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적 “순복음”(純福音, Full Gospel)의
기원, 역사와 의미
이창승
순복음총회신학교, 조직신학
jesusgate@daum.net
국문초록
“순복음”(純福音, Full Gospel)은 “오순절운동”의 별칭으로, 서로 호환될 수 있을 정도의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용어들에 대한 역사적이고 포괄적인 연구가 시도되지 않았다. 그래서 본 논문은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 오순절의 역사를 더듬어 “Full Gospel”(純福音, 순복음)의 용례와 그 의미를 살펴본다. 성결주의자들에 의해 먼저 사용되기 시작한 Full Gospel은, 오순절주의 안에서는 1902년 파함(Charles F. Parham)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으며, 동양에서는 1913년경에 미국 선교사 칼 쥬르겐센(Carl Juergensen)에 의해 사용되었고, 부분적이 아닌 온전한 복음을 의미하는 全備福音(ぜんび ふくいん)으로 번역되었다. 그런데 全備福音을 사용했거나 사용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의 오순절과 달리, 한국 오순절은 1953년 이전에는 주로 “五殉節”을 사용하다가, 체스넛(Arther B. Chesnut)의 Full Gospel 발언과 그에 대한 허홍의 통/번역을 시작으로 1953년부터 “純福音”을 사용하고 있다.
순복음의 한 주제인 성령침례에 방언이 최초로 동반된다는 주장은 오순절운동의 핵심이며, 중생, 성화, 신유, 성령침례, 재림의 주제들을 포함하는 순복음은 성결운동과 오순절운동의 공통분모이다. 성결운동가들이나 오순절 운동가들에게 Full Gospel(純福音, 순복음)은 교회사 속에서 부분화되고 경시되기도 했던, 성경적이고, 그리스도적이고, 성령적이며 사도적인 복음의 전체가 회복된 온전한 복음이다. 그러나 성결적 순복음은 온전한 복음 속에서 “온전한 성화”와 “성령세례”를 동일한 범주로 간주하는 반면에, 오순절적 순복음은 온전한 복음 속에서 “온전한 성화”와 “성령침례”를 각각 상이한 범주로 분류하고, 성령침례에 방언이라는 최초의 증거가 동반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한국 오순절주의는 일본과 중국 오순절에서 사용했거나 사용하고 있는 “全備福音”이 아닌 “純福音”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과 한국 성결교회가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에 저항하여 Full Gospel을 全備福音이 아닌 純福音으로 번역한 것과 같은 맥락 안에 있는 것이다. 오순절주의 안에서 “純福音”은 고등비평에 의해 파괴되지 않은 성경적이고 사도적인, 중생과 성화, 신유, 방언이 최초로 동반되는 성령침례, 재림 등을 내포하는 온전하게 회복된 순전한 복음을 의미한다.
I. 들어가는 말
“순복음”(Full Gospel, 純福音)은 “오순절운동”의 별칭으로, 서로 호환될 수 있을 정도의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Full Gospel은 오순절운동에서 특징적으로 채용되는 용어로서 북미 오순절 협회(Pentecostal Fellowship of North America)의 광범위한 교리적 선언들 속에서 발견된다. 물리학에서 원자를 이해하기 위해 태양계 체계를 모델로 삼는 것처럼, 초기 오순절 신학의 구조를 드러내줄 수 있는 모델들을 설정하기 위한 그 첫 번째 모델, 교리적 모델(Doctrinal Model)로서 “Full Gospel”이 꼽히기도 한다. 세계의 다양한 흐름의 오순절운동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용어로서 그리스도 중심적인 “순복음 영성”(Full Gospel spirituality)이 제안되기도 한다. 물론, 엄밀하게 말하자면, 오순절운동을 다른 운동들로부터 구별시켜주는 척도는 성령침례에 최초로 방언을 말함이 동반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보다 넓게 “순복음”을 오순절운동의 별칭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순절운동에 중요한 “Full Gospel”(純福音, 순복음)이라는 용어를 오순절주의자들 가운데서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누구인지, 그는 어떤 의미로 그 용어를 사용했는지, 그 이후 어떤 사람들에 의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아직 포괄적으로 시도되지 않았다. 그래서 본 글은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 오순절의 역사를 더듬어 “Full Gospel”(純福音, 순복음)”의 용례들을 살펴보려 한다.
성결주의자들에 의해 먼저 사용되기 시작한 Full Gospel은, 오순절주의 안에서는 1902년 파함(Charles F. Parham)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으며, 동양에서는 1913년경에 미국 선교사 칼 쥬르겐센(Carl Juergensen)에 의해 사용되었고, 부분적이 아닌 온전한 복음을 의미하는 “전비복음”(全備福音 ぜんび ふくいん)으로 번역되었다. 그런데 全備福音을 사용하는 일본과 중국의 오순절과 달리, 한국 오순절은 1953년 이전에는 주로 “五殉節”을 사용하다가, 1953년부터 일본과 한국의 성결주의자들이 사용하고 있던 “純福音”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1962년부터 “순복음”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오순절운동 안에서 “純福音”은 고등비평에 의해 파괴되지 않은 성경적이고 사도적인, 중생과 성화, 신유, 방언이 최초로 동반되는 성령침례(성결주의는 성령침례를 온전한 성화와 동일시한다), 재림 등을 내포하는 온전하게 회복된 순전한 복음을 의미한다.
II. 미국 오순절운동과 Full Gospel
1. 파함과 Full Gospel
오순절주의자들 가운데서 맨 먼저 Full Gospel을 언급한 사람은 오순절운동을 일으킨 찰스 파함이었다. 그는 1900년에서 1901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오순절 운동을 일으키고 1902년에 첫 책『광야에서 외치는 소리』(A Voice Crying in The Wilderness)를 썼다. 그 책에서 그는 “하나님에게는 ‘비분파적인 정신’(a non-sectarian spirit)으로 무장한 수천의 온전한 사랑과 Full-Gospel의 남자들과 여자들이 있습니다.”라는 문장 속에서 “Full-Gospel”을 언급했으며, Full Gospel을 추구하는 것을 “Full Gospel Movements”라고 규정했다. 목창균은 “오순절운동은 만국성결교회 창립과 비슷 시기에 일어난 것은 사실이나, 4대 표제는 오순절운동의 복잡한 발전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출현했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순절운동 안에서 “4대 표제”를 포함하는 Full Gospel은 목창균의 주장처럼 오순절운동의 발전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출현한 것이 아니라, 탄생 단계에서 출현했다. 파함은 여전히 1905년에 캔사스 박스터(Baxter)에서 열렸던 야외 집회를 위한 광고에서 그 집회를 “사도적 신앙, 성결, 그리고 Full Gospel Movements의”(of the Apostolic Faith, Holiness, and Full Gospel Movements) 집회로 규정했다. 그리고 그는 1906년에 시무어(William J. Seymour가 이끄는 아주사 선교회 방문을 앞두고 “Full Gospel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만나 보기를 바란다.”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파함은 Full Gospel이란 예수님과 사도들과 초기 교부들이 전했던 것과 동일한 복음이라고 주장하고, 이 Full Gospel이 흑암에 묻혔었으나 회복되고 있는 것이면서,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외면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전했던 복음을 “이 복음”(This Gospel)이라고 규정하고, “이 복음”이 갖가지 교회들의 신조들과 복음에 대한 편협하고 모순된 견해들에 의해 훼손되고 외면당해 왔다고 분석했다. 또한 파함은 초기 교부들이 예수 자신이 선포하셨던 복음과 동일한 복음을 전했다고 평가했으며, 그 복음이 바로 “Full Gospel”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저녁은 교회사의 첫 오백 년을 포함했습니다. 이때는 초기 교부들이 예수 자신이 선포하셨던 것과 같은 Full Gospel을 설교함으로써 그 해가 갈보리 언덕에 진 후 황혼을 밝혔습니다.
파함은 초기 교부 시대 이후 그리고 종교개혁 시대 이전까지를 “자정”(midnight), “천년의 짙은 어둠”(1,000 years gross darkness)등으로 지칭했으며, 그 어둠의 시기는 Full Gospel이 외면당하던 시기라고 인식했다. 그런데, 그에 따르면, “닭이 우는 여명”(the cock-crowing)이 후스, 루터, 칼빈, 낙스, 폭스, 웨슬리로부터 시작되었다. 즉, 그는 어둠의 시기에 외면당했던 온전한 복음이 종교개혁과 더불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고 파악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온전한 복음이 대부분의 현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거의 방치되고 있다고 한탄했다.
파함에게 Full Gospel은 영혼뿐만 아니라 몸을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파함은 1900년 1월에 펴낸『사도신앙』(The Apostolic Faith)에 심슨(A. B. Simpson)이『신유의 복음』(Gospel of Healing)을 통해 자신이 체험한 신유 간증과 심슨이 이끌었던 금요 기도회들에서 일어났던 신유들을 간증했던 것을 실었다. 그 간증에서 심슨은 “나는 많은 사랑받는 사역자들이 영혼과 몸을 위한(for soul and body) 그분의 온전함 속에서 주 예수를 영접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라고 보고했다. 파함은 심슨의 간증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이 영혼뿐만 아니라 또한 몸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이 사실은 심슨이 파함의 Full Gospel 형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파함에게 Full Gospel은 여러 부분들을 갖는 것이며 그 부분들이 모여 전체적이고 온전한 복음을 이루는 것이었다. 파함은 오순절운동을 일으키기 직전에 성결운동가로서 “베델 신유 집과 선교회”(Bethel Divine Healing Home and Mission)를 세우고 그곳에서 다섯 가지 주제를 가르쳤다. 그는 1900년 1월에 그곳에서 “믿음으로 인한 구원(salvation by faith); 믿음으로 인한 [온전한] 성화(sanctification by faith); 안수와 기도와, 믿음으로 인한 치유(healing by faith, laying on of hands and prayer); 그리스도의 재림(전천년설); 신부를 인치며 은사들을 부여하는(고전 12장) 성령과 불 침례(the baptism of the Holy Ghost and Fire, which seals the Bride and bestows the gifts. 1 Cor 12)”를 가르친다고 광고했었다. 그 후 그는 같은 해에 베델성경학교(Bethel Bible School)를 세우고 그 다섯 가지 주제들을 가르쳤으며, 12월에 이르러 “회심, 온전한 성화, 신유, 재림, 그리고 오순절적 침례로 일컬어진 성령침례”에 대한 시험을 실시했다. 그런데 그때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 문제가 이슈가 되었다. 그와 학생들은 사도행전 연구를 통해 그 성경적 증거(the Bible evidence)가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으며, 이것은 오순절운동의 신학적 기초가 되었고, 성결주의와 오순절주의를 구분짓는 시금석이 되었다. 그리고 파함은 오순절운동을 출발시키고 10여년 후에도 여전히 그 주제들을 가르쳤으며, 그는 “이 복음”(This Gospel)이 이 주제들을 망라한다고 주장했다.
“이 복음”은 세 가지 주제를 망라합니다. 즉, 죄 용서(요 1:29), 질병과 고통을 일으키는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마 8:17), 그리고 성령으로 침례 주는 것(요 1:33, 막 1:8)입니다. “이 복음”은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모든 열매를 맺을 뿐만 아니라, 지혜, 지식, 믿음, 병 고치는 은사, 이적 행함, 방언, 영 분별, 예언, 그리고 방언통역 같은 “성령의 은사들”(the gifts of the Spirit)도 동일하게 가능합니다.
그런데 파함은 심슨이『신유의 복음』(Gospel of Healing)에서 “나는 신유(divine healing)가 그 복음(the gospel)으로 간주되어야만 한다고 결코 생각한 적이 없다. 신유는 그 복음의 부분이다(It is part of it)”라고 말한 것을 인용했다. 파함에게도 신유는 복음의 일부였으며, 신유라는 부분적 복음은 구원의 복음, 성화의 복음, 성령침례의 복음, 재림의 복음이라는 네 가지 부분적 복음들과 합하여 “온전한 복음”(Full Gospel)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구원의 은혜와 성화의 은혜를 포함하는 그리고 모든 표적과 기사들과 여러 이적들과 성령의 은사들을 동반하는(wrought with) 복음을 “온전한 복음”(The Full Gospel wrought with signs and wonders, divers miracles and gifts of the Holy Ghost.)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파함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역시 그렇게 부분적 복음들이 합쳐진 복음을 “온전한 복음”(Gospel in all its fullness)으로 파악했다.
파함은 Full Gospel은 비분파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Full Gospel의 사람들은 스스로 높아진 사람의 지도력을 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파함은 Full Gospel의 사람들은 지도자로 자칭하는 사람들을 따라 분열하지 않는 “비분파적 정신”(a non-sectarian spirit)으로 무장한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진정한 예수의 제자들은 대혼란기에 “옹색한 신조주의를 버리고, 교파주의를 망각의 강에 던져 버리고” Full Gospel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함은 부분적인 복음들을 통합하는 온전한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또한 하나로 온전하게 통합되어야한다고 말한 것이다.
Full Gospel은 비분파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파함에 따르면 마귀의 역사에 의해 Full Gospel 운동이 분열되었다. 파함은 구약시대에 기브아 사람들이 속임수로 이스라엘의 몸을 더럽혔던 것처럼, 현대의 기브아 사람들이 Full Gospel 운동들을 장악해왔다고 한탄했다. 그에 따르면 Full Gospel 안에 있는 현대 기브아 사람들은 “짐승들을 선동하고, 육신을 즐겁게 하고, 육체를 매혹시키는 육감적 나타남들(fleshly manifestations)에 현혹되어 온 사람들”이다. 그는 마귀가 “캑캑거림, 재잘거림, 바람 빨아들임과 함께 오순절의 모조품을 준다”고 보았다.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그들의 성품을 개선시키는 것”(developing their character in God)보다는 그런 “육체적 감각들(fleshly sensations)의 만족만을 추구하는 데 시간을 허비한다.” 그의 이러한 비판의 대상은 아마도 시무어가 주도했던 아주사 집회였을 것이다. 반면에 그에게 정통 오순절적 Full Gospel은 진정한 언어 방언을 말하는 것, 자아를 죽이고 진정한 십자가를 추구하며, 건강하고 튼튼한 몸과 완전한 성결을 준비하는 것을 포함한다. Full Gospel은 파함에게 종말적이며 선교적이었다. 파함은 Full Gospel을 받아들이는 것을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과 병렬시켰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이 세대의 끝은 천국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어야 오는 것인데, 이것을 Full Gospel 운동들이 수행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Full gospel 운동들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이 세대의 끝을 앞당기기 위해 천국 복음, Full Gospel을 전 세계에 충성스럽게 전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함은 Full Gospel을 종말적인 것으로 파악한 것이다.
2. 시무어와 Full Gospel
오순절운동을 1906년에 국제적으로 파급시킨 시무어와 그의 공동체에게 Full Gospel은 부분적이 아닌 전체적 복음이었다. 시무어의 공동체는 당시까지의 복음을 “부분적 복음”(Partial Gospel)이라고 규정하고 이제 “순복음/전체적 복음/총체적 복음”(Full Gospel)이 회복된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포했다. 시무어는 “부분적 복음”(Partial Gospel)과 “전체적 복음”(Full Gospel)을 갈라서 명확하게 구분하였다. 그 공동체에 따르면 “모든 시대들 동안 사람들은 부분적인 복음(a Partial Gospel)을 전해왔다. 복음의 일부분이 세상이 어둠의 시대들 안에 있을 때 남아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중요한 시대마다 진리를 회복시켜 오셨다. 루터에 의해 이신득의 복음이 회복되었고, 웨슬리에 의해 성결의 복음이 회복되었으며, 컬리스(Charles Cullis)에 의해 신유의 복음이 회복되었고, 이제 성령침례의 복음이 회복되고 있다.
모든 시대들 동안 사람들은 부분적인 복음(a partial Gospel)을 전해왔습니다. 복음의 일부분이 세상이 어둠의 시대들 안에 있을 때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진리를 회복시키시기 위해 때때로 사람들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분은 이신득의 교리를 세상에 되돌려 놓으시기 위해 루터를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성경적 성결을 세우시기 위해 존 웨슬리라는 다른 개혁가를 일으키셨습니다. 그 다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신유론을 세상에 회복시킨 컬리스 박사(Dr. Cullis)를 일으키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성령침례를 회복시키고 계십니다.
시무어의 이런 전체적인 복음의 회복이라는 순복음 이해에는 파함의 영향력이 서려있다. 시무어의『사도신앙』에 위와 같은 글이 올라오기 두 달 전에 파함은 1906년 8월에 텍사스주 브루너(Brunner)에서 열린 캠프미팅에서 루터에 의한 칭의와 웨슬리에 의한 성화의 회복에 대해 말했었다.『휴스턴 이야기』(Houston Chronicle)는 “사도적 회복”(Apostolic Rally)이라는 제목으로 파함에 대한 기사를 썼다. 그 기사에 따르면, 파함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만민에게 복음이 전해져야만 한다는 것이 성경에 예언되어 있다고 말했다. 파함은 형식주의가 진정한 종교의 뿌리를 뽑아 던져버렸을 때 성경적 종교가 쇠퇴했다고 보았다. 그런데 파함에 따르면, 루터가 믿음에 의한 칭의론을 부활시켰으며, 웨슬리는 성화의 진리를 회복시켰고, 또한 다른 사람들이 잃어버렸던 나머지 진리들을 회복시켰다. 파함이 주도했던 사도 신앙 운동은 모든 교회와 모든 분파 그리고 모든 시대로부터 근본적인 신앙(the fundamental faith)을 모아왔다.
시무어에게 Full Gospel은 주로 기독론적이었다. 시무어는 중생(구원, 칭의), 온전한 성화, 신유, 성령침례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기반으로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포괄적으로 규정하면서 그것을 “Full Gospel”이라고 명명한다. 시무어의 공동체에 따르면, 오순절과 방언은사를 받은 페러우(Lucy F. Farrow)와 워렌(J. A. Warren) 그리고 시무어는 Full Gospel을 전하도록 휴스턴으로부터 로스앤젤레스로 주님의 보내심을 받았다. 순복음의 메신저 시무어가 전하는 복음은 칭의, 온전한 성화, 신유, 성령침례 등 “속죄의 모든 것”을 전하는 Full Gospel이었다.
이 보배로운 속죄의 메신저들은 칭의, 성화, 치유, 성령침례, 그리고 따르는 표적이라는 그 속죄의 모든 것을 전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큰 구원을 소홀히 한다면 어떻게 피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 로스앤젤레스에서 표적과 기사들이 순복음(Full Gospel)의 선포에 따르도록 허락하심으로써 그분의 말씀을 확증하고 계십니다.
시무어는 자신이 전하는 구원을 “온전한 구원”(full salvation)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몸과 인류의 몸을 대비시켰다. 그에게 그리스도의 몸은 온전하셨으며, 인류의 몸은 불완전했다. 그리스도의 몸은 온전하여 죄와 질병을 모르는 몸이었고, 그 몸이 불완전한 몸을 위해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그분의 온전하심”(His fullness)에 따라 속죄를 통해 “온전한 구원”(full salvation)을 제공하신다. 그리스도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부활하셔서 지금 살아계시고, 구원하고 계시며, 성화시키시고, 성령으로 침례를 주고 계시다. 그래서 이 복음은 “예수님의 온전한 복음”(the Full Gospel of Jesus)이다.
시무어 공동체에게 Full Gospel은 또한 신론적인 것이었다. 그 공동체는 Full Gospel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충만하심”(God’s fullness)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해 오신 것은 어떤 것이든 그 모든 것을 지키고, 모든 명령을 준행하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대로 살아야만 한다. 시무어의 공동체에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그 모든 명령과 말씀이 곧 Full Gospel이기 때문이다.
시무어는 그 순복음의 선포에는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Full Gospel에는 능력이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로스앤젤레스에 Full Gospel의 선포에 따르는 표적과 기사를 허락하셔서 자신의 말씀을 확증하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 표적과 기사에는 “신유”와 “귀신 축출” “미혹의 영 방어”등이 포함되었다. 부분적인 복음(a part of the Gospel)을 전하지 않고, 예수의 모든 말씀을 믿으며 예수의 모든 교리(all the doctrine of Jesus)를 전하면,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고, 병을 고치는 표적이 뒤따른다. Full Gospel로 돌아가는 것은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시무어의 공동체에게 Full Gospel은 종말적이며 선교적이었다. 그의 공동체에서 행해진 한 방언 통역을 통해 주님께서는 순복음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한 종말시대에 모든 이방 족속들에게 전파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시간이 촉박하다. 나는 하나님의 성령 충만한 사람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Full Gospel을 전하도록 보내려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시무어의 부분적이 아닌 전체적인 Full Gospel은 중생, 온전한 성화, 신유, 방언이 동반되는 성령침례, 그리고 재림을 내포했다.
시무어와 그의 공동체에게 방언은 Full Gospel의 구성 요소인 성령침례의 “외적 증거”(outward evidence)였다. 시무어는『사도신앙』1호에서 성령침례의 증거를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즉 이중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에게 성령침례의 내적인 증거는 “하나님의 사랑”(Divine love), 즉 “자애”(charity)이며, 이것이야말로 성령침례의 “진정한 성경적 증거”(the real Bible evidence)였다. 내적인 진정한 증거가 외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방언이었다.
3. 더함과 Full Gospel
오순절운동의 성화론적 방향 전환자 더함(W. H. Durham, 1873–1912)은 Full Gospel을 중요시했다. 더함은 자신이 이끄는 사역의 이름에 Full Gospel을 포함시켰다. 더함은 오순절운동에 합류하기 전, 성결운동가로서 시카고에 세운 선교 센터의 이름을 “The North Avenue Full Gospel Mission”이라고 불렀었다. 그는 자신의 간증문에서 방언이라는 성경적 증거(the Bible evidence)를 동반하는 오순절적 성령침례를 받기 전까지 4년 동안 “Full Gospel”을 위해 사역했다고 회고했다. 오순절운동에 합류한 다음에도, 그는 자신이 이끄는 선교회의 이름을 “The Full Gospel Assembly”라고 칭하기도 했다. 더함의 선교회 건물의 전면이 담긴 한 사진 속의 간판에는 “North Ave. Full Gospel Assembly”문구가 선명하다. 그는 Full Gospel을 헌금에 대해 언급하면서 거론했다. 더함은 헌금에 대해 말하면서, 근방에 오순절적 또는 Full Gospel 사역이 없을 때, Full Gospel에 비호의적인 다른 사역들이나 교회들을 후원하기보다는 차라리 해외 선교를 후원하라고 권했다. 그는 그 정도로 Full Gospel을 특별하게 여겼다.
더함에게 Full Gospel은 완전한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온전함에 대한 모든 점들을 담고 있는 진정한 복음이었다. 그는 그가 편집한『오순절 증언』(Pentecostal Testimony)은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온전한 구원(real full salvation in Christ)과 진정한 성령침례(the real baptism in the Holy Spirit)를 위해 존재한다.”고 썼다. 더함은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복음의 모든 점들”(all points of the Gospel)을 망라하여 오순절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책을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역”(The Work of Christ, and of the Holy Ghost)이라는 이름으로 펴내려고 했다. 더함은 “저는 예수께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시기 위해 그분의 보혈을 흘려주시고, 우리의 완전한 구원(complete salvation)을 위해 죽으셨다는 a Full Gospel이 세상에 전해질 시간이 왔다는 것이 너무도 기쁩니다”라는 스캇이라는 사람의 간증을『오순절 증언』에 싣기도 했다. 그는 세상이 진정한 복음(the true Gospel)을 기다려 왔으니, 사람들이 만든 모든 이론들(all theories of men)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모든 그분의 영광스러운 온전함 안에서”(Christ in all His glorious fullness) 전하자고 독려했다.
더함은 파함과 시무어가 다루었던 Full Gospel의 주제들인 “중생과 온전한 성화, 신유, 방언을 동반하는 성령침례, 재림”을 또한 언급했다. 세 사람의 신학은 거의 유사했다. 특히 셋은 모두 온전한 성화를 주장했다. 의견은 온전한 성화의 시점에서 갈렸다. 파함과 시무어는 중생이후에 온전한 성화를 주장했으나, 더함은 중생과 동시에 얻는 온전한 성화를 주장했다. 더함에게 그리스도는 갈보리 언덕에서 구원과 온전한 성화를 동시에 주시는 분이다. 더함은『오순절 증언』이 온전한 성화를 얻게 하는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완성된 구속 사역(the Finished Work of redemption on the Cross of Calvary), 성령침례와 방언이라는 그 증거” 그리고 “그리스도의 전천년 재림과 병자 치유”를 위해 존재한다고 썼다. 더함에게 중생의 수행자는 인물(a person)이고 그 요소(the element)는 물 안(in)에서 또는 물로(with)인 것처럼, “성령침례 수행자, 수여자(the Agent, the Baptizer)는 그리스도이시며, 그 요소(the element)는 성령 안(in)에서 또는 성령으로(with)”이다.
4. 미국하나님의성회와 Full Gospel
미국하나님의성회는 출발 당시부터 Full Gospel을 그 기치로 내걸었다. 1914년 미국하나님의성회 창립 총회 의사록(Minutes of the General Council of Assemblies of God)은 “서문”(introduction)으로 시작했다. 그 역사적 회의록의 서문은 하나님께서 미국하나님의성회를 일으키시기까지 14년 동안 사람들을 인도해 오셨던 것을 언급하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그 서문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인도하신 목적은 “온전한 사도적 복음 표준의 경험과 교리”(full apostolic gospel standard of experience and doctrine)를 추구하게 하는 것이었다. Full Gospel은 미국하나님의성회의 설립과 그만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그 성회의 존재목적과 같은, 그 성회의 깃발과 같은 것이었다.
1914년 의사록은 파함과 시무어를 거쳐 온 세계로 퍼져나간 Full Gospel의 역사를 간략하게 언급했다. 그 의사록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을 캔사스(Kansas)에 부으시기 시작하셨다고 회고했다. “캔사스”는 파함이 1901년에 캔사스주 토페카에서 Full Gospel 오순절운동을 시작시킨 것을 의미한다. 그 의사록은 또한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를 거론하며 거기로부터 그 부으심이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회고했다. “로스앤젤레스”는 시무어가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아주사 거리에서 Full Gospel 오순절운동을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한 것을 의미한다.
그 의사록은 Full Gospel을 “사도적”(apostolic)이라고 규정했다. 이런 규정은 파함이 Full Gospel을 예수님과 사도들과 초기 교부들이 전했던 복음으로 삼고, Full Gospel을 사도적 신앙과 일치시켰던 전통을 잇는 것이었다.
미국하나님의성회는 Full Gospel ministry를 언급했다. 그 성회 총회는 1916년에 신앙진술문(the statement of fundamental truths)을 작성했다. 그런데 그 진술문 서두에 따르면, 그 진술문은 신조(creed)가 아닌, 단지 사역(ministry)을 위한 일치의 기초로 간주되었다. 그 진술문은 영감된 것도 아니고, 성경 전체의 모든 진리를 내포하고 있는 것도 아닌, 오직 “a Full Gospel ministry”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만 담고 있었다.
그 신앙진술문의 17개 조항은 Full Gospel의 다섯 주제들, 중생, 온전한 성화, 신유, 방언을 동반하는 성령침례, 재림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 진술문의 제 4조의 주제는 “인간의 구원”(The Salvation of Man)이었으며, 6조는 방언이라는 최초의 표적(the initial sign of speaking in tongues)을 동반하는 “성령침례의 온전한 성취”(The Full Consummation of the Baptism of the Holy Ghost)이었으며, 7조는 “온전한 성화, 모든 신자들을 위한 목적”(Entire Sanctification, the Goal for all Believers), 12조는 “신유”(Divine Healing), 15조는 “예수의 임박한 재림과 천년동안 다스리심”(The Imminent Coming and Millennial Reign of Jesus)이었다.
그런데 미국하나님의성회는 1961년에 제9항의 제목을 “완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에서 “완전한”을 빼고 그저 “성화”(Sanctification)라고 잡았다. 미국하나님의성회는 75주년 기념 책에서 그 핵심교리를 “구원자, 치료자, 성령침례 수여자, 다시 오실 왕”으로서 그리스도라고 표명했는데, 이 언급은 더함처럼 “구원자”에 “성화자”를 겹쳐놓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5. 케케이넌과 Full Gospel
서문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핀란드 출신이며 풀러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가르치고 있는 조직신학자 케케이넌(Veli-Matti Kärkkäinen)은 2007년에 “순복음 영성”(Full Gospel spirituality)을 오순절주의의 통합적 성격으로 제안했다. 그는 루터주의와의 대화를 시도하면서 오순절주의자들이 Full Gospel을 주장하는 것은 다른 교회들이 외치는 복음을 그저 저급한 것으로 여기는 것인가라고 질문하고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시도했다. 그는 그 대답에서 오순절주의와 루터주의의 공통점을 다루고, 또한 오순절주의가 다른 주의들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오순절주의의 독특성을 제시하면서 Full Gospel spirituality를 언급했다.
케케이넌은 Full Gospel의 중심은 성령이 아닌 다중적 모습의 그리스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오순절주의의 중심은 성령이 아니시며, 따라서 성령운동(spirit movement)도 아니고, 오순절주의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Full-Gospel” 영성이라고 보았다. 그는 Full Gospel 영성은 “의롭게 하시는 구원자”(Justifier Savior), “성화자”(Sanctifier), 중생 이후 대부분 최초의 증거로서 방언을 동반하는 “성령으로 침례주시는 자”(Baptizer with the Spirit), “몸을 고치시는 치료자”(Healer of the body), “곧 오실 왕”(soon-coming King)이라는 그분의 다중적 역할들(manifold roles)로 그려지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고 파악했다. 그는 이런 오중적(fivefold) 또는 사중적(fourfold) 구조에서 “Full Gospel”이라는 용어가 출현했다고 보았다. 그는 오순절주의에게 성령은 중심이라기보다는 중재자(channel)라고 규정했다.
케케이넌에게 Full Gospel은 전통적인 용어인 catholicity와 유사성을 갖는다. 그는 Full Gospel은 “catholicity”에 대한 고대적 개념과 유사한 것으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보편성” 또는 “다방면성”으로 해석되어 왔던 catholicity를 “온전함”(fullness) 또는 “완결”(completion)이라고 해석했다. 그에게 복음의 catholicity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그분의 은사가 부족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모든 은사들의 체현이신 그리스도의 온전함을 결코 다 써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오순절주의자들은 그들의 Full Gospel이 그리스도의 온전함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약속들의 온전함(the fullness of God’s promises)에서 무언가를 더 누리기를 갈망한다고 말했다.
III. 동양 오순절운동과 순복음
1. 일본 오순절운동과 Full Gospel
1) 주르겐센 가족과 Full Gospel
미국인 주르겐센(Carl. F. Juergensen) 가족은 일본에서 “Full Gospel Mission”을 수행하였다. 그들은 일본 하나님의 성회 건설에 가장 큰 공헌을 남긴 사람들이었다. 그 가족은 1913년에 일본에 도착하여 도쿄에서 사역을 시작했으며, 1916년경에 일본인 회심자들과 함께 사진을 한 장 찍어 남겼다. 그 사진 속 인물들의 배경은 당시 선교회 본부로 사용했던 건물이었다. 그 건물 정면 우측 상단에 간판이 하나 걸려있었는데, 거기에는 영문과 일문이 새겨져 있었다. 그 영문은 “Full Gospel Mission”이었다. 주르겐센 가족은 일본 선교 초기부터 그들의 선교의 초점을 “Full Gospel”에 맞추었던 것이다.
주르겐센 가족들의 Full Gospel 선교에는 중생, 성화, 신유, 성령침례, 임박한 재림 등 여러 주제들이 포함되었다. 일본의 첫 미국 하나님의성회 오순절 선교사 칼 주르겐센은 1914년에 중생, 신유, 성령침례에 대해 말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구원하실 수 있는 구세주에 대해 가르쳤고, 그들은 평화를 얻고 그들의 죄들은 씻겨나갔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어떤 사람들이 예수를 위해 그들의 우상, 담뱃대와 담배를 포기해왔으며 다른 사람들은 치유(healing)를 받아왔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몇 일본인들이 성령침례를 받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의 딸 마리 주르겐센(Marie Juergensen)에 따르면 어떤 작은 주일학교 어린이는 독감에 걸렸으나 예수께 기도하여 치료받았다. 칼 주르겐센은 어떤 사람들은 성령침례(the baptism of the Holy Ghost)를 받기 원했다고 보고했다.
칼 주르겐센은 Full Gospel을 “전비복음”(全備福音 ぜんび ふくいん)으로 번역하여 사용하였다. 그는 위의 사진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의 일본 선교 센터 이름을 영어로 “Full Gospel Mission”이라 붙이고, 그 밑에 일본어로 “全備福音傳道館”(Zenbi Fukuin Dendokan)이라고 번역하여 붙였다. 그는 나카다 쥬우지가 “純福音”(じゅん ふくいん)이라고 번역한 것을 따르지 않았다. 칼 주르겐센은 쥬우지가 그렇게 번역한 사실을 몰랐을 수도 있다. 칼 주르겐센은 Full Gospel을 부분적인 복음이 아닌 전체적인 복음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그의 아들 존 주르겐센(John W. Juergensen)은 Full Gospel보다는 Pentecost를 더 선호했던 것 같다. 그는 1923년에 일본의 모든 도시에 “오순절 교회”(Pentecostal church)가 세워지기를 바라며 하나님께 일본사람들을 위해 “진정한 회개”(real repentance), “성화”(sanctification), 그리고 “성령침례”(the Baptism in the Spirit)를 전할 일군들을 일으켜 주시기를 기도했다. 그는 1929년에 이바라키현(茨城県, いばらきけん)에서 한 일본인 여성이 성령이 주시는 방언을 말했다는 것을 보고하고, 나고야(名古屋, なごや)에서도 “그 침례”(the baptism), “오순절적 경험”(Pentecostal experience)이 일어나기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1932년에 존 주르겐센은 나고야에서 몇 명의 일본인들과 두 명의 한국인(the Korean worker and prospective Korean worker)이 사도행전 2장 4절에 따라 “그 침례”(the baptism)을 받았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임박한 재림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이바라키 현에서 성령침례를 받았던 그 여성의 방언이 통역되었는데, 그 내용은 “예수께서 그분의 신부들을 위해 곧 오실 것이다(Jesus was soon coming)”라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2) 유미야마 키요마와 Full Gospel
존 주르겐센의 일본 선교의 가장 큰 일본인 열매는 유미야마 키요마(弓山 喜代馬, ゆみやま きよま, Kiyoma Yumiyama)였다. 1922년 또는 1923년에 유미야마는 도쿄의 혼고 지역 후지마에 있는 오순절 교회(Pentecostal church)에 출석했는데, 존 주르겐센이 그곳에서 목회하고 있었다. 유미야마는 존과 그의 아내 에스더가 이끄는 오순절 성경 공부(Pentecostal Bible study)에 참석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방언을 말하는 오순절적 성령침례를 경험했다.
나는 일곱 명의 다른 사람들, 그 선교사 부부와 함께 기도하며, 예배하고, 성경을 공부했다. 마지막 날에 내 안에 하늘로부터 오는 큰 파동이 일었는데, 그것은 지금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성령께서 친히 나를 채우셨고, 성령께서 나로 하여금 자유롭게 기도하고, 말하고, 예배하고, 울고, 웃고, 그리고 구르게 하셨다.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다.
유미야마는 1928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1930년 타키노가와에 있는 신쇼교회(神召教会)의 담임목사가 되었다. 유미야마의 사역도 또한 방언이 동반되는 오순절적 성령침례를 포함했다. 그는 1947년 6월에 한 여인이 하나님의 능력 아래서 한 시간 가량 떨며 울며 기도하다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큰 소리로 방언(異言) 기도를 하게 되었다고 보고했다. 유미야마는 그런 현상을 성령으로 침례를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全備福音이나 純福音이란 말을 사용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아마도 Pentecostal을 강조했던 존 쥬르겐센의 영향으로 그는 Full Gospel보다는 “오순절”이란 용어에 더 익숙했을 것이다. 이런 추측은 수주키의 언급과 일치한다. 수주키는 유미야마가 1922년경에 주르겐센 가족과 사역을 시작했는데, “당시에 주르겐센 가족은 全備福音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3) 쿠트와 Full Gospel
쿠트(Leonard W. Coote)의 일본 선교는 Full Gospel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22세의 영국인 쿠트는 1913년 10월에 일본에 가 한 회사의 사원이 되었다. 그는 당시에 그 어떤 형태의 “the Full Gospel Movement”도 접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쿠트는 신앙고백을 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거듭나지 못했었다. 그는 “성경 전체”(the whole of the Bible)가 하나님의 계시이며, 성경 전체를 읽는 것, 성경 전체(the whole Bible)를 삶의 표준과 척도로 삼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의 의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러다가 1914년 2월 20일에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깊이 알게 되었다. 얼마 후 존 주르겐센이 이끌던 집회에 참석해 방언을 동반하는 성령침례를 받고 오순절 사역을 펼쳤다. 그가 수행하고 있던 “일본 오순절 확대 운동”(Japan Pentecostal Extension Campaign)의 목적은 Full Gospel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 운동의 목적을 “우리 주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Full Gospel에 대한 지식을 일본 내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전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Full Gospel에 대한 증언을 듣지 못한 채 일본에 살고 있는 6,000만 명의 영적 필요에 부담을 갖고 있었다. 그만큼 쿠트에게 Full Gospel은 자신의 사역과 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Full Gospel을 어떤 일본 단어로 번역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쿠트에게 Full Gospel은 “사도적 복음”(apostolic gospel)이었다. 그는 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육적이고 물질적 필요들에 처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그런 필요들 때문에 그들의 영적 벌거벗었음을 보지 못하게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는 그 지진 소식이 많은 잠자던 사람들을 깨우고, 그들을 “사도적 복음”(an apostolic gospel)을 전하도록 보낼 수 있기를 바랐다. “사도적 복음”은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미하나님의 성회 제1차 보고서 서문에 등장했던 어구였다. 쿠트는 “사도적 복음”을 사도들이 전했던, 신약성경이 전해주는 복음을 의미했을 것이다.
쿠트의 Full Gospel에는 중생, 신유, 성령침례, 재림 등의 다면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일본 선교를 보고하면서 “회심자”와 “육적인 병들”의 치료를 언급했다. 쿠트는 성경에서 신유에 대해 읽었지만 그것을 믿지는 않았다가, 자신의 막창자꼬리 급통증(appendicity)이 치료받는 경험을 통해 신유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는 또한 성령침례에 대해 말했다. 그는 회심 3년 후 1917년 11월 19일에 오순절에서처럼 성령께서 오시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구별되는 세 가지 방언들을 말하게 되었다. 그는 “그 침례”를 언급했는데, 그가 “물 침례”를 따로 말했기 때문에, “그 침례”는 성령침례를 일컫는 것일 것이다.
군중들이 선교회에 밀려들고 있습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여 신약성경을 사려고 아우성칩니다. 사역자들은 영혼들에 민감하며, 영혼들을 위해 열심을 내고 있으며, 지휘하는 사람들에게 순종합니다. 사람들은 물 침례를 받기도 전에(being baptized in water) “그 침례”(the-baptism)을 받고 있습니다. 회심자들(converts)은 그런 일을 듣기도 전에 헌물을 드리고 있으며, 죄인들조차 영혼 구원을 받기도 전에 육적 병들(bodily complaints)을 고침받고 있습니다.
쿠트는 1919년에 쓴 선교 소식에서 여덟 명이 “성경적 증거”(Bible evidence)를 동반하는 성령침례를 받았다고 보고했다. 그는 1924년 1월에 쓴 글에서 요코하마에서의 사역을 소개했는데, 그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했다. 또한 쿠트는 1925년에 발생했던, 성령의 사역에 의한, 사도행전 2장 4절적 증거(evidence)인 방언을 동반하는 침례를 오순절 날 부어졌던 “성령침례”(Spirit Baptism)라고 말했다. 그의 Full Gospel에는 또한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이 포함되었다. 쿠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인생은 짧고 영원은 길며, 예수께서 곧 오실 것(the Jesus is coming soon)이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권고했다.
2. 한국 오순절운동과 순복음
1) 럼시와 Full Gospel
한국에 오순절을 전파한 최초의 선교사로 알려져 있는 미국인 럼시(Mary C. Rumsey)는 중생과 신유, 그리고 성령침례를 사역의 주요 주제로 삼았다. 그녀가 한국에서 수행했던 오순절적 선교에 어떤 주제들이 포함되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문헌상으로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그녀가 일본 선교사로 활동하던 시기에 미국에 보낸 선교보고서에서 그녀가 한국에서 수행했을 선교에 대해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녀는 일본 선교 현장에서 발생했던 중생과 성령침례에 대해 말했다. 그녀는 1928년 겨울에 일본에서 미국에 보낸 글에서 그 해 1월 이래로 50명 이상의 일본인들이 예수를 그들의 구주로 영접하였으며, 그들 중에 상당수가 성령침례(the baptism of Holy Spirit)를 받았다고 보고했다. 럼시가 Full Gospel에 대해 언급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녀가 Full Gospel의 요소들에 대해 언급한 것은 분명하다. 럼시와 함께 사역했던 허홍 목사가 럼시가 말한 Full Gospel을 어떻게 통역했을지도 자료가 없어 알 길이 없다.
럼시는 Full Gospel보다는 오순절 신앙(Pentecostal faith)이라는 말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녀는 그의 보고서에서 일본에 남성을 위한 오순절적 성경 학교(Pentecostal Bible Training School)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리고 “진정한 오순절 집회들”(the real Pentecostal meetings)이 다시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럼시는 허홍을 만나 “오순절 신앙을 선교하러 왔다.”라고 말했다. 변종호에 따르면, 럼시의 생활과 말을 통해 허홍이 배운 것은 “오순절 신앙이란 방언을 하는 것, 기도하여 병고침을 받는 것,” 즉 성령침례와 신유였다.
2) 박성산과 純福音
박성산(朴聖山)은 1933년에 한국에서 오순절 목회를 시작했다. 그는 미국인 일본 선교사 존 주르겐센(John Juergensen)의 영향을 받았다. 1930년에 나고야에 첫 오순절 교회의 탄생을 알린 존 주르겐센은 한 명의 한국인 사역자(the Korean worker)와 한 명의 예비 사역자(the prospective Korean worker)가 1932년 5월에 사도행전 2장 4절에 따라 “그 침례”(the baptism)를 받았다고 전했었다. 1952년 부활절에 한국에 내한했던 오스굿(Howard C. Osgood)은 당시 한국에는 존 주르겐센에게서 훈련을 받은 한 명의 한국인 목사가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존 주르겐센이 말한, 1932년에 성령침례를 받았다는 “한국인 사역자”(the Korean worker)는 박성산일 것이다. 박성산은 1930년에 존 주르겐센이 이끈 나고야(名古屋, なごや) 오순절 교회에 합류했고, 후에 합류한 배부근(존 주르겐센이 “예비 사역자”[prospective Korean worker]라고 칭했던)과 함께 그 교회 내에 설립된 성령신학원에서 신학교육을 받았으며, 1932년에 방언을 동반하는 성령침례를 받고 나고야조선성서교회에서 동년 12월까지 사역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1933년에 한국에 돌아와 서빙고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을 것이다.
오순절적 성령침례를 경험한 박성산은 오순절적 사역을 펼쳤다. 박성산의 자료가 극히 부족하기 때문에 그가 “純福音”을 언급했는지, 그리고 어떤 오순절적 사역을 펼쳤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아마도 존 쥬르겐센의 영향을 받았던 박성산은 순복음보다는 오순절에 익숙했을 것이다. 1923년 즈음에 “순복음”은 한국 성결주의자들 사이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었으므로, 박성산에게 그 용어는 성결주의를 의미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아마도 박성산은 의식적으로 순복음이 아닌 오순절이라는 말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박성산은 오순절적 설교를 통해 성령세례의 표적은 방언이며 바람직한 기독교 신앙은 사회 참여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가 주장한 오순절적 신앙은 사도행전에 근거한 신앙이었는데, 방언, 신유, 권능에 대한 것이었으며, 이 세 가지는 성령세례를 통해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그가 주장한 오순절 신앙은 사도행전에 입각한 “근본주의” 신앙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박성산은 고등비평을 신뢰하지 않았다.
박성산은 1951년에 미국에 편지 한 통을 보냈는데 그 서신에서 성령침례를 언급했다. 그 서신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며 미군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던 손종영(Johng Young Sohn) 목사를 통해 전해졌다. 그리고 미국하나님의성회 기관지, Pentecostal Evangel은 10월 호에 그 서신을 실었다. 박성산은 그 서신에서 순천오순절교회를 목회하던 박헌근 장로(the Elder Park)의 순교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그는 그 서신의 말미에서 그곳에서의 순복음적 사역을 소개했다. 박성산의 서신에 따르면, 폭격으로 파괴된 교회 대신 한 여자고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집회에 감리교 성경학교를 졸업한 한 여성과 장로교의 장로 한 분이 집회에 참석하여 성령침례(the Baptism in the Holy Spirit)를 받고는 열정적인 일원이 되었다. 비록 그는 성령침례에 대해 다른 설명을 달지는 않았지만, 그가 의미하는 성령침례는 그가 경험한 것처럼 방언을 동반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3) 곽봉조와 純福音
곽봉조(郭鳳祚)는 쿠트의 Full Gospel 선교의 열매들 중 하나였다. 쿠트는 1925년에 일본에서 열린 한 집회에 여섯 개 나라의 사람들이 참석했다고 말했는데, 그가 열거하는 나라들 중에 한국도 있었다. 그는 1929년 오사카(大阪, おおさか) 근교에 “이꼬마성서학원”(生駒[いこま]聖書学院)을 설립했는데, 한국인들도 그 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 곽봉조는 1929년에 이꼬마성경학원에 입학하여 1932년에 졸업하고, 1933년에 오사카 “조선 예수교 오순절교회”를 세웠다. 그런데 곽봉조가 Full Gospel이나 全備福音 또는 純福音을 사용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종합해 보자면, 1930년대에서 1940년대의 조선 오순절 사람들은 “순복음”이 아닌 “오순절”에 익숙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곽봉조가 처음 세웠던 교회가 “조선예수교오순절교회”였다. 럼시가 허홍에게 전했던 신앙도 “오순절 신앙”이었고, 1947년에 순천에 세워진 “대한기독교 순천오순절교회”와 1950년 4월 9일에 순천에서 열렸던 “제1회 대한기독교 오순절교회대회”가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물론 자료의 부족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 기간 중 조선 오순절 안에서 “순복음”이란 말의 자취를 찾을 수 없다.
4)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와 純福音
아시아 오순절 안에서 “純福音”의 사용은 한국만의 현상이다. 칼 주르겐센이 번역했던 “全備福音”은 일본 오순절주의자들에게 전승되지 않은 것 같다. 또한 성결주의자들이 사용하고 있던 “純福音”도 일본 오순절주의자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던 것 같다. 대만의 中國神召會台灣區議會는 “The Assemblies of God”을 “神召會”라고 번역하고, Full Gospel을 “全備福音”(quán bèi fúyīn)이라고 번역했다. 일본인 오순절 역사신학자 鈴木正和에 따르면, “오직 한국 오순절 교회들만이 ‘純福音’을 사용한다. 그리고 오늘날 일본 오순절주의자들은 “純福音”을 조용기의 여의도순복음교회와 그를 중심으로 형성된 그룹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 오순절을 공부한 박성산, 배부근, 그리고 박헌근, 곽봉조 등은 일본 오순절주의자들로부터 “純福音”이란 용어를 전수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것은 1953년 이전 조선 오순절 교회 안에서 “純福音”의 부재를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오순절 안에서 Full Gospel(純福音)은 미국하나님의성회 공식 선교사들의 내한과 함께 언급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김익진은 한국에서 특이한 오순절을 “순복음주의”(Sunbogeumism)라고 규정하면서 그것의 형성에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선교와 신학적 도움이 주요했다고 평가했다. 당시 내한 선교사들의 Full Gospel 언급이 그의 평가를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 1954년 세계선교부 리차드(Louis P. Richard) 선교사는 김해군 맥도리에 “純福音麥島敎會”를 세웠다. 스테츠(John Stetz) 선교사는 1958년 9월에 한국에서 오순절 부흥 캠패인의 성공을 알리며, 선교사들이 Full Gospel을 전하도록 한국인 “전”씨(Mr. Chun)가 돕고 있다고 미국에 전했다. 그리고 존스톤 선교사는 1958년 11월에 기독교대한 하나님의 성회 총회에 대해 본국에 보낸 선교 보고에서 Full Gospel을 언급했다. 그는 그 총회가 사역자들과 기관들이 함께 모여 진행되었다고 보고했다. 존스톤은 그 총회가 지금까지 있었던 총회들 중에서 가장 복된 총회였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는 주님께서 모든 한국인들에게 Full Gospel을 전하도록 촉구하고 계시다고 말했다.
초점을 보다 더 정확하게 맞추자면, 한국 오순절 안에서 Full Gospel과 純福音은 1953년 체스넛(Arther B. Chesnut)의 발언과 허홍의 통/번역에 의해 최초로 언급되었을 것이다. 이영훈은 순복음신학교(純福音神學校)를 영문으로 “Full Gospel Bible College”라고 표기했다. 그렇지만, 순복음신학교 2회 졸업생 박정근에 의하면 당시 선교사들은 그 학교를 Full Gospel Bible School이라고 칭했다. 그 영문 표기의 첫 출처는 체스넛일 것이다. 그 학교의 이름을 최초로 제안한 사람이 바로 체스넛이었기 때문이다. 1953년에 열린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제1회 협의회는 4월 8일 회의 중 총리 체스넛, 서기 허홍, 그리고 박성산을 상임위원으로 위촉하였으며, “신학교에 관하여는 상임위원회에서 노력 추진키로 함”이라고 결의했고, 체스넛을 초대 교장으로 선임했다. 그리고 4월 9일자 회의 중 교단 “총리”이며, 학교 교장 체스넛이 “교명을 신학교(神學校)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발언했다.
그리고 교단 30년사는 그 회의 중 체스넛이 영어로 발언하면 허홍이 한국어로 통역했다고 밝혔다. 교장 체스넛이 교명을 영어로 Full Gospel Bible School이라고 제안하고, 그 영어 교명을 서기 허홍이 純福音神學校라고 통/번역했을 것이다. 제1회 협의회는 그저 “神學校”라고 기록했지만, 1954년 8월 25일에 열렸던 제4회 협의회는 교명을 “純福音神學校”라고 기록했다. 제4회 회의록은 회의가 열렸던 장소를 “서울 純福音神學校 講堂”이라고 명시했던 것이다. 김익진은 최요열의 기억을 따라 한국 오순절 안에서 허홍이 純福音을 공식적으로 최초로 제안하고 사용했다고 주장했다.『기독교대한 하나님의성회 30년사』는 “1953년 5월에 서울 용산구 한강로 1가 65번지 남부교회에서 출발한 순복음신학교”라고 썼는데, 기록 자료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1954년 3월에 입학하여 1956년에 2회로 졸업한 박정근은 신학교를 개교할 때 이미 교명을 “純福音神學校”라고 했으며, 이것은 미국하나님의성회가 즐겨 쓰는 Full Gospel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1953년에 상임위원회가 “神學校”의 이름을 “純福音神學校”로 표기했을 것이고, 그 학교가 개교되었을 것이지만, 1954년의 기록이 현존하는 자료상으로는 한국 오순절 안에서 발견되는 최초의 “純福音” 언급이다.
제1회 협의회 회의록의 “神學校”와 제4회 협의회 회의록의 “純福音神學校” 사이의 간격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간격은 교명의 변경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체스넛이 처음에 제안했다고 전해지는 “神學校”는 학교의 성격만을 드러낼 뿐, 교명으로는 완전하지 않다. 그 앞쪽에 덧붙여져 있었을 실제적 교명이 누락된 것 같다. 아마도 체스넛은 1회 협의회 때부터 Bible School이 아닌 Full Gospel Bible School을 제안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허홍은 Full Gospel을 어떻게 통/번역해야할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기에 허홍은 1회 협의회록에서는 Full Gospel을 번역하지 않고, Bible School만을 “神學校”로 번역했을 것이다. 그리고 “全福音” 등 여러 가지 가능한 번역어들을 놓고 얼마 동안 숙고하던 허홍은 마침내 Full Gospel을 “純福音”으로 번역했을 것이다.
허홍이 Full Gospel을 “純福音”으로 통/번역하며 고등비평에 의해 파괴되지 않은 순수한 복음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있다. 순복음신학교 1회 졸업생인 최요열은 김익진과의 인터뷰에서 허홍이 “다른 복음이 있으니(갈 1:8), 순복음만 전하자”는 의미에서 신학교의 이름을 순복음신학교라고 불렀다고 전했다. 허홍이 말한 “다른 복음”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다른 설명이 없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등비평에 의해 파괴된 복음”을 내포할 가능성이 있다. 순복음신학교 2회 입학생으로서 허홍에게서 배웠을, 2013년 당시 교장이던 박정근은 순복음신학교 개교 60주년을 맞이하며 “우리는 문서설(文書說)을 배격하며 비(非)성경적인 현대 신(新)신학과 이단 사상을 배격하며 성경적인 복음 신앙을 확립해 나가며 성경말씀으로 충만한 순복음(Full Gospel)의 사역자들을 키우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 박정근의 발언은 순복음신학교가 허홍이 가르쳤던 초창기부터 일본과 한국의 성결교가 고등비평에 대항하여 Full Gospel을 “純福音”으로 번역했던 것과 같은 맥락 안에 있어 왔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순복음신학교 4회 입학생으로서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창립한 조용기 목사는 “고등/역사 비평”과 “순복음”을 서로 양립할 수 없게 대립시킨다. 그는 먼저 계몽주의 이성에 의한 인식론을 바탕으로 삼는 역사비평의 시대를 꾸지람만 들었던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로 규정하고, 역사비평이 성경과 복음을 변질시켜 유럽과 미국 교회를 죽여 온 역사를 말한다. 영산에게는, 그런 복음의 변질은 인간의 철학이나 인간의 신학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헛되이 전하는 것이다. 그는 역사비평에 의한 성경과 복음의 변질을 말한 다음, 역사비평과 그 결과에 대항하여 성령으로 순수한 복음을 회복하자는 “순복음 운동”을 소개한다. 그는 “Full Gospel”을 “순복음(純福音)”으로 번역하는 것을 따른다. 그에게 “순복음 운동”은 역사비평의 기저에 깔려있는 그리고 필연적 결과로 일어나는 “불신앙”에서 눈을 떠서 “순수한 신앙을 되찾자”는, 다시 말하면 불로 연단한 금을 사고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흰옷을 입고 성령의 안약으로 눈을 밝게 하여 “복음으로 순수하게 돌아오는” 성령운동을 가리킨다. 그리고 순복음 운동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계시한 ‘절대 무오한’ 진리의 말씀인 것을 믿는다.” 영산에게 순복음은 역사비평과 양립할 수 없다. 조용기 목사의 이런 순복음에 대한 이해는 허홍의 순복음에 대한 이해가 반영된 것일 것이다.
“純福音”은 허홍의 창작어가 아닌 차용어일 가능성이 높다. 김익진은 “純福音”이라는 용어가 이미 1907년경에 성결교에 의해 한국에 소개되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리고 그는 당시 한국 오순절 지도자들이 성결교 사람들이 “純福音”을 말하는 것을 들어왔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추측했다. 이런 추측을 적용해 보자면, 물론 허홍이 선인식이 없이 Full Gospel을 “純福音”이라는 말로 스스로 조어했을 수도 있지만, 허홍이 “純福音”이라는 용어를 직접 만들었다기보다는 성결교가 사용하고 있었던 단어를 차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허홍은 성결교가 사용하고 있던 Full Gospel에 대한 번역어로서 “純福音”에 익숙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단어에 담겨 있는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체스넛이 Full Gospel을 포함시켜 학교의 이름을 제안했을 때, 비교적 단 시간에 “純福音”이라고 통/번역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을 경우, 허홍의 “純福音”은 무엇보다 고등비평에 의해 파괴된 다른 복음이 아닌, 순전한 성경적인 복음을 의미할 것이다.
한국 오순절 진영에서 한글 “순복음”을 내포하고 있는 최초 문헌 사료는 1962년에 작성되었다. 물론 1954년에 “純福音神學校”를 한국어로 말할 때 “순복음신학교”라고 발음했을 것이고, “純福音麥島敎會”도 한국어로 “순복음맥도교회”로 발음했을 것이지만, 그 구체적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한글 “순복음”은 오순절권 안에서 문헌적으로 1962년에 이르러서야 기록되었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는 1962년에 제11회 정기총회를 개최했었는데, 그 회의가 열렸던 장소가 한글로 “순복음신학교 교실”이었다. 그런데 그 회의록은 회의가 열렸던 장소를 “복음신학교 교실”로 표기했었다. 오타로 인해 “순”자가 누락된 것이었다. 그래서 50년사는 “베델”((Leslie Bedell)이 총회장으로 선출된 1962년 총회가 열린 장소를 “순복음신학교”라고 바로잡아 표기했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는 50년사를 편찬하면서 “축복의 복음”이 첨가된 “순복음(Full Gospel)신앙”에 대해 언급했다. 50년사편찬위원회는 Full Gospel이 정통 오순절주의자들 사이에서 자주 사용되어 온 용어임을 인식했다. 그 위원회는 순복음의 내용으로서 복음의 다중성을 말했다. 그 위원회는 심슨의 “구원자, 성결자, 치유자, 다시 오실 왕”이라는 사중복음으로부터 파함 등의 웨슬리계 오순절의 “중생, 성화, 신유, 성령침례, 재림”이라는 오중복음, 맥퍼슨과 미국하나님의성회 등의 개혁주의 오순절의 “구원자, 치료자, 성령침례자, 다시 오실 왕”이라는 사중복음을 지나 한국 하나님의성회의 “구원자(Savior), 치유자(Healer), 성령침례자(Baptizer), 복 주시는 자(Blessinger), 재림주(Coming King)”라는 오중복음에 이른 과정을 간략하게 기술했다. 그 위원회에 따르면 한국 하나님의 성회는 2002년 51차 정기총회에서 조용기 목사의 “축복의 복음”을 교리로 채택했다. 그 위원회는 “오순절 신자들은 봉사와 거룩한 삶을 위한 능력의 세례, 즉 구원의 체험 후에 다른 방언으로 증거되는 성령의 세례를 믿는다”라고 말함으로써, 성령침례에 방언이 증거로 주어짐을 인정했다.
5) 변종호와 純福音
종교학자 변종호는 1972년에 純福音을 Full Gospel에 대한 적절하지 않은 번역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Full이 “가득찼다”는 형용사이고, “Gospel”이 복음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Full Gospel은 “충만의 복음”으로 오순절의 성령충만의 복음을 내용으로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滿복음이나 全복음”이 보다 Full Gospel에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그에게 Full Gospel을 純福音이라고 번역한 것은 “좀 이상한 번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종호는 순복음의 “순”에 여러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순복음의 순자는 한문(한자)으로는 쓰지 말고 국문(한글)으로만 쓰자고 제의했다. 변종호는 “순”을 국문으로 표기한다면, 순복음은 오순절(五旬節)의 순복음을 의미할 수 있으며, “순”은 順 純 筍 殉 蕣 등의 다양한 의미를 다 내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純신앙은 순수하고 온전한 신앙, 筍신앙은 죽순같이 강직하고 흥왕하는 신앙, 順신앙은 순종하는 신앙, 旬신앙은 목숨까지 바치는 신앙, 舜신앙은 영원무궁한 신앙이며,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純복음보다는 오순절의 복음과 신앙을 좀더 잘 알려주는 것이다.
변종호는 Full Gospel을 純福音이라고 최초로 번역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는 “순복음이라고 번역한 이가 누구냐는 생각이 나서 오래 동안 알아보았으나 확실한 증거는 잡을 수 없고 모씨일 것이라는 논은 있으나 확증이 없으매 공표는 유보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아마도 변종호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한국 오순절 진영 안에서만 그 최초의 번역자를 찾아보았을 것이고, 그래서 찾는데 실패했을 것이다.
변종호는 純福音을 성언, 성능, 성생(신성, 성결)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는 오순절 신앙의 본질, 純福音을 성결을 포함하여 성령의 오대 역사(五代力賜)로 파악하였는데, 그 오대역사는 “성언, 성능, 성회, 성생, 성순”이다. 그에 따르면, “성언”(聖言)은 방언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오순절 신앙에는 “반드시 방언이 제일 요건으로서 역사의 선두에 나타나야 한다. 방언의 유무가 오순절 역사의 현부를 결정짓는 중대 원인임을 성경과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바”라고 주장했다. “성능”(聖能)은 특별히 신유를 의미한다. 그에게 교회가 재생과 신생의 센터라는 것은 육적 병과 심적 병을 아울러 고쳐주는 신유의 상설기관이라는 것이다. “聖生”은 성령의 인도로 성령 안에서 사는 생활이다. 성생은 성결과 중첩된다. 변종호의 순복음론에서는 재림이 누락되었다.
IV. 나가는 말
오순절 안에서 Full Gospel은 그 창시자 파함에 의해 1902년에 오순절화되어 사용되기 시작해 시무어와 더함, 미국하나님의성회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아시아 오순절 안에서 Full Gospel의 번역어로서 “純福音,” 그리고 “순복음”의 사용은 한국만의 특유한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 특히 중국 오순절에서는 “全備福音”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1953년 이전에 한국 오순절 진영 안에서는 “純福音”이 아닌 “五殉節”이 주로 사용되었다. 한국 오순절 역사에서 “純福音”은 미국하나님의성회 선교사들의 내한과 하나님의 성회 설립, 순복음신학교의 설립기였던 1953년에 등장하여 문서화되었고,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한글 “순복음”은 1962년에 기록되었다. 1953년 허홍은 체스넛이 발언한 Full Gospel을 다른 복음이 아닌 순복음이라는 의미로 “純福音”이라고 통/번역하였다.
순복음의 한 주제인 성령침례에 방언이 최초로 동반된다는 주장은 오순절운동의 핵심이며, 중생, 성화, 신유, 성령침례, 재림의 주제들을 포함하는 순복음은 성결운동과 오순절운동의 공통분모이다. 성결운동가들이나 오순절운동가들에게 Full Gospel(純福音, 순복음)은 공통적으로 교회사 속에서 부분화되고 경시되기도 했던, 성경적이고, 그리스도적이고, 성령적이며 사도적인 복음의 전체가 회복된 온전한 복음이다. “성결적 순복음”과 “오순절적 순복음”은 상이한 점을 갖고 있다. 성결적 순복음은 온전한 복음 속에서 “온전한 성화”와 “성령세례”를 동일한 범주로 간주하는 반면에, 오순절적 순복음은 온전한 복음 속에서 “온전한 성화”와 “성령침례”를 각각 상이한 범주로 분류하고, 성령침례에 방언이라는 최초의 증거가 동반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한국 오순절주의는 일본과 중국 오순절에서 사용했거나 사용하고 있는 “全備福音”이 아닌 “純福音”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과 한국 성결교회가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에 저항하여 Full Gospel을 全き福音이 아닌 純福音으로 번역한 것과 같은 맥락 안에 있는 것이다. 오순절주의 안에서 “純福音”은 고등비평에 의해 파괴되지 않은 성경적이고 사도적인, 중생과 성화, 신유, 방언이 최초로 동반되는 성령침례, 재림 등을 내포하는 온전하게 회복된 순전한 복음을 의미한다.
성결적 순복음 Holiness Full Gospel |
피니 마한 |
구원자 Savior |
(온전)성화자 Sanctifier (성령침례= 성결+능력) |
||||
보드만 | 구원자 | (온전)성화자 (성령침례) |
치료자 Healer |
|
|||
심슨 | 구원자 | (온전)성화자 (성령침례) |
치료자 | 다시 오실 왕 Coming King |
|||
오순절적 순복음 Pentecostal Full Gospel |
파함 | 구원자 | (온전)성화자 (점진 성화자) |
치료자 | 다시 오실 왕 | 성령침례자 Baptizer (증거 방언) |
|
시무어 | 구원자 | (온전)성화자 (점진 성화자) |
치료자 | 다시 오실 왕 | 성령침례자 (내적사랑, 외적 방언) |
||
더함 맥퍼슨 미국하나님의성회 |
구원자 + (온전)성화자 |
(점진 성화자) | 치료자 | 다시 오실 왕 | 성령침례자 (증거 방언) |
||
기독교대한 하나님의 성회 |
구원자 + 성화자 |
(점진 성화자) | 치료자 | 다시 오실 왕 | 성령침례자 (증거 방언) |
축복자 Bless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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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Origin, History and Meaning of
Pentecostal Full Gospel and Sunbogeum(純福音)
Lee, Chang-soung
“Full Gospel, 純福音, and 순복음(sunbogeum)” are used as nicknames of Pentecostal Movement. But any historical and inclusive inquiry about them has not yet been tried. Therefore, this article traced the origin, history, and meaning of them in the history of American, Japanese, and Korean Pentecostalism. Since 1839 Full Gospel has been used by Holiness people, and the first Pentecostalist who used the word in 1902 was Charles F. Parham. In Asia, around 1913 it was used by an American missionary, Carl F. Juergensen, and he translated it into 全備福音(zenbifukuin) which means not partial but whole Gospel. Japanese and Chinese Pentecostalists have used 全備福音. on the other hand, before 1953 Korean Pentecostalists had used mainly “五殉節”(osunjeol) but since 1953, through Arther B. Chesnut and the translator, Hong Heoh, they have used “純福音.” Korean vocabulary, “순복음” has been written from 1962.
One aspect of multiple Full Gospel: Spirit baptism accompanied by speaking in tongues as the initial evidence, is the core of Pentecostalism. Full Gospel including Rebirth, Sanctification, Healing, Spirit Baptism, and the second Coming is a common denominator between Holiness and Pentecostal movement. For both Holiness and Pentecostal people, Full Gospel is the biblical, Christological, Pneumatic, Apostolic, recovered and whole Gospel. Holiness Full Gospel has put “entire sanctification” and “Spirit baptism” into same category, but Pentecostal Full Gospel has distinguished Spirit baptism from entire sanctification, put them into different categories, and emphasized that Spirit baptism is accompanied by speaking in tongues. Uniquely, Korean Pentecostalists has used 純福音, not “全備福音” used by Japanese and Chinese Pentecostalists. It is in the same vein in which Japanese Holiness translated Full Gospel into 純福音(sunbogeum, pure gospel), not 全き福音(zenkifukuin) against higher criticism on the Bible. In Pentecostalism, Full Gospel, “純福音,” and 순복음 mean the biblical, apostolic, wholly restored, and pure Gospel, which has not destroyed by higher criticism, including Justification, Sanctification, Healing, Spirit baptism accompanied by speaking in tongues, and the second Coming of the King, Jesus Christ.
주제어: 오순절운동, 성결운동, 순복음(全備福音), 고등비평
Pentecostal Movement, Holiness Movement, Full Gospel, Higher Criticism
논문투고일: 2018. 12. 1. 논문심사일: 2019. 2. 12.
게재확정일: 2019.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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