”와는 별개로 독립적인 것이었다. 이런 독립적인 명칭은 그들이 한국에서 원색적으로 오순절적인 신앙을 전하기 위해 택한 것이었을 것이다.
Abstract
A Study on the Name
of The Assemblies of God of Korea Between 1933 to 1949.
Lee, Chang-Soung(Ph.D.)
Assistant Professor, Systematic Theology
Korea Christian College
Republic of Korea
The formal name of The Assemblies of God of Korea has been changed three times. The first name was used from 1933 to 1949. The second name was used from 1950 to 1952. The third name has been used from 1933 to present time. This study is focusing on the first name. “基督敎 朝鮮 五旬節 敎會”(Korea Mission of the Pentecostal Church) used by Mary C. Rumsey was not the formal name but a private name. The formal name was “基督敎 五旬節 敎會”(Christian Pentecostal Church, literal translation of this writer). In 1933, it was used by Gladys Margaret Parsons for registration of the denomination. According to the documents, the origin of Christian Pentecostal Church was the first Pentecostal church in Acts 2. Under the formal name, Rumsey, Parsons, and other Pentecostal missionaries inserted an article, “The baptism of the Spirit,” accompanying the initial evidence, speaking in tongues, as the 7th of the 10 articles of the creed of the denomination. They made a category, “聖神洗禮者”(Spirit Baptized person) for the kinds of the members, and present it as the most important condition for the offices; missionary, pastor, and deacon etc., of the church. These were to let Korean people receive Pentecostal Spirit Baptism. Such their intention and effort were performed in the tradition of “神-敎會,” a translation of “Assemblies of God (USA)” which has been declaring that speaking in tongues is the initial evidence of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And the formal name, “基督敎 五旬節 敎會”(Christian Pentecostal Church) was independent from the name of Japan Pentecostal denomination at that time, “日本 聖書敎會”(Japan Bible Church). Such an independent name was chosen for more ardent propagation of Pentecostal faith to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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