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는 사랑은
--시몬 베드로의 고백--
이 창 승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칼을 빼들어
당신을 잡으려는 자들을 쳤을 때
오히려 저를 나무라셨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믿는 열정은
적이 아무리 많았다 할지라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당신을 건져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미 맹세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당신을 버린다 할지라도
당신을 따를 것이라고 . . .
당신이 왕만 되신다면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라면
이 생명을 아끼지 않겠다고 . . .
그러나 당신은 이 다짐을
모래성처럼 허물어뜨리시고
마땅히 받으실 보호를 외면한 채
어둠 속으로 끌려 가셨습니다.
가야바의 뜰에서 추웠던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습니다.
추위와 안타까움, 두려움의 뒤범벅을
숯불로 달래려 할 때
그래도 저에게는 한 가닥 희망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불꽃처럼 널름대는 질문들을 피하다가
닭울음 소리 칼날되어 마음에 꼿쳤을 때
저는 산 모양이나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저의 사랑이 없습니다.
저의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리 물으십니까?
당신을 사랑하느냐구요?
구지 물으신다면 한 가지
지금, 여기 영광의 몸으로 계신 당신이
사망도 가두지 못했던 당신이
침 뱉음과 조롱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나무아래 달려 쏟으신
그 물과 피가 저에게 생생한 것
저의 마음에 박히어 생생한 것
그것은 말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사랑이 남아 있습니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
남아 있습니까?
저의 사랑은 없습니다.
저의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제 입술이, 혀가 제 사랑을 죽였습니다.
있다면 당신이 저에게 베푸신 사랑
생명을 아끼지 않으신
그 사랑이 있습니다.
제 사랑의 샘은 바닥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샘물, 사랑의 샘물은
여전히 저의 마음에서
솟아 나옵니다.
당신이 아십니다.
저에게 있는 사랑은 당신의 사랑입니다.
1991년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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