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RATIONALIST PRESUPPOSITIONS OF THE HISTORICAL-CRITICAL METHOD
존 F. 맥카티
by Msgr. John F. McCarthy
가톨릭 역사신학자
Carroll College with degrees in philosophy and history, then went to seminary at the North American College in Rome, Italy, where he was ordained in 1955. He returned to Carroll College, where he taught a variety of courses until being sent back to Rome in 1959 for an advanced degree in canon law. He passed away on June 12th 2019.
이창승 역
Roman Theological Forum No.137 (2008)
http://www.rtforum.org/lt/lt137.html
1장. 조셉 카디널 랫징거의 증언에 관해
REGARDING THE TESTIMONY OF JOSEPH CARDINAL RATZINGER
1. 교회 안에서의 성경 해석(The Interpretation of the Bible in the Church, IBC)이라고 명명된 (재구성된) 가톨릭 성경 위원회의 1993년 문서에 따르면, 역사 비평 방법(historical-critical method)은 “고대 문헌들의 의미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위해 필수적인 방법이다”(p. 34).1 그 위원회는 이 역사 비평 방법은 “어떤 역사적 관점에서” 고대 문헌들의 중요성을 연구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또한 특히 “성경 본문들을 발생시킨 역사적 과정들(the historical processes which gave rise to biblical texts)에 빛을 던져주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의 역사적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 문서에 따르면, 역사 비평 방법은 “그것이 그것의 각 단계들 안에서(본문 비평으로부터 편집-비평까지) 가능한 한 객관적이기를 추구하는 과학적 척도의 도움에 의해 작동하기 때문에 역사적 방법이다.” 그래서, “역사 비평은, 분석적 방법으로서, 그 어떤 다른 고대 문헌을 연구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성경 본문을 연구하며, 인간 담론의 한 표현처럼 그것에 대해 논평한다”(IBC, p. 37). 뒤 따르는 숙고에서, 나는 위에서 기술된 가톨릭 성경 위원회 문서(IBC)에 의해, 특별히 문학비평(literary criticism)과 양식비평(form-criticism)의 국면들과 관련하여 의도되는 것처럼 역사 비평 방법은 과학적인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역사적이지도 않으며(neither scientific nor historical), 그것의 합리주의적 전제들(rationalist presuppositions)의 지속적인 사용은 그것의 결론들에서 그 어떤 진정한 객관성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을 주장할 것이다. 그 위원회는 역사 비평 방법은, 1993년 문서에 약술된 대로, “객관적 방식으로 사용될 때, 그 어떤 부수적인 선험적 원리들도 그 방법 자체보다는 그 해석을 지배하는 그리고 의도적일 수 있는 어떤 해석적 선택들에 관련되지 않을 정도로 그 자체 그 어떤 선험적인 것도 내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위원회는 이어서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학자들은 그 방법을 어떤 철학적 체계와도 결합시키기(combining the method with a philosophical system)를 중단해 왔다”고 쓴다. 그 말과는 반대로, 가톨릭 역사 비평 학자들은 그들의 방법을 한 철학 체계와 결합시키기를 결코 중단하지 않았고,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에 그 학자들은 자기들이 사용하고 있는 철학적 체계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2. 나는 내 주장을 위한 권위 있는 증거로서 “성경 해석학의 위기”(Biblical Interpretation in Crisis)라는 제목으로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는 한 강의에서 행한 추기경 조셉 렛징거(Joseph Cardinal Ratzinger)의 몇 가지 진술들을 제시한다.
그 강의는 1988년 1월 27일에 뉴욕시에서 행해졌고, 그 후 곧 영어와 다른 언어들로 출판되었다.2 그 추기경은 철학적 체계들에 관하여 “그 중심에서, 현대 주석에 대한 논쟁은 역사가들 사이의 논쟁이 아니라 철학적 논쟁이다”(BIC, p. 16)라고 단언한다. 다시 한 번 그는 “어떤 주석의 통시적 읽기(diachronic reading;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읽기-역자 주)에 있어서, 그것의 철학적 전제들은 아주 명확해진다”(BIC, p. 8)고 말한다. (IBC 문서에 정의된 대로) 역사 비평 방법의 “과학적” 그리고 “역사적” 성격에 관해서, 렛징거는 “이제, 일정한 거리에서 그 관찰자는 놀랍게도 그 해석들은 엄격하게 과학적이고 순수하게 ‘역사적’일 것 같지만, 오래 전의 정신보다는 그 자체의 압도적 정신을 반영한다고 규정짓는다. 이 통찰은 우리를 그 방법에 대한 회의에로 이끌지는 않지만, 역사 비평의 한계에로,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 어떻게 정화되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솔직한 인식에로 이끈다”(BIC, p. 8)고 말한다. 그는 이 점에서 역사 비평이 필요로 하는 것은 “. . . 그 자체를 분석하려는 모든 비평적 사고 고유의 잠재력에 기초를 두는 비평에 대한 비평”이며, 이것은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에 의한 그 유명한 이성에 대한 비판과 연속선상에서 그리고 그 비판의 발전 안에서 역사적 이성 자체에 대한 분석에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 역사적 방법의 자기 비평”을 내포한다고 말했다(BIC, p. 6). 렛징거는 주석은 그 자체의 역사에 의존하며, 그러므로 주석은 “그 자체 판단들의 상대성”을 그리고 “개입될 수 있는 오류들”을 인식할 수 있기 위해, 그리고 “도움이 되는 가설들과 도움이 되지 않는 가설들을 구별해” 낼 수 있기 위해 “그것 자체의 역사의 총합 안에서 그것 각각의 위치들의 비평적 배열”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BIC, p. 22). 그는 그래서 “과학적 주석”이 그 안에서 “그것의 수많은 기본 규칙들 안에 현존하는 철학적 요소(philosophic element)”를 인식할 수 있는, 그리고 “그런 규칙들 위에 근거를 둔 결과들을 재고할 수 있는 주석 방법에 대한 새롭고 전반적인 반성을 위한 소망을 표했다(BIC, p. 21).
3. 렛징거는 칸트의 이성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에게 헤르만 궁켈(Hermann Gunkel), 마틴 디벨이우스(Martin Dibelius), 그리고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에 의해 개발된 양식 비평이라는 주석 체계를 떠받쳐 주고 있는 주요 철학적 전제는 “임마누엘 칸트에 의해 제안된 철학적 전환점 안에” 놓여 있는 것 같다. 그 칸트적 전환은 인간의 지적 생활을 칸트적 “범주들”의 영역에 제한시키며, 그리고 당연히, 하나님의 개입들(interventions of God)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부터의 그 어떤 새로운 시작도 제거한다(BIC. pp. 14-15). 이 관점에서 그는 “계시는 종말론적 입장의 순전히 틀에 박힌 것 안으로 후퇴해야만 하며, 이것은 칸트적 분리(Kantian split)와 상응한다”는 것을 더한다(BIC, p. 16). 렛징거가 제안하고 있었던 것은 “본문에 이질적인 부적합한 것들을 적게 일으키는, 보다 덜 독단적이고, 본문 자체에 진정으로 귀기우릴 수 있는 보다 큰 가능성들을 제공할 보다 나은 철학”과 “역사적 방법”의 도구들을 결합하기를 시작할 필요성이었다(BIC, p. 17). 그는 양식 비평 학자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는 성경 본문에서 보다 단순하게 보이는 것은 보다 본래적인 것이고, 보다 복잡해 보이는 것은 보다 발전적인 것으로 취해져야 한다는 규칙을 문제 삼았다. 그는 종교사학파가 그 방법 안으로 끌고 들어간(BIC, p. 14) “과학의 진화적 모델의 영적 역사로의 지나치게 단순화된 전이”(BIC, p. 10)를 그 접근 배후에서 찾아냈다. 그래서 그는 “현대 주석”은 소위 자연 과학의 “현대 세계관”의 명령들을 받아들여 왔고, 그것에 의해 성경 본문은 완전히 이 세상의 실재로서 다루어지며, 그래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것, 다른 세계의 것, 표현할 수 없는 것으로 분류했다”고 말했다(BIC, p. 17, 19). 그는 성경적 제시들의 직접적인 역사적 정황을 찾는 데 있어서 현대 주석들은 역사의 통합적 운동이라는 시각을 그리고 모든 역사의 중심 사건, 즉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역사에 비춰진 빛을 상실해 버린 것을 알아 차렸다(BIC, p. 20). 또 다시, 그는 문헌학적이고 과학적 문학 방법이라는 역사 비평학의 사용에 대해 “해석적 과정의 철학적 영향들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그리고 그것이 역사 비평 방법의 표준 해석 과정에서 그 어떤 선험적인 것도 보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런 이해는 내게 1993년의 PBC 문서에서 두드러지게 결여 되어 있는 것 같다(IBC, p. 40)]고 말했다(BIC, p. 22).
5. 렛징거는 1988년에 행한 그의 연설에서 학자들의 전체 세대의 협력한 노력들은 현존하는 역사적 방법의 한계들을 그것의 “뛰어난 통찰들”로부터 제거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BIC, pp. 5-6). [그리고 나는 이 직무가 헤르만 궁켈, 마틴 디벨리우스, 루돌프 불트만,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들에 의해 조장되었고, 오늘날 가톨릭 성경 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 “역사 비평적 방법”(histroical - critical method)이 된 비평으로부터 신중한 역사학의 진정한 비평을 구별해 내는 것을 필히 포함해야할 것이라는 것을 더하고 싶다. 교황 레오 십삼세는 이 역사적 방법을 “거짓과학”(pseudoscience)이라고 불렀으며, 교황 피우스 십세는 이 역사적 방법을 “모더니즘의 논리적 결과물”(the logical fruit of Modernism)이라고 칭했다.] 그래서, 렛징거는 디벨리우스와 불트만의 기본적인 방법론적 접근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현대 주석의 방법들과 과정들을 결정하고 있어서 그것들의 필수 요소들이 마치 교리의 권위까지 획득했을 정도라는 것”을 알아챈다. 이 기본적 요소들 사이에는 “성경 안의 모든 것은 기독교 선포로부터 발전된 것”으로 불트만에게 있어서 선포된 말씀은 그 장면을 창출해 내기까지 하며, 제시된 모든 사건들은 이차적이며 신화적인 것으로 가정된다는 전제가 있다(BIC, p. 9). 다시, 디벨리우스와 불트만의 방법론 안에는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예수[그리스도] 사이에 아무런 연속성도 없다는 것이 전제된다(cf. BIC, pp. 9-10). 그리고 거기에는 “창조적인 기독교 공동체”라는 가정이 있는데, 그것에 관련해 “궁켈과 부셋(Bousset)의 작품들이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했다”(BIC, p. 13). 그래서, 레징거는 우리가 실존 신학자 불트만뿐만 아니라, 또한 과학적 주석 방법에 관한 이전 보다 더 견고한 여론에 책임이 있는 주석가 불트만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BIC, p. 14).3
6. 렛징거에 의하면, 성경 해석학에 대한 현대 논쟁은 환원적 접근(reductive approach)에 의해 고통 받고 있는데, 그 환원적 접근 안에서 교부들의 주석은 말도 안 되는 “풍유”(allegory)로 무시되며, 중세의 스콜라 철학은 “전 비평”(precritical)으로 낙인찍힌다(BIC, p. 16). 다시 그는 역사 비평은 구약과 신약의 유기적 연속성을 불연속의 원리로 대체하고 성경의 유비(analogy of Scripture)와 그 유비가 포함하고 있는 목적 둘 다를 제외시킨다고 쓴다(BIC, p. 20). 그는 또한 이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주석은 그 자신을 역사학으로 인식해야만 한다”고 쓴다. 그는 이 작업을 위해 “위대한 교부적 그리고 중세적 사상의 개요들뿐만 아니라 종교개혁가들에 의해 내려진 근본적인 식견들도 그 논의에 도입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더한다(BIC, p. 22). 끝으로, 그는 주석들은 반드시 그것들의 주석 작업에서 마치 신앙이 해석이 아닌 것처럼 “역사와 교회 위와 바깥에 어떤 중립적 영역에 서”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고 말한다(BIC, pp. 22-23).
렛징거와 재구성된 가톨릭 성경 위원회의 가르침에 대한 논평들
7. 1988년의 렛징거의 관점에 따르면, 이런 인용들로부터 (재구성된) 가톨릭 성경 위원회에 의해 “필수적인”(indespensable) 것으로 제시된, 그리고 이제 헤르만 궁켈, 마틴 디벨리우스, 그리고 루돌프 불트만의 양식 비평 방법의 사용에 의해 규정된 역사 비평 방법은 과학적인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것도 아니며, 그보다는 오직 임마누엘 칸트의 주관적 철학의 무비판적 적용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이 역사적 방법의 양식 비평적 표현에서, 칸트적 분리가 선험적으로 성경의 글 안의 모든 참된 신적 개입들을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성경 본문이 단지 인간적 산물로 취급될 정도로 철학적 전제들은 본질적인 것이다. 동시에 이런 종류의 역사적 방법의 가치와 타당성이 여러 방면에서 유능한 학자들에 의해 상당한 공격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PBC는 역사 비평 방법에 대한 그것의 양식 비평적 각색을 “필수적인” 것이라고 썼다(IBC, pp. 29-32). 당시 그 위원회의 회장이었던 렛징거는 이 1993년 문서에 쓴 그의 서문에서 그 문서는 “1893년과 1943년의 교황의 회칙들의 경로들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성경을 이해하는 올바른 길에 대한 중요한 질문들을 위해 아주 도움을 줄” 것이라는 의견을 표한다. 그러나 그는 또한 “가톨릭 성경 위원회는 제 2차 바티칸 공회 후 그것의 새로운 형태에 있어서 교육 기관이 아니고, 그보다는 신앙적 주석가들로서 그들의 과학적이고 교회적 책무 가운데서 성경 해석의 중요한 문제들에서 입장들을 취하며 그리고 이 직무를 위해 그 교육직을 즐거이 확신하는 학자들의 위원회”라는 것을 지적한다(BIC, pp. 26-27).
8. “역사 비평”(historical criticism)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인 가톨릭 어법에 있어서 조금 모호했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가톨릭 성경 위원회의 1993년 문서에 주어진 기술에 따라, 그리고 그러므로 그 방법이 19세기의 고등 비평을 이어받아서 20세기의 양식 비평에 따라 다듬은 것으로 그 명칭을 사용한다. 이것은 PBC의 1993년 문서가 역사 비평이라는 용어를 규정하는 방식이다(cf. IBC, pp. 34-36). 재구성된 가톨릭 성경 위원회가 헤르만 궁켈, 마틴 디벨리우스, 그리고 루돌프 불트만의 고등비평과 양식비평의 필수 요소들을 포함하여 고전 역사 비평 방법은 “객관적으로 사용되었을 때”(cf. IBC, p. 39) 과학적 척도의 도움에 의해 작동하는 참된 역사적 방법이고 참된 비평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반면에, 렛징거는 이런 종류의 역사 비평의 결과들은 그다지 과학적이거나 역사적이지 않고, 그보다는 “그것들 자체의 우선하는 정신의 표현(an expression of their own overriding spirit)”이라고 단언한다(cf. 위의 주석 2). IBC는 19세기 고등 비평가들이 “성경을 거슬러 고도로 부정적인 판단들을 내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그것이 “루돌프 불트만 같은 어떤 저자들이 양식 비평적 연구들을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실존철학에 의해 영감을 받은 성경 해석과 결합했다고 말하면서도 “오랜 동안 이제까지 학자들은 그 방법을 어떤 철학적 체계와 결합하는 것을 중단해 왔다”고 적는다(IBC, p. 36). 그러면, 이것은 오도하는 진술이다. 왜냐하면 불트만은 자신의 결론들을 그 방법에 대한 합리주의적 전제들에 근거를 두면서 1921년에『공관복음서전승사』(The History of the Synoptic Tradition)라는 그의 고전적 양식 비평 연구를 펴냈으며, 그 책을 출판한지 무려 몇 년 후에야 비로소 그가 자신의 양식 비평 방법에 의해 파선당한 공관 복음서를 (조금이나마) 구하는 것은 여전히 “비신화화된”(demythologized) 기독교 신앙일 수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마틴 하이데거의 실존 철학을 사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PBC의 1993년 문서의 저자들은 자기들의 방법의 합리주의적 전제들(the rationalist presuppositions)을 완전히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보다 정확하게, 렛징거는 “그저 실존주의적 신학자로서 불트만뿐만 아니라, 또한 주석가 불트만”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지적해 왔다(BIC, p. 14).
9. 1993년에 PBC에 의해 추천된 양식 비평 방법이, 그 문서가 진술하는 것처럼, “성경 본문들을 산출한 역사적 과정들”(IBC, p. 37)을 결정하기 위해 오직 내적인 징표들만을 사용하는 참된 역사적 방법인가? 윌리엄 폭스웰 올브라이트(William Foxwell Albright)는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고고학자들 중에 한 사람인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이 방법에 관해 “객관적인 역사가의 관점에서 자료들은 동일한 틀 안에서 분명하게 발견되는 상당한 수의 다른 자료들의 역사성을 부인할 만한 확실한 독자적인 이유들이 없는 한 그것들이 그 안에서 발생하는 비본질적인 문학적 틀이라는 비평에 의해 논박될 수 없다”고 말했다.4 그리고 이어서 “그렇지만, 오직 역사적 방법과 시각이 부족한 현대 학자들만 역사 비평가들이 그것으로 복음서 전승을 꽁꽁 묶어버린 추측(speculation)이라는 줄을 빙빙 돌릴 수 있다”고 말한다.5 렛징거는 현대 주석에 관한 논쟁은, 통시적 읽기(diachronic reading)라는 주석 사례들에서 명확해 지는 것처럼, 철학적인 것이지,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해 왔다(주석 2번을 보라). 즉, 현대 양식비평적 주석의 발전사를 들여다보면, 그것의 합리주의적 전제들이 드러난다. 렛징거는 실례들을 통해 임마누엘 칸트의 비평 철학의 만연한 영향에 집중한다. 양식비평 방법은 진정으로 과학적인가? 렛징거는, 거리를 두며, 이런 종류의 역사 비평은 그다지 역사적이지도 않고 과학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지적한다(cf. 주석 2번). 즉, 역사비평의 결과들은 역사적 과학(histrical science)이 아니다. 그리고 렛징거는 외부적 증거도 없으면서도 보다 단순해 보이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보다 초기의 것이고, 보다 복잡해 보이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보다 후기에 발전된 것이라고 추측하고, 또한 복음서들의 예수는 대부분 종교적 공상(religious fantasy)의 산물일 뿐이어서 역사의 예수가 아니라고 전제하며, 시종일관 하나의 쳇바퀴 안에서 주장하는6 역사 비평 방법의 여러 규칙들이 비과학적이고 비역사적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데 있어서 올브라이트와 견해를 같이 한다. 렛징거는 이 접근 안에서 과거의 어떤 거짓 철학들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진화 모델을 성경 안의 사상들이 진화했다고 가정하기 위해 도입하려는 시도도 보았다(cf. 주석 4번).
10. 그 1993년 문서는 그것의 역사 비평의 형식은 “그것이 가능한 한 객관성을 추구하는 과학적 척도들의 도움을 받아 작동”하는 만큼 비평적 방법이라고 주장한다(IBC, p. 37). 나는 위에서 역사-비평 방법은 오늘날 가톨릭 주석가들에 의해 활용되는 것처럼 그것이 자체의 방법과 역사를 전반적으로 비평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역사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이지도 않고, 심지어 비평적이지도 않다(neither historical nor scientific, and is not even critical)는 취지의 렛징거의 말을 인용했다. “역사 비평”(historical criticism)이라는 용어는 역사적으로 그것을 사용하는 자들이 성경에 대한 비신앙적인 접근(unbelieving approach)을 취했고, 성경을 단지 인간의 작품으로만 취급했다는 사실에서 나왔다. 이런 의미에서, 이 역사 비평은 “하나님의 말씀”을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러한 비평이 그 기초로부터 합리주의(rationalism)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비평적이다. 보다 분명하게 말하자면, “역사 비평”(historical criticism)에서 “비평적”(critical)이라는 말은 과거 임마누엘 칸트의 “비평적” 접근과 칸트의 “과학적 척도들”(scientific criteria)의 사용을 가리킨다. 그런데 칸트의 “비평적, 과학적 척도들”은 그것의 추종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과학적이지 않다. 우리는 칸트가 과학의 척도라고 주장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들이 칸트로부터 유래한 역사 비평에 관계되는지 조사해 보아야만 한다. 렛징거를 따라 나는 이 역사 비평이 a) 진정으로 역사적인지, b) 진정으로 비평적인지, c) 진정으로 분석적인지, 그리고 d) 진정으로 과학적인지 살펴보려고 한다.
11. 과학과 역사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규정하는 것이 이 논의에 필요하다. 과학의 정의에 관련해, 이런 종류의 역사 비평적 접근 배후에 숨어있는 것은 임마누엘 칸트의 선험적 미학(Transcendental Aesthetic)이며, 이 선험적 미학은 “과학”이라는 용어를 경험론적 철학을 따라 공간과 시간에 의해 묶이는 현상(phenomena)에 한정한다. 역사학의 다른 대상들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철학과 신학의 대상들이 주관적인 것들(the subjective)이고 결국 비실재적인 것들(non-real)로 격하되는 반면에, 오직 이 공간과 시간에 묶이는 현상들만이 “객관적”(objective)이 된다. 그래서 실재(reality)라는 개념의 기능이 과학에 대한 질문 전체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우리는 우리가 이 연구를 지속하고 PBC의 1993년 문서가 “고대 문헌들의 의미에 대한 과학적 연구”(cf. 주석 1번)라고 주장하는 것을 분석해 나가기 위해 과학의 정의에 있어서 실재라는 개념의 기능에 주의를 기우려야만 한다. 또한 역사의 정의는 실재의 개념과 관련하여 명확해져야 한다.
12. 렛징거는 역사 비평은 여기에서 지금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과학적 지식의 부분이 아니며, 그보다는 부정하기 어려운 어떤 통찰들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이 고등비평의 과거가 초점에서 벗어나 있을 때 시야에서 사라진 채 여전히 남아있는 오류들도 포함하고 있는 논란이 많은 접근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그래서 렛징거는 “주석적 방법에 대한 새롭고 전반적인 반성”을 요구했으며, “한 전체 세대의 주의 깊고 비평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새로운 종합의 몇 가지 기본 요소들을 제시했다.7 신-교부 학자들(Neo-Patristic scholars)은 그들이 역사적 방법 자체의 원리들을 보다 분명하게 서술하면서 역사 비평 방법에 대한 비평 과정을 수행해 왔다는 의미에서 이 제안을 시행한다. 이 노력에서 그들은 특별히 양식비평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것처럼 현대 역사 비평의 타당한 원리들과 타당하지 않은 원리들을 구별하며, 그들이 제안할 수 있을 통찰들을 위한 역사 비평적 결론들을 분석한다. 이 작업에서 그들은 본래 가톨릭 성경 위원회의 1964년 권고를 수행한다. “사례가 말하는 것처럼, 주석가는 ‘양식비평 방법’ 안에 어떤 건전한 요소들이 있을 수 있는 지 살펴볼 수 있으며, 그것들은 복음서를 보다 충분히 이해하는데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반드시 이 영역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한다. 왜냐하면 그 방법은 자주 용인할 수 없는 철학적이고 신학적 원리들과 얽혀있으며, 그 원리들은 빈번히 그 방법 자체와 문학적 질문들에 대한 그것의 판단들 모두를 손상시키기 때문이다.8
13. 신-교부 학자들은 렛징거와 원 PBC가 요구하는 프로그램 시행을 착수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성경 본문 연구를 두 가지 출발점에서 시작한다. 가톨릭 주석 전통의 빛을 받으며 현대 역사 비평적 해석들의 비평적 읽기에서 시작하고, 또한 그들 자신의 참조 틀(their own frame of reference)과 사고의 매체에 대한 비평적 검토로부터 시작한다. 양식비평적 주석가들의 결론들은 종종 공식화되지 않았거나 또는 부적절하게 공식화된, 그러므로, 역사적 실재(historical reality)에 대한 보다 온전한 관점에서 보면 맥락에서 벗어난 전제들을 적절하게 공식화함으로써 진정한 통찰들이 될 수 있는 생각들을 제안한다. 이것은 신 교부 학자 자신의 참조 틀 안에서 그가 특별히 교회 교부들과 박사들로부터 취하는 또한 현대의 역사적 방법의 최신화된 표현들로부터 취하는 역사적 방법의 원리들의 명확한 공식화(formulation)를 요구한다. 렛징거가 말하는 것처럼, 이 변화를 일으키려면 적어도 학자들의 한 세대 전체의 작업을 필요로 할 것이다(cf. 주석 6번). 이 연구를 추진함에 있어, 신 교부 학자들은 현존하는 양식 비평 방법의 원리들을 재공식화 함으로써 헤르만 궁켈과 루돌프 불트만 같은 저자들의 터무니없는 결론들을 체계적으로 반박해야만 한다. 그것을 신 교부적 방법의 보다 큰 그림 안에 적합하게 만들고, 헤르만 궁켈과 루돌프 불트만 같은 저자들에 의해 조장된 소위 “현대인의 세계관”(world-view of modern man)을 하나님에 의해 계시된 것으로서 “성경의 세계관”(the world-view of Sacred Scripture)으로 바꾸어야만 한다.
14. “교회 안에서의 성경 해석”에 우리 시대 안의 역사 비평이라는 그것의 상품을 보완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들로 언급되는 십여 가지의 접근들 가운데 교부들의 네 가지 감각들의 방법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은 지적할 만하다. 그보다는 그것은 “교부 주석의 특징이었던 풍유적 성경 해석(allegorical interpretation)은 현대인들에게 황당한 것이다”라고 말한다(IBC, p. 97). 그러나 렛징거는 그 동일한 문서의 서문에서 “한 편, 교부적 주석을 회복시키려는 그리고 성경에 대한 영적 해석이라는 새로운 방식들을 포함시키려는 새로운 시도들도 있다”라고 말한다(IBC, p. 26). 그리고 IBC와 동일한 해에 나타난 가톨릭 교회의 요리문답은 성경 해석을 위한 기본 방법으로서 네 가지 감각들의 방법(the method of the Four Senses)을 제시한다(CCC, nos. 115-119). 당면한 문제는 1893년에서 1950년까지의 모든 적절한 교황의 회칙들이 그러는 것처럼 교회의 교부들과 박사들 모두는 성경의 역사적 사실성과 무오류성을 옹호했다는 것이다.
15. 렛징거는 인간의 지적 생활이 그것에 따라 칸트적 범주들의 영역 안에 제한된다고 여겨지는 “칸트적 분리Kantian split)를 칸트적 “철학적인 전환점”이라고 부르는데, 그 전환점은 모든 종교를 단지 주관적 산물로 보려는 보다 큰 반 기독교적 프로젝트 안에 적합하다. 불신자들은 일반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대상들을 종교적 공상들로, 무엇보다도 모든 비 경험적 “지식”은 단지 주관적일 뿐이라는 칸트적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칸트가 한 것은 초자연적 존재 또는 초자연적 활동에 대한 모든 서술은 인간의 공상의 산물이라는 합리주의자들의 전제에 얼마간의 지적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즉, 칸트는 성서학자들과 다른 사람들이 칸트적 범주들(Kantian categories)에 대한 그 어떤 의식 없이도 조성할 수 있는 반 초자연주의적 편견을 뒷받침하는 논거들로 보이는 것들을 제공했다.
16. 개신교 신학자 데이비드 백(David Beck)은 성경 무오성에 대한 현대 학자들의 접근에 끼친 임마누엘 칸트의 영향에 대한 분석에서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칸트를 “가장 중요한 현대 정신의 고안자들 중의 하나”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특히 칸트는 경험주의(empiricism)와 합리주의(rationalism)를 하나의 통합체로 종합했으며, 이것이 신학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견줄 나위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9 그는 성경의 무오류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많은 논거들은 임마누엘 칸트의 사고로부터 직접적으로 끌어들여진 것들이라는 것을 더한다.10 백은 칸트의 “실천 이성”으로부터 “순수” 이성의 철저한 분리는 영향력에 있어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앙과 이성의 구별과 견줄만한 것이라는 취지로 불트만 계열의 학자 슈베르트 옥덴(Schubert Ogden)을 인용한다. 그리고 백은 그 어떤 무오류 성경 영감 신학도 칸트의 인식론의 두 가지 기본 신조들을 반박해야만 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 두 가지 기본 신조는 a) 이성(reason)과 감각 인식(sense perception)은 그 작동에 있어서 완전히 별개이며, b) 공간, 시간, 인과관계 등등은 전적으로 정신의 기능들이지 감각 정보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11 이런 형이상학의 사실적 지식으로부터의 단절은 인간을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믿을 것인 가를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자율적인 존재로 세우면서 지식을 두 가지 서로 관련 없는 부분들로 분리시키고, 종교를 요구되지만 불가지적인 영역(the realm of the postulated but not known)에 놓으며,12 “각자가 유익을 발견한다면 각자가 자유롭게 가질 수 있는 일종의 견해(a opinion)”로 만든다.13 그리고 칸트에게, 인간의 자유는 실천적 이성의 요구이지, 순수 이성에 의해 알려진 객관적 진리가 아니다.14 이것은 백으로 하여금 칸트의 인식론보다 더 나은 인식론(a better epistemology)을 건설하는 직무는 “아주 중요하다”고 결론짓게 한다.15 우리는 이 연구에서 임마누엘 칸트의 철학이 얼마나 양식 비평 학파의 역사 비평의 밑바탕이 되고 있는지 그리고 칸트의 철학이 얼마나 가톨릭 학자들과 신학자들에 의한 역사 비평의 사용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검토해야만 한다.
17. 따라서 데이비드 백이 여기서 개신교 신학에 대해 말한 것은 또한 상당 부분 현대 가톨릭 신학과 성경학에 적용될 수 있다. 가톨릭 성경 학자들이 성경 해석을 위한 자신들의 접근으로서 “계몽주의의 자녀”(child of the Enlightenment)인 역사 비평을 취한다면, 그들은 은연중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와 일반적으로 스콜라 전통의 인식론을 거절하고는, 종종 부지중에 임마누엘 칸트와 일반적으로 계몽주의의 인식론을 채택한 것이다. 그들은 토마스 전통의 중재적인 실재주의(moderate realism)의 부재 가운데서 오직 감각만으로 주어진 사실적인 지식(factual knowledge)과 형이상학적 또는 종교적 견해를 거짓되게 구별하는 것에 열리게 된다. 백은 많은 현대 (개신교) 신학자들에게 “과학의 자료는 가치의 자료와 다르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들에게 사실들(facts)은 지적 대상으로 취해지는 반면에, 형이상학적 또는 종교적 가치들은 “비록 중요한 것으로 고려될 수는 있겠지만” 참된 지식의 품목으로 간주되지 않을 정도다.16 그와 같이, 가톨릭 신학자들과 성경학자들이 양식비평을 “과학적 주석”(scientific exegesis)이라고 칭할 때, 그들은 성경에 이야기된 사건들은 “가치들”(values)의 범주 안에 있기 때문에, 그 자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도 않으며, 그러므로 객관적으로 증명되지도 않고, 따라서 “비평적 역사가들”로서 그들은 오직 어떻게 이런 진위 여부는 보장하지 못하는 공상적인 관념들과 사건들이 성경 저자들의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의식 안에서 발생했는지를 발견해 내려 애쓰고 있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렛징거가 이유가 있어 추천해 온 것은 오늘날의 주석가들과 신학자들은 성경적 과학과 신학적 과학의 이름으로 양식 비평가들의 마음 안 어디에서 양식비평 방법이 발생해 왔는지를 재검사해 보라는 것이다.
18.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사용되고 있는 정신적 참조 틀(the mental frame of reference)이다. 신 교부 해석가들은 위대한 성경 자체 내에 내포된 성경에 대한 네 가지 감각들(the Four Senses of Sacred Scripture)이라는 틀과 접근을 사용하고 방어한다. 양식 비평가들은 그들의 “주관-객관 관계성”에 대한 반성에 있어서 보통 자신들의 정신적 참조 틀을 무시하는 것 같다. 그와 달리, 신 교부 주석가들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중재적 실재주의 안에서 자기 자신의 사고와 심상들을 자신의 가장 가까운 지식 대상으로 검토하며, 외부의 사물들을 자신의 먼 지식 대상으로 안다. 그래서 칸트적 모델과는 대조적으로, 신 교부 사상가들은 자기들이 성경 주석에 사용하고 있는 원리들을 비평적으로 인식하려고 노력하면서 마치 거울들이 외부 사물들을 그 자체 있는 그대로를 진정으로 나타내는 것처럼 인간의 정신은 외부 사물들 자체를 안다고 확신한다. 그들은 특별한 직무로서 통찰들을 인식해내고 거짓되게 또는 부실하게 정의된 전제들로부터 논리적으로 산출되는 오류들을 제거하기 위해, 양식비평이 사용하고 있는 원리들을 식별해 내기 위해 양식 비평적 저작물들을 분석한다. 그들은 또한 위대한 스콜라 사상가들의 역사적 그리고 주석적 저작들,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작들에서 사용된 원리들을 갱신하기 위해 또한 검토하고 시도한다. 스콜라 사상가들의 추론(reasoning)은 대부분 확고하고 안정된 것이지만, 그들의 자료들(data)은 분명히 역사나 자연 과학의 영역 같은 어떤 영역들에서 개정될 필요가 있다. 렛징거가 지적하는 것처럼, 임마누엘 칸트가 사상가들에게 자신의 사고의 원리들을 검토하고 명확하게 하도록 주문한 것에 있어서는 분명 옳았다(BIC, p. 6). 그러나 우리 시대에서 이 프로젝트는 반드시 칸트 자신의 추론(reasoning)에 대한 비평적 검토를 포함해야만 한다. 그래서『살아있는 전통』(Living Tradition)의 다음 호에서, 나는 칸트의 접근의 정당성과 양식비평가들에 의해 현재 실천되고 있는 역사 비평 방법에 끼친 칸트의 영향에 대한 보다 상세한 연구를 제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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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1 Pontifical Biblical Commission, The Interpretation of the Bible in the Church (Vatican City State: Libreria Editrice Vaticana, 1993).
2 Joseph Cardinal Ratzinger, in Richard J. Neuhaus, ed., Biblical Interpretation in Crisis (Grand Rapids: Eerdmans, 1989), pp. 1-23).
3 Cf. Living Tradition 136 (July 2008), no. 16.
4 W. F. Albright, From the Stone Age to Christianity (2nd ed., Baltimore: Johns Hopkins Press, 1957), pp. 381-382.
5 Albright, op. cit., p. 387.
6 Albright, op. cit., p. 382.
7 Ratzinger, op. cit., pp. 16-17. Cf. Living Tradition 136 (July 2008), nos. 16-17.
8 EB 647. ET: Cf. [1964] Instruction of the Pontifical Biblical Commission, The Historicity of the Gospels (Boston, MA: St. Paul Editions), pp. 4-5.
9 W. David Beck, “Agnosticism: Kant,” in Norman L. Geisler, ed., Biblical Errancy (Grand Rapids, MI: Zondervan, 1981), p. 53.
10 Beck, ibid., p. 72.
11 Beck, ibid.., pp. 76-77.
12 Beck, ibid., p. 54. Cf. Immanuel Kant, Religion Within the Limits of Reason Alone (New York: Harper and Row, 1960), p. 39.
13 Im. Kant, Religion Within the Limits of Reason Alone (New York: Harper and Row, 1960), p. 39. Cf. Beck, op. cit., p. 63.
14 Immanuel Kant, Critique of Practical Reason (Indianapolis: Bobbs-Merrill, 1949), p. 132. Cf. Beck, ibid., p. 61.
15 Beck, ibid., p. 78.
16 Cf. Beck, ibid., p. 73.
Roman Theological Forum No.139 (2009)
http://www.rtforum.org/lt/lt139.html
SOME RATIONALIST PRESUPPOSITIONS OF THE HISTORICAL-CRITICAL METHOD
제 2 장. 근저에 깔려 있는 임마누엘 칸트의 비평 철학
THE CRITICAL PHILOSOPHY OF IMMANUEL KANT IN THE BACKGROUND
A. 임마누엘 칸트의 비평적 접근의 몇 가지 기본 요소들
SOME BASIC ELEMENTS OF THE CRITICAL APPROACH OF IMMANUEL KANT
19. 주관적 철학(A Subjectivist Philosophy). 많은 역사가들이 임마누엘 칸트(1724-1804)의 철학의 특징을 영국 경험주의(empiricism)와 대륙의 관념주의(idealism)를 보다 고도로 종합한 것이라고 보아 왔다. 프레데릭 코프레스턴(Frederick Copleston)은 그의 철학사에서 그것을 경험주의와 합리주의 둘 다를 “이긴 것”이라고 칭한다.1 칸트는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의 유물주의(materialism)에 대한 비평으로부터 시작하여 그것에 르네 데카르트(1596-1650), 고트프라이드 빌헬름 폰 라이프니츠(Gottfreied Wilhelm von Leibnitz, 1646-1716), 그리고 크리스찬 폰 볼프(Christian von Wolff, 1679-1754(의 관념주의 전통에 대한 다른 비평을 더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칸트는 한편으로는 뉴턴 물리학 모델에 근거한 경험주의적 접근의 메카니즘과 결정론(determinism)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데카르트, 라이프니츠와 다른 관념주의 철학자들에 의해 개발된 자유와 연역된 관념들을 칸트가 “초월적 관념주의”(transcendental idealism)라고 이름 붙인 하나의 대조적 사상 체계(one contrasting system of thought) 안에 통합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반드시 감각 경험에 주어진 것이어야 한다는 흄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칸트는 지식은 또한 인식자(the knower)의 정신에 의해 그리고 정신 안에서 여하튼 구성되어야만 한다고 논했다. 왜냐하면 엄격한 보편성은 감각 경험 그 자체의 사항들로부터 얻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인간 의식 안의 선험적 형식들(a priori forms)의 기능을 주장했으며, 그 형식들의 첫 번째 것은 공간과 시간이라는 형식이다.2 이 생각은 그로 하여금 감각 자료들의 표현들을 과학적 지식의 유일한 대상들로 간주하는 경험주의적 행태를 유지하게 했다. 반면에 그는 합리적으로는 정당하지만, 과학적으로는 증명 불가능한 자유, 하나님, 그리고 영혼의 불멸 등에 대한 믿음을 위한 길을 인간 의식 안에 열어 놓은 것 같다(KC, p. 455). 칸트는 참된 과학은 오직 물질적 세계의 관찰들만을 다루어야 한다는 경험주의자들의 생각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는 이런 물질적 세계에 대한 관찰들을 오직 개개의 사상가의 의식(consciousness) 안에만 존재한다는 그에게는 순전히 공간과 시간이라는 주관적 형식들 안에 그리고 다른 선험적 형식 주관적인 형식들 안에 동봉해 버린다. 이것은 칸트에게 물질적 세계에 대한 주관적 철학을 부여했다.
20. 칸트적 용어(Kantian terminology). 흄은 인간 경험의 진정한 성분들은 오직 제각각의 작은 지각들(perceptions)이며, 그래서 인간 자아는 기본적인 통합을 갖지 않는 그저 그 지각들의 묶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CHP, p. 199). 칸트는 이런 견해에 인간의 의식된 지각(apperception)이라는 초월적 통합(transcendental unity)을 인간 경험의 한 기본적 조건으로 더했다(KC, pp. 94-95). 그는 흄은 감각 지각들(sensory perceptions)이 선험성을 갖는다는 것을 불가피한 것으로 여겼지만, 이해 자체가 이 대상들이 그 안에서 이해에 제시되는 경험의 창조자(author)이어야만 한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했다(KC, p. 92). 칸트는 경험적 인식(empirical cognitions)들만이 참된 지식의 자료들(items)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KC, p. 102), 그러나 인간 지식은 또한 완전히 정신 안의 두 가지 주요 원천들로부터도 솟아난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원천은 감각 인상들(sensory impressions)을 수용하는 능력인데, 그는 이것을 직관(intuition)이라고 불렀다. 다른 원천은 이 감각 인상들로부터 정신적 관념들(mental conceptions)을 산출해 내는 능력인데, 그는 이것을 이해(understanding)라고 칭했다. 그리고 그는 그 두 원천의 동시적 행위 없이는 그 어떤 지식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더한다(KC, p. 62).3 칸트 이론에서, 경험적 직관의 확정되지 않은 대상은 현상(phenomenon)이라고 칭해지며, 반면에 정신 안에서 준비된 선험된 현상의 형식 또는 확정(determination)은 모든 감각(sensation)과는 다르다. 그래서 연장(extension)과 형태(shape)는 감각의 대상들이 아니고 단지 감각의 대상들을 형성하는 내적 능력이다(KC, pp. 41-42). 반면에 이성은 결코 직접적으로 경험이나 그 어떤 감각 대상에도 적용되지 않고, 인지의 다양성(the manifold of cognition)의 이해에 적용된다(KC, p. 213). 이성의 특별한 기능은 초월적인 관념들(transcendental ideas)을 하나의 체계로 정리하는 것, 즉 그 관념들에게 한 원리에 따라 연관성을 부여하는 것이다(KC, p. 374). 칸트는 “초월적”(transcendental)이란 용어를 대상들 자체에 의해 점유되기 보다는 대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의 양식(the mode of our knowledge)에 의해 점유되는 모든 지식에 적용한다. 감각 경험으로부터 직접 유래되지 않는 대상들이나 또는 관념들에 대한 추론(reasoning)은 언제나 공상적인 것이다(KC, p. 373).
21. 초월적 관념주의(Transcendental idealism). 칸트는 그가 초월적 관념주의라고 부른 것을 주장한다. 초월적 관념주의에 따르면, 공간과 시간 안에서 직관되고 우리에게 연장된 몸체들이나 연속적인 변화들로 제시되는 모든 사물들은 인간의 사고와 별도로는 그 어떤 스스로 존립하는 존재도 갖지 못한다. 다른 말로 하면, 초월적 관념주의는 정신적 현상들은 사물들 그 자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신적 현상들은 인식되는 것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non-existent) 그저 상상에 불과한 것들(representations)이다(KC, pp. 296-297). 그리고 심지어 전 세계는 그 자체 전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KC, p. 304). 칸트가 보기에, 유일한 선험적 직관은 현상들에 대한 순수한 형식들의 직관이며, 그 순수한 형식들은 공간과 시간이다(KC, p. 413). 우리가 연장과 물체들의 형태로 보는 것은 실제로는 외부적 사물들 자체들에 속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외부적 공간인 것 같은 것은 그저 우리로 하여금 그 대상들을 직관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우리 자신의 주관적 기질(disposition)의 결과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공간(space)은 존재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만약 공간 안의 대상들이 제거된다면, 남는 것은 그저 순전한 내적 직관뿐일 것이기 때문이며, 이것은 공간의 “경험적 실재”(empirical reality)이다(KC, p. 46). 시간은 단지 “내적 감각의 형식”, 즉 “자아와 우리의 내적 상태의 직관들의 형식”에 불과하다. 공간은 외적 현상에 대한 직관의 순수한 형식인 반면에, 시간은 모든 현상들 이전의 형식적 조건이다. 왜냐하면 모든 현상들은 시간 안에 있고, 이것은 시간의 “경험적 실재”이기 때문이다(KC, p. 50).4 “본질에 대한 선험적 도식(the schema of substance)은 시간 안에 있는 실재의 영속성(permanence)이다”(KC, p. 120). 이 영속성이라는 관념은 그 어떤 외적 경험(external experience)로부터 오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 영속성이라는 관념은 우리 자신의 존재와 관련된, 그리고 거기서부터 외적 사물들의 존재와 관련된 내적 의식(inner sense)을 포함하는 “시간에 대한 모든 정확한 정의를 위한 선험적으로 필수적인 조건”이다(KC, p. 172).
22. 오직 현상(phenomena)만이 실재(real)다. 칸트는 모든 실재적인 것은 어떤 현상으로 우리에게 제시되는 것이지, 결코 실체(noumenon) 또는 물 자체(thing in itself)로 제시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KC, p. 199). 물리적 실체(physical noumenon)라는 개념은 제멋대로의 또는 공상적인 생각이 아니고, 그 개념은 의식 현상의 장 밖에서는 실증적인 자료들을 우리에게 제시하지 못한다. 물리적 실체는 기껏해야 불가지적인 어떤 것(unknown something)에 대한 일종의 제거되지 않아야할 관념(not-to-be-excluded notion)에 불과하다(KC, pp. 188-189). 임마누엘 칸트의 인식론에서 “실재(reality)는 이해라는 순수한 개념 안에서 일반적으로 한 감각(a sensation)과 일치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간 안의) 한 존재를 표시하는 것의 개념”(KC, p. 120), 또는 다른 말로 “경험의 물질적 조건들(감각/의식, sensation)과 상응하는 것이 실재적이다”(KC, p. 166; cf. p. 410). “실재는 경험의 문제로서 오직 감각과만 관계가 있지, 사고의 형식과는 관계가 없으며, 우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것으로 공상을 만드는데 탐닉할 수 있다 . . . 실재에 대한 유일한 척도는 질료(matter)를 그 개념에 제시하는 지각(perception)이다”(KC, pp. 168-169). “실재, 본질, 인과관계(causality), 거부, 심지어 존재의 필요성이라는 개념들은 경험적 인식(empirical cognition)의 영역 밖에서는 아무런 중요성도 갖지 못하며, 경험적 인식 영역 너머에서는 그 어떤 대상도 결정지을 수 없다”(KC. p. 391). 초월적 관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은 “초월적 대상”이라고 불릴 수 있지만, 그러나 그런 대상은 경험적 개념들과 아무 관련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초월적 대상의 존재를 확언할 수 없다(KC, p. 333). “초월적 관념들은 . . . 대상들의 개념들일 수 없고, 그리고 그렇게 간주될 때, 그것들은 불합리(fallacious)하고 방언적/특유의(dialectical) 성격을 가정한다(assume)”(KC, p. 374).
23. 초월적 관념들(Transcendental ideas). 칸트에게 이성의 비평은 “인간 이성의 타고난 권리들의 부분을 형성하며, 인류의 보편적 이성 이외에 아무런 다른 심판관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이성은 모든 진보와 발전의 원천이기에, 그런 특권은 신성하고 침범당할 수 없는 것이다”(KC, p. 430).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허구들(fictions)의 구성에 있어서 충분히 조심스럽다면, 형이상학에서 실수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KC, p. 29). 이성의 순수한 개념들은 초월적 관념들이다. 자아에 대한 인식(cognition)으로부터 세상에 대한 인식으로, 그리고 이 인식들을 통해 최상의 존재(supreme being)에로의 진보는 전제들(premisses)로부터 결론으로의 논리적 행진과 유사할 정도로 자연스럽다(KC. p. 231). 순수 이성의 첫 번째 초월적 관념은 그저 사고하는 본성(thinking nature) 또는 혼(soul)으로 간주되는 자아(ego)이다. 두 번째 초월적 관념은 우주(the universe)라는 개념이다. 세 번째 초월적 관념은, 그저 상대적 가설로서만 유효한, 존재에 대한 가설을 포함하며, 모든 우주론적 일련의 사항들의 하나의 그리고 완전히 충분한 원인이라는 개념,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라는 관념이다(KC. pp. 395-396). 이 세 가지 관념들 중에, 오직 의식된 지각(apperception)이라는 초월적 통합만이 객관적으로 타당하다(KC, p. 98). 그러나 예를 들면, 우리가 판단의 그렇게 많은 기능들을 명확하게 부여 받지만 그 이상은 부여받지 못하는 이유를, 또는 시간과 공간이 우리의 직관의 유일한 양식들인 이유를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며(KC, p. 101), 그리고 자아에 대한 직관은 정신의 본질적 구조(the original constitution of the mind)에 달려 있다(KC, p. 59). 그러나 우리 자신을 인식 주체들로서 의식(awareness)하는 것은 오직 현상으로서 일 뿐이고, 우리가 실제로 우리 자체로서가 아니다(KC, p. 107).
24. 이성의 초월적 사변(the transcendental speculation). 칸트는 우리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실재성을 갖는 것으로서가 아닌, 그저 우리가 그것에 관해 생각하는 관념적 존재로서 “한 현명하고 전능한 세계의 창조자(author)”의 존재를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KC, p. 402). 칸트의 “이성의 초월적 사변”은 세 가지, 의지의 자유, 영혼의 불멸성,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와 관련 된다(KC, p. 453). 칸트는 우리는 순수 이성의 두 가지 기본적 전제들, 즉 지고의 존재자의 존재 그리고 영혼의 불멸에 대한 충분한 입증을 결코 보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우리는 타당하지 않은 스콜라적 논거들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편으로 이성의 주관적 행동원리의 도움을 받으며, 그래서 우리는 차분하고 냉담하게 모든 현존하는 궤변적 “증명들”(proofs)을 조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KC, pp. 423-425). 이성은 신이라는 개념의 객관적 타당성을 우리에게 확신시키지 못한다. 이성은 그저 모든 경험의 지고의 그리고 필요한 통합이 그 위에 근거하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한 관념을 우리에게 제공할 뿐이다(KC, p. 390). 이 세계는 지성에 의해 알 수 있는(intelligible) 세계라는 것은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요구하는 대로 말단들의 그런 체계적 종합으로서 감각의 세계는 우리에게 아무런 암시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계의 실재성은 지고의 원초적 선이라는 가설 위가 아니라면 세워질 수 없다(KC, p. 462). 칸트의 “초월적 형이상학”에서 영혼, 자유, 그리고 신의 존재와 같은 관념들은 지식의 대상들이라기보다는 신앙의 대상들이 된다(CHP, pp. 27-28). 신에 대한 관념 속에서, 우리는 오감을 초월하는 또는 본질적 실재(noumenal reality)의 전체성을 생각하며, 그리고 세계라는 관념 속에서 우리는 감각적 실재(sensible reality)의 전체성을 생각한다(CHP, p. 174). 신과 세계는 “나의 관념들 밖에 있는 실체들(substances outside my ideas)이 아니고, 생각 안에 있는 것인데, 우리는 생각으로 선험적 인식들(a priori cognitions)을 종합함으로써 스스로 대상들을 만들어 내며, 우리는 생각으로, 주관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대상들을 스스로 창조하는 자들(self-creators)이다”(CHP, pp. 174-175).
25. 실천적 지식(practical knowledge). 칸트의 용어에서, 이론적 지식은 있는 존재하는 것(what is)에 대한 지식이며, 실천적 지식은 마땅히 그렇게 존재해야만 하는 것(what ought to be)에 대한 지식이다(KC, p. 368). 이론적 지식은 그것이 경험 안에 주어지지 않는 그리고 경험이라는 수단에 의해 발견될 수 없는 어떤 대상과 관련될 때 사변적이다(KC, p. 369). 칸트는 감각 경험을 초월하기 위해 그리고 감각들을 벗어나는 소위 실재들을 상상하기 위해 정신(영혼, 본질, 등등)에 대한 순수한 개념들을 사용하려는 그 어떤 사변적 “형이상학들”도 타당하게 과학이라고 불릴 수 없거나 심지어 공상이외의 다른 것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KC, p. 29). 칸트에게 자연의 궁극적 개념(intention)은 우리 이성의 구조 안에서 오직 윤리에로만 향해져 왔다(KC, p. 455). 따라서 이성이라는 능력은 강제적인 또는 개관적인 법, 자유의 법, 그리고 마땅히 발생해야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는 그래서 그 자체들을 그저 발생하는 것과 관련된 자연 법들로부터 구별하는 법들을 공포한다. 그러므로, 자유의 법들, 또는 자유 의지의 법들은 실천적 법들(practical laws)이라고 명명된다(KC, p. 456). 칸트는 자기는 신과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고 “도덕적으로 확신한다”(morally certain), 왜냐하면, 이 신념들은 오직 자기의 도덕적 본성(moral nature)과 서로 엮여 있기 때문이다(KC, p. 469). 라이프니츠가 그러는 것처럼, 모든 행복이 그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은혜의 나라로 부름 받은 우리 자신을 보는 것은 이성의 실천적으로 필연적인 관념(practically necessary idea)이다(KC, p. 461). 우리 안의 도덕률은, 우리가 우리 주위에서 보는 모든 것의 목적에 합치하는 결말에 대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지식에 의해 동반되는 “이 강력하고, 압도적인 증거”는 여전히 인간에게 남아 있다(KC, p. 246).
26. 의지의 자유(freedom of will). 칸트는 합리적 존재가 자신의 자유로 판단해야만 한다는 그 향유권을 규정하는 순수 도덕률들(moral laws)이 있다는 것과, 그렇다면 바로 그것들의 도덕적 향유권 안에서 순수 이성의 원리들이 객관적 실재를 갖는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KC, p. 458). 코프레스턴(Copleston)은 이것을 실천 이성이 그것의 대상들을 산출해 내고 그 대상들을 실재로 만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CHP, p. 103). 사변적 이성 뿐만 아니라 실천적 이성의 관심 전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들에 집중된다. 1)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2) 나는 무엇을 꼭 해야 하는가? 3)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KC, p. 457)? 인간 의지는 모든 감각에 의한 강요와는 독립적으로 인간 안에 존재하는 자기-결단의 능력(faculty)이다(KC, p. 317). 그러므로, 도덕적 세계라는 관념은 객관적 실재를 갖지만, 오직 이것의 실천적 향유 안에서 순수 이성의 한 대상으로서만 이해된다(conceived)(KC, p. 459). 세계의 경험적 성격과 관계되는 한 거기에는 그 어떤 자유도 있을 수 없을 것이며(KC, p. 325), 자연의 불변하는 법들에 따라 현상적 세계 안에서 모든 사건들 사이에는 중단 없는 연결이라는 원리는 “그 어떤 예외도 하용하지 않는 잘 확립된 원리”이기 때문에, 따라서 만약 현상들이 그 자체 완전히 실재하는 것들이라면, 자유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결과들은 그것들의 이해할 수 있는 원인과 관련하여서는 자유스러운 것으로 그리고 그 결과들이 그것에서 나온 필수적인 귀결인 현상들과 관련하여서는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KC, pp. 318-319).
27. “정언 명령”(categorical imperative). 칸트의 자유 의지와 종교에 대한 가르침과 관련하여, 코프레스턴(Copleston)은 다음과 같이 보다 더 관찰한다. 칸트는 인간이란 그 자체로 한 목적이라는 것을, 합리적 존재로서 인간의 의지는 그가 보편적으로 결속시키는 것으로 인식하는 도덕률의 근원으로 간주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것은 인간 의지의 자율성의 원리이다. 그리고 도덕적 의지는 자율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도덕적 의지가 스스로에게 그것이 준수하는 법을 부여한다고 말하는 것이다(CHP, pp. 120-121). 이해할 수 있는 세계에 속하는 존재로서 인간은 오직 이성 안에만 그것들의 근거를 갖는 도덕률 아래서 자신을 발견한다. 자유라는 관념은 각각의 인간 사상가를 그의 행위들이 부합시켜야 하는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의 일원으로 만든다. 그 어떤 인간 이성도 어떻게 이 명령이 가능한지 결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성(intelligence)의 의지가 자유하다는 것은 그 전제의 필연적 결과이며, 그리고 칸트의 관점에서, 이 도덕적 작인(agency)의 실천적 필요성은 도덕률들을 위해 충분하다(CHP, p. 125). 그 정언 명령은 주어진 시간 안에서 실제로는 도달할 수 없는 도덕적 완전함을 명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래서 인간 영혼의 비도덕성이라는 관념이 떠오르며, 이 비도덕성은 또다시 이성의 이론적 사용에 있어서 이성으로는 논증할 수 없는 것이다(CHP, p. 130). 동일한 도덕률이 우리를 실천적 수준에서 신의 존재를 요구하도록(to postulate) 이끌며, 이론적 이성은 이 신념(belief)을 입증하려 할 것이다(CHP, p. 134). 그렇기 때문에, “도덕성은 불가피하게 종교에 도달 한다”(칸트의 말 인용). 그러나 칸트는 특별한 신적 계시(unique divine revelation) 또는 맹종을 강요하는 교회의 정당성에 대한 그 어떤 관념도 다 거부한다(CHP, p. 136). 그는 자연 과학자들은 신의 손의 일을 암시할 수는 있지만 결과로서 오직 주관적 타당성만을 갖는 물리적 자연 안에서 하나의 목적에 부합하는 통일성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CHP, p. 144).
B. 칸트의 비평적 접근에 대한 몇 가지 비평적 언급들
28. 환원적 접근(the reductive approach). 임마누엘 칸트의 경험주의는 모든 경험주의와 같이 실재에 대해 환원적으로 접근한다. 이 환원적 접근은 다음과 같은 가설적 예증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시스틴 성당의 전면 벽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이라는 미켈란젤로의 그림은 수백만 명이 보았고 종종 모사되어왔다. 그러나 이 벽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언제나 그들의 눈을 벽에만 고착시키고 확대경들과 현미경을 기술적 도구로 사용하는 과학자들에 의해 수행된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그 벽의 모든 부분이 정확하게 측량되고 화학적으로 분석되어, 예를 들면, 평탄하고 심지어 직선인 것 같은 것이 덧칠해진 물감들에 의해 그리고 유사한 다른 결과들에 의해 울퉁불퉁하고 삐뚤빼뚤하다고 과학적 조사에 의해 밝혀졌다고 가정해 보자. 이 과학적 연구를 위해 책임 있는 사람들이 그 벽에 아무런 그림도 없다고 발표하거나 그리고 벽에서 어떤 그림을 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학 발전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 벽에 대한 환원적 견해는 어떤 사상가들의 부류에 의해 “과학적”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들이 그 그림의 메시지에 동의하지 못할 때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이성의 위반 또한 상식의 위반일 것이다.
29. 칸트의 환원적 접근(reductive approach). 우리의 감각들이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가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근원들로부터 오는 “파편적 인상들”(atomic impressions)이기 때문에(20번), 우리는 우리 마음의 외부에 무엇이 존재하는 지 알 수 없다는 칸트의 가정은 이성과 상식(common sense)의 위반이다. 이것은 이성의 위반인데, 왜냐하면 거울들은 비록 그것들이 오직 외부 사물들에 대한 “파편적 인상들” 만을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의 그 사물들을 재현해 내는 것처럼 또한 우리 인간의 감각 인식도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상식의 위반인데, 왜냐하면 누구든지 우리가 시간의 추이에 따라 공간적으로 펼쳐진 물질들의 외부 세계 안에 잠겨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풋볼 게임에서 선수들 각자는 23명의 선수들의 몸들이 거기에 흩어져 있다는 것을 알며, 거기에는 진짜 풋볼, 진짜 스크럼 라인, 백 야드 떨어져 있는 두 개의 골대들, 그리고 그 게임이 끝날 때까지 한정된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이 시나리오 전체는 오직 그 선수들의 마음 안에만 실제로 존재할 수는 없다. 그리고 칸트가 매일 오후에 산책하면서 자기가 진짜 그리고 정신 바깥의 공간과 시간을 지나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고 믿기는 어렵다. 사실, 그는 누구든 그 대상들이 정신 바깥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고,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정신을 억지로 자신의 이론에 맞추기 위해 애써야만 했다. 그리고 이것은 칸트와 그의 많은 추종자들이 상식의 기능을 이해하는데 혼란을 겪게 했다.5
30. 상식(common sense). 그래서 칸트는 과학이나 형이상학적인 사변의 도움 없는 상식은 삶의 중대한 질문들에 보다 나은 대답들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리고 모든 과학적 수단들을 무시하는 것이 우리의 지식을 발전시키는 올바른 길이라고 주장하는 “순수이성의 자연주의자들(naturalists of pure reason”을 공격한다. 그리고 그는 그런 입장의 터무니없음을 지적하지만(KC, p. 483), 이 묘사는 크게는 당면한 문제의 케리커쳐이다. 물론, 기술 과학과 형이상학적 사변 전체에 대한 반대는 터무니없는 것이다. 그리고 칸트 시대에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나 형이상학적 사변을 과도하게 반대했던 “상식학파”(school of common sense)가 있었고, 상식학파의 접근은 “철학은 상식의 원리들만을 그 뿌리로 갖으며, 그 원리들로부터 자라나고 그 원리들로부터 자양분을 얻는다”는 확신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6 상식학파는 형이상학에 대해 너무 심하게 반대했지만, 그러나 상식학파는 주로 데이비드 흄의 경험주의와 대륙의 합리론자들의 주관적 사변에 대해 반대했다.7 그리고 상식학파의 입장은 자연 과학과 건전한 형이상학은 상식에서 자라나며, 상식(common sense)은 그저 공통 과학(common science)을 위한 다른 이름에 불과하고, “모든 추론의 기초이며 직접적인 증명을 인정하거나 그것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 몇 가지 자명한 원리들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기본적으로 옳았다.8 실제로, 모든 건전한 물리학과 철학은 균형 잡힌 마음의 성인들의 특징인 상식 실재주의(realism of common sense)에 근거를 둔다. 참으로, 기술 과학의 한 기능은 상식이 종종 빠지기 쉬운 착각들(illusion)을 교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식이 보는 것의 대부분은 착각이 아니고, 기술 과학이 상식에 의해 수행된 실재의 우발적 오독들(misreadings)을 납득이 가도록 바로잡지 않을 정도로, 기술 과학은 상식이 제시하는 것을 고수하는데 논리적으로 묶여 있다. 심지어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자연 과학자들조차도 그들의 실험들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상식을 사용해야만 한다.
31. 온건 실재주의(moderate realism). 지금의 숙고에서, 토마스적 철학과 신학은 경험 과학과 비교하여 명백하게 상식의 기술적 발전 위에 근거하는 접근들이다. 칸트가 토마스적 추론(reasoning)의 폭넓은 공간들을 무시한 반면에, 자신의 비평 철학을 영국 경험주의와 대륙 주관주의라는 한계들에 제한시킨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상식의 한 기술적 발전으로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온건 실재주의에서 마음 바깥의 사물들의 실재성은 인간 지식의 먼/간접적 대상(remote object)을 구성하며, 반면에 마음 바깥의 사물들에 대한 의식적 인식(concious perception)은 인간의 지식의 가까운/직접적 대상(proximate object)을 구성한다. 칸트에게 공간과 시간은 오직 인간의 의식에만 속하며, 의식을 떠나서는 실재를 갖지 않는다(KC, p. 102). 그리고 공간과 시간은 모든 감각적 인식들을 상상(imagination)이라는 현상들 안으로 조합하기 위해 필수적인 내적 형식들(forms)이다. 반면에, 토마스 철학에서 공간과 시간은 외적 실재성 안의 기초와 함께 정신의 존재들(beings)이다. 이것은 거리의 관계로서 공간과 운동의 측정으로서 시간이 오직 마음 안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공간과 시간은 실재적인 외적 연장(real external extension)과 실재적인 외적 운동 또는 변화에 근거한다.9
32. 실재에 대한 상식적 개념(the common-sense conception of reality). 그러나 무엇이 실재인가? 칸트적 주관주의에 있어서, 실재는 감각적 인식의 의식적 대상들에 의해 구성되며 제한되지, 마음 바깥의 그 어느 것에 의해서도 구성되거나 제한되지 않는다. 칸트는 비록 실재라는 그 관념이 상식에 뿌리박고 있지만, 그리고 생애의 초기에 형성되는 참과 거짓, 참과 오류, 그리고 속임, 착각, 거짓이든지 아니면 공상이든지, 실재인 것과 비실재인 것 사이의 구별을 구성함에도 불구하고 이 입장을 상식과 상식적 경험에 전적으로 대항하여 세운다. 하지만, 착각의 교정은 또한 상식의 한 기능이기도 하며, 그리고 여기서 기술적 과학은 정확한 도구들과 방법들의 사용을 가지고 교정을 도우며, 그러나 많은 경험주의자들과 모든 주관주의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상식의 관찰들을 무시해서는 그리고 그저 “그래, 이것은 분명해 보여, 그러나 여기서 너는 그 분명한 것을 무시해야만 해”라고 말만 해가지고는 결코 도울 수 없다.
33. 지적 의식(intellectual consciousness). 지식의 직접적 대상과 간접적 대상의 대비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토마스적 이론은 인간 정신에 대한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한 길을 연다. 인간의 의식 안에 인간의 지성(intelligence)이 있으며, 지성은 인간이 부여받은 합리적 추론의 타당한 기능이고, 그 기능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한 아는 주체(knowing subject)와 주체의 지식의 대상으로 나뉘어 있다. 인간 존재가 의식이 있어 생각할 때마다, 그는 아는 주체이며, 대상들을 보는 주체(knowing subject viewing objects)이다. 그래서, 한 사람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의 통합은 의식 안에 주어지며, 경험주의자들, 기계론자들, 그리고 다른 모든 유물주의자들의 주장들과는 반대로 어떤 순간적인/자연 발생적인 지각(spontaneous awareness)이다. 칸트는 기본적으로 이것에 동의하지만, 그러나 오직 환원적으로만 동의한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주체의 감각 인식이라는 행위와의 관계를 떠나서는 아는 주체의 독립적 직관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아는 주체로서 자아에 대한 지각(awareness)은 모든 고등 동물들의 특성인데, 왜냐하면 모든 제한적 앎의 행위는 지식의 대상과 그 지식의 아는 주체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물의 앎은 단지 즉흥적으로 아는 주체를 담고 있는 반면에, 지성적인 인간의 앎은 의식된 지각(apperception)의 통합 안에서 반성적인 지각의 힘을 담고 있다. 지성적인 의식된 지각의 통합은 그 자체의 내용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옳다. 왜냐하면, 그 통합은 그런 제한된 지성의 한 공허한 요소이지만, 구성 요소들을 대상들로 바라봄으로써 이 지각 배후에 놓여있는 구성요소들을 발견하는 능력을 갖기 때문이다.10 정신적 대상들이 감각의 인식들이 아니라는 것에 관한 한, 그는 일종의 타당성을, 즉 일종의 실재를, 또한 시간, 공간, 그리고 “의식된 지각의 초월적 통합”을 허용한다. 그러나 그는 왜 이 정신적 대상들만이, 감각적 상상이라는 현상에 더하여, 실재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또한 그는 왜 마음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는 이유를 보이는데 있어서 논리적 범주들과 판단의 기능들에 관한한 그의 이성의 힘으로부터 그 어떤 증거도 제시할 수 없다(cf. 23번). 따라서, 칸트의 비평적 인식론의 대부분은 그가 단순히 추정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근거한다.
34. “칸트적 분리(the Kantian split). 칸트의 용어에서 초월적 철학이란 순수 이성의 모든 원리들의 체계인 과학이라는 관념이다(KC, p. 39). 그는 이성의 비판은 과학에로 이끌어 가는 반면에 이성의 비평 없는 “교조적”(dogmatic) 사용은 이유 없는 주장들에로 그리고 동일하게 이유 없는 정반대 주장들에로 이끌어 간다고 말한다(KC, p. 39). 코프레스턴(Copleston)이 주장하는 것처럼, 칸트는 “자연적 성향(natural disposition)으로 간주되는 형이상학의 가치를 긍정하지만, 우리에게 순수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실재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주는 참된 과학을 구성한다는 형이상학의 주장을 거부한다”(CHP, p. 27). 칸트는 위에서 언급된(23번) 세 가지 “초월적 관념들”을 조심스럽게 긍정하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다른 철학자들에 의해, 대륙 관념론자들뿐만 아니라 또한 (공정한 듣기 없이) 토마스 아퀴나스와 그의 동료들의 철학과 신학에 의해 제시된 관념들의 대부분을 “모든 통찰과 지식이 그 안에서 존재하기를 그치는” 혼란(confusion)으로서 덮어놓고 배제해 버린다(KC, p. 285). 그러나 심지어 칸트가 유지하는 아주 소수의 초월적 관념들조차도 그에게는 언제나 그렇게 인식될 “허구들”(fictions)이다(23번). 그리고 여기서 렛징거에 의해 치료받을 필요가 있는 현대 사상의 결함으로 언급된 “칸트적 분리”가 드러난다(3번). 칸트에게 있어서, 감각 인식의 내적-정신적 대상들과 그 감각 인식에 가깝게 묶여 있는 것 시간과 공간 같은 것들만이 “실재”하고, 반면에 다른 모든 대상들은 실재에 있어서 모자라고,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모든 초월적 관념들은 그래서 공상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야만 한다(22번). 자, 만약 우리가 “과학”을 “그런 실재에 대한 확증된 지식”으로 정의한다면, 칸트의 “비평적” 견해에서 전통 철학과 신학의 모든 대상들은 비과학적이 될 것이다. 칸트는 사변적 지식은 감각적 경험이외에는 그 어떤 다른 객관적 근거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지성적 가설들과 신앙은 실천적 관심사들의 봉사에로 요청되지 말아야 한다고, 그것들을 “과학과 통찰이라는 화려한 명칭들” 아래 놓지도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KC, p. 286). 이제, 감각 경험은 현상들의 종합 안에서 통합의 일반적인 규칙들을 갖지만, 그러나 그는 이 규칙들의 객관적 실재는 언제나 감각 경험 자체로부터 드러내 진다는 것을 더한다(KC, p. 127).
35. “허용되는 허구”(permissible fiction)로서 칸트의 비평 철학. 칸트는 우리에게 철학하는 데 있어서 당연한 경향(tendency)이 존재한다고 말하는데, 그러나 그에게 이 경향은 그 자신만의 환원적 허용들을 떠나서는 과학과 객관적 실재 안에 아무런 근거도 갖지 못하고 과학과 객관적 실재와 아무런 논리적 연관성도 갖지 못하며, 이것은 그 자체에게 담론의 우주이다. 칸트는 “비평 철학” 안으로 조금 모험해 들어가도록 자신을 허용하지만, 그러나 그런 사고는 오직 기껏해야 허용될만한 공상이라는 조건과 함께 들어간다(23번). 그는 과학과 실재는 오직 감각 경험과 직접 관련된 생각들과만 관련된다고 주장하지만, 그러나 이 견해를 위해 아무런 납득시킬만한 논거들을 제공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실제로 아는 것들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운 것들이라는 것이 사실이다. 경험 과학자들의 전문적인 지식의 대부분조차도 그들 자신만의 개인적 감각 경험에서 알게 된 것이 아니다. 역사에 대한 지식과 사람들이 실재적인 것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증언(testimony)에 의존하며, 그리고 거기에는 그런 증언이 믿을 만한가 아니면 믿을 만하지 못한 가를 판단하기 위한 상식적 규칙들, 뿐만 아니라 보다 더 기술적 규칙들이 있다. 그러나 칸트는 “유일한 참된 교사”는 감각적 경험이라는 기반 위에서 선험적으로 그런 모든 증언을 제외시킨다(KC, p. 285). 칸트의 “유일한 참된 교사”라는 제한된 개념은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지식에 대한 부적절한 관념을 세운다. 모든 현상들은 “사물들 자체로서 주어지지 않고, 오직 경험 안에서 주어진다”는 그의 생각을 적용하면서, 그는 “실제로 과거에 존재했던 사물들”은 그에게 “오직 내가 가능한 인식들의 역행하는 시리즈는 우리를 현재 시간의 조건으로서 시간의 경과된 시리즈에로 인도한다는 것을 내 마음에 제시할 수 있는 한에 있어서 실재 대상들”이라고 말한다. 칸트가 대상들은 그의 경험 이전에 존재했다고 말할 때, “이것은 오직 내가 내게 제시된 인식(perception)과 함께 시작해야만 하고, 경험의 어떤 부분이나 영역에서 대상들을 발견할 때까지 지시된 궤도를 따라가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KC, p. 298). 여기서, 다른 곳에서처럼, 칸트는 역사적 사건들의 외적 실재성을 그리고 과거에 대한 지식의 획득에 있어서 증언의 가치를 인정하는 상식적 경험을 위반한다. 분명 과거의 사건들은 현존하지 않지만, 그러나 칸트의 접근은 문서화된 역사적 사실들(historical events)을 외적 실재의 영역에서 제거해버리고, 문서화된 역사적 사실들을 일종의 허구로 축소시킨다.
36. 칸트의 최고의 판관으로서 “보편적 이성”(universal reason). 칸트는 “이성의 비평”은 그 자체이외에는 그 어떤 다른 판관에도 지배를 받지 않는 인간의 타고난 권리라는 것을 근본적 원리로서 보유하고 있다(23번). 불행하게도, 이것은 모든 합리주의의 기본적 전제이다. 그는 “보편적 이성”을 그 어떤 외적 권위에도(심지어 신의 권위에도) 지배를 받지 않는 판단을 위한 “신성하고 침범당할 수 없는” 권리를 갖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 “신성한” 기반 위에서, 그는 신적 계시에의 모든 호소들과 신에 의해 설립되었다는 교회의 모든 주장들을 쓸어 내버린다(27번). 그는 도덕의식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객관적 진리 안에 근거를 두지 않는, 이성의 사용에 완전히 지배를 받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것은 칸트가 자기 자신만의, 도움을 받지 않는 이성 주위에 건설해 온 자아 중심적 세계관(an egoist worldview)이다. 그렇다, 인간은 신중하게든 삐틀어지게든 생각하는 경향을 갖지만, 그러나 인간은 또한 그의 이성을 객관적 진리에 일치시킬 의무도 갖고 있으며, 이것은 역사적 실재와 상식에도 일치시키는 것을 포함한다. 반면에 칸트의 실재(reality)에 대한 비실재적(unrealistic)이고 독단적인 정의는 역사적 증언(testimony)의 타당성뿐만 아니라 심지어 실재에 대한 개념 자체에 대한 상식적 경험 안에 있는 그 기초 자체조차도 초점에서 쫓아내버린다. 칸트는 물리적 세계를 인과관계의 완전히 폐쇄된 체계(closed system)로 보는데, 자유스런 인간 행위들은 결코 그 체계를 방해할 수 없다(26번). 이 학설과 함께 칸트의 “자유 행위들”의 결과들은 순전히 심미적 환영(illusion)으로 제시되며, 이 입장은 상식에 상반된다. 왜냐하면 자유스런 인간 행위들은 참으로 자연의 물리적 작동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은 언제든 증명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칸트의 “보편적 이성”(universal reason)에 호소는 실제로는 그 자신만의 틀리기 쉬운 이성에만 호소하는 것이다.
37. 칸트의 주관적 이성(subjective reason)이라는 관념. 칸트는 초감각적 물 자체(본질)에 대한 모든 사색을 우리자신 바깥에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도덕적 추론의 견해 안에만 존재해야만 하는 것에 한정되는 이외에는(25번) 우리 스스로에 의해 창조된 신앙의 대상들로 묘사한다(24번). 이렇게, 그는 경험적 과학이라는 실재 세계를 그리고 도덕적 성향과 의무라는 완전히 분리되는 비-실재적 세계를 세운다. 그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도덕적으로 확신”한다고 말하며, 신앙에 근거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완전히 허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반면에, 그는 실천 이성과 신앙의 이런 대상들은 결코 참된 지식을 구성하지 않는다는 선험적 인식을 요구한다(KC, p. 426). 그래서, 그가 말한 “도덕적으로 확실한 것”이란 신이라는 비실재적 관념에 응하려는 나의 비평적으로 훈련된 정신의 경향성에 받아들여질 만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추론들(reasonings)은 기껏해야 허구적(fictitious)이라는 조건을 단다. 신의 존재와 인간 영혼의 불멸성을 위해, 칸트는 객관적 입증보다 완전히 주관적 이성을 선호한다(24번). 물론, 확실히 객관적 입증보다 주관적 이성을 선호하는 것은 논거들 중에서 가장 엉성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이며, 현명하고 전능한 세상의 창조자의 존재를 가정하려는 대중의 단순한 성향은 논거 그 자체에 충분하지 못하다. 회의주의자들과 자유 사상가들은 종종 이렇게 말해 왔다. “어떤 사람들은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체육, 어떤 사람들은 드라마,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종교를 좋아한다.” 즉, 칸트는 종교를 심미적 선호(aesthetic preference)에로 축소시키는데, 그 결론들은 그에게 객관적 실재에 대한 아무런 확실성도 갖지 않는다.
38. 이성(reason)과 이해(understanding)에 대한 토마스적 접근. 칸트는 그의 입장을 지식, 이성, 이해, 그리고 실재 자체에 대한 잘못된 정의들 위에 근거를 둔다. 이런 인식론적 오류들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길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원리들과 교훈의 적용을 통해 열려 있다. 과학(science)이라는 말은 보통 “확증된 지식”(certified knowledge)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칸트는 오직 감각 경험에 의해 확증된 지식만이 과학적이고, 반면에 지식에 대한 다른 모든 주장들은 기껏해야 신념(faith)이나 견해(opinion)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KC, p. 466). 이것은 지식과 이해가 일어나는 방식에 대한 질문을 일으킨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이고, 물질적 사물들에 대한 지식은 감각 인식에서 일어나며, 반면에 이런 사물들이 의미하는 바는 이해(understanding)와 관련된다. 간단히 말하면, 이해는 한 사물이나 진리에 대한 지식이거나, 또는 그 이전에 알려진 사물이나 진리에 대한 지식이다. 이 관계 또는 추론(inference)은 간접적일 수도 있고 직접적일 수도 있다. 간접적인 경우에, 새로운 사물, 간접 대상(the remote object)과 그전에 알려진 사물, 직접 대상(the proximate object)과의 비교 안에 단순한 병치(juxtaposition)만 있다. 직접적인 경우에, 어떤 논리적 과정(logical process)이 포함된다. 아리스토텔레스/토마스적 이론은 인간의 지성 안에 선천적인 원리들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이 원초적 원리들(beginning principles)로부터 나머지 논리가 추론될 수 있다. 건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 모두는 이 원리들에 따라 생각하며, 그렇게 과학이 발생한다. 맨 먼저 상식(common sense)이라고 알려진 공통 과학(common science)이 발생한다. 공통 과학은 기술 과학으로 발전되어 왔고, 기술 과학은 정밀한 방법들과 기술적 용어들을 사용한다. 토마스적 종합에서, 스끼엔띠아(scientia)는 “지식”과 “과학”(science) 둘 다를 의미하며, 이것은 합리적인데, 왜냐하면 과학은 확증된 지식이며, 확증되지 않은 지식은 참된 지식이기 보다는 오류 또는 그저 견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적 지식, 즉 참된 지식은 한 사람 자신의 감각 경험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과학적 지식은 타인들의 확증된 증언들과 이 대상들에 대한 타당하게 추론된 결론들을 포함한다. 칸트는 그가 물질적 대상들에 대한 인식(perception)을 이해라고 부르고, 비-물질적인 정신적 대상들에 대한 논리적 반성(logical reflection)을 이성이라고 부르는 의미에서 이성과 이해를 부당하게 비기능적으로 분리해 버린다. 이 분리는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심지어 경험 과학자들조차도 물질적 대상들을 이해하기 위해 그 대상들에 대해 추론하며(reason), 토마스주의가 그렇게 효과적으로 발휘하는 것처럼 비-물질적 대상들에 대한 논리적 반성 안에 이해의 보고가 있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 이해의 보고를 제거해 버리는데, 그러나 오직 지식, 이성 그리고 이해에 대한 잘못된 정의들에 근거하여 그렇게 한다.
39. 과학이라는 명칭. 토마스의 관점에서, 기록된 역사뿐만 아니라, 건전한 철학과 건전한 신학도 과학이라는 명칭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건전한 철학과 건전한 신학은 실재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산출해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를 그것의 내용 안에 모든 과거의 확증된 사건들을 포함하는 “과거의 실재에 대한 지식”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은 “자연 이성이 그 안에서 신적 계시와 관계없이 모든 사물들의 첫 원인들에 대한 지식에 의해 만물들을 이해하려는 것”이다.11 마지막으로, 신성한 신학은 계시된 실재에 대한 과학이며, “계시된 진리에 대한 연구 전체”에 적용된다.12 이 세 가지 과학들 각각은 자연 과학이 또한 그런 것처럼 공통 과학의 기술적 발전이다. 그리고 이 과학들 각각은 그 자체의 정신적 준거 틀(mental frame of reference)을 갖는다. 역사 과학은 “과거 자체”의 개념 주변에 구성되며, 알려진 발전들로부터 뒤로 이 발전들의 기원들에 도달한다. 역사 과학은 본질적으로 과거 지향적 보기이다. 철학 과학은 자연 이성의 수준에서 자연 과학의 시야 너머로 확장되는 지식을 다룬다. 그리고 신성한 신학 과학(the science of sacred theology)은 논리와 자연 이성의 사용을 통해 계시된 진리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발전한다.
40. 결론. 임마누엘 칸트의 철학은 간단하게 무시되기에는 너무 영향력을 행사해 왔지만, 교부들과 가톨릭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수 세기 동안의 사상은 더더욱 영향력을 행사해 왔고, 그래서 그들의 사상은 칸트가 확실하게 그러는 것처럼 간단하게 무시되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면, 칸트가 토마스의 인식론에 대해 신중하게 연구하기 보다는 싸잡아서 거절하기를 택한 것은 유감이다. 상식의 타당한 통찰과는 반대로, 칸트는 그의 철학을 영국 경험주의와 유럽대륙의 관념주의의 환원주의적 접근들 위에 세웠으며, 그는 그 철학으로부터 철학적 진리와 신학적 진리의 실재를 부정하는 이원론(dualism)을 건설했다. 이 이원론은 칸트로 하여금 오직 허용되는 심미적 추구들로서만 인간의 자유, 신, 그리고 인간 영혼 불멸이라는 관념들을 위한 근거를 제공할 수 있게 했다. 과학적 사고가 감각적 관찰들로부터의 방법적 결론들에만 제한되어야만 하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사실, 논리적 사고(logical thinking)와 확증된 증언(verified testimony)은 참된 과학들의 기초일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과학적 지식이 하나님에 의해 계시된 초감각적 실재들로부터 발생할 수 없는 이유도 없다. 신앙은 듣는 것에서 시작하고, 그리고 우리가 자연적 사물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 대부분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워온 것이다. 감각 지식은 유일한 확증된 지식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의 대상들은 또한 타당한 지식의 재료들이다. 그러나 상식의 거부 위에 세워진 철학적 결론들은 타당성을 주장할 수 없다. 철학의 목적은 진리를 이해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칸트의 감각 이미지들에 대한 인식에로의 이해의 제한은 궤도를 벗어난다. 그래서 또한 이성에 대한 정의, 그리고 이성에 대한 그의 접근을 모든 가치들에 대한 최고의 판관으로 만드는 것도 또한 궤도를 벗어난다. 실제로, 비평(criticism)의 아리스토텔레스/토마스적 사용은 칸트의 이성 비평보다 더 세련되고, 올바른 사고를 위해 더 유용하다. 임마누엘 칸트의 철학은 기독교 신앙을 대한 심각한 공격이어서, 조목조목 반박될 필요가 있지만, 불행하게도, 비록 이 논의에서 자주 언급된 프레데릭 코프레스턴(Frederick Copleston)의 것처럼 간략한 반응들이 모자라지는 않았지만, 심지어 가톨릭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에 의해서도 그 동안 적절하게 반박되지 못해왔다. 아직도 연구해야할 것이 많은데, 이 발표의 다음 부분에서, 나는 특별히 칸트적 사고가 얼마나 지속적으로 가톨릭 성경 학자들과 신학자들의 주석적 사고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는지 드러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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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Endnotes)
1 Frederick Copleston, History of Philosophy, vol. 6, Modern Philosophy, Part II, Kant (Image Books: Garden City, NY, 1964) [hereinafter referred to as CHP], p. 218.
2 Cf. Immanuel Kant, Critique of Pure Reason (English translation of the second edition, 1787: New York: Dutton and Co., 1934 [hereinafter referred to as KC]) pp. 102 and 413.
3 칸트의 용어에서, 직관(intuition)은 오직 감각 인식에 고착된 반면에, 개념(perception)은 감각 인식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으며 여러 사물들에 공통적인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오직 이해에 그 기원을 갖으며, 따라서 감각 인식에서는 그 기원을 갖지 않는 순수 개념을 그는 관념(notion)이라고 부른다. 관념들로부터 형성된 그리고 그러므로 감각 경험의 가능성을 초월하는 표상(representation)을 그는 관념(idea), 또는 이성의 개념이라고 부른다(KC, p. 222).
4 회의적 관념주의(problematical idealism). 데카르트의 “희의적 관념주의”에 대한 반박에서, 칸트는 “단순하지만 경험적으로 측정된 의식(determinded consciousness)이 공간 안의 외적 대상들(external objects)의 존재를 입증한다”는 공리(theorem)를 옹호한다. 그의 입증은 이와 같이 진행된다. 나는 시간 안에서 측정된 것으로의 내 자신의 존재를 의식한다. 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식은 동시에 내가 아닌 다른 사물들의 존재에 대한 즉각적 의식(immediate consciousness)이다. 우리의 증명은 외적 경험은 적절하게 즉각적이라는 것, 오직 그것에 의해, 참으로 우리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식이 아닌, 확실히 시간 안에서 우리 존재의 측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존재한다는 표현에서 우리는 그 주체에 대한 그 어떤 지식도 발견할 수 없고, 그러므로, 또한 아무런 경험적 지식(empirical knowledge), 즉 경험(experience)을 발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경험은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더하여, 직관을, 그리고 이 경우에 이것은 틀림없이 내적 직관, 즉 그 주체가 그것과 관련하여 측정되어야만 하는 시간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부 사물들의 존재는 절대적으로 이 목적을 위해 필수적이어서, 내적 경험은 그 자체 오직 간접적으로 그리고 외적 경험을 통해 가능해야 한다(KC, pp. 170-172). 그리고 우리는 다양한 상태들 안의 우리 자신들의 연속적인 존재를 표현할 수 있기 위해 외적 직관을 사용해야만 한다(KC, p. 179). 아마도 모순은 아닐 것이다. 어떤 저자들은, 프레데릭 코프레스턴을 포함하여, 위에서 언급된 공리를 외적 세계와 그 안의 사물들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칸트의 기본 원리에 반대되는 것으로 보아 왔다. 그러나 나는 면밀한 검토는 칸트의 추론에서 어떤 일관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데카르트의 첫 진술은 코지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이었다. 칸트는 만약, “내가 존재 한다”에 의해 아는 주체 자체의 단순한 존재를 제외하고 나에 대해 어떤 것이 의도되었다면,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지한다. 왜냐하면 의식의 이 요소는 절대적으로 공허하고, 그리고 아무 내용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옳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의식은 오직 내가 관찰하고 있는 어떤 대상에 부합할 때만 존재할 수 있고, 그래서 데카르트의 추론은 그가 이성적인 것들(rational substances)이 독립적으로 외부 사물들을 의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한(KC, p. 242), 그리고 모든 철학을 그의 코지토, 에르고 숨으로부터 주관적으로 끌어내려 하는 한 성립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칸트가 여기서 인간 의식에 외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는 것으로, 그보다는 오직 칸트가 “내적 감각”(internal sense)이라고 부르는 것에 그리고 데카르트의 코지토의 주관성에 대해 외적인 것으로 “외적”(external)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칸트의 추론의 이 점에 아무 모순도 없는 것 같이 보인다. 칸트에게 감각적으로 관철되고 있는 대상은 언제나 정신 안에 있으며 결코 정신 바깥에 있지 않다는 것은 여전히 남는다. 따라서, 비록 생각하는 자아는 스스로를 하나의 대상으로서 반성적으로(reflexively) 세울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은 내게 이유 없고 근거 없는 것같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기서 그의 전적인 주관주의에 반대하지는 않는 것 같다.
5 “(칸트는) 우리가 물 자체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해도, 우리는 물 자체의 존재를 독단적으로(dogmatically) 주장하지 말아야만 한다는 것을 유지한다. 칸트가 실재를 그 주체의 단순한 건설로 환원시키는 것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과 그가 그래서 물 자체의 개념의 유지를 상식의 문제로 보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피히테의) 견해에서, 칸트는 사물들을 동시에 두 가지 방식들로 이해하려고 시도했던, 그리고 그래서 자신을 절망적인 모순들 안에 끌어들인 사람이었다”(CHP, p. 221).
6 Thomas Reid (1710-1796), Works (1863 edition), p. 101 (quoted in William Turner, History of Philosophy [Boston: Ginn and Co., 1929]), p. 593).
7 Cf. F. Copleston, History of Philosophy (Garden City, NY: Image Books, 1963), vol. 4, p. 49.
8 Copleston, ibid., p. 49.
9 Cf. R.P. Phillips, Modern Thomistic Philosophy (Westminster, Maryland: Newman Press, 1950), vol. I, pp. 96 and 123.
10 Cf. my treatment of “Intellectual Consciousness” and “The Discovery of Truth” in The Science of Historical Theology (2nd printing, Rockford: TAN, 1991), pp. 15-25.
11 John A. Hardon, “Philosophy,” in his Modern Catholic Dictionary (second printing, Bardstown, KY: Eternal Life, 2001).
12 Hardon, “Theology,” op. cit.
Roman Theological Forum No. 140 (March 2009)
제 3 장. 역사 비평에 대한 칸트 철학의 영향
PART III. THE INFLUENCE OF KANTIAN PHILOSOPHY UPON HISTORICAL CRITICISM
by John F. McCarthy
http://www.rtforum.org/lt/lt140.html
41. 칸트적 접근(The Kantian approach). 임마누엘 칸트는 종종 “창조적인 천재”로 그리고 “현대 정신의 가장 중요한 고안자들 중에 하나”로 찬사를 받아 왔다.1 그의 현대 사상의 발전에 끼친 영향은 “결코 과대평가 될 수 없다.”2 그렇지만, 이 영향은 기본적으로 긍정적이고 유익한 것이었다는 것은 아주 의심스럽다. 한편으로, 칸트의 접근은 완전히 경험적이고, 그리고 따라서 그의 접근은 실재의 큰 부분을 초점에서 벗어나게 놓는 환원적 관점을 대표하며(28번), 인간 정신의 외부에는 실체적 사물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상식을 명백하게 위반한다(29-30번). 아리스토텔레스/토마스적 인식론은 더욱더 실재적이고 만족스런 접근이어서, 외적 사물들을 인간 지식의 원거리/간접 대상(remote object)으로 식별하며, 이 외적 사물들의 내적 표상을 그것의 지식이라는 근거리/직접 대상(proximate object)으로 식별한다(31-32번). 칸트는 그의 경험주의적 접근의 물질주의(materialism)와 체계(mechanism)를 의식이라는 아는 주체의 통합의 중앙에 자리 잡은 관념주의와 결합시킨다. 그 의식으로부터 실재를 갖지 않지만 인간적으로는 중요할 수 있는 사고의 초월적 대상들이라는 그의 유사한 세계(his parallel world)가 외부로 방출된다. 그에게 이 대상들의 몇 가지는, 즉 그의 “비평적 사고”의 대상들은 그가 고전 철학과 전통적 종교를 허구라고 판단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순전한 공상들이 아닌 정도로 “허구적 실재”(fictional reality)를 갖는다. 왜냐하면 비평적 사고의 대상들은 어느 면에서 감각 경험의 실재와 관련되기 때문이다(33번과 35번). 그렇게 렛징거에 의해 현대 철학의 맹독으로 언급된, 특히 역사 비평 방법에서 사용된 것처럼 “칸트적 분리”가 나타난다(3번과 7번).
42. 역사 비평과 그것의 20세기 발전인 양식 비평(form-criticism). 19세기의 “고등 비평”과 그것의 20세기의 특히 헤르만 궁켈, 마틴 디벨리우스, 루돌프 불트만의 양식 비평으로 특징되는 “역사 비평” 안에서의 지속은 18세기의 “계몽주의의 산물”이며, 칸트는 그것에 상당히 기여했다. 데이비드 백이 보는 것처럼, “계시의 권위와 무오류를 부인하는 사람들의 입장들의 많은 특징들은 칸트로부터 직접적으로 끌어내진다. 많은 경우에 칸트에의 의존은 분명하고 공공연하다. 그리고 이 입장의 어떤 요소들은 칸트 이전에도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들을 처음으로 일관성 있는 통일체로 모아 기독교(특히 독일) 신학의 주류 안에 소개했던 사람이 바로 칸트였다는 것은 명백한 것 같다.”3 그리고 칸트는 (슈베르트 옥덴을 인용하자면) 성경의 권위와 관련되는 한, 그가 이론적 이성과 실천적 이성을 근본적으로 분리한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성과 신앙을 분리한 것의 영향과 필적할 만하다.4 이 방법들에서 “비평”(criticism)은 비록 칸트가 그 용어를 만들지는 않았다할지라도 칸트의 비평적 접근과의 관계성을 낳으며,5 이 모든 성경 주석의 형태들은 그것들이 성경에 대한 현대적 이해에서 그 어떤 초자연적인 영향력이나 활동의 가능성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합리주의적(rationalistic)이다.6 역사 비평의 양식 비평 방법의 창시자 헤르만 궁켈은 그의 유명한 작품,『창세기』(독일어 첫 판, 1901)에서 그가 창세기 본문을 구성했던 허구적 양식들(fictional forms) 또는 문학 장르들(Gattungen)로 보고자 했던 것의 역사에 그의 주의를 집중시켰다. 이런 방식으로 (문자적으로 “양식-역사”, 그러나 영어로 “양식 비평”[form-criticism]이라고 불리는) 양식사(Formgeschichte)라는 방법이 태어났다. 궁켈은 신앙의 대체 세계(the alternate world of faith)와 이성의 실재 세계(the real world of reason)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을 일단 받아들이면, 오직 창세기의 전설들(legends)은 대체 세계에 속한다고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수와 그의 사도들은 창세기의 기사들은 실재 세계의 역사적 사건들이라고 가르쳤지만, 그러나 “그들은 그들 시대의 견해들을 공유했고,” 따라서 “우리는 구약 문서의 역사에 대한 질문들과 관련하여 신약에서 정보를 찾을 수 없다”고 계속 말했다.7 궁켈은 그가 현대인으로서 예수와 그의 동시대인들의 원시적 관점보다 더 우월한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확신했다. 교황 레오 13세는 그의 1893년 11월 18일의 회칙에서 “자기 자신들의 생각을 신뢰하며 심지어 그들에게 전해 내려온 기독교 신앙의 조각들과 파편들조차도 거부해온” 합리주의자들의 주석들에 대항하여 성경의 진리를 방어하기 위해 일어설 것을 가톨릭 학자들에게 촉구했다.8 루돌프 불트만(1884-1976)은 신약 양식 비평의 다섯 주요 창시자들 가운데서 가장 유명했다. 그의『공관복음서 전승사』(History of the Synoptic Tradition, 1921)는 주석적 연구(exegetical work)였는데, 그 안에서 그는 마태, 마가, 그리고 누가 복음이라는 공관 복음서들의 역사를 완전히 제거해 버리기 위해 양식 비평을 사용했으며, 나사렛 예수라는 인간이외에 나머지를 남겨두지 않았는데, 예수는 존재했지만, 참으로 아마도 십자가에 못 박혔고, 공관 복음서들에서 그에게 돌릴 수 있는 식별할 수 있는 말들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양식 비평 방법의 이 두 창시자들은 그들의 현대인의 관념을 경험적 관찰로부터 얻어진 칸트의 실재 지식(factual knowledge)과 가정되지만 알 수 없는 형이상학적이고 종교적 견해 사이의 철두철미한 분리위에 세웠다.9
43. 역사에 대한 칸트의 환원/축소적(reductive) 관점. 칸트가 데이비드 흄의 경험주의와 “초월적 관념들”이라는 자신의 개념을 혼합한 것은 지식 획득에 있어서 증언(testimony)의 중요성을 감소시킨다. 사실, 비록 심지어 자연 과학들에 있어서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증언으로부터 습득된 것일지라도, 그리고 그의 철학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대부분도 그들이 그의 가르침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할지라도, 칸트에게 감각 경험으로부터 얻을 수 없는 지식은 전혀 지식이 아니다(22번). 하지만, 칸트의 가르침에 따르면, 감각 현상들에 대한 지식을 재현시키지 않는 것은 그 무엇이든 오직 자기 자신만의 견해이거나 타인들의 견해들에 대한 인간적 믿음에 불과하며, 그리고 이 둘은 그에게 기껏해야 오직 주관적 타당성만 가질 뿐이다. (따라서, 이것에 관련하여 칸트는 암묵적으로 그 자신의 비평 철학이 오직 주관적 타당성을 가질 뿐이며 실재적인 지식을 구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다.) 그는 심지어 역사적 지식이 모든 사람의 도덕적 개선과 본질적 관계성을 갖지 않기 때문에, 역사적 지식은 각 사람이 교훈적인 것을 찾을 수 있다면 자유스럽게 가질 수 있는, 이쪽도 저쪽도 무관한 것(유용한 것도 유해한 것도 아닌 것)에 속한다고 주장한다.10 게다가, 역사에 대한 그의 환원적 관점은 모든 외적인 역사적 사실들의 실재성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신빙성 있는 목격자(witness)와 그것에 관한 증언(testimony)을 위한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35번). 그리고 선험적으로 그의 세계에 대한 관념 안으로의 그 어떤 신적 개입의 가능성도 배제하는 물질적 인과율이라는 완전히 닫힌 체계를 주장하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이런 빈곤한 개념은 무엇보다도 그것들을 감각 경험에 의해 인식했던 목격자들의 입장에서의 이적들에 대한 증언에 적용된다(26번). 그러므로, 칸트의 사고 체계는 역사적 사실들의 기록으로서 성경의 권위와 성경의 신적 영감과 무오류를 선험적으로 배제한다. 그러나 이 기계론적 전제는 역사와 객관성에 대한 착각에 빠진 관념들 위에 세워진다.
44. 궁켈과 불트만의 양식비평 방법에 끼친 칸트의 사고의 영향. 궁켈과 불트만의 양식비평(form-criticism)은 기독교 신앙을 무시하고 성경을 비판하기 위해 칸트적 의미에서 비평적 이성에 배타적으로 집중한다는 점에서 성경의 해석에 대한 비평적 접근이다. 양식비평은 전통적인 역사적 연구라는 비평 방법(ars critica)이 성경을 보증하고 방어하기 위해, 또한 성경에 대한 보다 온전한 이해를 얻기 위해 그 안에서 사용되고 있는 전통적 성경 해석의 비평적 추론(critical reasoning)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궁켈과 불트만의 방법은 그것이 소위 “현대인”의 추론을 성경 안에 제시된 열등하다고 추정하는 사고보다 더 높인다는 의미에서 현대주의자의 방법(modernist method)이다. 궁켈과 불트만의 양식 비평은 또한 성경의 인간적 측면에 배타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성경의 기록에 있어서 그 어떤 신적이고 초월적 영향을 그것의 추론 안에서 선험적으로 쫓아내버린다는 점에서 환원적 방법이다. 양식비평은 건전한 형이상학의 사용을 배제하고, 오직 건전한 철학만이 충분하게 규명할 수 있는 철학적 오류들에 계속해서 빠진다는 점에서 또한 환원적이다. 확실히, 궁켈과 불트만은 우리가 보는 사물들은 우리 자신의 정신 바깥에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칸트를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은 인간 이해의 형상적 대상(formal object)을 간과하고 그들의 추론 과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그 정신적 준거 틀이라는 비평적 초점을 제거해내 버리는 추론의 결함이 있는 주체-객체 모델을 사용하는 귀결적 오류에 빠진다. 마지막으로, “칸트적 분리”는 이 양식 비평 방법 안에서 작용한다. 왜냐하면, 성경의 교훈과 역사적 에피소드들은 독단적으로 신화와 공상의 종교적 꿈의 세계로 분류되는 반면에, 실재의 기운(the aura of reality)은 오직 그들 자신의 비평적 사고에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성경은 궁켈과 불트만에게 의미 있었는가? 그들은 성경을 연구했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칸트적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의 허구(fiction)가 “칸트적 분리”의 또 다른 측면에서 발견되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근저에 깔려 있는 실존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비평했다(23번).
45. 가톨릭 양식비평가들의 역사 비평 방법. 가톨릭 역사 비평가들은 “역사 비평 방법은 고대 본문들의 의미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위해 절대 필요한 방법이다”라고 주장하며,11 양식비평을 그들이 수행하는 역사 비평의 필수 단계로 본다.12 재구성된 가톨릭 성경 위원회의 1993년 문서는 양식비평의 창시자 헤르만 궁켈을 그와 다른 역사 비평가들이 거기에 있다고 보는 공상적 문학양식 이전의 역사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그저 성경 본문(특히 구약)의 절개(dissecting)와 파괴(dismantling)를 목적으로 삼는 문학비평의 슬럼가로부터 고등 비평을 구해냈다고 칭송한다. 동시에 동일한 문서는 궁켈의 양식 비평 방법을 공관 복음서에(그리고 계속 신약의 나머지 책들에) 적용한 마틴 디벨리우스와 루돌프 불트만의 공로를 인정한다. 그 1993년 문서는 역사 비평 과정을 본문 비평(textual criticism)으로부터 양식 비평(form-criticism)과 전승 비평(tradition-criticism)을 거쳐 편집 비평(redaction-criticism)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그 문서는 이런 식의 비평은 “성경 본문을 발생시킨 역사적 과정들을 규명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역사적 방법이며, “그것은 그것의 각 단계에서 가능한 객관적 이려는 과학적 척도들의 도움을 받아 작동하기 때문에” 비평적 방법이라고 주장한다.13
46.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가톨릭 역사 비평가들의 특징인 양식 비평은 오로지 네 단계의 추론 과정들에 집중하기 위해 가톨릭 신앙의 실재들을 떼어 내버린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또한 오로지 영감 된 성경의 현상적 수준에 집중하기 위해 그것의 접근의 신학적이고 철학적 함축들(implications)을 무시해 버릴 정도라는 의미에서 환원적 방법(reductive method)이다(28-29번). 그래서 그것의 1993년 문서에서, 가톨릭 성경 위원회는 궁켈과 불트만의 역사적 역할에 관련하여 가톨릭 신앙의 대상들에 대한 그들의 주석적 작업의 파괴적인 영향력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그들의 합리주의적 양식 비평 방법의 적용을 통해 그들이 획득한 성경에 대한 가정된 지식(supposed knowledge)에 집중한다. 그 위원회는 편집 비평 단계에서 성경 본문은 성경 본문의 특성에 대한 그리고 “행위와 삶의 관점에서” 그 본문의 요구들에 대한 눈에 의해 “그 저자에 의해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소통되는 메시지로” 설명된다는 것을 지적한다.14 그러나 이것은 오직 인간 저자들만을 염두에 두며, 그들이 그 이전의 단계들에서 발생시켜 온 쓰레기 더미로부터 가톨릭 신앙의 초자연적 대상들을 구해 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궁켈과 불트만은 양식 비평적 추론을 성경 안에 서술된 초자연적 일화들과 사건들은 그저 성인들을 위한 동화들과 유사한 종교적 공상물들이라는 전제 위에 세웠다. 그리고 이 접근이 가톨릭 주석가들에 의해 사용될 때, 그들이 그 문제를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 이상, 그들이 전혀 또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가톨릭 신앙의 초자연적 대상들은 암묵적으로 전혀 실재가 아닌 2류 실재의 일종으로 격하되어 왔다. 가톨릭 신앙의 행위는, 성경 안에 기록된 사건들의 역사적 진리성을 포함하여 신앙의 대상들의 실재성의 확언이기 때문에, 주석가들은 그들의 신앙으로부터 타고난 의무를 갖으며, 그들의 신앙은 교회의 교도권이 종종 지적해 왔던 것처럼 이 진리를 방어하기 위해 이 상황에서 그들의 상식에 어울린다. 그러나 가톨릭적 양식 비평은 이 진리를 방어하기 위한 기질 또는 요구의 애처로운 결여를 특징으로서 보여 왔으며, 이 요구되는 변증적 이행에 대한 경멸을 보이는 “화합주의”(concordism)와 같은 단어들을 보다 더 만들어 왔다. 오늘날 가톨릭교회 안에서 성경의 의미에 대한 광범위한 혼란은 대부분 가톨릭 양식 비평가들의 하나님에 의해 영감된 성경의 진리를 방어하는데 있어서 상습적이고 지속적인 실패에서 오는데, 영감된 성경의 진리는 그들의 방법의 합리주의적 전제들에 의해 침식된다.
47. 몇 가지 철학적 그리고 신학적인 연루들. 양식 비평과 연루된 철학적 그리고 신학적인 것들은 무엇인가? 궁켈, 불트만, 그리고 그들의 동료들은 18세기의 반 기독교적 계몽주의로부터 특히 임마누엘 칸트의 사고로부터 이어 받은 주체-객체 관계성의 개념을 양식 비평 방법에 새겨 넣었다. 이 잘못된 개념의 한 요소는 과학적 사고의 참조 틀을 구성하는 인간 지성의 형상적 대상(formal object)에 대한 주목의 결여이다(31번). 예를 들면, 자연 과학에서, 수학은 추론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분명한 정신적 준거 틀을 제공하며, 그리고 칸트는 자연 과학에서 순수 수학의 얼마간의 사용을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KC, pp. 415-416), 그가 “초월적 관념들”(transcendental ideas)이라고 부른 것에 대한 사고에 있어서 논리의 사용도 허용했지만, 그러나 그는 인간 지식의 질료적 대상들(material objects)을 형상적 대상들로 바꿔어 버렸으며, 그래서 지적 수단, 또한 준거 틀을 희미하게 만들고는, 모든 진리가 그것으로 구성되는 일치에 의하여 외적 실재들을 주관성과 섞어 버렸다. 다른 말로 하면, 칸트는 지식과 이해 둘 다를 질료적 현상들에 대한 정신적 구성에 제한시켰으며, 그렇게 모든 실제적 이해가 의존하는 형상적 원리들을 제거했다. 이런 칸트적 인식론 모델은 궁켈과 불트만의 양식 비평에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그들은 성경의 인간 저자들의 “원시적”(primitive)이고 “전-과학적”(pre-scientific)인 것으로 가정된 사고보다 더 탁월하다고 추켜세운 “과학적인 현대인의 전망”(the outlook of scientific modern man)으로서 칸트의 경험적 접근위에 그들의 비평을 세운다. 이 가정된 “현대적 전망”은 요청되는 철학적 그리고 신학적 원리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상식에 있어서도 쓸모없는 것이다. 궁켈과 불트만에게, “성서 과학”(biblical science)은 그들의 환원적 비평의 결과들 안에 놓여있으며, 합리주의자들은 보통 성경을 미신의 결과라고 공공연히 거부하는 반면에, 궁켈과 불트만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연구할 타당한 이유를 찾으며, 그리고 그 이유는 [성경이] 칸트적 비평을 극복하는 “허용할 만한 허구”(permissible fiction)라는 것이다(35번). 칸트는 허구라는 이유로 성경을 거부했지만, 그는 어떤 주관적이고 종교적인 사고를 허용했고, 이것은 궁켈과 불트만이 성경의 의미를 현대인의 주관적 경험으로 축소시킴으로써 기독교 신앙을 “구하기”(save)를 시도하면서 그것[성경]에서 그것[허용할 만한 허구]을 취하는 문을 열었다. 그들에게, 현대적 사고는 칸트적 노선을 따라 어떤 주관적인 종교적 사고의 허용을 가미하는 경험적 사고이다. 그래서 어떤 전적으로 비평된 종교적 사고들은, 비록 그것들이 언제나 허구적이고 비과학적으로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야심으로서 주관적이게 살아남도록 허용된다. 불트만에게, 이 허용할 만한 주관적 경험은 그것이 모든 형상적 객관성(formal objectivity)을 갖지 않고 아는 주체 자체의 자의식에 제한된다는 의미에서 실존적이지만, 그러나 그의 양식 비평의 수행에 있어서, 이 주관적 경험은 실현불가능하고 그저 가능성만 있는 수단과 같은 것이다.
48. 실재성(reality)과 가톨릭 신앙. 칸트는 직접적으로 인식되는 것으로서 감각적 실재(sensory reality)와 추론된 비-실재(reasoned non-reality)를 구별했다. 그는 추론된 비 실재를 그것이 그에게 충분히 비평적이었던 정도로 이성의 축소된/환원된 그리고 허구적 타당성의 일종으로 규정했다. 불트만은 양식 비평적 작업에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칸트적 분리와 동일한 관념을 사용했지만, 그러나 그는 칸트적 분리를 좀 다르게 사용했다. 그는 경험 과학의 객관적 실재와 “확실하게 존재하는 인간”의 주관적 실재 사이를 구별했다. 이 구별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경험 과학의 대상들을 위해서는 Realität, 그리고 자아에 대한 “진정한”(authentic) 의식을 위해서는 Wirklichkeit라는 두 개의 독일어 단어를 사용했다. 반면에, 토마스주의자에게,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고의 다양한 대상들이 그것에 꼭 맞든 맞지 않든 하나의 실재라는 단일하고 명확하게 규정된 개념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타당한 과학의 필수적인 개념은 제일 먼저 상식에 의해 인식되며, 그 다음에 기술적 과학에 의해 정제된다(refine). 세례에 주입된 신앙이라는 초자연적 은사는 신앙의 대상들이 이 하나의 실재의 지속성 안에 놓일 때, 이런 신앙의 대상들의 명확한 실재를 의심하는 것은 신앙을 거스르는 죄라는 식으로, 신앙의 대상들의 실재성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가톨릭 신앙의 대상들은 예수의 사망으로부터 육체적 부활, 천국과 지옥의 실재성, 인간의 이성적 영혼, 영혼의 실체적 자질로서 충족한 은혜,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의 역사적 실재성을 포함하는 다른 많은 것들 같은 것들을 포함한다. 가톨릭주의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들이 자연 과학들에 의해 세워진 사실들과 충돌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충돌처럼 보이는 것이 일어날 때, 가톨릭주의자들은 자연 과학의 확언된 사실이 확실한 증거에 근거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규명할 의무, 그리고 자연 과학자들과 역사가들의 빈번하게 편견에 사로잡힌 사고에 대항하여 그들의 신앙의 진리들을 방어할 의무를 갖는다. 이것은 가톨릭 교회가 세워진 때로부터 지속적으로 갖고 있는 가톨릭 교회의 전통이다. 이제, 과학은 “실재 사물들에 대한 증명된 지식”으로 정의될 수 있기 때문에, 가톨릭 신앙의 대상들을 믿는 것은 그 용어의 충분한 의미에서 상식 과학적 지식을 갖는 것이다. 반면에 칸트의 비평적 방법의 전제들은 용어들에 대한 그 자신의 규정에 의해 가톨릭 신앙의 대상들과 성경의 가르침을 증명된 지식의 범주에서 제외하며, 그것들을 주관성 그리고 단순히 심미적 가치의 영역에 남겨둔다. 그러나 궁켈과 불트만의 양식 비평 방법의 합리주의적 전제들은 그와 동일한 것을 수행한다.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 그들은 칸트의 메카니즘과 경험주의를 반영하는 환원적 접근을 선호하여 과학의 “큰 그림”을 배제한다. 이제, 카톨릭 양식 비평가들은 이 방법을 사용함에 있어서 가톨릭 신앙의 대상들을 특징적으로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기능적이 아닌 두 가지 상반되는 체계들이라는 이원론을 통해 신앙의 대상들을 지속적으로 마음에 두는데, 양식 비평이 이 이원론의 중심에 있고, 가톨릭적 가르침이 이 이원론의 배경에 있다. 그들은 그들의 양식 비평을 “과학적 주석”이라고 부르며, 반면에 가톨릭 신앙과 전통적 가톨릭 철학과 신학은 “과학적”이라는 자리에서 환원적으로 쫓겨난다.15 그러나 가틀릭 신앙은 역사적 실재라는 “큰 그림”(big picture)을 지지하고 있는 상식과 관계하며(32번), 가톨릭 성경 해석은 가톨릭 신앙을 가톨릭 철학과 신학의 확립된 원리들과 종합해야만 하지만, 그러나 양식 비평가들은 이 직무를 결코 수행해 오지 않았다.
49. 양식 비평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가? 가톨릭 양식 비평가들은, “양식 비평이 가능한 한 객관적이려는 과학적 척도의 도움을 받아 작동”하기 때문에, 양식 비평은 비평적 방법이라고 주장한다(45번). 그러나 그들은 “과학적”(scientific)이라는 말로 무엇을 의미하며, “객관적”(objective)라는 말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학적”이란 말로 그들은 오직 현상의 수준으로 환원시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수준에서 성경의 본문은 단순한 현상으로 간주되며, 성경의 신적이고 초월적인 특성들은 비 작동적인 것으로 그리고 시야에서 사라진 것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역사적”이라는 말로, 그들은 성경 본문의 역사적 증언은, 궁켈과 불트만이 그들의 접근의 합리주의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가정한 것처럼, 기본적으로 (얼마간의 기저에 깔린 역사성을 가졌지만) 허구적이고, 종교적 공상의 결과라는 가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세상에 대한 역사적 접근이 아니다. 예를 들면, 가톨릭 양식 비평가들이 출애굽기에 기록된 것과 같은 홍해의 물들의 기적적인 저지는 없었다고 주장할 때, 또는 예수가 떡들과 물고기를 기적적으로 증가시키지 않았다고 주장할 때, 그들은 아무런 역사적 증거도 없이 기독교 신자들의 신앙에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런 주장을 위해 갖고 있는 유일한 증거는 이런 자연 기적들은 일어날 리가 없다는 합리주의적 가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 과학을 비과학적인 철학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윌리엄 폭스웰 올브라이트(William Foxwell Abright)는 유능한 역사가로서 1957년에 양식 비평가들은 “그들의 연구를 점점 더 주관적 방향으로 밀어 붙여 왔고”, “악순환들이 그들의 연구 전체에 걸쳐 명백하다”고 관찰했으며, “객관적 역사가의 입장에서 자료들은, 동일한 준거 틀 안에서 발견되는 상당한 수의 다른 자료들의 역사성을 거부하는 확실한 독자적인 이유들이 없는 한, 그것들이 그 안에서 발생하는 부차적 문학적 준거 틀의 비평에 의해 반박될 수 없다”는 것을 이어서 지적했다.16 요약하여, 그는 “오직 역사적 방법과 관점이 없는 현대 학자들만이, 양식 비평가들이 그것으로 복음서 전승을 둘러싸온 것처럼 그런 추측(speculation)의 줄을 칠 수 있다”.17 마찬가지로, 원래 가톨릭 성경 위원회는 1964년 4월 21의 지시에서 가톨릭 주석가들을 양식 비평이 내포하고 있는 “수용할 수 없는 철학적이고 신학적 원리들” 가운데서 “양식 비평 방법” 안에 있을 수 있는 건전한 요소들을 살펴보도록 권했다(EB 647).
50. 양식 비평적 방법 자체의 몇 전제들. 재구성된 가톨릭 성경 위원회의 1993년 문서는 (양식 비평을 포함하여) 역사 비평 방법은 비록 방법 그 자체에 속하지 않고 다만 그 해석을 지배하는 어떤 해석적 선택들에 속하는 어떤 선험적 원리들과 함께 사용될 때 편향적일 수 있지만, “객관적으로 사용될 때 그 자체 아무런 선험적인 것도 내포하지 않는 방법이다”라고 주장한다.18 그런 편향적 해석으로 제시된 예는 루돌프 불트만의 해석인데, 그는 “양식 비평 연구들을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실존주의 철학에 영감을 받은 성경 해석과 결합시켰다”.19 이것을 언급하면서, PBC는 두 가지를 간과한다. 첫 번째 것은 불트만이 그가 양식 비평을 복음서들의 해석에 적용했던 그의 고전적『공관 복음서 전승사』(History of the Synoptic Tradition, 1921)에서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그의 양식 비평이 빚어낸 그 파괴적 결과 안에서 기독교 신앙을 위한 어떤 정당화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하이데거의 실존주의적 철학을 사용했던 때는 20년 후의 일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것은 불트만이 그의 전-하이데거적 양식 비평적 연구(pre-Heideggerian from-critical work)에서 철학적이고 방법론적인 전제들을 사용했고, 그리고 다른 모든 양식 비평가들이 그들의 양식 비평적 추론에서 그 전제들을 사용했으며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 전제들 중의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a. 합리주의(Rationalism): 건전한 인식론과 기독교 신앙의 초자연적 실재성들이 양식 비평 방법에서 배제된다.
b. 잘못된 역사적 방법(False historical method): 역사적 과학은 발생해 온 것을 다루는 것이지, 역사학자가 발생할 수 있다거나 발생할 수 없다고 가정한 것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양식 비평주의는 그 어떤 이적적인 사건들도 결코 발생하지 않았다고 전제한다. [그런데] 가톨릭 양식 비평가들은 그 어떤 이적들도 결코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이중적으로 그들의 신앙으로 하여금 양식 비평이 그곳으로 본질적으로 끌어들이는 어떤 결론들에로 그들을 이끌어가는 것을 억제하게 한다. 이런 이중적 행태에 대해 불트만은 “일단 그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한다면, 어디에서 그 선을 그을 수 있겠는가?”라는 말로 ‘신앙적 양식 비평가들’(believing form-critics)을 비웃어 왔다. 가톨릭 양식 비평가들은 이런 비난에 대해 변변한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c. 순환 논법(Circular argumentation): 양식 비평가들은 그들의 사고 안에 이미 전제되어 있는 결론들을 끌어낸다. 예를 들면, 예수는 이런 저런 이적들을 진짜로는 행하지 않았다는 그들의 결론은 오직 이적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에 근거한다. 불트만은 “양식 비평주의는 근본적으로 순환 안에서(in a circle) 움직여야만 하는 모든 역사적 연구와 구별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문서 전승의 양식들은 공동체의 삶 안에서 작용하는 영향력들을 확립하는데 사용되어야만 하고, 그 공동체의 삶은 그 자체로 인식 가능한 양식들을 제공하는데 사용되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곳에서 이것을 인정한다.20 불트만은 여기서 역사적 방법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보인다. 그는 역사적 사실들을 하나의 사회학적 개념(헤르만 궁켈의 삶의 자리[Sitz-im-Leben])으로부터 끌어내려고 애쓴다.
d. 결론들을 오직 내적 표시들(internal indications)로부터만 끌어냄: 양식 비평가들은, 가능성들이나 있음직한 것들 같은 표시들이 자기들이 선택한 방향으로 이끌지 않을 때 그 가능성들 또는 심지어 있음직한 것들조차도 무시하면서, 그들이 성경 본문들의 비교로부터 결론 내린 것에 대해 영원히 논쟁할 수 있다.
e. 실재에 대한 이중적 개념(a double concept of reality): 양식 비평주의가 시작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불신자들은 그저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성경의 가면을 벗겨내려 할 수 있다. 그런데 진술된 양식비평주의의 궁극적 목적은 기독교 신자들이 그 가면이 벗겨진 성경 안에서 자신들을 위한 몇 가지 가치를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고, 이 목적을 위해 양식비평주의자들의 창시자들이 선택한 개념은 “허용할 만한 허구”(permissible fiction)라는 칸트의 관념이었다. 이런 이원론(dualism) 없이는, 양식 비평의 발전 내내 성경 안에서 오류나 상반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의 모든 새로운 “발견”은 그 방법을 위한 한 걸음 전진으로 간주되어 왔고, 그 역사성이 살아남은 모든 경우는 극복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일시적 장애로 간주되어 왔다는 것을 고려할 때, 양식 비평주의는 완전히 파괴적일 것이다. 양식 비평주의는 기독교 신자가 성경의 일화들은 허구들이라는 것을 발견하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자신의 기독교적 망상들(illusions)을 발견하도록 도우며, 비록 그 허구들과 망상들이 분명하게 실재적이 아니라 할지라도, 여전히 어떤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하게끔 만들려 한다.
f. 불충분하게 정의된 용어들의 사용(Use of poorly defined terms): 양식 비평주의의 창시자들 사이에서 용어들의 모호성은 가톨릭 양식 비평가들 사이에서 배가 된다. 과학적, 역사적, 객관적, 그리고 문학 양식과 같은 단어들은 모호함에 잠겨있으며, 모든 과학의 핵심 개념인 실재라는 단어의 분석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g. 다른 전제들(Other presuppositions): 가톨릭 양식 비평가들은 다른 비역사적 전제들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그들은 성경 본문에서 보다 단순한 진술들은 보다 오래된 것이며, 본문에서 어떤 상반되는 차이들과 함께 반복된 성경의 일화들 또는 어구들은 실제로는 단 한 번 이상은 발생할 수 없다고 전제한다.
51. 성경의 무오류성 방어(Defense of the inerrancy of Sacred Scripture). 원 가톨릭 성경 위원회의 1964년 지시는 가톨릭 주석가들은 자신의 준거 틀 안에서 가톨릭 신앙의 대상들뿐만 아니라, 또한 건전한 가톨릭 철학적 그리고 신학적 원리들을 반드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양식 비평 방법은 그 대상들과 원리들을 체계적으로 추방해 버린다. 교황 피우스 12세는 1943년에 “성령의 영감”(Divino afflante Spiritu)에서 교회의 영원한 가르침을 재확인하면서 가톨릭적 해석가들은 “반대자들의 불복들을 반박하기 위해 싸워야 하며, 난감한 문제들에 관해 교회의 교리, 특히 성경의 무오류에 관련된 전통적 가르침과 완전히 조화를 이루는 그리고 동시에 세속 학문들의 어떤 결론들을 만족시킬 만족스런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지적했다(EB 564).
52. 쟝 레비(Jean Levie). 한 집단으로서 가톨릭 비평가들은 이 요구들에 맞춰 살지 않는다. 예를 들면, 쟝 레비는 양식 비평 방법의 발흥에 대해 1958년에 펴낸 유명한 책에서 성경은 “인간들의 말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 in the words of men)이라는 관념을 발전시킨다.21 이 발전을 제시하기 위해 그는 양식 비평의 통상적인 환원적 접근을 취한다. 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취할 여유 없이 성경을 오직 인간의 말들로서만 해석한다. 그에게 성경의 하나님 말씀됨은 가정되지만, 완전히 비 기능적인 것이다. 레비는 교황 피우스 12세의 회칙 “성령의 영감”(Divino afflante Spiritu)이 교황 베네딕트 15세의 그 이전의 회칙 “보혜사 성령”(Spiritus Paraclitus)보다 성경에 대한 (상대적인, 절대적이 아닌) “이중 진리론”(theory of the two-fold truth)에 대한 정죄를 더 강조하지 않았다고 억측하는 곳에서, 그리고 이것이 양식 비평의 허구적 장르 이론에, 즉 그 안에서 성경적 이야기들이 “사실들의 실재와 조화시키는데 있어서가 아닌, 대중적인 현대적 견해가 어떤 주제에 대해 말한 것과 조화시키는데 있어서” 해설되는 해석에 길을 열어주는 것 같다고 말하는 곳에서 가톨릭 양식 비평가들에 의해 채용된 이원론을 명백히 한다.22 레비는 이어서 “하나님은 그의 세계 안에 그리고 그 자신의 시대에 존재했던 그대로의 실재 사람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모든 문학 양식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도덕적인 한에 있어서 신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23 그래서 역사적 기술로 제시된 신화 또는 허구적 이야기는 도덕적으로 참된 신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정확히 피우스 12세가 1950년에 그의 회칙 “인류”(Humani generis)에서 사실상 반복하여 정죄했던 순전히 상대적 진리(relative truth)라는 관념이다. 그곳에서 피우스는 “그들은 심지어 성경의 인간적 의미(human sense)에 대해서도 잘못 말한다. 그들이 유일한 절대무오류(infallible)의 의미라고 말하는 신적 의미(divine sense)는 그 인간적 의미 아래에 감추어진 채 놓여있다”라고 말한다(EB 612). 즉, 가톨릭 양식 비평가들은 이 성경적 기술들에 관련한 역사적 진리는 그 기술들 자체 안에 있지 않고, 그보다는 양식 비평주의의 결론들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
53. 신적 메시지(The divine message). 궁켈과 불트만같은 합리주의적 양식 비평가들은 성경 안에 어떤 실재 신적 메시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한다. 반면에 가톨릭 양식 비평가들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면서, 비록 그들이 신적 메시지를 그들의 양식 비평 작업 자체에서는 발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내가 양식비평이 어떻게 가톨릭 신앙의 대상들이 그들의 양식 비평 체계의 결론들과 단일한 실재를 공유하는지를 보이려고 시도했던 한 가지 예도 결코 발견하지 못 했을 정도로 그들의 방법의 철학화에 대한 그들의 반감이 보편적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신적 메시지가 존재한다고 믿는다(45번). 사실, 그들이 신앙의 대상들을 그들이 성경 이야기들의 특성으로 보는 허구와 확실하게 구별되지는 않지만 다른 공식적인, 그렇지만, 과학이전의 교리(prescientific doctrine)라는 쇠퇴 영역 안에 남겨두는 반면에, 그들의 사고의 인간적이고 자연적 대상들을 “과학적”인 것이라고 부를 때 칸트적 분리는 그들의 작업에서 명백하다.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양식 비평 과정에서 신앙의 초자연적 대상들에 남겨진 실재의 어떤 등급이든 가톨릭 양식 비평가들 측에서 합의된 변증적 방어의 대상이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알기로는, 그들의 체계 안에 내재된 합리주의에 대해 지지할 수 있는 대답을 내놓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래서 그들은 “과학적인” 양식 비평적 실재와 심미적으로 호소하는 그러나 전과학적인 종교적 신념이라는 극단적 이원론을 갖는다.
54. 동정녀 수태에 대한 쟝 당니엘루(Jean Daniélou)의 언급. 가톨릭 양식 비평가들은 그들이 역사적 실재로부터 “과학적으로” 제거해온 그 의식들을 기도와 신앙의 대상들로 만들 수 있다. 예를 들면, 다니엘루는, 양식 비평적 추론을 따르면서, 마태와 누가의 유아 이야기들 안에 있는 장면들은 주로 구약의 말들과 장면들 위에 만들어진 허구들(fabrication)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예를 들면, 그는 천사들은 구약의 상상력에 의한 문학적 고안물들이며, 처녀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의 수태고지는 이사야 9장에 대한 가상적 주석(midrash)이라고 주장한다. 그 수태고지 안에서, 예를 들면, “평안할지어다, 은혜를 받은 자여”라는 표현은 스바냐서 3장 14절부터 17절, 또는 다니엘서 9장 21절부터 27절에서 빌려온 것이며, 이 공상적인 천사의 입술에 놓여 진다는 것이다.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등등의 천사에 의해 말해졌다고 묘사된 말들은 그와 같이 구약의 여러 곳에서 취해진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그리고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는 그 천사의 담화의 다른 두 어구들은 예수의 신성에 대한 그들의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누가 자신에 의해 또는 그와 동시대의 기독교 집단들에 의해 창작되었다는 것이다.24 그 성경의 수태고지 기사의 역사성을 완전히 파괴하면서, 다니엘루는 이 이야기 안의 그리고 마태복음 1장 20절 안의 요셉에게 한 천사의 나타남의 일화 안의 마리아의 처녀 수태는 “어떤 역사적 근거 위에 놓여있으며”, 그리고 “(처녀 수태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역사적 기사인데, 그 이유는 마리아의 처녀 수태가 ”그 두 가지보다 앞서는 한 전승 안의 어떤 요소”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25 그러나 이 이전의 전승의 역사적 실재성에 호소(resort)는 다니엘루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기독교 공동체에 의해 산출된 허구들이라고 주장했던 일화들로부터 분리되어서는 역사성에 대한 아무런 증거도 갖지 않는다. 그래서 마리아의 동정녀 수태가 “역사적”이라는 다니엘루의 주장은 오직 그의 접근의 이원론을 드러낼 뿐이며, 그는 이 이원론을 통해 역사적 사건이라고 기술된 것이 허구라는 양식 비평적 결론을 반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역사적 사건이라고 기술된 것이 참되다고도 믿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가톨릭 양식 비평가들이 “과학적으로” 이 신앙의 대상이 그 위에 근거하는 역사적 진리를 부정할 수 있으며, 심지어 그것의 역사성을 방어하는 사람들을 “성경과 과학의 조화주의자들”(concordists)이라고 매도하면서도, 여전히, 그들이 그들의 양식 비평 작업에서 그것들의 역사적 진리성을 제거해 온 장면들과 말들을 되풀이 하여 경건하게 존숭하면서, 예를 들면, 안젤루스와 로자리의 즐거운 신비들을 기원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런 유희의 예들이 많으며, 이것은 가톨릭 양식 비평가들이 가정된 양식 비평적 실재와 기독교인이 만들었다는 사이비 신앙의 양식(a form of pseudo-Christian make-believe)을 초월적으로 통합하려는 혼란스런 인식론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예시한다.
55. 처녀 수태에 대한 레이몬드 브라운의 견해. 그의 널리 읽혀지고 있는 책,『예수의 처녀 수태와 육적 부활』(The Virginal Conception & Bodily Resurrection of Jesus)에서,26 레이몬드 브라운은 양식 비평적 성서학자로서 복음서들은 단순히 “예수의 사역에서 일어났던 것에 대한 사실적 보고(factual reporting)가 아니고, 통찰력에 의해 인지된 사건들의 중요성을 보여주려고 기록된 신앙의 문서들(documents of faith)이다”라고 결론짓는다.27 그는 “두 복음서들의 유아기 이야기들 안의 처녀 수태의 존재는 역사성에 대해 아무런 절대적인 보장도 제공하지 않는다,”28 또한 “현대 개신교 학자들과 가톨릭 학자들은 그 유아기 이야기의 일반적으로 상징적(figurative)이고 비 역사적인 특성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동의한다”라고 주장한다.29 믿는 가톨릭 교인으로서 브라운은 예수의 처녀 수태를 신앙의 대상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러나 양식 비평가로서 그는 처녀 수태가 생물학적 사실인지 아닌지 의심한다.30 브라운은 “만약 처녀 수태와 조합된 기독론이 예수의 지상 사역의 시초부터 [예수에 의해, 처녀 마리아에 의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알려졌다면, 그 비평 이론 전체는 무너져 버릴 것이다”라는 것을 인정한다. 누가의 이야기는 “순수하게 역사적 보고의 분위기를 띄지 않으며, 마태의 유아기 이야기는 “전설(folkloric) 그리고 상상물과 방불한 것이다”라는 것이 브라운의 견해다.31 이 판단은 양식 비평 학파의 자연주의와 칸트적 분리에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마태의 이야기가 전설과 상상물인 것 같다는 것은 오직 가설에 기초한, 진정한 신적 개입들의 배제에 근거한다. 그리고 누가의 기사는 “순수하게 역사적인 보고의 분위기”를 반영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은 오직 현대 인간 역사가들의 능력을 넘어 가는 신적으로 영감 된 저술의 선험적 배제에 근거한다. “과학적으로 통제 가능한 증거의 총계는 미해결의 문제를 남긴다”는 것이 생물학적 사실로서 예수의 처녀 수태에 관한 브라운의 신중하게 고려된 결론이다.32 이것은 보다 큰 미해결의 문제를 일으킨다. 무엇이 “과학적으로 통제 가능한 증거”이며, 무엇이 “순수하게 역사적인 보고”인가? 가톨릭 양식 비평가들은 그들의 작업을 “과학적”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타당한 과학적 개념으로도 타당한 역사적 방법의 개념으로도 작업하지 않는 것 같다(49번). 모든 진정한 과학은 실재에 대한 명확하고 고도로 분화된 개념 주위에 구성되는 반면에, 가톨릭 양식 비평주의의 이원론에서 가톨릭 신앙의 대상들은 종교적 신념의 분명하지 않은 실재적 또는 비실재적 세계 안에 버려진다. 그렇다면 이 신념이 어떻게 생물학적 사실과 관계가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진정한 역사가들은 발생해온 모든 것을 다룬다. 그러나 불트만과 그의 학파와 같은 사람들은 유아기 이야기들과 복음서의 나머지 부분에 보고되는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었다고 가정한다. 초자연적 의미를 갖는 이적적 사실들의 인식은 허구적이거나 전설적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역사적 과학의 근본적인 원리들에 상반된다. 왜냐하면 역사적 과학은, 역사적 의미(historical meaning)는 꾸밈없는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과 개념상 구분되는(distinct) 반면에, 역사적 사실로부터 분리되지는 않는다(not separate)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브라운이 역사적 사실 안에 끼워 넣어진 복음서 교리를 역사적 사실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비과학적이다. 그는 신적 계시에 대한 교회의 타고난 통찰이 “생물학적인 사실의 질문”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는 이 교리를 역사적 사실로부터 분리시키고 있으며, 비과학적으로 이 교리를 신학적 사상(theologoumenon)의 수준으로 격하시키고 있다. 브라운은 다니엘루와 사실상 모든 양식 비평가들이 그러는 것처럼 누가복음 1장에서 천사의 마리아에게 출현과 마태복음 1장에서 요셉에게 출현은 순전히 처녀 수태라는 관념을 전하기 위해 개발된 문학 양식들(mere literary forms)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33 이것은 천사의 진짜 출현들은 없었으며, 역사적 수태 고지들도 전혀 없었지만, 처녀 수태 관념이 발생했으며, 그가 말하기를, 이것은 설명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그 관념은 아마도 이방 종교적 믿음들이나 구약 이야기들에서 온 것은 아닐 것이라고 추론하지만, 역사적 사실의 근거도 없는 그리고 다른 전통들의 그 어떤 제안도 거부하는, 단지 초기 기독교인들이 그 이야기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양식 비평 방법의 결과를 숙고하여 반박하는데 실패하며, 그래서 그는 실제로는 이 신앙을 효과적으로 방어하지 못한다.
56. 몇 가지 총괄적인 결론들. 가톨릭 성경 학자들의 양식 비평 방법 사용에 관련하여 다른 것들 중에서, 다음의 총괄적인 결론들이 내려질 수 있을 것이다.
a. 조셉 카디널 렛징거가 1988년에 관찰했던 것처럼, 역사 비평주의는 임마누엘 칸트의 철학을 사용한다.
b. 가톨릭 양식 비평가들은 대부분 그들의 방법의 철학적 전제들을 모르고 있다.
c. 가톨릭 양식 비평가들은 계몽주의의 반종교적 사고방식이나『순수 이성 비판』에 기술된 그리고『순수 이성의 한계 안의 종교』(Religion within Boundaries of Mere Reason)에서 더욱 분명하게 기술된 임마누엘 칸트의 반기독교적 사고방식에 의식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톨릭 양식 비평가들은 객관성의 현상적 수준에 그리고 성경의 인간적 수준에 제한되는 과학에 대한 칸트의 환원적인 규정에 이원론적으로 (부지불식간에) 동의한다. 그들은 과학에 대한 그 환원적 규정을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과 세로로 나란히 세워 붙들 뿐, 그 가르침과 종합하지는 않는다.
d. 가톨릭 양식 비평가들은 임마누엘 칸트의 인식론을 따르며, 상식의 수준에서 신앙의 대상들을 포함시키고 기술적 과학의 수준에서 가톨릭 철학과 신학을 포함시키는 형상적 대상(the formal object)이 그 안에서 초점에서 배제되어 온 주체-객체 관계(the subject-object relationship)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그 결과, 렛징거가 1988년에 지적한 것처럼, 그들은 양식 비평 방법을 사용하면서 가톨릭 철학과 신학의 확립된 원리들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 자신의 정신적 준거틀(metal frame of reference)을 충분하게 비판하지도 않는다.
e. 가톨릭 양식 비평가들에 의해 사용되는 기술적 용어들과 역사적 기술들은 부정확하고 정밀하지 않다.
f. 양식 비평 방법의 합리주의적 성향은 가톨릭 양식 비평가들이 성경 기사들의 역사성을 보존하기 위해 또는 성경의 보다 깊은 의미들을 이해하기 위해 충분히 시도하는 것을 방해한다.
g. 양식 비평 해석의 주장된 단정적인 목적을 구성하는 도덕적 목표는 칸트적 분리의 주관주의적이고 실존주의적 측에 근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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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1 W. David Beck, “Agnosticism: Kant,” in Norman L. Geisler, Ed., Biblical Errancy (Grand Rapids, Michigan: Zondervan, 1981), p. 53.
2 William Turner, History of Philosophy (Boston: Ginn and Company, 1903), p. 547.
3 Beck, ibid., p. 72.
4 Beck, ibid., p. 76.
5 소위 성경 해석에 대한 “비평적” 접근은 이제 “역사적 비평주의”로 알려지고 있으며, 1678년에 회심한 가톨릭 사제 리차드 사이먼(Richard Simon)에 의해 주목 받았는데, 그는 그가 구약의 “비평적 역사”(critical history)라고 명명한 것을 출판했다. 그가 구약의 본문을 자신이 그의 인간적 이성의 “비평적 판단”(critical judgment)이라고 간주한 것에 복종시켰기 때문에, 그는 그의 작업을 “비평적 역사”라고 불렀다.
6 합리주의(rationalism)이란 말은 “지식이 감각의 도움이 없이 지성 자체로부터 온다는 학설”이라는 이차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여기서 “이성을 한 사람의 견해들이나 행위의 진로를 결정하는 유일한 권위로 받아들이는 원리 또는 실천”(Webster’s New College Dictionary, 2007)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독일 계몽주의자 라이마루스(H. S. Reimarus, 1768 사망)는 신에 대한 합리적 숭배자들(the Rational Worshippers of God)을 위한 변증으로서 성경을 분명하고 자기중심적 방법으로 접근하여 체계적으로 해석하는 합리주의(rationalism)의 창시자였다.
7 Hermann Gunkel, Genesis (English trans.: Macon Georgia: Mercer University Press, 1997), p. viii. For a detailed analysis of Gunkel’s approach to form-criticism see J.F. McCarthy, “Rationalism in the Historical-Criticism of Hermann Gunkel” at www.rtforum.org/lt/lt108.html.
8 Pope Leo XIII, Providentissimus Deus, no. 2, in Claudia Carlen ed., The Papal Encyclicals (McGrath Publishing Co.), vol. 2, p. 326.
9 Cf. Beck, ibid., p. 54.
10 I. Kant, Religion within the Boundaries of Mere Religion (English trans.: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p. 65, footnote.
11 Pontifical Biblical Commission, The Interpretation of the Bible in the Church (Rome: Libreria Editrice Vaticana, 1993), p. 34. “역사적 비평주의”(historical criticism)라는 용어는 원래 19세기의 “고등비평”(higher criticism)의 계승자들에 적용되면서도, 일반적으로 모든 건전한 역사적 연구의 비평적 방법을 뜻하는 데 사용되고 있을 만큼 어느 정도 불명료하게 되었다는 것을 주의하라.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이 논의를 가톨릭 역사 비평가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는 것처럼 역사 비평주의의 양식-비평적 국면에 집중시켜 왔다.
12 Pontifical Biblical Commission, The Interpretation of the Bible in the Church, pp. 37-38.
13 Pontifical Biblical Commission, The Interpretation of the Bible in the Church, pp. 36-37.
14 Pontifical Biblical Commission, The Interpretation of the Bible in the Church, p. 38.
15 과학에 대한 그와 동일한 환원적 이해는 심지어 공식적인 Catholic magisterial statements 안으로 흘러들어 왔으며, 그 안에서 때때로 신앙과 과학, 철학과 과학, 또는 신학과 과학이 대조된다. 다른 과학들과 경험적 과학 사이에 온당한 구별이 있어야만 한다.
16 W.F. Albright, From the Stone Age to Christianity (Baltimore, MD: John Hopkins Press, 1957), pp. 381-382.
17 Albright, ibid., p.387.
18 Pontifical Biblical Commission, The Interpretation of the Bible in the Church, p. 39.
19 PBC, ibid., p. 36.
20 R. Bultmann, History of the Synoptic Tradition (English trans. of the 3rd German ed., 1958: Oxford, England: Basil Blackwell, 1963), p. 5.
21 J. Levie, La Bible, parole humaine et message de Dieu (Paris-Louvaine, 1958); English translation: The Bible, Word of God in Words of Men (London: Geoffrey Chapman, 1961). For a fuller review, see “Jean Levie and the Biblical Movement” at www.rtforum.org/lt/lt31.html.
22 Levie, ibid., p. 146, note 7.
23 Levie, ibid., p. 167.
24 J. Daniélou, The Infancy Narratives, translated by Rosemary Sheed (New York: Herder and Herder, 1968) – (original edition: Les Evangiles de l’Enfance (Paris: Editions de Seuil, 1967), pp. 33-37. For a fuller review, see www.rtforum.org/lt/lt130.html.
25 Daniélou, op. cit., pp. 41-42.
26 R. Brown, The Virginal Conception and Bodily Resurrection of Jesus (London: Geoffrey Chapman, 1973). For a fuller review, see Living Tradition 133 (January 2008) on the internet at www.rtforum.org/lt/lt133.html.
27 Brown, Virginal Conception, p. 17.
28 Brown, Virginal Conception, p. 32.
29 Brown, Virginal Conception, p. 52.
30 Brown, Virginal Conception, p. 37.
31 Brown, Virginal Conception, pp. 53-54.
32 Brown, Virginal Conception, p. 66. 브라운은 “로마 가톨릭 신학에서, 통상적 척도에 따라, 처녀 수태는 the ordinary magisterium에 의해 무오류적으로 가르쳐지는 교리로 분류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곳에서 그 교리를 긍정하지만, 그러나 그는 “‘동정녀 탄생’이라는 그것의 신조적 명제 아래의 처녀 수태는 근본적으로 생물학적 진술이 아니며, 그러므로 그것에 신조적 주장이 생물학적 전제와 뗄 수 없게 첨부된 정도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라고 말한 곳에서 그 교리를 의심한다(R. Brown, The Birth of the Messiah [Garden City: Doubleday, 1977], p. 529).
33 Brown, Birth of the Messiah, pp. 52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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