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퀘어 가스펠
Foursquare Gospel
에이미 셈플 맥퍼슨
Aimee Semple McPherson
1923년 1월
이창승 역
Aimee Semple McPherson, “Foursquare Gospel,” The Collected Sermons and Writings of Aimee Semple MacPherson, Vol. 3 (North Charleston, South Carolina: Echo Park Evangelistic Association, 2015), 13-25.
내가 보니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사람의 형상이 있더라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에스겔 1:4-5, 10
이것은 에스겔 선지자의 눈이 보았던 이상하고 놀라운 광경입니다. 그가 그발 강가에 서있을 때 “하늘이 열렸고”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북쪽을 응시하며 서있었습니다. 보고 있는 데, 큰 북풍이 일어나 그에게 몰아쳤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북쪽은 보통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는 이 방향으로부터 음행한 나라에 떨어지는 화나신 하나님의 분노와 징벌을 잘 보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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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는 그분의 율법을 어겨왔었고, 그분의 경고들과 애원들을 또한 경멸해왔었습니다.
북쪽에서 불어왔던 이 바람은 평범한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빠르게 다가오는 그 무시무시하고 거대함은 불신자나 죄로 가득한 마음을 공포와 전율로 사로잡았을 것입니다. 이 바람은 또한 곧 소멸해버릴 가볍게 지나가는 돌풍이나 잠시 약하게 부는 미풍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보았던 것은 거대한 구름과 불 자체가 감싸고 있는 불이었습니다. 이 바람에는 그것을 이전에 불었던 그 어느 바람과도 다르게 만든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어둡고 검은 비밀에 싸여있는 대신, 빛이 감싸고 있었고, 그 불의 가운데에 단 쇠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 바람은 그것의 거대함이 하늘들을 채우고 그리고 그 빛이 밑으로 땅을 비출 때까지 회전하며, 소용돌이치며, 번쩍이며, 빛나며, 덮으며, 그리고 그 불과 그것이 갖고 있던 영광과 능력을 감싸며 빠르게, 빠르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에스겔은 황홀한 놀라움 속에서 그 거대한 구름을 응시하다가 그 모든 것보다도 더 이상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 가운데서 네 생물들의 형상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그것들의 모양들이었는데, 그것들은 “사람의 형상”을 가졌었습니다.
북쪽에서부터 일어난 큰 폭풍 -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는 큰 구름 - 그 사방에 비치는 빛 - 그 속에서 나타나는 네 생물 - 사람의 형상이여!
불타는 구름을 통해 에스겔에게 임했던 놀라운 그림입니다! 놀라운 환상입니다! 놀라운 계시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 에스겔의 환상을 통해 우리에게 오고 있는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은혜의 구름의 그리고 사중(the four-fold), 사각복음(four-square gospel)의 불같은 능력과 영광의 그림, 환상, 그리고 계시는 또한 참으로 놀랍습니다!
에스겔은 포로로 사로잡혀 간 자들 중에서 그발 강가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날 그는 서서 북쪽을 응시하다가 하늘로부터 다가오는 그 구름을 보았습니다. 그것처럼, 오늘날의 주님의 자녀들인 에스겔들은 죄로 사로잡혀 있는 자들과 노예들 가운데서 우울한 강가에 살고 있습니다. 그 에스겔들은 북쪽을 응시하며 그곳으로부터 격노하신 하나님의 분노의 징벌이 떨어져 그분의 율법을 범하고 그분의 자비를 경멸하던 사람들을 쓸어버리고 유린하는 것을 두려워 떨면서 볼 것입니다. 불과 영광의 빛나는 구름이 다가오는 것을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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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곳으로부터 심판과 징벌이 필연코 예상되는 북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에스겔의 눈에 비추었던 그 환상이 오늘날 우리 눈앞에 펼쳐집니다. 거대한 구름이 심판이 나올 곳으로부터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은혜의 구름입니다. 이것은 거대한, 하늘을 꽉 채울 만큼 거대한 구름입니다. “그리고 빛이 그 주변에 있었습니다.” 진실로 이 말은 은혜의 구름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그 넘실대고, 소용돌이 치고, 그것을 감싸고 있는 그 빛과 불은 우리 눈을 부시게 하기에 그리고 빛과 영광으로 땅을 비추기에 충분할 만큼 밝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로부터, 은혜의 구름의 가운데로부터 우리의 주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각복음(the four-square gospel)이 사람의 형상을 갖는 네 생물들의 모습으로 나옵니다. 그것은 참으로 영광스런 복음입니다. 다리는 곧고 광낸 구리 같이 빛납니다. 서로 연한 날개는 돌이키지 않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크신 여호와 이레의 능력, 영광 그리고 위엄을 전합니다! 그것들이 “생물들”인 것처럼, 복음도 살아 움직이며 생생하게 활동합니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복음은 참으로 사각복음입니다. 사각복음은 세상의 네 방향을 향하며, 네 가지 다른 국면들 또는 측면들을 드러냅니다. 그 모든 것은 그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충실하게 전합니다.
사람의 얼굴 : 예수 그리스도, 유일한 구원자
The Face of the Man : Jesus Christ, the Only Saviour
에스겔이 보았던 첫 번째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번쩍이며 타오르고 빛나는 은혜의 구름으로부터 나오는 사각복음을 응시하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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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흠모하는 눈에 나타나는 우리의 복된 구원자의 첫 모습 또는 계시는 사람의 얼굴입니다.
오, 이 생생한 복음 안에 드러나는 사람의 얼굴의 복된 계시여!
먼저 초라한 마구간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서 구유를 내려다봅니다. 아주 작은 얼굴이, 강보에 싸여 누인 아기의 얼굴이 우리의 눈에 들어옵니다. 다음에는 설득하고, 가르치고, 질문하고 있는 열두 살 소년의 얼굴이, 아주 곱고 정직한 얼굴이, 성전 안의 아이의 얼굴이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그 때 갑자기 그 얼굴을 둘러싸고 있는 광경이 바뀝니다. 우리는 요단강 가에 서있습니다. 군중이 두 쪽으로 갈라집니다. 그들은 아주 조용해졌습니다. 그들은 한 방향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뒤로 물러서서 생긴 통로를 통해 누군가 오고 있습니다. 그는 희고 통으로 짠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의 얼굴은 골짜기의 백합보다 더 곱고, 아침처럼 밝고, 아직 고통과 슬픔의 가혹한 손에 타지 않은 얼굴입니다. 그리고 이제 침례를 받으신 후 광활한 하늘을 우러러 보며 기도하시는 그리스도의 얼굴입니다. 요단강물의 파도들이 밀려와 그분의 옷을 사랑스럽게 만집니다. 서풍이 부드럽게 일어나 그분의 머리털을 쓰다듬습니다. 이것은 나팔 소리 같은 말씀들이 위로부터 쏟아져 내려 언덕들을 진동시킬 때 성부의 보좌에서 나오는 빛으로 씻은 영화된 얼굴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내가 그를 기뻐하노라.”
또 다시 안개와 영광의 구름이 피어오르고, 우리는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연이어서 빠르게 바뀌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광야로부터 돌아오신 의기양양한 승리자께서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십니다. 그분은 몸을 낮추시고 용서와 사랑의 미소를 지으시며 범죄자의 눈을 바라보시는 관대한 구원자이십니다. 그분은 광야에서 주린 무리를 먹이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 얼굴은 산중턱에서 홀로 기도하시는 중보자의 새벽이슬에 젖은 얼굴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시는 엄격한 얼굴입니다. 그분의 도우심을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믿음을 보시는 메시야의 기쁨으로 환한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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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과 산상 수훈을 말씀하신 설교자이며 교사이신 분의 조용하고 상냥하고, 현명하고, 인내심 많은 얼굴입니다. 폭풍우를 가라앉히고, “잠잠 하라!” 바다의 파도를 잔잔케 하신 바다와 땅과 하늘의 주인의 명령하시는 권위 있는 신성(Divinity)의 얼굴입니다.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네가 알았더라면” 말씀하며 우시는 구원자의 얼굴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잔을 축복하시면서 갈보리 산에서 받으실 그분의 고난을 예고하시는 그 슬픔의 사람의, 슬픔에 익숙한 얼굴을 응시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긴장한 눈으로 흑암을 헤치고 겟세마네 동산의 고독한 어둠 속에서 기도하시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봅니다. 그분의 얼굴을 비추는 달빛은 피처럼 떨어지는 땀방울을 따라갑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고소당하고, 정죄 당하시는 그리스도의 얼굴은 골고다의 언덕에서 가시관을 쓰시고 고통스러워하는 얼굴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무덤 안에서 움직임이 없는 그리스도의 얼굴이 다가 옵니다. 부활하셔서 살아나신 주님, 그분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엠마오로 가는 길을 걸으시는 그리스도의 얼굴, 승천하시고 아버지의 보좌에 앉으셔서 우리의 필요를 위해 간청하시는 대제사장이시며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득 찬 얼굴을 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라 내가 서서 두드리노니”라고 속삭이시는 현재의 그리스도로서 그 사람의 얼굴이 다가옵니다. 그 얼굴은 “볼찌어다,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한 가운데 서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얼굴입니다. 오, 예수 구원하시는 주님의 얼굴을 드러내는 영광스런 얼굴이여! 우리는 이 영광스런 희미한 봄들을 통해, 다만 침침한 안경을 통해 당신을 봅니다. 당신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본다면, 우리가 얼마나 황홀하겠습니까!
사자의 얼굴 :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 침례를 주시는 분
The Face of a Lion -
Jesus Christ, the Baptizer with the Holy Ghost
에스겔은 “오른 편으로는 사자의 얼굴”을 가진 네 생물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또한 우리는 이 살아 움직이는 말씀 속에서 유다 족속의 언제나 승리하시는, 능력이 많으신 사자로서 우리 주 예수를 봅니다. 그분은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시는, 언제나 영광스러운 침례수여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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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그분은 참으로 놀라운 침례수여자이십니다! 사자의 얼굴로 우리의 구원자를 드러내는 복음의 그 측면에 새겨진 불굴의 용기, 무적의 힘, 신실함과 보호, 언제나 승리하시는 용감함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오순절 날에 그분에게서 보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오늘날 우리가 그분에게서 보아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목자장은 죽임을 당하였고, 양들은 여기저기 흩어졌습니다. 적들과 불신과 세속적인 자들의 힘에 완전히 둘러 포위당하여 경멸당하고, 거절당하고, 쫓겨났으나 전능하신 성령으로 침례를 주시는 분, 그 사자의 얼굴을 한 번 희미하게 봄으로써 그들 안에 새 마음과 용기가 생겼습니다. “위로부터 오는 능력”의 단 한 번의 강력한 채우심으로 그들은 적들이 그들을 에워싸고 쳐 놓을 그 어떤 담이나 군대도 뛰어넘어 격파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오, 그대, 안에서 불로 스스로를 감싸는 은혜의 구름이여, 가까이 다가오라. 불을 내품는 그대의 전차의 바뀌는 온통 눈들로 가득 찼고, 그대의 강력한 날개들은 서로 연하였으며, 그대의 복된 네 생물들은 사람의 형상을 가졌도다. 그대는 우리에게 사람이신, 구원자,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이새의 줄기의 한 싹을 계시해 왔도다. 하지만, 오, 오늘날 우리는 그대의 오른 쪽 면, 사자의 얼굴을 보기를 갈망하노라!
참으로 약하고, 참으로 하잘 것 없는 우리는 우리의 연약한 힘 안에서 그분의 이기는 승리들을 찾아 왔습니다! 세상은 그리스도를 위해 복음화 되어야만 합니다. 복음은 세상 끝까지 능력으로 전파되어야만 합니다. 불신과 무관심이라는 장벽들은 무너져야 합니다. 집단들을 뒤 흔들어야 합니다. 요새들을 점령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수행 할 돈, 교회들, 성당들, 오르간들, 성가대들, 위원회들, 그리고 세상적인 도움들을 획득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우리는 이렇게 참담하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얻기 보다는 오히려 진지를 빼앗겨 왔고, 전진하기 보다는 후퇴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자의 얼굴을 바라봄으로써 즉시 초대 교회를 떠올리게 됩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으로 침례를 받자마자 다락방에서 내려와 세상으로 나가서 “세상을 혼란케 하던 자들이 여기까지 왔도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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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싸움을 싸우며 하루에 오천의 영혼들을 구원시키고, 도시 전체를 부흥의 능력으로 휩쓸었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었는데,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분께서 우리의 눈을 돌려 사자의 얼굴을 보게 하십니다. 그러자 우리는 침례 요한이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시리라고 예고했던 분으로서 우리의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주 예수님의 교회가 오늘날 그 무엇보다도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보배로운 성령의 충만함을 전파하고 성령의 충만함(the fullness of the precious Spirit)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을 것입니다. 그 권능은 증거하는 능력, 기도하는 능력, 죽어가는 세상에서 살아계시는 그리스도를 드높이는 능력, 그 보혈을 높이는 능력, 말씀을 확산시키는 능력, 깨끗케 하는 샘으로 남자들과 여자들을 이끌어가는 능력, 더욱 더 붙어서 따르도록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분발시키는 능력입니다. 아시다시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참으로 수많은 교회들의 성직자들과, 직분자들과, 평신도들이 영적으로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니까 그분의 오순절적 능력으로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 권능의 비밀입니다. 이것이 안식입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는 것, 이것이 기운 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소심하여 긍정적인 침례보다는 부정적인 침례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성령이라는 주제에 대해 말하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성령을 받지 않을지를 말하며 그들의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하는 반면에, 그분이 주려고 기다리시는 그 능력과 복을 어떻게 받을지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소의 얼굴 : 예수 그리스도, 위대한 의사
The Face of the Ox -
Jesus Christ, the Great Physician
에스겔이 세 번째로 보았던 왼쪽의 얼굴은 소의 얼굴입니다. 즉, 그 사람의 얼굴의 오른 편은 사자의 얼굴이고, 왼 편은 소의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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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지면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 중에서 잘 견뎌내고, 끈기 있고, 비틀거리지 않고, 희생적으로 짐을 지는 자의 가장 놀라운 전형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성경은 우리에게 어제의 그리스도를 계시하시는데, 그리스도는 오늘날에도 동일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시고, 우리의 죄와 부끄러움과 고통의 짐을 대신 담당하시며 무거운 십자가의 끝을 들어 올리십니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는 몸, 혼, 그리고 영을 위한 하나님의 생명과 은혜를 제공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스스로 우리의 약함을 취하시고 우리의 질병을 담당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그 사람의 형상에서 인내심 많은, 희생하시는 짐을 담당하시는 소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리스도의 마음은 참으로 동정심이 많았습니다! 그분이 군중들을 바라보실 때 동정심이 발하자 그들을 괴롭히는 병을 고쳐주신 그 마음은 참으로 민감하셨습니다! 오, 은혜의 구름으로부터 우리에게 나오는 이 사각복음 안에 우리의 구원자께서, 공감하시는 예수께서 위대한 의사로 계시되며 지금 가까이에 서계십니다. 그분의 만지심은 옛 능력을 결코 잃지 않았습니다. 하늘은 닫혀있지 않습니다. 그분의 이적을 행하시는 능력의 나타남들은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단지 불신의 열쇠로 스스로 그 문을 걸어 잠근 사람들에게만 멈추었습니다.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신”(마 8:17) 분으로 예수 우리 주님을 계시하는 그 복음의 측면은 우리 주님이 자신의 육체 안에서 행하셨던 몇 년 간의 사역 동안에 살았던 몇 사람들을 위해서만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후에 그 측면이 살아있는 말씀에서 제거되지 않았고, 하늘이 봉해져 초자연적인 것들이 차단되지 않았습니다. 사 백년도 더 넘는 동안, 병자들을 위한 기도의 능력이 수많은 사례들로 초대 교회에 남아 있었고, 온전히 후대에 전해져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 알버트 심슨과 하나님의 다른 신실하고 흠 없는 사람들이 병자들의 치유를 위해 기도해 왔고 놀라운 기도 응답의 사례들을 증언했습니다.
병으로 고통을 받는 자들을 위한 기도에 있어서 반드시 “나의 뜻이 아닌 당신의 뜻대로 되어지이다”라고 기도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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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 기도가 우리를 그분께로 이끄실 만큼 지혜가 한이 없으신 주님을 기쁘게 한다면, 그 몸으로부터의 부재는 주님과의 현존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신유에 대해 완고하게 정죄하는 태도에 빠지지도 말아야 하고, 또한 신유를 어떤 요술 방망이나 철저하고 확고한 법칙으로 생각하는 것에 빠지지도 말아야 합니다. 다만 신유를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기도하는 것처럼 간구할 때마다 육체적 복을 받기를 구하는 기도의 문(a gate of prayer)으로서, 단순히 조금 열린 복된 문(a blessed gate ajar)으로 여겨야 합니다.
결박하는 멍에를 매지 말고, 그 사람 그리스도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분은 구원자시요 성령으로 침례를 주시는 분이실 뿐만 아니라 위대한 의사이시기도 합니다. 그분은 여전히 의심하는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에게 질문하십니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는 말과 “침상을 들고 일어나 걸으라”라는 말 중에 어느 것이 말하기에 더 쉽겠느냐?
빛나는, 작열하는, 불타는, 회오리바람처럼 움직이는, 네 생물들을 품고 있는 그 복음은 죽은, 약한, 능력 없는 변명 복음이 아니라, 강력하고, 살아있고, 움직이고, 타오르고, 능력 있고, 설득력 있는 복음을 안 밖으로 몰아옵니다. 그 복음은 예수님의 온전한 희생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의 모든 필요를 채우기 위해 충분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독수리의 얼굴 : 예수 그리스도, 재림하시는 왕
The Face of the Eagle -
Jesus Christ, the Coming King
네 번째 측면에서, 사람의 얼굴의 반대편에서, 사자의 얼굴과 소의 얼굴이 양쪽으로 접한 면에서, 그 선지자는 독수리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밑으로 땅의 가장 작은 물체들도 보고 알아차리는 탐색하는 시선으로 높게 치솟은 하늘을 노려보는 독수리입니다. 구름 속으로 날아 오르고, 아찔한 높이에서 재빠르게 내려오고, 넓게 펴진 날개에 새끼들을 태우고 가는 독수리는 그리스도, 재림하시는 왕의 멋있고 복된 모형입니다.
이 복된 주제에 대한 말씀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그 가르침은 성경의 전 구조를 통해 짜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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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엔가, 오, 그것에 의해 서로를 위로하는 복된 소망이여, 어느 날엔가 하늘이 그분의 영광으로 빛날 때, 우리는 눈을 들어 아름다운 왕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하늘의 문들을 통해 날개를 넓게 펴고 쏜살같이 내려와 그분을 신뢰하여 그분의 복된 출현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붙들고 높이 날아오르실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네 가지 복음서들,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 복음은 사람, 사자, 소, 그리고 왕이라는 동일한 네 가지 영광스런 국면들에서 우리 주님을 보여준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각복음으로서 복음의 비전을 얻을 수 있다면, 한 메시지가 다른 메시지와 맺는 전망과 관계성을 얻을 수 있다면, 우리는 분명히 극단으로 치닫거나 정도를 넘어서서 과장하지 않을 것이며 복된 메시지의 그 어떤 하나의 국면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귀한 피를 통한 구원은 결코 과장될 수 없습니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유일한 구원자의 모습을 보아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중 모두가 성령으로 침례를 주시는 분의 강력하고 새로운 능력을 받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분은 그분의 권능으로 승리하도록 그분의 교회에게 능력을 부여하시는 사자이십니다. 그분을 영접하셨다면, 거기서 멈추지 말고, 나아가 참고, 희생하고, 짐을 담당하는 소, 위대한 의사, 공감하시는 예수에 대한 계시를 받읍시다.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치료자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비전을 받을 때, 극단으로 치닫지 맙시다. 복음의 이 측면이 구원자 그리스도의 중요함을 전파하게 합시다. 성령침례 수여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받을 때, 과도하게 메시지의 이 측면을 과장하지도 말고, 갈보리에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의 보혈을 통한 값없이 주시는 단순한 구원의 가치와 공로를 간과하지도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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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분의 복된 재림을 전합시다. 그것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의 “복된 소망”으로 기쁘게 전합시다. 잠자는 자들을 깨워서 그들의 그릇들을 성령이라는 기름으로 채우게 합시다. 왜냐하면 그분이 가까이 오셨기 때문에, 예, 문 앞에까지 오셨기 때문입니다. 온전한(full), 잘 균형 잡힌 사각복음(an even-balanced four-square gospel), 구원자, 성령침례 수여자, 의사, 그리고 재림하시는 왕을 전합시다.
오, 여러분은 오늘 스스로를 감싸고 있는 불과 함께 그 큰 구름을 볼 수 있습니까? 사람의 형상을 갖고 있는 네 생물들을 볼 수 있습니까? 그 강력한 날개들이 스치는 소리를 듣지 못하십니까?
“그 얼굴은 그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복된 통일unity, 진리, 그리고 말씀의 조화), “또 둘은 몸을 가렸으며”(참으로 한없는 자비와 사랑의 날개들은 말씀의 본체를 덮고 있는 듯합니다).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그 생물들도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않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했습니다. 똑바른 하나님의 말씀의 곧게 나아감들과 결실이 풍부한 돌아옴도 그렇습니다.
또 생물들의 모양은 타는 숯불과 횃불[등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는 번개가 번쩍였습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자마다 발견해 왔던, 살아계신 하나님의 단으로부터 나오는 타는 숯불은 참으로 복됩니다. 그 숯불은 참으로 우리 발에 “등불”이요 우리의 길에 빛이어 왔습니다. “세상의 빛” 자신은 그분의 변하지 않고 영원한 말씀의 생생하고, 능력 있고, 타오르는 불들 사이를 늘 오르내리십니다. 에스겔이 미리 보았던 그 불은 여전히 밝으며, 어두운 곳들을 비추시며, 마음의 내밀한 곳들을 살피시며, 겨울의 불신이라는 얼음과 눈을 녹이시며, 삶을 주님께 드린 사람들의 제단위에 타오르는 불꽃을 지피고 계십니다. 그분의 거룩한 말씀의 불로부터 번개들이 나옵니다. 참으로 자주 설교자들과 회중들이 그 번개들을 느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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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영감 아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과 증거로 곧게 나아갈 때, 그 번개는 선포된 말씀으로부터 나오는 뚜렷한 불꽃들처럼 능력 있습니다. 그 번개는 저쪽에 있는 남자를 확신으로 내리치십니다. 그 번개는 저쪽의 여자를 양심의 가책으로 찌르십니다. 그 번개는 저쪽의 냉담한 청년을 자기 자리에 앉아서 떨게 만드십니다.
그 생물들이 번개 불의 모습으로 달려 나아가고 돌아올 때, 우리는 그 얼마나 자주 말씀의 번개가 전 회중을 내리치시는 것을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단 앞으로 달려 나가게 하는 것을 보아왔습니까! “내가 그 생물들을 보니 그 생물들 곁에 있는 땅 위에는 바퀴가 있는데 그 네 얼굴을 따라 하나씩 있고 그 바퀴의 모양과 그 구조는 황옥 같이 보이는데 그 넷은 똑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모양과 구조는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그들이 갈 때에는 사방으로 향한 대로 돌이키지 아니하고 가며 그 둘레는 높고 무서우며 그 네 둘레로 돌아가면서 눈이 가득하며 그 생물들이 갈 때에 바퀴들도 그 곁에서 가고 그 생물들이 땅에서 들릴 때에 바퀴들도 들려서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생물들도 영이 가려 하는 곳으로 가고 바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영이 그 바퀴들 가운데에 있음이니라.”
은혜의 구름 안에서 그 생물들이 하늘로부터 땅으로 강력하고 빠르고 능력 있게 피조 될 때에, 그것들은 땅과 접촉점을 가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필요는 그 형상과 사역이 바퀴 중간에 있는 어떤 바퀴와 같은 어떤 강력한 바퀴에 의해 충족되었습니다. 그것처럼 말씀의 선포도 어떤 강력한 바퀴와 같습니다. 말씀 선포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면, 그 안에 생물의 영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 생물의 영은 하나님의 나라의 사각복음을 가지고, 가득 찬 눈들로 잃어버린 자들과 궁핍한 자들을 찾아내며, 늘 이곳저곳을 살피며, 세상 끝까지 질주하는 번개 불처럼 앞으로 달리고 돌아옵니다. 때를 얻든 못 얻든 교회라는 유기체 안에서 바퀴의 중간에 있는 바퀴처럼 불화나 혼란 없이 조화롭게 일합시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들로 부름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들로, 어떤 사람들은 교사들로, 어떤 사람들은 복음전도자들로, 어떤 사람들은 목사들로, 어떤 사람들은 돕는 자들과 다스리는 자들로 부름을 받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어”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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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모두가 바퀴 안의 바퀴처럼 함께 일해야 합니다. 확실히 이것은 선포되는 말씀을 통한 이 복음과 땅의 궁핍한 사람들 사이의 접촉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생물들이 갈 때에 내가 그 날개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와도 같으며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으며 떠드는 소리 곧 군대의 소리와도 같더라.” 오, 주님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입을 당신의 메시지로 채우소서. 그래서 우리가 강력한 군대의 음성으로 전능자 당신의 음성을 반복하는 선포되는 복음으로 온 땅을 채우게 하소서. 옛날에 에스겔에게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음성이 우리 머리 위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들리게 하소서. 그래서 우리가 당신의 메시지를 세상에 다시 전하게 하옵소서. 우리도 숭상하는 눈을 들어 “사람의 형상”으로 보좌에 앉으신 당신을 바라보게 하소서. 당신의 불과 영광이 그 주변에 빛나는 보좌는 사파이어 보석과 같습니다.
당신은 불과 위엄의 주님이십니다. 당신의 형상의 뛰어난 빛과 아름다움은 비 오는 날에 구름 속에 펼쳐지는 무지개와 같습니다. 당신은 평화의 왕이시며, 영광의 주님이시며, 임마누엘 왕이십니다. 당신의 영원한 복음의 위대함과 능력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옛 선지자들처럼 당신 앞에 우리의 머리를 조아리고 당신의 음성을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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