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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 조용기목사 신학

바람직한 오순절 성경해석과 영산의 성경해석 비교연구

한오신 2017. 12. 11. 23:12

영산 조용기 목사

 

 

오순절성경해석과영산의성경해석(이창승).pdf

 

 

 

바람직한 오순절적 성경해석과

영산의 성경해석 비교 연구

 

이창승

순복음총회신학교, 조직신학, jesusgate@daum.net

    

제28회 영산신학세미나, 2017. 12. 11

 

 

 

I. 들어가는 말

 

    필자는 지난 100여 년간의 오순절주의의 성경에 대한 해석의 흐름을 나름대로 세 가지로 유형화하여 정리하고 평가한 바 있다. 그 연구는 오순절주의 안에서 적합하지 않은 성경해석법에 의해 성경에 기록된 경험들이 그 역사성을 박탈당하고 있으며, 현대 독자들이 성경의 경험들을 재경험해야만 한다는 오순절주의의 기초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드러냈었다. 그 후 오순절주의의 근간을 보존하고, 나아가 건강하게 육성시키기 위한 바람직한 오순절적 성경 해석의 요소들을 탐구했었다. 그 탐구에서 기록 이전 경험과 기록된 경험과 현대 독자의 경험을 일치시키는 일치 경험적 해석,” 반계몽주의적인 거듭난 이성에 의한 해석,” “성경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는 해석,” 반고등비평적/반역사비평적인 역사적 해석,” “은사지속론적인 정경적-역사적-문법적-신학적 해석을 그 기본 요소들로 제시했었다.

     본 연구는 필자가 제시했던 바람직한 오순절적 성경해석과 영산 조용기 목사의 성경해석을 비교한다. 머래이 래가 잘 파악한 것처럼, 영산의 사역의 역사는 성경해석의 역사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산 스스로도 나의 지난 54년간의 사역을 뒤돌아보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영산의 풍성한 목회적 열매들은 성경에 대한 해석적 씨름의 산물인 것이다. 그런데 영산의 성경해석은 과연 필자가 제시했던 바람직한 오순절적 성경해석의 요소들을 충족시키는 것인가? 거꾸로 묻자면, 그 바람직한 오순절적 성경해석의 요소들은 목회적 현장에서 작동될 수 있는 것이어서 목회적 열매들을 풍성히 맺어온 영산의 성경해석에서 그 흔적들을 찾을 수 있는 것인가? 본 연구는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바람직한 오순절적 성경해석과 영산의 성경해석을 비교해볼 것이다. 그리고 이 비교는 영산 조용기 목사의 성경해석은 필자가 제시한 바람직한 오순절적 성경해석의 요소들을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을, 역으로 바람직한 오순절 성경해석의 요소들은 목회현장에서 작동될 수 있는 것임을 드러낼 것이다.

 

 

 

II. 바람직한 오순절적 성경해석의 요소들과 영산의 성경해석

 

A. 일치 경험적 해석

 

     필자는 바람직한 오순절 해석의 첫 번째 요소로서 일치 경험적 해석을 제안했다. “일치 경험적 해석이란 파함의 프리모던/전 비평적 오순절 해석처럼 성경에 기록되기 이전의 오순절 경험의 역사성과 성경에 기록된 오순절 경험의 역사성(historicity)을 인정하고, 그 두 경험들과 현대 독자의 오순절적 경험을 일치시킬 수 있는 해석이다.

 

기록되기 이전 오순절 경험 = 기록된 오순절 경험 = 현대 오순절 경험

                     Pre-written Pentecostal Experience  =   Written Pentecostal Experience = Present Pentecostal Experience

 

     영산의 성경해석은 기록된 경험이 기록이전 경험을 오류 없이 반영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기록된 경험을 현대에 재경험시키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김희성에 따르면, 영산은 성경의 역사적 무오성을 확신하고 있지만, 그 역사적인 사실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그 본문의 현재를 향한 메시지에 관심을 집중한다. 영산에게 성경은 결코 역사적 사실로 화석화되어버린 책이 아니며,하나의 역사적 기록물로 던져져 버릴 수는 결코 없는 것이다. 김희성이 잘 간파한 것처럼, 영산의 성경론에 있어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그것이 이론으로만 끝나지 않고 실제와 고리처럼 아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영산의 로고스-레마론에 집약된다. 영산은 객관적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인 성경을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레마)으로서 주관적으로 각 개인의 삶 속에서 실제가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했다. 신학의 전통에서 기록된 말씀은 성경본문을 의미하며, 선포된 말씀은 설교자의 입에서 선포된 말씀을 가리킨다. 그런데 영산은 선포된 말씀에서 생각을 달리한다. 영산에게 있어서 선포된 말씀은 신앙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설교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 실행되는 거룩한 읽기(lectio divina)(레마)의 주관적 또는 실존적 체험을 포함한다. 영산의 이런 체험적 성경해석은 박명수가 연결시키는 것처럼 한국교회의 기본 성격인 미국의 []복음주의를 계승한 체험적인 기독교와 맥을 같이한다.

     영산에게 역사 속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기록이전 경험과 무오하게 그 역사성을 보존하며 기록된 경험이 오늘날 현재 독자에게 경험될 수 있는 가능성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하나님께 있다. 영산은 살아 계셔서 현재에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언급하고, 하나님과 일체가 되는 성경도 현재에 역사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셔서 항상 현재에 계시고, 모든 과거와 미래가 다 그 안에 존재하고, 또 그 안에 진행되고 있는 데, 성경도 바로 그와 같다. 머래이 래가 파악한 것처럼, 영산의 성경해석은 성경본문을 하나님과 만나는 매체”(the vehicle to encounter God)로 삼는다. 어제도 살아계시고, 오늘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성경을 통해 지금 만나게 하려 한다. 영산에게 성경을 통해 만나는 하나님은 과거에 기록되기 이전 경험을 일으키신 분이며, 그 경험을 기록하게 하신 분이시며, 현재에 독자들에게 기록된 경험을 재경험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영산의 해석이 세 경험을 일치시킬 수 있는 것은 그의 해석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위격들 중에서 특히 성령의 영감과 조명 등 연속적 사역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영산에게 성경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감 받은 기록자들에 의해 써진 하나님의 계시이다. 또한 영산은 사람이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려면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영산에게는 성경이 과거에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성경의 특성과 그러한 성경은 현재에 성령의 조명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성령 해석의 원리가 서로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다. 영산신학의 두 기초는 성경론과 성령론이다. 영산의 성경론은 김희성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성령론적 성경론이라고 할 수 있다.

     영산의 성경해석은 이렇게 기록되기 이전의 경험의 사실적 역사성을 견지하면서, 기록된 경험의 역사적 무오성을 인정하며, 현재 독자로 하여금 성령 하나님의 조명을 따라 기록된 경험을 재경험하게 하는 해석, 즉 기록 이전 경험과 기록된 경험, 그리고 현재 독자의 경험을 일치시키는 해석이다. 그러므로 영산의 성경해석은 필자가 제시한 바람직한 오순절 성경 해석의 첫 번째 요소를 충족시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B. 거듭난 이성 / 반계몽주의적 이성에 의한 해석

 

     필자가 바람직한 오순절적 성경 해석의 두 번째 요소로 제시한 것은 거듭난 이성/반 계몽주의적 이성에 의한 해석이다. 역사 비평은 칸트의 분열된 이성으로 성경을 봄으로써 순수 이성으로는 성경에서 초월적인 것을 제거하고 성경을 신화로 만들려 하였으며, 실천 이성으로는 그 제거된 자리에 허구적으로 요청하여 스스로 창조해낸 비신화화 된 신의 말씀, 즉 자신의 윤리 의식 등 다양하고 잡다한 것들을 투사하려 했다. 칸트의 이성은 기록되기 이전의 경험과 기록된 경험을 허구로 만들기 때문에, 기록이전의 경험과 기록된 경험을 다르게 만들고, 기록된 경험과 현대 독자의 경험을 다르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현대의 독자들이 그 경험을 동일하게 경험할 수 없게 만든다.

 

기록되기 이전의 경험 기록된 경험(허구) 현대 독자의 경험

 

    오순절해석을 위해 칸트의 계몽주의적 이성관을 버리고, 절대적 초월성을 인정하고 인식할 수 있는 이성관을 다시 세워야 한다. 성경을 기록했던 누가나 바울 등 성경 저자들, 어거스틴, 칼빈, 웨슬리의 이성이나 계몽주의자들의 이성은 똑같은 이성이다. 그러나 양자가 가졌던 이성관은 서로 다른 것이었다. 문제는 이성이 아니라 인식론을 결정하는 이성관이다. 오순절 해석에 적합한 이성은 거듭난 이성이다. 성경은 저자들이 성령에 대한 경험을 성령론적 언어로 기록한 것이므로,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필수조건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아시는 성령에 의한 인간의 존재론적 재창조(중생)이며 중생함으로써 창조주와 피조물간의 가교가 세워지는 것이다. 이 가교는 성령의 역사다. 독자가 사도적 경험과 동일한 것을 경험으로 성령과 대면할 때, 그 사도적 증언을 진정한 실존적 견지에서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현상은 현 독자와 성경을 기록했던 사도적 신앙 공동체와의 성령론적 연속성(pneumatic continuity)이다. 적절한 오순절 성경 해석을 위해 절대적인 초월의 역사로의 개입을 인정했던 성경 저자들과 어거스틴, 칼빈, 웨슬리 등등의 거듭난 반 계몽주의적 이성”(born again, anti-Enlightenment reason)을 회복시키고 성숙시켜야 한다.

     영산은 인간의 이성이 죄로 인해 어두워진 것을, 그래서 이성은 계시 의존적이어야 함을 인정한다. 영산에게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결코 알 수 없으며, 자신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 영산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0-21)라는 말씀을 인용한다. 그는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에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은 바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고 교제하기에 적합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하여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끊어진 이후로는, 인간의 심령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인간은 결코 자율적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게 되었고, 세상 풍속을 좇고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는 진노의 자녀가 되었다(2:1-3).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말씀을 통하여 구원에 관한 계시를 주신다.

     영산은 거듭난 이성만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영과 혼을 구분하여 이해하고, 거듭나는 것은 영이며, 영이 성령으로 거듭난 후 혼의 두 기능(마음과 이성)의 하나인 이성에게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습득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산은 오직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계시의 올바른 수용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영산에 따르면, 이성이 하나님을 알려면, 먼저 영이 거듭나야 한다. “거듭난 영은 주인이 되어 이성을 주관하며, 성경을 통해 혼에게 하나님을 재교육시켜야 한다. 그럼으로써 이성은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게 된다. 거듭난 영의 주관을 받으며 하나님을 새롭게 알아가게 된 이성을 거듭난 이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영산에게 하나님의 계시인,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이성 스스로는 깨달을 수 없고, 성령의 감동, 즉 조명에 의해서만 깨달을 수 있다. 로고스에서 레마로 가는 여정은 이성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역사에 의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게 되는 과정이다. 레마를 눈으로만 보고 귀로만 듣는 말씀이 아니라 독자의 마음에 새겨지는 역동적인 말씀으로 본 것이다. 이것은 영산의 성경 해석은 계몽주의에 의한 모더니즘 이성의 지배를 받는 해석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영성적 해석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산은 계몽주의적 이성을 통해 성경을 역사비평하는 것을 비판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계몽주의적 이성에 의한 역사비평은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산에 의하면, 자유주의 신학이니 신신학은 인간의 이성과 과학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도전하고 있다. 영산이 이때 언급한 이성은 역사비평의 근저에 깔려있으며 그 전제가 된 칸트류의 계몽주의적 이성이라고 말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런 판단은 “1900년대에 들어와서, 독일로부터 시작된 이성주의와 과학주의적인 고등비평을 신학에 도입하여 성경을 역사적 과학적 철학적으로 철저히 비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은 18세기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강조하는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 신학입니다라는 영산의 언급들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렇게 영산은 죄로 인한 인간 이성의 무능력과 동시에 성령으로 거듭난 이성의 성령으로 인한 성경 이해 능력을 인정한다. 성경을 해석하는 영산의 이성은 죄로 인해 무능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으로 거듭난 영의 주관아래 성령의 감동과 조명으로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비 계몽주의적 또는 반 계몽주의적 이성이다. 그러므로 영산의 성경해석은 필자가 바람직한 오순절 성경 해석의 두 번째 요소인 거듭난 이성/반 계몽주의적 이성에 의한 해석을 충족시킨다.

 

C. 역사적 해석: 반고등비평적/반역사비평적 해석

 

     바람직한 오순절 성경해석의 세 번째 요소는 반역사비평적(anti-historical critical)/역사적 해석이다. 모더니즘과 근본주의자들이 역사비평”(historical criticism)역사적 해석”(historical interpretation)이라는 말을 할 때 역사”(history)라는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지만, 양자는 그 단어에 완전히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역사 비평의 역사는 성경이 기록된 배경 역사가 아니라, 에른스트 트뢸치(Ernst Troeltsch)가 역사비평 방법론의 근본원리를 대변하면서 공식화한 역사이다. 그 역사는 개연성만 가지는 것이며, 소위 현대인의 경험에서 유추된 것이고, 자연적인 법칙들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역사는 계몽주의적 이성을 사용하는 소위 현대인의 경험에서 유추된, 칸트적 이성을 통해 이해된, 초월적 개입이 거세당한 역사다. 칸트적 접근은 문서화된 역사적 사실들(historical events)을 외적 실재의 영역에서 제거해버리고, 문서화된 역사적 사실들을 일종의 허용되는 허구(permissible fiction)로 축소시킨다. 그래서 성경에 역사비평을 가하면, 성경의 서사들, 성경의 경험들의 역사성(historicity)은 제거되며, 역사성이 제거된 신화를 현대에 동일하게 재경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오순절주의는 역사비평을 거부하고 역사적 해석을 실시해야한다. 과거나 현재에나 하나님께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개인사와 보편사 속에서 행하실 것을 인정하는, “하나님에 대한 급진적 개방성”(radical openness to God)을 갖고 있는 진정한 오순절주의는 성경에 기록된 초자연적 경험들을 실제로 기록되기 이전에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이해하며, 그래서 역사비평을 거부해야 한다. 오순절주의자들의 성경해석은 모더니티의 근간인 고등비평에 저항했다.

     그런데 이런 오순절주의자들의 고등비평에 대한 반감과 저항은 오순절 운동의 창시자 파함의 유산이었다. 파함은 세 경험들의 일치성을 파괴하는 모더니즘을 추종하는 고등비평을 비판하고 거부했다. 파함에게 고등비평은 성경의 경험을 비역사적인 허구로 만듦으로써 성경의 경험과 현대 독자의 경험을 일치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파함은 이런 고등비평(higher criticism)마귀의 입으로 규정했다. 그에 따르면 마귀는 고등비평이라는 입을 통해”(through the mouth of higher criticism)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라는 상부 구조적 가르침(the superstructural teaching)을 치기 위해 요나의 이야기를 꾸며낸 신화라고 비웃는다. 이러한 파함의 고등비평을 배격하는 문자적인 해석은 오순절 운동의 교리적 기초를 세웠다.

     오순절 해석은 성경의 정경을 대상으로 삼으며 정경에 담긴 서사들의 역사성을 인정하는 역사적 해석을 포함한다. 양식사 비평, 자료 비평, 편집 비평 등의 역사 비평은 칸트적 이성에 따라 성경의 책들을 해체하여 소위 구전 단위나 자료 단위로 조각내고, 그 조각들에 서로 다른 저자와 기록 시기, 시대적 정황, 독자를 부여한다. 그러나 역사적 해석은 반 칸트적 이성에 따라 성경의 책들의 전통적인 저자와 기록 시기, 시대적 정황, 독자를 유지할 수 있으므로 정경을 조각내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면, 이사야서 문제에 있어서 역사 비평은 웃시야 왕 시대의 이사야가 미래의 느부갓네살의 이름까지 예언할 수 없다고 단정 지어 버린다. 그리고는 그 이름이 나오는 부분과 그 이전 부분을 나누어 각기 다른 저자들과 기록시기들을 설정해 버린다. 그러나 역사적 해석은 웃시야 시대의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에 의해 미래의 일을 영적으로 볼 수 있었으며, 그래서 미래에 존재할 사람의 이름까지 기록할 수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정경의 서사는 그 기록된 대로의 역사성을 유지한다.

     영산은 성경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시도한다. 영산의 역사적 해석의 시도는 크게 성경의 배경에 대한 연구와 한 주제나 모티브의 통시적/역사적 수용에 대한 연구로 대별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영산의 성경해석은 그가 성경의 역사적 배경을 연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영산의 이사야서 해석은 그가 이사야서에 대한 나아가 성경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시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사야 53장 설교에서 영산은 이사야가 예수보다 600-700년 전에 살았던, 즉 웃시야 시대에 살았던 선지자로 명시하며 이사야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고 이사야 53장의 설교를 이끌어 간다. 영산은 이사야서가 웃시야 왕 시절의 한 이사야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보고 역사적 연구의 결과를 설교로 풀어낸 것이다.

     둘째로, 영산의 해석은 한 주제나 모티브의 통시적/역사적 연구를 드러낸다. 왕대일은 영산의 간 본문적 해석을 전승사적 해석의 카테고리에 넣음으로써 영산이 성경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시도한다고 본다. 왕대일에 따르면, 영산의 설교에 녹아 있는 성경해석은 신학의 용어로 말한다면 전형적인 전승의 현상학”(phenomenology of tradition)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전승 쌓기나 간 본문적(intertextual) 해석이다. 영산의 구약해석은 구약성경이 기독교 신앙의 책인 것을 변증하고자 구약성경 속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적극 알레고리로 해석하지만, 영산의 성경해석은 성경신학 방법론에서 볼 때, 하나의 주제나 동기가 시대와 장소를 달리하는 신앙공동체에 따라서 어떻게 수용, 해석, 재해석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전승사적 모습을 띠고 있다. 그러나 왕대일에 따르면, 영산은 성경본문 이면에 깔려 있는 역사에 대한 사회학적 평가를 다루지는 않으며, 성경본문에 담긴 삶과 문화에 대한 비평을 하지 않는다. , 영산은 역사비평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한 본문의 의미가 시대와 정황에 따라서 어떻게 수용/재해석되는지를 단계적으로 제시한다. 영산은 특정 본문의 역사비평적 의미보다도 그 본문에 담긴 의미의 여러 층을 () 본문적으로 추적하는 작업에 능숙하다. 영산이 창세기 13:14, 15을 본문으로 삼아 행한 눈을 들어 바라보라는 설교는 그 한 예에 속한다. 설교 본문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는 말씀이다. 이 본문을 근거로 영산은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 전에 먼저 영적인 법칙을 하나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바라봄의 법칙이라고 설명한다. 창세기 13:14, 15의 바라봄이 아브라함의 바라봄(15:4,5), 야곱의 바라봄(30:37-43),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라봄(21:8,9),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바라봄(3:14,15)을 거쳐 광야 같은 인생길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높이 매달아 놓으신것을 바라보고 믿는 자는 죄 사함을 얻게 된다는 해설로 뻗어나간다. 따라서 영산의 한 주제나 동기의 간 본문적 해석은 역사비평에 따른 전승사적 해석이라기보다는 통시적/역사적 해석이라고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영산이 이사야의 저자를 웃시야 시대의 한 사람 이사야로 보는 것은 그가 역사비평과 정경비평을 거부하고 정경에 근거한 역사적 해석을 시도한다는 것을 대변한다. 차준희는 영산은 이사야서 1-66장을 이사야 한 사람의 것으로 보는 것 같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중립적인 분석에 의한 칭찬이 아닐 것이다. 차준희는 지금까지 이사야서를 세 부분으로 나누는 것이 소위 성서학계의 통례였다고 말한다. 즉 이사야서 1-66장은 이사야 1-39(주전 740-701: 예루살렘의 이사야, 이사야 4-55(주전 550-540; 2이사야) 그리고 이사야 56-66(주전 520-515: 3이사야)으로 나누어 분석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1980년대에 이르러 이사야서 연구는 그 방법론에 있어서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사야서를 세 권으로 나누기보다는 한 권으로 보고, 이 책의 최종 형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차준희는 지금까지의 이사야서 연구를 세 단계로 정리하여, “한 예언자에 관한 연구”(Ein-Prophet-Interpretation)로부터 세 권에 대한 연구”(Drei-Bücher-Interpretation)를 지나 한 권에 대한 연구”(Ein-Buch-Interpretation)로 전환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의 한 권에 대한 연구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차준희가 말하는 한 권에 대한 연구는 웃시야 시대의 이사야가 쓴 한 권을 의미하지 않는다. 차준희는 지금까지 이사야서에 대한 단일저자설을 주장한 적이 없고, 도리어 그는 다저자설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차준희는 성서는 한꺼번에 완성된 책이 아니라 오랜 전승의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구전(口傳)과 서전(書傳)의 과정을 거쳤고 오랜 경전화의 과정도 거친 책이다라고 말한다. 당연히 그의 이런 언급은 이사야서도 염두에 둔 것이다. 결정적으로 차준희는 영산의 설교에서 이사야서 사용이 40장에서 55장에 집중된다고 분석하고는 그 부분을 2이사야라고 분명하게 규정한다. 그의 이런 언급은 역사비평의 양식비평과 문서비평의 틀 안에 있는 것이다. 또한 그가 이사야서 연구를 동시대적인 세 흐름으로 정리하지 않고, 불가역적인 단계적으로, 시간상으로 펼쳐놓은 것은 한 예언자에 대한 연구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고 간접적으로 말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말한 한 권에 대한 연구한 예언자에 관한 연구를 기반으로 삼지 않고, “다 저자에 관한 연구를 기반으로 삼는다. 차준희는 다저자 이사야설을 기반으로 삼은 한 권에 대한 연구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연구는 양식비평, 자료비평, 편집비평 등 역사비평을 배제하지 않고, 본문의 형성 과정에 대한 연구로 받아들여 그 연구를 기반으로 삼고 본문에 대한 공시적 연구를 주장한 차일즈류의 정경비평을 의미하는 것이거나, 신문학비평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차준희의 영산은 이사야서 1-66장을 이사야 한 사람의 것으로 보는 것 같다는 언급의 저변에는 역사비평에 일방적으로 경도된 편파적 시각에 따른 비웃음이 놓여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산이 이사야서를 한 저자의 산물로 보고 해석을 시도하는 것은 영산의 성경해석이 정경을 해체하여 다저자를 배당하는 역사비평 해석도 아니고, 다저자를 기정 사실로 삼는 역사비평을 바탕으로 삼아 한권의 이사야서를 해석하려는 정경비평이나 신문학비평적 해석도 아닌, 역사비평을 거부하여 최종 본문을 찢지 않고 정경 그대로를 해석하는 역사적 해석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영산에게 기록된 경험은 역사 속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경험에 대한 것이며, 그래서 영산은 기록된 경험의 영감성과 완전 무오성이 아닌 절대 무오성을 인정하며 기록된 경험의 역사성을 바탕으로 성경을 해석한다. 한상인은 영산은 성경이 하나님의 완전하신 영감의 기록이라고 확신하지만, 그의 영감론은 기계적 영감론이 아닌 역동적 영감론이다라고 주장했다. 한상인은 영산이 성경은 여러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 영감을 받아 기록한 것이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오랜 기간 동안 완전 무오하게 보존되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사실 영산의 영감론은 역동적 영감론이 아니다. 역동적 영감론은 성경의 완전영감을 주장하는데, 여기서 완전이란 구원을 위한 것일 뿐, 역사적 진술과 과학적 진술에서의 오류를 인정한다. 에라스무스(Erasmus), 그로티우스(Grotius), 박스터(Baxter), 스트롱(Strong) 등이 주장하였다. 스트롱은 직관적 영감설에 반대하여, 영감은 단순히 자연적 사실일 뿐만 아니라 초자연적 사실임을 주장한다. 그것은 심령 속에서의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이다. 조명적 영감설에 반대하여, 영감은 성경을 쓴 저자에게만 아니라 그들이 기록한 성경에까지 미쳤음을 주장한다. 기계적 영감설에 반대하여, 성경은 신적 요소는 물론 인간적 요소도 포함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리하여 성경은 신적 계시 진리의 한 체계를 보여주지만 그 진리는 인간의 틀 속에서 모양을 떠낸 것이며 정상적인 인간의 이지에 맞춘 것이다. 그런데 스트롱은 영감은 성경의 주요 목적에 대하여 본질적이 아닌 일에까지 오류를 보증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들은 교리서보다 역사서의 오류 가능성을 주장하였다. 역동적 영감론자에게는 성경은 완전무오”(full inerrancy)일 뿐이다. 역동적 영감론과는 다르게, 영산의 영감론은 구원을 위한 완전영감에서 더 나아가 과학적이나 역사적 진술에 있어서도 오류가 없다는 절대영감,” “절대무오”(absolute inerrancy)을 주장하는 것이다. 신문철과 김한경이, 문자적으로 본다면, 올바르게 파악한 것처럼, 영산에게는 비록 성경이 인간 저자들에 의해 쓰였지만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감동을 받아 성경을 저술하였기에 성경이 절대 무오한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영산은 성경의 영감성은 말할 것도 없고 기록 전승 과정의 무오류성까지 믿고 있다. 성경의 진리는 불변하며, 과거와 같이 오늘날과 미래에도 똑같이 역사한다. 영산은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의 말씀에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남을 강조한다. 영산은 개념론(Conceptional theory)과는 다른 성경의 문자적 위력을 강조한다. 다시 말하건 데 영산에게 성경은 절대 무오한하나님의 말씀이다. 영산이 성경의 무오성을 말할 때 그 무오성이란 틀림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영산에게 있어서 무오성은 지식이나 역사적 사실의 무오성이다. 성경의 저자들 역시 그 당시의 여러 가지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이러한 오류를 성경에 기록하지 못하도록 막으셨다. 나아가서 그는 신화나 옛 이야기나 전설은 역사적으로 확실하지 않지만, 성경은 성경에 나타난 사람들, 인물들, 장소들, 사회적 관습들, 그리고 국가의 발달 등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틀림이 없는 정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성경의 역사적 무오성을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영산은 성경이 구원을 위해서 무오류할 뿐만 아니라, 그 역사성에 있어서도 오류가 없다는 절대 무오류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서울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였던 김희성은 영산에게 있어서 성경의 무오성은 아쉽게도지식이나 역사적 사실의 무오성이라고 말한다. 그는 신약학계는 역사비평의 결과를 근거로 성경의 역사적 사실의 무오성을 인정하지 않는 데, 영산이 역사적 사실의 무오성을 주장하니 그것이 아쉽다는 것이다. 영산이 성경의 역사적 무오성까지 주장하는 것은 김희성의 부정적 평가와는 달리 칭찬을 받아야할 것이다.

     영산은 계몽주의적 이성에 의한 역사비평이 성경을 허구로 만든다는 것을 인식하고 성경에 역사비평을 가하는 것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거부한다. 그는 계몽주의적 이성에 의한 성경 해석은 성경을 한낱 인간의 책으로 전락시켜 성경의 초자연적 경험들과 기록들을 인간이 스스로 창작해낸 허구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한다. 나아가 영산은 성경에 역사비평을 가하여 소위 성경 속의 성경, 케리그마, 하나님의 말씀만을 취하고 나머지는 버리려는 것을 비판하며, 역사비평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성경에 고등(역사)비평을 가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옳은 일이 아니라며, 역사비평을 거부한다.

 

1900년대에 들어와서, 독일로부터 시작된 이성주의와 과학주의적인 고등비평을 신학에 도입하여 성경을 역사적 과학적 철학적으로 철저히 비평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로 된 책이지, 인간의 과학과 이성을 통해서 고등 비평할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계시로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계시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성경 말씀을, 예수님을 만나 보지도 구원받지도 못한 타락한 인간들이 역사적 철학적 과학적으로 비평을 해서 자신의 학문적 기준에 어긋난다고 다 잘라내 버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옳은 일이 아닙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창립한 영산은 고등/역사비평순복음을 서로 양립할 수 없게 대립시킨다. 그는 먼저 계몽주의 이성에 의한 인식론을 바탕으로 삼는 역사비평의 시대를 꾸지람만 들었던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로 규정하고, 역사비평이 성경과 복음을 변질시켜 유럽과 미국 교회를 죽여 온 역사를 말한다. 영산에게는, 그런 복음의 변질은 인간의 철학이나 인간의 신학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헛되이 전하는 것이다. 그는 역사비평에 의한 성경과 복음의 변질을 말한 다음, 역사비평과 그 결과에 대항하여 성령으로 순수한 복음을 회복하자는 순복음 운동을 소개한다. 그는 “Full Gospel”순복음(純福音)”으로 번역하는 것을 따른다. 그에게 순복음 운동은 역사비평의 기저에 깔려있는 그리고 필연적 결과로 일어나는 불신앙에서 눈을 떠서 순수한 신앙을 되찾자, 다시 말하면 불로 연단한 금을 사고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흰옷을 입고 성령의 안약으로 눈을 밝게 하여 복음으로 순수하게 돌아오는성령 운동을 가리킨다. 그리고 순복음 운동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계시한 절대 무오한 진리의 말씀인 것을 믿는다.” 영산에게 순복음은 역사비평과 양립할 수 없다.

     영산은 역사비평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하는 것을 마귀의 일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한다. 영산에게 오늘날 마귀가 행하는 가장 극악무도한 행위는 역사비평을 통해 하나님 말씀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옛 에덴에서 하와에게 하나님 말씀의 권위와 신실성에 대해 불신을 심었던 그 마귀가 오늘에 와서 [역사비평을 통해 형성된] 자유주의 신학이니 신신학이니 하는 신학적 사조를 통하여 인간의 [계몽주의적] 이성과 과학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도전을 감행하고 있다.

 

신문철과 김한경에 따르면, 영산은 이 말을 통해 역사-비평적 성경해석이 성경에 나타난 모든 기적을 배제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러한 영산의 비판은 성경이 곧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성경에 나타난 모든 이적이 오늘날에도 일어날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비판이었다. 영산이 역사비평을 통해 성경에 도전하는 하는 것의 영적 배후를 마귀로 지목하는 것은 100여 년 전에 현대 오순절운동의 창시자 파함이 고등비평이라는 입을 통해 성경을 신화로 만드는 것의 영적 배후를 마귀임을 폭로하고 비난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아닌, 영산 신학을 정립시키려 노력한다는 신학자들이 영산이 마귀적이라고 거부한 역사비평의 어떤 산물들을 성경해석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참으로 아이러니하고 통탄할 일이다. 어떤 학자는 영산의 성경론을 연구한 후 결론부분에서 역사비평을 택하든, 경전비평을 취하든, 아니면 전통적인 성경관에 착념하든 어떤 성경해석학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절대신앙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어떤 학자들은 오순절적 성경관은 궁극적으로는 비평의 단계를 수렴하고 넘어서서, 본문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본문을 통해 작용하는 성령의 영감을 통합적으로 조명하는 성경신학의 전개라는 과제를 앞두고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앞으로 역사적-비평적 성서해석을 대신할 대안은 공시적(synchronic) 즉 전체론적/통일체적/통전적 해석의 틀에서 필요한 경우 통시적 작업(역사비평 방법론인 본문비평, 문서비평, 양식비평, 전승사비평, 편집비평)의 긍정적인 결과들을 수렴하는 쪽으로 진행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들의 그런 행태는 신정통주의나 신복음주의자들처럼 오순절 창시자 파함이 마귀에 의한 것이라고 혹평하고 거부했던 역사비평을 성경 주석의 첫 단계로 받아들이는 모던적 오순절 해석과 포스트모던적 오순절 해석의 잘못된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영산의 해석이 교회를 중심으로 수행되는 해석이라고 축소시키고는, 소위 학자들에 의해 대학이라는 상아탑을 중심으로 수행되는 학문적 해석에서는 역사비평을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에 따른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고는 역사비평방법론 위주의 성서연구는 성서가 주어진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이 공감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전제들과 해석방법에 근거하기에 교회현장에서 긍정적으로 수용되기 어려운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학문적인 연구방법을 거부한다면 정확한 읽기를 해야 한다는 명제에 무책임하게 대응하는 비학문적이기에 복음주의 입장에서도 그것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는 말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교회의 목회적 성경해석과 대학의 학문적 성경해석이 달라야만 하는가? 교회에서는 목회를 위해 사실은 성경의 역사적 오류를 내포하고 있지만 오류가 없는 것처럼 가장하는 믿음에 의해 성경을 해석하고, 대학에서는 그 성경의 역사적 오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역사비평을 학자적 양심과 계몽주의적 이성에 따라 수행해야하는가? 아니다! 이런 이분법적 행태가 교회도 죽이고, 대학도 죽인다. 영산의 해석은 대학의 해석이기도 해야 하며, 대학의 해석은 영산의 해석이기도 해야 한다. 교회에서도 대학에서도 그 어떤 역사비평의 부스러기조차도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교회도 살고, 대학도 살 것이다. 역사비평을 성경에 가하는 것은 영산의 신학을 살리기 위해 성경 자체를 죽이는 것이다. 역사비평이 살아나면, 신학은 살지 몰라도 필경 성경이 죽는다. 그렇게 연명하고 번성하는 신학은 암과 같이 독소가 가득한 것이어서 사람을 죽이며, 영산과 나아가 하나님을 모독한다. 그런 신학은 살아있는 것 같으나 죽은 것이며, 자신도 죽고 성경과 대학과 교회도 죽인다. 영산의 신학도 살리고 성경도 살리고 교회도 살리는 길은 고등/역사비평을 죽이는 것이다.

 

우리 한국 교회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미래도 신학교육에 달려 있습니다. 올바른 신학교육이 있어야 미래 한국교회가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여의도순복음처럼 예수 십자가 중심, 성령중심으로 되어야 되는데 잘못 가고 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신신학이나 자유주의신학 교육은 장차 교회를 묘지로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이처럼 영산에게 성경에 기록된 경험은 역사 속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경험에 대한 것이며, 그래서 영산은 기록된 경험의 영감성과 절대 무오성을 인정하며, 그 경험의 역사성을 인정하며 성경을 해석한다. 영산에게는 성경은 그 어떤 역사적 오류도 내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영산의 성경 해석은 성경을 해체하여 여러 저자와 여러 시대에 인위적으로 할당하는 역사비평을 마귀적이라고 거부하며, 정경을 대상으로 성경의 배경과 어떤 주제와 모티브를 통시적으로 연구하는 역사적 해석을 시도한다. 그래서 영산의 성경 해석은 필자가 제시한 바람직한 오순절 성경 해석의 세 번째 요소인 반역사비평적/역사적 해석을 충족시킨다.

 

D. 은사지속론적 정경적-역사적-문법적-신학적 해석

 

     바람직한 오순절 해석은 적극적으로 근본주의적인 반계몽주의적 이성관에 의한 은사지속론적 정경적-역사적-문법적-신학적 해석(Grammatic-Historic-Theological Interpretation)을 그 렌즈로 삼아야 한다. 벌코프는 역사적 해석의 기본 전제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 속에서 발생했으며, 그러므로 오직 역사의 빛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 . . 성경의 내용들은 역사적으로 결정된 것이며, 그 만큼 역사 속에서 그 설명을 찾는다라고 말했다. 벌코프가 제시하는 신학적 해석”(Theological Interpretations)은 구약과 신약, 그리고 각 책들 간의 하나의 통일체로서 성경”(The Bible as a Unity), 문자적 의미에 담긴 성경의 신비적 의미”(The Mystical Sense of Scripture), “성경에 대한 상징적이고 모형적 해석”(The Symbolical and Typical Interpretation of Scripture)을 포함한다.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성경)에 대한 가장 탁월한 해석자이시라는 사실은 성경에 대한 신학적 해석의 기초다. 그런데 근본주의해석과 오순절해석의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성령의 은사들이 성경시대로 종결되었느냐, 계속되고 있느냐에 대한 견해차로 인한 상이함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보수주의는 성경으로 특별계시가 종결되었으므로, 방언이나 예언 등 계시적 은사는 성경 종결이후 더 이상 주어지고 있지 않았다는 은사중단론”(Cessationism)을 성경이나 체험을 해석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은사중단론적 해석을 취하게 되면, 기록 이전 경험과 기록된 경험은 일치하지만, 그 경험들과 현대 독자의 경험은 불일치하게 된다.

 

기록 이전 경험 = 기록된 경험 현대 독자 경험

 

오순절주의는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발생하고 있는 성령의 모든 은사적 역사들을 인정한다.

    영산의 성경해석은 근본주의적(또는 20세기 신복음주의가 아닌 19세기 이전 구복음주의)이다. 전항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영산의 성경에 대한 관점은 역사비평을 통해서 성경을 해석하는 관점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영산은 역사비평을 기반으로 삼는 자유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는데, 이는 그의 성경해석이 성경에 역사비평을 가하는 신복음주의적 노선이 아닌, 역사비평을 거부하는 근본주의적 노선을 따르고 있음을 천명하는 것과 같다.

     영산은 성경을 근본주의적인 정경적-역사적-문법적-신학적으로 해석해 왔지만, 전 항에서 정경적-역사적 해석에 대해 살펴보았으므로, 본 항에서는 신학적 해석에 집중한다. 영산의 신학적 해석은 모형론적 해석과 미드라쉬적 해석에서 잘 드러난다. 먼저 영산은 모형론적 해석을 시도한다. 왕대일에 의하면, 영산은 구약을 모형으로 신약을 실상으로 읽는다. 신약에서 성취될 것을 구약성경은 비유나 그림자로 예시하고 있다고 본다. 창세기 설교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영산은 창조사역을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증언하는 것이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antitype)을 깨우쳐주는 모형(type)으로 읽는다.

     둘째로, 영산의 미드라쉬적 해석도 신학적 해석에 해당한다. 신문철과 권미선에 따르면, 영산의 성경해석은 미드라쉬라는 신구약 성경 저자들이 물려준 해석학적 유산을 계승했다. 미드라쉬의 실제적인 관심은 성경을 언제나 재해석하고 현재화하도록 인도했다. 미드라쉬적 해석은 첫째로 틈메우기간본문적 해석을 그 특징으로 삼는다. 성경이 때때로 모호하게 언급하고 있는 곳에서 영산은 청중들에게 성경이 남겨 둔 공간들을 채우고 있다. 신문철과 권미선은 영산의 간격 메우기에 나타난 특징 중의 하나가 성경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이해하려는 관점이라고 파악한다. 창세기 32:24에 야곱은 얍복나루에서 어떤 사람과 밤새도록 씨름을 하게 된다. 성경의 저자는 야곱이 밤새도록 싸운 어떤 사람에 대하여 하나님과 대면”(30)하였다고 야곱의 고백을 통해 설명하는 듯하다. 하지만 어떤 사람하나님과 대면사이에는 모호한 공간이 남아있다. 권미선에 따르면, 이러한 모호한 공간을 역사비평가들은(예를 들어 Gunkel, von Rad, 그리고 Westermann) 고대의 민담 중에 나오는 가나안의 강을 다스리는 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역사비평주의자들은 많은 세대를 거쳐 이러한 민담이 개조됨으로 구조상 빈틈이 생기고 유기적으로 평탄한 연관관계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은 역사적인 편집과정에서 발생한 이러한 빈 공간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별히 그들은 26절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는 본문을 가지고 인간과 귀신이 싸울 때 한밤중에는 귀신이 우세하지만 새벽이 되면 사람이 우세하게 된다는 민담의 내용을 바탕으로 성경의 본문에서 모호한 간격을 메우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영산은 성경을 해석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고려한다. 영산은 창세기 32:24어떤 사람에 대한 구절을 그때까지도 야곱은 자기가 씨름하는 것이 누군지 몰랐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자인데 그때 하나님의 사자는 육신으로 오기 전 예수님이신 것입니다라며 기독론적으로 해석한다.

     둘째로, 미드라쉬의 또 다른 특징은 통전적 해석이다. 통전적 해석은 비록 성경이 비록 다양한 문화와 시대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써졌지만 하나의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 위에서 진행된다. 그래서 성경의 어느 한 구절을 해석할 때 다른 구절들과 평행 혹은 유비의 관계를 살펴보아야 한다. 영산의 해석도 어느 한 구절이나 문장을 통하여 성경 전체를 해석하려는 통전적 해석의 경향을 띈다. 예를 들면, 영산은 요한삼서 1:2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모든 성경 말씀을 해석하는 틀로 삼는다. 또한 영산은 창세기 32장의 야곱의 씨름 사건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호세아 12:3-5과 이사야 41:14-16 말씀을 인용한다. 영산이 한 구절을 통해 성경 전체를 보고 성경 전체를 통해 한 구절을 해석하는 것은, 신문철과 권미선에 따르면, 미드라쉬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영산이 은사중단론이 아닌 은사지속론적 입장을 견지해왔다는 것은 많은 증거들을 제시하지 않아도 너무도 확실한 것이다. 예를 들면, 영산이 196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현대인도 중생에 후속하는 성령침례를 받을 때 방언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산의 강조는 그가 선교사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미국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 교단의 방언을 강조하는 오순절적 전통을 따른 것이다. 영산은 이것을 사도행전 16절에서 11절을 본문으로 행한 설교에서 자기 경험과 함께 주장한다.

 

성령이 충만했다는 증거로써 방언이 나오는데 저는 신학교 들어와서 공부하면서 까지도 아직 성령세례를 못 받아서 방언을 못했어요. 방언하도록 성령충만 받으려고 삼각산에 가서 . . . 밤중 되어서 있는 힘을 다해서 주님을 부르니까 . . . 나중에 내가 방언을 말하고 있더라구요.

 

이렇게 영산의 성경해석은 필자가 바람직한 오순절 성경 해석의 네 번째 요소, 또는 이전에 제시된 요소들과 융합된 렌즈인 은사지속론적 정경적-역사적-문법적-신학적 해석과 거의 병치된다.

 

 

III. 나가는 말

 

     본 연구는 영산의 성경 해석과 필자가 제시했던 바람직한 오순절적 성경해석의 요소들을 비교했다. 그 결과, 영산의 성경해석법은 현대 오순절운동의 창시자 파함의 성경해석법과 닮았으며, 필자가 제시했던 바람직한 오순절적 성경해석의 요소들을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이, 역으로 필자가 제시한 바람직한 오순절 성경해석의 요소들은 목회현장에서 잘 작동될 수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 입증되었다.

     영산의 목회와 신학이 건강하게 유지하고 성장, 성숙, 번성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기록되기 이전의 경험들과 성경에 기록된 경험들과 현대 독자의 경험들을 일치시킬 수 있는 해석이 필요하다. 영산 신학 공동체는 이런 일치적 해석을 위해 칸트의 이성관을 대체할 수 있는 반계몽주의적 이성관, 오순절에 적합한 이성관과 인식론을 개발해야하며, 성경적 세계관에 근거한 해석을 시도해야하고, 역사비평 자체와 그 부스러기조차도 배격하는 역사적 해석을 발전시켜서, 신정통주의나 신복음주의에서 벗어나 근본주의적인 정경적-은사지속론적-문법적-역사적-신학적 성경 해석 렌즈를 잘 제작하여 장착해야 한다. 다시 말하는데, 고등/역사비평에 의해 망가지고 오염되어 불순해진 복음을 순수한 복음으로 회복시키자는 순복음(純福音)”을 주창해 온 영산의 성경해석과 고등/역사비평적 해석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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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성경해석과영산의성경해석(이창승).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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